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35deg, #000 70%, #000 80%, #D32011 80%, #D32011 90%, #007A36 90%, #007A36);")";"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D1D1D,#e2e2e2 |
<colcolor=#fff><colbgcolor=#D32011> 상징 | <colcolor=#000,#fff> 국가(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
역사 | 북부동맹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 202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공세 · 2021년 아프가니스탄 내전 ·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 | |
정치 |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 |
국방 |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군 | |
경제 |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 | |
인물 | 사미 사다트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35deg, #000 70%, #000 80%, #D32011 80%, #D32011 90%, #007A36 90%, #007A36);")";"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관련 틀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35deg, #000 70%, #000 80%, #D32011 80%, #D32011 90%, #007A36 90%, #007A36);")";"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جمهوری اسلامی افغانستان[1] د افغانستان اسلامي جمهوریت[2] Islamic Republic of Afghanistan |
||||||
국기 | 국장[3] | |||||
لا إله إلا الله، محمد رسول الله 알라 이외의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이다 |
||||||
상징 | ||||||
국가 | 국가 (다리어: سرود ملی, 파슈토어: ملی سرود) | |||||
위치 | ||||||
2004년 12월 7일 ~ 2021년 8월 15일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국 |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 |||||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 | ||||||
역사 |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개전
2001년
10월 7일 과도정부 수립 2002년 7월 13일 첫 직선제 대통령 취임, 건국 2004년 12월 7일 탈레반 공세, 멸망 2021년 8월 15일 |
||||||
지리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위치 |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 ||||
수도 | 카불 | |||||
면적 | 652,230km² | }}}}}}}}} | ||||
인문환경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인구 | 39,835,428명 | ||||
언어 | 다리어, 파슈토어[4] | |||||
종교 | 이슬람교 ( 국교)[5] | |||||
민족 | 파슈툰인 42%, 타지크인 27%, 하자라인 9%, 우즈베크인 9%, 아이마크인 4%, 투르크멘인 4%, 발루치인 2%, 기타 1% (2008)[6] | }}}}}}}}} | ||||
정치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정치체제 | 공화정, 단일국가, 대통령제 | ||||
역대 대통령 |
하미드 카르자이 제1대(초대) 아슈라프 가니 제2대(말대) |
|||||
역대 제1부통령 |
아흐마드 지아 마수드 제1대(초대) 모하마드 카심 파힘 제2대 유누스 카누니 제3대 압둘 라시드 도스툼 제4대 암룰라 살레 제5대(말대) |
|||||
역대 제2부통령 |
헤다야트 아민 아르살라[A] 네마툴라 샤흐라니[A] 카림 할릴리[A] 하지 압둘 카디르[A] |
}}}}}}}}} | ||||
경제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통화 | 아프가니 | }}}}}}}}} | |||
외교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남북수교현황 |
대한민국 1973년 12월 31일 수교 1978년 9월 17일 단교[11] 2002년 1월 31일 재수교 북한 1973년 12월 26일 |
}}}}}}}}} | |||
단위 | ||||||
시간대 | UTC+4.5 | |||||
여행경보 | ||||||
여행금지 | 전 지역 |
[clearfix]
1. 개요
2004년 12월 7일에 수립되어 2021년 8월 15일까지 존속했던 아프가니스탄의 공화 정체(政體)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계기로 탈레반을 축출하면서 탄생하였다. 2021년 미군의 철수 이후 탈레반의 공세로 인해 수도인 카불이 함락되면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정부는 붕괴하고 탈레반 과도 정부가 수립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12]2. 상징
|
|
2004년부터 2013년까지의 국기 | 2013년부터 멸망 당시인 2021년까지의 국기 |
|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국장 |
국가는 국가(아프가니스탄)이다.
3. 역사
3.1.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자세한 내용은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문서 참고하십시오.1991년 소련의 붕괴로 고립된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은 무자헤딘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멸망했다. 그러나 승리를 거둔 무자헤딘은 분열하여 다시 내전을 벌였고, 그 와중에 혜성처럼 등장한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대부분을 장악하여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세웠다. 하지만 아프간 북부에서는 북부동맹이 탈레반에 저항하고 있어 영토 전체를 장악하지는 못했다. 집권한 탈레반은 이슬람 원리주의에 기초한 폭정을 펼쳤고, 바미안 석불을 파괴하여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01년 9월 11일 9.11 테러가 발발하고 테러의 주모자 오사마 빈 라덴과 그가 이끄는 알 카에다가 아프간의 탈레반들과 연합했으며 그들이 아프간에서 신변을 보호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한번 뜨거운 감자가 된다. 미국은 탈레반에게 이들의 신변을 넘겨 줄 것을 요구했으나 탈레반은 이를 거부, 결국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발발한다. 미국이 아프간에 군사를 투입하면서 탈레반 세력은 카불, 칸다하르 등 주요지역에서 축출당하였다.
