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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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오에 겐자부로 大江健三郎|Kenzaburō Ō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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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white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 ||
본명 | 오에 겐자부로 ([ruby(大江 健三郎, ruby=おおえ けんざぶろう)])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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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35년 1월 31일 | |
일본 제국 에히메현 우치코정 오세히가시 | ||
사망 | 2023년 3월 3일 (향년 88세) | |
일본 도쿄도 | ||
직업 | 소설가, 사회운동가 | |
학력 |
<colbgcolor=#fff,#191919>오세소학교 (졸업) 오세중학교 (졸업) 마츠야마히가시고등학교 (졸업) 도쿄대학 문학부 ( 불문과 / 학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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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아버지 오에 호타로 어머니 오에 코이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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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오에 유카리[1] (1960년 결혼) 장남 오에 히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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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소설, 수필 | |
등단 | 기묘한 일 (19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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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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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소설가이자 사회운동가.
1935년 일본 시코쿠 에히메현에서 출생하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일본의 혼란스럽던 시기에 불현듯 나타나 아베 코보, 엔도 슈사쿠, 미시마 유키오 등과 함께 일본 전후(戰後) 문학을 이끌었던 작가 중 한 명이다. 또한 일본의 국수주의를 비판하고 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민주주의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으며 반전 및 평화 운동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한 대표적인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일본 문학의 진보주의, 평화주의의 상징으로 불리며, '전후 민주주의 세대의 거성', '전후 민주주의의 기수'라 불렸으며, 단순히 생존을 넘어서 타자와의 공존을 위하여 끊임없이 분투하고 갈구하는 인간상을 맹렬히 그려낸 그 문학성을 인정받아, 일본 작가 중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2. 생애
오에는 1935년 1월 31일 에히메현 오세 마을에서 부친 호타로와 모친 고이시 사이에서 7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조부가 무사인 지주 가문에서 태어났기에 그의 집안은 전후 농지개혁으로 사유재산을 모두 잃게 되었지만, 어머니와 할머니의 활약으로 예전부터 조부가 개량해온 닥나무를 통하여 지폐국에 납품할 종이를 만드는 것으로 집안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오에는 마을의 민속 축제와 전통 연극을 담당하던 할머니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숲의 신비'라고도 불리었던 고향의 민담에 심취하여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얼마나 심취하였는지 10살이 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무 도감과 책들을 들고 날마다 숲에 가서 나무들을 스케치하거나 책을 읽고 새로운 장소를 탐험하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고 한다.
그의 할머니는 1944년에 사망하였고, 그의 아버지도 그 다음해 모종의 사건으로 인하여 태평양 전쟁에서 사망하였는데, 어린 오에에게 아버지의 기묘한 죽음은 깊은 죄책감과 상처를 주었으며 한동안 학교에도 가지 않고 오직 고향의 숲에서만 시간을 보내며 방황하는 시기를 거쳐야만 했다고 회고했다. 이렇듯 자신이 구해내진 못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오에가 평생을 안식처로 삼았던 시코쿠의 '숲의 신비는 그의 문학을 관통하는 주요한 키워드 중 하나이며, 특히 시코쿠의 지역사와 민담은 그의 작품 세계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2]
아버지의 사후,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 대신 홀로 오에를 가르치면서 그 전쟁 시기에 구하기 힘들었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닐스의 모험 같은 책을 구해다 주었는데, 그는 그 책들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한 책들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하였다.
