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 팝 City pop / シティ・ポッ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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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048B5><colcolor=#FFB6C1> 기원 | 장르 팝, 뉴 뮤직(ニューミュージック), 소프트 록, AOR, 요트 록, R&B, 디스코, 펑크, 부기, 소울 음악, 퓨전 재즈 |
지역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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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 시기 | 1970년대 후반 |
시대 |
1970년대 후반 ~
현재 전성기 1980년대 |
파생 장르 | 베이퍼웨이브, 시부야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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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티 팝은 미국 AOR이나 남미쪽 스타일 음악의 영향을 받은 1980년대 전후 일본에서 유행한 도시적인 테마를 가진 대중 음악과 2010년대 이후 이와 유사한 음악 스타일의 곡들까지 통칭해 칭하기도 하는 넓은 범위의 구분 '명칭' 중 하나이다.[1]본 문서에 앞서, 오늘날 시티팝으로 분류되는 음악들은 AOR처럼 퓨전 재즈, 애시드 재즈, 신스팝, 소피스티 팝 등의 특징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장르적 독립성을 가진다고 보긴 어렵다.[2]
즉, 시티팝이란 명칭 자체가 음악적 특성 중심의 공급사이드의 장르 구분이라기보다는 감각적, 감성적 요소의 우연적이고 역사적 연합에 의존하는 소비사이드의 장르 구분이기 때문이다. 이에 같은 곡을 가지고도 누군 AOR, 퓨전 재즈라고 하고 누군 시티 팝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상적으로 2010년대 이후 시티팝이라고 한다면 이런 퓨전식 음악에서 City+Pop이라는 단어가 직관적으로 갖는 세련된 도시 이미지를 추출해 포지셔닝한 스타일이나 마케팅 용어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좀 더 적절할 것이다.[3]
2. 상세
1980년대[4] 일본은 미국의 영향도 겹쳐 선진적이라 할만한 서구권 팝 음악도 대거 수입하고 있었고, 이는 일찍이 핫피 엔도의 흥행이 입증하듯[5] 자연스럽게 일본 가요 전체의 질을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일본 가요계의 프로듀싱 능력도 진일보하게 되는데, 심지어 당시 시티 팝 계열 곡들의 마스터링과 프로듀싱 수준은 현대의 것과 비교해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이게 뭐가 놀랍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1970년대는 제대로 된 개인용 컴퓨터조차 등장하기 이전의 시절이다.[6] 오늘날에야 취미 음악인들조차 비싼 신디사이저나 음향 기기가 없어도 약간의 돈만 투자한다면 비교적 쉽게 PC용 가상악기로 편곡 또는 작곡을 할 수 있지만, 당시는 가상악기는 커녕 제대로 된 PC도 구하기 힘들던 시절이었다.이러한 기조가 절정에 달할 시기, 일본 가요계에는 AOR[7]로 대표되는 영미권 대중음악계의 최신 유행 장르들, 곧 재즈, 펑크, 디스코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곡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실제 당시 일본 음악계에서는 미국, 남미에서 활동하던 펑크, 퓨전 재즈 분야의 유명 뮤지션들을 일본으로 직접 불러와 자신들의 음악 작업에 적극적으로 세션으로 기용하거나 아예 미국, 남미 등으로 출국하여 현지에서 배우며 녹음까지도 했다.
이런 퓨전 재즈의 장르적 문법을 기반으로 한 야마하의 진출을 선두로 신디사이저와 전기악기, 이른 시기의 디지털 음악 등을 기반으로 짜여진 그루브한 진행의 일련의 곡들이 점점 소개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도쿄 등지의 대도시권에서 호응을 불러냈다. 이것이 이른바 오늘날 '시티 팝'으로 이름 붙여진 음악적 사조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시티 팝이라 불리는 음악들이 가장 대중적으로 소비되었던 1970~80년대 시기 일본에선 정작 해당 용어가 사용된 기록을 찾아보기 힘들다.[8] 시티팝이라는 명칭은 훗날 서구권 및 글로벌에서 영미(AOR),라틴팝 등과 일본팝(뉴뮤직/시티팝)을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거고[9], 당시 일본에선 뉴 뮤직이란 단어가 훨씬 유명했다. 다만 시티 팝이 대중적인 단어가 아니었던 탓에 이런 용어가 2010년대 들어서야 나온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으나[10], 적어도 단어 자체는 국내에선 1994년에 이미 음악적 유형을 설명하는 단어로 시티 팝이 사용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기사. 다만 해당 기사에도 시티팝은 90년대 일본 음악 사조로 설명하고 있고, 정작 오늘날 시티 팝이라고 부르는 종류의 음악들은 '뉴 뮤직'이라고 칭하고 있다.
'뉴 뮤직'은 1990년대 이후 현대의 모던-프로그레시브 계열 장르에 일부 특징만이 동화흡수되어 잊혀져 가는 음악이 되나 싶었지만 2010년대 후반 이후 유튜브의 영향력을 타고 Plastic Love를 중심으로 비슷한 양식의 음악들이 서구권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시티 팝'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에 영향을 받았는지 한국에서도 예전부터 일본 음악을 듣던 매니아들의 '나만 알고 싶은 노래', '나만 알고 싶은 가수' 수준을 벗어나 비로소 재조명 받기 시작했다. 사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에서 예전에도 이런 류의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은 제법 있었지만, 딱히 이게 '시티 팝'이라고 정의하고 부른 것도 아니었고 당시 이들 역시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음악적인 원류를 미국에서 유행하던 AOR류의 펑크, 퓨전 재즈, 블루 아이드 소울 등에서 찾았다.[11]
이렇게 시티팝은 한국에선 2010년대 이전까진 거의 인지도가 없던 단어였으나 시티팝이라는 장르가 국내외에서 재조명 받으며 상당한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특히 City + Pop이라는 뭔가 있어보이는 단어가 가지는 상징성 때문인지 이후 여러 음악에 시티 팝이란 단어를 적용해 해석하는 무리도 생겨났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듯 싶다. 퓨전 재즈처럼 장르를 분류하기 애매한 음악은 죄다 시티팝이라고 분류해버리는 식이다.
3.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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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나가이 히로시가 디자인한 오오타키 에이이치의 A LONG VACATION, 마츠시타 마코토의 FIRST LIGHT, 오메가 트라이브의 River's Island, 스즈키 에이진이 디자인한 야마시타 타츠로의 FOR YOU 앨범 커버. 시티 팝이 지향하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
전반적으로 낭만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짙다. 주된 악기 구성으론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기타, 신디사이저, 드럼, 색소폰 등이 있으며 필요에 따라 여타 다른 악기를 채용한다. 주제로는 주로 도시적이라고 여겨질 만한 분위기나 소재를 삼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대도시권에서 주로 유행한 시티 팝의 태생에서 기인한다. 그외에도 괌, 사이판과 같은 열대 해변의 분위기 또한 시티 팝의 주요한 주제로 작용했다.