침공 자체는 한 달 만에 미군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금방 끝났고 이듬해인 2002년 7월 13일 하미드 카르자이를 대통령으로 하는 아프가니스탄 과도정부가 수립되었다. 이 후 2년간의 민간정부 수립 과정을 거쳐 2004년 12월 7일,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미군과 NATO군의 침공에 정권을 잃어버리다시피한 탈레반은 산악지대로 숨어들어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에 저항했다. 결국 미국도 나토도 견디질 못하고 2014년부터 치안권을 아프가니스탄 정부에게 넘겨주고 서서히 철수하고 있다. 즉 미국은 여전히 산발적인 전투를 치르고 있는 상태이다. 전쟁이 언제 종전된다는 가망도 없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병력 지원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있다. 현지 정부의 치안 병력인 군대, 경찰, 민병대도 수틀리면 언제 정부군의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즉 미국에게는 2017년이 되어서야 공식 종전한 이라크 전쟁만큼이나 미국의 발목을 잡는 소모적인 장기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우익들은 베트남 전쟁을 굳이 언급하면서 아프가니스탄전 역시 미국이 진 게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결국 "못 이기고 철군하는 게 진 거 아니냐?"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미국의 논객 토머스 프리드먼이 "결국 미국은 승자인 탈레반과 협상하는 게 전쟁 끝났다고 한 것이다."라고 비판하였을 정도이다.
사실 미국을 몰아낸 과정만 유사할 뿐이지 현재 처한 정치적 상황이나 여러 가지들을 종합해서 비교해보면 오히려 베트남에게 모욕일 지경이다. 베트남은 종전 이후 국민 통합에도 어느 정도 성공하고,[13] 베트남 전쟁으로 황폐화된 국토와 경제를 다시 재건하고 이후 개혁개방 정책으로 동남아시아에서 신흥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여 그럭저럭 살 만한 나라가 되었지만, 아프가니스탄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그리스 등 현재 자국내에 주둔 중인 서방 외국 군대가 철수하면, 다시 탈레반이 정권을 찬탈하여 탈레반 정권 1기 시절이던 1990년대 중후반 및 2000년과 같은 지옥도가 재현되거나 아니면 아프가니스탄 정부군과 탈레반, IS와의 내전으로 죽고 죽이는 무주공산이자 남아시아판 리비아/시리아/소말리아/예멘/콩고민주공화국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14] 일각에서는 베트남군이 철수한 이후의 캄보디아처럼 미군이나 서방군대 철수 이후에 폐지되었던 바라크자이 왕조로의 왕정 복고 가능성을 거론하는 이들도 있다. 바라크자이 왕조가 복고되면 민심을 수습할 수 있을 거라고 진지하게 믿는 사람도 많다.
3.2. 공화제 기간
문화적으로 그나마 자유로워졌다지만 새로 들어선 신정부 또한 부패하기 짝이 없어서 외국정부로부터 원조금을 대거 횡령하는 등 국가발전보다 이권창출에 열을 올리는 모양새이며[15] 탈레반 세력들이 완전히 소탕이 된 것도 아니라서 이들 세력이 수시로 테러를 벌이는 등 치안은 불안하여 전후 복구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판이라 신정부에 대한 염증이 깊어지고 있다.아프간은 외국인 납치가 빈번하게 발생되고 2016년 12월 20일에 스페인 국적의 국제적십자위원회 직원이 납치되는 등 치안도 불안한 상황이다. #
그리고 아프간은 내전이 격화되면서 11개월 만에 1만 8천 명의 군경사상자가 발생되고 아프간 정부가 통제하는 영토는 6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 아프간은 내전을 겪고 있으면서 사상자가 1만 5000명에 달했고 이 중 30%가 어린이 사상자였다. #
게다가 최근 들어서면서 아프간에 ISIL 일명 IS가 진출하면서 아프간에도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IS는 탈레반에서 사람들을 빼오며 탈레반의 분노를 샀고 결국 탈레반과 IS가 서로에 대해 성전을 선포하기에 이르며 피의 보복이 지속되는 것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탈레반의 공세와 함께 다에시의 공세로 인해 무차별 공격이 발생되고 있다. #
2017년 5월에 카불에서 테러가 발생하자 카불과 헤라트 등 아프간의 주요도시에서 테러를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
그리고 테러가 자주 일어나면서 아프간에서도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되었다. #
그리고 아프간에서 일어난 테러로 150명이 사망하자 탈레반 정권이 붕괴한 이후 최악의 테러로 기록되었다고 2017년 6월 6일에 가니 대통령이 밝혔다. #
아프간은 상반기에 1,662명이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 테러로 인해 사망했다. #
거기에다 다에시에 의한 공격이 자주 일어나고 심지어는 다에시가 득세하면서 일부 탈레반 조직원들이 아프간 정부에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일이 발생되고 피란민 수천 명도 발생되었다. # #
그리고 아프간내 다에시 지부가 부상하면서 종파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
아프간에서는 다에시, 탈레반에 의한 테러가 자주 일어나고 거기에다 치안도 불안정한 상황에서 아프간 주민들이 내전지역을 가로질러 평화요구행진을 진행했다. #
2018년 7월 1일에 아프간에서는 소수민족들을 노린 다에시에 의한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
#아프가니스탄은 계속되는 테러로 인해 2018년에는 이라크를 제치고 세계에서 테러 관련 사망자가 많은 나라 1위를 차지했다.[16] 그리고 지난해 아프간에서 민간인 사상자가 1만 명을 기록했다고 유엔이 밝혔다. #
2019년초에 미국 측이 결국 아프간 내 미군을 철군한다는 방침을 전하자 외신들은 우려를 표명했다. # 또한, 미국은 탈레반과 협상하면서 미군철수 및 여러 문제에 대해서도 협의했다. # 그러나 미군 철수가 18개월 뒤에 이뤄진다고 하자 탈레반 대변인은 부인했다. #
하지만 지칠대로 지친 미국 측과 새 적수 IS에게 밀려나는 탈레반 측은 현실적 요구 때문에 결국 휴전에 대해 원칙적인 합의를 했다. # 탈레반 측은 미군이 철수를 해도 아프간에서 권력을 잡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고 아프간 정부와 공존하는 방법을 찾겠다고 밝혔다. # 트럼프 대통령은 아프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미군을 완전히 철수시키겠다고 밝혔다. #
하지만 미국 상원측은 아프간에서 미군철수를 반대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예정을 보이고 있다. #
2019년 2월 6일, 탈레반은 미국 측이 4월까지 아프간에서 미군의 절반을 철수한다고 밝혔다. #
그러나 한편으로는 2019년 2월 14일에 미국의 패트릭 섀너핸 국방장관 대행은 나토와 합의 없이 철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러시아 정보당국은 아프간 북부에서 약 5천 명의 다에시 연계 무장조직원들이 활동 중이라고 주장했다. #
아프간 내에 불교 유적들이 많았었지만, 탈레반 정권 당시에 파괴된 유적들이 많았고 심지어 바미안 석불도 탈레반에 의해 파괴되었다.
