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0 22:01:24

1939년 폭염

한반도의 폭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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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경과
2.1. 7월 이전2.2. 7월 초순2.3. 7월 중순2.4. 7월 하순2.5. 8월 이후

1. 개요

1939년 여름 한국을 중심으로 유행한 폭염이다.

사실상 20세기 2018년 폭염 이라고 불러도 전혀 무리가 없다. 일부 부문에서는 그 유명한 1942-1943년, 1994년 조차 뛰어넘는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발생시기가 일제강점기 시대이자 일제의 본격적인 민족말살통치가 시작된 1940년대에 근접해서 1943년 폭염 등과 함께 기록이 거의 남지 않았다.

서울 기준으로 폭염일수(낮 최고기온 33°C 이상)가 47일로 역대 최악의 폭염으로 불리는 2018년의 36일을 뛰어넘는다. 폭염경보일수(낮 최고기온 35°C 이상) 으로 범위를 바꿔도 1939년이 30일에 달해 2018년의 22일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서울의 최고기온 기록은 8월 10일 38.2°C 에 달해 2018년 폭염 전까지는 2위인 1994년 7월 24일 38.4°C, 3위인 2018년 7월 31일과 38.3 ˚C 이후 1943년 8월 24일, 1994년 7월 23일과 함께 공동 4위이다.[1] 심지어 그 열대야일수도 16일로 매우 많다.

다만 이는 열섬이 거의 없던 1930년대 후반의 기록이다. 따라서 똑같은 기상학적인 조건으로 저 날 폭염이 현대에 온다면, 각종 빌딩의 복사열, 도시를 덮고 있는 실외기의 바람, 각종 차 매연 등의 도시 열섬으로 인해 최고기온이 38도에서 최대 2018년 8월 1일 서울 39.6도에 근접하는 기록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좀더 과장하자면 40도 이상의 기록을 보였을 법 하다

더위는 당연히 서울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폭염의 피크기가 한 번이 아닌 여러 번인 것이 특이점이다. 한파처럼 폭염이 강해졌다가 다시 소강상태에 접어드는 날씨가 반복되었다. 물론 그 소강 상태마저도 폭염 수준에 충분히 들어맞아서 폭염 지속으로는 2018년 여름을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서울의 7~8월 평균기온이 각각 27.6℃, 27.5℃로 이상 고온이 매우 심한 것을 알 수 있다. 7월은 악명높은 1994년, 2018년, 2021년에 이어 4위, 8월은 1943, 1994, 2013, 2016, 2018년에 이은 6위이다.

1939년 7월 9일~11일 남해안에 간접 영향을 준 3999호 태풍 이후 이후 8월 29~31일의 39100호 태풍까지 2018년처럼 한반도에 영향을 준 태풍이 단 하나도 없었다. 2016년, 2018년처럼 폭염으로 인해 태풍도 접근 못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는 1939년 여름 당시 동아일보의 신문기사이다.
함흥도 최악의 폭염을 기록했다.[2] 평양도 섭씨 35도를 넘어가는 폭염에 고통을 받았다.[3] 거기에다 가뭄까지 아주 심했다. #[4]

기묘하게도 여름철 열기의 주요 루트 중 하나인 일본은 정작 이 해 여름에 한반도만큼 튀는 기록이 거의 남지 않았다. 교토 오사카는 7~8월 평균기온이 각각 27~28℃대였으나, 이들 지역에선 이 정도는 매해마다 겪는(...) 평년 온도였고, 도쿄도는 한술 더떠 7~8월이 각각 7월은 26℃로 높았긴 했지만 8월은 평년보다 저온인 25℃ 선에서 그쳤다.[5] 이는 일본에서 거쳐온 북태평양 열기보다는 중국 대륙같이 다른 곳에서 거쳐온 열기에 의한 영향이 컸다는 의미가 된다.[6]

그리고 사실 제주도도 1939년 7~8월에 심하게 덥진 않았다. 제주의 경우 1939년 7월과 8월에 둘 다 25.4°C를 기록해 평년[7]보다 7월은 0.4°C 높았고 8월은 오히려 0.4°C 낮았다.

2. 경과

2.1. 7월 이전

2.2. 7월 초순

7월 9일에는 서울이 갑자기 36.8°C 까지 올라 기상관측 113년 사상 현재까지도 7월 초순 역대 최고기온으로 남아있다.[8] 또한 서울의 강수기록을 보면 장마철로 추정되는 날씨가 2018년과 함께 매우 짧은 것으로 보인다. 그 영향으로 지옥같은 폭염뿐만 아니라 가뭄까지 합세해 농민들의 고통이 매우 컸을 듯 하다.[9]

2.3. 7월 중순

7월 중순에 이르자 유난히 동해안의 더위가 심해졌다. 1930년대에는 동해안 지역의 공식 기상관측소가 강릉 밖에 없었다. 강릉의 기록을 살펴보면 7월 14일 최저 25.2°C, 최고 37.8°C 로 시작하더니[10] 7월 15일에는 최저 28.3°C, 최고 37.0°C, 7월 16일은 최저 28.6°C[11], 최고 38.0°C 가 된다. 그리고 17일 최저 25.7°C, 최고 35.8°C 로 약간 나아지더니 19일이 되자마자 한번 더 최고기온 38.0°C 를 찍어버렸다. 그리고 20일이 되자 최저 26.5°C, 최고 38.5°C 로 정점에 이른다. 무엇보다 20일 38.5°C 는 1942년, 1994년에 이어 역대 7월 3위의 최고기온이다.