고향에 있는 학교를 다니다가, 그는 마츠야마에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을 하였고, 이 과정에서 훗날 평생을 함께하는 친구가 되는 이타미 주조와 만나게 된다. 18세가 되는 해에 처음 동경에 다녀와서 그 이듬해 도쿄대학교에서 불문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의 스승인 와타나베 가즈오는 프랑수아 라블레에 대한 전문가였다. 그는 1957년 학생의 신분으로 있을 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하였는데, 그의 글은 프랑스와 미국의 현대작품에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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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의 오에 겐자부로 |
시적인 힘으로 생명과 신화가 밀접하게 응축된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여 현대에서의 인간이 살아가는 고통스러운 양상을 극명하게 그려냈다.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일본인으로는 2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상 수상 직후
아키히토 덴노가 문화훈장과 문화공로상을 수여하려고 했으나, 본인이 거부하였다. 이유는 전후 민주주의자[3]로서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는 권위와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4] 후술된 정치성향을 보면 알겠지만 좌파성향이 강해 사회운동도 하고, 특히 원폭과 원전 전반에 대한 비판을 많이 남겼다.
반전 운동에도 앞장선 인물이다. 대표적인
친한파 명사. 실제로 노령임에도 한국에 자주 방문했다.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
2013년에는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직후 집필에 들어갔던 '만년양식집'을 마무리 지으면서 소설 창작을 마감한다고 선언했다. 대신 사회운동을 택했다고.
2023년 3월 3일 향년 88세의 나이에 노환으로 별세했음이 3월 13일 공고되었다. # 장례식은 가족장으로 치뤄졌으며, 상주는 아내 오에 유카리가 맡았다. #
3. 작품 목록
3.1.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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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엔원년의 풋볼(万延元年のフットボール)
'만엔원년'이란 제목 때문에 막부 말기의 일본을 다룬 소설로 생각하기 쉽지만[5], 그렇지는 않다. 오에의 대표소설이자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수상작이다. 1967년작이고 영제는 'The Silent Cry'.
안보투쟁에 참가했다가 진압대에게 영 좋지 않은 곳을 맞아 미쳐 버린 뒤 기괴한 몰골[6]로 자살한 친구를 부러워하며 폐인처럼 지내던 주인공 네도코로[7] 미쓰사부로는 안보투쟁에 참가했다가 전향한 인물의 대표로 미국에서 참회극 공연(…)을 하던 동생 다카시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다카시와 만난 미쓰사부로는 다카시의 권유로 (막부 말기) 만엔원년에 농민 봉기를 일으킨 (주인공의) 증조부 동생과 그를 진압한 증조부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고향 시골 마을로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다카시는 자신을 증조부 동생과 동일시하며, 인근 조선인 부락 출신이었으나 지금은 시골 마을의 경제를 장악한 조선인, 일명 '슈퍼마켓 천황'[8]이 소유한 슈퍼마켓을 습격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위해 마을 청년들을 모아 풋볼 연습을 빙자한 훈련을 시키기 시작하는데…
제목처럼 과거와 현재가 절묘하게 얽혀 들어가는 전개가 일품이다. 재일동포 문제도 다룬다. 주인공 친구부터 시작해서 알콜중독자인 주인공 아내, 근친상간 이야기, 처참하게 죽은 마을 처자와 관련 묘사 등등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이 여럿 나오며, 이야기의 흐름을 조금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등장인물과 사건 자체의 의미를 완전히 뒤엎어 버리는 결말부의 충격적인 반전이[9] 인상적이다. 이렇게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전개 방식으로 일본이라는 국가의 폭력성과 그에 대한 수치심을 오롯이 시사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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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탑(治療塔)
1990년작.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탑이 있는 혹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장남인 히카리가 자폐를 안고 태어나서, 평생을 힘들게 살았던 저자의 개인적인 고뇌가 표출되었다고 해피 SF 2호(비정기 발행 무크지)에서는 말한다. 이 일화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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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링(チェンジリング)[10]
중년의 시점에서 자신의 친구 겸 처남과 작가 본인의 청소년기 시절을 회상하고 고뇌하는 소설. 역시 저자인 오에 겐자부로의 체험.[11]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작품. 2000년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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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무' 아래서(「自分の木」の下で)
오에 겐자부로의 사상과 그 한계를 엿볼 수 있는 에세이집. 2001년에 발간되었다. 책 제목은 "사람마다 자신의 나무가 있으며, '나의 나무' 아래에서는 노인이 된 자신을 만날 수 있다"는 고향 지방의 전설에서 따 왔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의외로 '비교적' 쉽게 쓰여 있다.그래도 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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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체험(個人的な体験)
한때 유망한 대학원생이었으나 술에 의지해 현실도피한 끝에 입시학원 강사로 전락한 주인공이, 막 태어난 자신의 아들이 머리에 기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 아이를 기를 것인지 아니면 '안락사'시킬 것인지에 대한 선택에 놓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이야기. 1964년작이다. 이 작품 역시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쓰여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겐자부로의 아들인 유명한 음악가 오에 히카리는 뇌 헤르니아 장애로 뇌수술 끝에 무사히 태어나나 일생동안 지체장애를 안고 살게 되는데 특유의 절대음감으로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가족들의 격려로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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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臈たしアナベル・リイ総毛立ちつ身まかりつ)
나이가 70이 넘은 겐산로[12]는 지적장애인 히카리[13]를 돌보며 늙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겐산로의 지인이자 영화 제작자 고모리가 30년 만에 그의 앞에 나타난다. 겐산로와 고모리는 과거 8mm 영화 <애너벨 리>의 여주인공이었던 아역 배우 출신 사쿠라와 함께 30년 전 독일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미하엘 콜하스의 운명>을 일본 시코쿠지역 농민봉기로 각색하여 영화를 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불미의 사고로 영화 제작 프로젝트는 무산되어 고모리는 미국으로 도피했고, 사쿠라는 영화 출연의 꿈을 포기하게 되었으며, 겐산로는 점점 글쓰기와 멀어지게 되어 서로 각자 마음의 상처를 지니고 있었다. 그로부터 30년 뒤, 겐산로는 고모리와 오랜만에 회동하고, 한국의 시인 김지하 석방을 위한 단식 농성장에 찾아온 사쿠라를 마주하게 되며 이 셋은 자신들에게 트라우마와도 같던 영화 제작 프로젝트를 재개하기로 하는데...
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예술가로서의 열정을 표현함으로써 지난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는 노인들의 성장 소설이다. 또한 오에 자신의 자전적인 내용도 들어있어 픽션과 논픽션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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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에게 물리다(河馬に嚙まれる)