|
|
|
훼손 전 | 폭파 당시( 2001년 3월)[17] | 훼손 후 |
문화재 보존의 필요가 제기되면서 파괴된 불상유적 등은 아프간 국립박물관에서 미국 시카고 대학교와 협력해서 복원에 나섰다. #
아프가니스탄 동부의 한 교도소가 다에시 조직원의 습격을 받아 죄수와 치안 병력 등 21명 이상이 숨졌다. #
3.2.1. 멸망 원인
그래도 이 나라도 좋은 시절이 있었다. 서구화 정책을 실시했었고 1960~70년대에는 미스 아프가니스탄[18]을 뽑고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도 나가던 매우 드문 이슬람권 나라였었으며 왕국시절인 1960년대까지는 다민족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땅이었다. 심지어 공화정인 1970년대까지만 해도 현대식 '아시아에서 가장 깨끗한 나라' '과거와 현대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땅' 다원주의의 성공모델이자 명상 명소였다. 1960년대 초에는 1인당 GDP도 우리나라보다 약간이긴 하지만 높았었다. 그야말로 천국에서 지옥으로 변한 것.
그러나 위와 같은 온건한 개혁을 이루어냈던 아프가니스탄은, 70년대 급진 공산주의 정당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의 쿠데타로 인해 혼란에 빠졌다. 국가의 상황을 파악하지 않고 공산 정권부터 수립하려다가 이슬람주의 지지자들의 반발을 샀고 이는 소련의 개입을 초래하여 나라 꼴을 엉망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오죽하면 자히르 샤 왕이 2002년 거의 30년만에 조국으로 돌아와 탈레반이 물러난 칸다하르를 둘러보고 "30년동안 내 조국이 이렇게 폐허가 되었단 말인가?" 라며 서글퍼했으며 결국 그는 2007년 93살로 세상을 뜨면서 죽기 전 지인들에게 "난 죽어서 알라에게 벌을 받게 될 것이오. 아름다운 곳을 이렇게 되도록 방치했으니...." 라고 두고두고 한탄했을 정도이다. 그나마 이때 죽는 바람에 탈레반이 장악하고 본격적으로 진짜 지옥도가 열린 아프가니스탄을 보지 않을 수 있었지만.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터지기 전의 아프간 모습과 그 이후의 지옥도는 할레드 호세이니가 쓴 연을 쫓는 아이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서 살짝 엿볼 수 있다.
