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d0000><colcolor=#fff> '''''' | |||
출생 | 1805년경 | ||
사망 | 1857년 3월 1일 (향년 52세) | ||
몰다비아 공국 이아시 | |||
재위 | 몰다비아 카이마캄 | ||
1856년 7월 20일 ~ 1857년 3월 1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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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d0000><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미상 어머니: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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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 발슈 가문 | ||
종교 | 기독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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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몰다비아 공국 카이마캄(Caimacam: 임시 통치자).2. 생애
몰다비아 공국의 보야르 가문 출신으로, 오스만 제국 궁정에 80,000 두카트에 달하는 공물을 바칠 것을 제안한 것이 먹히면서 그리고레 알렉산드루 기카가 물러난 직후인 1856년 7월 20일 몰다비아 공국의 카이마캄으로 부임했다. 그는 강력한 보수주의자로, 전임자의 자유주의 개혁 정책을 모조리 폐지했다. 그리고레 알렉산드루 기카가 선임한 주지사들을 모조리 해임하고 이아시 법학부를 폐지했으며, 검열 폐지 조치, 노조 합법화 정책도 모두 폐지했다. 여기에 더해, 전임 보이보드가 재정 낭비를 일삼았다고 비판하고, 조사위원회를 창설해 전임자의 횡령을 조사하도록 했다. 한편, 오스만 제국의 입장에 따라 몰다비아 공국과 왈라키아 공국의 연합 주장을 강력하게 반대했다.그러던 1857년 3월 1일, 테오도르 발슈가 이아시 궁정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 후 전임 몰다비아 보이보드 슈테판 보고리디의 아들이자 그와 함께 노조 합법화를 강력히 반대한 인사였던 니콜라에 보고리디가 새 카이마캄으로 부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