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禹致績
1560년( 명종 15) ~ 1628년( 인조 6)
1. 개요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특히 임진왜란 때 활동하였다.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여가(汝嘉).2. 생애
우치적은 1560년 중림도 찰방(重林道察訪:종6품)과 이천도호부사(종3품)를 지낸 우필성(禹弼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위로 우치근(禹致勤)·우치검(禹致儉) 등 형 2명이 있었다. 1583년( 선조 16) 알성시 무과에 병과 14위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1592년(선조 25) 경상우수영에 속한 영등포(永登浦)의 만호로 재임하였다. 그해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 일본의 수군이 밀려오자, 경상우도수군절도사 원균(元均)의 밑에서 적선 10여 척을 격파하였다.그러나 경상좌도수군절도사 박홍(朴泓)이 적의 기세에 겁먹고 병사들과 도주하자 좌수영의 병사들도 거의 흩어져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이에 원균은 전라좌도수군절도사 이순신(李舜臣)에게 원병을 요청하는 한편, 겁을 집어먹고 숨어있었다. 5월 초에 이순신의 함대가 도착하여 이순신과 원균의 연합함대가 합동작전을 펴자, 우치적은 옥포만호 이운룡(李雲龍)과 함께 선봉에서 싸웠다. 특히 옥포·적진포·합포 해전 때는 제일 먼저 적선에 올라타 적을 죽이고 포로로 잡힌 백성들을 구해내는 등 용맹을 떨침으로써 아군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1596년 순천부사[1]에 임명되고, 이듬해 정유재란 때 이순신 대신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의 지휘 아래 일본 수군과 싸웠으나 대패하여 원균 및 전라우도수군절도사 이억기(李億祺), 충청도수군절도사 최호(崔湖) 등은 전사하고 그는 겨우 탈출하였다. 1598년 조선의 수군과 일본 수군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露梁海戰)에서 이순신의 전사에도 불구하고 적장을 활로 쏘아 죽이는 등 용맹히 싸워 큰 승리를 거뒀다.
1601년 충청도수군절도사가 되었으나 이듬해 의롭지 못한 일을 하여 인심을 잃었다는 이유로 간원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605년( 선조 38년) 북도우후(北道虞候)를 거쳐 경흥부사·회령부사 등을 역임한 후 1611년( 광해군 3년) " 삼도수군통제사"[2]에 올랐다. 1613년 가선대부에 가자되면서 함경도· 강원도의 순변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경성부사·평안도병마절도사·경상좌도병마절도사·함경북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다가 근무지에서 죽었다.
3. 대중매체
- 1962년 개봉한 영화 < 성웅 이순신>에서는 배우 김형진이 연기했다.
- 2004년 KBS 드라마 <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배우 이재포가 연기했다. 원균과 종성부사 시절부터 원균의 군관으로 인연을 맺으며 실제와는 다르게 이순신이 삼도수군 통제사가 되자 반감을 표해 이순신의 제장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는다.[3] 칠천량 해전에서도 참전했지만 원균의 죽음을 뒤로 하고 전장에서 탈출해 이순신에게 원균의 유지를 전한다.[4] 이후로 송희립의 씹어먹을 듯한 눈초리를 받다가 이영남이 결국 한산도 군영을 내주고 물자와 군수품을 모두 폐기하고 왔다는 소리를 듣자 송희립이 대뜸 주먹을 날리며 "워뗘? 후련혀? 장군 모함혀서 내몰고, 전선에, 군사에, 다 쳐죽이고! 통제영까지 왜놈들 손에 넘겨주니께... 인제 속이 후련혀?"라며 울분에 찬 일갈을 날렸고 엄연히 상관이었던 본인도 하극상에 화도 내지 못하고 침통해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5] 그 뒤로는 이순신의 충직한 부하로서 명량 해전과 노량 해전까지 참전한다.[6]
- 김경진의 소설 <격류>와 < 임진왜란>에서는 안위가 다혈질로 묘사되는 것과 반대로 과묵하고 침착한 성격으로 묘사되며 칠천량 해전에서 살아남아 도망가는 원균을 붙잡았지만 원균이 살아있으면 이순신의 앞길에 계속해서 걸림돌이 될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원균을 살려주는 대신 "칠천량에서 죽은걸로 하고 평생 은둔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위협해서 보낸다. 명량 해전에서는 이순신의 대장선에 탑승해 일본 저격수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를 자청해 일부러 눈에 띄는 두석린갑을 입고 판옥선 장대에 올라가서 미끼 역할을 하기도 하고 대장선에서 이순신을 충실히 보좌한다.
- 2022년 개봉한 영화 한산: 용의 출현에서는 배우 문바름이 연기했다. 다만 엑스트라 수준으로 묘사되었다.
[1]
이전에는
권준이 맡았었다. 무장으로써 제법 큰 직위에 임명됐을뿐더러, 전라좌수영과 많이 가까워서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의 뒷받침을 했다고 한다.
[2]
조선 5명의 수군 절도사 중 제일 높은 관직 (정2품)
[3]
실제
역사에서는 자주 어울리고 잘 따랐다고 하는데 심지어 원균에 대한 불평도 이순신에게 했을 정도. 드라마의
원균옹호론으로 인한 왜곡의 피해자이지만 용맹함과 칠천량 해전에서 살아 돌아온 부분은
고증이 잘 되었다.
[4]
원균의 유지는 "살아남아서 이순신에게 가 그의 부하로서
일본 수군과 싸우라"는 것.
[5]
다만, 당시 송희립은 '송 군관'이라고 불리고는 있었지만 사직을 하고 이순신을 호종하고 있었기 때문에 엄밀히는 하극상이라 할 수 없다.
[6]
이순신이 피탄된 이후에 왜군과 처절하게 백병전을 펼치는 장면이 숨겨진
명장면인데 이순신이 피탄된걸 알게 되어서 울면서 싸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