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5:19:56

크로아티아계 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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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이민사3. 유명 인물4. 관련 문서

1. 개요

영어: Croatian Americans
크로아티아어: Američki Hrvati

크로아티아계 미국인은 크로아티아인 출신 혹은 크로아티아 출신 이민자의 혈통을 이어받은 미국인을 의미한다. 유럽인들이 미국으로 이주가 활발하던 19세기 후반에는 크로아티아가 독립국이 아니었고, 크로아티아인들은 주로 독일계 미국인, 오스트리아계 미국인 혹은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2018년의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스스로 크로아티아계로 응답한 미국인은 407,466명이었다. 주미 크로아티아 대사관에서는 크로아티아계 미국인 인구를 120만여 명까지 추산하기도 한다. 크로아티아계 커뮤니티는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클리블랜드 , 뉴욕시, 피츠버그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크로아티아계 미국인은 세르비아계 미국인 보슈냐크계 미국인과도 밀접한 관계이다. 유럽 본토의 크로아티아인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내 크로아티아인 커뮤니티 역시 대개 가톨릭을 믿는다. 세르비아인들이 믿는 정교회 보슈냐크인들이 믿는 이슬람의 경우 미국에서 교세가 비교적 약한 관계로 세르비아계 미국인이나 보슈냐크계 미국인 중에서 개신교 등으로 갈아탄 경우도 적지는 않은 것과 대조적이다.

2. 이민사

1683년 크로아티아인 출신 예수회 회원 후안 라트가이(크로아티아어 이름은 이반 라트카이 / Ivan Ratkaj)가 오늘날 미국에 해당하는 누에바에스파냐 북부에서 선교 사업을 수행하였다. 1746년 또다른 예수회 회원인 콘사고 곤살레스(크로아티아어 이름은 페르디난드 콘사크 / Ferdinand Konšak)는 캘리포니아 일대로 파견되어 바하 칼리포르니아 반도 일대의 지도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예수회 회원들은 독신 수도자들이었고, 이들의 활동은 본격적인 크로아티아계 미국인 커뮤니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근세 종교개혁 시대에는 체코 및 헝가리와 마찬가지로 크로아티아인 중에서도 개신교로 개종하는 인구가 나왔고, 이들 일부가 미국으로 이민을 결정한다. 근세 크로아티아를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제국은 가톨릭 국가로 소수민족 개신교 신도들을 박해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1715년 약 1,200여 명의 크로아티아 개신교인들이 미국 조지아 주에 정착하여 양잠업을 했다. 해당 커뮤니티는 남북 전쟁 와중에 타격을 입고 이후 크로아티아계 개신교인들은 크로아티아계 정체성을 잃고 W.A.S.P. 사회로 흡수되었다.

크로아티아인들의 본격적인 미국 이주는 188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되어 1905~1910년 경에 절정에 달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혹은 이탈리아의 크로아티아인들은 이주노동자로 미국 각지에 정착하였는데 이 가운데 가족을 데려온 경우는 드물었고 상당수가 독신 남성이었다. 18세기 이주한 크로아티아인들이 종교적 소수자로서 가족들을 데리고 와서 미국에 영구 정착했다면 당시 이주하였던 상당수의 크로아티아인들이 돈을 번 후 다시 고국으로 귀환하는 편이었다. 물론 일부 크로아티아인들이 가족들을 데려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크로아티아계 미국인 커뮤니티 규모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1차 대전 이후 유럽으로 돌아가지 못한 크로아티아인들은 당시 이미 유럽계 가톨릭 커뮤니티가 발달해있던 시카고[1]를 중심으로 정착하였고, 이를 계기로 시카고는 크로아티아계 미국인 가톨릭 커뮤니티의 문화적 중심지 기능하게 되었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설립 이후로도 티토의 제3세계 중립외교 노선으로 미국과의 관계는 비교적 원만했기 때문에 일부 크로아티아인들이 미국으로 가서 유학하거나 정착하는 일도 종종 있어왔다.

유고슬라비아 내전 과정에서 세르비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일대의 가톨릭 크로아티아인 인구 상당수가 타국으로 망명하였다. 당시 크로아티아인 난민들의 주 정착지는 스웨덴, 독일 영국이었지만 호주, 캐나다, 미국으로 망명한 인구도 있었다.

3. 유명 인물

4. 관련 문서



[1] 폴란드계 미국인 인구가 몰려있는 도시로서 가톨릭 교세가 강한 편이다. 그리고 시카고에는 20세기 초반 보슈냐크계 무슬림 커뮤니티도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시 미국 기준으로 비개신교계 종교나 교파에 관대한 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