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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연방의회 원내 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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숄츠 내각 (2021 ~ 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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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 |||
독일 사회민주당 207석 |
동맹 90/녹색당 117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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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 |||
CDU/CSU 196석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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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당 90석 |
독일을 위한 대안 77석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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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당 (그룹) 28석 |
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맹 (그룹) 10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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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섭단체 및 무소속 8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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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적 733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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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일 기독교민주연합(CDU, 153석)과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CSU, 43석)은 연방의회에서
CDU/CSU라는 공동
교섭단체로 활동함. 2. 독일을 위한 대안 소속 의원 1명은 의회 교섭단체에 가입하지 않아 미포함. 3. 독일을 위한 대안 1석, 남슐레스비히 유권자 연합 1석, 무소속 6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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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 |||||
독일 사회민주당 207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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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90/녹색당 117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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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기독교민주연합 153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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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당 9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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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위한 대안 78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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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 43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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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당 28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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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맹 10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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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슐레스비히 유권자 연합 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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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2B7C1><colcolor=white> Christlich Demokratische Union Deutschlands | |
약칭 | CDU(체데우) |
영어 명칭 | Christian Democratic Union of Germany |
한국어 명칭 | 독일 기독교민주연합[약칭] |
창당일 | 1945년 6월 26일 |
이념 |
보수주의 (
독일) 기독교 민주주의 사회적 시장경제 친유럽주의 친생명 |
스펙트럼 | 중도우파[2] |
상징색 |
[[청록색| 청록색 (#52B7C1) ]](공식)[* 2023년 9월까지 사용한 기존 상징색은 [[주황색|주황색 (#FF9A00) ]]이었다.][[검은색| 검은색 (#000000) ]](관행)[3]
|
주소 |
독일
베를린 10785, 콘라트 아데나워 하우스, 클링겔회퍼가 8 |
유럽 정당 | 유럽 인민당 |
유럽 의회 정당 |
|
국제 조직 |
|
청년 조직 | 젊은 우니온(Junge Union Deutschlands)[4] |
연방 당 대표 |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 |
연방 의회 의원 |
152석 / 736석 (20.7%)
|
연방 상원 의원[5] |
22석 / 69석 (31.9%)
|
유럽 의회 의원[6] |
29석 / 96석 (30.2%)
|
정책 연구소 |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 |
공식 사이트 | 홈페이지 |
SNS |
[clearfix]
1. 개요
독일의 제1야당, 중도우파 보수정당.독일 정치권에서 가장 당세가 큰 양당의 한 축[7]이자, 유럽 내 중도우파 친(親) 유럽연합(EU) 성향인 유럽 인민당의 주요 가맹 정당이다. 독일 내에서는 보수 성향이 강한 바이에른주의 지역정당 ' 기독교사회연합(CSU)'과 연대한 자매 정당 관계로, 연방의회에서 단일 교섭단체 ' CDU/CSU'를 결성해 하나의 정당처럼 활동한다.
한국에서는 보통 기독교민주연합(기민련) 혹은 기독민주당(기민당)으로 표기된다.
2. 역사
|
1972년부터 2023년까지 사용한 로고 |
창당 이후 친미 반소 외교와 사회적 시장경제[13]를 내걸고 22년간 집권하면서 라인강의 기적을 주도하였다. 초창기부터 서독에서 기민당에 정치적으로 유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고데스베르크 강령 이전까지 노동자 '계급 정당'을 표방해 온 사민당과 달리 철저하게 초계급적인 ' 국민 정당'을 지향해 왔기 때문이다.
1969년 선거에서 사회민주당에게 정권을 잃었다가, 1982년 자민당과 함께 헬무트 슈미트 당시 총리의 불신임안을 통과시키면서 재집권했고, 이는 헬무트 콜의 16년 장기 집권으로 이어졌다. 이 기간 동안 기존의 대소 강경책을 버리고 사민당 빌리 브란트의 동방 정책을 이어받아서 1990년 동서독 통일을 달성하였다. 헬무트 콜 총리는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과 함께 유럽 연합을 강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14] 그러나 헬무트 콜 총리 후반기에 급진적인 통일 정책의 부작용과 동서 간의 갈등으로 인해 장기간의 경기 침체를 겪었고 1998년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에게 정권을 내주었다.
2005년 앙겔라 메르켈이 총리가 되면서 재집권하였고 이후 연정 파트너를 바꿔가며 16년째 장기 집권하고 있다. 그러나 2021년에는 메르켈의 은퇴와 함께 창당 이래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 특히 총리 후보인 아르민 라셰트가 각종 구설수에 처하며 비호감 이미지가 극심하고, 그 틈을 탄 올라프 숄츠 부총리의 지휘하의 사민당에게 지지율 1위를 내주었다. 창당 이래 최저 득표율이 확정적인 가운데 2005년 이래 유지했던 연방 의회 제1당 위치와 총리직마저 잃을 수 있는 상황.
