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00><colcolor=#fff> 알리산느 타르가르옌 Alysanne Targary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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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알리산느 타르가르옌 (Alysanne Targaryen) |
가문 | 타르가르옌 가문 |
생몰년 | 36AC ~ 100AC |
부모 | 아버지 아에니스 1세, 어머니 알리사 벨라리온 |
형제 | 라에나 타르가르옌, 아에곤 타르가르옌, 비세리스 타르가르옌, 재해리스 1세, 바엘라 타르가르옌 |
배우자 | 재해리스 1세 |
자녀 | 아에곤, 대너리스, 아에몬, 바엘론, 알리사, 다엘라, 바에곤, 마에겔, 사에라, 비세라, 가에몬, 발레리온, 가엘 |
별명 | 선한 왕비(Good Queen) |
드래곤 | 실버윙[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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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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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과 불의 세계 |
얼음과 불의 노래의 과거 인물. 성군 재해리스 1세의 여동생이자 왕비. 별명은 선한 왕비(Good Queen)로 왕조 최고의 성군으로 사랑받은 남편과 마찬가지로 타르가르옌 왕조에서 최고의 사랑받는 왕비로 꼽힌다.
금발벽안에[2] 마르고 작은 체구를 지니고 있었으며, 외모는 예쁜 수준이나 절세미녀까지는 아니었다고 한다. 자애로우면서도 기강있는 성격으로 슬기로웠으며 칠왕국의 백성들을 계급 구분 없이 사랑하였고 백성들도 마찬가지로 왕비를 사랑했다. 음악과 춤, 독서, 그리고 용을 타고 나는 것을 매우 좋아했으며, 활도 매우 잘 쐈고 사냥 실력도 뛰어났다고 한다. 그녀는 백성들의 삶을 개선시키기고 남편 재해리스를 열성적으로 보좌하였다.
소유한 드래곤은 실버윙. 금슬이 좋았던 부부처럼 실버윙도 남편의 용 버미토르와 사이가 좋았다. 존퀼 다크와 이름 불명의 와일들링을 포함한 여전사들을 호위로 데리고 있었다. 자식은 6남 7녀를 뒀는데, 타르가르옌 왕조 중 가장 자식을 많이 낳았다.
2. 생애
2.1. 유년기
아에니스 1세와 알리사 벨라리온의 차녀이자 다섯번째 자식으로 태어났다. 야사에 의하면 그녀를 매우 아꼈던 언니 라에나 공주가 그녀의 요람에 용의 알을 넣어주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는 자기 언니와 오빠들에 밀려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때때로 '어린 소녀'나 '다른 딸' 정도로 언급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고 지혜로운 면모를 보였다고 한다.[3]아버지 아에니스 1세가 실정을 벌여[4] 드래곤스톤으로 도망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급사하자 숙부 마에고르 1세에 의해 드래곤스톤에서 인질로 잡혀 있었다. 그 사이에 크레이크홀에 억류되어 있던 큰오빠 아에곤 왕자는 겨우 포위에서 풀려나서 군사를 일으켜 신의 눈 전투에서 마에고르에게 맞섰지만 패배해 죽었고 아에곤의 부인인 큰언니 라에나 공주는 본인의 쌍둥이딸들을 빼돌리고 도주했다. 이후 44AC에 비세니아가 사망하고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어머니 알리사, 오빠 재해리스와 함께 탈출해서 스톰즈 엔드에 숨어 있었다.
마에고르가 반란을 진압하던 와중에 어머니 알리사 왕비의 주도로 로가르 바라테온이 재해리스를 적법한 왕으로 선포하면서 반역을 선언한다. 결국 마에고르는 대다수의 영주들마저 등을 돌리면서 지지세력을 잃고 홀로 남아, 적법한 친자를 남기지 못하고 레드 킵에서 쓸쓸하게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이후 오빠와 언니와 함께 각각 자신들의 드래곤에 탑승해서 레드킵에 착륙하는 것으로 역사서에 처음으로 제대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마에고르의 킹스가드들에 대한 처분이 논의될 때, 재해리스는 마에고르의 편에 선 자들은 물론 자신에게 넘어왔던 올리버 브라켄 경과 레이먼드 말레리 경에 대해서도 모두 사형 선고를 내렸다.[5] 그러나 알리산느는 이들이 흰 망토를 검게 바꾼다면 살려줄 수도 있지 않겠냐고 주장했고, 결과적으로 다섯 명 중 네 명이 이 처분에 동의해 장벽으로 떠났다.
언니 라에나 공주가 어머니나 오빠에게 알리지 않고 앤드로 파먼과 결혼했을 때에도 오빠와 함께 그녀를 축하해 주었다. 같은 해에 이루어진 어머니 알리사 왕대비와 수관 로가르 바라테온 공의 결혼식에도 참석해 불참한 언니 대신 귀족 여인들을 대접했다.
2.2. 왕비로서
2.2.1. 치세 초반
왕이 된 오빠 재해리스가 아직 성인이 아니라서 섭정을 맡은 모친 알리사와 수관이자 알리사와 재혼해 새로운 아버지 뻘이 된 로가르 바라테온은 타르가르옌 가문의 근친혼 전통을 지키는 것보다는 교단의 반발을 막기 위해서 알리산느 남매를 따로[6] 결혼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러기 싫었기 때문에[7] 어릴 때부터 잘 따르던 오빠인 재해리스 1세와 몰래 각자 드래곤에 탑승해서 드래곤스톤까지 도망친 다음에 근친 결혼식을 올려서 온 집안을 뒤집어 놨다. 이후 재해리스와 함께 드래곤스톤에 틀어박혀서 어머니 알리사와 아버지 행세를 하려는 수관인 로가르에게 반발하였다. 로가르는 아직 알리산느가 어려서 첫날밤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으로 식을 치른 게 아니라 선언하고 강제로 남매를 끌어내려고 군대까지 동원했으나 재해리스의 킹스가드들이 막아냈다. 어머니 알리사 왕대비는 직접 선발한 셉타들과 귀족 영애들을 현명한 여인(Wise Woman)호에 태워 알리산느에게 보내면서, 그녀들이 알리산느에게 '그 결합이 얼마나 부정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기를 바랐으나 실패했고 오히려 그들이 알리산느에게 감화되어 평생 그녀를 모셨다. 이후 재해리스가 성인이 되어서 섭정으로부터 왕권을 완전히 물려받을 때까지 계속 드래곤스톤에서 남편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성인이 된 재해리스 1세가 드래곤스톤에서 킹스랜딩으로 귀환한 뒤, 로가르 바라테온과의 해묵은 감정을 해소하고 나서 두 남매의 정식 결혼식이 이루어졌다. 첫 번째 결혼식 때와 달리 신방 의식이 곧바로 이어졌는데, 이는 알리산느 왕비 본인이 '진정으로' 두 사람이 결혼했는지 묻는 말에 넌더리가 났기 때문이었다. 이후 마에고르 1세의 왕비였다가 셉타가 된 엘리노어 코스테인을 포함해, 네 명의 셉타들과 세 명의 셉톤들이 왕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남매의 결혼식이 얼마나 적법한 것인지와 국왕 부부의 고결함에 대해 설파했다. 이들은 '일곱 연설가'라 불렸다. 이를 통해 발리리아인들은 안달인들과 신체적, 문화적으로 다른 인종이므로 근친 간에 결합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한 '예외주의' 교리가 성립되었다.
