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20:20

탈레반/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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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카불 · 바그람 공군기지 · 카불 국제공항 · 판지시르 · 바자라크
단체 탈레반 · 탈레반 과도정부 · 미군 · 파키스탄군 · ISI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 아프가니스탄군 ·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 · 아프가니스탄 마오주의 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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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재집권 이전3. 8월
3.1. 8월 15일3.2. 8월 16일3.3. 8월 17일3.4. 8월 18일3.5. 8월 19일3.6. 8월 20일3.7. 8월 21일3.8. 8월 22일3.9. 8월 23일3.10. 8월 24일3.11. 8월 25일3.12. 8월 26일3.13. 8월 28일3.14. 8월 29일3.15. 8월 30일3.16. 8월 31일
4. 9월
4.1. 9월 1일4.2. 9월 2일4.3. 9월 3일4.4. 9월 4일4.5. 9월 6일4.6. 9월 7일4.7. 9월 8일4.8. 9월 9일4.9. 9월 10일4.10. 9월 11일4.11. 9월 13일4.12. 9월 14일4.13. 9월 15일4.14. 9월 16일4.15. 9월 17일4.16. 9월 18일4.17. 9월 20일4.18. 9월 21일4.19. 9월 22일4.20. 9월 25일4.21. 9월 27일4.22. 9월 28일4.23. 9월 29일
5. 10월
5.1. 10월 1일5.2. 10월 2일5.3. 10월 3일5.4. 10월 5일5.5. 10월 7일5.6. 10월 8일5.7. 10월 10일5.8. 10월 12일5.9. 10월 15일5.10. 10월 17일5.11. 10월 20일5.12. 10월 21일5.13. 10월 22일5.14. 10월 25일5.15. 10월 26일5.16. 10월 28일5.17. 10월 30일
6. 11월
6.1. 11월 4일6.2. 11월 5일6.3. 11월 6일6.4. 11월 7일6.5. 11월 9일6.6. 11월 10일6.7. 11월 11일6.8. 11월 13일6.9. 11월 17일6.10. 11월 20일6.11. 11월 21일6.12. 11월 22일6.13. 11월 24일6.14. 11월 25일6.15. 11월 30일
7. 12월
7.1. 12월 1일7.2. 12월 3일7.3. 12월 4일7.4. 12월 5일7.5. 12월 18일7.6. 12월 19일7.7. 12월 21일7.8. 12월 22일7.9. 12월 25일7.10. 12월 27일7.11. 12월 28일7.12.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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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BBC의 최신 뉴스 현황

탈레반 치하 아프가니스탄의 2021년 내용을 정리한 문서.

2. 재집권 이전

미국과 탈레반의 평화협정으로 당초 2020년 12월 25일까지 미군이 철수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여러 차례의 연기 끝에 2021년 8월 31일[1]까지 철수하기로 했다.

탈레반 측은 6월 7일에 미군과 나토군의 통역과 군무원 등으로 일했던 아프간인 수천 명을 위협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 그러나 이를 믿지 못하는 아프간인 통역과 아프간인 군무원 그리고 그 가족들은 미국에 망명을 요청하였다. 결국 예상대로 탈레반이 민간인을 처형하고 인증샷까지 찍은 사진들이 유출되면서 이들에 대한 생존 보장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현재는 탈레반의 세력 확장을 우려한 주민과 민병대들이 다시 무기를 들어 탈레반과 국지적인 전투를 치르고 있는 상황이지만, # 탈레반은 미군의 철수 이후 파죽지세로 정부군을 무너뜨렸고, 수도 카불까지 진입하였다.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공식적으로 항복 선언을 하고, 과도정부 체제로 전환하여 탈레반에 정권을 이양하기로 하였다.[2][3] 가니 대통령은 전격 사퇴를 발표하였고,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해산되었다. 이로써 판지시르를 제외한 아프가니스탄 전역이 다시 탈레반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3. 8월

3.1. 8월 15일

파일:대통령궁탈레반.jpg
대통령궁을 장악한 탈레반 대원들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사실상 항복하면서 탈레반의 공세는 마무리되었다. 지난 14일에 가니 대통령이 성명을 낸 지 불과 24시간도 안 돼서 아프간 정부가 항복을 했기 때문에, 나치 독일 전격전[4]을 떠올릴만큼 정말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현지 시각으로 8월 15일 저녁, 탈레반 세력이 공식적으로 카불에 진입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CNN 보도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궁 고위 관계자는 '탈레반이 아직 카불에 진입하지 않았으며 현재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하면서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고, 미국 측과 탈레반 측이 그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정확한 협상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 #

유일한 탈출구인 공항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아 카불을 아직 탈출하지 못한 미국인들에게 주 아프가니스탄 미국 대사관에서 공항으로 오지 말고 대피소로 피하라는 공식 경보까지 나온 상황이다.

