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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헤라트 주지사 모하마드 이스마일 칸 محمد اسماعیل خان Мохаммад Исмаил-Хан Mohammad Ismail Kh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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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32011><colcolor=#fff> 별명 |
헤라트의 사자 (Lion of Hera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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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6년 ([age(1946-01-01)]세) | |
아프가니스탄 왕국 헤라트 주 신단트 지구 | ||
민족 | 타지크족 | |
소속 정당 | 자미아티 이슬라미 | |
경력 |
아프가니스탄 국군 헤라트 지부 대위
1967년 ~
1979년 아프가니스탄 헤라트 군벌 1979년 ~ 아프가니스탄 헤라트 주지사 1992년 ~ 1995년, 2001년 ~ 2004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에너지와 물 장관 2004년 ~ 201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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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수니파 이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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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프가니스탄의 군벌, 정치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도화선이 된 헤라트 봉기를 주도한 인물로 이후 아흐마드 샤 마수드와 함께 소련에 맞서 싸우고, 공산 정권이 붕괴한 이후에도 다시 마수드와 힘을 합쳐 탈레반에 대항해 맞서 싸운 인물이다. 2021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정권을 탈취할 때 투옥되었으나 탈출하는데 성공해서 이란으로 망명, 샤 마수드의 아들 아흐마드 마수드와 함께 탈레반을 축출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2. 일생
이스마일 칸은 1946년 아프가니스탄 헤라트주의 신단트 지구에서 태어났으며 1967년 아프가니스탄 왕국 군대의 장교로 입대한뒤 후 1979년까지 대위로 진급해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1979년 일어난 반정부 시위인 헤라트 봉기가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반소시위를 하는 헤라트 시민들을 향해 정부는 무차별 총기난사를 통한 유혈진압으로 대응했고, 이에 이스마일 칸은 자신을 따르던 부하들과 함께 군을 탈영해 즉시 시민들의 편에 합류하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분노한 시민들이 소련인 및 소련군 군사고문단을 죽여서 효수하고[1] 이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2.1.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헤라트에 반소/반할크파 봉기에서 이스마일 칸을 포함한 정부군 인사들마저 탈영하자 당시 타라키 정부는 전투기 등을 동원하여 헤라트와 그 주변 지역 주민 24,000여 명을 학살하는 무리수를 두었다. 학살의 와중에서 탈출에 성공한 이스마일 칸과 그의 부하들은 부르하누딘 라바니의 반공 이슬람주의 정당 자미아티 이슬라미[2]에 합류하여 서부 사령부의 지도자가 되어 소련군과 싸웠으며, 1989년 소련이 철수한 이후에는 소련이 수립한 친소 아프간 정부군과도 싸웠다.2.2. 탈레반 집권기
이스마일 칸은 헤라트 주지사가 되어서 헤라트를 전쟁 이전 상태로 복구하는데 노력을 기울이던 찰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기 시작하고, 1995년부로 이스마일 칸은 아흐마드 샤 마수드와 함께 공동전선을 짜서 탈레반과 대항한다. 이스마일 칸은 자신의 우상화 및 언론 탄압 같은 문제가 있긴 했지만 여성 인권 관련해서 신경을 쓰는 등 나름 진보적인 면모도 없지 않아 있던 인물이었다.아이러니하게도 이스마일 칸이 칸다하르까지 공격하면서 세력을 넓히자 이를 시기했던 북부 세속주의 성향 우즈베크 군벌 압둘 라시드 도스툼이 헤라트를 공격하였고, 이스마일 칸이 도스툼을 피해 이란으로 망명하자 이 틈을 노리고 탈레반이 헤라트를 점령하였다.