2021년 선거 결과 정권을 잃게 되었다. 1위인 사민당과의 격차가 9석에 불과하여 아르민 라셰트 총리 후보 역시 녹색당 및 자민당과의 연립 정부 구성을 시도하였으나 여론이 압도적으로 사민당 주도의 신호등 연정을 선호하였고, 11월 24일에 협상이 타결되었다. 따라서 12월 7일 메르켈이 퇴임하고 8일 올라프 숄츠 사민당 총리 후보의 내각이 출범하며 기민련은 16년만에 야당으로 돌아가게 된다.
선거에서의 패배로 인해 당 대표 아르민 라셰트는 결국 대표직에서 퇴진했다. 앙겔라 메르켈의 뒤를 이어 메르켈의 정치를 계속 이어나갈 것으로 예상되었던 친메르켈 중도 내지 중도우파 성향의 후임 당 대표들인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와 아르민 라셰트가 줄줄이 나가떨어지면서 당내에서 메르켈의 정치적 라이벌로 보다 선명한 중도우파 내지 우파 성향의 프리드리히 메르츠가 급부상했다.
결국 라셰트 대표의 사임 후 기민당 역사상 최초로 대의원의 간접 선거가 아닌 당원들이 직접 투표하는 방식으로 개최된 당 대표 선거에서 기민당 당원들 과반수의 지지를 받아 프리드리히 메르츠가 후임 당 대표로 지명되어 2022년 1월 공식 선출되었다.
2023년 2월 12일 베를린 지역 하원 의원 선거에서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소속 의원이 당선되면서 여전한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지도부 출범 이후로는 숄츠 총리의 신호등 내각 지지율 하락과 함께 지지율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주 단위 선거에서도 기민련이 선전하고 있기 때문에 메르츠 체제가 상당히 순항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유일한 우려는 차기 총선 후 정권 창출을 위해 제도권으로부터 지지율이 크게 상승한 독일을 위한 대안과 손잡지 않을까 하는 정도다. 실제로 메르츠 대표가 주 정부 차원에서는 AfD와 협력할 수도 있다는 함의가 있는 발언을 했다가 언론들이 이를 지적하자 황급하게 이를 허용할 생각은 없다고 주워담은 바 있다. #
2024년 9월 초에 열린 튀링겐 및 작센 주의회 선거에서 여권이 참패하는 와중에도 기성 정당 중 유일하게 건재한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여론조사에서도 약 30%의 지지율로 1위를 유지하며 좋은 기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9월 말에 치러진 브란덴부르크 주의회 선거에선 4위에 그치면서 참패를 당했다. 반면 사민당은 예상을 깨고 득표율을 늘려 1당 유지에 성공하면서 승리해 기민련에게 더욱 뼈아픈 선거가 되었다.
2025년 2월에 치러질 제21대 독일 연방의회 선거를 앞두고 독일의 모든 주요 여론조사들에서 압도적인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 ## ### #### ##### ######
3. 지지층
독일을 대표하는 공영 국제 방송인 도이체 벨레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산업계 지도자들과 중소기업 사업주들같은 기업인들로부터 높은 지지세를 기록해왔다고 한다. 또 기독교 민주주의 정당답게 교회 출석자들에게 지지세가 강하다고 한다. 지역적으로는 시골 지역, 세대적으로는 60대 이상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4. 성향
가톨릭 중앙당의 실질적인 후신인 만큼 가톨릭 사회교리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보수 정당이지만, 영미권의 진보 정당 못지 않은 노동 대표성과 친환경 성향을 가지고 있다.가령 환경/기후 변화 이슈의 경우 앙겔라 메르켈 총리 집권 이후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탈원전에 대해 당내 이견도 있지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메르켈은 2019년 9월 23일 툰베리가 참석한 유엔 기후 행동 정상 회의에서 툰베리의 연설에 감명받았다며 "2038년까지 탈석탄국이 되겠다"고 발언한 바 있으며, 기민련 중앙당사 유리 외벽에 그레타 툰베리의 슬로건이 걸어놓아진 바 있다. #
또한 영미권 및 그 영향을 받은 우방국들의 보수 정당들이 보통 기업인들이나 전문직 종사자들, 그리고 전통적 가치를 대변하는 다양한 조직들을 대표하고, 노동 대표성은 노동계 인사 몇 명 영입하는 구색 맞추기 수준인 데 반해, 기민련은 영미권 잣대로 보면 거의 좌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매우 강력한 친노동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는 기민련의 경제적 이념인 사회적 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 자체가 우파=친기업, 좌파=친노동이라는 영미권의 잣대가 아닌 후기 근대 그리스도교의 고유한 스탠스, 특히 가톨릭 사회교리에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15] 즉 19세기 가톨릭의 "공산주의는 싫지만 그렇다고 자유주의자들이 좋은 것도 아니다. 길드 시절이 좋았지"라는 특유의 근대 비판적 성향이 기민련으로 이어졌다고 보면 되고, 다음 인용문에서 소개하는 종교적 친노동 운동이 곧 기민련의 실질적 이념이라 볼 수 있다.