결국 탈출하는 자국민 및 외국인들의 신변 보장을 위해 일시적인 추가 파병이 고려되는 지경에 이르렀다.[5]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항복한 시점에도 탈출하지 못한 외국인들에 대해 자유로운 출국을 보장할 것이지만, 아프간에 남을 자들은 탈레반 측에 등록하라고 명령했다. #

탈레반은 당분간 아프간을 통치할 과도정부를 수립하면서, 과도정부 수반을 뽑을 계획을 밝혔다. 그 과도 정부의 수반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학자이자 전 내무부 장관인 알리 아흐마드 잘랄리(علی احمد جلالی, Ali Ahmad Jalali)가 임명될 것이며,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곧 사퇴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

탈레반 측에서는 "모든 아프간인이 참여하는 포용적 정부를 원한다" 라는 명분을 내세워 가니를 포함한 아프간 지도자들에게 함께 일을 하자는 요청을 하였으며, 이는 향후 자신들의 통치권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내부 기존 세력의 반발 및 외교적 압박을 최대한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의 발로로 분석된다. # #

3.2. 8월 16일

탈레반은 아프간 대통령궁도 수중에 넣은 뒤 전쟁은 끝났다며 사실상 승리를 선언했다. #

탈레반은 여성인권을 존중할 것이며, ( 부르카보다 편리한) 히잡을 쓰면서 교육과 근로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탈레반 정권 입장에서는 중동 각지의 이주노동자로 나가 있는 아프간인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보내는 송금이 주 외화 공급원이 될 수밖에 없는데, 대놓고 2001년 이전 수준으로 여성 인권을 퇴보시키면 국제 사회의 경제 제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인권 문제가 다시 퇴보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

탈레반 대변인 모하마드 나임은 알자지라와 인터뷰에서 "탈레반은 고립된 채 살고 싶지 않고, 평화적인 국제관계를 원한다"며 외부의 시선과 부정적 이미지를 굉장히 의식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 물론 현재까지는 말로만 이런 것일 확률이 높다. 실제 취재 결과 원칙상 여성은 종교 수업만 받을 수 있고, 그마저도 지켜지지 않아 실제로는 여학생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기자가 아이들한테 왜 학교에 못가냐고 물어봤더니 "탈레반이 그건 나쁜 거랬어요."라고 대답했다. #

게다가 누군가 뷰티살롱에 그려져 있던 여성모델의 사진을 지우는 모습까지 공개됐다. 해당사진은 항복 전후로 트위터에 올라왔으므로 상점주인이 봉변을 피하고자 자체검열을 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
파일:카불대피.jpg
아프간 탈출을 위해 카불 공항 보딩 브릿지에 몰린 아프간인들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 대거 집결하면서 아수라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 탈출하려는 인파가 몰리면서 16일 오후 모든 민항기 운항이 중단됐고, 공포와 혼란 속에 '비행기에 태워달라'며 활주로까지 장악해 미군이 경고 사격으로 쫓아내는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무기를 수거하고 업무 복귀를 촉구하고 나섰다. #

아프간 정부군 잔당이 조종하던 아프간군 군용기가 우즈베키스탄 영공에서 우즈베크군에 의해 격추되었다. # 조종사들은 비상탈출하였다.

3.3. 8월 17일

8월 17일, 탈레반의 실질적 지도자인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장악한지 이틀만에 아프가니스탄에 입성했다. #

카불에서 탈레반 정권에 저항하고 여성 참정권, 노동권, 교육권을 보장하라는 여성들의 시위가 진행되었다. #

이 날부터 거리에서 여성이 사라졌으며, 뉴스, 드라마가 중단되고, 종교 프로그램만 틀고 있다. # 그래도 일부 방송국은 아직 안 건드렸는지 TOLOnews 아리아나 뉴스는 정상 운영되고 있다. 심지어는 여성 앵커가 뉴스 스튜디오에서 탈레반 측과 인터뷰를 하기까지 했다. # 유튜브 영상

이 와중에 카불에 있는 놀이동산 범퍼카를 탄 탈레반 영상이 나오기도 했다. # 같은 날 셰베르간에서는 놀이동산을 서구 문화의 산물이라며 불질러 파괴해버렸다. #

카타르 도하에서 탈레반과 협상하기로 한 물라 압둘 가니가 그의 형제 셰이크 아둘 하캄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로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이미 국민을 버리고 도망가 비겁자 소리를 듣고 있는 그들이 갑자기 아프가니스탄으로 귀국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귀추가 주목된다.

탈레반 측은 인권 유린은 없을 것이니 새로운 정부에 협조하라며 전국에 사면령을 내렸다. # 하지만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뒤, 공포통치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

탈레반 대변인이 생방송 중인 아프간 출신 BBC 앵커에게 전화를 걸어 투석형, 사지절단형 등의 샤리아 체제의 강력한 부활을 예고했다. # 게다가 절도를 저지른 남성들의 목에 올가미를 채우고 짐승처럼 끌고 가는 모습이 공개됐다. #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우리는 모든 군사 물품이 어디로 갔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 중 상당수가 탈레반의 손에 넘어갔다고 밝혔다. # 탈레반에 넘어간 군사자산이 약 10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3.4. 8월 18일

8월 18일, 러시아 매체 리아노보스티는 부통령 중심의 정부군이 카불 북부 파르완 주의 일부를 재탈환했으며, 우즈베키스탄으로 도주했던 국방장관 도스툼 역시 1만의 병력을 재규합하여 판지시르로 이동중이라고 카불의 소식통을 통해 전했다. #

탈레반 대변인인 자비훌라 무자히드는 17일, 수도 카불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프간 전쟁은 종료됐다고 선언했다. # 이슬람법의 틀 안에서 여성의 권리를 존중할 것이라면서 여성의 취업과 교육도 허용할 계획이라고 말한 상태이다. 중국을 의식한 듯 아편 대신 대체작물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견도 밝혔다. #[6]

탈레반 대원들에게 탈레반의 아프간 재집권을 축하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 그러나 일부 탈레반 대원이 부르카를 쓰지 않은 여성을 총살하였다고 한다. #

바미안주에 있던 하자라족 지도자 압둘 알리 마자리의 석상이 탈레반에 의해 파괴됐다. #

낭가르하르주의 주도인 잘랄라바드에서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국기를 들고 행진하던 시위대에 발포해 2명이 사망했다. #

아프간이 점점 혼란스런 상황에 빠지면서 내전의 조짐이 보이고 있고,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들까지 아프간에 진출했다. #

탈레반 고위급 인사인 와히둘라 하시미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간은 이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며 이슬람법에 따라 통치될 것이라며 밝혔다. # 여성역할에 대해서도 율법학자가 결정한다고 밝혔다. #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며 히잡만 쓰면 여성의 외출을 가능하게 한다고 밝힌 탈레반이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을 총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

탈레반은 카불 인근에 있는 바그람 미군 기지를 장악하고, 기지 안에 수감돼 있던 재소자들을 석방했다. 아프간 정부가 관리하고 있던 이 교도소에는 최대 7,000명이 수감돼 있었다. 이 중에는 이슬람 극단 테러단체인 알카에다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 조직원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전선에 파르완주를 탈환했다.

