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38:09

호제(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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胡濟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정사3. 연의4. 동일인? 동명이인?
4.1. 동일인이라고 보는 입장4.2. 동명 이인이라고 보는 입장
5.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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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인물로 정사 삼국지의 촉서 < 후주전>, < 강유전>에 등장한다.

2. 정사

256년에 대장군으로 승진한 강유가 융마를 지휘하게 되면서 진서(대)장군[1]을 지내고 있던 호제는 강유의 북벌에 참가해 상규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호제는 약속을 어기고 만나지 않아 강유는 결국 단곡에서 등애에게 격파되어 병사들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매우 많은 수가 사망했다. 이 때문에 병사들이 모두 강유를 원망하면서 농서 서쪽 지역에도 소동이 일어나 안정되지 못해 강유가 잘못을 사과하고 책임을 지기 위해 자신의 관직을 삭탈할 것을 요구해 후장군 및 행대장군사로 강등되었다.[2]

단곡 전투는 촉한의 북벌 사상 최대의 패배 중 하나였고, 그 여파로 총사령관인 강유도 자리 보전을 못한 마당에 패배의 원흉이라 할 만한 호제는 당연히 목이 날아가거나 최소 삭탈관직을 당했어야 할 것 같지만, 그러지 않았다. 하다못해 투옥이나 벼슬이 깎이거나 문책을 받았다는 기록조차 없다. 때문에 호제가 훼방을 놓거나 농땡이를 피워서 약속을 못 지킨게 아니라[3] 약속을 못 지킬 수밖에 없었던 어떤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으리라 추정하는 의견이 많지만 관련 기록이 부실한 탓에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다. 숫적으로 우위에 있던 위군에게 길막당했다거나, 전투 상황이 지나치게 급박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무언가 타이밍이 어긋났다는 설[4] 등이 제기되고 있지만 추정일 뿐이다.

사실 강유의 입지 자체가 단곡 패배 이후 약화되어 위장군 행대장군사로 스스로 강등되고, 또 진지와의 양분 체계에 따라서 실질적인 권력은 진지가 앞섰다. 그렇기에 강유의 권한이 상당히 약화되었던 것이 당시 상황으로 설령 호제 잘못이라도 강유에게 즉결처분 권한도 없었다 보는 것도 합리적이다. 그리고 저 때면 진지- 황호 시대고 강유의 결정이 사실상 진지(황호)->유선의 결재를 받아야 할 수 있는데...강유가 책임을 지우려 해도 진지[5]가 태클걸면 그냥 강유는 닭 쫓던 개 꼴이 되어버린다.

258년에는 독한중으로 지낼 때 강유의 지시로 한수까지 물러났으며, 호제 이외에도 강유는 감군 왕함, 호군 장빈 등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정사 쪽의 기록만 볼 때 호제는 평가를 내리기가 상당히 어려운 무장이다. 촉 자체가 기록이 부족한 무장이 많다지만 호제는 그걸 감안하고도 참으로 애매하다. 차라리 진도처럼 아예 기록이 없다시피 했으면 '기록은 없지만 관직을 보아 능력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 추론이라도 가능했겠지만 호제는 사실상 주로 다뤄지는 내용이 강유의 패전에 대한 내용이다 보니 더더욱 그렇다.

3. 연의

여기에서는 2명이 한 사람으로 합쳐졌다. 우표기장군 호제가 했듯이 제갈량의 북벌에도 참가하며, 진서대장군 호제가 한 것처럼 강유의 북벌에도 참가해 한수성을 지킨다. 후에 종회에게 양평관이 함락되자 구원군을 청하기 위해 성도로 향한다.

4. 동일인? 동명이인?

4.1. 동일인이라고 보는 입장

영문 위키디피아, 일문, 중문 위키디피아, 바이두에서는 모두 동일인으로 보고있다.
256년까지 진서대장군, 256년 이후로 우표기장군을 맡았다고 보는듯. 애초에 우표기장군과 진서대장군이 그렇게 직급이 차이나는 계급이 아닌지라 충분히 고과에 따라 승진, 강등이 가능한 계급이다.

4.2. 동명 이인이라고 보는 입장

전(傳)을 남기지 못 해 서술이 흩어져 있어 명확히 동일인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동화전> 등에 기술된 호제와 <강유전> 등에 기술된 호제의 주된 활동 시기가 떨어져 있다고 해도, 촉의 다른 후기 장수들 역시 제갈량 북벌 시기에 활동했던 이들이 많았던 것을 감안하면 보통 동일인으로 보는 것이 맞다. 그런데도 호제를 동명이인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화양국지의 다음 기술이다.
"十一年, 鎭北將軍王平卒. 以中監軍胡濟爲驃騎將軍, 假節, 領兗州刺史, 代平督漢中事."
"(연희) 11년(248년), 진북장군 왕평이 죽었다. 중감군 호제를 표기장군, 가절, 영 연주자사로 삼아 왕평을 대신해 한중의 일을 감독(독한중)하게 했다." (화양국지 유후주지)

