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11:33:44

네오프톨레모스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창작물의 묘사에 대한 내용은 네오프톨레모스/창작물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마케도니아의 장군에 대한 내용은 네오프톨레모스(마케도니아 왕국)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페로이스의 제4대 국왕에 대한 내용은 네오프톨레모스 1세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제8·12대 국왕에 대한 내용은 네오프톨레모스 2세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프티아의 역대 군주
펠레우스 네오프톨레모스 몰로소스
아이아키다이 왕가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아이아코스 +엔데이스
( 케이론의 딸)
텔라몬 +페레보이아
(퀴크레우스의 딸)
아이아스 +테크마사
(텔레우타스의 딸)
에우리사케스
필라에우스
+헤시오네
(라오메돈의 딸)
테우크로스 +에우네
(키니라스의 딸)
아스트레이아
펠레우스 +안티고네
(에우리티온의 딸)
폴리도라 +스페르케이오스
(강의 신)
메노이티오스 +페리오피스
(페레스의 딸)
파트로클로스
+ 테티스
( 네레우스의 딸)
아킬레우스 +데이다메이아
(리코메데스의 딸)
네오프톨레모스 + 안드로마케
( 에에티온의 딸)
암피알로스
몰로소스
피엘로스
페르가모스
+ 프사마테
( 네레우스의 딸)
포코스 }}}}}}}}}

트로이 목마의 영웅들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네오프톨레모스 데모폰 디오메데스 마카온 메넬라오스
메리오네스 소(小) 아이아스 스테넬로스 아카마스 에우리알로스
에페이우스 오디세우스 이도메네우스 이알메노스 칼카스
키아니포스 테르산드로스 테우크로스 페넬레오스 포달레이리우스
개인 문서가 있는 인물은 볼드 처리
}}}}}}}}}||

네오프톨레모스
Νεοπτόλεμος / Neoptolemus
파일:lefebvredeathofpriam.jpg
프리아모스 왕을 시해하는 네오프톨레모스

1. 개요2. 일대기
2.1. 트로이 전쟁
2.1.1. 《소 일리아스》
2.2. 전쟁 이후
2.2.1. 가정사2.2.2. 최후에 대해
2.3. 사후 전승
3. 여담4. 관련 문서

1. 개요

그리스 로마 신화 영웅이자 트로이 전쟁 장군. 서사시 《 일리오스 낙성》의 주인공 격으로 여겨지는 인물이다.[1]

아킬레우스와 스키로스의 공주 데이다메이아의 아들. 아내는 스파르타의 공주 헤르미오네 테베의 공주이자 헥토르의 아내로서 트로이의 왕세자빈이였던 안드로마케.

오디세우스자신이 본 남자 중에서 손꼽힐 정도로 아름답다고 할 정도로 외모가 뛰어났다고 전해진다.[2] # 소포클레스의 표현에 의하면 "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용사 중 가장 아름다웠던 자의 아름다운 아들". # 또한 트로이 목마에서 홀로 빛난 외모로 묘사되기도 한다.[3]

머리가 붉었기에 퓌로스(Πύρρος / Pyrrhos)라고 불렸으며, 네오프톨레모스(Νεοπτόλεμος / Neoptolemos)란 이름은 젊은 전사란 뜻이다.

2. 일대기

호메로스의 《 일리아스》에서도 네오프톨레모스의 존재가 언급된다. 이 시점에서는 스키로스의 왕손으로 자라고 있었다.
물론 도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소. 언젠가는 신성한 일리오스와 훌륭한 물푸레나무 창의 프리아모스와 그의 백성들에게 멸망의 날이 오리라는 것을.
그러나 트로이아인들이 나중에 당하게 될 고통도, 아니, 헤카베 자신과 프리아모스 왕과 그리고 적군에 의해 먼지 속에 쓰러지게 될 수많은 용감한 형제들의 고통도, 청동 갑옷을 입은 아카이오이족 가운데 누군가 눈물 흘리는 당신을 끌고 가며 당신에게서 자유의 날을 빼앗을 때 당신이 당하게 될 고통만큼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소. (중략) 그대가 끌려가며 울부짖는 소리를 듣기 전에 쌓아 올린 흙더미가 죽은 나를 덮어 주었으면!
호메로스의 《 일리아스》 6권, 「447~470행」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는 이미 자신의 죽음과 조국의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바로 아내 안드로마케의 미래였다. 헥토르는 안드로마케의 새 주인이 될 아카이오족 가운데 누군가를 언급하는데 이 자가 바로 네오프톨레모스다.
설령 스퀴로스에서 자란 사랑하는 내 아들이 죽었다 해도 이렇지는 않을 것이오. 신과 같은 네옵톨레모스가 아직도 살아 있다면 말이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19권, 「326~327행」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이 자신에게 있어서 사랑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죽음보다도 더 애통하다고 말했다. 네오프톨레모스가 들었다면 상당히 기분이 나빴을 말이었겠지만, 그만큼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이 슬프다는 표현이지 아킬레우스는 네오프톨레모스를 사랑한다고 확실히 말했다.

아킬레우스는 오랜 세월, 스키로스에 있는 아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들의 생사를 확실하게 알고 있지 못했는데, 네오프톨레모스는 확실하게 살아있었고[4] 아버지 사후,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그것도 전쟁의 중요한 승패를 좌지우지 할 예언의 아이로서.

