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7 18:02:19

군복/친위대(나치 독일)

1. 개요2. 주의사항3. 종류
3.1. 정복
3.1.1. 창립 초창기3.1.2. 1939년 이후
3.2. 전투복3.3. 기타

1. 개요

나치당 친위대의 군복에 관하여 다룬다. 국방군의 군복에 대해서는 군복/독일군 문서로.

2. 주의사항

"나치에 의해 완전히 파괴당했던 유럽에서, 수많은 전쟁 범죄를 저질렀던 독일군의 군복을 입고 그들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독일 군대가 히틀러를 위해 점령한 땅에서 이것을 나치가 저지른 집단학살이나 전쟁 범죄로부터 분리할 수는 없다. (독일군 리인액트 클럽들이) 극우적이거나 극단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역겨운 농담(sick joke)이다."
- 지난 2022년, 영국의 유대인 시민단체인 커뮤니티 시큐리티 트러스트(CST)의 정책국장인 데이브 리치 박사가 독일군 리인액트 단체들에 대하여 남긴 비판. #
무장친위대 역사재현동호인과 나치 물품 수집가가 무해한 취미 애호가인지, 아니면 사악한 행위인지는 시간만이 말해줄 것이다. 그러나 중대한 도덕의 문제에 관한 절반만의 진실과 더 나쁜 것을 밀거래하는 행태는 가벼이 여겨질 수 없다.
- 미국 툴레인 대학 교수 로렌스 N. 파월의《제2차세계대전의 신화와 진실: 독소전쟁과 냉전, 그리고 역사의 기억》서평 中.
1. 국내 또는 해외에서의 선전을 위해 국내에서 배포, 생산, 저장, 수입, 수출하거나 데이터 저장 장치를 만들어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접근 가능 하도록 하는 자
- 독일 연방 헌법 재판소에 의해서 위헌 단체로 공표되었으며, 이 판결에 대해서 항소를 할 수 없는 단체와 그러한 단체의 대체 조직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 헌법의 질서와 국제 정서에 직접적으로 반하기 때문에 더 이상 항소의 대상이 아닌 금지된 조직 또는 그러한 단체의 대체 조직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 제 1호 또는 2호에 해당되는 단체의 목적을 추구한다고 판단되며, 이 법 조항이 적용 불가능한 영토에 속한 정부, 조직, 기관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 선전 수단의 내용이 이전 국가사회주의의 목표를 진척할 의도를 가졌다면, 그러한 선전 수단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 1항의 의미를 담고 있는 선전 수단은 자유 원칙, 민주주의 헌법 질서 그리고 국제적 정서에 위반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글(11조 3항)이다.
- 제 1항은 선전 수단이나 행위가 시민 계몽, 위헌 행위의 방지, 과학과 예술의 발전, 연구 또는 교육, 현재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 또는 그 비슷한 목적을 가진다면 그 효력을 잃는다.
- 죄가 가볍다면, 법원은 조항에 근거한 처벌의 시행을 삼갈 수 있다.
- 독일연방공화국 형법 제 86조 헌법에 위배되는 단체의 선전 수단 배포
1. 대상
1. 형법 제86조 제1항 제1, 2, 4호에서 지시된 단체나 조직들의 상징들을 형법 제11조 제3항에서 다뤄진 글이나, 혹은 모임을 통해 국내에서 배포하거나 공개적으로 사용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2. 제1항에서 지시된 방식으로, 해당 상징들을 묘사하거나 포함한 사물들을 국내 혹은 해외에서 배포하거나 사용하기 위해 생산, 비축, 수입, 수출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형에 처한다.
2. 제1항에서 의미하는 상징들은 깃발, 휘장, 제복, 슬로건, 경례방식 등을 지칭할 수 있다. 앞 문장에서 언급된 것들로 오해될 수 있는 유사 상징들 또한 동일한 것으로 간주된다.
3. 형법 제 86조 제3, 4항은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독일연방공화국 형법 제 86조a 헌법에 위배되는 단체의 상징을 사용하는 것

친위대의 군복은 멋있는 디자인으로 인해 예로부터 서브컬쳐 창작자들과 밀리터리 동호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현재도 많은 수의 친독적 밀리터리 동호인들이 친위대의 군복을 거래하거나 수집하며, 다수의 미국 리인액트먼트 단체들에서도 친위대의 군복을 입는다.