비록 역사가들이 노동자들의 이웃, 작업환경, 파업, 정당에 대해 최근 다루고 있지만, 한 가지 주제 - 종교의 바로 그것, 특히 가톨릭 - 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덜 다루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인 노동계급운동들은 특히 가톨릭의 경우 다시 돌아볼 가치가 있다. ... 가령 1890년대부터 1933년까지 독일의 그리스도교 노조들은 거의가 가톨릭 노조였으며 노조원 수는 사회주의 자유 노조원 숫자의 1/7이었다. 그동안에,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는 가톨릭 노조원들이 1차 대전 전에 사회주의 노조원의 1/3이었으며, 1930년대에는 2/3이었다.[16]
Carl Strikwerda, 「Catholic Working-Class Movements in Western Europe」, 1988
Carl Strikwerda, 「Catholic Working-Class Movements in Western Europe」, 1988
5.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과의 관계
자세한 내용은 CDU/CSU 문서 참고하십시오.자매 정당으로 바이에른의 지역 정당인 기독교사회연합과 단일 원내 교섭 단체 CDU/CSU를 구성하여 의회에서 단일 정당 역할을 하고 있다. 의회에서 CDU와 CSU는 개별 정당으로서 아무런 권리와 역할을 행사할 수 없으며 등록된 교섭 단체인 CDU/CSU로만 활동이 가능하다.
6. 역대 선거 결과
자세한 내용은 CDU/CSU 문서 참고하십시오.7. 여담
콘라트 아데나워 하우스 (기독교민주연합의 중앙당사, 베를린) |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 (기독교민주연합의 싱크 탱크) |
- 당사 이름이 콘라트 아데나워 하우스(Konrad-Adenauer-Haus)다. 원래는 옛 서독의 실질 수도인 본에 동명의 건물이 있었는데 통일 이후 베를린에 새로 지었고 원래의 당사는 2003년에 폭파 해체 한 모양이다. 베를린의 콘라트 아데나워 하우스는 티어가르텐(Tiergarten)에서 가까운 편이다. 건물 외형도 제법 보기 좋게 지어져서 시간 내서 둘러보기에도 나쁘지 않다.
- 비유럽권 유학생에게 얄미운 독일 정당이기도 하다. 기민련이 집권하는 주마다 기존의 입장을 뒤엎고 유럽권 대학생의 학비를 전액 면제시켜 주는 것과 동시에 비유럽권 대학생에게 학기당 1500유로(기존 5배)의 학비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대학교 질을 높이기 위해서 바덴뷔르템베르크주는 이미 시행했으며 외국인에게 가장 관대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17]도 2017년 겨울 학기부터 신입생을 상대로 학비를 받기로 했다. 독일에서 김나지움을 졸업했거나 난민 또는 빈곤층은 면제이다. 현재 재학생은 아직 해당 사항은 없다.[18] 그렇기에 반발도 만만치 않은데 학비와 대학 연구 또는 수업 질의 상관관계가 명확하지 않다.[19][20] 또한 유럽권 학생의 등록금은 전액(0유료) 면제되었기에 학생 수의 10%밖에 안 되는 비유럽권 학생에게 기존의 5배 이상의 학비를 받아도 커버가 안 된다. 이 때문에 아시아 학생을 타겟을 삼은 정책이 아니냐는 논란이 나오고 있다.[21]
8. 동독 기독교민주연합
자세한 내용은 독일 기독교민주연합(동독) 문서 참고하십시오.9. 둘러보기
[약칭]
한국어 약칭은 기민련이 맞고 조금씩 사용이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기민당을 쓰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정당들이 항상 당명 끝에 '당'을 붙인 것이 이러한 번역에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다.
연합뉴스에서는 풀 네임을 기독민주당으로 표기하고 약칭을 기민당으로 표기하고 있다.
[2]
Conradt, David P. (2015),
"Christian Democratic Union (CDU)", Encyclopædia Britannica Online, Encyclopædia Britannica, retrieved 16 December 2015
[3]
2023년 9월에 새 로고를 제작한 이후로는 청록색을 홈페이지에서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검은색은 로고 타입에서만 사용된다.
[4]
"융에 우니온 도이칠란즈"정도로 읽는다.