그래서 사운드 측면에선 60년대 미국 밴드 비치 보이스 표 서프 음악의 영향도 짙은 편이다. 연장선상에서 여러 악기의 소리를 층층이 쌓아올린 비치 보이스의 사운드에 지대한 영향을 준 필 스펙터의 '월 오브 사운드(Wall of Sound)' 기법도 시티 팝 사운드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일본식 AOR이라 할 수 있는 뉴 뮤직 시티팝 시대를 연 나이아가라 레이블 뮤지션들의 음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레이블 수장인 오오타키 에이이치와 대표 뮤지션인 야마시타 타츠로 모두 자작곡 곳곳에 비치 보이스 오마주를 대놓고 첨가한 브라이언 윌슨의 팬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곡들은 마냥 세련된 분위기보다는 좀 더 나른하고 휴양지적인 소리를 지향했으며, 훗날 일본의 다운템포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시 펑크- 베이퍼웨이브 기조(특히 퓨처 펑크 방향의), 트로피컬 하우스가 참고하고 있는 이미지 또한 이러한 시티 팝의 면모에서 상당 부분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Carole Bayer Sager - It's The Falling In Love (1978)[12] | Ray Parker Jr. - A Woman Needs Love (1981) |
The Stylistics - Can't Give You Anything (But My Love) (1975)[13] | Keni Burke - Risin' to the Top (1982)[14] |
The Crusaders - Street Life (1979)[15] | Average White Band - Whatcha Gonna Do for Me? (1980) |
Phyllis Hyman - You Know How to Love Me (1979) | Billy Ocean - Whatever Turns You On (1980) |
필 스펙터와 브라이언 윌슨의 영향 외에도, AOR로 대표되는 구미권의 펑크, 디스코나 스타일리스틱스로 대표되는 필라델피아 소울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으며, 복잡한 베이스 주법, 적극적인 전기악기의 사용과 그로 인해 연출되는 특유의 그루브 등에서 흑인 음악 특유의 요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영향 받은 장르들 전반에 흐르는 끈적한 감성은 일본 아이돌 문화로 대표되는 주로 여성 보컬로 청량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경우가 많다.
시티 팝이 흘러간 음악 사조가 되어버린 현재, 상당수 리스너들은 이 즈음의 영향을 받은 곡들에서 뭔가 찬란하면서도 빛 바랜듯한 아련한 느낌이 든다는 것에 동의하는 듯 하다. 아무래도 80년대 특유의 낙관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고, 특히 일본에만 한정하자면 90년대 일본의 장기 경제 침체 이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대' 쯤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한 경향이 강한 듯 하다. 애초에 버블 붕괴 이전에도 "나라는 발전하는데, 나는 가진 집 하나 없고 우리의 마음은 공허하기만 해"와 같은 류의 클리셰적인 가사가 시티 팝에 많이 담겨있는 편이었다.[16]
곡적으로 보면, 시티 팝은 시대가 흐르면서 오늘날 그대로 듣기엔 좀 구세대적인 음악처럼 들릴 수도 있으나[17], 오히려 80년대의 색채가 강한 점이 구세대나 현세대 모두에게 그 시절의 분위기를 환기시켜 준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시부야계, 비주얼계 같은 일본 음악 트렌드가 그렇듯 형식상으로 콕 집어 분류할 수 없는 장르고 분위기상으로 분류하는 용어기에 명확한 분류 기준은 설명하기 힘들다. 대강 인식상으론 여유로운 템포와 도회적, 고전적, 노스탤지아적 분위기를 풍긴다면 시티팝으로 여기는 풍조인데, 저마다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일각에선 일본 70년대 말 ~ 80년대 전반의 노래들까지 시티팝으로 무작정 넣는 분류를 보이기도 한다.[18] 이는 요즘도 크게 다를 바 없어서 퓨전 재즈 형식의 노래라면 일단 시티 팝으로 넣고 보는 오분류가 빈번히 발생되는 편. 애초에 오분류라고 보기도 뭐한게, AOR이나 시티 팝이나 다 음악적 장르로는 독립된 장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음악적 특성 중심의 공급사이드의 장르 구분이라기보다는 감각적, 감성적 요소의 우연적이고 역사적 연합에 의존하는 소비사이드의 장르 구분이기 때문이다.
4. 대표 영상
시티팝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명곡인 타케우치 마리야(竹内まりや)의 Plastic Love | 시티팝의 사운드 확립에 선구적 역할을 한 야마시타 타츠로(山下達郎)[19]의 앨범 < FOR YOU>의 수록곡 SPARKLE |
일본 시티팝의 실질적 창시자 오오타키 에이이치(大滝詠一)의 앨범 < A LONG VACATION>의 수록곡 君は天然色 | 안리(杏里)의 悲しみが止まらない(I Can't Stop The Loneliness)[20] |
오오누키 타에코(大貫 妙子)의 4:00 A.M.[21] | 마츠바라 미키(松原みき)의 真夜中のドア〜Stay With Me |
5. 영향
1980년대가 저물어 가고 하우스를 위시한 일렉트로니카가 등장하자 이런 트렌드 흐름에 영향을 받은 음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시부야계가 대표적이다.최신 외국 장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시티 팝의 등장과 상당히 흡사하며, 또한 그 영향을 받아 전반적으로 특유의 도시적인 감성 또한 그대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즈음의 일본의 아티스트들은 기존 장르의 요소를 단순히 짜깁기해 넣기보다는 자체적인 테이스트를 선호했으며, 결과적으로 이 시기의 음악들은 시티 팝 시절의 방법론에서 한 발 더 나아가 DJ Krush, Jazztronik 등의 아티스트들을 배출하며 일본적인 일렉트로니카를 주창하기에 이른다.
먼 훗날에 퓨처펑크라는 베이퍼웨이브의 하위장르 음악의 샘플링 소재가 되었으며
2020년 초반부터는 aesthetic rap type beat의 샘플링소재로도 사용된다
5집 <Dawn FM> 수록곡 Out of Time[22] |
Tomoko Aran의 Midnight Pretenders[23] |
신스웨이브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수인 The Weeknd가 자신의 5집 앨범 < Dawn FM>에서 시티 팝 장르의 곡을 하나 수록했다. 이 곡은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아란 토모코(亜蘭知子)의 1983년 시티팝 싱글 "Midnight Pretenders"를 샘플링했다. 때문에 원곡의 작곡가인 오다 테츠로와 아란 토모코는 이 곡의 작곡가로서 Out of Time의 크레딧으로 이름을 올렸다. 위켄드의 샘플링 덕분에 일본 본토를 넘어 해외에서도 원곡에 상당한 관심이 쏠렸고, 이에 무려 39년이 지난 2022년 2월에 리스토어 버전으로 재공개가 되었다.