역사란에서도 보듯 이 지역은 고대부터 서에서 동으로 가는 길목이었으며 현재도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인도랑 이란을 견제할 수 있는 거의 최적의 요충지이다. 이 지역은 그렇기 때문에 매우 큰 가치가 있다. 그러나 영토 대부분이 산지이니 공격하는 입장에서도 상당히 피해가 크다. 비단길이 지나가는 경로였던 터라 여러 민족들이 오고 가는 곳이었다. 그 말은 이 지역의 주민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복자의 군대들과 계속해서 전쟁을 벌이든가, 아니면 자기들이 정복을 하든가 라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고대에는 그리스계 왕조와 페르시아계 왕조의 지배를 번갈아 받았다. 이슬람이 도래한 후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나, 칭기즈 칸의 침공으로 몽골 제국, 일 칸국의 지배를 받는다. 일 칸국이 무너진 후에는 티무르 제국, 사파비-무굴 제국의 지배를 받는 등 정말 다양하게 지배당했다. 이렇듯 아프가니스탄은 19세기 해가 지지 않는 세계최강 대영제국을 상대로 세차례 싸워서 이겼고[19], 20세기 후반 초강대국 소련과 10년간 전쟁을 벌여서 승리했고, 21세기 지금 유일 초강대국 미국과 싸웠으며 결국 미국도 이기지 못하고 사실상 지고 나갔다. 무서운 나라다(…). 여기에 엮이고 나서 멀쩡한 나라가 없다. 몽골 또한 바미안 왕조만 박살내고 나머지 나라들은 항복을 얻어낸 것이지 여기에 머무르면서 지배하던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투쟁의 역사.[20]
이렇게 오랫동안 근성으로 외세와 싸운 역사가 있기 때문에 타국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상황 자체를 용납하지 못하며, 산악지대에 고립 분포되어 있는 수많은 민족과 부족들로 갈라져 있어 사람들도 지독히 배타적이다. 게다가 기나긴 내전을 겪으면서 부족들 간에도 계속 투닥대며 싸우고 있다. 어느 정도냐면 현지 정보원이 연합군에게 자기가 속한 부족과 적대관계에 있는 부족들을 테러 조직이라 제보할 정도였다. 결과는 당연히 민간인 대량 살상... 인구의 다수인 파슈툰족 자체도 파슈툰어를 할 줄 아는 부족을 파슈툰족이라 통칭하는 것이지 부족 내에서도 여러 파벌이 존재하고 서로 투닥대는 상황이니 말 다 했다.[21]
게다가 이 모든 문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탈레반은 파슈툰족이 아프간과 파키스탄을 걸쳐서 분포한다는 점을 이용해 파키스탄을 근거지로 다시 부활하였다(…).[22]
더불어 하도 많은 역사적 침입을 받다보니 무수한 인종이 뒤섞여서 지방 곳곳에서 자기들끼리 이뤄 살고 있는 점도 골치다. 이를테면 미국-아프간 전쟁 중 튀르키예[23]가 미국에 여러 도움을 준 것에 대하여 이슬람 보수파들이 비난하자, 한다는 변명이 군벌 가운데 하나인 압둘 라시드 도스툼이란 자가 튀르크계 형제라서 도왔다고 할 정도. 파키스탄에도 많이 살고 있는 파슈툰인, 오랫동안 아프간 산지에 살던 우즈베크인(우즈베키스탄의 원주민으로 주치의 후손), 투르크멘인(투르크메니스탄의 원주민인 오우즈 부족), 하자라인(몽골 제국의 원정 당시 따라온 튀르크계 군인들의 후손으로 완전한 북방 황인종이다. 몽골 제국의 군사력은 튀르크인이었고 그들의 후손으로 남은 자들이 하자라인이다) 등의 튀르크계나 소그드인(토카라인)의 후손인 이란계 타지크인 같이 언어와 문화까지 다른 이들이 뒤섞이면서 오랫동안 피튀기며 싸우고, 통합 자체를 해본 적이 없다는 점이 막장상황에 기여했다.
사실 미국은 최소 두 번이나 이 나라와, 그리고 어쩌면 스스로를 구할 기회가 있었다.
1990년대 초반에 소련군이 물러나고 아흐마드 샤 마수드나 압둘 하크, 아민 와르닥 같은 친서방 성향의 온건 이슬람 군벌들이[24] 아프간의 정권을 확실히 잡았다면 탈레반이 득세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9.11 테러도 없었을지도 모른다.[25] 그랬다면 21세기의 세계사가 크게 변했을 듯. 문제는 소련이 아프간에서 물러나고 냉전이 끝나자 미국은 아프간에 대한 지원과 관심을 끊어버렸고[26][27] 이는 아프간을 막장상태로 만드는 도화선이 되었다. 탈레반이 집권하는 결과를 낳았으니.
그리고 미국의 아프간 침공으로 이 나라에도 어쩌면 희망이 보였을 수도 있었다. 2002년 말경엔 탈레반이 사실상 궤멸 직전까지 갔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어 탈레반이 완전히 와해되었다면 지금 처럼 아프간이 막장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엉뚱한 데에 한눈을 파는 바람에 탈레반이 다시 세력을 모을 기회를 얻었고 상황은 또다시 막장으로 치달아 현재에 이르게 된다.