특히 군사적인 측면만 바라보는 일부 재현사회가들은 군사 취미인 리인액트먼트를 목적으로 친위대의 군복을 입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며 항변한다. 자신들의 자유이자, 역사적 고증에 충실한 교육적인 목적을 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오직 군사와 미학의 영역에서 바라보는 것일 뿐이다. 이는 좋게 쳐주어 봐야 시야가 좁은 것이며, 나쁘게 보면 그 지엽적인 취향만으로 친위대의 군복이 지닌 훨씬 더 거대한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을 간단히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므로 아주 악질적인 행위다. 그들이 자신들이 탐구하는 친위대라는 대상이 벌인 대량 학살의 결과에 대한 무게감을 직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친위대에 쏟는 애정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는 나치에 의해 수천만에 달하는 인명 피해를 입었던 유럽에서 이 옷을 입고 돌아다니면 이유불문 많은 국가에서 체포된다.[1] 표현의 자유이건, 코스프레건 뭐든 간에 예외 없다. 이 복장을 리인액트먼트 허용장소 외에서 착용하고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나치를 찬양하는 행위 그 자체로 취급받는 것이기 때문. 심지어 친위대의 고향 독일에서는 형법 86조a 1항과 2항에 의거하여 3년 이하의 징역과 3천만원 이하 벌금으로 코스프레를 금지하고 있다. 유럽에서 혐오의 대상이자 무서울 것 없이 망나니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네오 나치들조차 이런 제복들만큼은 네오 나치 내부의 초강경파 인물들도 대놓고는 기피한다. 영국 등 일부 법적으로 관대한 국가의 경우 직접 나치즘에 찬동하는 언행이나 퍼포먼스를 하지 않는 이상 법적 처벌은 못하지만, 대신 시민들의 험악한 욕설이나 물리력 행사를 각오해야 한다.

리인액트먼트 행사장에서도 제한적인 장소에서 친나치적 퍼포먼스 없이 미군이나 연합군들에게 두드려맞고 당하는 역할이나 전투 재현 행사 및 여타 군소 행사 정도이며 포로, 악당 역할 혹은 잡다한 정도로 착용하는 정도가 많이 허용되는 수준이고, 독일 같이 규제가 강한 곳은 당장 국방군 제복만 해도 영화나 드라마 촬영용 복장조차 하켄크로이츠 뿐만 아니라 제3제국 관련 마크가 들어간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면 떼어서 따로 보관하다 영화 촬영장에서만 입어야 할 정도다. 거기다 마크를 떼어 봤자 알아볼 사람은 알아보니 그놈의 멋 때문에 앞으로의 창창한 인생 앞날의 평판을 날려먹는 일은 없도록 하자. 그나마 혼착 정도면 살아남기는 편하겠지만 어딘가 찝찝하다면 그냥 멀쩡한 평상복을 입길 추천한다. 거기다 국방군도 역시 친위대 저리 가라면 서러운 수준의 수많은 전쟁범죄 이력들로 인해서 국방군 코스프레조차 좋은 취급을 못 받는 게 현실이다.

이 복장이 가진 도덕적, 역사적 맥락을 기어이 무시하고 폼 하나 때문에 입고 싶다면, 해당 법안이 적용되지 않는 구역에서 풀세트가 아닌 경우만 허용되고, 제3제국 관련 마크들을 싹 제거하고 혼착해야만 한다. 친위대와 제3제국을 상징하는 마크들과 휘장, 검은 견장이 떼어진 채 판매되는 물건들을 기준으로 무장친위대용 위장복을 에어소프트 의류 안팎에 혼착하거나 풀세트로 입어도 리인액트먼트나 위장 테스트 등의 용도 같은 쪽으로 한정적으로 사용한다거나, Eichenlaubmuster 위장복을 입고 러시아군 파르티잔 위장복이라고 우기든지[2] M42 Feldmantel 같은 트렌치 코트는 나치 문양이 없는 샘 브라운 벨트와 함께 양복 패션 위에 혼착하는 쌥쌥이[3] 정도가 한계이며, 만국공통 풀세트로 입고 다니다간 미치광이 취급받기 딱 좋은 물건이라고 할 수 있다.[4][5]