3.5. 8월 19일

탈레반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경제 활동 재개를 압박하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 게다가 공항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여성과 아이들이 탈레반 대원들에 의해 채찍질을 당해 쓰러졌다. # 또한, 여성 사진에다 검은 스프레이를 뿌리는 등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 CNN 여기자에 대해 히잡을 썼음에도 얼굴을 가리라고 위협까지 했다. #

이틀 연속 집회에서 사상자가 발생했고 시위대는 탈레반의 퇴진을 외쳤다. #1 #2 아프간 여성들도 시위에 참가했다. #

외국인들이 카불을 떠나는 데 전적인 지원을 제공하면서 기존 약속을 지키고 있다고 탈레반 관리가 주장했다. #

19일부터 수도 카불에서 저녁 9시 이후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

8월 19일, 독립기념일을 맞아 아프가니스탄 곳곳에서 산발적인 소규모 반 탈레반 시위가 진행되었다. 시위대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국기를 들고 거리를 행진하였고, 아사다바드에서 탈레반이 시위대에 총격을 가해 수 명이 사망하였다. # 카불에서도 시위가 발생했다. # 그리고 탈레반의 잔혹한 행위가 공개되고 있다. #

3.6. 8월 20일

탈레반이 서방권 언론 기자들을 총살하고 그 가족들까지 연좌제로 묶어서 협박 처벌하고 있다.[7] # #

아프간 국영방송 RTA 파슈토어 방송국 진행을 맡았던 여성 앵커인 샤브남 다우란이 방송국 출입금지와 함께 탈레반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1 (영상) 아이러니하지만 정작 이 뉴스를 보도하는 톨로뉴스에는 여자앵커가 계속 정상적으로 출근하고 있다.

탈레반은 지방 경찰청장을 처형한 것으로 알려졌다. #

미국의 학자이자 무려 11명 아이의 어머니가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 후 로봇을 공부하는 유망한 아프간 소녀들을 극적으로 구조해 화제가 되고 있다. #[8]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전선이 판지시르 북쪽 pul-e-hesar를 탈환했다.

3.7. 8월 21일

카불을 장악하는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했던 CNN 방송 특파원 클라리사 워드 기자가 탈출을 하였다. #

YTN에서 사실확인을 하였고, 탈레반에 대한 일부 정보가 허위 정보라는 결론을 내렸다. #


아프간 바드기스주의 경찰청장 '하지 물라 아차크자이'가 탈레반에 의해 기관총으로 현지시각 18일 처형되었다. #[9]

탈레반이 외국인을 납치하지 않았으며 일부에 대해서만 아프간을 떠나기 전 심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탈레반 창설자 중 한 명으로 조직 내 '2인자'로 평가받는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이날 수도 카불에 입성했다고 탈레반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

3.8. 8월 22일


영국 스카이 뉴스에 따르면 카불 국제공항 외곽에 사람들이 몰려있던 중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이 탈레반을 연속으로 격파하고 바글란 주와 banu 지역을 탈환했다.

AFP통신은 탈레반이 카불 공무원들의 출근을 금지시켰다고 보도했다. 탈레반은 신임 장관 등이 임명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했다고 한다. #

주 아프간 러시아 대사인 드미트리 지르노프 대사는 탈레반이 저항세력과 대화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

탈레반 특수정예 부대 바드리 313이 미국의 이오지마 성조기를 조롱하는 듯한 사진을 올렸다. #

탈레반은 아프간내 20개 주 관료와 만나 협력을 논의했고 아프간 전역에서 대학, 학교를 열 수 있다고 밝혔다. #

탈레반 고위 간부 압둘 카하르 발키가 "우리는 당초 정치적인 해결책을 찾기를 원했고, 카불 점령은 계획되지 않았다"면서 수도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
영국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청바지 차림은 이슬람 복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탈레반 조직원에게 매질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아프간 청년들도 SNS에 글을 남기고 있다고 밝혔다. #

3.9. 8월 23일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이 한국 언론과의 첫 인터뷰를 통해 한국 정부에 국가 재건 지원을 요청했고 # 한국 등으로부터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받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

아슈라프 가니 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을 사면했으며, 귀국을 허용한다는 탈레반 고위 지도자의 발언이 공개됐다. #

탈레반은 하지 모하마드 이드리스를 아프간 중앙은행 총재 권한 대행으로 임명했다. #

탈레반이 미군을 도운 통역관 형제에게 사형을 내렸다. #

3.10. 8월 24일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장악한 후 처음으로 대규모 지도자 회의를 열었다. #

재무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 대행에 굴 아그하, 사드르 이브라힘을 각각 임명했다고 밝혔다. #

탈레반이 청바지를 입었단 이유만으로 한 남성을 태형에 처했다. #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부(CIA) 국장이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카불에서 비밀회담을 했다. #

아프간에서 탈레반의 폭력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앱이 나와서 화제가 되었다. #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탈레반은 24일, 카불 공항으로 이동하는 길에 대한 폐쇄 의사를 밝히며 "앞으로 이 길은 외국인에게만 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국외로 유출되는 아프간인 공학자와 의사가 너무 많다며 자국 인력 유출과 공항 주변 혼란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

3.11. 8월 25일

압둘 카윰 자키르를 국방장관 대행으로 임명했는데, 2001년부터 2007년까지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인물이다. #

아프간 톨로뉴스 소속 기자 지아르 야드가 오후 카불에서 취재 활동 중 탈레반 대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

3.12. 8월 26일

탈레반과 북부동맹군 사이의 협상에서 최종결의가 나올때까지 서로간의 공격을 중단하기로 했다.