3.2.2. 당시 전망
위와 같은 서술을 보면 이렇게 막장인 나라에도 아예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2004년 첫 대선이 실시된 이후, 2009년, 2014년에 중단 없이 선거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카르자이가 힘 없는 정부, 막장 정부라는 평가를 받기는 하지만 민주적 대표성은 최소한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 2009년 대선에서는 카르자이가 재선되었다. 2014년 대선의 경우, 결선투표 끝에 아슈라프 가니 후보가 당선되었다. 결선투표에서 낙선한 압둘라 압둘라 후보는 부정선거 의혹과 재검표를 주장했다. 무려 2달에 거쳐 재검표를 진행하였고, 선관위는 아슈라프 가니 후보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후 두 후보가 만나 권력 분점에 합의함에 따라, 2014년 9월 29일 카르자이 정부는 막을 내리고 새로운 행정부가 출범하게 되었다.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기존에 없던 직책인 최고행정관을 신설해 총리격으로 두고 그 자리에 압둘라 압둘라를 임명했다. 아슈라프 가니는 전 재정부 장관으로, 서방세계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관료 출신이다. 아프가니스탄 인사 중에서는 친서방 인사로 분류된다. 탈레반의 반발과 공격 속에서도 투표장으로 나온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있는 한,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예전의 위용을 되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2016년 5월 30일에 아프간 정부는 전쟁으로 파괴된 1920년대에 지어진 옛 왕궁을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
하지만 2016년 7월 23일, 다에시가 카불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일으켜 8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정정불안이 야기되고 있다. # 게다가 다에시가 아프간에 영향력을 키우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 # 게다가 아프간 북부에서 다에시로 추정되는 무장단체에 의해 적십자 회원 8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
9월 30일. 탈레반 다음으로 큰 규모의 조직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반군 세력 '헤즈브-에-이슬라미 아프가니스탄'(HIA)과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
2017년 6월 14일에 계속되는 탈레반과 다에시의 테러활동으로 미국측은 미군 4천명을 아프간에 증파하기로 결정했다. # 그리고 나토측도 아프간에 추가 파병을 결정했지만, 전투임무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2017년 7월 14일에 미국 국방부는 지난 11일에 실시되었던 공습에서 아프간의 다에시 지부를 이끌던 아부 사예드를 제거했다고 발표했다. #
2017년 8월 28일에 퍼트레이어스 전 CIA 국장은 아프간 미군은 주한 미군처럼 장기 주둔할 것이라고 밝혔다. #
아프간은 2018년 10월 20일에 총선이 있을 예정이지만, 다에시와 탈레반에 의한 테러가 발생되고 있다. # 그리고 아프간은 미군과 아프간 정부군의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사상자의 수가 급증했다. # 그리고 아프간에서는 총선이 시작되었지만, 탈레반에 의한 테러가 발생되고 후보자들도 탈레반에 의한 테러로 희생되면서 투표 시한을 오는 2018년 10월 21일(현지시간)로 연장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
아프간에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을 감축한다고 발표하자 혼란을 빚었다. # 그리고 미국측은 결국 아프간내 미군을 철군한다는 방침을 전하자 외신들은 우려를 표명했다. # 또한, 미국은 탈레반과 협상하면서 미군철수 및 여러문제에 대해서도 협의했다. # 그리고나서 미군철수가 18개월뒤에 이뤄진다고 하자 탈레반 대변인은 부인했다. # 하지만 미국측과 탈레반측은 휴전에 대해 원칙적인 합의를 했다. # 탈레반측은 미군이 철수를 해도 아프간에서 권력을 잡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고 아프간 정부와 공존하는 방법을 찾겠다고 밝혔다. # 트럼프 대통령은 아프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미군을 완전히 철수시키겠다고 밝혔다. # 하지만 미국 상원측은 아프간에서 미군철수를 반대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예정을 보이고 있다. #
2018년 12월 26일, 아프간 선관위는 대통령 선거를 2019년으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
2019년 2월 6일, 탈레반은 미국측이 4월까지 아프간에서 미군의 절반을 철수한다고 밝혔다. # 하지만, 2019년 2월 14일에 미국의 패트릭 섀너핸 국방장관 대행은 나토와 합의없이 철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2월 25일에 카타르 도하에서 미군과 탈레반측은 17년에 걸친 내전을 끝내기 위한 평화협상에 나섰다. #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이 탈레반과 18년만에 휴전을 맺는 대가로 병력 수천명을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하지만 2019년 9월 7일에 카불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미군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되자 미국측은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을 중단시켰고 이에 반발한 탈레반은 더 많은 미군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워싱턴포스트는 2019년 12월 9일에 아프간 전쟁은 조작된 전쟁(!)이었고 온갖 거짓 정보로 포장해왔다고 보도했다. #
2월 29일에 미국과 탈레반은 도하에서 14개월이내에 미군을 철군하는 것에 합의했다. # 하지만 이에 대해 문제점이 생기고 탈레반이 재장악을 할 것이라는 우려도 낳았다. # 그리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하지만 탈레반측이 아프간 정부와 불협화음을 드러내며 서명 이틀 만에 정부군에 대한 공격을 재개하자 미국 측이 공습으로 반격에 나섰다. #
3월 9일 대통령취임식에서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과 압둘라 압둘라 최고행정관이 각각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혼란이 생겼다. #
아프간내 평화합의타결 후 후속프로그램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좌초를 겪고 있다. #
6월 18일 미국 중부사령부 케네스 프랭크 매켄지 해병대 대장은 탈레반과 맺은 평화협정의 일환으로 아프간 주둔 미군수를 8,600명으로 감축한다고 밝혔다. #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아프간 주둔 미군을 5,000명 미만이 되도록 감축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의 탈레반 포로 석방 결정이 나오자 평화협상에 나설 준비가 되었다고 밝혔다. #
9월 9일에 카불에서 부통령을 노린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
국제사회가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 19년째 평화와 안정을 위해 분투 중인 아프간 재건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기로 했다. #
이란의 중재로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대표단이 만나 테헤란에서 회담을 가졌다. #
탈레반의 세력 확대가 일어나면서 주민들중에는 무장을 하고 탈레반과 격전을 치르거나 아프간을 떠나는 현지 주민들이 늘고 있다. #
3.2.3. 정부의 항복과 붕괴
자세한 내용은 202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공세 문서 참고하십시오.미군이 철수한 이후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군 사이에 내전이 격화되고 있는데 초장에 탈레반이 파죽지세로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세력을 확장했던 것과는 달리 아프간 정부군이 미군이 버리고 간 장비를 수용한 것과 그동안 나름 재정비한 정규군은 나름 분투하며 2021년 7월 말 아프간 정부군과 친정부 민병대가 반격에 돌입하면서 전투는 막상막하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탈레반 세력의 공격에 함락당하며 파죽지세로 확대하면서 한 국가의 65%를 차지하면서 정부군이 다시 열세에 들어갔다. 탈레반은 점령 지역에서 여성들을 강제로 결혼시키거나 남성들은 강제로 징집시켜 병력을 충원하면서 계속해서 진격해내가자 아프간은 결국 수도 카불을 중심으로 최후 방어선을 꾸렸다.
