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철학사 근대 철학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wiki style="margin:-16px -11px;" | <tablewidth=100%> 고대 철학 | 중세 철학 | 근대 철학 | 현대 철학 | }}} | |||
<colbgcolor=#545454><colcolor=#ffffff> 16-18세기 | |||||||||
에라스뮈스 · 모어 · 마키아벨리 · 몽테뉴 · 브루노 | |||||||||
합리주의 | · 스피노자 · 말브랑슈 · 라이프니츠 | ||||||||
경험주의 | 베이컨 · 홉스 · 로크 · 버클리 · 흄 | ||||||||
계몽주의 | 몽테스키외 · 볼테르 · 루소 · 디드로 · 엘베시우스 | ||||||||
칸트 / 신칸트주의 | |||||||||
19세기 | |||||||||
피히테 · 셸링 / 낭만주의: 헤르더 · 슐라이어마허 / 초월주의(미국): 에머슨 · 소로 | |||||||||
헤겔 / 청년 헤겔학파: 포이어바흐 · 슈티르너 | |||||||||
공리주의 | 벤담 · 밀 | ||||||||
실증주의 | 콩트 · 마흐 / 사회학: 뒤르켐 · 베버 | ||||||||
사회주의 | 아나키즘: 프루동 · 바쿠닌 · 크로포트킨 | ||||||||
마르크스주의: · 엥겔스 | |||||||||
키르케고르 · 쇼펜하우어 · 딜타이 · 베르그송 | |||||||||
니체 |
[clearfix]
1. 개요
Neo-Kantianism | Neukantianismus19세기 중반부터 유행한 유물론에 반대하여, 관념론의 토대를 만든 칸트의 사상으로 회귀하는 것을 슬로건으로 삼은 사조.
2. 시초
헤르만 폰 헬름홀츠와 에두아르트 젤러의 작업에 덧붙여서 쿠노 피셔가 《유물론의 역사》라는 책을 써 대륙 관념론의 연장선으로서의 기계론적 유물론으로서 판단한 것이 그 단초가 된다.3. 영향
3.1. 한국에의 영향
일본의 학자 쿠와키 겐요쿠(1874~1946)의 기여로 일본에 칸트철학과 신칸트주의가 정착한 후, 1920년 6월 25일에 천도교 청년회 기관잡지로 발행된 《개벽》에서 신칸트주의를 적극 받아들였다.[1] 천도교의 지도자 이돈화는 "외래사상은 소화하는 주체의 능력에 따라 득실이 결정된다."라고 언급했을만큼 서양 사상을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었는데, 그러한 생각의 반영인지 《개벽》은 앙리 베르그송을 필두로 하는 프랑스 철학과 니체, 칸트, 오이켄을 필두로 하는 독일철학을 적극 받아들여 소개했다.[2]4. 대표적인 학자
4.1. 마르부르크 학파
주로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활동했던 학자들이 중심이 되었으며, 일체의 형이상학적 토대에 기초하지 않은 순수한 인식론을 철학의 본질로 간주하고[3] 이를 구현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그밖에 니콜라이 하르트만, 마르틴 하이데거의 철학 사상에도 영향을 끼쳤다.4.2. 독일 서남부 학파 (바덴 학파)
주로 하이델베르크, 프라이부르크 등 독일 서남부 지역에서 활동했던 학자들이 중심이 되었으며, 기계론, 인과론에 바탕을 둔 자연과학적 방법론이 인간 및 정신의 영역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것에 반대하여 자연과학적 방법론과 구별되는 문화과학의 방법론을 구축하고자 했다.
[1]
20세기 서양 철학 및 사상이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데 다리 역할을 한 나라가
일본이다.
[2]
손유경. (2005). 《개벽》의 신칸트주의 수용 양상,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3]
때문에 이들은 칸트의 물자체(Ding an-sich) 개념에 대해서도 형이상학적 가설에 불과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4]
참고로 리케르트가 프라이부르크에서 하이델베르크로 옮겨갈 때 자신의 후임으로 지명한 사람이 바로
에드문트 후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