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폭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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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colbgcolor=#eee,#333><colcolor=#000,#fff> ▲
1994년
7월 25일,
동아일보 기사 "찜통"서울 38.4도 어제 관측史上(사상) 최고폭염 |
▲
1994년
7월 22일,
경향신문 기사 大邱(대구) 또 39.4도 7월 기온 史上(사상)최고 |
1994년 여름을 강타했던 폭염.
2. 상세
대한민국 기준으로 20세기 최악의 폭염이자 기상학자들이 현재에도 첫순에 놓는 전설적인 가뭄이다.[1][2] 한국에서 1932년, 1939년, 1942년, 1943년 등의 아주 오래전의 폭염이 잊힐 쯤 가공할 폭염이 닥쳐 20세기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다.[3] 아직까지 이견이 있지만 일부 학계에서는 1994년을 기준으로 동아시아의 몬순이 변했다고 볼 정도다. 그 덕에 더위가 지속된다 싶으면 비교대상으로 항상 언급된다. 일사병 사망자가 속출했으며 아스팔트 바닥에서 계란 후라이가 가능했다.1994년 시점으로 87년 전부터 기상 관측이 시행된 이래로 수많은 여름 폭염이 있었지만 1994년 더위가 지금도 유별난 취급을 받는 이유는 옛 시절의 빈번하게 일어났던 극심한 폭염을 뒤로 하고[4] 1954년부터 1993년까지 거의 40년 동안 한여름철에 특별히 눈에 띌 만한 극심한 폭염이 관측되지 않았기 때문이다.[5] 1959년 8월 3일에 36.2°C를 기록한 후 19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1978년 7월 28일이 되어서야 다시 36°C를 넘겼을 정도로 이 사이의 기간은 극심한 폭염이란 찾을 수 없었다.[6][7] 게다가 1979년부터 1993년까지는 15년간 6번이나 폭염이 없었다. 1960~1980년대에는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 없을 이론인 지구한랭화가 자주 언급되기도 했고 평균기온 상승으로 지구 한랭화가 잊혀져갈 즈음인 1993년에도 여름철에 인상적인 저온 현상이 찾아왔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찾아온 1994년의 폭염은 당시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기에 충분하였고 괜히 노인들이 "평생을 살면서 이렇게 더웠던 적은 없었다"고 증언한 것이 아니었다.
3. 경과
3.1. 6월 이전
3월에는 1994년 중 유일한 이상 저온이 찾이왔으나 3월 31일부터 기온이 매우 크게 올라 4월에는 평년 기온을 크게 웃도는 등 심상치 않은 전조를 보였다. 서울은 4월 6일에 28.9°C를 기록해 기록적인 초고온 현상이 발생했다. 그 이후로도 고온이 잦아서 서울 기준 4월 평균 기온이 15.2°C로 당시 기준 기존 기록[8]을 0.9°C나 갈아치우면서 당시 1위를 기록하였고 지금도 역대 3위이다.[9] 대구는 4월 말부터 26~28도가 연일 기록되더니, 5월 1일과 9일에는 31.3도가 기록되는 등 상당히 심상치 않은 날씨를 보여왔다. 그러나 5월은 전반적으로 평범했고, 서울 기준 큰 더위가 없었다.3.2. 6월
하지만 6월이 되자 다시 더워졌다. 서울에서 6월 16일에 33.3°C, 6월 17일에 34.7˚C까지 오르는 등 폭염이 시작되었다. 6월 중순에 한바탕 폭염이 지나간 후 6월 하순, 하지를 전후로 장마가 시작했다. 대구 역시 6월 16일에 34.8°C, 6월 17일에 33.6°C, 6월 26일에 34.1°C까지 오르는 등 간헐적으로 폭염이 나타났다. 그래도 6월은 서울 22.8°C, 대구 23.1°C로 평년보다 조금만 높은 데 그쳤다.3.3. 7월 상순
7월이 시작되자 남부지방과 제주도는 장마가 어정쩡하게 끝나서 사실상 폭염으로 넘어갔고, 태풍 팀의 영향으로 7월 9일부터 북태평양 기단이 확장하면서 중부지방도 폭염이 시작되었으며 이 폭염은 9월 초순까지 길게 이어졌다.[10][11]서울은 7월 상순에는 최고기온이 7월 9일 32.4°C 폭염이 없었다. 그러나 7월 9일에 최저 25.5˚C[12]의 열대야가 관측되었으며 7월 10일에도 일 최저 25.0°C로 열대야가 발생했다.
대구는 7월 상순부터 장마가 끝나고 본격 폭염에 들어갔으며 일 최고기온 7월 1일 33.7°C, 2일 33.0°C, 3일 33.1°C, 4일 35.3°C, 5일 35.3°C, 6일 35.9°C, 7일 35.2°C, 8일 35.8°C, 9일 36.6°C, 10일 37.0°C를 기록했다. 또한 열대야도 있어서 일 최저기온이 25°C대를 기록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 결과 대구의 7월 상순 평균기온은 29.8°C를 기록해 1934년 7월 상순(29.6°C)를 제치고 역대 1위를 기록하였다.
