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12:03:19

마츠오 바쇼

파일:아사히 신문 로고.svg 아사히 선정 지난 1천년간 일본 최고의 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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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 신문이 2000년 투표로 선정한 " 지난 1천년간 일본 최고의 문인"의 리스트이다.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나쓰메 소세키 무라사키 시키부 시바 료타로 미야자와 겐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마츠오 바쇼 다자이 오사무 마쓰모토 세이초 가와바타 야스나리 미시마 유키오
<rowcolor=#fff>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아리시마 타케오 무라카미 하루키 엔도 슈사쿠 세이 쇼나곤 요사노 아키코
<rowcolor=#fff>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모리 오가이 요시카와 에이지 오에 겐자부로 무라카미 류 이시카와 다쿠보쿠
<rowcolor=#fff>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다니자키 준이치로 이노우에 야스시 미우라 아야코 아베 코보 다카무라 고타로
<rowcolor=#fff>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후지사와 슈헤이 시마자키 도손 나카하라 츄야 고바야시 잇사 세리자와 고지로
31위부터는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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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마츠오 바쇼
[ruby(松尾 芭蕉, ruby=まつお ばしょう)] | Matsuo Basyou
파일:external/f.tukiyama.jp/bashou.jpg
아명 마쓰오 긴사쿠
松尾 金作
Matsuo Kinsaku
이명 마쓰오 주에몬 무네후사
松尾 忠右衛門 宗房
Matsuo Chūemon Munefusa
출생 1644년
이가국 우네노시 근처
사망 1694년 11월 28일 (향년 50세)
오사카
직업 시인
장르 하이쿠

1. 개요2. 바쇼 닌자설3. 대중매체에서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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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방랑에 병들어
꿈은 시든 들판을
헤매고 돈다.”

"旅に病んで/夢は枯野を/かけ廻る"
- 바쇼가 사망 사흘 전에 쓴 하이쿠[1]

에도시대 하이쿠 시인.

하이쿠의 성인(俳聖, 배성)으로 칭해질 정도로 일본 하이쿠 역사의 최고봉으로 손꼽히고 있다. 바쇼는 배호(하이쿠 시인의 필명)이다. 본명은 무네후사(宗房).[2]

지금의 미에현 이가시인 이가우에노 출신으로 재야무사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집안이 어려워 농사도 짓고 했다는 듯. 13세 때에 아버지가 사망, 생활이 어려워져 지역 유지인 토도 가에 시종으로 들어간다. 무네후사가 모시던 사람은 두 살 위인 토도 요시타다였는데 이 둘은 함께 하이쿠를 배웠다. 요시타다를 모시던 마츠오는 따르던 주군이 25살로 요절하자 갈 곳이 없어졌는데 무사를 그만두고 젊은 나이에 기타무라 기긴에게 사사한 뒤 하이쿠 시인의 길에 들어섰다.

자주 여행을 다니며 노자라시 기행, 가시마 기행 등의 기행문을 남겼다. 제자 중 카와이 소라와 함께 겐로쿠 2년(1689년)부터 반년간 도호쿠, 호쿠리쿠 지방을 돌며 기후현 오가키까지 여행하고 남긴 '오쿠로 가는 작은 길(奥の細道, 오쿠노호소미치)'[3]이라는 기행문이 가장 유명하다.

최후도 여행 도중의 객사였다. 향년 51세.

쇼몬짓테쓰(蕉門十哲)라고 불리는 다카라이 기카쿠, 핫토리 란세쓰, 모리카와 교리쿠, 무카이 교라이, 가가미 시코, 나이토 조소, 스기야마 산푸, 다치바나 호쿠시, 시다 야바, 오치 에쓰진 등 특히 뛰어난 수제자 10명을 포함한 각 지역에 많은 제자를 두었다.

유명한 구절(중에 번역이 있는 것)
  • 古池や蛙飛び込む水の音 (오래된 연못/개구리 뛰어드는/물보라 소리)
  • 五月雨をあつめて早し最上川 (오월 오란비/거두어모아 거센/모가미가와)
  • 夏草や兵どもが夢の跡 (여름 나절 풀/수많은 병사들이/꿈꾸던 자취)[4]
  • 名月や池をめぐりて夜もすがら (밝은 달이여/정원을 산책하며/밤을 새누나)
  • 閑さや岩にしみ入る蝉の声 (고요함이여/바위에 스며드는/매미의 울음)[5]
  • 荒海や佐渡に橫たふ天の河 (거친 바다 위/ 사도 섬을 둘러싼/ 하늘의 강물)

2. 바쇼 닌자설

출신지가 닌자로 유명한 이가우에노[6]이고, 전문 하이쿠 시인들은 여러 곳을 여행하곤 해서 첩보활동을 맡게 되곤 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또한 바쇼 자신도 여행 중에 여러 의문점을 남겨 실은 닌자가 아니었느냐는 설이 있다.

