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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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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사례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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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Habitus. 개인의 취향 배경 환경, 가치관, 분위기, 종교, 사상, 권력이나 계층과 같은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혹은 그런 것을 모두 포괄하는 용어. 가장 상위의 개념인 권력이 아비투스의 절정에 해당된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만든 단어. 원어는 'Habitus'인데, 프랑스어 발음대로 읽으면 'u'가 전설 원순 고모음 /y/으로 발음되어 '아비튀스'에 가깝지만, 외래어 표기가 복잡해져서 라틴어식 표기인 '하비투스'와 짬뽕이 되어 무슨 언어의 어휘인지도 모를 어정쩡한 표기가 되어버렸다.[1] 한국에서는 보통 '아비투스'라고 하며, 영어 발음은 '해비터스'에 가깝다. 습관을 의미하는 habit과 같은 어원임을 알 수 있다.

아비투스는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고, 짧게는 20~30년, 길게는 수세대간 내려온 경험과 문화가 축적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바꾸거나 극복하기는 어렵다.

2. 상세

하지만 상류층 행세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계급 구분이라는 것은 아주 잔인한 메커니즘이다. " 졸부"는 아무리 많은 돈을 벌게 된다 하더라도 자손 대대로 물려받은 무산계급의 촌티를 쉽사리 벗어버릴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생선용 포크 나이프를 사용할 줄도 모르며, 자기의 페라리 뒷유리창에 원숭이 인형을 매달아둘 것이고, 전용 제트기의 계기판에는 성 크리스토포로의 조각상을 올려 놓을 것이다[2]. 또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를 하면서 <매니지먼트> 같은 영어 단어를 서툰 발음으로 섞어 쓸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게르망트 공작부인[3] 같은 고상한 사람들에게서는 절대로 초대를 받지 못한다(그는 다리만큼이나 긴 요트를 가지고 있는 자기 같은 사람이 왜 초대를 받지 못하는지 모르겠다며 속이 끓을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中,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는 방법'[4]



개인의 습관 정도로 이해하면 편하다. 홍성민 동아대학교 정치학과 교수가 쓴 책인 '취향의 정치학'에서는 아비투스를 '습관'으로 썼는데 '아비투스'의 본 의미를 아주 대체하지는 못하나 어느 정도는 납득되는 번역이다. 아비투스는 뇌 속에 구조화된 성향체계를 말하는데 인간이 특정 행동에 대해 취하는 특정 제스처나 무언가를 다른 것에 비해 선호하는 경향도 이에 속한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이것에 의해 사회 이동이 한계에 부딪힌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아비투스는 사회적 관습도 포함하는데 이것은 계층마다 다르다. 그래서 똑같은 개인이 상류층에 진입하려고 해도 상류층 출신은 아비투스를 공유하고 있어 의사소통이 원활한 반면 하층의 경우 아비투스가 달라 의사소통이 어렵고 그로 인해 상류층 진입이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하층 계급은 수백만 원을 쓰며 해외여행을 가는 경우가 드물고, 따라서 하층 계급끼리 초면에 해외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상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중산층과 상류층에게는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 흔하므로 초면에 해외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사교적인 행동으로 여겨진다.

말투 또한 아비투스인데 종사하는 직업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서 완곡어법이 다르며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소외된다. 고급 문화가 퍼지지 않은 낙후된 혹은 고립된 지역일수록 귀가 소란스러운 말투의 주민을 만나기 쉬워 시끄러운 구습 중 악습에서 벗어나 조용히 살고 싶은 대학생과 지식인층의 반감을 사는 것과 같다. 정작 이들은 자신들의 평소 말투를 고치지 않고 정치인, 무고한 지식인 및 이웃을 욕하는 이중잣대를 보인다. 같은 편의점 출입구라도 아파트 상가와 낙후된 기피 지역 상가에 드나드는 주민들의 태도는 전체적으로 다르다.