3.4. 7월 중순
그 뒤는 태풍 팀으로 인해 그야말로 헬게이트 오픈.서울은 최고기온이 7월 12일 34.6°C, 13일 34.6°C, 16일 33.3°C, 17일 33.4°C, 18일 36.0°C, 19일 34.2°C, 20일 34.3°C를 기록했다. 최저기온도 7월 13일에 26.8˚C를 기록한 뒤 3일 이상 열대야가 이어졌으며[13], 17일에 잠시 열대야가 끊겼지만 귀신같이 다음날에 열대야가 복귀했다.
대구는 폭염이 절정해 달해 7월 11일 37.4°C 기록 후 7월 12일 39.4°C, 13일 38.8°C, 14일 38.4°C, 15일 39.3°C, 16일 37.3°C, 17일 35.7°C, 18일 38.8°C, 19일 38.9°C, 20일 39.3°C를 기록했다. 일 최저기온 역시 26°C대인 날이 많았고 7월 20일에는 27.2°C를 기록했다. 일 평균기온 역시 7월 13일 32.5°C, 14일 32.4°C, 15일 32.7°C, 20일 32.7°C를 기록했다. 그 결과 대구의 7월 중순 평균기온은 31.4°C로 상순에 이어서 또다시 역대 1위를 기록했다. 특히 순평균 최고기온은 38.3°C를 기록했다. 특히 대구의 1994년 7월 중순 순 평균기온과 순평균 최고기온은 7월 중순 뿐만 아니라 모든 순(旬)을 통틀어서 역대 최고 1위 기록이다.
3.5. 7월 하순
서울은 이 시기에 폭염의 절정을 맞이해 7월 21일 35.5°C, 22일 35.5°C, 23일 38.2°C, 24일 38.4°C, 25일 36.8°C, 26일 37.1°C, 27일 36.0°C, 28일 35.9°C, 29일 35.6°C, 31일 33.7°C를 기록했다. 열대야 역시 기록적이어서 일 최저기온이 7월 22일 27.1°C, 23일 28.0°C, 24일 28.1°C, 25일 27.3°C, 28일 27.2°C, 29일 28.7°C, 30일 27.8°C를 기록하는 등 끔찍한 열대야를 보냈다. 일 평균기온 역시 7월 22일 31.1°C, 23일 32.6°C, 24일 33.1°C, 25일 31.9°C, 26일 31.7°C, 27일 31.0°C, 28일 31.3°C, 29일 31.0°C를 기록했다. 그 결과 서울의 7월 하순 평균기온은 무려 31.1°C를 기록해 2018년 7월 하순과 함께 공동 1위를 기록했다.[14] 이는 기상관측사상 최초로 서울에서 평균기온이 30°C를 넘는 순이 나온 것이다.[15]대구는 7월 중순보다는 약해졌지만 7월 21일 39.4°C, 22일 37.5°C, 23일 36.8°C, 24일 36.5°C, 25일 35.9°C, 28일 33.5°C, 29일 35.5°C, 30일 35.8°C를 기록했다. 일 평균기온은 7월 21일에 32.9°C를 기록해 가장 높았다. 대구의 7월 하순 평균기온은 29.6°C를 기록해 상위 10위를 기록했다. 대구의 경우 7월 하순에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7월 26일)이 있어서 대구의 7월 중순이나 서울의 7월 하순보다는 살짝 낮았던 편.
3.6. 7월 종합
7월 한 달 내내 폭염이 이어진 결과 7월 평균기온은 서울 28.5°C, 인천 27.2°C, 수원 28.7°C, 강릉 28.0°C, 제주 28.4°C, 서귀포 28.6°C, 부산 27.9°C, 울산 28.7°C, 창원 29.1°C, 청주 29.1°, 대전 29.2°C, 포항 29.2°C, 광주 29.3°C, 전주 29.4°C, 대구 30.2°C를 기록했다. 대부분 지역에서 역대 1위를 기록했으며, 그것도 기존의 1~2위와 1~2°C 이상 차이가 나는 압도적 1위였다. 특히 대구의 1994년 7월 월평균기온 30.2°C는 대한민국에서 모든 연도에 모든 지역에서 기록된 월평균기온 중 가장 높으며, 유일하게 30°C를 넘는 대기록이다. 참고로 당시 기존 1위가 1942년 7월 대구의 29.3°C였으니, 기존 기록을 1°C 가까이 깬 것이다. 그리고 전주도 기존 1위 기록보다 높다. 지금도 1994년 7월 대구의 30.2°C는 역대 가장 높은 월평균기온이며, 2위는 2024년 8월 제주의 29.9°C이다.서울에서 가장 폭염이 심했던 날은 7월 24일로, 일 최저기온 28.1°C, 일 최고기온 38.4°C, 일 평균기온 33.1°C였다.