메이든풀에서 습격을 받는 알리산느 왕비 |
52AC에는 남편과 함께 동부 지역 순방을 떠났다. 그러나 심신의 고통이 아직 치유되지 않았던 터라 지난 순방에서 만큼 활발한 활동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지난 방문 때와 마찬가지로 여성들을 불러모아 모임을 가졌으며, 자신의 시녀들 중 한 명이었던 프루던스 셀티가르와 걸타운의 그래프턴 공 간의 혼사를 추진했다. 특히 달의 관문 앞에서 가진 여성들의 조정 모임을 통해 알리산느는 과부법[10]이 제정될 수 있도록 했다. 이 해 말에 알리산느는 다시 자식을 임신하였고, 알리산느의 안전을 위해 남편이 혼자서 리버랜드 쪽으로 순행을 떠났을 때는 레드 킵에서 국정을 주관하였다. 그리하여 53AC 7월에 첫 딸인 대너리스 공주를 출산하였다. 공주의 탄생에 아에레아 공주를 제외한[11] 모두가 크게 기뻐했다.
54AC에는 스톰즈엔드에서 자신의 어머니 알리사 왕대비가 46세의 나이로 또다시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불안해 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이 셉톤이 사망하자, 남편과 함께 용을 타고 올드타운으로 가[12] 새로운 하이 셉톤이 선출되는데 관여하였다.[13] 직접적으로 선출에 관여를 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드래곤을 두 마리나 데리고 가서는 용의 날개로 불을 부채질하는 퍼포먼스를 보인 것만으로도 셉톤과 하이타워 가문이 알아서 적절히 합의를 하기에는 충분했다(...).[14] 신임 하이 셉톤이 올드타운에 오기를 기다리면서 왕비는 침묵 자매단이나 병자와 빈민들을 돌보는 수녀원에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수련 셉타였던 조카딸 라엘라 타르가르옌과 만나기도 했다. 이후 시타델에 방문해 그곳의 도서관에 푹 빠져 있다가 흥미로운 주제의 강의를 들으러 가기도 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마에스터들을 불러모아 연회를 베풀며 '내가 왕비가 아니었더라면 마에스터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나같은 생각을 하는 총명하고 용감한 소녀들이 분명 여럿 있을텐데 기회를 한 번 줘보는 것이 어떠냐, 분명 놀라운 결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라는 요지의 연설을 하기도 했다. 마에스터들은 왕비의 말을 면전에서 거절하지는 않고 그냥 적당히 미소를 지으며 고려해 보겠다는 상투적인 답변을 했다.
올드타운에서의 신임 하이 셉톤 임명식이 끝난 뒤에는 도르네 변경 지역을 방문하였는데, 알리산느는 특히 돈다리온 가문의 본성 블랙헤이븐을 마음에 들어해 그곳에 오래 머물렀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머니 알리사 왕대비가 로가르 바라테온과의 둘째 아이를 낳던 중 산고로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고 알리산느와 재해리스는 곧장 스톰즈 엔드로 날아갔다.[15] 알리산느는 마에스터가 알리사 왕대비의 배를 갈라 아기를 꺼내는 동안 어머니의 손을 계속 붙잡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는 딸 조슬린 바라테온이었다. 이후 알리산느는 알리사의 장례식이 끝난 뒤 이부여동생 조슬린의 탄생 기념 만찬에 참가한 뒤 킹스랜딩으로 돌아갔다.
드래곤스톤에서 언니 라에나의 남편인 앤드로 파먼이 지속적인 무시와 조롱을 견디다 못해, 라에나의 측근들을 모조리 독살해버리고 본인은 자살해버리면서 라에나가 앤드로의 시신을 토막내버려 복수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자 알리산느는 언니를 위로하고자 드래곤스톤으로 갔다. 그러나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던 라에나는 동생을 환영하기는 커녕 세 번이나 문전박대하고 악을 써댔다고 한다. 알리산느는 비탄에 잠긴 언니 대신 드래곤스톤을 잠시 동안 관리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조카딸 아에레아 공주로부터 자신을 킹스랜딩으로 데리고 돌아가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라에나가 단호하게 거절해버렸기 때문에 아에레아와 라에나, 그리고 알리산느의 사이는 냉랭하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알리산느는 견디지 못하고 결국 킹스랜딩으로 혼자 돌아가버렸다. 그러나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에레아는 발레리온을 길들인 뒤 실종된다. 알리산느는 아에레아를 위해 기도를 올리고 자책했으나 한편으로는 아에레아의 실종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은 언니 라에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16]
55AC에 알리산느는 차남인 아에몬 왕자를 출산한다.[17] 그러나 이듬해에는 실종되었던 아에레아 공주가 비참한 몰골로 돌아와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는 일이 일어났다. 절망에 빠진 라에나 공주에게 알리산느는 '언니는 아직 젊으니 새로 결혼을 해서 아이를 새로 얻는 것은 어떠냐'고 말했지만 라에나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홀로 하렌할에 정착했다.
57AC에는 삼남인 바엘론 왕자를 출산했다. 봄이 온지 정확히 이틀이 지나서 태어났기 때문에 바엘론은 '봄의 왕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2.2.2. 북부 방문과 즉위 10주년까지
58AC에 처음으로 북부 방문을 계획했다. 그러나 재해리스가 에소스에서 일어난 분쟁을 중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방문을 미뤘다가는 까다롭고 냉정하기로 유명한 윈터펠의 영주가 그것을 모욕으로 간주할 것이 자명했기에, 알리산느는 자신이 먼저 북부에 가있다가 평화 협상이 끝나는 대로 재해리스가 윈터펠로 와 자신과 합류하는 것이 어떠냐고 주장했고, 이 주장은 수용되었다.왕비는 우선 화이트 하버에 도착해 맨덜리 가문의 성에서 대단히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알리산느는 그곳에서 자신의 시녀들 세 명과 테오모어 맨덜리 공의 아들 둘과 조카 한 명의 혼사를 주관하였다. 또한 그곳에서 열린 마상 대회에 출전한 야인 여성을 보고 그 대담함에 크게 감명을 받아 자신의 호위 무사였던 종퀼 다크와 대련을 해보도록 하고, 그 여성도 자신의 호위로 삼았다.
화이트 하버를 떠나서 왕비는 윈터펠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에서는 융숭한 대접은 커녕 마중을 나온 사람도 대영주 알라릭 스타크와 그의 두 아들들 뿐이었다. 알라릭은 냉정한 성격으로 유명했으며[18][19], 사면되어 밤의 경비대에 들어갔다가 반란을 일으킨 무장 교단 대원들의 손에 형을 잃어 재해리스 1세를 크게 원망하고 있었다. 그는 알리산느를 매우 차갑게 맞이하였으며[20], 윈터펠 내부로 실버윙은 절대 들여보낼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알리산느가 자신의 두 아들들에 대해 제의한 남부 귀족 영애들과의 혼사도 딱잘라 거절했다. 하지만 알리산느는 블랙우드 가문처럼 옛 신을 믿는 가문들은 남부에도 많으니 다시 생각해봐도 괜찮을 것이라고 밀어붙였고, 알라릭도 거기서 더 세게 나가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알라릭 역시 알리산느의 사람을 이끄는 성격 때문에 날이 갈수록 얼음같은 마음이 녹았다고 할 정도로 큰 태도 변화를 보였다. 그는 왕비와 같이 멧돼지와 엘크를 사냥하러 가기도 했고, 그녀에게 거인의 유골이나 성의 서고를 보여주기도 했다. 알라릭의 딸인 알라라를 포함한 윈터펠의 여인들도 왕비와 매우 가까워졌으며, 알라라는 알리산느의 시녀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알리산느도 알라릭에 대한 모든 소문이 진실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알라릭은 지출에 신중했지만 구두쇠인 것은 아니었고, 신랄하기는 해도 자식들과 영지 주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만큼 나름대로의 해학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직접 보고 깨달았다고.