1985년 출판된 연작 단편소설. 이 작품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 수상. 일본 연합 적군파의 아사마 산장 사건과 산악 베이스 사건의 생존자를 주인공으로 채용한 소설.
3.2. 소설
3.2.1. 장편
발간년도 | 제목 | 비고 |
1958년 |
새싹 뽐기, 어린 짐승 쏘기 芽むしり仔撃ち |
첫 장편 소설 |
1959년 |
우리들의 시대 われらの時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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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여 느긋하게 걸어라 夜よゆるやかに歩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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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
청년의 오명 青年の汚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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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
늦게 온 청년 遅れてきた青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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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
절규 叫び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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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
일상생활의 모험 日常生活の冒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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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체험 個人的な体験 |
신초샤 문학상 수상작 | |
1967년 |
만엔 원년의 풋볼 万延元年のフットボール |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수상작 |
1973년 |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洪水はわが魂に及び |
상, 하권 노마 문예상 수상작 |
1976년 |
핀치러너 조서 ピンチランナー調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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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
동시대 게임 同時代ゲー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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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
M/T와 이상한 숲의 이야기 M/Tと森のフシギの物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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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 懐かしい年への手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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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
킬프군단 キルプの軍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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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
인생의 친척 人生の親戚 |
이토 세이 문학상 수상작 |
1990년 |
치료탑 治療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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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
치료탑 행성 治療塔惑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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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995년 |
타오르는 푸른나무 燃えあがる緑の木 |
3부작 |
1999년 |
공중제비 宙返り |
상, 하권 |
2000년 |
체인지링 取り替え子(チェンジリン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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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
우울한 얼굴의 아이 憂い顔の童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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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
200년의 아이 二百年の子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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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
책이여, 안녕! さようなら、私の本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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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
익사 水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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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
만년양식집 晩年様式集(イン・レイト・スタイル) |
3.2.2. 연작 단편집
발간년도 | 제목 | 비고 |
1982년 |
<레인트리>를 듣는 여인들 「雨の木(レイン・ツリー)」を聴く女たち |
요미우리 문학상 수상작 |
1983년 |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 新しい人よ眼ざめよ |
오사라기 지로상 수상작 |
1985년 |
하마에게 물리다 河馬に嚙まれる |
가와바타 야스나리상 수상작 |
1990년 |
조용한 생활 静かな生活 |
3.2.3. 중 · 단편집
발간년도 | 제목 | 수록 작품 | 비고 |
1958년 |
사자의 잘난 척 死者の奢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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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사육'으로 아쿠타가와상 수상 |
보기 전에 뛰어라 見るまえに跳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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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
고독한 청년의 휴가 孤独な青年の休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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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
성적인간 性的人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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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
우리들의 광기를 참고 견딜 길을 가르쳐 달라 われらの狂気を生き延びる道を教え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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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
공중 괴물 아구이 空の怪物アグイ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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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내 눈물을 닦아내는 날 みずから我が涙をぬぐいたまう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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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