특히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의 기술이 여행 중 동행한 카와이 소라가 쓴 '소라 여행일기'와 80가지 이상에 달하는 차이가 있다는 것도 근거가 되곤 한다.
  • 여행출발일자가 '오쿠로 가는 작은 길'에서는 5월 16일인데 '소라 여행일기'에서는 5월 9일로 기록되어 있다.
  • 쿠로바네마치에서 14박, 스카가와에서 7박을 하며 수많은 시구를 남겼지만 출발 시에 절찬했던 센다이 번 내의 마츠시마에서는 단 1구도 남기지 않고 하루만 묵고 통과해버렸다.(이것은 센다이번의 내부를 조사할 기회를 찾기 위해서라는 설이 있다.)
  • '소라 여행일기'에선 바쇼가 센다이 번의 군사요새라고 하는 즈이간지(瑞巌寺), 상업항구인 이시노마키 항을 집요하게 구경했던 것이 기록되어 있다.(소라는 막부에서 임무를 받고 그 위장으로 바쇼의 여행에 동행했다는 설도 있다)
  • 하루 400 km를 이동했다는 등 상식을 벗어난 여행속도

이런 설로부터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은 기행문이 아니라 센다이 번의 내부 사정을 적은 보고서라는 견해도 있다. 당시 막부는 센다이번에 닛코 토쇼 궁을 수리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지출이 막대하기 때문에 센다이번이 불만을 품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핫토리 한조의 가명이 바로 마츠오 바쇼이고 그가 동요로 유명한 카고메카고메를 지었으며 그 노래가 말하는 속내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숨은 진실(혹은 그가 숨긴 보물)이라는 이야기도 있긴 하다.

물론 후대의 설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어땠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그가 정말 이가 닌자였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는 일이다. 검정 복면을 쓰고 날아다니는 것은 후대 가부키의 창작이다. 대다수 닌자들은 현대 국정원 블랙요원이나 각종 스파이들이 그러하듯 지역사회에 녹아들어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담당했다. 그러므로 유녀나 약재상 등 눈에 띄지 않되 흔한 직업으로 주로 위장하기 마련이었다. 당연히 직접 전투를 치르는 일은 많지 않았으며 드물게 암살 등 일이 있다 해도 그 지역사회 폭력 조직 등에 위탁하는 형태가 많았다.

이 탓에 마츠오 바쇼는 현대의 창작물에서 닌자로 그려지기도 한다. 게임인 전국 란스 등이 그 예.

와패니즘 사이버펑크 소설 닌자 슬레이어에서는 닌자인지는 불분명하지만, 헤이안 시대를 카라테로 지배했던 닌자들을 파멸시킨 중요인물로 언급된다. 카라스 닌자와 닌자 슬레이어가 잘라온 닌자의 수급 100개에 짓수를 행사하여 사위스러운 데스 하이쿠를 읊게하는 말법적 의식을 실행했다는 듯.

3. 대중매체에서

4. 여담

2000년 아사히 신문에서 '지난 1천년간 일본 최고의 문인은 누군가?'라는 설문조사에서 6위를 기록했다. 1위는 나쓰메 소세키였다. 2위는 무라사키 시키부, 3위 시바 료타로, 4위 미야자와 겐지, 5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7위 다자이 오사무, 8위 마쓰모토 세이초, 9위 가와바타 야스나리, 10위 미시마 유키오였다. #

바쇼는 곤약을 좋아했다고 한다.

중세 시인 사이교 법사를 귀감으로 삼았다.


[1]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쇠약해져, 돈슈라는 문하생이 바쇼가 읊는 하이쿠를 대신 종이에 적었다. [2] 바쇼는 두 번째 배호이고 첫 번째로 썼던 배호는 푸른 복숭아라는 뜻인 도세이(桃靑)였다. 38살 때 에도의 생활에 질려 파초암(바쇼안, 芭蕉庵)으로 이사를 갔을 때 제자가 보내준 파초가 마음에 들어 배호를 바쇼로 바꾸었다. [3] 오슈(奥州)로 가는 작은 길이라는 뜻. 오슈는 넓은 뜻으로 도호쿠 지방 전체를 가리킨다. [4] 히라이즈미에서 지은 시. 히라이즈미는 오슈 후지와라의 본거지로 영화를 누리던 곳이었다. 영화 형사 DUELIST에서 모역을 꿈꾸던 병판의 검에 새겨지기도 했는데 번역은 좀 다르다. 1991년 걸프전이 발발하자 미국의 선불교신자인 시인 샘 해밀이 영역본을 페르시아 만 주둔 미 군사령관 노먼 슈워츠코프에게 보내기도 했다. 또한 뒷부분의 '兵どもが夢の跡'라는 구절이 사무라이 스피리츠 제로에서 스탭롤 후에 나오는 게임오버 화면에 등장한다. [5] 에코즈(죠죠의 기묘한 모험)을 소개할 때 등장하기도 했다. [6] 이가의 토착무사들이 영주에게 반란을 꾀하려 해서 오다 노부나가가 두번에 걸쳐 이가를 토벌해 괴멸당했지만 다시 많은 사람이 이가에 모여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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