주목할 것은 이건 7월말, 8월 초순이 아닌 7월 중순 기록이다(...) 8월 초순에 저 정도 더위가 이어져도 강릉에서는 엄청나게 기록적인데, 7월 중순에 이어졌으니...

게다가 강릉이 38.5°C 를 찍은 20일 다른 지역에서도 극한의 더위가 시작된다. 서울 36.2°C, 인천 35.0°C, 전주 38.2°C, 광주 36.3°C, 대구 39.4°C 를 기록한다. 대구의 39.4°C 기록은 2018년 여름 최고기온인 39.2°C 보다 높고 1994년과 동점이다.

2.4. 7월 하순

사실상 전국의 더위가 극에 달한 시기이다. 7월 21일에는 전국 어디도 빠짐없이 역대급 더위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기록적이었던 날은 7월 21일과 7월 30일이다.

7월 21일, 전국이 폭염경보급 이상의 심각한 더위가 찾아온다. 서울 37.7°C, 인천 35.0°C, 강릉 36.2°C, 전주 38.2°C, 광주 37.9°C 대구 39.6°C, -추풍령 39.8°C-[12]

전국적으로 다 폭염경보 이상으로 더운 것이 2018년 8월 1일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2018년 8월 1일은 중부 중심이었고 1939년 7월 21일은 충청내륙과 경북내륙이 중심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2018년 8월 1일은 동풍이어서 강릉이 33.5°C로 동해안은 폭염을 보였으나 상대적으로 숨통이 트였지만 1939년 7월 21일은 그런 거 없다. 전국 대다수가 35°C를 넘는 숨막히는 더위가 이어졌다. 사실 이는 대각선 더위로 보이는데 강릉이 동풍이라 여전히 매우 덥지만 비교적 낮고 빠짐없이 더운 것이다. 이는 2018년 7월 24일을 연상시킨다.

7월 22일이 되자 대구 33.6°C 로 동부 지방은 잠시 숨을 돌리게 된다. 그러나 서쪽 지방은 여전히 서울 37.1°C, 인천 36.5°C, 광주 36.2°C 를 기록했다. 특히 인천 등 수도권 서부는 기온이 오히려 전날에 비해 큰 폭으로 올랐다. 동풍에 의한 더위로 보인다. 그 이후로 23~25일은 심한 더위는 잠시 주춤하며 전국 낮 최고기온이 32~33°C 대에 머무는 평범한 더위가 이어진다.

아니나 다를까, 26일이 되자마자 서울이 35.3°C 로 갑자기 또 기온이 오르더니 27일 37.3°C, 28일 37.0°C, 29일 37.6°C, 30일 37.7°C로 무려 4일 연속 37°C 를 넘는다[13]. 특히 7월 30일은 대구도 39.2°C 까지 오르며 9일전인 7월 21일의 악몽을 떠 올리게 하는 전국적인 극한 더위가 이어졌다.

31일은 동풍이 불었는지 서울이 36.7°C, 인천 37.4°C, 전주 35.1°C 광주 34.9°C 로 서쪽 지방 위주로 심각한 더위가 진행되었다. 특히 인천의 37.4°C 기록은 악명높은 1994년의 7월 26일 37.2°C 보다도 높은 것으로, 1907년 기상관측 이래 여전히 인천 7월 최고기온 기록으로 남아있다. 참고로 중부 지방 역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알려진 2018년 8월 1일 인천의 최고기온은 겨우 35.9°C 에 불과했다. 사실 1950년대 이후로는 인천이 서울보다 극값이 2도정도 낮다는 것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차이가 큰 것이다. 오히려 인천은 2019년이 36.0도로 더 높다.

2.5. 8월 이후

8월 들어서 약간 폭염의 기세가 누그러졌지만 곧바로 6일~13일에 강력한 폭염이 닥친다. 서울은 8월 10일 38.2°C까지 올라가서 1943년 8월 24일과 함께 공동 4위이다. 이후 8월 중순에도 35~36°C 이상의 기온을 기록하다 20일~23일에 또다시 강력한 폭염으로 서울은 22일 37.7°C를 기록했다. 8월 말에 39100호 태풍[14]의 영향으로 기온이 확 떨어졌지만 이마저도 9월의 늦더위 현상으로 인해[15] 실질적으로는 9월 21일경이 되어서야 서울에 폭염이 끝났다고 할 수 있었다.[16] 그러나 10월 중순이 시작되자마자 서울에서 28~29℃를 필두로 당시 관측 지역 대다수가 극단적인 고온 현상이 잡혔고[17], 이후로도 11월 초에 20도를 넘기는 등 이상 고온 현상을 몇 번 보였다.