3. 종류

3.1. 정복

3.1.1. 창립 초창기

파일:SS1.png
힘러와 하이드리히.
초창기 SS의 제복은 검은색을 메인으로 만들어졌다.
히틀러 이탈리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를 본받아 제복 문화를 좋아했으며, 굳이 제복을 안 입어도 될 사람들에게까지 모두 제복을 입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나치독일 시기에는 일반 행정직 공무원, 기관사, 상선사관, 법관, 외교관 등 독일 내 거의 모든 공직자들이 직책에 맞는 군모와 제복을 입고 직급에 맞는 계급장까지 달았다. 이런 상황이니 나치당의 얼굴이었던 SS 또한 제복을 입기 시작했다.

원래 SS는 SA의 갈색 제복을 그대로 입었으나, SA 간부들이 장검의 밤으로 숙청된 이래 SS가 SA를 넘는 조직이 되어 SA와 차별성 및 우월감을 나타낼 필요성이 대두되고,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독일 재무장에 나서면서 "남성적이면서 강렬한 이미지"의 군복이 필요해져, 이들의 주문에 의해 카를 디비히 교수가 디자인한 검은색 군복이 채택되었던 것. 히틀러는 이 군복을 통해 친위대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적군에게 위압감을 주려는 목적을 극대화하고자 하였다. 셔츠는 SA 시절부터 이어져 온 갈색이 제식이었으나, 개인이 임의로 흰색 셔츠를 속에 받쳐 입기도 했다. 넥타이는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파일:Bundesarchiv_Bild_146-2008-0276,_Hans_Heinrich_Lammers.jpg
견장은 육군이나 후일 무장친위대가 입은 회색 군복과 달리 계급장 용도가 아니라 샘 브라운 벨트 어깨끈이 흘러내리지 않게 하는 고정용으로, 그래서 샘 브라운 벨트 어깨끈이 지나가는 오른쪽 어깨에만 달려있고 왼쪽 어깨에는 없다.

전쟁 이전에 쓰던 검은색 제복을 디자인한 사람은 친위대 소속이었던 카를 디비치(1899 ~ 1985)라는 인물로, 디자인 학교 교수였던 이력을 바탕으로 제복뿐만 아니라 친위대 단검 등 여러 물품을 멋지게 고안했다. 세간에는 슈투트가르트 근교 작은 의류회사를 운영하던 휴고 보스가 제복을 디자인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보스와 그의 공장은 단지 제복 생산에 관여하였을 뿐이다. 당시 휴고 보스는 하청업체 수준의 영세한 회사였다. 휴고 보스도 열성적인 나치당원이었으며, 수십 년이 지난 후 후임 휴고 보스 사장이 제복 생산에 대해서 사과하고 그에 대한 배상금도 기부했다.

흔히 알려진 SS의 검은색 제복과 빨간 완장의 이미지는 일반 친위대(Allgemeine SS)와 'SS 해골부대'(SS-Totenkopfverbände)의 복장으로, 이 복장은 1939년에 전쟁이 본격화되고 무장친위대(Waffen SS)가 따로 분과되자 대체되었다. 신형 전투복이 만들어지고 나서도 구형 전투복 및 장구류가 몇 년이나 혼용되는 한국군을 포함한 타국군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렇게 빠르게 대체된 것은 절대 아니고 프랑스 본토와 같은 후방 지역에서는 전쟁 후반부에도 뽀대 나서 일부러 입었다고 한다. 제식 형태는 아니지만 2차대전 시기에도 무장친위대 고급 지휘관들조차 예복의 목적으로 입은 소수의 사진 자료가 있다.