현대전기집 現代伝奇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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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
어떻게 나무를 죽일까? いかに木を殺す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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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
내가 정말로 젊었을 적에 僕が本当に若かった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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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
오에 겐자부로 大江健三郎自選短篇 |
[14] |
3.3. 평론 · 수필
발간년도 | 제목 | 비고 |
1962년 |
세계의 젊은이들 世界の若者た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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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목소리, 나 자신의 목소리 ヨーロッパの声、僕自身の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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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
엄숙한 줄타기 厳粛な綱渡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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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노트 ヒロシマ・ノー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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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
지속하는 뜻 持続する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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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
부서지는 존재로서의 인간 壊れものとしての人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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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시대의 상상력 核時代の想像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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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노트 沖縄ノー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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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
고래가 사멸하는 날 鯨の死滅する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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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
동시대로서의 전후 同時代としての戦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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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
상황에 状況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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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노트 첨부 15편 文学ノート 付15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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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
말에 따라서 - 상황·문학 言葉によって-状況・文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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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
소설의 방법 小説の方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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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
표현하는자 - 상황·문학 表現する者-状況・文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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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
방법을 읽는다=오에 겐자부로 문예시평 方法を読む=大江健三郎文芸時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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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
핵의 대화재와 '인간'의 소리 核の大火と「人間」の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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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에서 오일로시마로-82 유럽의 반핵·평화운동을 보다 広島からオイロシマへ―'82ヨーロッパの反核・平和運動を見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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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
일본 현대의 휴머니스트 와타나베 카즈오를 읽다 日本現代のユマニスト渡辺一夫を読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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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
삶의 방식의 정의 - 다시 상황으로 生き方の定義-再び状況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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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전략 小説のたくらみ、知の楽し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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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
새로운 문학을 위하여 新しい文学のため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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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소설' 「最後の小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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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
히로시마의 '생명의 나무' ヒロシマの「生命の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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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
인생의 습관 (해빗) 人生の習慣(ハビッ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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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재입문 文学再入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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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
신년인사 新年の挨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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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