2.1. 트로이 전쟁

파일:C3A072D3-0C9C-4696-921E-762D240DF450.jpg 파일:23423sdafsr23423sdfafsad.jpg
아버지의 무장을 물려받는 모습 전투에 임하는 네오프톨레모스
'나무랄 데 없는 펠레우스에 관해서는 나는 정말 아무것도 들은 것이 없소.
그대의 사랑하는 아들 네옵톨레모스에 관해서는 나는 그대의 요구대로 모든 진실을 터놓고 이야기하겠소.
나 자신이 그를 속이 빈 균형 잡힌 배에 태워 스퀴로스에서 훌륭한 정강이받이를 댄 아카이오이족에게로 데려갔기 때문이오.
트로이아의 도시 주위에서 우리가 회의를 할 때면 그는 맨 맨저 말을 했고, 그가 한 말은 한마디도 과녁에서 빗나가지 않았소. 신과 같은 네스토르와 나만이 그를 능가했지요.
또한 우리 아카이오이족이 트로이아인들의 들판에서 싸울 때면 그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나 떼 지어 있는 곳에 처져 있지 않고 누구보다 월등히 앞으로 달려나갔으며, 누구에게도 용기를 양보하려 하지 않았소. 그는 무시무시한 전투에서 많은 남자들을 죽였소.
하지만 나는 그가 아르고스인들을 지키며 죽인 모든 백성들에 관해 빠짐없이 이야기할 수도,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소이다.
이를테면 그는 청동으로 텔레포스의 아들 영웅 에우뤼필로스를 죽였소. 그리고 그자의 주위에서 한 여인의 뇌물 때문에 그자의 전우였던 수많은 케테이오이족이 살해되었는데 그자는 내가 본 남자들 중에서 고귀한 멤논 다음으로 용모가 가장 준수했소.
또한 우리 아르고스인의 장수들이 에페이오스가 만든 목마에 들어갈 때 그 튼튼하게 만든 매복처를 열고 닫는 모든 책임이 내게 주어졌는데, 다나오스 백성들의 다른 지휘자와 보호자들은 눈물울 닦았고 모두 아랫도리를 떨었지요.
그러나 나는 그가 안색이 창백해지거나 뺨에서 눈물을 닦는 것을 내 눈으로 한 번도 본 적이 없소. 오히려 그는 목마에서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자꾸만 간청했고, 칼자루와 청동이 달려 묵직한 창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트로이아인들에게 재앙을 꾀하고 있었소.
마침내 우리가 프리아모스의 가파른 도시를 함락하자 그는 자기 몫의 전리품과 훌륭한 명예의 선물을 갖고 무사히 배에 올랐소. 그는 날카로운 청동에 얻어맞지도 근접전에서 부상당하지도 않았소. 아레스가 함께 어우러져 날뛰는 싸움터에서는 그런 일이 흔히 일어나는데도 말이오.'
가 이렇게 말하자 준족인 아이아코스의 손자의 혼백은 자기 아들이 걸출했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며 수선화 피는 풀밭으로 성큼성큼 걸어갔소.
호메로스의 《 오디세이아》 11권, 「505~540행」

트로이 전쟁이 10년째 지지부진 이어지던 어느 날, 아카이아 연합군의 오디세우스가 도시를 나와 이다 산 근처를 돌아다니던 트로이의 예언자 왕자 헬레노스[5]를 생포하는 쾌거를 거둔다. 아카이아 군은 그를 심문했고 헬레노스는 아카이아 군의 승리 조건, 즉 트로이 성을 함락하기 위해 필요한 다섯 가지 조건을 예언했다. 그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1. 펠롭스[6]의 뼈를 트로이로 가져올 것.
2.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을 가져올 것.[7]
3. 트로이 성을 수호하는 신물 팔라디온[8]을 성 밖으로 반출할 것.
4. 트로이 성곽 대문의 천장을 파괴할 것.[9]
5. 아킬레우스의 아들을 참전시킬 것.

당시 네오프톨레모스는 외조부인 스키로스의 리코메데스 왕[10] 슬하에서 자라고 있었는데, 아카이아 군은 오디세우스를 필두로 한 사절을 보내서 메넬라오스 헬레네의 딸인 스파르타 공주 헤르미오네와의 결혼과 막대한 지참금을 조건으로 걸고 네오프톨레모스의 참전을 설득했다. 네오프톨레모스는 외조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조건을 받아들여 트로이로 떠났다.[11] 네오프톨레모스의 어머니인 리코메데스의 장녀 데이다메이아는,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지 않기 위해 스키로스에 숨어 살던 시기에 그에게 강간당해서 (혹은 서로 눈이 맞아서) 아들을 임신했다고 하므로, 전쟁 10년차인 이 시점에 네오프톨레모스의 나이는 단 10세였다.[12][13]

트로이로 가는 도중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예언에 언급된 헤라클레스의 활을 물려받은 필록테테스를 데리고 가기 위해 오디세우스와 같이 잠시 렘노스 섬에 간다. 필록테테스는 과거에 아카이오이족이 독사에게 물린 상처에 악취가 심해지자 자신을 버리고 간 것에 앙심을 품고 오디세우스의 제안을 거부하지만, 자신을 배신했던 장군들과는 아무 관계도 없었던 어린 네오프톨레모스의 설득에 그와 친구가 되고 함께 트로이로 가기로 한다.[14] 소포클레스의 비극 《 필록테테스》에서는 처음에는 오디세우스의 계획에 따라 필록테테스를 속이고[15] 그의 활과 화살을 빼앗았지만, 곧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고 필록테테스에게 활과 화살을 돌려준다. 필록테테스도 헤라클레스의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꿔 트로이 전쟁이 재참전한다.

트로이에 도착한 네오프톨레모스는 오디세우스로부터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물려받았고 어려도 무력만큼은 아버지의 피를 제대로 물려받아, 첫 출전부터 트로이의 여러 장수들과 병사들을 죽이고 아카이오이족을 고전시켰던 뮈시아의 왕자 에우리퓔로스까지 쓰러뜨리는 비범함을 과시했다. 전투에서 단 한번도 상처를 입은 적이 없다는 것을 보면, 아킬레우스의 아들답게 아카이오이족 전체를 통들어서도 손꼽히는 전투력이라고 할 수 있다.

파일:neoptolemus_pyrrhus_Louvre_F222.jpg 파일:IMG_8483.jpg
아스티아낙스로 프리아모스를 때려 죽이는 모습 프리아모스를 살해하는 네오프톨레모스

전쟁의 막바지에는 오디세우스의 계략인 트로이 목마 작전에서 목마에 들어갈 정예로 뽑혔다.[16]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내로라하는 영웅들조차 목마 안에서 무서워 벌벌 떨고 울었는데, 오직 네오프톨레모스만이 빨리 트로이 사람들을 죽이고 싶어서 안달 났었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아버지를 제대로 닮은 것. 이 때문에 오디세우스가 상당히 고생했는데 계속해서 살의를 참지 못하고, 목마에서 뛰쳐 나가려고 하는 네오프톨레모스를 그 때마다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긴 시간의 인내 끝에 목마가 트로이 내에 잠입하고 성문을 여는데까지 성공한다. 그리고 네오프톨레모스는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대학살을 자행한다.