8월에 접어들자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를 상대로 공세를 펼쳤고, 아프가니스탄군은 추풍낙엽처럼 쓰려졌다. 8월 6일 첫 번째 주도를 내준 이후 아프간군은 탈레반이 나타나면 도망치기 바빴고 탈레반은 매일매일 각 주의 주도와 대도시들을 점령해나갔다. 하루에도 몇 개의 주를 내주는 졸전을 벌인 아프간군은 위기에 몰렸고 미국도 이렇게 빠른 붕괴는 예상 못 하였는지 철수시킬 예정이던 3천 명의 병력을 다시 국제공항에 배치하여 미국 대사관 직원 철수를 위한 경호작전을 시작했다.
탈레반에 주요 대도시를 내준 아프간 정부는 카불에 고립되었고, 결국 8월 15일 탈레반에게 평화적으로 권력을 넘겨주겠다고 발표하며 사실상 항복했다. 이후 탈레반은 카불에 진입, 대통령궁에서 전쟁 종료를 선언하며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정권은 붕괴했다.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카불 함락 직전 해외로 망명했다.
3.2.4. 잔존 구 정부 세력들의 저항
자세한 내용은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 문서 참고하십시오.카불이 함락되고 아슈라프 가니 전 대통령도 국외로 도피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정부가 무너지자, 판지시르 주를 중심으로 잔존 정부군과 민병대가 합류하면서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NRF)이 조직되었다. 암룰라 살레 부통령은 저항을 계속하겠다며 헌법에 따라 자신이 대통령 권한대행임을 선언했으며 소련군과 탈레반에 맞서 싸웠던 전 무자헤딘/북부동맹의 지도자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인 아흐마드 마수드도 탈레반이 재집권한 아프가니스탄으로 귀국, NRF에 합류해 NRF군을 정비, 지휘하기 시작했다.
이후 NRF는 세력을 전국으로 확장시켜 장기전으로 돌입시키는데 성공하고 여러 저항 전선과 협력하여 탈레반과 지금까지도 치열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저항군의 존재와 무관하게 탈레반이 구정부 종사자 아무에게나 적폐몰이를 하며 마구잡이 숙청을 단행하고 파슈툰족 외에 다른 소수민족들을 차별, 아니 배제하려 들면서 결국 하자라인을 필두로[28] 곳곳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나 아프간 자체는 탈레반 지지가 확고한 남부 칸다하르 중심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소말리아나 콩고민주공화국 못지않은 무정부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NRF군을 완전히 궤멸시킨다 쳐도 탈레반도 결국 자신들이 멸망시킨 지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정부와 비슷한 신세를 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4. 정치
부패인식지수에서는 북한, 소말리아 등과 함께 최하를 달리던 국가로, 그 만큼 부정부패 문제가 매우 심각했다. 탈레반이 부활한 원인도 이 극도의 부정부패로 인해서 탈레반에 대한 소탕이 제대로 안된 것이 크게 작용했다. 인권보장이 아예 안되던 탈레반 1기 집권 시절에 비하면 어느정도 인권보장은 되었고, 의무교육이 대대적으로 시행되고 TV를 비롯한 대중문화 또한 부활하는 등 긍정적인 면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나았던 정도에 그쳤다는 것이 문제점이었다.이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서민층 대부분이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무학자들이 많았고, 비록 민영방송을 통한 부정부패 폭로는 주기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비판점이 제기되는데 그쳤을 뿐 결국에는 정부가 근절할 생각조차 하지 않아 근본적인 개혁에 이르지 못했다. 그나마 아프가니스탄에서 글을 읽고 쓸 줄 알던 이들이 바로 아프가니스탄의 토호이지 지역 유지이기도 했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말 그대로 아프가니스탄의 실권을 차지한 토호와 관료들 전체가 절대 부패했다.