알리산느는 계속해서 지연되는 남편의 방문을 기다리다 지쳐 먼저 밤의 경비대를 방문하기로 결심한다. 알라릭 스타크는 미리 밤의 경비대에 서신을 보내 무장 교단 출신의 대원은 절대 눈에 띄지 않도록 했기 때문에 왕비는 엄선된 800명의 정예 대원들로 구성된 환영단으로부터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참고로 장벽을 방문 했을 때 흥미로운 기록이 있는데 알리산느 왕비는 자신의 드래곤인 실버윙과 함께 장벽 너머로까지 탐험을 해보려고 했으나 어째서인지 실버윙은 장벽을 넘는 것을 거부하였으며, 애초에 장벽 그 자체에 엄청난 거부감을 보였다고 한다. 그 자리에선 밤의 경비대 대원들에게 장벽을 넘어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그냥 웃으면서 농을 했으나, 훗날 자신의 명령을 난생 처음으로 거부한 실버윙의 이상 행동에 심상치 않은 불길함을 느끼고 남편에게 이야기 했던 기록이 남아있다.[21]
장벽과 열악한 사정을 보고서 보석을 판 돈을 밤의 경비대에 기부하여 밤의 경비대의 빈곤한 재정 사정에 숨을 터주기도 하였으며, 나이트포트 성에서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낀 알리산느는 그 당시에도 소수의 인원이 기거하던 해당 성을 완전히 폐쇄시켜버리길 종용했다. 그렇게 알리산느의 돈으로 새로 건설한 성이 딥레이크 성이며, 그 성에는 알리산느 왕비의 동상이 세워졌다. 얼음과 불의 노래 본편 시점에도 그 동상이 남아있다고 한다. 또한 총사령관은 왕비에 대한 경의를 담아 스노우게이트 성의 이름을 퀸스게이트로 바꾸었다.
몰스타운에서 여성들의 조정을 연 알리산느 왕비 |
알리산느는 반 년만에 남편과 윈터펠에서 재회했는데, 알라릭의 재해리스에 대한 원망이 매우 컸던지라 그녀의 중재가 없었더라면 어떤 뜻도 함께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일컫어질 정도였다. 알리산느 왕비는 장벽의 열악한 사정에 대해 이야기하며 왕명으로 기프트 지역을 늘려줄 것을 요청하였다. 알라릭은 자기 휘하의 영주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으나, 결국 알리산느의 의견에 찬성하였고, 기프트의 크기는 한 번에 두 배로 늘어나게 되었다.
윈터펠을 떠난 후에 열린 소협의회 회의에서 알리산느는 초야권을 법적으로 폐지시킬 것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몰스타운에서 알리산느를 만난 여성은 본래 대장장이의 딸로, 자기 아버지의 조수 노릇을 하던 청년과 사랑에 빠져 열 네 살의 나이로 결혼을 했다. 그런데 그 지방 영주가 결혼식날 나타나서는 초야권을 행사했고, 청년은 '순결을 빼앗긴' 그녀를 학대하고 창녀라고 부르며 모욕했다. 이에 이 여성은 그렇다면 차라리 진짜 창녀가 되어주겠다며 집을 나가 장벽 인근의 매음굴에 들어가게 되었다. 알리산느는 '그녀의 이야기가 내 눈을 뜨게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고통을 받은 사람은 그녀뿐만이 아니었고, 알리산느는 그러한 이야기를 몇 차례나 들었다고 한다. 알리산느는 그러한 악습이 평민 여성들과 그 남편, 그리고 초야권을 행사하는 남자들의 부인들마저 고통받게 만들 뿐이라고 표현했다.[23] 그런데 셉톤 바스가 알리산느의 말에 찬동하기 전까지는 재해리스 1세를 포함해 소협의회의 다른 귀족들은 '그러한 풍습으로 훌륭한 기사의 아이를 얻게 되면 평민들은 그것을 축복이라고 여긴다'같은 말을 하면서[24] 이 주제에 대해 논하는 것을 매우 꺼리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알리산느가 '내가 만난 그 어떤 여성들도 그것을 축복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만약 전하께서 대장장이이고 내가 세탁부였는데 내가 첫날밤에 그런 일을 당했더라면 어떻게 했을 것이냐'라고 말하며 강하게 밀어붙였고 소협의회는 결국 초야권을 폐지시켰다.
이윽고 왕국은 재해리스 1세 즉위 10주년을 맞이한다. 왕국은 대단히 풍요로웠으며 국왕 부부의 세 아이들도 국민들로부터 크게 사랑을 받았다. 즉위 10주년을 기념해 열린 마상 대회에서 라이엄 레드와인 경이 우승해 알리산느를 사랑과 미의 여왕으로 선언하였다. 또한 이어진 축제에서는 로가르 바라테온이 어린 아들과 딸을 데리고 참석하였으며, 알라릭 스타크의 세 자식들을 포함해 수많은 유력 가문의 인사들이 참여하였다. 또한 하이 셉톤을 대신해 최근에 정식 셉타가 된 라엘라 타르가르옌이 국왕 부부를 방문했고, 알리산느는 그녀의 모습에서 아에레아를 떠올리고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2.2.3. 자식 문제와 비극의 시작
59AC에 왕국에 오한병이 돌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소협의회의 법무대신이었던 알빈 매시 공과 그랜드 마에스터 베니퍼를 비롯해 많은 귀족들이 죽거나 죽기 직전까지 갔으며, 가장 비극적이었던 죽음은 대너리스 공주의 죽음이었다. 공주를 살리기 위해 오만가지 방법이 동원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재해리스가 드래곤스톤의 용 사육사들에게 새끼 용을 데리고 오라는 지시를 내렸지만[25] 이미 때는 너무 늦어 공주는 결국 일곱 살의 어린 나이로 죽고 말았다.[26]대너리스의 사후 알리산느는 엄청난 실의에 빠졌지만, 이듬해에 태어난 알리사 공주를 통해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비록 커가면서 오빠 바엘론 왕자와 더 닮아가기는 했지만 어린 시절에는 대너리스와 판박이었기에 더욱 위로가 되었다고. 61AC에는 이부 여동생인 조슬린 바라테온과 그녀의 사촌들을 대녀로 맞이해 양육했다. 조슬린은 머지 않아 드래곤스톤 공(Prince of Dragonstone)으로 임명된 아에몬과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이듬해에는 딸 마에겔 공주를 출산했다.[27] 왕국의 도로 건설 산업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은 63AC에는 사남 바에곤 왕자를 출산했고, 바로 그 다음 해에는 다엘라 공주를 낳았다. 이로부터 3년 후에는 사에라 공주를, 또다시 4년이 지나서는 자식들 중 가장 아름다웠다고 일컫어지는 비세라 공주를 출산했다.[28]
70AC에 아에몬 왕자와 조슬린 바라테온[29]이 결혼을 했다. 73AC에는 딸 마에겔 공주가 칠신교에 귀의해 수련 셉타가 되었다. 같은 해에 알리산느는 조상인 '영광스러운' 가에몬[30]에게서 이름을 따온 가에몬 왕자를 낳았지만 조산에 난산이었던지라 생후 석 달만에 왕자는 죽고 말았다. 이때 알리산느 왕비는 엄청나게 비통함을 느꼈다고 한다. 심지어 언니 라에나 공주마저도 그 해에 사망했다. 그 해 말에는 알리산느와 재해리스가 총애하던 킹스가드 루카모어 스트롱 경의 추악한 비밀[31]이 폭로되면서 그가 자신들을 바보 취급했다고 생각해 엄청난 모멸감을 느꼈다고 한다.
