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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스페인의 방송국 안테나3가 스페인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스페인인 100명'을 선정 | ||||||||
TOP 10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후안 카를로스 1세 | 미겔 데 세르반테스 |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그리스와 덴마크의 소피아 | 아돌포 수아레스 |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 | 펠리페 6세 | 파블로 피카소 | 예수의 테레사 | 펠리페 곤살레스 | |||||
11위~100위 | |||||||||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이사벨 1세 | 세베로 오초아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 호세 사파테로 |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 | |||||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살바도르 달리 | 안토니오 가우디 | 엘 시드 | 알폰소 10세 | 페르난도 알론소 | |||||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프란시스코 데 고야 | 프란시스코 프랑코 | 안토니오 마차도 | 미겔 인두리안 | 미카엘 세르베투스 | |||||
26위 | 27위 | 28위 | 29위 | 30위 | |||||
로라 플로레스 | 펠리페 2세 | 카를로스 1세 | 로시오 주라도 | 그레고리오 마라뇬 | |||||
31위 | 32위 | 33위 | 34위 | 35위 | |||||
디에고 벨라스케스 | 이사벨 판토하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 미겔 데 우나무노 |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 |||||
36위 | 37위 | 38위 | 39위 | 40위 | |||||
비센테 페레르 | 카밀로 호세 셀라 | 페드로 두케 | 다니 페드로사 | 파우 가솔 | |||||
41위 | 42위 | 43위 | 44위 | 45위 | |||||
다비드 비스발 | 라파엘 나달 | 카마롱 데 라 이슬라 | 아스투리아스의 펠라기우스 | 후안 라몬 히메네스 | |||||
46위 | 47위 | 48위 | 49위 | 50위 | |||||
산티아고 카리요 | 안토니오 반데라스 | 이냐시오 데 로욜라 | 페드로 알모도바르 | 후안 세바스티안 데 엘카노 | |||||
51위 | 52위 | 53위 | 54위 | 55위 | |||||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 미겔 에르난데스 | 후안 마누엘 세라 | 로페 데 베가 | 엘 그레코 | |||||
56위 | 57위 | 58위 | 59위 | 60위 | |||||
아구스티나 데 아라곤 | 호아킨 사비나 | 로살리아 데 카스트로 | 앙헬 니에토 | 마누엘 아사냐 | |||||
61위 | 62위 | 63위 | 64위 | 65위 | |||||
조르디 푸졸 |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 | 알레한드로 산스 |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 에르난 코르테스 | |||||
66위 | 67위 | 68위 | 69위 | 70위 | |||||
카를로스 사인츠 | 파퀴리 | 텔모 사라 | 몽세라 카바예 | 마누엘 데 파야 | |||||
71위 | 72위 | 73위 | 74위 | 75위 | |||||
이삭 페랄 | 플라시도 도밍고 | 미겔 길라 | 루이스 부뉴엘 | 엘 코르도베스 | |||||
76위 | 77위 | 78위 | 79위 | 80위 | |||||
프란시스코 피사로 | 마리아노 바울바시드 | 라울 곤살레스 |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 프란시스코 페르난데스 오초아 | |||||
81위 | 82위 | 83위 | 84위 | 85위 | |||||
아만시오 오르테가 | 마놀레테 | 에두아르도 칠리다 | 페란 아드리아 | 아란차 산체스 비카리오 | |||||
86위 | 87위 | 88위 | 89위 | 90위 | |||||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 호아킨 로드리고 | 에밀리오 보틴 |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 프란시스코 헨토 | |||||
91위 | 92위 | 93위 | 94위 | 95위 | |||||
세바 바예스테레스 | 이삭 알베니스 | 페데리코 바하몬테스 | 부에나벤투라 두루티 | 카르멘 아마야 | |||||
96위 | 97위 | 98위 | 99위 | 100위 | |||||
빈센트 블라스코 이바네스 | 마누엘 산타나 | 알리시아 코플로비츠 | 안토니오 루이스 솔러 | 자코네로 | |||||
※ 출처 | |||||||||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colbgcolor=#000><colcolor=#fff>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José Ortega y Gasset |
|
출생 | 1883년 5월 9일 |
스페인 왕국 마드리드 | |
사망 | 1955년 10월 18일 (향년 72세) |