트로이의 왕자 폴리테스의 다리에 활을 쏘고 폴리테스가 안간힘을 쓰며 기어가는 것을 재밌어하며 따라가면서 조금씩 칼로 찌르고, 프리아모스 왕에게 도달했을 때에 폴리테스는 상처로 사망했다. 네오프톨레모스가 프리아모스 왕을 어떻게 죽였는 지에 대해서는 전승마다 다르다. 베르길리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분노한 프리아모스가 투창을 던졌지만 네오프톨레모스는 이를 간단히 피했고 프리아모스를 죽였다. 전승에 따라서는 안드로마케의 아들 아스티아낙스 곤봉 삼아 왕을 때려 죽였다고 한다. 말로(Marlowe)의 기록에 의하면 프리아모스는 네오프톨레모스에게 무릎을 꿇고 자비를 빌었다. 이에 네오프톨레모스는 웃으면서 프리아모스의 가슴을 짓밟으며 칼로 손목을 잘라버리고 마지막엔 배꼽에서부터 목까지 갈라죽였다. #

종전 후에는 헥토르의 아들이 성장하면 트로이 가문의 복수를 할 것이라는 예언과 오디세우스의 설득에 의해 네오프톨레모스는 아스티아낙스를 성벽에서 내던져 죽인다.[17] 이어서 트로이의 공주 폴릭세네를 아버지 아킬레우스의 영혼에게 제물로 바친다.[18]

세네카의 비극 《 트로이아 여인들》에서는 폴릭세네의 처분을 두고 아가멤논과 언쟁을 하다 칼을 뽑기까지 했는데, '난 이미 왕을 하나 죽였는데, 너도 죽일 수도 있다. 너가 마지막으로 싸웠던게 언제였나?'라며 왕중왕인 아가멤논에게 대들었다. 해설을 담당하는 코러스는 퓌로스가 아가멤논을 이겼더라도 목이 매달렸을 거라며 퓌로스를 어리석게 여겼다. 다행히 탈비디오스와 칼카스의 중재로 퓌로스가 원했던 대로 폴릭세네를 아킬레우스의 무덤에 제물로 바치는 것으로 결정난다. 극중 미친 퓌로스라고 불릴 정도의 광기를 보였으나 정작 폴릭세네를 죽일 때는 너무나도 당당한 그녀의 모습에 당황했다고 한다.[19]

파일:Pyrrhus_and_Andromache_before_Hector's_Tomb.jpg 파일:안드로마케-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jpg
<퓌로스와 안드로마케>[20] 안드로마케를 전리품으로 가져가는 모습

네오프톨레모스는 전리품 분배에서도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헥토르의 정실부인으로 그 외에는 남자를 모르는 안드로마케는 트로이 정복 최고의 전리품이자 그녀를 차지하는 것 이상의 달콤한 유혹은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의 장수들은 누가 헥토르의 아내를 차지할 것인가에 대해 자신들의 공을 늘어놓고 다퉜다. 하지만 여기서 네오프톨레모스는 아버지의 공로를 내게 물려준다고 했으니, 자신이 안드로마케를 가지겠다고 한 순간 승부는 결정났다.

결국 안드로마케는 네오프톨레모스와 결혼하게 되는데, 이는 트로이의 완벽한 정복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라는 해석이 있다.[21] 한편 이 때문에 안드로마케는 자신이 네오프톨레모스의 아내가 될 것이기에 아스티아낙스를 살려줄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헤카베 역시 이를 노려 아스티아낙스의 성장과 복수를 기대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전승에서는 아스티아낙스를 죽이는 역할은 네오프톨레모스였지만, 일리오스 낙성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아스티아낙스를 성벽에서 떨어뜨려 죽인다.[22]

아무리 네오프톨레모스가 나이가 어린 소년이라도 전쟁통에 벌어진 일이고 제네바 협약 없는 고대의 일이라지만, 불과 10세의 나이에 적군이나 트로이 왕가 사람들을 필요 이상으로 너무 잔혹하게 죽이다 보니 아버지인 아킬레우스보다 훨씬 더 악독한 살인광이라는 비판이 많고 네오프톨레모스의 사이코패스 여부를 두고 진지한 고찰이 오가기도 한다. 거기다 고대에 나라를 함락시키고 그 나라의 왕비와 공주 등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여자들을 전리품으로 얻어가는 게[23] 일상다반사였다고 해도[24], 안드로마케의 어린 아들 아스티아낙스를 잔인하게 던져죽여놓고 안드로마케를 아무렇지도 않게 아내로 채가며 강간하고[25] (전승에 따라 다르지만) 수많은 사생아를 낳게 한 행보도 시대를 막론하고 그저 사악하고 악마같은 침략자, 강간범의 이미지로 비춰보일 수밖에 없다. 다른 전승에 의하면 아킬레우스에게 강간당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사생아인 자신을 기꺼이 낳아주고 키워주기까지 한 어머니 데이다메이아마저 헬레노스의 아내로 팔아치우는 패륜적인 행보도 보였다. 이러한 네오프톨레모스의 행보들은 아무리 고대 시절의 일이었음을 감안해도 현대인의 지성과 감성으로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하다. 그래서 옛날과 현대의 서구권에서 수많은 창작물에서 재해석될 정도로 인기가 많은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에 비해 대외적인 인기와 호감도가 매우 낮다.

특히 프리아모스 왕에게는 아버지 아킬레우스도 처음에는 친구를 죽인 원수이자 숙적이었던 헥토르의 아버지라는 이유로 매섭게 분노를 퍼부었지만 단 한 번의 살인 시도나 물리적 폭력을 가하지 않았다.[26] 심지어 고뇌 끝에 반성하여 헥토르를 향한 증오도 풀고 프리아모스와 화해하며 헥토르의 시체도 반환하고 변장한 모습으로 원수의 장례식에도 참석해 애도도 표했다. 일순이나마 아가멤논조차 하지 않았던 적을 향한 최선의 존경과 예우를 다했다. 똑같은 사이코패스여도 적어도 아킬레우스는 최소한의 성장과 입체적인 인간미라도 보여주었지만, 네오프톨레모스는 아버지와 달리 그런 것도 없다.