Out of Time에서는 원곡의 도입부와 중반부, 후반부 특유의 멜로디와 악기 코드를 그대로 따와[24] 계속 반복시켰으며, 이를 비트로 사용했다. 그래서 거의 흡사한 비트임에도 상당히 현대적이면서 R&B 느낌이 물씬 풍기도록 변화되었다.
미국 내에서도 시티 팝은 인디 음악 정도로 적당한 인기를 끌고 있었고, 레트로 붐과 함께 등장한 The Weeknd의 신스웨이브 붐 덕분에 7~80년대 일렉트로니카 장르 대부분이 메인스트림에 가깝게 인기를 얻던 중 공개된 곡이다. 덕분에 시티 팝에 익숙하지 않은 리스너들이 이 곡을 통해 시티 팝 장르에 대한 관심이 꽤 높아지기도 했다.
5.1. 한국식 시티 팝?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에서 시티팝이란 말은 단어적 정의와 역사적 정의가 구분될 필요가 있다. #우선 한국 가요계에서 시티팝이라는 용어 자체는 과거 인터넷 자료를 통해서 2000년대 초반부터 2016년까지 음악과 관련된 기사에 해당 용어는 총 10건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조차 2~3개의 언론이 연속 시리즈 기사를 쓴 경우이다. # 그러다가 2017년부터 언급 빈도가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시티팝 단어가 대중들에게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고, 시티팝이라는 단어는 2010년대 후반 이전까지는 한국에서 거의 회자되지 않던 단어였다. 따라서 상기되어 있듯 일본에서도 시티팝보단 뉴 뮤직으로 통용됐으니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과거 국내 1970~80년대 노래들을 펑크하게 현대적으로 리믹스한 노래들과 유빈의 숙녀같은 노래들이 SNS 커뮤니티에 시티 팝이란 이름으로 소개되면서 시티 팝이란 단어의 인지도가 올라가자, 흑인 음악의 영향이 짙게 나타나는 몇몇 팝 음악들도 편하게 시티 팝이라는 말로 일컫기 시작하며 "한국 시티팝"이라는 어딘지 아리송한 분류가 통용되기 시작했다. City와 Pop이라는 단어가 뭔가 직관적이며 세련된 느낌을 주다보니 홍보의 수식어로 쓰기에도 용이해, 음반사나 제작자들이 레트로한 곡들에 시티팝이라는 타이틀을 걸어 홍보하는 과정에서 이곳저곳에 시티 팝이라는 딱지가 붙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 전문가들도 "신디사이저가 들어갔고 도시적인, 재즈틱한 분위기가 난다"는 이유를 들어 시티 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해, 갈수록 시티 팝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 경계가 흐릿해졌다. 심지어 선후 관계와 역사적 인과 관계를 왜곡하는 일까지도 자주 벌어지는데, 서구권의 신스팝 가수들이나 재즈 펑크의 원조격 가수 중 하나인 shakatak 등이 역으로 시티 팝 장르에 묶여 소개되는 촌극도 벌어진다. 또한 브루노 마스 역시 앤더슨 팩과 함께 2021년 슈퍼그룹 Silk Sonic을 결성하여, 과거 1970년대를 전후하여 미국에서 최고 전성기를 누렸던 장르인 필리 소울, 펑크 장르 음악을 선보인 앨범 An Evening With Silk Sonic을 발매하자, 일각에서 거꾸로 '시티 팝에서 영향 받은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참고로 일본 시티팝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웨스트코스트) AOR[25] 또한 미국의 1960-80년대 음악사조 중 하나이다. 이는 이지 리스닝이라 일컫는 듣기 편한 음악들인 소프트락, 발라드 등을 흑인 음악 장르인 R&B, 재즈, 소울에 결합시킨 노래 스타일을 일컫는데, 한때 미국 서부 여피들이 출근하며 즐겨듣던 성인팝 라디오 채널에서 유래해 여피들이 요트를 타며 들을만한 세련된 도시 감성의 소프트 락들이라 하여 'Yacht Rock (요트 락)'으로 불리기도 했다.[26] AOR 또한 워낙 다양한 장르가 결합되어 딱히 하나로 정의하기 힘든 광범위한 스타일을 가졌기 때문에, 팟캐스트 리스너들 4명이 줏대를 바탕으로 AOR 성향에 가까운지 평가하는 사이트도 있을 정도다. 그러니 이런 AOR의 연장선에 존재하는 시티 팝 또한 장르로 규정하기엔 모호한 광범위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내에서는 시티 팝이란 단어를 확고한 장르로써 보는 입장이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오늘날 한국의 이른바 시티팝으로 분류되는 아티스트들의 음악들은 정확하게는 일본 시티팝의 조상격인 미국의 AOR, 퓨전 재즈에서 영향을 받아 나온 배다른 형제격인 음악이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 걸쳐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대중음악계에서도 독립적인 형태로 오늘날 시티팝 느낌과 유사한 소울/ 스무스 재즈풍의 가요가 인기를 끌었는데, 당연한 소리지만 당시엔 이런 류의 음악들이 시티팝이라고 불리지도 않았다. 당시 미국 대중가요계에서 AOR 음악의 유행이 궤도에 오름과 동시에, 1980년대 국내 록 음악 장르 저변 확대, 미국 대중 음악의 폭넓은 소개[27],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한 급격한 사회 성장세가 맞물려 일본 시티 팝의 감수성과 비슷한 낭만적인 분위기가 한국 사회 전반에도 흐르며[28] 선호되는 음악 장르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하여튼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 봄여름가을겨울, 빛과 소금, 015B, 윤상[29], 김현철, 김혜림 같은 퓨전 재즈를 선보였던 아티스트들이 데뷔하여 이 시기 많은 히트곡들을 발표했다. 참고로 이들은 당시 대부분 동아기획 출신들이었다.