제대로 된 상류층들은 폐쇄적으로 교류하고 사교계를 열며 서로 인맥을 다지고 사업에서 협력을 받는 등의 도움을 얻는다. 여기서 관습을 습득하며 그들만의 교류 방법등을 습득한다. 유럽에서는 오페라홀 등에서, 미국은 기금 모금 후원파티 같은 것이 있다.[5]

그러므로 하류층 출신이 계층 이동을 통해 중산층이나 상류층에 편입하였어도 자신의 아비투스를 중산층 내지 상류층의 아비투스로 바꾸지 못하면 그 그룹에서 소외되거나[6] 심지어 좌천되거나 도태되기도 한다. 자수성가한 사람의 조강지처 부인이 중•상류층 여성 사교모임이나 각종 모임에 끼지 못하는 일이 종종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것 때문이다.

다만 경제호황기 내지 기술혁신기에는 계층 이동이 훨씬 빈번해져서 신흥 중상류층들이 평소 대비 크게 늘어나게 되고 자연히 이들 신흥 중상류층들은 기성 중상류층들이 요구하는 자기들의 아비투스에 동화하는 것과 이를 거부할 시에 가해지는 불이익에 맞서 파벌을 형성하여 밥그릇을 사수하며 기존 주류층에 굳이 끼어들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밸리 걸이라 불리는 젊은 여성들이 대두되던 시점도 신흥 중상류층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와 겹치는데 밸리 걸들은 동시기 기성 중상류층 자녀들과 너무나도 스타일이 달랐지만, 기성 중상류층 문화에 흡수되거나 배척되지 않고 중상류층 사회에서 한 축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아비투스는 엘리트를 충원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적용된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엘리트 충원은 극소수 특권층을 위한 작은 문(petite porte)과 대중을 위한 큰 문(grande porte)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후자는 객관식 시험과 같은 정량평가 방식을 이용하는 반면 전자는 상류층의 아비투스를 통한 정성평가 방식이 애용된다는 것이다. 각종 면접, 추천서 등을 통한 채용 또는 입학이 이에 해당한다.[7]

이런 현상은 학교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는데 상징 폭력이 대표적 사례다. 오늘날의 학교에서 교사들은 대개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중산층의 아비투스를 가지고 있다. 또한 학교의 교육과정 역시 특목고 국제학교와 같은 특수한 사례를 제외한다면 대개 중산층의 아비투스에 부합하게 만들어진 편이다. 그래서 중상위층 계급은 다들 갖추고 있는 아비투스, 즉 입시위주 교육과 성과지향주의, 소위 말하는 스파르타식 사교육 경험, 그리고 게임 그만하고 공부나 하라는 엄마의 잔소리[8] 등을 공유하지 않은 하층은 학습이나 교우관계에서 불이익을 보게 되고 학업 경쟁에서 불리해지거나 학교 생활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게 된다. 또한 이는 부동산 시장의 시세형성에 크게 기여하여 소위 말하는 '아이 키우기 좋은' 학군지 동네가 그들만의 아비투스를 바탕으로 한 작은 사회를 형성하고 그러한 경험에 기반한 동질혼과 상속을 통해 계급 고착화로까지 이어진다.

부르디외는 안정된 사회일수록 계층이 고정되는 이유가 이것이라고 보았다. 속칭 '교양'이라는 것도 부유층과 일부 상위 중산층에 한정된 아비투스로 볼 수 있다. 이것을 쉽게 극복하지 못하고, 어느 정도 재력과 지위를 손에 획득했는데도 졸부라고 무시당하는 계층, 개인이 있다는 것도 주목해볼 점이다. 계층별 아비투스 차이의 예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루비 페인의 <계층이동의 사다리>[9]라는 책을 참고해볼 것.

어느 국가나 민족뿐만 아니라 지역적인 수준에서도 아비투스는 다를 수 있다. 이러한 아비투스 차이로 인한 상징 폭력은 언론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가령 면적을 설명할때 여의도의 XX배라는 표현이나, 태풍 등의 자연재해가 서울을 비껴가서 '다행'이라는 보도 등이 있다. 지방민에 대한 서울시민의 멸시( 이부망천, 서울부심 등), 서울 내부에서도 강남과 비강남권의 갈등, 경기도 남부와 북부의 갈등 등이 지역별 아비투스의 차이로 인한 것들이다. 여기에 블라인드에서 관찰되는 것처럼 직업이나 직장에 기반한 아비투스도 있으며, IT 대기업들이 많이 자리잡은 분당~판교, 삼성전자 및 협력업체의 주요 사업장을 중심으로 아파트촌이 형성되어 있는 광교~동탄,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말 그대로 공무원 인구가 많은 세종시, 중공업 및 조선업계 대기업들의 흥망에 따라 지역경제 전체가 들썩이는 창원, 울산 지역처럼 사회 구성원들의 직업적 특성과 지역적 특성에 기반한 아비투스가 절묘하게 뒤섞여 단순한 지역색 이상으로 더욱 균질한 아비투스가 나타나기도 한다.