다만 네오프톨레모스가 사생아일지라도 그 당시에는 대부분 10살부터 전쟁에 충분히 참가하거나 왕위를 물려받아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로 취급했었다. 나이 상관없이 아직 사회화를 덜 완료한 인간 특유의 폭력성과 잔인성[27]이 전쟁터라는 특수 상황을 겪으면서 아주 극단적이고 잘못된 방식으로 배출구를 찾은 것이다.[28]

2.1.1. 《소 일리아스》

Then the bright son of bold Achilles led the wife of Hector to the hollow ships;
but her son he snatched from the bosom of his rich-haired nurse and seized him by the foot and cast him from a tower.
(그리고 용감한 아킬레우스의 빛나는 아들은 헥토르의 아내를 빈 함선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은 머리숱이 많은 그의 유모의 가슴으로부터 발을 잡아 떼어내어 탑에서 던져버렸다.)
So when he had fallen bloody death and hard fate seized on Astyanax. And Neoptolemus chose out Andromache, Hector's well-girded wife, and the chiefs of all the Achaeans gave her to him to hold requiting him with a welcome prize. And he put Aeneas, the famous son of horse-taming Anchises, on board his sea-faring ships, a prize surpassing those of all the Danaans.
(그렇게 떨어진 아스티아낙스는 피비린내 나는 죽음과 비극적인 운명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네오프톨레모스는 헥토르의 아름다운 아내 안드로마케를 선택하고 모든 아카이오이족의 우두머리들은 그에게 보답을 하기 위해, 환영의 선물과 함께 그녀를 그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그는 말을 길들이는 안키세스의 유명한 아들 아이네이아스를 항해를 위한 자신의 함선에 태웠는데, 이 전리품은 그 모든 다나오이족의 전리품을 뛰어넘는 가치가 있었다.)

《소 일리아스》의 남겨진 기록에서도 다른 전승들과 크게 다른 점 없이, 아스티아낙스를 죽이고 그의 어머니 안드로마케를 자신의 몫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소 일리아스》와 다른 전승의 큰 차이점은 바로 헬레노스가 아니라 아이네이아스를 전리품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베르길리우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후원 하에 집필한 로마 문명의 건국을 다룬 서사시 《 아이네이스》의 행적을 모두 부정하는 전승인데, 아쉽게도 《소 일리아스》는 단편적인 기록을 제외하고 소실되었기 때문에 해당 전승에서의 아이네이아스의 운명은 알 수가 없다. 진실이 어떻든 간에, 네오프톨레모스의 전리품이 헬레노스가 아니라 아이네이아스였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들이 흔히 아는 트로이 전쟁 이후의 전승과는 확연히 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2.2. 전쟁 이후

오디세우스를 제외한 그리스 장군들의 귀국담을 다룬 노스토이에서는 할머니 테티스 헬레노스의 조언 덕분에 굉장히 안전하고 편하게 귀국한다. 디오메데스 네스토르를 제외한 다른 장군들이 죽거나 개고생을 한 것을 보면 굉장히 날로 먹었다.

네오프톨레모스가 안드로마케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얻었다는 것은 어느 전승에서나 똑같지만, 이후에 대해서는 네오프톨레모스가 에페이로스를 건국했는지, 프티아로 귀환했는지와 안드로마케를 단순히 첩으로 여겼는지, 진심으로 사랑했는지, 누가 정실 아내인지에 따라 갈린다. 기록한 사람에 따라서 전승이 갈리는게 그리스 로마 신화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네오프톨레모스는 그 중에서도 그 정도가 심하고 억지로라도 끼워맞추기 힘든 기록 충돌이 많다.

2.2.1. 가정사

는 대열의 돌파자 아킬레우스의 아들에게 을 보냈으니 트로이아에서 그가 먼저 딸을 주기로 고개를 끄덕여 약속했고 신들이 두 사람의 결혼을 이루어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는 딸을 말들과 마차들과 함께 뮈르미도네스족 통치자의 명성도 자자한 도시로 떠나보내고 있었다.
호메로스의 《 오디세이아》 4권, 「5~9행」
Neoptolemus Achillis et Deidamiae filius ex Andromacha Eetionis filia captiva procreavit Amphialum. sed postquam audivit, Hermionem sponsam suam Oresti esse datam in coniugium , Lacedaemonem venit et a Menelao sponsam suam petit. cui ille fidem suam infirmare noluit Hermionenque ab Oreste abduxit et Neoptolemo dedit.
아킬레우스와 데이다메이아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는 포로인 에에티온의 딸 안드로마케와 관계를 가져 암피알로스를 얻었다. 하지만 헤르미오네가 오레스테스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그는 라케다이몬으로 찾아가 메넬라오스에게 그의 신부를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그의 신뢰를 저버리는 것을 원치 않았던 메넬라오스는 오레스테스에게서 헤르미오네를 빼앗아 네오프톨레모스에게 주었다.
히기누스의 《 이야기》 CXXIII 네오프톨레모스 中
6.12 中 몰로시아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그는 왕이 되었고 안드로마케와의 관계로 몰로소스를 얻었다.
6.13 中 헬레노스는 몰로시아에 도시를 세우고 그곳에 정착했다. 네오프톨레모스는 자신의 어머니 데이다메이아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다.
6.14 中 오레스테스가 실성했던 시기에 네오프톨레모스는 과거에 트로이에서 약혼했었던 의 아내 헤르미오네를 납치했다.
아폴로도로스의 《 도서관

오디세이아》에서는 특별히 헤르미오네와 결혼했다는 것 외에는 따로 이후의 행적이 서술되지 않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정리한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 이야기》와 《 도서관》을 통해 이후의 행적을 확인할 수 있다. 여러모로 전승이 갈리지만 공통적으로 안드로마케가 네오프톨레모스의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헬레노스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아내로 주거나 헤르미오네를 포기하지 않아 오레스테스와 시비가 붙어 죽었다고 기록되는 등 그의 가정사가 상당히 난잡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장 라신의 비극에서는 네오프톨레모스가 안드로마케를 사랑하게 돼서 아스티아낙스를 죽이지 않고 에페이로스에 끌고 와 자신과 결혼하지 않으면 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안드로마케는 남편 헥토르에 대한 정절을 지켜야 할지, 아들을 살려야 할지 고뇌하다가 네오프톨레모스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네오프톨레모스의 약혼녀였던 헤르미오네는 질투에 미쳐 사촌 오빠 오레스테스에게 부탁해 네오프톨레모스를 죽인다. 그리고 자신이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고 오레스테스를 저주하며 자살하고 오레스테스도 헤르미오네의 죽음에 슬퍼하며 자살한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서는 네오프톨레모스가 안드로마케와만 관계를 가지자 정실인 헤르미오네와 불화가 생긴다. 헤르미오네는 원수한테 가랑이나 벌리는 색녀라고 안드로마케를 모욕하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이유를 안드로마케가 자신을 저주했다고 여겨 자신의 아버지인 메넬라오스에게 그렇게 말해 네오프톨레모스가 델포이에 간 사이에 메넬라오스가 안드로마케와 몰로소스를 죽이게 하려 하지만, 펠레우스가 메넬라오스를 막아세워서 이들이 죽지는 않았다.[29] 한편 헤르미오네는 그 전에 자신의 사촌이자 전 약혼자였던 오레스테스와 만났는데 오레스테스는 자신이 네오프톨레모스를 죽이고 헤르미오네를 데려갈 것이라 말했고, 네오프톨레모스는 이미 델포이에서 오레스테스에게 사망한 후였다. 네오프톨레모스 사후, 헤르미오네는 오레스테스와 결혼해 아들 티사메노스를 낳는다.