한편 피난민과 탈레반 저지 병력들로 뒤엉켜 있는 카불 국제공항 정문 일대에서 IS[10] 자폭 테러가 벌어졌다. 폭발 직후 그 일대에 총격전이 벌어져 다수의 미군과 아프간인들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는 긴급 속보도 들어오는 중이다. 자세한 건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폭탄 테러 문서 참고.

3.13. 8월 28일

아프간 내 교사들이 탈레반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여학생들의 교육을 계속한다고 밝혔다. #

탈레반이 IS 조직원으로 추정되는 6명을 체포해 조사 중인데, 4명은 아프간인, 2명은 말레이시아인이라고 밝혔다. #

3.14. 8월 29일

탈레반이 아프간 가수 한 명을 살해했다. #

3.15. 8월 30일

탈레반은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이 같은 교실에서 교육받으면 안 된다고 밝혔다. #

탈레반과 인터뷰를 해 이목을 끈 TOLO NEWS 소속의 여성 앵커인 베헤슈타 아르간드가 결국 아프간을 탈출했다. #

3.16. 8월 31일

미군이 아프간에서 완전 철군했다. 이로써 미군은 2001년 9.11 테러 다음 달부터 시작된 아프간전의 20년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

탈레반이 미군 헬기를 사용하면서 사람을 매달아 놓은 사진(!)이 공개됐다. #

4. 9월

4.1. 9월 1일

탈레반이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의 운행 재개를 위해서 카타르 터키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이 카타르 도하에서 인도와 첫 외교회담을 가졌다. #

탈레반의 통치하인 첫날에 사람들이 청바지를 태우고 부르카를 입기 시작했다. #

4.2. 9월 2일

탈레반이 여성 경찰을 구타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

또한 탈레반이 새 정부를 발표 예정하고 있다.

4.3. 9월 3일

아프간에서 여성들이 권리를 보장하라는 시위를 했다. #1 #2

탈레반의 집권 하에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미용산업이 전멸했다. #

탈레반은 여성들의 노동과 인권은 보장한다고 밝히면서도 고위직에는 여성기용이 없다고 밝혔다. #

옌스 스톨렌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탈레반이 원조와 인정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음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4.4. 9월 4일

여성들의 시위가 계속되자 탈레반이 경고사격을 했다. #

탈레반 동부 군사위원회는 전직 아프간 군인과 경찰, 이슬람국가(IS) 대원의 탈레반 가입을 금지했다. #

시라줏딘 하카니와 압둘 가니 바라다르의 부하들 사이에서 총격전이 발생하면서 바라다르가 총상을 입고 파키스탄의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

카불 공항에서 3편의 국내선이 재개되었다. #

4.5. 9월 6일

임신 8개월째인 한 여경이 탈레반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

탈레반이 교육은 허용하기로 하지만, 남녀와 구별해야 하며, 니캅을 착용해야한다는 규정을 가졌다. #

탈레반이 파키스탄 공군의 항공지원에 힘입어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의 본거지인 판지시르 주도 바자라크를 점령했다. # 아흐마드 마수드 등 국민 저항 전선 지도부는 산악지대로 탈출하였지만 사실상 국민 저항 전선의 패배와 탈레반의 완승이 확실해진 상황이다. 하지만 신북부동맹이 헬기의 도움을 받아 바라자크시를 재탈환했다.

4.6. 9월 7일

탈레반 통치가 시작된 대학교내 강의실에서 남녀간 분리가 시작됐다. #

탈레반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시위가 확대됐다. #

4.7. 9월 8일

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가 아프간은 샤리아에 따라 통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

탈레반 정부 내각 구성이 발표되었다. 과거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정부에서 부총리, 외무장관을 지냈던 모하마드 하산 아쿤드 가 총리,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압둘 살람 하나피 가 부총리를 맡았으며 탈레반 초대 수장 모하마드 오마르의 아들 모하마드 야쿠브 가 국방장관, 테러조직 하카니 네트워크의 수장 시라주딘 하카니가 내무장관을 맡는 등 내각 전원이 파슈툰족 탈레반 간부들로 채워졌다. #

탈레반에 대해 여성들의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

4.8. 9월 9일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인해 과학기술이 사라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

탈레반 정권이 여성들의 시위를 금지시키고 여성 스포츠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려고 하고 있다. #

4.9. 9월 10일

한편 카불을 비롯한 탈레반 치하 주요 대도시에서 여전히 반 탈레반, 반 외세(파키스탄), 여성 시위가 멈추지 않고 있다. 탈레반 측은 이들에 대해 공포 사격과 채찍으로 맞대응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사상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도시 시민들과 탈레반 치안대 간의 갈등은 갈수록 깊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 #

4.10. 9월 11일

탈레반 정권이 여성들에게 채찍을 휘두르고 기자들까지 폭행했다. # 이런 와중에 카불의 샤히드 라바니 교대 소속 여대생 수백 명이 강의실과 거리에서 팻말과 탈레반 깃발을 들고 탈레반 체제 지지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