스페인국 마드리드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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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철학자, 문화비평가 |
학력 |
데우스토 대학교 (중퇴)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 ( 철학 / 학사,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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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의 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 스페인 실존주의 철학자로 분류되기도 한다. 철학자는 자신의 실존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데서 출발하여 자기 자신과 싸우며 자기 자신에 몰두한 채 살아가는 형이상학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전적으로 비실용적이지만, 과학과 달리 대중의 보호와 관심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종속에서 자유로운 것이라고 한다.[1] 철학의 지배를 위해서는 철학이 존재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한다.2. 생애
마드리드의 언론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소설가이자 엘 임파르시알의 언론가였으며 모친은 스페인 유명 일간지 설립자의 자녀였다.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1904년 <천년의 공포>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졸업 이후 1905년 독일로 건너가 라이프치히, 뉘른베르크, 뮌헨, 베를린, 마르부르크 등을 돌아다니며 게오르크 지멜, 빌헬름 분트, 신칸트주의 학자인 파울 나토르프와 헤르만 코헨 등의 밑에서 수행을 거쳤다.
1908년 귀국하여 마드리드고등사범학교에서 잠시 몸을 담은 뒤 1910년 모교인 마드리드 콜름루텐세 대학교에 돌아와 철학부 정교수로 임명되어 형이상학을 가르쳤으며 신칸트주의와는 결별했다.
스페인에 자유화 및 근대화의 물결을 주도한 1914세대를 이끌었으며 방대한 저술 활동을 통해 스페인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떠오르며 스페인 제2공화국 시대 문학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1917년부터 엘 솔에 기고문을 올리며 인지도를 높히기 시작했으며 특히 1930년작 <대중의 반역>이 유럽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931년에는 스페인 제2공화국 제헌의회 대이사로 선출되었으나, 스페인 정치에 염증을 느끼며 물러났다.
이후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1936년부터 1942년까지 아르헨티나로 망명을 갔다 포르투갈, 프랑스, 네덜란드 등을 떠돈 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5년에서야 귀국했다.
1948년 인문학연구소(Instituto de Humanidades)를 설립해 자국의 인문학 발전을 위해 힘썼다.
3. 주요 저서
- 돈키호테에 관한 명상(1914)
- 신구정치(1914)
- 척추 없는 스페인(1921)
- 예술의 비인간화(1925)
- 대중의 반역(1930)[2]
- 갈릴레오에 관하여(1933)
- 체계로서의 역사(1941)
- 인간과 사람들(1950)
- 보편사의 해석(1960)
4. 어록
아! 세르반테스의 문체가 어떤 것이며, 사물에 접하는 그의 방식이 어떠한 것이지 분명히 알 수 있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얻을 텐데. 언제가 될 것인지는 몰라도 만일 누군가 와서 세르반테스가 지니고 있는 문체의 신비로움을 폭로해 낸다면, 그래서 그 사실이 다른 여러 문제들로 연계되어 간다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새로운 삶으로 깨어날 수 있을 텐데! 「돈키호테에 관한 명상 Meditaciones del Quijote」 |
파시즘은 수수께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절묘한 힘의 균형을 본다. 파시즘은 권위주의를 주장하는 한편 반역을 조직한다. 오늘날의 민주주의에 맞서 싸우면서도, 과거 지배 체계의 복권을 옹호하지 않는다. 강국의 주조자(鑄造者)를 자처하는 듯하나, 그 수단이 도리어 국가 와해를 촉진하므로, 파괴적 당파나 비밀 결사에 견줄 만하다.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건, 파시즘은 어떤 것이면서 동시에 그와 반대되는 것이며,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니다… 「파시즘에 관하여 Sobre el Fascismo」 |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오늘날 유럽의 사회생활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는 대중이 완전한 사회세력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대중은 개념상 사회를 통치할 수 없음은 물론,