베르길리우스의 《 아이네이스》에 의하면 네오프톨레모스는 안드로마케를 헥토르의 동생인 헬레노스에게 넘겼고, 안드로마케는 네오프톨레모스 사후 왕이 된 헬레노스의 왕비가 되어 케스트리노스를 낳는다.[30] 다만 헬레노스는 네오프톨레모스의 친구였기에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몰로소스를 후계자로 삼는다. 안드로마케는 여전히 헥토르를 그리워하고 로마를 세우러 가는 아이네이아스를 만나는데, 이 전승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31]

파우사니아스의 기록에서는 안드로마케와의 사이에서 몰로소스, 피엘로스, 페르가모스가 태어나지만, 헤르미오네와의 자식은 없었다.

아폴로도로스의 《 도서관》과 히기누스의 《 이야기》에서는 네오프톨레모스가 이미 안드로마케와의 사이에서 아들 한 명[32]을 얻었음에도 헤르미오네를 두고 오레스테스와 불화를 일으켜서 살해당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양 기록에서 네오프톨레모스 사후의 기록이 없어서 안드로마케의 운명은 알 수 없다.

플루타르코스는 헤르미오네나 안드로마케가 아니라 라나사라는 여자가 네오프톨레모스의 아내이자 에페이로스의 조상이라고 기록했다.

네오프톨레모스가 헤라클레스의 손녀인 라나사를 납치해서 아내로 삼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8명의 자식을 얻었다는 전승이 있는데, 문제는 이 라나사의 전승은 흔히 알려진 안드로마케가 에페로이스 왕가의 조상이라는 것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전승이 엄청나게 갈리는 이유는, 후일 그리스의 명문가들이 너도 나도 아킬레우스의 자손을 사칭하다 보니, 있지도 않던 네오프톨레모스의 아들들이 무한히 늘어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몇몇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 모계쪽을 야만인으로 취급했던 트로이인 대신에 그리스인으로 기록하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조상이 아킬레우스 헤라클레스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라고 본다. #

라나사와 안드로마케를 동일시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사실 안드로마케는 킬리키아 테베의 공주라는 점에서 라나사와 동일시하려면 끼워맞출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는데, 킬리키아 테베를 세운게 바로 헤라클레스이기 때문이다. 라나사가 네오프톨레모스의 자식을 8명을 낳았다는 것도 안드로마케의 어머니가 낳았던 자식들(7명의 아들+안드로마케)의 수와 일치하고 이래저래 라나사의 기원에 안드로마케가 연관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아예 네오프톨레모스에게는 아내가 셋 있었다고 기록하는 경우도 있고 라나사와 안드로마케가 네오프톨레모스의 침대를 공유했다는 전승도 있다 #는 점에서 그냥 별개의 인물로 보는게 맞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상기한것처럼 아킬레우스의 자손 사칭 건도 있으니 해석은 개인의 몫이다.

2.2.2. 최후에 대해

최후에는 여러 엇갈리는 전승이 있는데, 대다수의 기록에서는 오레스테스에게 암살당했고 죽은 장소도 델포이라는 것이 가장 유명하다.

비극 《 안드로마케》에서는 아폴론에게 아킬레우스를 죽인 일에 대한 보상을 청구했으며[33], 이 일의 과오를 속죄하러 다시 델포이에 왔다. 자신에게 헤르미오네와의 결혼을 포기해 달라고 간청한 오레스테스를 모욕했고, 이 일로 원한을 품은 오레스테스는 네오프톨레모스가 델포이 신전을 약탈하러 왔다고 사람들을 선동했다. 결국 네오프톨레모스는 오레스테스를 비롯한 미케네 인들에게 죽는다. 사후 테티스는 펠레우스에게 네오프톨레모스의 시신을 퓌토의 제단에 묻으라고 지시한다. 이는 델포이 인들에게 치욕이 되도록, 네오프톨레모스가 오레스테스의 손에 죽은 걸 알리기 위해서였다.

헤르미오네가 등장하지 않고 라나사가 아내인 전승에서는 오레스테스와의 불화가 없기 때문에 죽음에 관한 기록이 없고 잘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오레스테스가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죽이고 에리니에스의 저주를 받아 실성한 상태로 방황하다가 죽였다는게 가장 유명한 전승이고 이 외에도 델포이를 약탈하다 죽는 전승이 있기에 결국 생존하는 전승은 헤르미오네와 관련되지 않은 경우에 한해서고 대부분의 전승에서는 본인의 업보로 죽는다.
또 일설에 따르면 오뒷세우스는 죽은 구혼자들의 친척들에게 고소를 당했다. 에페이로스의 섬들을 다스리던 네옵톨레모스에게 사건의 재판을 맡겼는데 그는 일단 오뒷세우스가 제거되면 케팔레니아 섬을 자기가 차지할 수 있으리라고 믿고 오뒷세우스에게 추방형을 선고했고, 오뒷세우스는 아이톨리아로 안드라이몬의 아들 토아스를 찾아가서 토아스의 딸과 결혼하여 얻은 아들 레온토포노스를 남겨두고 고령에 죽었다고 한다.
아폴로도로스의 《 도서관》 오뒷세우스의 뒷이야기 中

도서관》에 기록된 야사에서는 《 오디세이아》가 끝난 이후의 시점에도 살아있어서 오디세우스가 구혼자들을 죽인 건에 대한 재판관 역할을 맡기도 했다. 이 전승에서는 오디세우스만 없어지면 자신이 케팔레니아의 지배권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추방시켰다. 왕의 추방 여부를 가리는 중대한 사안의 재판관을 맡았고 오디세우스의 영토까지 노렸다는 것에서 네오프톨레모스가 그리스 전역에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군주로 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3. 사후 전승