탈레반이 11일(현지 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에 국기를 올리고, 정부 출범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9·11 테러 20주년을 맞아 미국이 여러 곳에서 추모 행사를 연 가운데 진행된 이날 정부 출범 행사는 자신들의 승리를 자축하고, 서방에 대한 ‘도발’로 풀이된다. # 그리고 이날은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완전히 끝난 날이기도 하기 때문에 탈레반 입장에선 나름 승전기념일이다.[11]

탈레반의 집권에 따라 언론탄압, 인권탄압이 발생하고 있다. #

탈레반은 여성의 고등교육은 가능하지만, 남녀공학은 금지한다고 밝혔다. #

한편 미국이 나간 뒤에도 아프간 국민 저항 전선과의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는 중이다. 탈레반은 막대한 병력 손실을 입어가며 진격을 멈추지 않고 있지만, 오히려 다른 지역의 민병대와 구 정부군까지 들고 일어나면서 지방은 무정부 상태가 되고, 탈레반은 자기들 지지세력이 다수인 남부 지역과 카불 등 일부 대도시만 통제하는 모양새이다.

4.11. 9월 13일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이 “경찰, 정보요원, 기타 치안 담당 병력은 카불에서 근무하거나 수색 작업을 할 때 군복을 입도록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

4.12. 9월 14일

다이쿤디 주에 사는 하자라인을 영구추방하였는데, 그것도 모자라 칸다하르에 사는 주민 중 '두라니족'을 제외한 나머지 파슈툰족 계열 주민들을 추방하고 대신 파키스탄 탈레반을 이주시키겠다고 했다. #[12]

결국, 칸다하르에서 수천 명의 주민이 주지사 사무소 근처에서 길을 막고 행진하며 시위했다. #

아프간 여성들이 부르카가 아닌 전통복장을 입는 시위를 했다. #

탈레반은 스포츠 400개를 허용하지만, 여성 스포츠에 대해선 묻지 말라고 밝혔다. #

4.13. 9월 15일

아프가니스탄의 경제와 비축 식량 보유량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탈레반은 이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탈레반의 고위 인사들이 불과 1달 전에 내쫓아냈던 미국에게 직접 아프간이 경제 붕괴에 직면하고 있다. 부디 미국이 관대함을 보여줘야 한다고 읍소하기도 했다. @

4.14. 9월 16일

탈레반 2인자이자 과도정부 부총리로 임명된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정부 구성 과정에서 경쟁 세력과 갈등을 빚은 뒤 카불을 떠났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이후 탈레반 측은 바라다르가 현재 휴가 중으로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

4.15. 9월 17일

기존 여성부 건물에 '기도·훈도 및 권선징악부'(Prayer and Guidance and the Promotion of Virtue and Prevention of Vice)를 설치했다. #

4.16. 9월 18일

탈레반측은 남학생들의 수업은 허용하지만, 여학생들의 수업은 배제한다고 밝혔다. #

4.17. 9월 20일

탈레반이 여성 공무원에 대해 출근금지령을 내렸다. #

탈레반이 아프간 명소에서 오리배를 타고 있는 사진이 공개됐다. #

다에쉬가 탈레반을 대상으로 잘랄라바드에서 일어난 연쇄테러의 배후가 자신들이라고 밝혔다. #

4.18. 9월 21일

나머지 장,차관을 발표하였다. 보건부 차관 중 한 명만 하자라족이며 여성은 없다. #

아프간의 의료붕괴가 현실화되면서 여의사가 혼자서 40명의 환자를 치료하는 상황에 왔다. #

탈레반이 마약생산과 수출을 금지했지만, 여전히 아프간산 마약이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다. #

탈레반이 임명한 아프간의 임시 총리 등이 카불에서 러시아·중국·파키스탄이 보낸 특사와 회담했다. #

4.19. 9월 22일

탈레반 과도 정부가 뉴욕에서 열리고 있는 제76차 유엔 총회 참석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는데 전 정부가 임명한 굴람 이삭자이 유엔 대사의 자격을 박탈하고, 새롭게 임명한 대사의 유엔 총회 연설 승인을 요청했다. #

유엔이 아프간의 낙후된 의료시스템을 지원하기 위해 4500만달러(약 532억8000만원)의 자금을 긴급 지원했다고 밝혔다. #

아프간의 여성 태권도선수 7명이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에서 달아나 호주 멜버른에 정착했다. #

탈레반측은 손발을 절단하는 형벌을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

4.20. 9월 25일

헤라트에서 탈레반이 납치범으로 지목된 4명의 시신을 기중기에 매다는 장면이 공개됐다. #[13]

4.21. 9월 27일

탈레반 정권이 이발사들의 면도 금지령을 내렸다. #

탈레반 측이 대원들에게 SNS에서 사진 올리는 것을 경고했다. #

굶주림으로 빵을 훔친 소년이 탈레반에 의해 기둥에 묶이는 처벌을 당했다. #

4.22. 9월 28일

탈레반 정권이 대학 교수들과 총장들을 해고하고 탈레반 신학자들로 채우고 있다. #

탈레반 측이 남성의 면도금지령, 여성의 스마트폰 사용제한에 대해 공식적인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

카불대는 아예 여학생의 등교금지를 내렸다. #

4.23. 9월 29일

탈레반 정권은 바라크자이 왕조시절에 도입된 헌법을 과도정부 기간에 실시한다고 밝혔다. #

탈레반의 집권으로 아프간 내 성소수자들이 숨어 살고 있다. #

아프간이 경제난에 빠지자 아프간 여성들이 국제사회에 금융지원 재개를 호소했다. #

5. 10월

5.1. 10월 1일

휴먼라이츠워치(HRW) 따르면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후 32명 이상의 언론인을 구금한 것으로 나타났다. #

