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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르템베르크 왕국 Königreich Württemberg |
||
국기 | 국장 | |
지도 | ||
1804년 ~ 1918년 | ||
지리 | ||
위치 | <colbgcolor=#fff,#191919> 바덴뷔르템베르크(독일 남서부) | |
수도 | 슈투트가르트 | |
인문환경 | ||
언어 | 슈바벤어, 알레만어, 독일어 | |
종교 | 개신교( 루터교회), 가톨릭 | |
민족 | 슈바벤인 | |
정치 | ||
정치체제 | 전제군주제 → 입헌군주제 | |
국가원수 | 왕 | |
경제 | ||
통화 |
뷔르템베르크 굴덴(1806년 ~ 1873년) 골트마르크(1873년~ 1914년) 파피어마르크(1914년 ~ 1918년) |
|
성립 이전 | 뷔르템베르크 선제후국 | |
멸망 이후 | 바이마르 공화국 |
<colbgcolor=#f5f5f5,#2d2f34> 언어별 명칭 | |
알레만어 | Königriich Württeberg |
독일어 | Königreich Württemberg |
1. 개요
독일 제국을 구성했던 왕국으로 오늘날 바덴뷔르템베르크의 중부와 동부 지역에 해당하는 지역을 영토로 했다. 1910년 기준으로 면적 19,508 km², 인구 244만 가량이었다.수도는 슈투트가르트였으며, 그 외 주요 도시로는 튀빙겐, 울름 등이 있다.
2. 역사
뷔르템베르크 가문은 잘리어 가문의 방계로, 1083년에 성립된 뷔르템베르크의 콘라트가 시조이다. 1495년 공국(Herzogtum)으로 승격되었다.종교 개혁 시기 뷔르템베르크 공작 울리히 1세가 개신교로 개종했기에 이웃 바덴 대공국과 달리 개신교 인구 비중이 높았다(1905년 기준 69%). 가톨릭은 30%.[1] 뷔르템베르크는 막시밀리안 1세 시절부터 오스트리아 대공국의 합스부르크 가문과 갈등을 빚었는데, 울리히 1세는 산적한 부채로 인해 1520년 카를 5세에게 뷔르템베르크 공국을 강제로 팔은 흑역사가 있었다. 카를 5세는 뷔르템베르크를 동생 페르디난트 1세에게 넘겼으나, 울리히는 뷔르템베르크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와 협력하면서 뷔르템베르크에서 산적(...)질을 하면서 연명했고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하여 결국 헤센 방백 필리프의 도움을 받아 뷔르템베르크를 탈환했다.
나폴레옹 전쟁기인 1803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의해 뷔르템베르크 선제후국으로 승격되었고 3년 뒤인 1806년 왕국으로 승격했다. 1871년 독일 제국에 가맹했다.
1871년 독일 제국에 가입하며 제국 내 4개 왕국 중의 하나가 되었으나, 이들 중 인구는 제일 적었다. 면적은 작센 왕국보다 넓지만 인구는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1918년 독일 제국과 함께 뷔르템베르크 왕국 역시 붕괴되면서 뷔르템베르크 지역에는 뷔르템베르크 자유 인민공화국(Freier Volksstaat Württemberg)으로 개조되었고, 1945년까지 지속되다가 뷔르템베르크바덴( 미국령), 뷔르템베르크호엔촐레른( 프랑스령)으로 잠시 개편되었고, 궁극적으로 바덴뷔르템베르크를 이루게 된다.
3.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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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fff,#191919> 신성 로마 제국 |
제국군 황제군 / 프로이센 왕국군 / 바이에른 선제후국군 / 작센 선제후국군 / 하노버 선제후국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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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전쟁 | 오스트리아 제국군 | 프로이센 왕국군 |
프랑스 제국군 (라인 동맹군) 바이에른 왕국군 / 베스트팔렌 왕국군 / 작센 왕국군 / 뷔르템베르크 왕국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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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연방 |
독일 연방군 오스트리아 제국군 / 프로이센 왕국군 / 바이에른 왕국군 / 하노버 왕국군 / 작센 왕국군 / 뷔르템베르크 왕국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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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독일 연방 및 남독일 4개국 |
북독일 연방군 프로이센 왕국군 / 작센 왕국군 |
바이에른 왕국군 | 뷔르템베르크 왕국군 | 바덴 대공국군 | 헤센 대공국군 | ||
독일 제국 |
독일 제국군 프로이센 왕국군 / 바이에른 왕국군 / 작센 왕국군 / 뷔르템베르크 왕국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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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르 공화국 | 국가방위군 | ||||||
나치 독일 | 독일 국방군 / 친위대 | ||||||
연합군 점령하 독일 |
연합군 미군 / 소련군 / 영국군 / 프랑스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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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 독일 연방군 | 국가인민군 | |||||
독일 | 독일 연방군 | ||||||
각주 |
※ 신성 로마 제국 구성국들의 군대의 경우 프랑스 대혁명이 터진 1789년 당시의 세속 선제후국과 그 이상급 국가만 기재. ※ 라인 동맹 및 독일 연방, 북독일 연방 구성국들의 군대의 경우 왕국 이상급 국가만 기재. ※ 독일 제국 구성국들의 군대는 독립적인 전쟁성을 가진 경우만 기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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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뷔르템베르크 보병대 군기.