엘리시온에 들어간 자들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괄호 안): 데려간 이 / A: 엘리시온에서 아킬레우스와 부부가 되었다는 전승이 있음
<colbgcolor=#eee,#000>카드모스 부부 ( 제우스) 카드모스 · 하르모니아
라다만티스 부부 라다만티스 · 알크메네
펠레우스 일가 ( 테티스) 펠레우스 · 아킬레우스 · 네오프톨레모스
메넬라오스 부부 ( 제우스) 메넬라오스 · 헬레네A
텔레고노스 부부 ( 키르케) 텔레고노스 · 페넬로페
그 외 멤논( 에오스) · 메데이아(마카리아)A · 이피기네이아( 아르테미스)A, 디오메데스 · 파트로클로스 · 오르페우스 · 에우리디케 · 안드로마케(불명)
}}}}}}}}}||

시인 퀸투스 스미르나에우스(Quintus Smyrnaeus)에 의하면 네오프톨레모스는 사후 축복받은 자들의 낙원 엘리시온에 간다. # 바다의 여신이면서 할머니인 테티스에 의해 할아버지 펠레우스, 아버지 아킬레우스, 그리고 자신까지 아이카이다이 일가가 모두 엘리시온으로 간 것.

대영박물관에 보관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유물 중에는 파편만 남은 대리석 조각들도 많은데, 그 중에서 아버지 아킬레우스가 몰았던 불사의 말들이 주인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를 엘리시온에 데려가기 위해 마중 온 전승을 조각한 작품도 있었다고 한다. #

3. 여담

  • 그리스 로마 신화 최고의 금수저다. 프티아의 왕위 계승권은 물론 헤파이스토스가 제작한 아버지의 무구와 모든 재산을 상속받았으며 심지어 아킬레우스의 전공마저도 아들의 전공으로 인정되어서 트로이 전쟁의 막바지에 참전했으면서 사실상 최고의 공로자가 되어 전리품 분배에도 우선권을 가졌다. 그리고 전쟁 참여 조건으로 스파르타에서 막대한 지참금과 공주를 받았다. 본인의 활약도 어느 정도 있기는 하지만, 같은 세대인 오레스테스 텔레마코스가 자신의 상속권을 되찾기 위해 엄청나게 고생한 것에 비하면 모든 것이 아버지의 후광에 의해 스스로 굴러들어왔다.
  • 어떤 전승에서던지 정실부인 헤르미오네보다 전쟁에서 포로로 잡아온 안드로마케를 더 사랑한 것처럼 묘사된다. 사랑이었는지 단순히 성적인 욕망이었는 지는 알 수 없으나 헤르미오네가 안드로마케를 질투하는 전승도 나오고 헤르미오네와의 자식은 묘사되지도 않는 반면 안드로마케와는 거의 그리스 다산왕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많은 자식을 가졌다는 전승도 존재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헥토르를 선망하던 작가들이 그래도 헥토르의 아내가 천대받는 것은 원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 네오프톨레모스의 아내들은 모두 연상이다. 헤르미오네가 9살 연상이고 안드로마케는 약 20살 이상 연상. 하지만 네오프톨레모스 본인의 나이를 생각해 볼 때 연상 취향인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고 시열대가 혼란스러운 신화 특성상 연령은 그렇게 중요한건 아니다.
  • 알렉산드로스 3세의 어머니 올림피아스의 가문은 자신들이 아킬레우스의 후손이라 주장했고 이는 알렉산드로스 3세의 신격화에 쓰이기도 했다. 네오프톨레모스와 안드로마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 중 암피알로스 혹은 몰로소스가 이들의 조상으로 거론된다.

3.1. 햄릿

히르카니아의 호랑이처럼 영웅 피로스...
영웅 피로스, 갑옷을 입고 캄캄한 밤에 불길한 목마 속에 숨었도다. 이제 그 검고 무시무시한 모습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붉은 피로 물들어 보기에도 처참하구나. 지옥의 등불이 살인마의 만행을 비추고 치솟는 분노의 불길이 타오르는 가운데 살기 등등한 악마 같은 피로스는 트로이의 늙은 왕 프리아모스를 찾아 나섰노라.
이윽고 발견된 프리아모스, 그리스 군을 물리치고자 보검을 휘둘렀건만 허공만 가를 뿐 칼을 땅에 떨어뜨린다. 어찌 상대가 되리오! 피로스가 늙은 왕을 향해 분노의 칼을 내리치자 왕이 힘없이 쓰러졌도다. 무심한 트로이 성이여, 타오르는 불길 속에 하늘이 무너지듯 땅 위에 허물어져 피로스의 귀청을 때리는구나. 보라! 노쇠한 프리아모스 왕의 머리 위로 내리쳐지던 칼날이 허공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폭풍이 오기 직전 하늘 대지가 고요함에 휩싸였다가 느닷없이 천둥이 내리치듯 잠시 망설이던 피로스, 사정없이 프리아모스를 찌른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로프스의 철퇴가 이랬을까. 사라져라, 매춘부 같은 운명의 여신이여! 여신의 수레바퀴를 산산조각으로 부숴 지옥의 밑바닥까지 굴러 떨어지도록 해다오.
아, 애처롭구나. 휘장으로 얼굴을 감싼 여왕의 모습을 보라.
맨발로 이리저리 허둥대고 흐르는 눈물은 타오르는 불길도 끌 것 같구나. 왕관이 얹혔던 머리엔 초라한 보자기 한 조각, 숱한 아이를 낳느라 앙상한 허리엔 황망히 주워 걸친 누더기 한 장, 누군들 오만한 운명의 여신에게 저주의 독설을 퍼붓지 않으리. 피로스의 손에 남편의 사지가 토막나는 광경에 늙은 왕비는 절규한다. 이 광경에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도 눈시울을 적시고, 신들이 마음을 뒤흔드누나.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 햄릿》 제2막, 제2장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로 유명한 《 햄릿》에서는 햄릿과 배우가 피로스가 프리아모스 왕을 시해하는 장면을 낭독한다.

햄릿》에서 피로스는 햄릿과 유사한 배경을 가진 인물로서 피로스가 프리아모스를 살해한 것처럼 햄릿 또한 클로디어스를 죽이고 복수하고자 하는 햄릿의 욕망을 상징한다.[34] 하지만 햄릿은 갈등하고 고민하는 소위 햄릿형 인간이기 때문에 피로스처럼 화끈하게 실행하지 못한다.