자신의 실존도 조율할 수 없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유럽이 이제 어느 민족이나 국가, 어느 문화도 겪어보지 못한 가장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3] 「대중의 반역 La rebelión de las masas 中 1장」 |
사회는 언제나 소수와 대중이라는 두 요소로 구성된 역동적 통일체다. 소수는 특별한 자격을 갖춘 개인이거나 개인들의 집단이고, 대중은 그런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집합이다. 대중이란 평균인이다. 「대중의 반역 La rebelión de las masas 中 1장」 |
인간을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분류한다면, 틀림없이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자신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스스로 어려움과 부담을 누적시키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에게 아무런 부담도 지우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산다는 것이 매순간 물결을 따라 표류하려는 부표 같은 것이어서, 그들은 완전해지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다. 「대중의 반역 La rebelión de las masas 中 1장」 |
과거에 이상으로 간주된 것이라도 현실의 일부로 바뀌면, 불가피하게 더 이상 이상일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상의 속성이자 그것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인 위엄과 마력은 사라진다. 관대한 민주적 영감이 담긴 평등권들이 이제는 이상과 열망의 차원을 넘어 무의식적 욕구와 가정으로 바뀌었다.[4] 「대중의 반역 La rebelión de las masas 中 2장」 |
요컨대 우리 시대의 높이는 무엇인가? 어떤 표현이 적절할까? 이것은 어떨까? 다른 시대보다는 우월하지만 자기 자신보다는 열등하며, 매우 견고하면서도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는 불안해하고, 자신의 힘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그것을 두려워하는 시대라는 표현 말이다.[5] 「대중의 반역 La rebelión de las masas 中 3장」 |
구매 행위는 특정한 물건을 구입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종결되지만, 그에 앞서 선택 활동이 있고 이 선택은 시장이 제공하는 가능성을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러니까 구매 행위를 통해서 본다면, 삶이란 우선 이런 구매의 가능성으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삶을 얘기할 때는 흔히 이 점을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매우 본질적인 것인데, 우리의 삶이란 매순간 그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 앞에 다양한 출구가 놓여있다는 것이 우리 삶의 근본 조건이다.[6] 「대중의 반역 La rebelión de las masas 中 4장」 |
자신의 실존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취하고 그에 대해 충분한 책임을 지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끊임없이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불확실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7] 「대중의 반역 La rebelión de las masas 中 4장」 |
우리 시대는 대중이 지배하고 대중이 선택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와 보통선거 시대에 이미 일어난 일이라고 말하지 마라. 보통선거는 대중이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다. 대중의 역할은 이런저런
소수파의 결정에 찬동하는 것이었을 뿐이다. 오늘날에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중의 승리가 가장 진척된 국가들의 공적인 삶을 관찰할 경우, 우리는 정치적으로 무계획적인 하루살이 삶을 살고 있음에 놀라게 된다. 「대중의 반역 La rebelión de las masas 中 5장」 |
19세기의 새로운 세계에서는 자유민주주의와 과학기술이라는 원리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어떤 것도 19세기에 발명된 것은 아니며 그 이전 두 세기에 걸쳐 계승되어온 것이다. 19세기의 영예는 이 원리들을 발명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퍼뜨린 데 있다. 「대중의 반역 La rebelión de las masas 中 6장」 |
타인의 우월성에 대한 인식은 자신보다 더 강한 자가 욕망을 단념케 하거나 축소하고 제한할 때 비로소 주어지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나는 여기서 끝나고 이제부터는 나보다 강한 사람이 시작한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나 자신과 나보다 우수한 타인이다."라는 기본 원칙을 배우게 된다. 「대중의 반역 La rebelión de las masas 中 6장」 |