73AC부터 알리산느는 자식들 문제로 골머리를 썩게 되는데, 시작은 바에곤 왕자와 관련된 문제였다. 본래 알리산느와 재해리스는 연년생으로 태어난 바에곤과 다엘라가 타르가르옌 가문의 근친혼 전통대로 나중에 부부로 맺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바에곤에게 여동생을 잘 챙겨주라고 당부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바에곤은 다엘라를 무시하고 다엘라는 차가운 오빠를 무서워 했기 때문에 둘의 사이는 점점 벌어져 갔다. 결국 바에곤이 연회장에서 대놓고 글도 제대로 못 읽는 멍청이하고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엘라에게 망신을 줘버린 이후[32]로 남매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렸다. 다엘라와의 혼사가 파토나자 알리산느는 바에곤의 다른 배필로 우선 사에라와 비세라를 염두에 두었지만, 바에곤은 그 둘에게는 다엘라보다도 더더욱 관심이 없어서[33] 그 계획도 포기하게 됐다. 그나마 바에곤은 성장하면서 타르가르옌 특유의 아름다운 용모를 갖추고 어렸을 때보다는 예의를 갖추는 척이라도 할 수는 있게 되기는 했으나, 무술 실력은 훈련을 시켜주던 바엘론도 고통스럽게 만들 정도로(...) 형편없었고 그마저도 누나 알리사에게 검술 대결에서 지면서 완전히 때려 치워버렸다. 여자에게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34] 알리산느는 결국 바에곤의 결혼을 포기하고 그를 시타델로 보내 아치마에스터가 되도록 하였다.
그래도 74AC에는 아에몬과 조슬린이 첫 손자인 라에니스 공주를 안겨주어 대단히 기뻐했다고 한다. 알리산느는 대너리스 공주에게 그랬듯이 손녀딸을 '언젠가 여왕이 될 아이'라고 불렀다. 75AC에는 그녀의 자식들인 바엘론과 알리사[35]가 결혼을 했다. 둘의 결혼으로부터 2년이 지났을 때 둘째 손자인 비세리스 왕자가 태어났다. 하지만 같은 해에 태어난 알리산느의 아들 발레리온 왕자는 가에몬 때와 마찬가지로 난산으로[36] 태어난 병약한 아기였고, 한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죽었다.[37] 크게 상심한 알리산느는 자신도 이제 42살이나 되었으니 손주를 볼 나이라며 자식을 그만 낳고 싶다고 말했으나, 재해리스는 우리의 어머니도 46세에 조슬린을 낳으셨지 않냐고 말하며
가엘 공주가 태어난 해에는 결혼과 관련돼서 많은 문제를 일으킨[39] 다엘라 공주의 혼사가 마침내 정리되었다. 코를리스 벨라리온을 포함해 많은 영식들과의 혼사가 불발되고 나서, 알리산느 본인이 직접 타이몬드 라니스터[40], 보어문드 바라테온[41], 로드릭 아린의 세 사람을 다엘라에게 소개시켜주었다. 공주는 이들 중에서 '아버지처럼 선하고 현명한' 로드릭 아린을 골라 결혼했다. 알리산느는 로드릭이 재해리스가 요구한 대로 '착하고 다정하며, 다엘라를 사랑하는' 남자였기에 이를 예측하고 있었다.[42] 다엘라와 로드릭은 같은 해에 드래곤스톤에서 간소한 결혼식을 치른 뒤 이어리로 갔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바엘론과 알리사의 사이에서 셋째 손자인 다에몬 왕자가 태어났다.
그러나 다엘라 공주는 결혼한지 2년만에 딸 아에마 아린을 낳고 산욕열로 요절했다. 알리산느는 딸의 죽음에 크게 상심해 로드릭 아린[43], 이어리의 마에스터, 그리고 딸을 일찌감치 결혼시킬 것을 강요한 재해리스 1세를 엄청나게 원망했다. 특히 알리산느는 재해리스에게 '1년이나 2년, 심지어는 10년은 더 데리고 있었어도 상관 없었을 것을 왜 아이를 낳을 만큼 튼튼해지지 않은 어린 나이에 내보냈느냐'라고 쏘아붙였다. 이에 대한 왕의 대답은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84AC에는 또다른 딸인 알리사마저 셋째 아들 아에곤을 낳은 뒤 회복하지 못하고 24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아에곤 왕자도 한 살도 안 되어 사망했다.
84AC에는 사에라 공주가 초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공주가 그녀가 총애하던 페리안느 무어와 알리스 턴베리[44], 조나 무튼[45], 로이 코닝턴[46], 그리고 브랙스턴 비스버리[47]와 아주 난잡하게 놀아나던 것이 들통나고 만 것이다.[48] 세 귀족 영식이 궁정 광대를 창관에서 조롱하다가 도시경비대에 걸렸는데, 이때 술에 취한 채로 그것이 사에라 공주의 명령이었다고 자백해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알리산느는 직접 페리안느와 알리스를 찾아 갔고, 그녀들을 통해 사에라와 브랙스턴의 주도 하에 여섯이서 불건전한 유희를 즐겼음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알리스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도 임신한 상태였다.
평소에는 가벼운 사고만[49] 치고 애교로 아버지를 구슬려 넘어가던 사에라 공주였지만 이번만큼은 도저히 덮어줄 수 없어 알리산느와 재해리스는 그녀를 철왕좌 앞으로 소환해 직접 심문했다. 사에라는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눈물을 흘리며 결백을 호소하다 나중에는 본인이 질렸는지 재해리스의 누구에게 처녀성을 주었냐는 질문에[50] '셋 다 자기가 내 첫 남자인줄 알더라'라고 신랄하게 대답해 아버지를 경악케 했다. 그러나 알리산느는 애초에 딸을 순진무구한 소녀로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51] 전혀 당황하지 않고 이제부터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냐고 딸에게 침착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사에라는 이에 대해 아마 결혼을 하게 되지 않겠냐고 하면서 '굳이 왜 하나만 골라야 하나요, 마에고르는 여섯인가 여덟인가랑 동시에 결혼하지 않았나요?'라고 답하고 만다. 이를 알게되어 대노한 재해리스는 사에라를 처소에 감금해버리고는 '그 애는 이제 내 딸이 아니다'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알리산느는 '그 애는 여전히 우리 딸이다'라고 답하며, '당신은 마에고르의 잔당도, 아에레아를 옹립하려 했던 로가르 공도 용서하지 않았느냐. 그 애가 적절한 처분을 받고 속죄한다면 분명 딸도 용서할 수 있을 거다'라고 말해 재해리스를 설득했다.[52]
그러나 사에라는 처소에서 드래곤을 길들여 도망치려 하다가 위병들한테 붙잡혀 실패했고 더욱 화가 난 재해리스에 의해 아예 탑에 감금되고 만다. 알리산느는 더 이상 남편의 선처를 구할 수 없게 되었음을 알고 통곡했다고 한다. 사에라와 어울렸던 다섯 명의 처분이 정해지고 난 뒤[53] 사에라 본인은 언니 마에겔의 감시 하에 침묵 자매단에 들어가게 됐다. 하지만 사에라는 그곳에서도 도주해 리스의 환락정원에 들어갔고, 이 소식을 들은 알리산느 왕비는 '우리가 딸을 창녀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탄했다.[54] 알리산느는 수많은 상실에 지쳐 점차 국정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다.