[1] 단 최저기온의 경우는 2018년보다 낮았다. [2] 화씨온도 99℉를 섭씨로 변환하면 37.2˚C가 된다. [3] 화씨 95℉ = 35˚C이다. 수은주가 110℉까지 올라갔다는 것을 보아 섭씨 온도로 변환하면 (비공식적으로) 무려 43.3˚C를 기록하여 지금까지도 역대 최고기온인 셈이다. [4] 1994년, 2018년 같이 짧은 장마로 시작하여 역대급 가뭄을 동반한 폭염으로 보인다.[18] 주관적인 해석이지만 기사에는 우기라고 되어있는데 이는 맥락상 장마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평년보다 늦고 그 기간조차 단기간에 그쳐 1973년6일에 버금가는 기록을 세웠을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양쯔강에서 발달하는 저기압도 평년에 비해 매우 부진해 역대급 가뭄을 동반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음 해인 1940년에는 역대급 7월 강수량으로 2011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능가할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으며 서울 7월 강수량 1364.2mm로 역대 1위였고 기온도 낮았다는 점에서 경이롭다. [5] 또 기묘하게도 불과 2년 전인 1937년 8월에 평균 28.2℃를 기록해 관측 사상 처음으로 28℃ 선을 넘기까지 했다. [6] 그래서 어느 날씨 카페에서는 이해 여름은 북태평양 고기압에 티베트 고기압까지 가세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압 배치 때문에 내내 폭염이 심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7] 1923~1952년 기준 7월 25.0°C, 8월 25.8°C [8] 이는 동풍의 영향으로 보이는데, 동시기 강릉은 최고 29도 정도로 비교적 서늘했다. 이때 3999호 태풍이 한반도로 접근하고 있었는데, 비슷한 사례로 바비가 접근하던 2020년 8월 25~26일의 서울 폭염 사례와 비슷했을 수도 있다. [9] 자세한 내용은 장마/연도별 상황 문서 참고. [10] 참고로 전 날도 35.7°C로 사실 매우 더웠다. [11] 열섬이 거의 없던 시절인데도 이 정도다. 똑같은 기상학적 조건으로 현대에 온다면 최저기온이 30°C 이상인 초열대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대를 고려하면 엄청난 최저기온이다. 이는 일제시대에 기록된 최저기온 중 1914년 7월 30일(28.8°C)에 이어 2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12] 다만 이 39.8°C는 신뢰성이 떨어지는 기록이다. 1949년 이전에는 띄엄띄엄 관측되었고 그 기록들도 의심의 여지가 있으며, 본격적으로 관측이 시작된 1949년 이후에도 이와 비슷한 기온을 기록한 적이 단 한번도 없기 때문. 1949년 이후 추풍령의 역대 최고 극값을 고려해보았을 때, 이때 최고온도는 35~37°C 사이였을 것이다. 물론 이것도 아주 더운 것이다. [13] 2018년 7월 31일~2018년 8월 3일과 함께 유일함 [14] 1939년에 일어난 1904년 관측사상 한반도에 영향을 준 100번째 태풍이다. 위력은 그닥 강하지 않았지만 당시 태풍의 진행경로가 조금 독특했는데, 제주, 광주, 목포 지역을 중심으로 영향을 끼치며 서해안을 돌다 갑자기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해주와 원산 지방에 영향을 주면서 일본 아오모리현까지 갔다. 그 외에도 전체적으로 S자 라인을 따르는 진행방향을 보였다. [15] 9월 2일은 무려 35.1도로 현재 한여름과 맞먹을 정도이며 현재까지도 서울 9월 최고기온 역대 1위이다. 이정도면 폭염주의보를 넘어 폭염경보 수준이다. 게다가 7일까지 30°C 밑으로 떨어지지도 않았다. 한편 이 무렵 머나먼 서쪽 나라에서는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다. [16] 이번에는 완전히 물러간 듯 보였으나 이후에 10월 4일에 28도를 찍고 14일에는 무려 29.3도를 찍었다. 10월 초중순 역시 극단적이었는데 10월 8일 이후로 14일까지 26°C를 계속 넘겼다. 이는 현재까지도 역대 4위이다. [17] 특히 그 부산도 최대 28.6℃가 찍히는 등 해안이라고 전혀 예외가 되지 못 했다. 이는 1939년 당시 10월 중순 기온 1위였다. 참고로 부산은 서울과 거리가 꽤 멀어 서울과 부산이 동시에 크게 더운 경우가 별로 없다. 게다가 두 지역 간의 기온 차가 거의 없는 건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