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da9c5><colcolor=#191919>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육군 보병대장 카를 폰 루카스 Karl von Luk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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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Karl Albert Freiherr von Lukas 카를 알베르트 남작 폰 루카스[1] |
출생 |
1860년
9월 7일 오스트리아 제국 렘베르크 |
사망 |
1932년
3월 8일 (향년 71세) 바이마르 공화국 베를린 구첼렌도르프 |
복무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1879년 ~ 1918년) |
최종 계급 |
제국
육군
보병대장 (General der Infanterie) |
주요 지휘 |
제19보병사단 제24군단 제5군단 그라츠 군관구사령관 |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 코마루프 전투 - 라바-루스카 전투 - 이손초 전투 - 코바리드 전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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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인이자 보병대장.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제19보병사단장과 제24군단장을 지냈으며, 전쟁 말기에는 그라츠 군관구사령관을 역임했다.2. 생애
군사 재정 관리였던 아버지의 아들로 렘베르크에서 태어났다. 루카스는 장크트푈텐의 군사학교에서 기초 군사교육을 받고, 비너노이슈타트의 테레지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독일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했고, 군사용어로 폴란드어, 헝가리어, 루마니아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1894년에는 베를린에서 아다 트레거(Ada Traeger, 1870-1930)와 결혼하였고, 자녀로는 카를 알베르트(1898-1900), 마리안나(1895년생), 막스 요아힘(1902년생)을 두었다.3. 제1차 세계 대전
루카스는 모리츠 폰 아우펜베르크 휘하 제4군의 일부로서 제19보병사단을 지휘하여 동부전선에서 코마루프 전투와 라바-루스카 전투에 참전했다. 1914년 12월 1일 전선 시찰 중 중상을 입어 다리가 4cm 짧아지는 부상을 입었다. 이 공로로 레오폴트 훈장 기사십자와 군공로십자장 2등급을 받았으며, 독일군 지원 공로로 프로이센으로부터 철십자 2등급도 수여받았다. 회복 후 1915년부터 1916년까지는 프라크 군관구사령관, 1916년부터 1917년까지는 크라쿠프 요새사령관을 지냈다. 1917년 2월 이탈리아 전선의 제24군단장으로 임명되어 제11차 이손초 전투와 코바리드 전투에 참전했다. 1917년 5월 보병대장으로 진급했으며 남작 작위를 받았다. 이 시기에 레오폴트 훈장 1등급과 철관 훈장 1등급(모두 전시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프로이센의 적독수리 훈장 2등급, 루마니아 별 훈장, 뷔르템베르크의 프리드리히 훈장 2등급도 받았다. 건강상의 이유로 1918년 3월 군단장직에서 물러나 종전까지 그라츠 군관구사령관으로 재직했다.전쟁 후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 육군 입대를 신청했으나 황제에 대한 충성 서약을 철회하지 않으려 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1919년 1월 1일부로 예편했으며, 출생지가 렘베르크였기에 오스트리아가 아닌 폴란드에서 연금을 받았다. 베를린으로 이주해 보험회사 이사로 재직하다가 1932년 사망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예우로 묘지에서 예포가 발사되었고 舊 제국의 황제 찬가가 연주되었다.
[1]
1918년 남작 작위를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