86AC에 알리산느는 이전부터 총애했던 화이트하버의 영주 테오모어 맨덜리 공과 자신의 열 번째 자식인 비세라 공주의 약혼을 발표했다. 그러나 허영심 많고[55] 야심만만했던[56] 비세라는 그 혼사에 진절머리를 쳤다. 알리산느는 테오모어는 현명하고 다정하며 양식이 있는 좋은 신랑감이라고 말하며 딸을 설득했지만 비세라는 '그렇게 그 사람이 좋으면 어머니가 그 사람이랑 결혼하세요'라고 말할 뿐이었다.[57] 비세라는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바엘론과 결혼하겠다며 그를 유혹해 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하고[58] '얼어붙기 전의 마지막 자유를 만끽하려' 몰래 궁전을 나와서 새벽에 친구들과 함께 킹스 랜딩을 말을 탄 채로 질주하다 낙마 사고로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다.
5년 새에 딸 셋이 요절해 비탄에 잠긴 알리산느는 남편이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밀정들을 보내 사에라의 동향을 살폈다. 사에라는 여전히 환락정원에서 창녀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알리산느는 셉톤이자 재상인 바스까지 대동해 바스와 함께 재해리스에게 이제 그만 딸을 용서하고 다시 궁정에 불러들여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재해리스는 이미 사에라한테 크게 실망하고 포기한터라 거부하며 '그 애는 처음부터 창녀였다'라며 폭언을 퍼부을 뿐이었다.[59] 알리산느는 적어도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라도 사에라를 용서하고 데려와 줄 수는 없겠냐고 끝까지 부탁했고 곁에 있던 바스도 왕비의 말대로 용서해주자고 간언했지만, 재해리스는 "당신에게 그 애가 필요하다면 도르네인에게도 살무사가 필요할 거다. 창녀라면 킹스랜딩에 이미 넘치도록 많으니 그 아이의 이름은 다시는 듣고싶지 않다."라고 말하며 끝까지 거부하고 대화를 완전히 끝내버렸다. 게다가 알리산느가 실버윙을 타고 혼자 리스로 가봤자 일만 더 크게 만들게 뻔하고, 사에라는 우리와 웨스테로스를 필요로 하지 않으니 그냥 묻어버리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알리산느는 재해리스의 태도에 크게 실망하고 분노해 홀로 용을 타고 드래곤스톤으로 가 죽은 딸들을 애도하며 2년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았다. 마에겔의 중재로 알리산느는 남편과 화해했지만 사에라를 보고싶어 딸에게 편지도 보냈지만 이미 부모에게 정이 없어진 사에라는 답장을 보내지 않아 사에라와는 결국 의절하고 만다.
다행스럽게도 마에겔 공주의 중재로 알리산느는 남편과 화해하고 90AC에 열린 손녀인 라에니스 공주와 코를리스 벨라리온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92AC에 타스에서 해적들을 토벌하던 아에몬 왕자가 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재해리스 1세는 웨스테로스의 전통적인 계승법과 달리 아에몬의 외동딸인 라에니스 공주가 아니라 아에몬의 동생인 바엘론을 새로운 후계자로 임명했다. 바엘론 왕자는 민중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는 인물이기도 했고, 소협의회의 대신들도 18살짜리 여자애와 '태어나지도 않았고 아들일지 아닐지도 모를' 그녀의 자식[60]보다야 바엘론이 더 통치자로서 적합하다는데 동의했다.
그러나 라에니스와 코를리스[61], 조슬린과 보어문드는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크게 분노한 사람은 알리산느였다. 손녀딸의 적법한[62] 계승권이 고작 성별 때문에 빼앗기는 것에 대해 반발한 알리산느는 "통치자는 좋은 머리와 진실된 마음이 필요할 뿐. 남근이 필수는 아니야. 당신이 진심으로 여자가 통치에 필요한 머리가 없다고 믿는다면, 나도 이제는 더 쓸모가 없겠네."라고 말하며 또다시 드래곤스톤으로 가서는 2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이 불화 또한 마에겔의 중재로 어찌어찌 해결되었다.
93AC에는 비세리스 왕자와 다엘라의 딸인 아에마 아린의 결혼식에, 97AC에는 다에몬 왕자와 레아 로이스[63]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이듬해에 열린 재해리스 1세 즉위 50주년 기념 연회에도 참석해 남은 자식들과 손자, 증손자들과 함께 했다.
2.2.4. 말년
말년의 알리산느 왕비 |
"
마에고르 숙부는 잔인했지. 하지만 늙는 건 더 잔인하구나."
아에몬 왕자가 죽은 후 알리산느는 나날히 쇠약해져 갔다. 이듬해에는 실버윙을 타고 마지막 비행을 하고 난 뒤 몸이 예전같이 않아 자신이 더 이상 날 수 없게 되었음을 직감하고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특히 말년에 가면 건강이 악화되어 청력도 점점 떨어져 음악도 즐길 수 없게 되었고, 얼마 안 가 계단을 오르다가 엉덩이 뼈가 부러져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만 하게 되었다. 게다가 96AC에는 딸
마에겔이 회색병에 걸린 환자들을 돌보다가 그 자신도 병에 감염되어 사망하면서 큰 슬픔을 준다. 시타델로 떠나버린 바에곤은 아들로서 부모님에게 의무적인 편지를 몇번 쓰긴 했지만 모난 성격으로 인해 온기가 없었다. 곁에 하나 남은 자식인 바엘론이 찾아와서 웃게 해줬으나 그마저도 공무가 바빠 어머니를 자주 찾아올 수는 없었다. 99AC에는 애지중지하던 막내딸 가엘이 어느 방랑가수에게 유혹당해 임신하지만, 그 남자에게 버림받고 아이마저 사산한 충격으로 블랙워터만에 투신해 자살했다.[64] 마에겔에 이어 막내딸마저 죽자 알리산느는 완전히 무너졌고 비극적인 기억으로 가득 찬 레드 킵에 더 이상 머무르지 못하고 드래곤스톤으로 돌아가서 생활했는데 100AC에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이때 그녀의 나이 64세였다.[65] 재해리스는 아내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아 이때부터 의욕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3. 가족 관계
초야를 치르는 재해리스 1세와 알리산느 부부 |
그랜드 마에스터 베니퍼가 직접 말했을 정도로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는 어머니였지만, 대부분이 요절했으며 살아남은 자식들도 알리산느의 사랑에 전혀 보답해주지 않아 비참한 말년을 보냈다. 아에곤, 발레리온, 가에몬 세 아들들은 미숙아로 태어나 요람 속에서 죽었고, 대너리스는 일곱 살 때 오한병에 걸려서, 알리사와 다엘라는 산욕열로, 마에겔은 회색병 환자들을 돌보던 중 자신도 병에 감염되어서, 비세라는 낙마 사고로, 아에몬은 타스에서 해적들을 토벌하다가, 가엘은 임신한 몸으로 연인에게 버림받고 사산까지 한 충격으로 자살해 모두 어리거나 젊은 나이에 죽었다. 먼저 죽지 않은 자식들 중에서 바엘론 왕자도 어머니가 죽은지 얼마 안 되어, 사냥 중에 덧난 상처로 아버지 재해리스보다 먼저 사망했다. 천수를 누린 자식들은 결국 바에곤과 사에라 둘 뿐이었는데 둘은 원래부터 성격적으로 문제가 많아, 알리산느의 골치를 아프게 했으며 각각 시타델과 볼란티스에서 부모와 거의 절연한 상태로 평생을 보냈다.