3. 사례

한국은 8.15 해방 6.25 전쟁을 겪으며 전 국토의 황폐화 및 경제재건 등 극심한 사회변동으로 계층간 갈등이 완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가 조금씩 진전되며 상류 계층이 아닌 계층도 다양하게 분화하게 되고, 1999년을 전후해서 각 가정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정보가 자유롭게 유통되면서 중산층-상류층간, 중산층-저소득층간, 빈곤층 상호간의 아비투스 차이가 널리 알려지게 되자 상호간 갈등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이런 갈등은 단순한 경제적인 차이로 인한 갈등, 대립, 질시가 아니라, 몇세대에 걸쳐서 형성된 가치관과 환경적, 문화적 차이이다 보니 쉽게 극복하기 힘들다는 문제점이 있다. 한국의 경우 독재 정권 하에서 이른바 "총화(總和)"를 강조하였고 한동안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사회가 안정되고 계층이동이 어려워지는 21세기 이후로는 이로 인한 갈등이 점점 사회에서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각종 매스 미디어에 묘사되는 트렌드에서도 금수저, 올드머니 등의 신조어가 떠오르며 보다 '수준 높은' 아비투스를 숭상하는 풍조가 짙어지고 있다.

드라마 등에서 흔히 나오는 '못 배운 티 내지 마라', '이래서 근본 없는 것들은...' 등의 대사 역시 이 아비투스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4. 기타

소위 행복지수가 높다고 알려진 나라들이 언급되는데, 이러한 나라들은 대부분이 절대적으로 빈곤하다. 이 나라들의 전반적인 사회상을 곱씹어보면 국민들의 절대다수가 가난한데다 그만큼 아비투스의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서 상대적 박탈감이 덜하다. 그래서 행복지수가 상대적으로 높아보이는 것.

다른 예로 사람의 몸매도 아비투스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비만인 사람이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것도 그 주변인들도 비만체형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10] 이런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결심하게 되는 계기가 물론 성인병 등에 대한 위협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주변 환경이 갑자기 바뀌면서인 경우가 많다.[11]

서로 다른 가정환경에서 만나서 결혼했다가 시집, 처가와의 갈등을 겪거나, 이혼, 가정폭력을 당하거나, 동질혼이 성행하는 것도 아비투스 문제가 크다.

대중문화 역시 아비투스가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즐기느냐에 따라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로 나뉜다. 예컨대 클래식 음악이나 미술 작품 감상이 상류층의 고급 문화로 인식되는 한국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 한 대학의 미대 교수가 학교 노천 작업실에서 조각 작품을 만들다가 놔두고 집에 갔다. 그런데 다음날 와 보니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는데, 알고 보니 청소부가 고철더미인 줄 알고 고물상에 팔아넘긴 것이었다. 이 교수는 손해배상을 받아낼까 고민하다가 이 "무지한 사람" 에게 예술을 가르쳐 주고자 그의 조수로 고용하기로 했고, 이게 신문에 "미담" 기사로 실렸다.[12] 즉 무식한 경비원에게 '예술'이 뭔지 알려주겠다는 것인데, 이런 시각을 통해 예술과 문화에 대한 계급성을 드러내는 것이다.[13]