우선 미국으로부터 매년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국방비를 지원받았고 이외에도 경제개발 명목으로 매년 60억 달러의 원조자금이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되었다고는 하지만 막상 이를 관료들이나 토호들이 국가발전이나 지역개발보다는 자기네 쌈짓돈 마냥 횡령해버리는데 급급했다. 이러니 결국 원조자금을 받은것에 비하면 경제발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1인당 국민소득은 중앙아시아에서 하위권을 차지하는 타지키스탄, 키르기즈스탄보다도 더 낮은 비참한 결과를 낳고 말았던 것이었다. 물론 탈레반 1기 집권시의 경제가 개판 오브 개판이었던 관계로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전반까지 1인당 국민소득이 150불에서 600불 안팍인 수준까지는 올라가기는 했다. 통계상의 경제성장률도 2010년대 중반까지는 높았다. 하지만 마셜 플랜마저 뛰어넘는 원조액수를 생각하면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경제성적이 마냥 좋다고 말할수 없었고 빈부격차가 매우 극심했다. 이들은 미국과 중앙 정부의 원조금을 해외로 이주한 친척들을 통해 해외 계좌로 빼돌리는 방식으로 돈을 모으는데만 열을 올렸고, 아프간 현지 인프라 개선은 보여주기 식으로 대충 이루어졌다. 두바이와 카타르에는 미국 돈을 떼먹고 졸부가 된 아프간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만약 아프가니스탄이 원조자금을 제대로 활용했으면 카타르,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같은 페르시아만 산유국 수준까지 올리는것은 무리더라도 이란이나 투르크메니스탄 정도의 중진국으로 만들어낼 포텐은 발휘할수는 있었는데 관료와 토호들이 제 욕심만 생각하다가 일을 제대로 망쳤다. 결국 이 때문에 아프간 내에서 공화정부에 민심이반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아프간 국민들도 탈레반에 당한게 있지만 저렇게 많은 원조자금을 받아놓고도 이 돈을 경제개발에 제대로 쓰지않고 횡령하거나 토호들에게 끌려가기나하니 정부에 대한 반감이 커진 것이다. 심지어 군인과 경찰들조차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러한 극심한 부정부패로 아프간은 자강에 실패하고 말았고, 탈레반에 대한 지지여론이 높다고 할수 없음에도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탈레반에게 속전속결로 밀리며 정권을 허무하게 내주는 계기가 되었다.
2010년 총선에 한 표를 행사한 유권자.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대통령제가 도입되었다. 2004년 첫 대선에서 하미드 카르자이 당시 자치정부 수반이 쉽게 당선되었다. 2009년 대선에서 재선되었다. 2009년 대선에서는 2위 압둘라 압둘라 전 장관이 30.59%라는 무시 못할 득표율을 올리기도 했다. 2014년 대선에서 아슈라프 가니 후보가 당선되었다. 하지만 2014년 대선은 부정선거 의혹으로 점철되었다. 1차 투표에서 1위를 했던 압둘라 후보가 결선 투표에서 역전당했기 때문. 결국 아슈라프 가니와 압둘라 압둘라 두 후보가 공동정부 구성에 합의하여, 아슈라프 가니가 대통령을 맡게 되었고, 압둘라 압둘라가 최고행정관을 맡게 되었다.
2020년 2월 29일, 도하 협정 체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주도로 미군 완전철수가 합의됐다. 하지만 정작 미국과 탈레반이 협의하는 중간 아프가니스탄 행정부가 여기에 전혀 끼지 못하면서 이 협정이 향후 아프가니스탄 정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아프간은 말그대로 막장이었는데 오랜 내전과 전쟁으로 수도 없이 피를 흘렸고 장기간에 걸친 전쟁과 외세 침략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이란이나 파키스탄, 인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 이웃 인접국가들을 떠도는 난민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탈레반과 정부군, 외국군, 여러 지역 무장 군벌간 전투와 유혈 충돌은 끓이질 않고 있고 탈레반 정권을 몰아내고 들어선 아프간 신정부도 탈레반만큼 종교 극단주의가 심하며 무능하고 부정부패로 찌들어 있는 등 나라 꼴은 그야말로 답이 없는 상황이다. 이런 현재의 모습에 수많은 아프간인들이 절망하며 희망을 잃고, 해외로 떠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비교적 자유롭고 평화로웠던 옛날 자히르 샤 왕정 시절이 살기 좋았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렇듯 일각에선 왕정 붕괴 후 내전과 유혈 대학살, 외세 개입, 침략으로 헬게이트로 전락했다가 1993년 왕정이 복고되면서 나름대로 안정을 되찾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캄보디아처럼 이 나라도 왕정으로 복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허나 32년간 거친 전쟁과 내전으로 찢어질 대로 찢어지고, 법보다는 군벌과 부족 세력들의 힘이 강력해지다시피 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왕정이 복고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물론 아프가니스탄이 왕정 복고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쪽도 캄보디아와 같이 국제연합(UN) 등에서 UN 평화유지군이나 감시단 등을 파견하여 분쟁에 개입한다면 캄보디아처럼 왕정복고 이후 지금의 심각한 내전 상황이 종결되거나 혹은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처럼 왕정 폐지 후 전국에 난립하여 온갖 폭탄 테러와 게릴라전, 약탈, 마약 판매, 양민학살 등을 자행하는 탈레반이나 여러 지역 무장 단체들이나 지방 군벌 세력들이 약화되어 붕괴될 가능성도 꽤 있다.
결국 2021년 탈레반이 대규모 공세를 펼쳤고 수도 카불에 입성함으로써 공화정부가 멸망하고 탈레반 정권이 다시 부활하였다.
4.1. 역대 대통령
5. 군대
자세한 내용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군 문서 참고하십시오.
[1]
다리어, Jumhūrī-yi Islāmī-yi Afġānistān
[2]
파슈토어, Də Afġānistān Islāmī Jumhoryat
[3]
금색 선이 아닌 검은 선 양식도 있었다.
[4]
그 외에
우즈베크어, 기타 30여 개의 방언도 쓰인다.
출처.
[5]
2012년 조사에 의하면
수니파의 비율이 90%,
시아파의 비율이 7%에 가깝다.