호제가 이미 248년에 군 최고위직급인 표기장군이 되었다면, 256년 단곡 전투 때 진서(대)장군이라는 더 낮은 직급을 가지고 있을 확률은 적다. 그런데 심지어 저 내용을 기술한 화양국지조차 별다른 언급 없이 256년 시점에서 진서대장군 호제라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동화전> 주석에 나열된 호제의 직책 중에 진서(대)장군은 없다. 때문에 둘을 동명이인으로 보는 분석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단, <동화전> 주석에서는 호제가 맡은 직책들을 나열할 때 가절, 연주자사 전에 표기장군이 아닌 전장군이 기술되어 있으며, 우표기장군이 되었다는 기술은 나중에 나온다. 기술순서를 감안하여 화양국지의 표기장군 기술을 시기를 앞서 적은 오기로 보고, <동화전> 주석 서술에서 최종직책인 우표기장군을 서술하느라 진서대장군 직이 빠졌다고 보면, 동일인인 호제가 전장군, 진서대장군을 거치는 과정에서 독한중 직도 맡고 나중에 우표기장군에 이르렀다고도 설명할 수 있다. 촉의 부실한 기록 때문에 논란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을 듯.

5. 미디어 믹스

5.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300.jpg
삼국지 12, 13, 14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도 역시 동일인으로 출연한다. 일러스트는 무관같이 생겨놓고 막상 능력치는 문관형. 원래 생몰년 미상이지만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207(생년) ~ 264(몰년)로 설정되어 있다. 삼국지 8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3/무력 45/지력 70/정치력 72의 문관. 투석, 덫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58/무력 42/지력 68/정치력 72/매력 66 에 특기는 치안, 화시, 지리로 겨우 3개 밖에 없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57/무력 39/지력 68/정치력 72/매력 65이며 특기는 없다. 촉 후반부~극후반기 장수이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일단 호제가 나올 당시의 촉나라의 인재 상황은 극히 좋지 않기 때문에 이 정도의 인재는 쓰일 수밖에 없다.

삼국지 12에서는 통솔력 57/무력 39/지력 68/정치력 72의 능력치이며, 전법은 창방어강화.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전작과 같으며 특기는 농업 1, 설파 1. 전수특기는 농업으로 전법은 수비명령이다. 그런데 무력 39 주제에 무관이어서 일기토에 잘 휘말린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58, 무력 40, 지력 68, 정치력 72, 매력 66으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과 무력이 각각 1 상승했다. 개성은 동지, 우유, 주의는 왕도, 정책은 화계연구 Lv 3, 진형은 안행, 방원, 전법은 분전, 업화, 저지, 친애무장은 동윤, 비의, 혐오무장은 없다.

5.2. 진삼국무쌍 시리즈

진삼국무쌍 BLAST 등장인물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border:0px solid; margin:-11px; margin-top:-8px; margin-bottom:-6px"
SR 하후돈, 곽가, 장료, 견희, 순욱(SR), 조비, 조조, 왕이, 문빙(낭아봉)(SR), 조인, 가후, 장합, 만총(요필)(SR), 악진
R 순욱(장검), 조홍(쌍월), 만총(타구곤), 문빙(언월도), 변씨(피리), 문흠(극), 화타(구조), 하후희(위복장)(피리), 조절(권), 장창포(피리), 조모(쌍인검), 조식(비연검), 최씨(양인창)
N 조휴(화염궁), 조진(폭탄), 왕랑(쌍인검), 조아(순패검), 주령(장검), 관구검(쌍월), 조상(폭탄), 하안(타구곤), 왕경(비연검), 마준(신세검)
SR 육손, 주연, 손상향, 감녕, 손책, 태사자, 손권(도), 정봉, 보연사(노), 대교, 소교(철선), 여몽, 능통, 주환(SR)(극)
R 서성(극), 서씨(피리), 손익(극), 오국태(쌍두추), 정보(쌍모), 주환(용창), 장흠(쇄분동), 고옹(비연검), 능조(극), 유씨(권), 주이(용창), 손노반(쌍두추), 제갈근(비연검), 육항(비연검), 손노육(적), 보천(비연검)
N 우번(도), 여대(도), 하제(선곤), 원희(권), 주치(극), 제갈각(비연검)
SR 조운, 관우, 장포, 관은병, 장성채, 마대, 유선, 관색(양절곤), 유비, 장비, 하후희(SR)(쌍선), 강유, 마초, 제갈량
R 주창(귀신수갑), 하후희(촉복장)(피리), 엄안(박도), 왕평(양인창), 제갈씨(순패검), 왕도(양인창), 미당(쌍모), 호제(용창), 왕열(쌍두추), 비의(비연검), 마량(비연검), 마속(비연검), 이씨(쌍두추), 요화(R)(열격도)
N 간옹(구조), 부사인(신세검), 요화(열격도), 미방(쌍검), 습씨(십자극), 장익(순패검), 황호(비연검)
SR 사마소, 왕원희, 종회, 문앙, 사마의, 사마사, 가충, 하후패, 제갈탄, 등애(나선창)
R 호열(극), 장반(비연검), 초이(극), 문호(용창), 신헌영(순패검), 가남풍(구조), 양호(구조), 두예(비연검)
N 신창(비연검)
여포 SR 여포, 여령기, 초선, 장료, 장패(언월도)(SR)
R 고순(박도)
N 장패(언월도)
원소 SR 원소
R 안량(연인자), 문추(아벽)
N 없음
SR 수경선생(SR), 호로(ホロウ)(총), 옥새, 잔다르크, 번옥봉(SR)(인노), 소마(금쇄봉), 동탁, 맹획, 동백(단철편)(SR), 아르나스
R 수경선생(R), 화웅(극), 우길(폭탄), 기령(쌍모), 화만(귀신수갑), 하태후(구조), 번옥봉(권), 풍씨(권), 마등(극), 한수(쌍월)
N 동백(십자극), 곽사(극), 황조(아벽), 이각(박도), 수경선생(쌍검), 유표(구조),
엄백호(쇄분동), 왕윤(비연검), 원술(신세검), 장수(비연검), 추씨(피리), 장로(도)
}}}}}}||