게다가 깔끔한 검은 제복을 버리고 칙칙한 회색 군복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에 저항이 없지 않아, SS 본부로부터 먼 외곽 지역에선 1943년 무렵까지 규정을 무시하고 슬쩍 착용한 경우도 존재한다.

전쟁 후반에 들어가면서 국민돌격대가 구성되어 어떻게든 입혀야 할 군복이 필요해지자 반납되거나 지급이 중단돼 쌓인 검은색 제복 재고품 위에 국민돌격대 완장을 박은 다음 전선에 내보낸 사례도 있었다.

3.1.2. 1939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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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전쟁이 임박할 무렵 SS를 사조직에서 정규군화시키는 데 성공한 SS 장관 힘러가 "검은 제복이 폼은 나는데, 옛날에 전투력은 형편없으면서 병정놀이한다고 비아냥거리던 시절이 생각나니 검은 제복은 예복으로 빼고 정복으로는 군인다운 회색 옷으로 바꿔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위와 같은 회색 정복으로 대체되기 시작한다.

SS로부터 피복을 무상 지급받은 사병들은 검은 제복을 반납해야 했고, 대신 회색 정복을 지급받았다. 장교는 피복을 원칙적으로 자비로 맞추게 되어 있어 회수되진 않았지만 개인 돈으로 회색 정복을 맞춰야 했다. 회수된 검은 제복은 이후 창설된 외국인 지원자들로 구성된 SS 대원들이나 현지 친독 민병대 등에게 약간의 개조를 거쳐 지급되고, 종전 시기엔 국민돌격대에게 지급된 잡다한 군복들 중 하나로 소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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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36 제복을 착용한 SS 소령 시절의 쿠르트 마이어.

전투용 피복으로, 친위대도 국방군처럼 독일 육군의 양산형 제복인 M36 제복을 도입하였다. 야전에서는 독일 육군과 동일한 옷이지만 칼라탭과 독수리 장식의 위치가 다른 것으로 육군과 구분할 수 있었다. 실전에서 주로 쓰였기 때문에 무장친위대 장교의 기록 사진을 찾아보면 대부분 이 형태이다.
...그리고 벤 양은 나에게 그런 만행을 저지른 군인들이 팔에 새 문장이 달려있었는지 모자에 새 문장이 달려 있었는지 그 러시아 군인에게 물어봐 달라고 요구한다. 즉 그들이 국방군이었는지 아니면 SS였는지 말이다. 그 러시아 군인은 질문의 의미를 금방 이해한다. 러시아 마을에 있을 때 그들은 이미 그것을 구별하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 베를린의 한 여인 中.
정확히는 모자의 독수리 장식(국가문장)은 독일 전군 공통이다. 차이는 군복 상의에서의 부착 위치와, 모자에서 국가문장 아랫쪽의 부착물이다(국방군은 코케이드, 친위대는 토텐코프.( 해골)

회색 전투복을 입은 독일군의 소속이 육군인지 친위대인지 구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국가문장(독수리 장식)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육군 등 국방군은 국가문장을 오른쪽 가슴에 부착하고, 친위대는 왼쪽 팔뚝에 부착하기 때문이다. 사실 더 엄밀히 따지면 국가문장의 독수리 도안에도 세부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원거리에서 혹은 군종별 국가 문장의 식별법을 모르는 이들에게도 통용되는 가장 쉬운, 때문에 널리 사용되었던 식별법이었다. 베를린의 여인에서는 화자인 독일 여성과, 그녀와 대화하는 소련군 모두가 이 식별법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소련- 동유럽의 경우 눈 앞의 저 독일군이 친위대냐 국방군이냐 구별하는 게 생사를 가르는 경우도 있었다.

매체에선 유독 고증이 잘 지켜지지 않는 복장이기도 하다.