[6]
출처
[A]
아프가니스탄은 부통령 2명을 대통령과 함께 선출하였다. 이름이나 직함이 언급되지 않는 걸 봐서는 제1부통령에 비해 존재감이 거의 없는 듯하다(...)
[A]
[A]
[A]
[11]
공산정권 수립에 따른 단교
[12]
한국사에 비유하자면
나말여초,
여말선초와 어느정도 비슷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
[13]
현재에도 베트남에서는 북베트남과 구 남베트남 지역 사이에 지역감정과 경쟁의식이 존재한다고 한다. 자세한 건
지역 갈등/아시아 문서 참조.
[14]
실제로도 탈레반 정권 시절에 정치적 탄압과 피해를 받았던 사람들이 꽤 많기 때문에 그나마 차악에 가까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정부를 지지하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적지 않았다.
[15]
아닌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에 매년 60억 달러가량의 원조금이 지급되었다고 하는데 아프가니스탄 1인당 국민소득이 600달러라는 것을 감안하면 아프간 인구의 30%에게 한해 소득을 보전해줄 수 있을 수준의 엄청나게 큰 돈이다. 하지만 부정부패로 원조자금의 상당수가 빼돌려지면서 전후 복구 수준은 이에 못 미치고 여전히 대다수 아프간인들은 그 혜택을 베재로 받지 못한 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수준의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다.
[16]
그나마
이라크는 과거에 비하면 아프가니스탄보다는 다소 줄어든 편이다.
[17]
참고로 탈레반은 이 짓거리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욕을 처먹었다. 심지어 같은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게서도 문화재 훼손하지 말라는 공식 규탄을 받았으니.
[18]
1974년을 마지막으로 막장이 된 뒤로 사라졌던 미스 아프가니스탄은 2004년 30년만에 대회가 열렸으나 엄청난 반발로 정작 미스 아프가니스탄이 된 여성은 국적을 박탈당했다.
[19]
사실 미국, 소련과 달리 영국상대로는 비긴거라 할 수 있다. 독립 전까지는 결국 보호국 신세가 되고 말았고 1919년에 독립한 것도 1차 대전으로 영국의 국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독립 당시 전쟁에서 오히려 아프간 쪽이 영국의 만만치 않은 반격으로 불리했다는 것.
[20]
20세기 들어선 프랑스-일본-미국과 100년에 걸친 전쟁끝에 통일 독립국가를 건설하고 역시 전쟁으로 중공의 영향력 마저 몰아낸
베트남 정도가 비교 가능할 듯.
[21]
게다가 대부분의 파슈툰족은 탈레반을 증오하고 있으나 우습게도 탈레반 상당수가 파슈툰족 출신들이다.
[22]
사실 이 문제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과거
제국주의 시절
강대국들끼리 멋대로 그은 국경선이 문제이다. 파키스탄이 과거 인도의 일부로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러시아 제국이 인도양으로 향하는 통로를 노리고 남하하자, 양쪽이 협정을 맺어서 세력권을 분할했는데 이때 파슈툰족 거주지역을 반으로 뚝 잘라서 남쪽은 영국이 인도 식민지로 먹고, 북쪽은 러시아 세력권의 아프가니스탄으로 정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듀런드 라인과
그레이트 게임 항목 참조. 현재 파키스탄은
카라치,
라호르를 중심으로 한 남부
펀자브 출신들이 주도하며, 북부의 파슈툰족들은 파키스탄인이란 정체성이 거의 없다. 따라서 분리주의가 팽배하며 국경선이 의미가 없고 파슈툰족들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양쪽으로 맘대로 오가면서 활동한다. 탈레반과 알 카에다가 여기에 묻어서 인력과 물자를 옮기는 것이다.
[23]
당시 국명은 터키였다.
[24]
그렇다고 딱히 이들이 친서방, 친미로 보긴 힘들다. 소련과의 전쟁기에 미국의 지원을 전혀 받지도 못했고. 하지만 탈레반처럼 무조건적인 반미도, 현 아프간 정권처럼 무조건적인 친미도 아니고 '도움이 되면 손을 잡는다' 정도의 유연한 성향이라 실제 집권을 했다면 미국과도 무난하게 지냈을 가능성이 높다.
[25]
물론 아흐마드 샤 마수드가 만능 인물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압둘 하크와 함께 다민족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에서 민족 갈등을 줄이고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가지 계획을 세웠던 것은 사실이다.
[26]
사실 냉전이 끝나고 CIA도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은지라 도와줄 수 없었던 것으로 봐야겠지만.
[27]
톰 행크스가 주연한 2007년작 <
찰리 윌슨의 전쟁>이 이부분을 다루고 있다. 소련과의 전쟁기에 찰리 윌슨 하원의원은 동료 의원들의 전폭적인 협조로 수천만달러의 무기를 반소게릴라(무자헤딘)에 지원하는 예산안을 손쉽게 얻어냈지만, 막상 소련군이 철수하자 학교건설 지원예산 단 5만 달러는 의회와 언론의 무관심속에 완전히 묻히게 된다. 마지막에 '우리가 그 사람들을 전쟁터로 내몰았으니 책임을 져야한다'는 톰 행크스의 이야기가 인상적.
[28]
하자라족이 먼저 들고일어난 이유는 탈레반이 다른 소수민족들은 그나마 차별대우 정도만 하지만 하자라인은 증오하여 진짜로 인종청소를 하려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