우수한 인간은 자신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데 반해, 평범한 인간은 뭔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기뻐하고 자신에게 만족한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반대로 봉사의 삶을 사는 사람은 대중이 아니라 우수한 인간이다. 우수한 인간은 어떤 탁월한 것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지 않을 경우 그 삶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고귀함은 요구와 의무를 통해 드러난다. 제멋대로 사는 것은 평민의 삶이고 귀족은 질서와 법을 동경한다. 귀족의 특권은 본래 양도나 은혜로 유지된 것이 아니라 획득된 것이다. 그리고 특권을 지닌 사람은 특권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면 그리고 누군가 그 특권을 문제시한다면 언제나 그것들을 다시 쟁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8] 「대중의 반역 La rebelión de las masas 中 7장」 |
많은 독자들이 나와 동일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것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내 논지를 뒷받침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왜나하면 설령 내 의견이 결정적으로 잘못되었자고 할지라도 나와 견해을 달이하는 독자들 대부분이 이토록 복잡한 문제를 5분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기 때문이다.[9][10] 「대중의 반역 La rebelión de las masas 中 8장」 |
오늘날 우리가 판단컨대 그들(문명의 원리에 관심이 없는 상태로 사회주도권을 장악한 사람들)은 이런저런 원리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예 아무 원리에 관심이 없다. 물론 마취제와 자동차를 비롯한 몇 가지에 관심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는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무관심을 확인해주는 것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단지 문명의 산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열중하면 할수록, 그것을 낳은 문명의 원리에 대한 무감각은 더욱 두드러진다.[11] 「대중의 반역 La rebelión de las masas 中 9장」 |
문명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 생존하지도 않는다. 문명은 인위적이어서 예술가나 기술자를 필요로 한다. 만일 당신이 문명의 권리를 누리길 원하면서 그것을 유지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진절머리가 나게 될 것이다. 순식간에 문명이 없는 상태에 빠질 것이다. 대중은 자신이 그 안에서 태어나 활용하고 있는 문명이 자연처럼 자연발생적이고 원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12] 「대중의 반역 La rebelión de las masas 中 10장」 |
19세기 문명은 본질적으로 평균인이 재산의 과잉을 누릴 뿐 고뇌하지 않는 잉여의 세계 속에 살게 했다. 평균인은 훌륭한 도구와 좋은 약품, 선견지명이 있는 국가, 편리한 혜택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 도구와 약품을 발명하고 생산을 계속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모른다. 또한 국가 조직이 얼마나 불안정한지도 모르고 자신에게 어떤 책임이 있는지도 거의 깨닫지 못한다. 이런 불균형은 삶의 본질 자체와의 접촉을 방해하여 그를 근본적으로 훼손시킨다. 삶의 본질 그 자체와 접촉하지 않는 것이 위험 요소이자 문제의 근본이다.[13] 「대중의 반역 La rebelión de las masas 中 11장」 |
연구자들의 작업이 점차 전문화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물리학과 생물학의 역사를 훑어보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유용하고 흥미로울 것이다. 이는 과학자가 세대를 거듭할수록 점차 좁은 지적 활동 분야에 속박되고 제약된다는 것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즉 과학자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연구 영역을 좁히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분야의 과학이나 통합적 우주 해석과의 접촉을 점차 상실했다는 사실이다.[14] 「대중의 반역 La rebelión de las masas 中 12장」 |
전문가는 자신의 전문 영역과 무관한 것은 모르기 때문에 유식한 자도 아니고, 과학자로서의 미세한 전공 분야는 매우 잘 알기 때문에 무식한 자도 아니다. 우리는 그를 무식한