2.3.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2001년 탈레반 정권이 붕괴되자 같은 해 12월 헤라트로 귀환하여 헤라트 주지사가 되어서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일했다. 이후 이스마일 칸은 2004년과 2013년 사이 에너지와 물 장관으로 임명되었는데 그가 헤라트를 떠난 이후 헤라트가 탈레반의 공격에 조금씩 뚫리기 시작하면서 중앙정부는 다시 그를 헤라트로 내려보냈고, # 복귀한 이스마일 칸은 사실상의 군벌로서 헤라트를 통치하기 시작했다.하지만 결국 헤라트는 함락되었는데,헤라트 함락은 정말 정부군으로서는 결정타였다.이스마일 칸이 원체 유능하고 명망도 높았던지라 정부군과 이스마일 칸의 군벌, 헤라트 민병대가 힘을 합쳐 7월 30일 하루 동안 선제 공격으로 무려 탈레반 455명을 사살하고 현장지휘관을 포함 56명을 체포하였다. 미국의 공습까지 더해져 10일 동안의 헤라트 공세에서 탈레반은 무려 7000명의 병력을 잃어버렸고, 정부군과 이스마일 군벌 측은 반격에 나서 구자라 지역의 교차로와 헤라트 주 공항을 탈환하기 위해 공세를 펼쳤다.
이 공세가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탈레반은 남부, 북부지역을 잇는 간선도로를 빼앗기는 꼴이라 완전히 분단될 위기에 처했다. 즉 8월 4일 정도 시점으로 1~2주 내에 탈레반이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면 탈레반은 그 동안 대량 강제 징병으로 인한 부족들의 원한으로 인해 역전패를 당하고 전략적 패배를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
하지만, 헤라트 함락은 참으로 어이없이 벌어졌다. 헤라트의 정부군 수뇌부가 살마 댐을 시찰하러 갔는데, 내부에 잠입해 있던 탈레반에 포위를 당해 항복했고 그대로 탈레반으로 전향했다. 당연히 사령관이 전향했으니 정부군이 담당하는 헤라트 동부 전선이 붕괴되었고, 탈레반으로 전향한 207군단장이 헤라트 서부 전선에서 싸우고 있던 이스마일 칸을 반격작전을 해야 하니 동부 전선으로 부르는 기만책을 썼다. 헤라트 동부 전선으로 간 이스마일 칸 일행은 갑자기 탈레반에게 포위되었고, 같이 간 정부군은 그대로 탈레반에 뇌물을 받고 항복한다. 그 사이 헤라트 도심에 있던 시장은 탈레반이 살마 댐을 폭파시켜 헤라트를 수장시키는 수공 작전을 벌이겠다며 협박하자 어쩔 수 없이 항복해야 했다.
2.4. 202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대공세 이후
탈레반에게 억류되었으나, 결국 탈레반의 감시가 허술한 틈을 노려 이웃나라 이란으로 탈출했고,11월 11일 전선 총사령관 아흐마드 마수드와 이란에서 만났다. #
회담에서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전선과 이스마일 칸 군벌세력의 동맹,아프가니스탄 영토에서 탈레반 축출을 합의했다.
그리고 현재 그는 이란에서 군벌 세력을 재건 하고 있다.
3. 평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구 소련군과 아프가니스탄 나지불라 정부군, 알카에다, 탈레반 등 여러 적대 세력들과 싸우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나 압둘 하크 같은 다른 무자헤딘들보다는 다소 쳐지는 감이 없진 않아도 이스마일 칸 역시 1973년 왕정폐지 이래 전란과 혼란이 끊이지 않았던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를 대표하는 사람이었으며, 많은 언론에서 용맹함을 높이 사 "헤라트의 사자"라고 부르는 인물이다. #4. 외부 링크
[1]
몇 명의 소련인이 사망했는지는 증언들이 엇갈리는데 소련인 간호사 포함 1000천여 명이 죽었다는 소문도 돌았으나 영어 위백에 따르면 2~3명 정도라고 한다.
[2]
이 단체에는 아프가니스탄의 전설적인 무자헤딘 게릴라 지도자 아흐마드 샤 마수드도 소속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