5.2. 10월 2일

탈레반 정권에 의해 최소 경찰 4명이 살해당하자 해외로 탈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5.3. 10월 3일

탈레반이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게 전기요금을 내지 못하면서 아프간내 전력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

5.4. 10월 5일

탈레반 3차 과도정부에서 여성, 소수민족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

탈레반 정권이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카불에서 영국측 대표, 이란측 대표와 만나 회동을 가졌다. #

탈레반 정권이 음악을 금지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아프간내 음악가들이 탈출하고 있다. #

5.5. 10월 7일

탈레반 정권이 여권업무를 재개하자 수백 명 이상이 사무소로 몰렸다. #

5.6. 10월 8일

서방권 국가들이 탈레반 정권을 거치지 않고 우회적으로 현지 주민들에게 달러 공급 계획을 비밀리에 세우고 있다. #[14]

5.7. 10월 10일

미국과 탈레반 정권이 카타르 도하에서 회담을 가졌다. #

발흐주의 여학생들이 학교로 되돌아갔다. #

5.8. 10월 12일

아프간의 의료시스템이 사실상 붕괴되었다는 외신보도가 나왔다. #

5.9. 10월 15일

칸다하르의 시아파 모스크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해 43명이 사망했다. 범인은 IS-K로 지난번 카불 국제 공항테러에 이어서 다시 한번 탈레반 체제에 도전한 것이다. #

법원 명령이 없을 경우 공개 처형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

5.10. 10월 17일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탈레반에 의해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

5.11. 10월 20일

탈레반이 공군 재건에 착수했다고 한다. # 미군 철수 당시 남겨놓고 간 헬리콥터 등을 수리하고 있다고 하며, 수리 진척도는 더디어 보이지만 수리가 완료되면 저항군을 상대로 사용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5.12. 10월 21일

탈레반 정권이 무고한 주민을 공격한 자살 폭탄 테러범 가족들에게 보상 토지를 지급키로 해 논란을 빚고 있다. #

탈레반 정권이 자폭테러단 리더와 대원들을 지역 경찰서장으로 임명했다. #

5.13. 10월 22일

탈레반 정권이 권선징악부 출범과 함께 여성부를 폐지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

5.14. 10월 25일

유럽연합측이 한 달 안에 카불에 외교공관을 개설한다고 밝혔다. #

심각한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6만6천여t의 밀을 배분하기로 했다. #

5.15. 10월 26일

카타르 도하시에서 중국-탈레반 고위급 회담이 개최됐다. #

최악의 식량난까지 이어지자 헤라트시에서 한부모가 500달러(!)를 주고 자녀를 판 일까지 발생했다. #

5.16. 10월 28일

카타르 도하에서 최태호 주아프간 대사가 13개국 대사 일행과 함께 아미르 칸 무타키 탈레반 외교부 장관 대행과 회동했다. #

5.17. 10월 30일

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가 2016년 이후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

낭가르하르주의 결혼식장에서 탈레반 대원 3명이 총격을 가해 3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부상당했다. #

탈레반 측은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세계적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 속뜻은 탈레반을 인정해주고 이전의 정부 때처럼 대규모 지원을 해주지 않으면 알카에다 같은 테러 단체를 다시 도와주겠다는 협박이다. 하지만 미국은 아프간을 점령하고 유지할 수 없어서 철군한 거지, 탈레반을 쓸어낼 수 없어서 철군한 게 아니기 때문에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입장이고, 오히려 물류대란을 비롯한 온갖 헬게이트로 선진국도 조금만 봉쇄가 더 이어지면 붕괴될 판에 어지간한 테러 같은 건 적극 신경쓸 여력도 없다.

6. 11월

6.1. 11월 4일

탈레반이 동성애자의 명단 확보 및 최고 사형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 이에 대해 아프간에 성소수 단체인 레인보우 레일로드에서 킬 리스트를 가지고 있어 우려를 표했다.

6.2. 11월 5일

탈레반이 구호단체에서 활동하는 여직원들 대다수의 활동을 금지시키자 논란을 빚고 있다. #

6.3. 11월 6일

여성 인권운동가가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

판지시르 공세실패와 다에쉬의 세력 증대로 탈레반이 병력확보에 나섰다고 한다.[15]

바미얀 주에서 두 탈레반 군벌들의 충돌이 발발하였다. 예상대로 저항군 측과의 전쟁이 장기간 지속되며 탈레반 사이에서도 통합은커녕 오히려 분열하는 조짐이 서서히 보이고 있는 듯하다. #

6.4. 11월 7일

6.5. 11월 9일

탈레반은 지방을 책임질 관리 44명을 임명했다고 한다. #

6.6. 11월 10일

탈레반은 이란 국경의 헤라트 인근에 국경초소들을 연달아 세웠다고 한다.[16]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17개주의 치안 책임자들을 경질했다고 한다.

6.7. 11월 11일

이란에서 이스마일 칸 아흐마드 마수드가 만나 양측의 동맹이 맺어졌다고 한다.[17] 탈레반의 전선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과 더불어 설사 이스마일 칸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여도 어느 정도 견제 차원에 있어 탈레반의 부담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6.8. 11월 13일

탈레반의 재집권 이후, 아프간내 어린이들이 매매혼, 홍역,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탈레반이 최근 공군을 재건했다며 다수의 A-29 경공격기, 블랙호크 헬기, MD530F 경공격 헬기, MI-17, MI-35 공격헬기 등을 현지기자들에게 공개했으나 정작 날아가는 건 블랙호크 1대, 러시아제 공격 헬기 1대가 전부이고 해외에 망명 중인 헬기 기체들과 조종사들의 송환을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며 국제 언론의 비웃음만 사고 말았다.