여기서 더 거슬러 가보자면 1970년대 제작, 1980년 발표한 김현식의 봄여름가을겨울과 어화둥둥 내사랑이 있고[30], 상기한 연극이 끝난 후나 한국 재즈 1세대로 통하는 정성조가 이미 1980년에 밤의 찬가2같은 곡을 쓰기도 했으며, 같은 해 '벗님들'의 이치현 또한 당신만이 같은 소프트 락 또는 AOR 장르의 곡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쎄시봉 등으로 대표되던 음악감상실 문화의 흐름이 80년대 클럽 문화와 이어지면서 권인하, 강인원, 김현식 등이 등장하기도 했으며,[31] 1984년에는 윤수일이 퓨전 재즈와 소프트 락을 접목한 '아름다워'를 발표하여 가요 순위 1위를 차지하는 등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일각에선 윤수일의 '아름다워'를 한국의 시티 팝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윤수일을 비롯한 앞서 언급된 여러 뮤지션들은 일본과는 무관하게 미국식 퓨전 재즈와 소울 장르를 직도입하여 자신이 추구하던 록이나 팝을 기반으로 해서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경우이므로, 이를 일본식 시티 팝으로 규정할 순 없다. 애초에 들어보면 알겠지만, 해당 노래들은 여러 의미에서 본 항목에 소개된 일본식 시티팝 감성은 아니다.
1980년대부터 국내에서 시작된 일련의 퓨전 재즈와 소울 장르 기반의 뮤지션들은 특히 1960~70년대 크게 유행한 소울, 펑크 장르 뮤지션들 및 조지 벤슨 등의 퓨전 재즈 기반의 뮤지션들[32], 그리고 1960년대 말부터 1970~8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Hall & Oates 등으로 대표되는 블루 아이드 소울 장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선 김현철의 오랜만에를 비롯한 1집 앨범을 '한국 시티 팝'의 예시로써 거론하기도 하는데[33],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은 1~2집을 제작할 당시 스무드 재즈를 좋아했지 시티 팝이란 장르는 전혀 몰랐다고 회상했다. 참고로 김현철은 초창기 1~2집 활동 당시에는 포크와 팝, 재즈에 기반한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사했고, 본격적인 스무스 재즈나 소프트 락에 기반한 AOR 등의 영향은 3집이 되어서야 들리기 시작한다.
또 국내에 공식적으로 일본 대중문화의 수입이 허가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부터로, 그 전까지 일본 내의 여러 음악 중 일부분의 조류를 뭉뚱그려 지칭하는 명칭에 그쳤던 시티 팝(뉴 뮤직)에 대한 국내 일반인의 인지도는 어느 정도 대중음악에 관심이 있는 수준이라도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34] 물론 이전에도 일본 문화가 밀수품 따위로 항구 도시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유통되긴 했지만, TV나 라디오로 송출도 제대로 안되는 마당에 이미 합법적 형태로[35] 국내 시장에서 유행하던 당대 미국 주류 팝 음악보다 국내 퓨전 재즈 및 소프트 락 장르의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긴 힘들다.
결국 당시 이런 류의 음악을 한 다수의 국내 음악인들이 영향을 짙게 받았다고 직접적으로 증언하는, 미국의 AOR로 표현되는 스무스 재즈, 퓨전 재즈와 소프트 락, 그리고 소울 음악 등은 바로 그 시티 팝을 만들던 일본 아티스트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므로, 결과적으로 보자면 미국 대중음악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하위 파생 장르들이, 비슷한 시기에, 두 나라의 음악에서 각각 독립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사실 이는 비단 한국이나 일본뿐만의 일이 아니고, 미국의 대중음악 자체가 당대 전 세계에 압도적인 영향을 끼친 만큼[36] 비슷한 시기에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볼 수 있던 흔한 음악적 기류일 뿐이었는데, 당시 일본은 지금도 회자될 만한 규모 있는 음악 산업을 했고[37] 이 여파로 오늘날 유튜브를 통해 시티 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일 뿐이다.[38] 당장 비슷한 시기 남미 쪽에서도 시티 팝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곡들을 쉽게 찾을 수 있으며 #[39] 심지어 구 소련에서도 찾을 수 있다. #[40]
한편 가수 서지숙[41]은 1983년 국내에 Love Message 앨범을 발매했는데, 사실 이 앨범은 서지숙이 국내에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일본의 쇼비음악단기대(尚美音楽短期大学) 재즈과에서 재즈작곡이론을 전공한 후 82년 일본에서 발매한 앨범인 Love Message를 재발매한 것이었다. 퓨전 재즈 스타일의 곡들이 제법 담긴 앨범엔 당시 인기를 끈 전설거신 이데온의 주제가를 비롯해 스티비 원더의 All in Love is Fair 등 1950~70년대의 유명 올드팝이나 재즈곡들을 커버한 노래들도 수록되었다. 허나 아쉽게도 국내판 Love Message 앨범은 일본판과 달리 3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당시 유행하던 트롯풍(...)의 곡으로[42] 바뀌었다. 다만 일본판과 달리 남은 세곡 중 두곡의 초반부를 한국어로 개사했고, 3곡 모두 보컬 재녹음을 하였는데 일본판과 비교하면 또 듣는 재미가 있다.[43]
5.2. 네오 시티 팝(ネオ・シティ・ポップ)
2010년대에 들어 베이퍼웨이브의 등장으로 복고 열풍이 거세지며 시티 팝 또한 특유의 세련된 분위기로 인해 구미권에서는 너드들 위주로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에 한 켠에서는 시티 팝 리바이벌이라는 이름 아래 PREP을 위시한 여러 아티스트들이 특유의 요소들을 차용한 음악들을 발표하고 있다. 본산지인 일본에서도 복고의 영향으로 시티팝 스타일의 가요가 다시 나오기도 하는데, 일본에서는 시티 팝 리바이벌보다는 네오 시티 팝(ネオ・シティ・ポップ)으로 칭한다.LP의 부활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데, 70~80년대라는 한정된 시대적 배경 상 대부분의 앨범이 바이닐 레코드로 발매되면서 자연스럽게 LP가 시티팝의 상징이 된 것. 대표적으로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에서는 2020년부터 CITY POP on Vinyl이란 제목으로 매년 인기있었던 여러 시티팝 타이틀을 발매하고 있다. 바이닐 특유의 음질이 주는 아날로그 감성을 중시하여 직접 LP를 구해서 녹음해 올리는 유튜버들도 많다.
국내 아티스트 중에서는 윤종신의 Welcome Summer, Summer man, 아마추어 등에서 그 영향을 짙게 느낄 수 있으며, 또한 SUMIN이나 백예린 등의 인디 아티스트들도 디깅클럽서울 프로젝트를 통해 80년대 한국 가요 커버 앨범들에 참여하고 있다. 일렉트로닉 계열 중에서는 퓨처 펑크 장르가 시티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44]
이들의 영향으로 201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한국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과거 일본의 시티 팝 열풍이 불고 있다. 특히 유튜브에서는 타케우치 마리아의 Plastic Love나, 백예린이 커버한 쿠보타 토시노부의 La La La Love Song(드라마 롱 배케이션 주제곡) 등을 호평하는 한국인들이 많이 보인다.