3.2. 전투복

파일:SS3.png 파일:external/33.media.tumblr.com/tumblr_lvc35d16uQ1qg5z8jo1_500.gif
M43 야전모를 쓴 친위대 일병 무장친위대의
Platanenmuster 위장전투복

파일:external/www.wwii-photos-maps.com/Waffen-SS%20%20076.jpg
최전방의 흙먼지 속에서 뒹굴어야 했던 무장 SS의 경우 육군과 별 차이가 없는 형태의 회록색 전투복을 지급받았고, 당연히 전쟁 말기로 갈수록 대중들이 생각하는 그 흑복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어져 갔다.

파일:external/www.dws-xip.pl/ss3.jpg
정규군 중 최초로 부대 단위 위장복을 채택한 세력이다.[6] 꼼꼼한 독일인들답게 초창기에는 Platanenmuster와 Rauchtarnmuster, Palmenmuster, Eichenlaubmuster 같은 춘하/추동에 맞는 색상의 2가지 위장복을 만들었다가, 이후 예산 절감 등을 위해 점박이(Dot) 형태의 4계절용 위장 무늬인 Erbsenmuster를 만들었다. 이 무늬들은 현대에 써도 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위장력이 좋았다. 현재 독일연방군이 전군 공용 위장무늬로 채택하고 있는 점박이라는 뜻의 독일어 플레크타른(Flecktarn)과 비슷하지만,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 독일 패망 5년 후 벌어진 한국전쟁에서는 KLO 부대가 Dot 44 위장복을 그대로 입었다. 몇몇 사진을 보면 미국에서 KLO 부대에 보급할 때 일일이 떼어내기 귀찮았던 건지, 슈츠슈타펠 계급장도 안 뗀 그대로 있다.

그 외에 1943년 9월 이탈리아에 주둔한 기간에 이탈리아군의 군수창고를 접수, 이탈리이군의 Telo mimetico 위장무늬 천으로 독자적인 복장을 만든 SS 제1기갑사단(총통경호대 아돌프 히틀러, LSSAH) 등과 같이 사단 내에서 독자적으로 위장복을 만들어 지급한 사례도 있다 .

여담으로 전후 유럽에선 위장무늬 전투복이 나치와 그 선봉장인 무장친위대 그 자체를 상징했던 때가 있었는데[7], 이 때문에 냉전 시절의 여러 유럽 군대들은 위장무늬에 대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특히 이런 문제에 민감할 수 밖에 없던 서독군은 80년대까지 민무늬 군복을 사용했고[8], 동독군을 포함한 공산권 군대도 특수부대를 제외하면 60년대까지는 위장무늬 사용이 드물었다.[9]
  • 위장 효과 테스트 영상: #1 #2

파일:external/3.bp.blogspot.com/stabswache_de_euros.jpg
왼쪽의 SS 대령은 요하네스 뮐렌캄프이다.

전차 승무원복의 경우, 육군의 것과 비슷하나 재단 형태가 조금 차이난다. SS 전차병의 검은색은 육군과 마찬가지로 구 프로이센 경기병과 검은 군복을 계승한다는 의미로[10] 정비하면서 많이 묻는 기름때 등을 가려준다는 장점도 있었으나, 하차 전투시 위장성이 떨어지는 단점으로 인해 전쟁 중후반기엔 덧입는 회록색 작업복이나 위장무늬 피복이 채용된다. 다만 전차가 아닌 돌격포, 자주포 Sd.Kfz. 251같은 장갑차 승무원들은 원래부터 육군 돌격포병복을 SS식으로 고쳐 입기도 했다.[11] 여담으로 SS용 전차 승무원복은 공군 야전사단의 기갑부대 승무원들에게도 지급되기도 했다.

활약 초기에 원래 이탈리아 해군에 수출됐던 크릭스마리네 가죽옷을 대거 노획해서, LSSAH와 SS 제12기갑사단 히틀러 유겐트 대원들이 방염복으로 입은 사례가 있다. 이 가죽옷은 원래 기관실이나 잠수함 등에서 근무하는 이들을 위한 방염복으로 만들어졌으며, 가죽이라는 특성상 방염효과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게다가 44년 즈음이면 거의 힘을 잃은 크릭스마리네의 군수물자를 SS가 대신 지급 받았기에 굳이 노획하지 않아도 입을 수 있게 되었다[12]. 이 가죽옷은 미하엘 비트만 요아힘 파이퍼가 입은 사진 덕분에도 유명하며, 하디 크루거 항목에서 무장친위대 사단장 역을 맡은 그가 입고 있는 옷도 바로 이거다.