남편과의 금슬이 좋기로 유명했지만 살면서 두 번 남편과 아주 크게 대립한 적이 있었다. 한 번은 재해리스 1세가 리스에서 창녀 노릇을 하고 있는 딸 사에라를 구하러 가자는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해서, 한 번은 장손녀 라에니스가 성별 때문에 후계자 지위를 박탈당한 것이 부당하다고 여겨서 남편과 대판 싸우고 난 뒤 용을 타고 혼자 드래곤스톤으로 가서 2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두 번 다 셋째 딸인 마에겔의 중재 덕분에 화해에 이를 수 있었다고 한다.
4. 기타
모티브는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와 엘리너 루스벨트로 보인다. 특히 작가가 캐서린 헵번이 연기한 엘레오노르와 비슷하다고 묘사했다.여담으로 조선의 소헌왕후와 비슷한 점이 꽤나 많다. 두 사람 모두 많은 자식을 낳았다는 것[66]과 왕조에서 최고로 추앙받는 왕의 왕조에서 최고로 추앙받는 왕비로써 남편을 도와 나라발전에 기여한 것, 그리고 자식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아픔[67]을 겪어야 했다. 심지어 본인들이 남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점마저 똑같았다.
여성 인권에 대단히 관심이 많아 순행을 갈 때마다 연령과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그 지방의 여성들을 불러모아 여성들의 조정을 여는 것을 즐겼다. 이를 통해 과부법을 제정하고 초야권을 폐지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드래곤스톤에 머물던 시절의 자신에게 보내주었던 '현명한 여인'들을 포함해 총명한 여성들과 대화를 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68]
또한 여왕의 즉위에도 대단히 긍정적이었다. 장녀인 대너리스를 늘 '미래의 여왕님'이라 불렀으며 남편 재해리스가 아에몬이 태어난 순간부터 그를 후계자로 확정지은 것처럼 말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69] 그래도 알리산느는 대너리스가 더 나이가 많으니 계승 서열이 더 높고, 그러니 그 아이가 여왕(Queen)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해리스는 대너리스가 아에몬과 결혼해서 왕비(queen)이 될 거라고 응수했다. 알리산느는 이 대답에 전혀 만족하지 못했다고 한다.
[1]
나중엔 평민인
울프 화이트가 타게 된다.
[2]
부모와 형제들과 달리 전형적인
발리리아계의 외모를 지니지 않았다. 이는 외할머니가
매시 가문 출신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3]
궁중 어릿광대는 알리산느가 유모의 젖을 빨면서 동시에 글도 읽으려고 했다는 농담을 했으며, 훗날 셉톤 바스는 알리산느가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시타델로 보내져 마에스터 수련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4]
교단과 칠왕국 사람들의 반발을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자기 장남과 장녀를 결혼시켰다.
[5]
마에고르의 편에 선 자들은 찬탈자의 편을 들었으니 사형, 자신의 편을 든 두 사람들의 경우 목숨을 바치겠다는 선서를 어겼으니 맹세 파기자로서 사형이라는 논리였다.
[6]
재해리스의 상대에 대해서는 티로시 집정관의 딸(로가르), 무관왕 아에곤의 편에서 싸웠던 가문의 여식(알리사), 중립을 지켰던 가문의 여식(그랜드 마에스터 베니퍼) 등 의견이 분분했으나 어쨌든 알리산느 공주는 로가르 공의 막내 남동생인 오린 경과 결혼을 시키기로 결정이 난 상태였다.
[7]
오빠 재해리스와 이미 서로 좋아하는 사이이기도 했고, 자기보다 10살이나 많은 데다가 잘 알지도 못하는(소문에 따르면 싫어했던) 남자와 결혼하기가 싫었기 때문.
[8]
수행원들 중 셉타 이디스,
프루덴스 켈티가르는 단도로 인해 다쳤고,
로자문드 볼은 배를 찔렸는데 3일 후에 죽었다.
[9]
더스켄데일의 다클린 공의 사생아 딸로, 재해리스 1세의 킹스가드를 선발하는 마상시합에 신분을 감추고 참가해 백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사에라 공주가 대형사고를 쳐서 감금되었을 때 그녀를 감시하는 역할도 맡았다.
[10]
이전까지는 가문의 가주가 죽고 나면 그 후계자가 자기 아버지의 후처와 그 자식들을 빈털터리 상태로 쫓아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는데, 과부법이 제정되고 난 뒤에는 후임 가주가 선대의 과부가 몇 번째 부인이었든 간에 남편이 죽기 전에 누렸던 권리와 일정한 수입을 모두 보장해주어야만 하게 되었다.
[11]
그녀는 마에고르 1세 후반, 재해리스 1세 치세 초반 내내 왕들의 후계자였고, 사실 웨스테로스의 종법 상으로는 그녀의 계승권이 두 왕들보다 더 앞섰다. 그런데 대너리스가 태어나면서 관심도 빼앗기고 (실질적인)계승권도 밀리게 된 것.
[12]
이때 데리고 간 호위는 킹스가드의 조프리 도겟 경과 알리산느의 호위 존퀼 다크뿐이었다. 비행할 때 무게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조프리 경이 알리산느와 실버윙에, 존퀼이 재해리스 1세와 버미토르에 탑승했다고 한다.
[13]
알리산느와 재해리스는 적어도 자신들에게 반감이 깊은 셉톤 매튜스가 하이 셉톤으로 선출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소협의회에서는 먼저 셉톤 바스를 하이 셉톤 후보로 밀자느니(이는 바스 본인이 거절했다), 군대를 이끌고 가자느니, 매튜스 성사를
의문사시켜버리는 건 어떻냐느니하는 의견들이 오갔다. 결론적으로는 국왕 부부가
드래곤을 데리고 선임 하이 셉톤의 장례식에 참여하러 가게 되었다.
[14]
바스 본인은 하이 셉톤 선출에 국왕이 개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현실 자체에 굉장히 실망했다고 한다. 물론 그것을 국왕 앞에서 말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15]
알리사의 남편인 로가르는 국왕 부부가 직접 행차했는데도 죽어가는 아내의 모습에 절망해서 술에 만취해있었다.
[16]
실제로도 앤드로의 독살과 자살부터 아에레아의 가출은 앤드로를 남편 취급도 안하고 아에레아를 과보호하기만 한 라에나의 책임이 컸다. 무엇보다 라에나가 비록 언니라곤 하나 명색에 왕비인 알리산느를 문전박대하며, 무례하게 굴었는데도 아무런 처벌도 하지않고 넘어간 알리산느도 대단하다.
[17]
알리산느는 여동생을 원했던 대너리스가 화를 낼 것이라고 농담을 던졌다고 한다.
[18]
테오모어 맨덜리 공의 어릿광대가 표현하기를 알라릭 공은 열두 살 이후로 변을 본 적도 없을 것이라고(...).
[19]
조금 더 진지한 표현으로는 알라릭 스타크는 '무정하고 냉정하고 엄격하며 아량은 없고 구두쇠에 가까울 정도로 인색하며, 따분한데다가 재미도 없는 차가운 남자'였다고 한다.