대구에서 가장 폭염이 심했던 날은 7월 21일로, 일 최저기온 27.5°C, 일 최고기온 39.4°C, 일 평균기온 32.9°C였다.
여담으로 서울은 기존 7월 2위가 1973년 7월 26.8°C, 1위가 1939년 7월 27.6°C였다. 1994년 7월 28.5°C는 기존 1위와도 0.9°C, 기존 2위와는 무려 1.7°C 차이가 나는 압도적인 1위 기록이다. 현재 기준으로도 2018년 7월, 2021년 7월보다 높아 1위이다.
대구 역시 기존 7월 2위가 1973년 7월 28.5°C, 1위가 1942년 7월 29.3°C였다. 1994년 7월 30.2°C는 기존 1위와도 0.9°C, 기존 2위와는 무려 1.7°C 차이가 나는 압도적인 1위 기록이다.
부산 역시 기존 7월 1위가 1978년 7월 26.3°C였다.[16] 1994년 7월 27.9°C는 기존 1위를 1.6°C나 경신한 압도적인 1위 기록이다. 심지어 지금도 역대 2위(2018년 7월, 26.7°C)와 1.2°C의 차이가 나는 압도적인 1위이다.
1994년 7월은 모든 달을 통틀어서도 초이상 고온이 가장 심한 달로 뽑힌다. 2020년대 들어서 심심하면 초이상 고온이 기록되기 전인 불과 2010년대 후반만 해도 평년 대비 편차가 가장 높은 달 중 하나였다. 특히 20세기로만 한정하면 1902년 11월, 1905년 1월, 1916년 1월, 1939년 7월, 1939년 8월, 1942년 7월, 1943년 8월, 1946년 11월, 1948년 12월, 1954년 11월, 1958년 12월, 1968년 12월, 1972년 1월, 1979년 1월, 1998년 4월과 더불어 기록적인 초이상 고온 달로 뽑히는 달이며, 20세기에 기록해 지금(1991~2020년 기준)까지도 평년 편차 +3°C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4개 뿐인 달 중 하나이다.
3.7. 8월 상순
서울의 경우 8월 2일 33.9°C, 5일 35.6°C, 6일 35.9°C, 7일 33.6°C, 8일 33.8°C, 9일 37.0°C를 기록했다. 일 최저기온도 8월 6일~8일에 27°C대를 기록했다.대구의 경우 8월 2일 35.4°C, 3일 35.9°C, 4일 36.0°C, 5일 36.6°C, 6일 37.8°C, 7일 36.8°C, 8일 37.8°C, 9일 37.7°C를 기록했다. 일 최저기온도 8월 8일에 27.0°C를 기록했다.
3.8. 8월 중순
서울의 경우 8월 12일 35.5°C, 13일 36.2°C, 14일 34.8°C, 15일 33.5°C를 기록했다. 일 최저기온은 8월 14일 27.2°C, 8월 15일 28.8°C를 기록했다. 이 기록은 2018년 이전까지 서울의 가장 높은 일 최저기온이었다. 그나마 8월 16일부터는 서울의 일 최고기온이 33°C를 밑돌았다.대구의 경우 8월 12일 35.0°C, 13일 33.6°C, 14일 36.0°C, 15일 35.0°C, 17일 35.4°C, 18일 34.1°C를 기록했다. 일 최저기온은 8월 14일 27.7°C, 8월 15일 27.8°C를 기록했다.
3.9. 8월 하순
서울은 최고기온이 30°C 내외를 기록해 폭염일수가 기록되지는 않았다.그러나 대구는 여전히 더워서 8월 23일 33.4°C, 24일 34.9°C, 25일 34.1°C, 26일 33.8°C, 27일 35.9°C, 28일 34.0°C, 29일 36.2°C, 30일 36.8°C, 8월 31일 37.7°C를 기록했다. 심지어 8월 29일에는 일 최저기온도 25.2°C라서 열대야도 발생했고 일 평균기온도 30.4°C였다. 월말까지 악착같이 열대야를 유지시키고야 마는 위력을 보여주었다.