소설의 경험 小説の経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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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
애매한 일본의 나 あいまいな日本の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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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가족 恢復する家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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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
일본의 '나'가 보낸 편지 日本の「私」からの手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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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한 유대 ゆるやかな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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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
나라는 소설가 만들기 私という小説家の作り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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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
'나의 나무' 아래서 「自分の木」の下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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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국해서는 안 된다 鎖国してはならな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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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어려운 탄식 言い難き嘆きも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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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
'새로운 사람'쪽으로 「新しい人」の方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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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
말하고 생각한다 쓰고 생각한다 「話して考える」(シンク・トーク)と「書いて考える」(シンク・ライ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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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
회복하는 인간 「伝える言葉」プラ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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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
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한다 大江健三郎作家自身を語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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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인간 - 독서강의 読む人間-読書講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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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
말의 정의 定義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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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
친밀한 편지 親密な手紙 |
3.4. 공저
발간년도 | 제목 | 비고 |
1971년 |
대화·원폭 후의 인간 対話・原爆後の人間 |
시게토 후미오와 공저 |
1988년 |
유토피아 찾기 이야기 찾기-문학의 미래를 향해 ユートピア探し 物語探し—文学の未来に向けて |
이노우에 히사시, 츠츠이 야스타카와 공저 |
1990년 |
자립과 공생을 말하다—장애인·고령자와 가족·사회 自立と共生を語る—障害者・高齢者と家族・社会 |
우에다 사토시, 카와시마 미도리, 마사무라 키미히로와 공저 |
오페라를 만들다 オペラをつくる |
타케미츠 토오루와 공저 | |
1996년 |
일본어와 일본인의 마음 日本語と日本人の心 |
가와이 하야오, 다니가와 슌타로와 공저 |
2001년 |
문학과 음악을 이야기하다 同じ年に生まれて: 音楽、文学が僕らをつくった |
오자와 세이지와 공저 |
오에 겐자부로 재발견 大江健三郎・再発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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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
폭력을 거스르며 쓰다 오에 겐자부로 왕복서한 暴力に逆らって書く 大江健三郎往復書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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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
왜 바꾸나? 교육기본법 なぜ変える? 教育基本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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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
명탄 가토 슈이치 추모 冥誕 加藤周一追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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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
오에 겐자부로의 말: 후루이 요시키치 대담 文学の淵を渡る |
4. 정치적 성향
일반적인 정치 성향은 반전체주의, 반군국주의, 반덴노주의, 반권위주의 등을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민주주의 정치 성향으로서, 좌파이자 진보적 성향을 띠고 있다. 더 나아가 천황제 폐지를 주장하고 아키히토 천황의 훈장 수여[15]를 거부하는 등 천황제 자체에 대한 적개심이 강한 편.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때도 스웨덴 국왕이 노벨문학상을 수여한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표했으나 결국에는 수여받으면서 본인은 스웨덴 국왕이 아닌 스웨덴 국민이 자신에게 상을 수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천황제를 넘어서 군주제 자체에 반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자위대의 파병에 대해 '이라크에 대해서는 순수한 인도적 원조만 하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2004년에는 헌법 9조( 평화헌법)를 지키기 위한 '9조의 회(모임)'라는 단체를 결성하기도 했다.
또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일본과 일본의 젊은 세대의 장래를 최대한으로 해치는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으며, 2012년 영토 문제의 악순환을 막자며 독도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해서는 과거에 일본이 침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적도 있다. 또한, 난징대학살에서 일본군의 잘못을 인정하는 등 일본의 우익세력이 이를 갈만한 성향이다.
2014년 김영호 경북대 명예교수와의 대담을 가짐으로써 20년만에 한국 언론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으며, 이때는 아베 신조의 행보를 조목조목 비판하기도 했다. 아시아의 평화가 개별 국가의 번영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되어야 한단 말도 했다.
5. 여담
- 나이를 먹은 뒤로는 작품 활동보다는 에세이를 더 많이 쓰는 편이다.
- 일본 유명 음악가로 활동하는 장남인 히카리가 자폐증 환자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오에는 상심이 컸는데, 그런 고통을 나중에 소설 '치료탑'과 '치료탑 혹성'으로 표출했다는 평도 있다. 이후 개인적 체험을 통해 아들과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이 아들인 히카리는 절대음감을 통해 유명한 음악가가 된다.