자세히 얘기하자면, 2019년 이후 나오는 소위 '시티 팝'을 표방하고 나온 K-Pop 댄스곡들은 시티 팝스러운 요소라 할 수 있는 C마이너 스케일의 곡 전개[45], 그루비한 리듬 등을 차용했을 뿐, 밴드 지향적인 시티 팝과는 궤를 달리하는 전형적인 K-Pop 댄스곡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2019년 일본인으로서 한국어로 시티 팝을 부른 테라모토 유키카가 NEON을 통해 K-POP 가수로 데뷔한다. 그리고 시티팝으로만 구성된 정규앨범 서울여자를 발표한다. 윤종신의 음악 프로젝트인 2019년 월간 윤종신 5월호에서 태연의 춘천가는 기차를 시티팝으로 편곡하여 공개했다. [46] 또한 2019년 10월 23일 월간 윤종신 10월호에서도 역시 일본인인 타케우치 미유가 내 타입이란 시티팝 곡을 발표했고, 2021년의 3월호에도 타케우치 미유가 다시 월간 윤종신 발표곡이었던 '왠지 그럼 안될 것 같아'의 시티팝풍 리메이크 버젼을 부르게 되었다.
2020년 8월 브레이브걸스가 긴 공백기를 깨고 3년 5개월 만에 운전만해라는 곡으로 시티 팝을 선보였다. 특히 롤린(Rollin')이 역주행하자 이 노래도 같이 주목을 받게 된다.
김아름의 정규 앨범인 AQUA CITY, 레인보우 노트의 정규 1집 Rainbow note 등 현대 한국의 시티 팝 노래들이 제작되고 있다. 2021년 발표된 아이유의 라일락 역시 신스 사운드와 디스코 리듬으로 대변되는 시티 팝 스타일을 재현한 곡이다.
여자친구의 멤버 전원이 시티 팝을 선호한다. 2020년 나온 여자친구의 마지막 앨범 Walpurgis Night 수록곡 중에도 은하, 유주가 듀엣으로 부른 시티팝 장르의 Three of cups, Night drive가 있다. 영상. 특히 유주는 여자친구 계약 해지 후 솔로로 활동하면서 낸 곡들 중에 팝 장르 곡이 많은데, 두 번째 미니앨범은 시티팝으로 보아도 무리 없는 노래들로 채워져 있다. 여자친구 멤버들로 이루어진 VIVIZ가 재데뷔 후 낸 세 개의 미니 앨범에는 팝 장르 곡들이 약 절반을 차지하는데, 3집 배리어스에 수록된 Overdrive를 시티팝 장르라고 밝히고 있다. 제목부터가 드라이브. 걸그룹 여자친구 출신 예린이 2023년 9월 밤밤밤을 발표했다. 2023년 9월 기준 음악 활동을 하지 않은 소원을 뺀 여자친구 멤버 전원이 2년 반 정도라는 짧은 기간 안에 모두 시티팝 곡을 발표한 셈.
국내에서는 살롱 도쿄 에이티즈라는 팟캐스트와 유튜브의 ZIOGRAPHIC SOUND에서 일본의 시티팝 관련 곡들을 들어볼 수 있다.
5.3. 시티팝 애니메이션
유튜브의 시티팝 영상은 그 시대의 느낌을 더하기 위해 1980~2000년대[47] 초반 셀 애니메이션의 영상을 편집해서 더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영상에 매력을 느끼고 무슨 애니인지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알아내기 쉽지 않다. 변덕쟁이 오렌지☆로드, 더티 페어같은 일부 작품은 시대가 지나고 잊혀졌다가 시티 팝 때문에 다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제목부터 느낌이 오는 시티헌터도 영상도 잘 어울린다.시티 팝이 유행한 시대와는 관계가 없고 도회적인 분위기의 물감 채색 셀 애니메이션이면 쓰이는 경향이 있다. 국내에서 시티 팝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오늘날의 디지털 채색과 대비되는 1980~2000년대 초반의 레트로 물감 채색 애니메이션을 두고 '시티팝 감성'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20세기의 도회적인 느낌을 살리는 용도로 쓰는 것이라 SF 작품은 로봇이나 기계가 나오는 장면은 잘 사용되지 않는다.[48]
아래는 관련 영상에서 주로 사용되는 애니메이션 목록이다.[49]
- 도라에몽(1979년 애니메이션) - 극장판으로도 쓰인다.
- 학원전기 무료우
- AKIRA
- H2
- 골든보이
- 귀를 기울이면
- 마루 밑 아리에티
- 기동전함 나데시코
- 노인 Z
- 더티 페어
- 드래곤볼
- 란마 1/2
- 로봇 카니발
- 마법의 천사 크리미마미
- 몰다이버
- 메가존 23
- 메종일각
-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 바다가 들린다
- 버블검 크라이시스
- 변덕쟁이 오렌지☆로드
- 슬램덩크 시리즈
- 시끌별 녀석들 (1981)
- 시티헌터
- 신세기 에반게리온
- 아이돌 전설 에리코
- 우주의 기사 테카맨 블레이드
- 유유백서
- 체포하겠어
-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시리즈
- 카드캡터 사쿠라
- 카우보이 비밥
- 캣츠 아이
- 퍼펙트 블루
- 푸른 유성 SPT 레이즈너
- 명탐정 코난
- 소년탐정 김전일
6. 표절 의혹
상기했듯 시티 팝은 1970, 80년대 일본에서 유행하던 대중가요(쇼와가요)에 속하기도 한데, 당시 일본 문화 자체가 서구권 특히 미국 문화에 강한 영향을 받았던만큼 이 시기 일본의 대중가요들 상당수는 서구 대중음악의 표절의혹을 받는 곡들이 많다. 예를 들어 1987년에 "일본가요 윤리위원회"에서 출판한 "도둑가요"(ドロボー歌謡曲,도로보가요)라는 책에는 표절 가수와 노래들의 예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목록으로 나열해 놓았다. 다만 해당 서적에 나열된 곡들은 표절 의혹이 있다 정도로 봐야지 표절로 공식 인정된 곡들을 다 담은건 아니다.
또 해당 저서의 쇼와 음악이라는 구분은 ' 쇼와 시대에 나온 모든 가요'를 통틀어 얘기하기에 시티 팝만 이 사례에 해당한다고 보긴 어렵다. 이 책과 더불어 유튜브 등지에서 표절곡으로 제시하는 음악은 시티 팝 리스너들이 익히 아는 음악과 다른 J-POP에 속하는 또 다른 스타일의 음악들도 많다.[50] 다만 그렇다고 시티 팝에 표절 의심 사례가 없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 마츠바라 미키의 真夜中のドア〜Stay With Me 처럼[51] 유명한 시티 팝들도 표절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건 사실이다.