3.3. 기타

파일:dc7pp9j-f540a9a2-13f6-4024-a9b0-a38f4aa01b7c.png
컬러로 복원된 질서경찰 선임원사[13]의 사진.
친위대의 일부였으나, 그 기원은 나치 정권 이전의 독일 경찰이었던 질서경찰은 별개의 제복을 입고 다녔다.

파일:오스발트 폴 대장.jpg
예전 복식을 선호하거나, 칼라장을 제멋대로 붙인 경우가 종종 있었던 국방군처럼 고위 장교들마다 복장이 미묘하게 통일되지 않았다. 상술했듯이 후방 장교들이 전쟁 이전에 폐지된 검은 제복을 입고 다니는 경우가 가끔 있었고, 요제프 디트리히처럼 국방군과 유사한 국가수리 문장을 정모에 달고 다닌 이들도 많았다. 심지어 헬무트 폰 판비츠처럼 국방군에서 친위대로 전출된 자들은 이전에 입었던 국방군 장교복을 고집하기도 했다. 위 사진은 경제학자이자 무장친위대 장성인 오스발트 폴의 사진으로, 자세히 보면 가슴 주머니가 없고 상위 단추가 숨겨진 특이한 군복을 입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친위대 장성들의 복식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파일:WW2_Norway._Uniform_of_Konstabel_of_Statspolitiet_(Norw._police_supporting_Nazi_regime)_1942._Tunic;_visor_cap,_frontkjempermerket,_etc._Justismuseet,_Trondheim_2019-04-10_DSC03109.jpg
전쟁 말의 무장친위대가 사실상 외인부대화 되자, 친위대원들의 출신에 따라 여러 변형이 이루어지도 했다. 보통은 칼라장에 SS 문장 대신에 사단 마크나 고국의 국장을 새기는 정도였지만, 초창기 친위대원들이 경악했던 수준도 많았다. 예시로 러시아 출신들은 정모에 옛 러시아 제국의 코케이드를 때려박거나 동구권 특유의 커다란 견장을 달기도 했으며, 살로 공화국에서 온 이탈리아 출신들은 이탈리아 왕국군 시절의 복식과 비슷하게 마개조해서 입기도 했다. 위 사진은 비드쿤 크비슬링 주도 하에 친위대에 합류한 노르웨이 경찰의 제복으로, 친위대의 회색 정복에서 칼라장과 정모 장식[14]을 노르웨이식으로 변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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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던 폴란드나 체코, 그리스, 프랑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같은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나치 독일과 추축국의 일원이던 이탈리아와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에서도 불법이다. 특히 불가리아는 추축국이었으면서도 나치 독일의 강압에 의해 1941년 추축군으로 참전하고 자국 내부에서도 불가리아 조국전선 등 반나치 게릴라 단체들이 나치 독일군을 상대로 게릴라 전을 펼치는 등 구 추축국이던 유럽 국가들중에서 반독일, 반나치 감정이 가장 심한 나라인데 자세한건 독일-불가리아 관계 문서참조. [2] 하지만 위장무늬는 같아도 군복 디자인이 다르다. [3] 사람에 따라 다르나 국방군, 슈츠슈타펠 모두 일부 제복 품목들은 마크 없이 만들어진 리프로 재현품의 경우 현대의 의복과 별 구분이 안 가는 물건들도 꽤 있다. [4] 아무리 신형 장비가 차고 넘치며 구형임을 감안해도 실용성에 환장하는 현역 군인들, 특히 특전사를 위시한 특수부대원들은 물론 전 세계의 군인들은 이런 류의 물건들은 적어도 정신 나간 인간이나 비틀어진 사람들 빼면 반드시 피해갈 정도이니 말 다 했고 그나마 씨가 좀 남은 무장친위대의 사실상 현대판 직통 후손이자 유일한 군사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군 아조우 연대조차 아무리 다른 장비들이 발달했어도 이 옷들 중 건질만한 용도가 충분하고 활용 여지도 꽤나 있는 위장복조차 안 쓰고 피해간다(...). 상징은 신념을 추종하는 군인들 사이에서 패용할 지 몰라도 옷까지 패용했다간 무슨 망신일 지는 없이 자기들도 무엇보다 잘 알기 때문. 