피로스의 서사는 햄릿이 결국 극의 마지막에 피로스가 그랬던 것처럼 왕을 시해할 것이라는 결말의 복선이기도 하다. 하지만 망설임 없이 실행에 옮겼던 피로스와는 달리 결정적인 순간에 망설였던 햄릿은 그 실수로 인해 결말에서야 왕을 죽이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 연인 오필리아, 연인의 아버지 폴로니어스, 어머니 거트루드, 연인의 오라비 레어티즈, 그리고 본인의 죽음까지 초래하는 최악의 비극을 맞이하고 만다.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정말로 잔혹하게 묘사했다. 프리아모스 왕을 죽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시신을 토막내고 사정 없이 난도질하는 모습은 아예 악마에 비유했다. 사실 셰익스피어는 트로이를 좋아했던 작가였기 때문에 여러 작품에서 헥토르는 영웅의 귀감으로 묘사하고 그리스 측은 여러모로 깎아내린 부분이 있다. 트로이 전쟁을 다룬 그의 비극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에서도 네오프톨레모스의 아버지 아킬레우스는 소인배이자 비겁자로 묘사되었다.

4. 관련 문서



[1]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를 제외한 서사시환 작품들이 현재 소실되어서 자세한 사항은 불명이지만, 일리오스 낙성은 트로이 왕가의 몰락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를 가장 앞장 선 네오프톨레모스가 가장 돋보일 것이다. [2] 일단 아버지부터가 여장했을 때 안 어색했던 모양으로 보이는 데다 할머니가 그 아름답다는 테티스이니... [3] 이는 다들 바짝 쫄아서 떨며 울고 있었을 때, 혼자서 날뛰지 못해 안달났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4] 이걸 알게 된 시점이 무려 오디세이아 시점으로 오디세우스가 지하세계에서 아킬레우스를 만났을 때 소식으로 들었다. 정황상 그 이후 네오프톨레모스가 사망하면서 부자 상봉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5] 파리스 사후 과부가 된 헬레네의 재혼 상대 자리를 놓고 형제 데이포보스와 경쟁하다 패했는데, 승복하지 못했는지 불만을 품고 뛰쳐나간 것이라 한다. [6] 아카이아 연합군의 맹주 아가멤논의 조부이기도 하다. [7] 헬레노스가 이걸 예언한 게 파리스 사후인데 파리스는 필록테테스가 헤라클레스의 활로 쏜 헤라클레스의 화살(히드라의 독이 묻어있던)에 맞고 죽은 지 오래였기에 이미 아카이아군 손 안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비극 《필록테테스》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오디세우스가 스키로스에서 네오프톨레모스를 데리고 트로이로 돌아가는 길에서 함께 데려갔다는 전승이 가장 유명하기 때문에 시열대에 모순이 있는 대표적인 예시이기도 하다. [8] 팔라스 아테나 여신의 모습을 새긴 조각상으로, 이것이 트로이 성 내에 있는 한 트로이는 절대로 함락되지 않는다는 예언이 있었다. [9]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오디세우스가 고안한 게 그 유명한 트로이 목마다. 신들에게 바치는 제물이라는 명목으로 거대한 목마를 만들고 그 안에 정예병을 숨겨서 성 안으로 들여보내는데, 트로이 성문을 통과할 수 없을 만큼 충분히 크게 만들면 트로이인들이 스스로 성문을 헐어서라도 목마를 성 안으로 들일 것을 예측한 것. [10] 말년에 완전히 몰락한 테세우스가 마지막으로 의탁한 사람이기도 하다. 정작 리코메데스는 테세우스의 왕년의 명성을 경계하여 그를 해안의 절벽에서 밀어 죽여버렸다. [11] 어차피 네오프톨레모스는 리코메데스의 친손자도 아닌 외손자에 심지어 정식 혼인 관계에서 태어난 것도 아닌 사생아라서 왕위 승계 가능성은 희박했다. 차라리 강대국 공주와 결혼해서 부마로 들어가는 게 유리하다. 운 좋으면 장인의 왕위를 계승할 수도 있고. [12] 후기 청동기 시대 동지중해 지방의 전쟁 관습 중에는 정복당한 지역의 왕이나 귀족들을 어린 소년의 손으로 죽임으로써 적에게 최대한의 모욕을 안기는 풍습이 있었다. 따라서 트로이가 함락된 뒤 트로이의 왕과 귀족들을 죽일 때 그들에 대한 모욕과 아킬레우스의 복수의 의미로 아킬레우스의 어린 아들에게 처형을 맡긴 것 자체는 당시 관습상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구약성서 사사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지도자 기드온도 적장을 붙잡은 후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 그들의 목을 베도록 했다가 적장들이 "이거 너무하지 않느냐?"라고 항의하자 손수 적장들을 참수했다는 기록도 있다. [13] 아이네이스에서는 체구가 작다고 묘사되지 않으니 부친의 유전자를 받아서 선천적으로 큰 체구에 성장까지 빨랐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14] 필록테테스를 데려갈 때까지는 원체 어린데다 전쟁터에서 닳지를 않아서 그런지 좀 순진하게 나온다. [15] 필록테테스에게 자신은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16] 도박적인 작전을 결행해야 했으므로 당연히 그리스 군의 최정예 중 최정예만 목마에 탑승했다. 트로이 목마에 누가 들어갔는지는 시인이나 저자들마다 여러 전승이 있는데, 네오프톨레모스는 오디세우스, 아카마스, 디오메데스, 그리고 메넬라오스와 함께 모든 전승에서 목마에 들어간 영웅이다. [17] 작품에 따라선 오디세우스가 죽인다. [18] 이를 묘사한 조각상이 강간당하는 폴릭세네(The Rape of Polyxena) [19] 에우리피데스의 《헤카베》에서도 폴릭세네를 죽일 때 잠시 망설였다곤 한다. [20] 이 작품은 요한 루드비히 룬드(Johan Ludwig Lund)의 그림이다. [21] 아킬레우스 일가가 프리아모스 일가에게 선사하는 굴욕이자, 자신들의 왕세자빈의 정절을 지키지 못한 트로이를 향한 모욕으로 해석된다. 성경의 압살롬이나 견훤 경애왕비 등의 기록에서도 이런 퍼포먼스가 나온다. [22] 사실 아스티아낙스의 처분을 두고 오디세우스와 메넬라오스가 대립하긴 했다. 