6.9. 11월 17일

탈레반측이 정규군을 창설하고 있다고 밝혔다. #

6.10. 11월 20일

탈레반측이 밀린 공무원 급료 3개월치를 지급한다고 밝혔다. #

탈레반 정권하에서 아프간 아동 500만명이 기아로 사망했단 소식과 함께 5명중 1명은 강제노동을 당하고 있다는 것도 알려졌다. #

6.11. 11월 21일

방송 관련 지침 8개 조항을 발표했는데 여성들은 TV 드라마 출연이 금지되고, 여성 언론인·발표자들은 방송 출연 시 머릿수건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이슬람 종교, 아프간을 모욕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코미디, 연예 오락 프로그램, 해외 영상은 방송이 금지된다. #1 #2

6.12. 11월 22일

탈레반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수준의 소식이 들어왔는데 바로 미국이 반탈레반 저항군인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에 항공기 20대, 블랙호크 헬기 20대 등 약 40여대의 항공기들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이 이러한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미국의 대중 견제 쿼드 동맹국인 인도의 영향이 컸는데, 인도는 미국에게 우즈베키스탄에 망명중인 아프가니스탄 공군 병력과 항공기 20대, 블랙호크 20대를 인도 공군과 타지키스탄 공군이 공동으로 주둔하는 GMA 공군기지에 배치할 것을 요구했으며 현재 미국과 우즈베키스탄 간의 협의가 진행중이다. 협의가 완료되는 대로 GMA 기지에 배치되면 부품은 미국이 제공하고 관리비용은 인도 공군이, 기체관리는 구 아프가니스탄 공군이 하는 형태로 기체들이 운영될 것이라고 밝혔으며 인도 공군은 기체가 기지에 인도되는 즉시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이 사용할 수 있게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아마 탈레반을 노골적으로 지원하는 파키스탄과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6.13. 11월 24일

탈레반 정권이 고위관료 27명을 임명했지만, 여성은 여전히 배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탈레반 치하에서 언론사 257곳이 문을 닫았다. #

6.14. 11월 25일

헤라트의 한 여자고등학교가 지역 탈레반을 설득해 여학생들이 교육을 받게 했다. #

6.15. 11월 30일

휴먼라이트워치는 탈레반 정권이 항복한 아프간 보안요원 몇십 명을 처형했다고 보고했다. #

7. 12월

7.1. 12월 1일

탈레반측은 미국과 양자회담을 가지면서 동결된 금융자산과 제재해제를 요구했다. #

알자지라는 이란 농민들이 국경을 침범한 줄 알고 탈레반군이 발포하자 이란군이 대응 사격을 했다고 보도했다. #

7.2. 12월 3일

매매혼으로 팔려나간 9살 아프간 소녀가 구출됐다. #

7.3. 12월 4일

여성 권리 신장을 위한 6개항의 특별 포고령을 발표했다. 성인 여성이 결혼하려면 본인이 동의해야 하고, 누구도 결혼을 강요할 수 없으며, 남편이 숨진 경우 누구도 재혼을 강요할 수 없고, 여성 스스로 재혼 여부를 선택하며 숨진 남편 등의 재산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명시했다.

재혼한 여성은 새 남편으로부터 결혼 지참금(Mahar)을 받을 권리가 있다.

아울러 아내가 여럿인 중혼자의 경우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따라 모든 여성에게 권리를 부여하고, 그들 사이에 정의를 유지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

7.4. 12월 5일

탈레반은 주변국에 망명기체들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저항군이 탈레반 보다 먼저 헬기들을 운영하면서 각지의 저항군 병력들에게 보급을 하고 심지어는 병력과 지휘관들을 판지시르로 모셔가고 나중에는 코만도 부대를 이용한 헬리본 작전을 벌여 탈레반 부대를 습격하는등 저항군이 먼저 공중자원들을 이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 11월 13일에도 나오듯이 국제적으로 무시당했으며 어느 나라도 단 1기도, 조종사 누구도 아프가니스탄으로 가겠다고 밝힌 나라는 없었기에 이번에도 똑같을 듯 하다. 러시아나 중국조차도 일절 무기 및 공중 장비 지원은 안하고 있는 상황.

7.5. 12월 18일

타지키스탄에 있는 아프간 대사관에 탈레반이 송금을 잘못해서 아프간 국민 전선에 78만달러 즉 약 100만 달러를 송금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비웃음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 # 종교 교리라는 율법만 알고 있으니 금융에 대해 탈레반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국제정치적 입장에서 탈레반의 외교적 직위가 얼마나 심각하게 부재한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다.

현재 탈레반은 필사적으로 공문을 보내서 송금액을 반환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타지키스탄을 포함하여 국제적 직위가 없는 탈레반을 위하여 그래야할 이유는 없어서 결국 78만달러는 그대로 아프간 국민 전선으로 갔다.

