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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 화학 | 생리학·의학 | 평화 | 경제학 |
Octavio Paz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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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white 199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 ||
본명 | 옥타비오 파스 로사노 (Octavio Paz Rozano) | |
출생 | 1914년 3월 31일, 멕시코 멕시코시티 | |
사망 | 1998년 4월 19일 (향년 84세), 멕시코 멕시코시티 | |
국적 |
[[멕시코| ]][[틀:국기| ]][[틀:국기| ]] |
|
모국어 | 스페인어 | |
직업 | 시인, 작가, 외교관 | |
학력 |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 (법학, 문학 / 학사) | |
경력 |
1962~1968 주인도 멕시코대사관 대사[1] 1970~1974 하버드 대학교 교수 1981 세르반테스 상 수상[2] 1982 노이슈타트 국제 문학상 수상 |
|
대표작 | 태양의 돌 (Piedra de sol)-1957 외 다수 | |
사상 | 초현실주의, 실존주의 | |
가족관계 | 배우자 엘레나 가로(이혼), 마리 호세, 딸 헬레나 파스 가로 | |
종교 | 가톨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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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한국어 번역)
한 커다란 순간에 우리는 무너진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뭉친 힘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을 겨우 알아 낸다.
인간이란 결국 올 데 갈 데가 없다, 인간이란 결국 행복하다
함께 빵을 나누고, 태양을 나누고, 죽음을 나누고,
살아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았던 우리의 삶에 대한 경악;
(스페인어 원문)
por un instante inmenso y vislumbramos
nuestra unidad perdida, el desamparo
que es ser hombres, la gloria que es ser hombres
y compartir el pan, el sol, la muerte,
el olvidado asombro de estar vivos;
- 태양의 돌 (창비판(2013), 역자 민용태)
한 커다란 순간에 우리는 무너진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뭉친 힘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을 겨우 알아 낸다.
인간이란 결국 올 데 갈 데가 없다, 인간이란 결국 행복하다
함께 빵을 나누고, 태양을 나누고, 죽음을 나누고,
살아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았던 우리의 삶에 대한 경악;
(스페인어 원문)
por un instante inmenso y vislumbramos
nuestra unidad perdida, el desamparo
que es ser hombres, la gloria que es ser hombres
y compartir el pan, el sol, la muerte,
el olvidado asombro de estar vivos;
- 태양의 돌 (창비판(2013), 역자 민용태)
멕시코의 시인으로, 스페인어권 문학의 거성이자 멕시코의 국민 작가로 평가받는다.
2. 생애
1914년 멕시코의 가난한 가정에 태어났다. 파스의 가족은 1910년 프란시스코 마데로가 일으킨 멕시코 혁명(revolución Mexicana)으로 인해 파산했기 때문이다. 대략 라 쿠카라차로 대표되는 비극적인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파스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가톨릭계 학교와 멕시코대학에 진학하였다. 파스는 어린 시절부터 문인이었던 할아버지에게서 문학을 접했고, 이윽고 글쓰기에 몰두하여 19세의 나이에 첫 시집을 낼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이후 파스는 1937년 법학 공부를 그만두고 내전이 한창이던 스페인에 방문하여 '제2차 세계 문학가 회의'에 참석하여 파시즘 반대운동을 벌였다. 또 스페인에서 멕시코로 귀국하는 도중 그는 프랑스 파리에 들러 그의 작품의 사상적 기반이 되는 초현실주의를 접했다. 동년에 파스는 엘레나 가로와 결혼했으나 20여년 뒤에 이혼한다. 1945년 파스는 파리에서 '고독의 미궁'을 썼는데, 이 작품이 이후 뉴욕 타임즈에 소개되어 명성을 얻게 된다.이후 1946년 파스는 외교관이 되었고, 1960년대에 그는 주인도 대사로서 근무하며 인도의 많은 문인들을 만나, 동양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시풍을 완성시킨다. 또, 1965년 파스는 두 번째 아내 마리 호세와 재혼하여 이후 평생을 같이 살게 된다. 그러나 1968년 10월 멕시코 정부가 68혁명의 영향을 받은 민주화 운동 세력을 향해 무력을 행사하면서 최소 30여명에서 최대 300여명에 이르는 학생과 시민을 학살한 틀라텔롤코 학살이 일어나, 파스는 정부에 반기를 들고 대사직을 그만둔다.
이후 파스는 케임브리지를 비롯한 유수의 대학의 교수로서 강의하였다. 또 그는 이 시기 문학활동에 전념하여, 마침내 1990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거머쥐게 되었다. 1998년 그는 지병이었던 암으로 별세하였다.
3. 작품
- 1933 Luna Silvestre (야생의 달) [3]
- 1937 Entre La Piedra Y La Flor (돌과 꽃 사이) [4]
- 1950 El Laberinto De La Soledad (고독의 미궁-수필)
- 1949 Libertad bajo palabra (가석방 상태의 자유)
- 1951 Águila o sol? (독수리인가 태양인가)
- 1956 La estación violenta (격렬한 계절)
- 1957 Piedra De Sol ( 태양의 돌) [5][6]
- 1962 Salamandra (도룡뇽)
- 1967 Blanco (하양)
- 1969 Ladera este (동쪽 비탈길)
- 1979 Hijos del aire/ Airborn (공기의 아들들) [7]
4. 여담
- 일본의 하이쿠 시인인 마츠오 바쇼(1644~1694)를 매우 좋아해 1984년 아내 마리 호세와 같이 그의 암자를 방문하기도 하고, 바쇼의 하이쿠인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의 스페인어 번역을 맡을 정도로 대단한 바쇼의 팬이었다고 한다.
- 또 그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영향을 받아 장자 사상에도 심취해 있었다고 한다. 그의 시 중에서 호접몽에 대해서 다룬 것까지 있을 정도이니 말다했다.
-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과 친한 사이었다. 부뉴엘 장례식에도 참석한 걸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