여기선 真夜中のドア〜Stay With Me 사례 하나만 들었지만, 일본 웹사이트에서 찾아보면 오오타키 에이이치, 카도마츠 토시키, 야마시타 타츠로 등 다른 유명 아티스트들 또한 이 논란에서 마냥 자유롭진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애초에 일본의 뉴 뮤직(시티 팝) 자체가 서구권 대중 가요에 강한 영향을 받았고, 당시엔 인터넷도 대중화되지 않았을 뿐더러 세계적으로 저작권 의식 수준 또한 매우 낮았던 시기니 더 이런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많을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7. 영향을 주고받은 아티스트
- 일본
- Casiopea: 초기
- Cindy
- EPO(에포)
- tofubeats : 실제로 쇼와말 헤이세이초 유명세를 탔던 아이돌 모리타카 치사토와 협업하기도 했다.
- 나카하라 메이코
- 노리키 소이치
- 마미야 타카코[52]
- 마츠바라 미키
- 마츠시타 마코토
- 마츠토야 유미
- 모리구치 히로코
- 미나미 요시타카
- 미야모토 노리코
- 사토 히로시
- 슈가 베이브
- 스즈키 시게루
- 신디: 1958년생 가수 겸 프로듀서로, 이름은 야마모토 마유미(山本真裕美)이다. 아버지가 한국인 작곡가이며 어머니가 일본인으로서 한국계 일본인 또는 한국인이다.[53] 다만 한국에서는 활동을 하지 않았고 거의 미국과 일본에서만 활동했다. 미국의 가수 스티비 원더와 일본의 배우 겸 가수 나카야마 미호와도 굉장히 친한 사이라고 한다. 2001년 미국에서 암으로 별세. 대표곡은 Must Be Lucky(1990) 등이 있다. 이외에도 스티비 원더가 키보드 연주자로 참여한 앨범도 있다.
- 아란 토모코[54]
- 아키모토 카오루[55]
- 안리
- 야가미 준코
- 야마가타 스미코
- 야마시타 타츠로
-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멤버 중 호소노 하루오미, 사카모토 류이치[56]
- 오메가 트라이브
- 오오누키 타에코
- 오오타키 에이이치
- 오자키 아미
- 오하시 준코
- 와다 카나코
- 요시다 미나코
- 이나가키 준이치
- 이시다 아유미
- 이케다 노리요
- 자도스
- 카도마츠 토시키
- 코쿠부 유리에
- 쿠로즈미 켄고
- 쿠보타 토시노부: 초기
- 키쿠치 모모코
- 타케우치 마리야
- 하마다 킨고: 마을의 돌핀이라는 곡으로 알려져 있으며, 2020년에는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 엥겔우드라는 해외 아티스트가 마을의 돌핀을 샘플링해서 크리스탈 돌핀이라는 곡으로 편곡했는데, 거의 통샘플링에 가까운 구성에 원 저작곡을 표기하지 않아서 리스펙트가 없다고 팬들 사이에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 하야시 테츠지
- 토야마 히토미(Penny)
- 한국
- 백예린
- dosii (도시)
- 유키카: 국적은 일본이지만, 한국에서 한국어로 활동하므로 한국 아티스트로 분류한다.
-
브론즈: 쇼와 말기 뉴 뮤직 느낌을 근래 한국
시티팝 호소신스팝 곡들과 달리 복각에 가깝게 표현한다. 앨범별 연륜있는 일본 보컬들이 한두곡씩은 있고 히로시 나가이에게 앨범 커버를 받을 정도. - 김산: 밴드형태의 가장 정통적인 시티 팝을 추구하는 뮤지션. 본인이 작곡, 작사까지 모두 하는 싱어송라이터이다.
- 김아름: 시티 팝만 추구하진 않으나, 선이나, 드라이브 등의 곡을 소화하여 시티 팝 가수의 이미지가 있다.
- 나무13: 시티 팝 풍의 작품을 주로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 레인보우 노트
- 제인팝
- 죠지
- 주주 시크릿
- 최하트
- 보일러김씨
- 타바코쥬스
- ARTMS
8. 관련 문서 및 바깥 고리
[1]
재미있는 건 후술되어 있듯 정작 당시 일본에선 시티팝이란 명칭은 사용되지 않았고, 대신 뉴 뮤직이란 명칭을 썼다. 뉴 뮤직은 당시 일본 주류 음악이던 엔카, 아이돌송 등과 구별하기 위해 나타난 용어로, 시티팝은 오히려 이후 이런 분위기의 곡들이 외국에 알려지면서 붙은 명칭이라 뉴 뮤직 세대 일본인들은 시티팝이라고 하면 뭔지도 몰라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2]
시티 팝 말고도 이런식으로 장르가 다른 여러 음악을 통칭하는 말은 흔한 편인데, AOR이나
이지 리스닝,
뉴에이지,
핑거스타일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3]
이렇게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주관적이고 모호한 기준을 포함하다 보니 후술할 한국 시티 팝처럼 시티 팝하면 특징적으로 떠오르는 요소를 몇 개 포함하지 않더라도 시티 팝이라고 언급되는 경우도 있다.
[4]
참고로 일본의
버블시대는 1980년대 후반이다.
[5]
핫피 엔도의 일원이자 주축이었던
오오타키 에이이치는 이후 뉴 뮤직(시티 팝)의 선구자격 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6]
진정한 의미의 PC 대중화는 1984년
Apple에서 만든
Macintosh 128K를 필두로 시작되었다.
[7]
Album-Oriented Rock, 혹은 Adult Oriented Rock. 70~80년대 영미의
FM 라디오 음악방송에서 주로 송출한 음악들을 통칭하는 명칭. 이름에 걸맞게
프로그레시브 록이 주를 이루었으나
재즈,
소울 음악, 어덜트 컨템포러리와 같은 장르도 포용한다.
빌 위더스부터
카펜터즈까지, 그 범위는 심히 광범위하다. 심지어 분위기가 전혀 다른
하드 록 음악들 중 일부를 AOR로 분류하는 경우도 많다. 조상 격인 AOR부터 이러니 시티 팝 또한 구분이 모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8]
해당 영상에서도 알 수 있듯, 시티 팝이 주로 발매되던
쇼와시대를 직접 경험한 일본인이거나 2020년 기준
젊은 세대인 일본인이거나 일본에선 시티 팝이라는 단어 자체가 대중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
80년대 이미 일본의 팝을 별도로 구분지칭할 필요가 있었던 이유가 들어보면 대륙별로 감성이 매우 다르다. 시티팝이란 단어로 한국에서 일본팝을 영미권의 AOR과 구분했던것도 같은 이유, 여담으로 JPOP은 60년대 북미에서 일본팝을 구분하기 위해 이미 사용되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은 팝픈이라고 불렀다.