3.10. 8월 종합
1994년 8월 월 평균기온은 서울 27.6°C, 인천 27.2°C, 강릉 27.2°C, 수원 27.6°C, 전주 27.7°C, 대전 27.9°C, 제주 27.9°C, 서귀포 27.6°C, 광주 28.1°C, 부산 28.1°C, 울산 28.1°C, 포항 28.8°C, 창원 28.8°C, 대구 29.1°C를 기록했다. 8월의 경우 2010년대 들어서 2013년(남부/영동지방 한정), 2018년(중부지방 한정), 2024년 등 8월 폭염이 강한 해들한테 밀리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최상위권에 드는 정도의 월 평균기온을 기록했다. 그리고 대구는 7월 뿐만 아니라 8월도 아직도 역대 1위이다.[17] 다만 구 관측소에선 2024년에 29.7도가 나왔으며 최고기온 평균, 최저기온 평균 모두 2024년한테 밀린다. 관측소를 옮겨서 운이 좋은 것도 있지만[18] 두 달 연속 월평균이 역대 1위인 것은 엄청난 것이다.[19] 심지어, 7월 평균기온은 구 관측소끼리 비교해도 어떠한 방식으로도 1994년이 독보적 1위이다.3.11. 9월 이후
서울은 9월 1일 31.7°C, 3일 31.7°C, 4일 32.0°C, 7일 29.8°C를 기록하는 등 늦더위가 며칠 있었다. 이는 1998년, 2011년, 2016년, 2022년, 2023년과 비슷하다. 그나마 최저기온은 9월 6일부터 20°C 밑으로 떨어졌다.이후에도 한여름이 다 끝난 9월 중순~12월 말에도 어느 정도 식었지만 여전히 평년보다 높은 기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계속 더웠던 것은 아니고, 중간중간에 비가 내려서 기온이 일시적으로 내려가기도 했다.[20]
3.12. 결과
당시 대구직할시는 7월 12일에 39.4도를 기록하면서 해방 이후 당시 기준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심지어 7월의 대구 월 평균 기온은 관측이래 유일하게 30°C가 넘는 30.2°C였고 서울도 28.5°C로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이 때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3,384명이라는 기사가 나왔으나 이는 '초과 사망자'라는 개념을 오해한 것으로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일단 1994년 폭염 때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는 92명이라고 한다. # 당시 전국 폭염일수는 무려 29.4일을 기록했고 대구에서는 무려 60일을 기록했다. 서울에서는 열대야가 36일이나 발생했다. 몇몇 사람들은 작년에 올 더위가 올해 더위에 이자까지 얹혀서 왔다고 할 정도였다.[21] 1994년의 여름과 2018년 여름의 습도를 비교해 보면 1994년 여름의 평균습도가 10% 가량이나 더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렇게 높은 습도는 불쾌지수를 높이는데 크게 일조를 하게 되었다.대구 등지에선 이 해의 폭염 때문에 다음해인 1995년 여름에도 폭염이 찾아왔는데도[22]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 했다.[23]
대구는 1994년 내내 폭염과 고온에 시달리면서 연 평균기온이 15.2°C를 기록해 지금까지도 역대 상위 1위이다. 전국적으로는 1998년, 2016년, 2023년 등 이보다 연 평균기온이 높은 해들이 많지만 대구의 1994년은 공식 기록 상으로는 여전히 이들보다도 더 높다. 물론 구 관측소에선 2023년에 15.6도를 기록했다. 그리고 강수량은 567.5mm로 역대 하위 1위이다. 대구에서 1994년은 극단적인 폭염과 가뭄에 시달린 엄청나게 힘든 해였다. 물론 대구가 2014년부터 관측소를 옮긴 영향이 있기도 하다.
4. 가뭄
덤으로 폭염에 가뭄까지 겹치면서 농업용수는 물론 생활용수조차 공급에 차질을 빚었는데 7월 초에 조기 종료된 장마 탓에 전국 대부분 지방의 강수량이 평년보다 훨씬 적어 농민들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남원시는 7월 한달 간 강수량이 단 1mm에 그쳤으며 거창, 정읍에서도 10mm 미만의 강수량을 보였다(...). 폭염은 계속되고 비가 오지 않아 가뭄 피해가 심각하여, 오죽하면 태풍이 오기를 기대할 정도였으며[24] MBC에서는 타는 들녘에 사랑의 물줄기라는 특별 생방송을 편성하여 각 지역 가뭄이 극심한 지역에 양수기를 배달시키는 방송을 하기도 하였다.
사실 1994년은 연초부터 가뭄이 심각하여 전남 서남부권 지역에서는 2월에 제한급수에 돌입할 정도로 물 사정이 악화되었다. 이후 봄에 가끔 비가 내리기는 했으나 가뭄 해갈에는 턱없이 부족하였기에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비로소 가뭄이 해갈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장마가 금세 끝나버리는 바람에 가뭄이 해소되기는커녕 더더욱 악화되기에 이르렀다. 전국의 댐 및 저수지들은 바닥을 드러내었고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저수지가 고갈되면서 예전에 저수지에 수몰된 마을의 흔적이 드러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특히 벼농사에서 물이 가장 많이 필요한 수잉기가 가까워져도 이렇다 할 비가 내리지 않자 급기야 소방차까지 동원되어 화재 진압에 써야 할 물을 논에 살포해야 했고 산불 진화 헬기도 저수지에서 물을 길어 논에 뿌려댔다. 농업 뿐만 아니라 건설업, 요식업, 목욕탕도 폭염과 가뭄의 직격탄을 맞았고, 생활용수도 부족하여 날이 더워도 샤워를 하루에 한 번 하는 것조차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으며 설거지, 빨래도 한번에 몰아서 해야 했는가 하면 위에서 언급된 특별 생방송 '타는 들녘에 사랑의 물줄기를'에서는 마찬가지로 심각한 가뭄을 겪고 있던 일본에서 나온 물 절약 아이디어들을 소개하기도 했다.[25] 달동네, 빈민촌의 경우는 수도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아 급수차가 실어오는 물에 의존해야 했고 곳곳에서는 시장, 군수까지 참여하여 기우제를 올리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태풍이라도 와서 비를 뿌려 주길 기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실제로 7월 말에서 8월 초에 잇따라 올라왔던 7호 태풍 월트, 11호 태풍 브랜던, 13호 태풍 더그는 바람은 그리 강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비를 뿌려줘 효자 태풍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이 정도로 심각했던 가뭄에도 불구하고 1994년의 벼 작황은 풍작을 기록했으며 오히려 일조량이 적고 저온이 심했던 전년보다 수확량이 양호했다고 한다. 반면에 북한은 전년도 냉해로 인한 흉작에 이어 이해의 가뭄으로 또다시 흉작을 기록했고 다음해에는 최악의 물난리까지 겪으면서 완전히 나락으로 가버린다.