게다가 최근의 아조프도 부대마크를 우크라식으로 교체했다. [5] 추가로 한국에서는 트렌치 코트에 샘 브라운 벨트를 착용하고 다니면 샘 브라운 벨트를 현용으로 사용하는 북한군 때문에 북한군으로 오인되어 곤욕을 치룰 수도 있다. 2024년 4월 5일 발생한 실제 사례 [6] 최초의 위장무늬는 1929년 이탈리아에서 발명한 Telo mimetico다. 다만 최초에는 telo tenda라고 하는 1인용 텐트에만 사용되었다. 최초의 독일군 위장무늬는 1931년에 발명된 Splittertarnmuster(Buntfarbenmuster)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병사들이 개인적으로 슈탈헬름에 위장무늬를 칠하기도 했다.) 이것도 초기에는 zeltbahn이라고 하는 1인용 텐트에만 사용되었다. [7] 육군과 공군 지상부대도 위장무늬를 사용했으나, 무장친위대가 사용한 것과는 다른 Splittermuster와 Sumpftarnmuster, Leibermuster(독일 국방군과 무장친위대에서 동시에 사용함)를 사용했다 [8] 이러한 현상은 서독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등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에게서도 나타났다. 영국에서는 공수부대 특수부대, 해병대 등지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발명된 브러시스트로크 패턴을 적용한 데니슨 스목을 입었지만, 대다수의 영국군은 민무늬 군복을 입었다. 1960년에 DPM(Disruptive Pattern Material)이 개발되었지만, 특수부대 등지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다가, 1968년에야 일반부대에서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1947년에 데니슨 스목에 영향을 받은 리자드 패턴이라는 위장무늬를 개발하고, 1953년에 전군에 위장무늬 군복을 제식 채택했다가, 리자드 패턴을 적극 사용한 외인부대가 저지른 전쟁범죄와 1961년에 벌인 반란 때문에 민무늬 군복으로 되돌아갔고, 1980년대 초반까지 파병부대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 1991년이 되어서야 CEC(Camouflage Europe Centrale)라는 위장무늬를 전군에 제식 채용했다. [9] 신기술이 반드시 발전으로만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례. 친위대들이 사용한 Eichenlaubmuster 위장무늬는 훗날 러시아군에서 참고하여 ' 파르티잔 패턴'이라는 이름으로 스페츠나츠의 특수 피복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SS 것에서 베껴왔다는 걸 내세우기 그래서 파르티잔들이 노획해 입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식으로 둘러댄 것이다. [10] 제1차 세계대전 때도 전차 승무원복 색으로 채택된 바가 있기에, 그들을 계승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11] 이 회색 돌격포병복은 산악병과 예하 스키부대원들도 지급된 바가 있다. [12] 같은 이유로 3제국 말기에는 일부 육군 사단의 전차 승무원들도 가져와 입었다. [13] 사실 100%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저 계급은 한국어로 번역하기가 상당히 난감하기 때문. 사진 속 인물은 견장으로 미루어보아 Meister(Master) 계급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데, 일단 이 Meister는 경찰에서만 사용한 계급이라 국방군에는 이에 대응하는 계급이 아예 없다. 그나마 무장친위대에는 돌격반지도자(Sturmscharführer, 선임원사)가 이 계급과 상응하기에 일단 본 문서에서는 선임원사라 서술하였다. [14] 자세히 보면 국민연합의 심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