[10]
물론 시티 팝이라는 용어 자체가 유명해진게 2010년대 이후부터기 때문에 이전에 이런 단어가 사용되고 있었을지언정 대중적인 단어가 된건 2010년대 이후부터라고 봐도 큰 무리는 없다.
[11]
1980년
연극이 끝난 후를 내놓은 작곡가 최명섭도 이 노래가 시티팝류 음악의 분위기와 비슷하다는 의견에, 본인은 당시 미국 팝음악계의 주류였던 퓨전 재즈와 흑인 soul, funky 음악에 심취해 이런 류의 노래를 한국에 도입하려고 노력했을 뿐, 일본의 시티팝류 음악들은 일본 대중 문화 봉쇄 정책같은 시대 분위기상 당시엔 듣지도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서로 비슷한듯 다르게 발전한 셈. K도시팝
[12]
마츠바라 미키의
真夜中のドア〜Stay With Me가 본 곡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있다. 그만큼 시티 팝이 당시 서구
팝 음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어 위키 기준 작곡은 '캐롤 베이어 세이거(Carole Bayer Sager)'와
데이비드 포스터 공동 작곡으로 되어 있다. 참고로
마이클 잭슨이 부른 버전도 있는데 이때 프로듀싱은
퀸시 존스가 한 것으로 되어 있다.
[13]
일본의 화장품 메이커인
개츠비(국내에서는 '갸스비'라는 이름으로 진출)의 '무빙 러버' 왁스 광고를 위해 개사한 'I Can Give You Gatsby'에서 유래한 일명
김길규 개새끼로 유명한 곡의 원곡이다.
필리 소울은 일본에서도 인기있던 장르였었고 그에 따라 뉴 뮤직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14]
현재까지도 자주 샘플링되는 곡이다.
[15]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재키 브라운의 ost로 사용된 곡이다.
[16]
이 시기 일본은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나날이 부를 쌓으며 사는 상류층과 될 대로 되라지식으로 살고자 하던
욜로족과 같은 빈곤층의 모습이 동시에 나타났다.
[17]
이는 일본의
엔카 스타일 가요쿄쿠의 영향도 있다. 물론 현대식 감성에 맞게 좀 편집해주면 모던하게 들을 수 있는 수준이긴 하다.
[18]
가령
사잔 올 스타즈같은 시티 팝의 흐름과는 무관한 당대 뮤지션이라던지,
마츠다 세이코같은 아이돌 뮤지션까지 시티 팝으로 분류시키는 등.
[19]
앞서 언급된
타케우치 마리야의 남편이자,
Plastic Love의 편곡자이기도 하다.
[20]
카도마츠 토시키가 편곡을 맡았다.
[21]
사카모토 류이치가 편곡을 맡았다.
[22]
곡 최후반부 나레이션은 배우
짐 캐리이다.
[23]
Out of Time이 인기를 끌자 2022년에 새롭게 발매했다.
[24]
잘 들어보면 같은 음악과 비트를 완전히 새로 녹음한 것이다. 따라서 음질 역시 원곡에 비해 상당히 또렷하다.
[25]
미국에서 단순히 'AOR'이라고 하면
하드 록 기반의 장르들도 두루 가리키기 때문에 엄밀히 구분하려면 'Westcoast'라는 표현을 붙여야 한다.
[26]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
뉴에이지와 함께 AOR이 큰 인기를 끈 데에는, 미국이 약소국이라고 얕잡아 봤다가 엄청난 손실을 입은
베트남 전쟁을 치르고, 이에 생겨난 반전(反戰) 세대였던
히피들도 사회에 나가 직업 전선에 뛰어들며, 복잡한 과거의 트라우마는 잊고 싶은 현실도피 심리가 기인했다는 분석도 있다.
[27]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미군 부대의 무대를 중심으로 유통되던 미국의 최신 대중 음악은 FM 라디오의 보급에 이어, 결정적으로 1977년 AFKN의 컬러 TV 방송 송출을 기점으로 수도권의 대중들에게 급속도로 파고들게 된다. 이때 인기를 끌던 프로그램이 바로 주말에 방영되던 빌보드 싱글차트 소개 프로그램과 '
소울 트레인'으로 대표되는 흑인 음악 쇼프로그램이었다. 특히나 소울 트레인은 한국 대중음악이 흑인 음악 기반으로 바뀌게 되는데 매우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일례로
문나이트 춤꾼들 또한 소울 트레인에서 소개된 춤을 돌려보며 배웠고 그들이 그대로 유명가수가 되었다.
[28]
이른바 1986~1988년까지 이어진
삼저호황과 1987년
6월 항쟁으로 인한 민주화까지 쟁취하며 표현의 자유가 겹쳐 문화 산업도 대폭 성장해
IMF 사태 전까지 한국도 사회 분위기가 일본의 80년대와 닮은 부분이 있었다. 다만 차이라면 일본은 버블붕괴 이후
잃어버린 침체기에 접어들어 뭔가를 새로 발굴하지 못했다는거고, 한국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극초반에 걸친 IMF 극복 과정에서 정보화 시대에 맞춰
한류와
K팝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문화 흐름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29]
3집까지
[30]
상기한 봄여름가을겨울과 빛과 소금의 전신이 바로 '김현식의 봄여름가을겨울'이다.
[31]
이들은 훗날 함께
비 오는 날 수채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32]
글렌 멘데이로스 버전으로 많이 알려진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가 대표적인 노래이다.
[33]
실제 이 장르를 중심으로 활동한 아티스트 중 가장 유명했던건 김현철이기에 K-시티팝에 가장 근접했던 뮤지션으로 볼 수도 있다.
[34]
'연극이 끝난 후'의 작곡가 최명섭도 음악을 좋아했던 자신조차도 일본 대중문화 봉쇄 정책 때문에 80년대 초중반이 되어서야 지인들로부터 카피한 카세트 테이프를 통해 일본 음악 일부를 제한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나마 90년대 들어 일본 현지 활동과 국내 활동을 동시에 펼치고 있던
강수지가 어느 정도 일본 대중 음악 느낌의 곡들을 국내에서도
발표하는 정도였다.
[35]
1950~60년대부터 국내 음악계는 주한미군 부대와 직접적으로 연계된 공연 시장의 형태로 깊숙히 정착해 있었는데, 이는 미국 최신 팝 음악의 수월한 직수입 및 직도입을 의미했다. 이시기 대표 뮤지션
신중현도 미8군 공연장 출신이었다.