식자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이는 매우 중대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모르는 모든 분야에 대해 무식한 자로 처신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처럼 유식한 자의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 「대중의 반역 La rebelión de las masas 中 12장」 |
대중은 지도되고 영향받고 대표되고 조직되기 위해, 심지어는 대중이기를 포기하거나 이를 열망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 그 모든 일을 몸소 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대중은 자신의 삶은 우수한 소수로 구성된 상층 권위에 맡길 필요가 있다.[15] 「대중의 반역 La rebelión de las masas 中 13장」 |
대중은 어떤 불행을 느끼거나 혹은 단순히 어떤 강한 욕망을 느낄 때, 단추를 눌러 엄청난 기계를 작동시키기만 하면 아무런 노력이나 투쟁, 의심이나 위험도 없이 모든 것을 영원하고도 안전하게 획득할 수 있다는 커다란 유혹에 빠진다. 대중은 "내가 곧 국가다."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완전한 착각이다. 「대중의 반역 La rebelión de las masas 中 13장」 |
지배는 정상적인 권위 행사다. 그것은 언제나 여론에 기초한다. 오늘이나 1만 년 전이나, 영국인이나 부쉬맨이나 항상 마찬가지다.[16] 「대중의 반역 La rebelión de las masas 中 14장」 |
창조적인 삶은 정력적인 삶이고 정력적인 삶이란 다음 둘 중 한 상황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곧 지배자이든지 아니면 지배의 전권을 인정받은 사람이 지배하는 세계에 살든지. 다시 말해서 지배하거나 복종하거나 둘 중 하나다. 여기서 복종한다는 것은 잠자코 지내는 것이 아니고 그와 반대로 지배자를 존중하고 그를 추종하며 그와 연대 책임을 지고 그의 깃발 아래 열정적으로 동참하는 것이다. 「대중의 반역 La rebelión de las masas 中 14장」 |
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물질적 속성[17]에 기초를 둔 것처럼 보인 단일한 공동생활[18]이 바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매순간마다 물질적 단일성의 원리처럼 보이는 것을 극복하고 있는 과정임을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이 도달해야 할 목표이자 진정한 국가다. 진정한 국가의 단일성은 바로 주어진 단일성 일체를 극복하는 데 있다. 「대중의 반역 La rebelión de las masas 中 14장」 |
대중은 단지 도덕을 갖고 있지 않을 뿐이다. 여기서 도덕이란 언제나 본질적으로 어떤 것에 대한 복종의 감정이고 봉사와 의무에 대한 인식이다. 「대중의 반역 La rebelión de las masas 中 15장」 |
5. 여담
- 미국의 잡지 <Atlantic Monthly>로부터 장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18세기를 대변하고,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19세기를 대변한다면,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대중의 반역>이 20세기를 대변할 것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실제적으로는 비교된 인물들의 저서만큼 세기를 풍미할 정도의 반향은 이끌지 못했으나, 해외의 여러 사상연구가들에 의해 번역 및 수정 작업을 거친 이후 오히려 21세기에 들어서 인지도를 차근차근 쌓아 나가며 뒤늦게 역주행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다.
[1]
이로 인해 대중이 과학으로 인해 엄청난 혜택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무관심을 보이는 것은 야만적 행위에 가까우며 감사의 마음이 결여되어있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2]
1929년부터 일간지 엘 솔에 기고했던 글을 단행본으로 엮어 출간했다. 교통과 통신 등의 발달로 인해
대중이 양지로 출현하여 지배력을 행사함에 따라 과대민주주의가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이 책의 근본 화두가 된다. 사회는 당시대의
선택된 소수와 대중이 세대를 거듭하며 엮어내는 역동적 조합이기에 이들이 각자의 정체성을 깨달아 참된 도덕을 회복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진정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엘리트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3]
본래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법에 대한 정열로 넘치며 발전했는데, 대중이 양지화되면서 상대적으로 완전해지려는 노력을 많이 기울이는 소수로부터 권력을 일부 가져오며 과대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고대 로마에서 대중이 소수의 지배자들의 자리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기술이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 못한 뒤 군중의 충만 현상이 일어나 인구 문제를 겪으며 멸망했다고 주장하며 이를 예시로 든다.