[20]
왕비를 처음 보자마자 한 말이 '그것보다 더 따뜻한 옷도 가져왔기를 바라오'였다. 대놓고 너무 많은 사람들을 먹일 능력은 안 되니 오래 안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은 물론, 알리산느가 인원이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다고 하자 "잘됐군, 더 적었으면 더욱 더 좋았을텐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아주 엄포를 놓으려고 작정했는지 "무도회와 가면극과 춤 따위를 기대했다면 잘못 온 것이오"라고 발언했다.
[21]
이후 장벽 너머는 걸어서 수백의 밤의 경비대 순찰자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넘어가봤다고 하는데, 타르가르옌 가문 사상 최초였던 것으로 보인다.
[22]
초야권은 당시에 넥 이남 지역에서는 거의 사장된 풍습이었으나,
최초인의 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던 북부 인근에서는 여전히 행해지고 있었던 악습이었다.
[23]
알리산느 왈, 그런 작자가 내 남편이었으면 차라리 오는 길에 낙마해 목이 부러져 죽기를 기도했을 것이라고.
[24]
재해리스 1세조차도
조부님의 서출 동생인
오리스 바라테온 공도 용의 씨였으며, 그것은 일종의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다고 말을 하려다가 알리산느에게 싸늘하게 제지당한다.
[25]
어린 시절 병약했던 아에니스 1세 역시 용을 길들이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26]
이때까지 타르가르옌 가문 사람들은 자신들 안에 흐르는 용의 피가 전염병을 막아준다고 믿고 있었으나 대너리스의 죽음을 보고는 그 믿음이 흔들렸다고 한다.
[27]
과거에 알리사가 바엘론을 쫓아다녔던 것처럼 이번에는 마에겔이 알리사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고, 알리사는 자신을 두고 강아지처럼 쫒아다닌다며 귀찮아했던 바엘론처럼 여동생을 귀찮아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바엘론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고.
[28]
그런데 앞서 낳은 자식들과 달리 바에곤부터는 다소 문제가 있었다. 바에곤은 형들과는 달리 연무장보다는 서고를 선호했고, 뚱하고 따분한데다가 말도 없는 아이였다. 다엘라는 알리산느와 마에겔을 제외하고는 가족들조차도 대하기 어려워할 정도로 겁이 많았다. 사에라는 조금이라도 관심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면[70] 화를 내는데다가 늘 심한 사고를 치고 다니는 고집불통이었으며, 비세라는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였지만 거만하고 쉽게 우쭐대는 성격이었다.
[29]
알리산느의 이부여동생이므로 아에몬에게는 고모 겸 이모다. 조슬린은
바라테온 가문 특유의 흑발과 벽안, 182cm에 달하는 장신을 지닌 대단한 미녀였다.
[30]
'꿈꾸는' 다에니스의 남매이자 남편. 아에곤의 정복 전까지 가장 위대한 드래곤스톤의 영주였다고 한다.
[31]
킹스가드 기사였으면서 비밀리에 무려 세 명의 여성들과 각기 다른 가정을 꾸렸던 것이 들통나고 말았다. 자식이 총 16명이나 되었다고. 게다가 재해리스에게 자비를 구걸하면서 "제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서라도"라는 말을 해버린 탓에 훌륭하게 자폭하고 말았다. 루카모어 경은 거세된 뒤 아들 둘과 함께 장벽으로 보내졌고, 남은 부인들과 자식들은 각각 하렌홀, 드리프트마크, 그리고 스톰즈엔드에 맡겨졌다.
[32]
다엘라는 이러한 모욕을 당하자마자 울면서 연회장에서 뛰쳐나가버렸고 알리사도 분노해 바에곤의 머리에 와인을 부어버렸다. 그러나 바에곤은 뉘우치긴 커녕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아까운 아버 골드만 낭비했다고 중얼거리며 혼자 연회장을 떠나버렸다.
[33]
알리산느조차 재해리스에게 "바에곤은 사에라와 비세라는 거들떠보지도 않아. 그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아는 건지 모르겠어. 어떤 학사가 그 아이들에 대한 책이라도 쓴다면 또 몰라도."라고 말하며 체념할 지경이었다.
[34]
아버지 재해리스 1세는 그래도 바에곤이 타르가르옌 특유의 아름다운 외모와 칠왕국의 왕자라는 직위까지 합쳐지면 여자들이 나비처럼 모여들 거라며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나, 알리산느는 자기 아들의 문제 많은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에곤이 자신에게 나비처럼 모여든 여자들을 책으로 짓눌러 뭉개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걱정할 지경이었다.
[35]
전통대로라면 실질적인 장남과 장녀인 아에몬과 알리사가 맺어져야만 했지만, 알리산느가 알리사는 옛날의 자신들 부부만큼이나 사이가 가까운 둘째 오빠 바엘론과 맺어져야 한다고 말해 두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
[36]
알리산느는 이 출산의 여파로
반 년 동안이나 몸져 누워 있었다.
[37]
발레리온 왕자를 화장하면서 알리산느는 '어미가 자식을 불태우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거늘'이라며 한탄했다고 한다.
[38]
노산의 영향인지 작고 연약하며 살짝 지능이 모자란 아이였지만 가에몬이나 발레리온과는 달리 영아기에 사망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겨울에 태어났기에 '겨울 아이'라 불렸다. 혹자는 그녀를 낳았을 당시의 알리산느의 나이를 겨울에 빗댈 수 있었기에 그렇게 불린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39]
겁이 많은 공주가 마음에 들지 않아 빨리 치워버리고 싶었던 것인지(...) 재해리스 1세는 다엘라가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매우 초조해 하면서 차라리 남자 백 명을 발가벗겨놓고 다엘라에게 직접 고르게 하는 한이 있어도 그 애가 16살이 되기 전에 빨리 결혼시켜야 한다고 닥달을 했다. 알리산느도 자기 딸이 셉타나 침묵 자매단이 되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수많은 방법을 강구했다.
[40]
구혼 당시 스무 살로 왕국 최고의 미남들 중 한 명이었으며 난공불락의 성인
캐스털리 락의 후계자였다. 여러모로 신랑감으로 적절해 보이는 남자였으나 여자를 너무 좋아하는데다가
술은 그보다 더 좋아했기에 썩 그렇지만도 않았다.
[41]
당시 스물 여덟 살로 아버지 로가르를 닮은 건장하고 호탕한 미남이었다. 타르가르옌 가문 특유의 족내혼 풍습을 감안하면 구혼자들 중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42]
알리산느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로드릭이 가장 떨어지는 구혼자라고 여겼다. 그가 이미 서른 여섯 살이나 먹은 홀아비인데다가, 키도 작고 배도 나오고 머리도 벗겨진 전형적인 중년 아저씨였기 때문. 그러나 다엘라는 그의 네 아이들의 새 엄마가 되어주겠다며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43]
그는 아내를 이어리에 안장하고자 했으나 알리산느는 딸은 드래곤의 혈통이니 화장해 드래곤스톤에서 언니인 대너리스의 옆에 안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44]
알리산느가 보기에는 둘 다 얼굴만 반반하지 머리 속에 든 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45]
메이든풀의 후계자였다.
[46]
사에라와 동갑으로,
코닝턴 가문의 젊은 가주였다.
적발을 지니고 있어 '붉은' 로이라고 불렸다.
[47]
비스버리 가문의 후계자였다. 가문명에서 따온 스팅어(찌르는 자 또는 벌침)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는 행실이 매우 문란해 젊은 나이에 벌써 리치와 킹스랜딩에 각각 하나씩 사생아를 두고 있었다.