[36]
21세기에도 여전히 영향력이 미국 음악의 영향력이 크지만, 대중음악의 선택지가 지금보다 좁던 20세기엔 더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밖에 없는 구조기도 했다.
[37]
사실 그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일본 음악 내수시장은 미국 다음인 세계 2위다. 2023년 IFPI 기준 1위 미국, 2위 일본, 3위 영국, 4위 독일, 5위 중국, 6위 프랑스, 7위 한국, 8위 캐나다, 9위 브라질, 10위 호주. 물론 기준에 따라선 중국, 인도처럼 인구대국이 더 치고 나오는 조사도 있긴 하다.
[38]
K-POP과 비슷한 측면도 있는데, 둘 다 미국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분명하나, 정반합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명성을 굳히고 오히려 미국에도 역수출된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다만 대형기획사들에 의해 이미 보는 음악으로 산업화된 K팝과 달리 시티 팝은 과거 추억의 명곡들 식으로 리스너들에게 회자되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결국 일본식 시티팝 기준에 이견없이 부합하려면 일단은 일본 가수가 불러야 할텐데, 전성기 시절이나 재조명된 오늘날에나 K팝만큼 세계적으로 히트한 가수는 없는 현실이다.) 또 보는 음악으로 비쥬얼, 댄스적 특성까지 들어가 직관적인 구분이 그래도 쉬운 편인 K팝과 달리(음악적으로도 강한 비트, 꽉 찬 사운드(편곡), 서로 다른 장르 혼합 시도 등 '시티 팝보다는' 구분하기 쉬운 편이다.), 듣는 음악 범주인 시티 팝은 본 문서에도 있듯 여러 장르와 특징이 겹치기 때문에 직관적인 구분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39]
당시 일본의 아티스트들이 남미로도 음악적 교류나 유학을 많이 갔기에 어찌보면 남미 쪽이 더 시티 팝의 음악적 원류 중 하나라고까지 볼 수도 있다. (앞 영상 댓글에도 브라질 시티팝이라는 한 네티즌의 언급에 일본 음악가들이 오히려 이쪽 레퍼런스를 많이 가져가서 그들 사운드에 참고했다는 댓글이 달려있다.) 특히나 세계적으로 AOR이 흘러간 음악 사조가 되어버린 21세기에도 남미는
기타리스트와
밴드들을 중심으로 그 명맥이 이어져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5년에 데뷔하여 현재도 활동 중인
아르헨티나의
Gativideo 등이 있다.
[40]
대표적인 공산국가에 서구권 음악이
어떻게 들어왔는지 의아할 수도 있는데, 사실 소련은 1950년대부터 문화 탄압이 느슨해졌고 서구의 음악이나 영화도 어느 정도 수용했다. 덕분에 이미 60년대부터 모스크바 재즈 페스티벌이 열렸고
# 체제 저항적인 음악은 공식적으로 발매가 어려웠지만 웬만한 음악은 다 수입되었다. 1980년대쯤부턴 소련식
AOR,
신스팝 등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지만 1992년 새해를 바로 앞두고 일어난 소련 붕괴의 여파를
정통으로 맞아 그 명맥이 뚝 끊겨 버렸다.
[41]
작곡가 서영은의 장녀이자 코미디언 서영춘의 조카. 일본에선 미즈하라 아키코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42]
나훈아의 <머나먼 고향> 같은 유명 곡들을 커버하여 실었다.
[43]
이후 서지숙은 일본에서 자작곡이 담긴 앨범 So Crystal을 84년 발표하고 이후 아란 토모코의 앨범 부유공간에 코러스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다 퓨전재즈 공부를 위한 유학을 마친 1989년 한국으로 귀국하여 계속하여 퓨전재즈와 발라드 곡이 담긴 앨범을 내며 활동하였다. 당시 몇몇 앨범엔 83년 당시 국내판 앨범에 실리지 않았던 일본 1집의 곡들을 1곡씩 수록하기도 했다. 1997년 이후로는 음반은 내지 않았지만, 2020년에도 가요무대에 출연했을 정도로 음악활동은 지속했다. 이후 2022년 CITY POP ON VINYL 프로젝트를 통해 일본에서 발매했던 앨범 2개가 복각되었다.
[44]
유빈의 숙녀 뮤직비디오에서는 일본의 버블경제 시절을 떠올릴 컨셉과 소품, 그리고
쿠도 시즈카를 위시한 1980년대 후반 J-Pop 댄싱 디바들이 생각나게 만드는 의상, 액세서리 등을 차용했지만, 음악적인 면에서는 그다지 시티 팝적인 그루브를 느끼기가 어렵다. 시티 팝이 아니라 광의의
복고 컨셉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45]
Plastic Love를 비롯한 한국 리스너들에게 잘 알려진 곡들이 공교롭게도 C마이너 스케일 곡들로, 이는 시티 팝 노래의 클리셰로 굳혀졌다.
[46]
'이제 서른' 이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1989년 공개된 곡인
김현철의
춘천가는 기차가 원곡이다.
[47]
디지털 과도기.
[48]
그래서
버블검 크라이시스,
메가존 23,
더티 페어 등을 나중에 직접 보고 "이거 SF였어?" 하고 놀라는 사람들이 있다.
[49]
아래의 리스트 중 시티팝과 직접 관계가 있는 작품은
변덕쟁이 오렌지☆로드,
더티 페어,
메가존 23,
유유백서 정도이다.
[50]
예를 들어
마츠다 세이코나
CHAGE and ASKA의 음악을 시티 팝으로 분류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51]
'마츠바라 미키'는 노래를 부른 가수고, 작곡·편곡자는 '하야시 테츠지'긴 하다.
[52]
1982년 발매한 <Love Trip>만을 남긴 후로 현재까지 행방을 알 수 없는 시티 팝 아티스트. 시티 팝이 재조명되면서 <Love Trip> 또한 재조명을 받은 케이스다. 시티 팝 리스너들 사이에서 그녀의 앨범은 상당히 높게 쳐줄 정도로 세련미가 돋보인다.
[53]
당대 많은 재일교포들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고려하면 한일 이중국적일 가능성도 매우 높다. 한국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54]
The Weekend의 음악을 자주 듣는 리스너라면 알아차릴 아티스트. 2022년 앨범
Dawn FM의 Out of Time이 아란 토모코의 1982년 2집 앨범 FUYU KUKAN의 5번 트랙 Midnight Pretenders를 샘플링한 곡이기 때문.
[55]
한 장만 남은 앨범 <Cologne>로 알려진 가수.
[56]
호소노 하루오미는
오오타키 에이이치와
핫피 엔도에서 같이 활동하여 많은 영향을 받았고,
사카모토 류이치는 1980년대 초반
야마시타 타츠로가 매우 애정했을 정도였던 키보드 세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