파일:external/vignette2.wikia.nocookie.net/Hu_Ji_%28DWB%29.png

진삼국무쌍 BLAST에서 요화, 왕평, 장익, 미당(?)에 이어서 쟁쟁한 후기 무장들을 제치고 참전. 미남형으로 나왔으며 관련 스토리가 없어서 연의 기반의 동일인인지 정사 기반의 동명이인인지는 불명. 지도를 보고 해메는 표정을 짓는걸로 보아 기반 스토리는 호제가 제때 지원을 가지 않아 강유가 대패한 단곡전투가 배경인 듯하다.

5.3. 영걸전 시리즈

파일:The Legend of Cao Cao Hu Ji.png

삼국지조조전 Online에서는 강유전 스토리에서 등장해 강유가 북벌을 위해 도움을 요청하러 찾아와 자신이 기산에서 진태를 유인하는 동안 상규로 출병해 함께 상규에서 협공하자고 한다. 그러나 호제는 문관이 강유의 계획을 따르면 공이 미미할 것이라면서 둘이 싸워서 지치는 틈을 타 공격하면 큰 공을 세울 수 있다고 하자 그러기로 하는데, 결국 강유가 소모전만 벌이다가 단곡에서 패하는 바람에 호제는 출병하지 않았다.

5.4. 삼국전투기

닭치高의 등장인물로 등장하였다. 시크릿 에이전트랍시고 얼굴 전체가 까만 색이었는데, 강유에게 혼날 때는 까만 색이 사라지고 닭치고의 등장인물처럼 닭벼슬이 있고 코에 콧물을 칠한 분장을 하고 있다. 처음 등장한 고관 전투 (4)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으며, 소개컷에서는 사실 호제가 한 사람이 아니라는 설도 있지만 쪼개 놔도 딱히 행보가 명확해지는 건 아니라 편하게 한 명으로 생각하자고 서술되어 있다.

고관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당시 진서대장군으로 한중에 남아 있었으며 강유의 서신을 받고 연계 작전을 계획한다. 강유가 등애를 무성산에서 잡아 두는 동안 텅 빈 상규를 호제가 공격하는 나름 제대로 된 계획이었으나[6] 아무리 기다려도 호제는 오지 않았다. 강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접 상규로 향했으나 역시 호제는 없었고, 결국 강유는 퇴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필 이걸 위군이 제대로 노리면서 결국 단곡에서 강유군이 대패한 것으로 묘사됐다. 따지고 보면 호제 때문에 모든 일을 그르친 셈이지만 호제는 시크릿 에이전트라 패전에 대한 징계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1] <후주전>에서는 진서장군, <강유전>과 <화양국지>에서는 진서대장군 [2] 다만 대장군을 대리하는 군사 겸 후장군이라는 관직에서 알 수 있듯 실질적으로 강유가 하는 일은 비슷했다. 실제로 262년 후화 전투까지도 군사적 북벌 권한은 강유가 쥐고 있었다. 물론 현대로 치면 4성장군이 2성장군으로 내려간 셈이라 꽤 큰 결단인 것은 맞다. [3] 만일 이런 케이스였다면 호제의 죄질은 마속, 이엄 못지 않다. 웬만한 빽이 있었다고 해도 도저히 무사히 넘어가기는 어렵다. [4] 강유의 주둔지와 호제의 주둔지는 수백km나 떨어져 있었다. 단곡 전투 같은 급박한 상황 속에서는 호제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상황이 꼬이는 게 이상하지 않다. [5] 혹은 그와 친했던 황호다. [6] 상규를 눈 뜨고 뺏길 수는 없으니 필연적으로 등애는 상규로 향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등애가 상규로 향하면 강유가 예정대로 움직일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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