[4]
대중이 권력을 일부 이양받으며 벌어진 결과의 한계를 나타냄으로서 미래사회에 새로운 길을 제시해줄 수 있는 것은 대중이 아닌 능동적 소수이며 대중은 이를 따르는 것이 참된 길임을 역설한다. 단순히 수가 많다고 대중이 아니라 소극적이기 때문에 대중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5]
통상적으로 대부분의 시대는 자신들의 시대가 옛 시대보다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며 과거와 현재를 분리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가 활동하던 20세기 초반 당시에도 19세기를 최후의 절정으로 여기며 만족과 성취, 소망이 죽어가는 세태를 느꼈다고 한다. 절대적인 몰락은 오직 생명력의 감소에서만 비롯되는 것이기에 이러한 주장은 판단력을 흐리고 시야를 좁게 만들어 스스로를 감옥에 박는 것에 불과하니,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불확실성을 인정하며 미래를 꿈꾸는 태도로 극복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결정론자와 회의론자들에 대한 정면적 비판이라고 볼 수 있겠다.
[6]
특히 여러 상황에 있어서 구체적인 형태를 취해야 높은 형태의 잠재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충고한다.
아이작 뉴턴의 세계는 무한하지만 추상적이기에 덧없는 유토피아라고 묘사한 반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세계는 유한함에도 모든 부분들이 충만하고 구체적이기에 더욱 풍부하고 확장된 세계라며 비교한다. 즉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뉴튼조차 비판해가며 폭 넓고 구체적인 선택을 취하지 않는다면
지식인의 길을 걷긴 힘들다는 뉘앙스로 저술하고 있는 것이다. 유희와 지식 등이 매우 세분화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조차 대중처럼 톱니바퀴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 되고 있는 21세기에도 정확히 통용될 수 있는 발언이다.
[7]
실존주의 철학과 굉장히 맞닿아 있는 발언이다. 3장에서 상술했듯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태도는 개인을 소수의
지식인으로 거듭나게 해주는 길 중 하나라며 긍정적으로 언급했다.
[8]
즉 여기서 귀족이란 자연발생적으로 세습되며 자녀가 은혜적으로 갖추게된 고귀함과 명성 등을 칭하는 단어가 아니다.
고대 로마 시절 몰락한 세습귀족에 대한 반대의 의미로 사용된 공식적인 언어로 오히려 이번 저작에서 내내 대중과 대비시키며 거듭 강조하는 지식인의 군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지식인은 전통적 의미의 세습귀족이 아니기 때문에 대중도 능동적인 사고를 통해 탁월한 무언가를 위해 본인의 삶을 바치는 태도를 취함으로서 충분히 지식인 계층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9]
대중의 반란은 지적으로 닫혀있는 태도를 유지하며 안주하는 평균인들의 폐쇄성에 의해 기인하며, 이는 인류가 당면한 거대한 문제라는 주장을 펼친다. 현대의 대중은 과거의 대중보다는 상대적으로 많은 지적 능력을 갖고 있으나, 허영심을 가지고 눈과 귀를 닫으며 본인이 완벽하다는 허구적인 생각을 통해 여러 건해에 대해 의심하기를 포기한다. 이런 사고관으로 인해 이들이 얻은 지적 능력은 효력을 잃으며 아무 쓸모가 없어진다고 언급한다.
[10]
이렇게 과대민주주의가 정상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결과 문명은 교양을 잃고 반대세력은 전부 전멸시켜야된다는 명문 하에
생디칼리슴과
파시즘 등의 사탕과도 같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반면 문명은 공동생활을 위해 타인을 고려하라는 기본적인 욕망의 전제 하에 창조되었으며 정치적으로 이러한 의지가 가장 강하게 표현된 형태는 자유민주주의라며 이를 최상의 관대한 제도로 칭송한다.