- 사회주의 사상가였던 고토쿠 슈스이도 이 사람과 비교해 볼 만한 인물이다.
- 오에의 청년시절 이후의 작품들은 비비꼬인 복잡하고 난해한 문장 때문에 읽기 쉽지 않은 편이다. 오에 스스로도 자신의 문장을 '악문'이라고 부를 정도다. 그래서 그가 일본 문학계의 거성이 되고 노벨 문학상까지 받고 난 후에도 '일본 사람들은 누구나 집에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한 권씩 사 두지만 정작 읽은 사람은 적다'라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 엄숙해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강연을 할 때 청중에게 자작 유머를 들려주길 좋아했다고 한다. 자기 어머니가 등장하는 유머를 많이 들려줬다고 한다.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50년 뒤에 노벨 물리학상을 타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노벨 문학상을 타고 어머니에게 노벨상을 타서 약속을 지켰다고 당당히 말하자 어머니가 '아니.' '네가 약속한 건 물리학상이었잖니.'라며 받아쳤다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기간에 열리는 문화행사에 초청되어 애틀랜타에 가게 되자 어머니에게 그 말을 했더니, 어머니는 다른 할머니들을 만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세상에 별일이 다 있네요. 내 아들이 글쎄 올림픽에 참가한다지 뭐에요. 걔는 뜀박질도 전혀 못하고 나이가 예순이 넘었는데...'"
- 일본의 애니메이션의 거장인 타카하타 이사오와 같은 도쿄대학 불문과 동기이지만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서로 이렇다할 친분을 가진 사이는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조금의 접점이 있다고 하면 1955년 당시 도쿄대학 학우회의 기관지에 오에는 자신의 첫 소설 작품이었던 '화산'을 게재하였고 타카하타는 영화 연구회의 동인지를 기고했다고 한다.
- 소련의 아르카디 스트루카츠키( 아베 코보의 '제4간빙기'를 번역한 바 있다)가 사망했을 때 러시아의 온화한 현자가, 우주로 갔다고 조의를 남기기도 했다.
- 2005년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해 "이 자리에는 노벨상을 이미 받았어야 하는데 못 받은 작가 한 사람과, 앞으로 받을 사람이 세 사람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때 '못 받은 작가 한 사람'은 르 클레지오(2008년 수상)였고, '앞으로 받을 사람 세 사람'은 오르한 파묵(2006년 수상)과 모옌(2012년 수상) 그리고 황석영이었다. 관련 기사.[16]
- 하스미 시게히코는 오에 겐자부로에 대해 "오에씨는 노벨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노벨상과는 상관 없이 원래 위대한 작가입니다"라고 말했다. # 다만 오에와 하스미는 사이가 안 좋다는 소문이 많이 있었다. 오에가 하스미의 이름이 목차에 있는 것만으로 그 문예지를 쓰레기통에 던진다는 소문이 있었을 정도다. #
[1]
영화 감독
이타미 주조의 여동생이다. 이타미와 오에 겐자부로는 절친으로 유명하다.
[2]
또한 아버지의 죽음은 훗날 노년의 그가 아버지의 죽음을 회상하는 <익사>라는 소설을 쓰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3]
허나 민주주의가 군주제와 항상 대립하는 관계는 아니었으며 민주주의와 군주제가 양립한 입헌군주제라는 사례가 근현대 들어 뿌리깊게 정착되어 있으며, 오히려 민주공화제를 참칭하면서 대통령직을 왕처럼 세습하는 독재 공화국 대통령들도 수도 없이 많다. 때문에 오에가 말하는 이 "민주주의자"는 "평등주의자" 내지 "공화주의자"로 해석하는 게 더 맞다. 아키히토가 싫어서라기 보다는 그냥 천황제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4]
재미있는 것은 오에 겐자부로의 노벨상 수상을 예언한
미시마 유키오는 극단적인 덴노주의자였다. 친군국주의 vs 반군국주의로 정치성향이 완벽하게 정반대. 상술된대로 미시마 유키오는 그걸 다 알면서도 정치성향과 무관하게 오에의 작품성을 최고라고 공식적으로 단언했으니, 문학인으로서의 평가 태도는 모범적이었다.