오디세우스는 죽이자는 측이었고, 메넬라오스는 헬레네도 되찾았겠다, 일말의 동정심이 일었는지 살려주자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아스티아낙스가 성장하면 복수를 할 것이란 예언이 있었기 때문에 오디세우스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23] 매우 드물지만 비단 여자와 어린 소녀들뿐만 아니라 어린 미소년이나 남자들도 전리품으로 끌려가는 경우가 있었다. [24] 아가멤논이 탄탈로스 2세와 그의 아들을 죽이고 클리타임네스트라를 강제로 부인으로 삼은 게 그 예시. 다만 아가멤논은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에게 살해당하는 인과응보를 당하나, 네오프톨레모스는 안드로마케에게 복수당하지 않았다. 오레스테스가 네오프톨레모스를 죽인 이유도 안드로마케에게 악행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헤르미오네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이건 고통과 굴욕을 끝까지 참고 견딘 안드로마케가 남편처럼 생불인 인품을 지닌 데다 극도로 특이한 케이스라서 끝난 것이다. 보통이면 자신의 고국을 멸망시키고 가족과 형제자매를 죽이고 아이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강제로 아내까지 삼은 적국의 장수에게 복수를 시도하거나 사무친 원한과 증오를 품고 미쳐버리고도 남는다. 신화가 아니라 현실이었으면 자다가 칼을 맞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최후를 생각하면, 설령 안드로마케가 네오프톨레모스를 죽여 복수해도 몰로소스나 다른 자식들에게 살해당할 가능성도 있다. 원수의 아내로 살아야 하고 그 원수의 자식들에게 살해당해야 하니 어느 쪽이든 안드로마케는 불쌍한 결말만이 남아버린 셈이다. [25] 당시 네오프톨레모스는 전쟁에 참전하는 대가로 메넬라오스 헬레네의 외동딸이자 스파르타 왕가의 유일한 상속녀인 헤르미오네와 정식으로 약혼한 상태였다. 문제는 첩이 된 안드로마케를 본처 헤르미오네보다 더 편애하는 탓에 분노한 헤르미오네가 사촌 오레스테스에게 안드로마케를 죽여달라고 사주하는 등 분란까지 일으키고 말았다. [26] 이미 소년 시절 아버지 라오메돈의 어리석은 과오와 헤라클레스 텔라몬의 침략에 의해 고국이 한번 멸망하고 사랑하는 누나 헤시오네가 전리품으로 끌려가는 끔찍한 비극을 겪었었던 프리아모스는 늙어서는 전쟁으로 아들들까지 잃고 가장 사랑하는 맏아들마저 죽자, 맏아들의 시체만이라도 되돌려받고자 많은 보물을 챙기고 아카이아군 막사에 찾아갔다. 쇠약한 적국의 노왕이 적의 진영까지 알아서 목숨을 걸고 숨어들어와서 아킬레우스로선 프리아모스를 제압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었다. 이때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죽이고 시체를 전차에 묶어 끌고 다녔던 증오심과 쾌감에 차 있던 모습과 달리 의기소침해 있었다. 복수는 성공했지만 파트로클로스는 살아돌아오지 않는다는 허무감에 잠겨 있었으며, 이미 어머니인 여신 테티스의 경고와 모이라이의 예언대로 헥토르를 죽이는 업적을 달성한 영웅이 된 자신은 결국 고국에 있는 늙은 아버지 펠레우스와 재회도 못한 채 죽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27] 성인들이 보이는 악의처럼 치밀한 것은 아니지만 유아동 역시 인간종이 태어날 때 거치는 발달시기 중 하나이기 때문에 본능 수준의 악의와 기만 능력을 가면처럼 착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이 가장 서술된 작품들 중 하나가 파리 대왕. 다만 그렇다고 유아동 시기를 무조건 소악마, 잼민이로 보며 편견과 혐오를 표출하는 것도 옳지 않으며, 그 악의를 잘 정제해서 건전하게 표출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행위가 인간들 스스로가 부지런히 수행해야 하는 역할들 중 하나이다. [28] 쉽게 말해 벌레 다리를 뜯고 놀면서 그게 잔인한 일이라는 것을 아직 모르는 아이한테 칼을 쥐어주면서 사람한테 휘둘러 보라고 명령한 것. 그것도 한 번도 얼굴을 모르던 자기 아버지를 죽인 원수나 다름없는 사람들한테. [29] 펠레우스가 메넬라오스 보고 여자 하나 때문에 트로이로 가서 전쟁을 일으킨 바보라고 디스한다. 그 전쟁 때문에 하나뿐인 아들을 잃었으니 메넬라오스를 증오할 만 하다. 그리고 펠레우스는 대영웅 헤라클레스, 이아손, 아탈란테 및 전쟁 당시 노장이었던 네스토르 등 쟁쟁한 영웅들과 동세대에 아르고 호 원정대, 칼리돈 멧돼지 사냥 등 신화의 굵직한 모험들을 겪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에다, 제우스의 인정을 받아 여신과 결혼하기까지 한 살아있는 전설이니 메넬라오스는 그냥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30] 케스트리노스는 헬레노스의 아들인 겐테르라는 전승도 있다. [31] 다만 《 아이네이스》는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의 건국신화를 만들기 위해 베르길리우스에게 주문한 작품이기 때문에, 신빙성은 가장 적다. 상술했듯이, 로마 시대에 쓰여진 《아이네이스》보다 서사시환의 작품으로서 더 정사에 가까웠던 《소 일리아스》에서는 헬레노스가 아니라 아이네이아스가 네오프톨레모스의 노예로 잡혀갔다. #. [32] 아폴로도로스의 《 도서관》에서는 몰로소스, 히기누스의 《 이야기》에서는 암피알로스가 유일한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33] 이에 대해서 아폴론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킬레우스가 파리스의 형제들을 많이 죽였다는 이유를 몰아붙이며 거부했을 수도 있다. [34] 클로디어스는 햄릿의 아버지인 햄릿 왕을 살해하였으며 프리아모스의 경우 본인은 무고하나 그의 아들인 파리스가 피로스의 아버지인 아킬레우스를 살해했다. 따라서 피로스의 살인은 아버지의 원수에 대한 복수이며 햄릿이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