[1] 'h'음을 대개 생략하는 교회 라틴어나 로망스어권(루마니아 제외) 신 라틴어 발음을 따른다면 라틴어로 볼 수는 있다. 그러나 대체로 고전 라틴어 표기 및 발음을 따르는(가령 과거 외래어 표기법 용례집에 수록된 '라틴어 표기 원칙'의 사례가 있음) 한국어 용례 상, 이는 통상적인 라틴어 표기로 간주하기 어렵다. [2] 이게 왜 이상한지 모르겠다면, 외제차 뒷유리창에 인형뽑기로 뽑은 인형이 걸려있다거나 전용기 계기판 위에 달마상이 놓여있는 모습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일반 자가용이라면 몰라도, 최고급 외제차나 전용기에 그런 장식을 하면 '싼티'나 보이기 때문. 즉 '개 발에 편자', '가게 기둥에 입춘'과는 반대의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다. [3]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등장인물.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사교인들의 꿈은 게르망트 공작 부인의 살롱에 초대받는 것이다. 게르망트 사람들은 각종 은어와 사교 의례로 중요한 의견을 교환했는데,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게르망트의 살롱에 초대받지도 못하고, 초대받는다 하더라도 겉돌 수밖에 없었다. [4] 에코는 '대단히 복잡하고 지극히 긴급한 업무 때문에 자기들에게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 온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과시하고 싶어하는 자'들에 대해 언급하며 위 인용문을 썼는데(이 글이 쓰인 시기인 1991년에는 휴대폰이 귀한 물건이었다. 때문에 지니고 다니면서 으스대는 것도 꼴불견이었지만 공공장소에서 마치 자랑인양 통화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사람쯤으로 여겼다), '진짜로 성공한 사람들'은 집사 비서가 중요한 소식을 전달해주므로 굳이 전화를 받기 위해 휴대폰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으므로 휴대폰으로 업무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중산층이라는 내용이다. [5] 미국에서는 상류층 부인의 필수 코스나 마찬가지인데 상류층 부인이 자선기부 사업 등을 하지 않으면 경멸의 대상이 된다. 코크 형제로 유명한 세계적 거부인 데이비드 코크의 부인 줄라이 코크가 이걸 소홀히 했다가 조롱의 대상이 될 정도. 이후에는 뉴욕 사교계에서 부지런히 기부금을 후원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6] 예를 들자면, 행정공무원 임용이나 대기업 정규 사무직 입사 이후에도 하류층 특유의 거친 언어 습관을 버리지 못해 직장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는 것. [7] 그러나 부르디외의 이론을 근거로 수시나 학생부종합전형은 기득권 친화적이고 정시는 서민 친화적이라고, 또는 부르디외가 실력주의, 능력주의를 긍정적으로 보았다고 거칠게 이분법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더불어 행정학의 엽관주의와 작은 문 개념도 유사점은 있으나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다른 개념이다. [8] 얼핏 보면 우스갯소리 같지만, 의치한 SKY를 향한 한국 대학입시 도전에서 초등학생 및 중학생 시절부터 부모가 부지런히 좋은 학원을 알아보고 정보를 수집하며 아이를 단련시키는 것이 정석으로 여겨지는 세태를 떠올려보자. 남편 홀로 초고소득을 벌어들일 수 있는 상류층은 엄마가 굳이 직장에 다닐 필요 없이 육아와 사교육에 전력투구할 수 있지만, 맞벌이를 해야 하는 중산층 이하 학부모들은 대개 보습학원이나 태권도장을 아이들의 학업은 둘째치고 아이들을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일단 아무 곳에라도 맡겨놓기 위해 보낸다. 이런 현실은 정부에서도 인식하고 있어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 다중이용시설 규제시 태권도장 등의 일부 업종에는 다른 체육시설 및 사교육 시설에 비해 규제를 낮추기도 했다. 이런 외벌이와 맞벌이 가정에서의 사교육 양상 또한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으나 실존하는 아비투스의 예에 해당한다. [9] 원 제목은 A Framework for Understanding Poverty(Ruby K. Payne). 책에 나오는 사례 중 식생활을 예로 들면, 하류층은 "그거 양 많냐?", 중류층은 "그거 맛있냐?", 상류층은 "그거 예쁘게 나왔냐?"를 기준으로 삼는 식이다. 상류층 파티에서 얼음이나 당근을 깎아서 만든 봉황 같은 장식(중류층 이하의 관점에서 보면 '먹는 거 갖고 장난하냐'라는 말이 나올법한)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10] 예를 들어 부모가 비만일 경우 소아비만율이 4배 이상이다. [11] 예를 들어 연예인, 모델, 인플루언서나 그에 준하는 사람들이 많은 준거집단에 들어가게 되거나 혹은 중년들도 날씬한 부촌 지역에 살게 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12] 《중앙일보》 1995년 5월 14일, 「주사위」 [13] 김창남, 『인문학이 인권에 답하다』, 「드라마 주인공은 왜 사투리를 쓰지 않을까?」. 철수와 영희. 78~7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