[5]
츠츠이 야스타카가 이 작품의 제목을 패러디해 만든 '만엔원년의 럭비'라는 단편이 있는데,거기서는 만엔원년에 일어난
사쿠라다문밖의 변을 배경으로
이이 나오스케의 잃어버린 목을 두고 닌자들이 럭비 대결을 벌인다. 물론 공은 이이의 머리다(...)
[6]
벌거벗은 채 머리와 얼굴을 빨간 페인트로 칠하고
항문에 오이를 쑤셔 박은 채 목을 매달았다. '허벅지에는 생애 마지막
정액이 묻어 있었다'라는 자비 없는 추가 묘사까지 있다!
[7]
'네도코로'(根所)는 '네즈'로도 읽을 수 있는데,이를 이용해 주인공은 스스로를 '네즈미'(쥐)라 부른다.
[8]
조선인에게 천황이란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은, 자신들이 과거 깔보고 무시하던 조선인에게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위해서. 훌륭한
정신승리법이다.
[9]
농민 봉기를 일으킨 증조부 동생은 증조부의 손에 죽었다는 것이 마을에 퍼진 이야기였는데, 미쓰사부로는 증조부 동생이 죽지 않고 혼자 도회지로 도망쳤음을 나타내는 증거를 얻게 된다. 그리고 진실은…
[10]
일어 제목의 가타카나를 그대로 번역한 영향인지 체인지링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됐지만 작가가 영감을 얻은 서구 유럽의 설화에 나오는 존재의 올바른 표기는 영문 표기가 Changeling이므로 '체인질링'이 맞다. 서적 겉표지의 일러스트 밑에도 확연하게 Changeling이라고 쓰여 있다.
[11]
자신의 불알친구이자 처남이었던 명감독
이타미 주조(1933~1997)의 자살 사건이다. 오에는 이타미의 스토리텔링에 대해 칭찬을 남겼고, 이타미 역시 오에의 소설 '조용한 생활'을 영화화하기도 했다. 그는 본격 야쿠자 까는 영화 '민보의 여자'의 내용 때문에 야쿠자에게 심한 린치를 당했을 때도 '나는 굴하지 않는다. 영화로 자유를 가로지를 것이다'라고 선언한 그런 쿨가이였다. 하지만 불륜 의혹에 대해 '죽음으로 결백을 증명하겠다'며 투신자살하고 말았다. 다만 이 자살에 대해서는 상당히 뒷말이 많다. 정작 생전 인터뷰에서 불륜 의혹에 대해서는 아내한테 물어보라고 대답한데다, 향후 스케줄도 제법 있었기 때문.
[12]
작가 자신의 이름 '겐자부로'를 그대로 음독한 것이다. 절친한 친구이며 처남인 이타미 주조가 고등학교시절 붙여준 별명.
[13]
오에의 장남
[14]
오에 겐자부로의 60년 가까운 작가 생활 동안 발표한 단편소설 가운데 직접 고르고 손본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15]
다만 아키히토 천황은 우익들에 비해 과거사에 대해서 상당히 전향적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 대해서도 김대중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자국 일본과 한국의 과거에 대해 언급하며 "반성"이라는 어휘를 언급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선왕인 간무 덴노에 대해 "
백제 왕실 후손으로 알고 있다"는 발언을 하여 일본 내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자민당 정권과 은근히 갈등도 있던 사람이다. 다만 오에 겐자부로는 천황 개개인을 떠나 천황제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반발감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16]
그 이전에도 황석영의
손님(2001년작)에 대해 "황석영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고유한 작가세계를 가지고 있다"고 호평한 일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