[48]
알리산느는 평소부터 사에라와 어울려 다니는 다섯 청년들을 좋게 보지 않았지만, 재해리스는 사에라는 다엘라와 달리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니 결혼시키는게 어렵지 않겠다며 좋아하기만 했다. 게다가 늘 여섯이서 같이 다니니 남자와 둘만 있으며 놀아날 일도 없을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해 별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다.아이고
[49]
그런데
사에라 타르가르옌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가벼운 사고라는 것도 전혀 가볍지가 않다(...).언니 요강을 벌로 꽉꽉 채운 거의 어디가 가볍다는 걸까
[50]
아마도 그 상대와의 결혼을 추진해서 추문을 덮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51]
알리산느는 처음부터 사에라를 두고 '영리하기는 해도 현명하지는 않은 아이'라고 평했다.
[52]
알리산느는 늘 남편이 그녀처럼 생각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이 시점에서는 실제로 재해리스도 딸을 용서할 수 있었을 것이다.
[53]
페리안느는 조나와 결혼해 제법 사이가 좋은 부부가 되었고, 알리스는 로이와 결혼할 것이 결정되었지만 로이가 자기가 아이 아버지일 리가 없다고 극구 부인해 사생아 딸[71]을 낳고 핑거스 인근의 소영주에게 시집을 갔다. 로이는 에소스로 추방당했다가 창녀의 칼에 찔려 죽었고, 가장 죄가 무거웠던 브랙스턴은 재해리스 1세와 직접 결투 재판을 벌였다가 왕에게 패배해 죽었다.
[54]
재해리스도 포기하며 '그 애는 처음부터 창녀였다'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국왕 본인도 사에라가 떠난 이후로는 기력이 이전같지 않았다고 한다.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국정에 더욱 매달렸다고도 전해진다. 마에스터 엘리사르가 말하기를, "왕은 딸들의 양육보다는 도로 건설을 더 잘했다."
[55]
오만한 성격이라서 어렸을 때부터 자기가 예쁘다고 떠받들어주는 남자들을 모두 개처럼 취급했다고 한다. 자기를 따라다니던 '머리가 마찬가지로 골비었던' 여자아이들에 대한 대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56]
비세라는 알리사의 죽음 이후로 재혼하지 않고 있던 오빠 바엘론과 결혼해 왕비가 되고자 했다. 대놓고 자기가 알리사 언니보다 훨씬 예쁜데 안 될게 뭐가 있겠냐고 떠들고 다녔다고.
[57]
그런데 테오모어 맨덜리는 이때 나이도 엄청나게 많은데다가 벌써 네 번이나 결혼하고 부인들과 사별을 해 자식들도 많이 두고 있었다. 그에 비해 비세라는 고작 15살이었는데다가 나이 든 남자의 재혼 상대로 가기에는 더 격이 높은 신분(얼마 남지 않은 왕의 친딸이었으니)이었으니 저 혼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만도 하다. 알리산느야 비세라가 다엘라처럼 남자의 나이나 외모나 사별 여부보다는 내적인 면을 봐주었으면 했겠지만(...). 본편의
라이사 아린이 자기 아버지보다 나이많은 남편
존 아린과 결혼하고 불행한 생활을 한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58]
바엘론의 침실에 알몸 상태로 들어가서 오빠를 유혹하려고 했다. 하지만 대노한 바엘론은 비세라에게 크게 화를 냈는데 말 그대로 불벼락을 내렸다고...
[59]
재해리스는 사에라가 궁정의 사내 절반에게 다리를 벌렸다고 과장해서 말을 하며, '돈 한 푼도 없던 애가
무슨 수로 리스까지 갈 수 있었겠냐'라고 모진 말을 던졌다.
[60]
라에니스의 본심은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그녀의 발언(내 아들의 마땅한 권리를 박탈하겠다는 거냐)이나 소협의회 대신들이 아들에 대한 것을 강조한 것을 보면 당시에는 여성인 라에니스가 직접 철왕좌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아에몬 왕자의 혈통을 잇는 후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남자'인 라에니스의 아들이 철왕좌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아니 다른 가문들은 그냥 딸이 계승하던데 왜 타르가르옌만
영주는 몰라도 왕은 무조건 남자여야 한다는 걸까
[61]
재해리스의 처사에 분노해 선박대신직을 내려놓고 라에니스와 함께 자기 영지로 돌아갔다.
[62]
대너리스 때와 달리 라에니스는 아에몬의 외동딸로, 남자 형제도 없었다. 따라서 칠왕국의 계승법/관례 상으로 계승 서열은 아에몬>라에니스>바엘론>비세리스>다에몬>(그 이하 남매들과 그 후손들)이었다.
[63]
당대
로이스 가문의 후계자였다.
[64]
세간에는 가엘 공주가 열병으로 죽었다고 알려졌다.
[65]
사실 사망했을 때의 나이를 보면 남편이자 형제인 재해리스만큼 장수했다.
[66]
소헌왕후는 역대 조선의 왕비 중 왕과의 사이에서 2번째로 많은 자녀를 둔 왕비이며, 알리산느 왕비는 타르가르옌 왕조 역사상 가장 많은 자식을 낳은 왕비였다.
[67]
소헌왕후는 10남매 중에서 큰딸
정소공주와 아들
광평대군과
평원대군을 떠나보냈으며, 알리산느 왕비는 13남매 중에서 9명만이 성인 때까지 살았남았으며 그들 중에서 사에라와 바에곤을 제외한 모든 자식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그나마 차남(13남매중에서 삼남)인 바엘론 타르가르옌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보지않고 세상을 뜬 것이 유일한 행복이었다.
[68]
재무관
레고 드라즈의 죽음으로 인해 2대 재무관을 선출하게 된 소협의회에서 셉톤 바스는 '마틴 티렐 공 본인은 특출날 것이 없는 사내지만 그 부인인
플로렌스 포소웨이는 걸음마를 하면서부터 사과를 세었다고 한다'고 말하며 마틴(실질적으로는 플로렌스)을 재무관으로 추천했다. 재해리스는 알리산느가 총명한 여성과의 대화를 즐기니 좋은 생각인 것 같다며 적극 찬성했다.
[69]
일단 절대적 맏이 상속제를 도입한
도르네를 제외한 다른
칠왕국의 지역에서는 재해리스 1세의 주장이 옳기는 하다. 사실 이마저도 조금 애매한 것이 왕국이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발리리아인들의 계승법에는 구멍이 많았던 건지 뭔지(...) 중세 서양의 장남 혈통 우선 상속법을 상당히 잘 지키는 다른 칠왕국 가문들에 반해 타르가르옌 왕가는 왕세자 아에니스의 장녀인 라에나의 계승 서열이 높은지 아니면 동생인 마에고르의 계승 서열이 더 높은지 논란이 일기까지 했다. 일단 칠왕국의 주류 문화인 안달족 계승법(실제 중세 서양의 계승법)에 의거하면 당시의 왕위 계승 서열은 아에니스>라에나>마에고르 순이다. 이상하게도 다른 가문은 안 그러는데 타르가르옌 가문만 계속 계승 서열에 논란이 생긴다(...).
라니스터 가문의 경우 가주 타이볼트 라니스터가 사망한 뒤 외동딸이었던 세 살배기의 세렐이 대영주가 되었고, 타이볼트의 남동생인
제롤드 라니스터는 섭정직을 맡았다. 세렐이 요절하고 난 뒤에야 제롤드가 대영주 자리에 올랐다. 또한
아린 가문의
제인 아린도 남자 사촌들이 많이 살아있었음에도 어린 나이에 대영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