5. 해외 사례
자세한 내용은 폭염/사례 문서의
1990년대
부분을
참고하십시오.6. 여담
공교롭게 김일성의 사망과도 때가 겹쳤기 때문에 항간엔 일사병으로 죽은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으며[27] 당시 군인들은 혹독한 폭염에 겹친 초긴장 정국 덕분에 잊지 못할 여름을 보냈다.[28]이 해의 압도적인 폭염 때문에 1994년의 폭염은 하나의 기준점이 됨으로써 이후의 폭염은 항상 1994년과 비교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16년 폭염과 같은 비교가 될 만한 케이스는 최고 온도는 갱신되었지만 폭염, 열대야, 가뭄이 지속된 일수는 아직도 1994년이 더 앞서고 그로인한 농작물 및 인명피해도 1994년의 기록이 아직도 더 앞선다.[29] 오히려 혹서기의 체감온도는 2010년대 이후가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드물지만 여름에도 미세먼지가 오는 경우도 있다.
여론 조사에 의하면 가정용 에어컨은 1994년 폭염 사태를 기점으로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해 2000년대 들어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그리고 13년이 지난 2007년, 에어컨 보급률은 50%를 넘어서 과반수가 에어컨 보급을 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1994년 폭염은 한국내의 에어컨 수요를 폭증시키고 에어컨을 대중화시킨 폭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30]
폭염이 찾아오기 1달여 전인 1994년 여름 날씨 전망에서는 올해 여름도 서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1993년 여름이 1980년, 1987년, 2003년과 함께 한반도 기상관측 역사상 광복 이후 최저 여름 기온을 모조리 쓸어담은 이상 저온 현상을 보였기 때문에[31], 1994년은 1993년보다는 덜하지만 서늘할 거라고 대부분 전망했지만 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32]
그리고 24년 뒤 한반도에 이 해를 뛰어넘는 역대 최악의 폭염이 찾아왔다. 물론 더위가 찾아온 시점은 2018년이 1994년보다 한발 늦었다.[33] 2018년 기온이 조금 더 높긴 했어도 에어컨 보급 비율을 생각하면 1994년 여름이 더 고통스러워서 오래 기억되고 있다.[34] 다만 7월의 열대야 일수(1994년은 8.9일, 2018년은 7.8일)와 폭염일수(1994년은 18.3일, 2018년은 15.5일)는 아직도 1994년이 1위다.[35][36] 또한 전국 여름 3개월 평균기온은 1994년이 2018년보다 0.1도 더 높다.[37] 최고기온은 갱신을 수차례 했어도 평균기온은 2018년조차 한수 접는다는 것은 그만큼 1994년 폭염이 기간이 길고 광범위했다는 것으로 정말 지독했던 폭염 그자체였다. 다만 서울의 여름철 평균기온은 2018년이 더 높으며, 서울조차 7월의 기온은 1994년이 가장 높다.
서울 기준 2018년 7월은 1994년 이후 최악의 7월 수도권 폭염인 2021년 7월에 평균기온이 경신된다.[38] 그렇지만 그 2021년 7월도 1994년 7월을 0.4℃ 차이로 따라잡지 못해[39] 1994년 7월이 아직도 본좌 중의 본좌임을 입증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또 시간이 흘러 정확히 30년 뒤인 2024년, 다시 94년 폭염에 비견될 만한 더위가 찾아왔다. 단기간 동안 퍼붓는 장마의 특징 때문에 더위가 누그러들지 않았고[40], 특히나 북태고와 티벳 고기압이 이중 열돔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1994년 폭염과 가장 양상이 비슷한 폭염이다. 6월 평균기온과 극값은 2024년이 압살하며, 7월은 1994년이 압살한다. 8월 초 94년, 18년밖에 기록하지 못했던 비공식 포함 41℃ 이상을 2024년 8월 4일, 여주 금사면에서 41.6℃를 기록하면서 8월 극값 자체는 1994년 그 이상을 기록했으며, 하순 들어 더위가 어느 정도 누그러진 1994년과 달리 2024년은 8월이 끝나는 시점까지도 폭염과 열대야를 기록했다. 게다가 이는 9월의 전례없는 늦더위로 이어지게 된다.[41] 차이점으로는 역대급이었던 1994년 7월과 달리 2024년 7월은 그에 비해 온도가 높지 못했으며, 오히려 앞뒤 달에 비해 고온이 덜한 편이었다.[42] 대신 8월이 이 해 7월 중하순과 비슷하다. 더위가 찾아온 시기나 기온은 2016년과 더 비슷하다.[43]
7. 관련 문서
[1]
기온이 아니라 가뭄 일수 기준, 21세기 지구온난화가 제대로 두각을 보이기 전의 기록이라서 더 특이할 만하다.