7.6. 12월 19일

탈레반측이 여권 발급을 두달만에 재개했다. #

7.7. 12월 21일

카불시에서 동결된 해외자산을 풀어달라는 시위가 일어났다. #

7.8. 12월 22일

CNN은 아프간에서 식량 위기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

국경없는기자회는 탈레반의 아프간 재장악 이후, 아프간의 많은 매체들이 해체됐다고 보고했다. #

7.9. 12월 25일

선거관리 업무를 맡은 독립선거위원회(IEC), 평화부, 의회 업무부 등을 해체했다. #

7.10. 12월 27일

탈레반 정권이 여성의 외출·여행에 대해 제한 조치를 도입하자 여성들이 반발하며 시위를 했다. #

7.11. 12월 28일

카불시에서 여성 30여명이 탈레반의 전 정부군 처형 등을 비난하며 정의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수백m를 행진하는 시위를 진행하다가 탈레반 대원에 의해 제지당했다. #

7.12. 12월 31일

탈레반이 면도 금지 지침을 내렸다. #


[1] 9.11 테러 20 주년이 되는 날인 9월 11일에 철수하려 했으나 탈레반의 반발로 8월 31일로 다시 당겨졌다. [2] 유튜브 아프간 정부 '탈레반'에 사실상 항복…탈출 인파 몰려 (2021.08.15/뉴스데스크/MBC) [3] 유튜브 아프간, 탈레반에 정권 이양…과도정부 수반 임명 / 연합뉴스TV (YonhapnewsTV) [4] 사실 전격전은 나치 선전선동부에서 프로파간다 목적으로 만든 이미지지 독일군에게 구체적으로 실체가 있는 전략 전술이 아니었다. [5] 아프가니스탄은 내륙국이라 직접 국경 넘어서 탈출한다는 것은 슈퍼맥스 교도소인 흑돌고래 교도소 ADX 플로렌스 교도소에서 탈옥한다는 것과 같으며 탈레반을 적대시하는 이란은 몰라도 각국이 전부 긴장하고 경계태세를 갖추는 터라 탈출이 불가능하다. 탈북자야 마음만 먹으면 바다로 통해서 탈북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이쪽은 파키스탄 국경 주변은 물론 사방에 탈레반이라 불가능하다. [6] 그러나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탈레반이 자금확보를 위해서 양귀비재배를 활성화하면서 현재 아프간에는 상당한 마약중독자들이 있으며 탈레반 내부에서도 마약카르텔의 세력이 강해서 마약이 3국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는 어렵다. [7] 당연히 서방권 출신의 기자가 아닌 서방권 언론사 소속 아프간 기자들을 말한다. [8] 이들은 단순 공학도가 아닌 로봇기술을 다루는 전문가들이다. 그런 전문가들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하고 죽이려 하니 탈레반이 얼마나 국가발전에 무지한지 알 수 있다. [9] 한 사람 죽이겠다고 수없이 많은 탄환을 박아넣고,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체에 총을 더 쏘는 고인모욕까지 저질렀다. [10] IS당국은 자기들이 저지른 테러였다고 한다. [11] 조 바이든 대통령은 8월 30일까지 미군의 철수를 완료하였으나 완전철수를 9월 11일로 정했으므로, 그 이전까지는 기술적으로 연장된 전쟁상태였다. 물론 아프가니스탄 정부와의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기존 정부는 붕괴되었고, 국민전선은 구 정부 인사들이 만든 다른 군사집단이므로 내전상황일 뿐이라는 게 탈레반 측 입장이다. [12] 파슈툰족 항목에서 보듯, 세부적으로는 여러 수많은 부족으로 나뉘어져 있는 부족 연합체를 뭉뚱그려 부르는 명칭이다. 그 중에서 큰 부족은 가장 주류인 길자이족과 두라니족 외에도 카를란니족, 사르반니족, 구르슈트족이 있고, 세부적으로는 더욱 복잡하다. 역사적으로, 목축 중심의 길자이족이 외세와의 전쟁을 담당하며 몸빵을 하는 측면이 강했다면, 농경 중심의 두라니족은 그 사이에서 정치적 실리를 취하는 형세였다. 그런데, 칸다하르에 사는 파슈툰족은 주로 '아착자이족' 계열인데, 2일 안에 집을 비우라고 해서 날벼락을 맞은 꼴이다. 이건 두라니족이 미친 짓을 했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게, 당장 길자이족만 해도 아프간 전체 인구의 20 - 25% 정도나 되고 탈레반 내부에선 더욱 비중이 크다. 그런데 두라니족은 당장 길자이족도 여유롭게 제압할 실력도 되지 못하면서 나머지 비-두라니계열 파슈툰족 전체를 격분시키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이건 반-탈레반 저항군 입장에선 아주 좋은 선전거리일 수 밖에 없는데, 온갖 부족들이 잘게 나뉘어져 이합집산하고 싸우는 아프간에서 유일하게 부족들이 단합하는 것이 바로 반파키스탄 감정이다. 반면에, 안 그래도 병력부족으로 남부 지방을 제외한 곳은 주요 도시들만 간신히 통제하는 판인데,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가며 각지의 반-탈레반 저항군 및 시위대와 싸우는 일선 탈레반 대원들은 사기가 엄청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대로라면 탈레반끼리 본격적인 내분이 벌어져, 아프간은 한도 끝도 없는 내전에 오랜 기간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13] 공식적으로는 교전중 사살된 납치범이라고 주장했으나 아프간은 과학수사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가난한 국가여서 현행범으로 사살된 게 아니라면 실제로는 누명을 썼거나, 아니면 아예 탈레반이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대놓고 죽이기 뭐하니 범죄를 날조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4] 문제는 지원되는 달러를 탈레반이 가로챌 가능성이 매우 높다. [15] 탈레반이 신병훈련을 1개월로 줄였다고 한다. [16] 이란으로 망명한 구 아프간군 장군 이스마일 칸이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에 합류하는 걸 막기 위함으로 보인다. [17] 이스마일의 세력은 이란으로 망명한 아프간 정규 육군이라고 한다. 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적지않은 규모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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