[5]
주 정부에서 연방 상원 의원을 지명하며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기에 각 주 의회의 선거 이후 기민당이 가진 의석수가 변동 가능성이 있다. 보통은 주 총리를 비롯한 주 정부의 각료들이 연방 상원 의원이 되는데, 독일은 주 정부까지
의원 내각제이므로 이들은 모두 주 의회 의원이기도 하다. 사실 독일의 연방 상원은 의원들이 소속 정당보다는 소속 주가 더 중요하다.
[6]
96석은 유럽 의회에서 제공되는 독일 의석에 한정된다. 유럽 의회 총의석은 총 751석.
[7]
다른 한 축은 중도좌파 성향의
독일 사회민주당.
[8]
콘라트 아데나워는 1930년대 초반
쾰른 시장으로 재직 도중 나치의 탄압으로 쫓겨나서 10년 넘게 은둔 생활을 하였다. 패전 이후 미군이 그러한 경력을 높이 사서 임시 쾰른 시장으로 앉히면서 공직에 복귀하였다.
[9]
바이에른 인민당 인사들은 기민련의 자매정당인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을 창당했다.
[10]
독일 국가인민당의 경우 온건파가 주로 기민당에 유입되었다. 강경파들은 전후 독일 우파당, 독일 국가당 같은 강경 우파 진영이나 아예
독일 민족민주당 같은 네오 나치 정당으로 가기도 했다.
[11]
독일 민주당이나 독일 인민당의 경우 전후 기민당 유입 인사들도 있었으나, 이념적으로는
자유민주당(독일)이 사실 더 적통에 가깝다. 심지어 독일 민주당 일부 당원은
독일 사회민주당이나 동독으로 가기도 했다.
[12]
지금도 구 서독 지역에서 개신교가 대세인 니더작센이나 한자 동맹 자유시 지역들은 대부분 사민당세가 강하다.
[13]
독일식
경제적 자유주의인
질서 자유주의에 밑바탕을 두고 있다.
자유 지상주의적인
영미식
자본주의 모델과도,
지도주의에 입각한
프랑스식 자본주의 모델과도 구별되는 독일식 자본주의 모델.
[14]
유럽 공동체를
유럽 연합으로 강화하였다. 현재의 단일 통화(
유로),
유럽 중앙은행,
유럽 의회, 유럽 헌법 등이 모두 이 시기부터 논의된 것들이다.
[15]
전통적으로 개신교 다수 지역인 독일에서 웬 가톨릭이냐 싶겠지만, 독일은 영국이나 북유럽급으로 개신교화가 된 건 아니라서 독일 제국 시절에도 인구의 1/3은 가톨릭이었고, 오히려
비스마르크의
문화투쟁에 대한 반발로 일찍부터
가톨릭 중앙당이 의석을 확보한 상태였다. 즉 소수자이긴 한데, 소수자라 하기엔 너무나 거대하고 오히려 중앙정계에 뭉쳐있던 그룹이 독일 가톨릭이었고,
가톨릭 중앙당의 실질 후신이 바로 기민련이다. 당장
아데나워가 가톨릭 및 가톨릭중앙당 출신의 사회적시장경제주의자였다. 물론 아데나워와 사회적시장경제만 기민련에 성향을 결정한 건 아니고, 창당 초기부터 야코프 카이저(Jakob Kaiser) 등 소위
기독교 사회주의 계열이 참가하기도 했다. 특히 카이저는 아데나워의 사회적 시장경제조차 과도하게 친자본주의적이라고 반대했고 주요 산업의 국유화를 주장했다.
[16]
Although historians have recently brought to life the neighborhoods, shop floors, strikes, and political parties of workers, one topic — that of religion, and particularly Catholicism — is still relatively unexplored. ... Nonetheless, religious, and especially Catholic. working-class movements deserve a second look from labor historians. ... Between the 1890s and 1933, for example, Christian, mostly Catholic, unions organized about one-seventh as many of Germany's workers as did the socialist “free” unions, while the Catholic unions in Belgium and the Netherlands organized approximately one-third as many as the socialists before World War I and two-thirds as many by the 1930s.
[17]
하필 외국인에게 가장 우호적인 주여서 그런지 유학생들이 배신감을 감추지 못했다.
[18]
하지만 독일은 서류상 계약은 불변이 원칙이기에 해당 코스(학사, 석사)를 입학 할 당시 계약대로 기존 학비를 지불할 확률이 높다.
[19]
한국에서는 이해 안 되는 주장이지만 거의 주립 혹은 국립인 독일 대학교 구조상 학비와 대학교의 수업 혹은 연구와 상관관계는 매우 적다.
[20]
기존 학비가 300유로일 때 이 금액은 전부 학생 복지에 쓰였지 대학교의 연구질 상승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21]
아시아권 학생이 졸업장 취득 후 귀국률이 꽤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