[2]
단 2018년의 7-8월을 관통하는 폭염이 발생한 후에는 2018년을 첫순에 놓는 학자들이 많아졌다.
[3]
1970~1980년대부터는 한국에서 본격적인 도시화가 진행되고 세계적으로 지구 온난화 문제가 대두됨에 따라 기존의 열대야 기록까지 갈아치워 한반도의 열대야는 1994년이 관측 역사상 최대이다.
[4]
일일이 열거해 보면 정말 쟁쟁하다.
1917년 6월 36.7°C와 7, 8월 36.6°C,
1919년 8월 37.5°C,
1922년 8월 36.3°C,
1929년 8월 36.7°C,
1930년 8월 37.4°C,
1932년 8월 37.2°C,
1939년 7월과 8월 각각 37.7°C와 38.2°C,
1943년 8월 38.2°C,
1945년 8월 37.0°C,
1946년 7월 36.7°C,
1949년 8월 37.7°C,
1950년 8월 36.9°C,
1958년 6월 37.2°C. 게다가 36°C를 턱걸이한
1918년 7월,
1921년 8월,
1931년 8월,
1942년 7월,
1944년 8월, 간발의 차로 턱걸이에 실패한
1923년 8월,
1933년 8월도 있다. 게다가 나머지 해들도 1913년처럼 어지간히 저온이 심하지 않은 이상 33~35°C는 꼭 기록한 해가 더이상 열거하기 곤란할 정도로 많다. 그러나 극값이 이렇게 높아도 최저기온은 비교적 양호했고 정작 1994년 여름처럼 더위가 길고 늦게 이어지는 경우는 정말 손꼽히게 드물었다.
[5]
1958년 6월같은 특수한 경우는 논외. 나머지는 몇몇 해를 제외하고 전부 한여름인 7~8월에 33~35°C가 한계였다.
[6]
1978년 이후 다시 36°C를 넘긴 시기가
1988 서울 올림픽 직전인
1988년
8월 10일이며 다시 넘긴 것이 이 1994년 여름이다. 이후에도
2011년 이전까지는 36°C를 넘긴 것이
1997년 7월(36.1℃),
2004년 8월(36.2℃)뿐이다. 즉
1954년 이후에는
2011년 무렵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36°C를 넘기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7]
그러나
2012년을 기점으로 여름철 온난화가 매우 심해지며 이후에는 거의 매 해마다 36°C를 한 번씩은 넘기거나 근접하고 있다. 2012년 8월(36.7℃), 2015년 7월(36.0℃), 2016년 8월(36.6℃), 2018년 7월(38.3℃)과 8월(39.6℃), 2019년 7월(36.1℃)과 8월(36.8℃), 2021년 7월(36.5℃), 2022년 7월(36.1℃), 2024년 8월(36.4℃) 등 36도를 넘어섰다.
[8]
14.3°C, 1989년 4월
[9]
2위는 1998년 4월(15.6°C), 1위는 2024년 4월(16.3°C)
[10]
물론 9월 초 단독으로 놓고 보면 1997년 등 더 높은 기록도 존재한다.
[11]
8월도 태풍이나 강수 덕에 폭염이 좀 덜했던 것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2018, 2024년마저 능가했을 것이다.
[12]
역대 최초 7월 초순 일 최저기온
열대야지만 이후 2022년과 2023년에는 아예 2년 연속 6월에 열대야가 발생했고 2022년은 이보다 이르게 발생한 날이 7일이다.
[13]
워낙 튀는 기록인지라 뒷날이라도 이런 현상이 다시 재현되는 날이 오지 않을 줄 알았으나 2021년 7월이 1994년 7월처럼 13일에 26˚C를 기록한 뒤로 3일 이상 열대야가 유지되어 1994년 폭염의 악몽을 떠오르게 하고 있고 2022년에는 아예 1년도 멀다는 듯 7월 상순에 4일 연속 26도 이상의 열대야를 기록했다.
[14]
소수점 이하로 따져도 둘 다 31.064°C를 기록에 정확히 똑같다.
[15]
이후 2012년 8월 상순, 2018년 7월 하순, 2018년 8월 상순, 2021년 7월 하순, 2024년 8월 중순이 순평균 30°C를 넘었다.