[11]
문명의 인위성을 알지 못하며 마취제와 자동차 같은 문명의 산물에만 관심을 갖게된 나머지, 정작 문명의 원리성에 보다 가까운 자연과학 분야 종사자 비율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감소하고 있는 세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응용과학을 낳은 자연과학이 도태될 경우 응용과학도 결국에는 퇴보의 길을 걷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과학자들도 오늘날 과학이 당면한 심각한 위험에 대해 전혀 의심하고 있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12]
과거를 망각한 채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역사를 공부하되 과거에 얽매이지는 말라고 조언한다. 볼셰비즘과 파시즘을 실패한 과거 재탕이라고 비판하며 언급하는 내용이다.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헤겔의
변증법적 접근법을 상당히 차용한 듯한 면모를 보인다.
[13]
이 과정에서
민족주의는 자만에 빠진 철부지와도 같기에 어리석다고 비판하며 자유로운 사고를 통해 실제적인 부분에만 매몰되는 삶을 빠져나라고 촉구한다. 실제적인 부분에만 집중하는 예시로는 삶의 주된 관심을 종교, 놀이, 스포츠, 건강 등에 두는 사람, 선민적이고 자유토론보다는 절대적 권위에 기대는 사람 등이 있다.
[14]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유럽인들이 당시 시대정신을 대표하고 정점에 위치한 과학자를 일반화시킨 결과, 대를 거듭할수록 과학이 전문화됨으로 인해 통합적인 교양을 상실하고, 전문 분야에 해당되는 좁은 분야만 아는 과학자가 대중의 원형이 되었다는 환원론적 분석을 냈다. 이런 새로운 유형의 과학자들은 특정 분야 내에서조차 자신이 직접 연구자로 참여하는 좁은 분야만 제대로 아는 것을 미덕이라 여기고, 지식 전반에 대한 욕망은 딜레탕티즘이라고 부른다며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15]
상층 권위자인 지식인으로 거듭날 것이 아닌 이상 대중이 독단적인 행동을 시도하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는 일이며 이는 곧 대중의 반역이다. 대중이 활개치며 독자적으로 행동할 때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사적 폭력이라는 유일한 방법을 사용하는데, 익명의 대중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촉발된 삶의 국유화와 국가 개입주의 등에 의해 정당화되는
사형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16]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서유럽 주도의 지배가 깨졌다는 인식이 팽배하여 어린아이와 같이 기뻐하며 이를 조롱하는 세태가 만연해졌고 오르테가 이 가세트 또한 지난 3세기 동안 유럽이 세계를 지배해왔으나, 이제는 지배하고 있지도 않고 계속 지배할 것 같지 않다고 언급하지만, 정작 지금까지 유럽이 만들어낸 규범을 대체하며 새로운 지배를 보여줄 문명이 없다는 점을 역설한다. 이 경우 역사의 위장 현상과 같이 난폭한 실체를 가리고 속임수를 쓰는 사례가 자연스럽데 나타나기 마련인데,
소련과
미국을 대표적 예시로 들었다. 소련의 경우 서유럽에서 형성된
마르크스주의를 장막처럼 소비하여 본인들만의 계명이 없으며, 마찬가지로 유럽의 기술로 장막을 썼기에 사실 그들 문명이 단순하게 회춘한 것에 불과한 원시 민족 미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17]
혈연과 인종, 언어, 국경 등.
[18]
미래에 무언가를 공동으로 하겠다는 의지이자 순수한 동력 그 자체. 즉 물질적 속성이 국가를 만든 게 아니라 단지 선행하는 정치적 통일의 결과이자 외견상의 연결에 불과한다고 본다. 따라서 단일한 공동생활은 물질적 속성을 거스른 채로 민족과 계급 등을 무한히 융합시키며 광범위한 통일을 이끌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근원적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국민투표도 사실은 민주주의의 본질이 아니라 물질적 속성이라고 따져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