[16]
비공식 기록까지 포함하면 1894년 7월 26.4°C이긴 하나, 한수당연구원의 부산 평균기온은 해관기록의 최저/최고기온과 비교해봤을 때 0.3~0.7°C 가량 높게 나온 경향이 있어 실제로는 26°C 내외였을 것이다. 물론 이것도 기록적인 고온이다.
[17]
역대 3위인 2013년 8월(29.0°C)보다 근소하게 더 높고 공동 1위인 2024년 8월(29.1°C)와 같다. 소숫점 셋째자리까지 합하면 1994년이 29.074, 2024년이 29.067로 1994년이 더 높다.
[18]
3번이나 옮겼기 때문에 옮긴 관측소의 기록을 쓰는 것이 옳으며 1번 옮겨도 마찬가지이다.
[19]
여담으로 전주는 관측소를 옮겨도 평균기온은 큰 차이가 없다.
[20]
성수대교 사고가 일어난 10월 21일에는 폭우와 이상 저온이 왔다.
[21]
반대로 전 년도였던 1993년 여름은 되려 7월과 8월이 평년 6월과 비슷한 수준에서 그쳤고 서울 기준으로 아무리 더워도 31.2도를 넘지 못 했을 정도였다. 오히려 최고 극값을 5월말에 기록했을 정도다.
[22]
8월 14일 대구에서 39.2도를 기록했다. 1994년 최고 극값인 39.4도와 별 차이가 없다.
[23]
서울과 수도권, 강원영서 사람에겐 의아하게 들릴 수 있을텐데 1995년은 위도가 낮은 곳이 더 더운 폭염으로 서울과 수도권, 강원영서는 그닥 기억에 남을만한 폭염은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8년 여름 때문에 2019년 여름에 21세기 중 두번째로 높은 극값을 기록했고 2020년 기준으로 사상 7번째로 더운 여름이었으며
수원은 아예 1994년 8월과 엇비슷한 평균을 기록했는데도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진 것과 비슷하다.
[24]
동월 25일
신경민 당시
MBC 뉴스데스크 임시
앵커가
'이렇게 태풍을 손꼽아 기다려 본 적이 있을까'라는 말을 한 바 있었다. 반면
KBS 뉴스 9에선 오프닝 타이틀마저 가뭄 장면으로 채웠고
이윤성 앵커는
FM대로 멘트를 내보냈다.
[25]
그 중 하나가 접시 위에 비닐을 깔아 그 위에 반찬을 올리는 것.
[26]
참고로 태풍 월트는 일본을 지나면서 약해진 채로 얌전히 비구름을 몰고 오면서 비만 좀 세차게 뿌리다가 생을 마감했다. 진정한 효자 태풍
[27]
사실 7월 1일부터 전라도/경상도 같은 남부지방은 북태평양 기단의 확장으로 사실상 장마가 종료되어 폭염이 왔다. 다만 중부지방과 북한은 장마의 영향을 받아서 7월 8일까지 장마가 왔다. 그러나 태풍 팀이 북태평양 기단을 확장시켜 7월 9일부터 서울을 포함한 중부지방도 얄짤없이 폭염 시작, 그 이후 북한까지도 북태평양 기단의 확장으로 폭염이 왔다. 이 날 기상청에서도 전국적으로 폭염이 오래 갈 것이란 예보를 하였다. 후대에 김일성의 죽음과 폭염을 연결시켜 이야기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실제로는 그때 김일성의 지병이 있는 상태였는데 그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다고 무리하게 활동하다가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28]
공군교육사령부에서 훈련 및 교육을 받던 장병들은 예외였다. 7월 첫 주 외박을 나가서 김일성 사망 소식을 듣고 일요일에 복귀한 후 영내대기가 이어지겠지 하고 망연자실해하던 그 다음주에 대사건이 벌어졌다. 보통 토요일 일과 후에 외박을 나가는 게 정상인데, 교육사 장병을 하루 일찍 내 보내면 진주 부근 논 수만평에 물을 댈 수 있다는 소문이 돌더니 2주 연속으로 금요일 일과 후 외박을 내보냈다. 조종사와 방공포병만이 전투병과이고 다른 특기를 가진 장병들은 지원인력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교육 중이었기도 하고.
[29]
게다가 1993년에는 5월 말에 이른 더위가 찾아왔지만, 여름은 서늘했고, 9월 초의 늦더위를 제외하면 10월까지 저온이었다. 자세한 것은 후술.
[30]
지금이야 언제든 집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지만 1994년 당시의 에어컨은 스텐드 20∼25평형을 기준으로 1대 당 가격이 당시 직장인 한 달 월급을 상회하는 200만 원대에 판매했던 고가의 가전제품이었다. (
<시장물가> 에어컨가격 작년보다 10∼15% 올라(1994. 05. 25 연합뉴스)) 덕분에 1993년 기준 가구당 에어컨 보급률은 겨우 6%로
금수저 수준 집이 아니면 살 엄두도 내지 못했다. 현재는 지하철과 버스에는 냉방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1994년에는 그렇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하철 역사에는 스크린도어는 물론 펜스조차도 없어서 전동차가 내뿜는 열기에 그대로 노출되어야 했다. 그나마 에어컨이 많이 대중화된 상황이었던 2018년과는 달리 당시에는 에어컨의 예상수요 자체가 적다보니 물량 자체가 적었던 상황이라 에어컨 물량대란은 이 때가 더 심했다. 가정용 에어컨은 물론 차량용 에어컨에도 변화가 왔는데 바로 1995년부터 도시형 버스의 냉방화가 시작된 것이다. 냉방화와 함께 버스 이용객들이 더 이상 여름에 불편을 겪지 않게 되었다.
[31]
어느 정도냐면 서울은 5월 29일에 31.9°C를 기록한 이후, 5월 29일보다 높은 최고기온을 기록한 날이 없었을 정도였다. 그 7~8월에도! 결국 기록이 깨지지 않아서 그해 최고 기온 1위를 달성하였다. 이 점은 1980년 여름하고도 비슷하다. 심지어 1980년은 6월 동쪽 지역
이상 고온 현상 때문에 폭염일수는 있었으나 1993년은 폭염, 열대야일수 모두 0일이다. 단 6월에 대구에서 폭염이 있긴 했다. 1980년은 북태고도 남부지방에 약하게 간접 영향을 줬으나 1993년은 완전히 전무했다.
[32]
여담으로
2018년에도 심한 폭염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는 평이 많았다.
[33]
2018년은 7월 초에는 한때 선선했던 적도 있다.
[34]
게다가 이전해인 1993년 여름은 역대급 이상저온으로 한여름에도 가을날씨의 기온일 정도로 선선했기 때문에 이 해 체감상 폭염 정도는 역대급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35]
비교해 보면 2018년과 1994년 모두 빨리 끝난 장마로 폭염의 배경은 비슷하였으나 2018년 여름은 7월 13일~8월 16일경이 무자비하게 더웠고 1994년 여름은 7월 초~8월 17일경까지 더위가 이어져서 좀 더 길었다.
[36]
게다가 처서 이후 확연히 더위가 누그러진 2018년과는 다르게 1994년에는 9월 1일에 대구가 37.5°C 까지 오르며 9월 전국 역대 최고기록을 다시썼고 9월 중순 이후로도 연말까지 이상 고온이 이어졌다.(물론 2018년도 11월부터 다시 올라 2019년 대부분이 이상 고온을 기록했고 2020년 1~3월에 초이상 고온으로 매우 길게 이어지기도 했지만) 이 기록은 20년 뒤인 2014년 5월 31일에 근접하게 되는데 아마 이 때에도 관측 장소가 변경되지 않았다면(대구는 2013년 10월에 관측 장소를 옮겼다.) 아예 이 때 기록을 넘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위의 기간면에서는 2018년과 결을 달리한다. 그리고 9~12월도 평년보다 높았다. 1939년도 늦더위가 강력하게 이어졌으나 9월 하순이 저온이었고 열섬 현상이 없는 일제 시대인 만큼 최고기온은 높아도 최저 기온이 낮아서 평균기온은 별로 높지는 않았다. 그래도 서울 기준 21.3°C로 평년보다 높았다. 한마디로 평균기온은 1994년이 탑이다. 다만 중부지방은 8월 하순에는 심하지는 않았고, 9월은 평년 수준, 10~12월만 높았다. 그러나 사실 1994년 자체가 3월만 제외하고 모두 평년 이상을 기록했다. 그리고 2018년이 폭염의 세기는 더욱 강력했다. 40도를 넘겼을 정도니. 게다가 초열대야까지...
[37]
7~8월로만 따져도 1994년 7월 27.7도, 8월 26.7도, 2018년 7월 26.6도, 8월 27.1도. 6월까지 포함하면 2018년 6월 22.0도, 1994년 6월 21.4도이다.
[38]
2018년 7월 27.8℃, 2021년 7월 28.1℃
[39]
극값도 1994년 7월에 비해 1.9℃ 낮다.
[40]
다만 장마철 강수량은
2024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는 비 자체가 매우 드물었던 1994년과 다르게, 2024년은 비 자체는 잦은 편이었으며, 특히 야간 시간대에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날이 많았기 때문이다.
[41]
1994년 9월의 경우 남부지방은 당시치고 늦더위가 꽤 강한 편이었지만, 서울 등 중부지방은 9월 들어 평년 수준으로 떨어지며 늦더위가 심하지 않았으며, 서울 기준 21.0℃로
2012년과 같아 현대 기준으로는 아예 저온을 보였다.
[42]
2024년 전체적으로도 짝수 달 고온이 유독 심하다.
[43]
2016년에도 1994년 폭염과 비교되기도 하였다. 당시에는 당연히 2018년 이전이라서 2018/2024년 폭염이 없었으므로. 이 해는 극값이 1994/2018에 비해 낮고, 월말의 이상저온으로 월평균도 두 해 모두에 밀리면서 비교적 묻힌 케이스인데, 2024년이 이와 매우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