뷔르템베르크 왕국군(Württembergische Armee)은 뷔르템베르크 공국 시절에 형성되었고, 왕국으로 격상된 1805년부터는 프랑스 제국의 동맹 군대로 기능했다. 이후로는 독일 연방군의 일원이었다. 바덴 대공국군과 비슷한 크기로, 총 6개 보병연대와 3개 기병연대, 그리고 5개 포병대대로 구성되었다. 13000명 규모였으며 독일 연방 내에서는 작센군에 뒤이어 5번째로 거대했다.
1871년 독일 통일로 인해 독일 제국군에 흡수되어 제국군 제13군단으로 재편되었다. 하지만 뷔르템베르크는 바이에른, 작센과 함께 자체적인 군정권을 여전히 보유할 수 있던 몇 안 되는 군대 중 하나였다. 뷔르템베르크 자체의 전쟁성이 따로 있었고 제13군단의 평시 지휘는 프로이센과 제국 정부가 아닌 이곳에서 도맡았다. 다만 뷔르템베르크군도 전시에는 프로이센군의 지휘를 받았다. 1918년 독일 제국 멸망과 함께 해체되었다.
주요 출신인은 에르빈 롬멜, 그리고 독일 연방군 초대 대장인 한스 슈파이델이다. 18세기의 극작가 프리드리히 실러 역시 사관생도 신분으로 잠시 복무했던 적이 있으나, 희곡 《 군도》를 쓴 죄로 감시받다 탈영했다.
4. 왕사(王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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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르템베르크 왕조 | |||
프리드리히 | 빌헬름 1세 | 카를 | 빌헬름 2세 | |
왕비 뷔르템베르크 공작 · 뷔르템베르크 선제후 · 뷔르템베르크 가문 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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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왕위요구자
왕가의 수장은 뷔르템베르크 공작의 직함을 사용한다. 수장을 제외한 공가의 구성원은 뷔르템베르크의 공작을 칭한다.- 직계
-
빌헬름 2세 (1848-1921)
빌헬름 2세의 아들이 요절해 직계는 끊어졌고, 가톨릭을 믿는 알츠하우젠 방계가 계승했다. - 알츠하우젠 계통
-
알브레히트 폰 뷔르템베르크 (1921-1939)
빌헬름 2세의 8촌 동생이다. - 필리프 알브레히트 폰 뷔르템베르크 (1939-1975). 1893~1975.[3]
- 카를 (1975-2022). 1936~2022. 차남으로 태어났으나 형이 귀천상혼으로 계승권을 포기하자 가문의 수장이 됐다.[4] 본래 후계자였던 장남 프리드리히는 2018년에 교통사고로 먼저 사망하여 가문 수장 자리는 장손 빌헬름이 이었다.
- 빌헬름 (2022-). 1994~. 카를의 장남 프리드리히의 장남으로 2022년 조부의 뒤를 이어 왕위요구자가 되었다. 미혼이다.[5][6]
4.2. 분파
분파는 크게 5개로 나뉘었다. 모두 뷔르템베르크 공작 프리드리히 2세 오이겐을 공통조상으로 두고 있다.- 프리드리히 2세 오이겐의 장남인 프리드리히(뷔르템베르크)의 후손인 종가는 역대 뷔르템베르크 국왕을 배출해 내었다. 종교는 프로테스탄트였으며, 1921년 빌헬름 2세의 사망으로 단절되었다.
- 프리드리히 2세 오이겐의 차남인 루트비히 공의 차남인 알렉산더 공작이 귀천상혼하여 개창한 테크(Teck) 공가는 왕족 대우를 받지는 못했지만 후에 알렉산더의 손녀인 테크의 메리가 조지 5세와 결혼하여 영국의 왕비를 배출했다. 후에 1917년 영국 내에서 반독 감정이 심해지자 일가족은 폰 테크라는 성씨를 버리고 케임브리지로 갈아탔고 메리의 큰남동생인 아들퍼스와 막냇동생 알렉산더[7]는 각각 케임브리지 후작, 엘트햄 백작, 노샐러턴 자작위와 애슬론 백작, 트리머턴 자작위를 서임받았지만, 후자는 후계자인 루퍼트의 요절로 알렉산더 케임브리지가 죽은 1957년에[8], 전자는 아돌퍼스의 장남인 조지가 딸 한 명만 두면서[9] 그가 죽은 1981년에 단절되었다. 종교는 프로테스탄트
- 프리드리히 2세 오이겐의 삼남인 오이겐 공작을 조상으로 하고있는 카를스루에(Carlsruhe)[10] 분가의 종교는 프로테스탄트였지만, 1903년 니콜라우스 공작의 사망으로 단절되었다.[11]
- 프리드리히 2세 오이겐의 사남이자 귀천상혼 한 빌헬름 프리드리히 필리프 공작을 조상으로 하고있는 우라흐(Urach) 공가는 왕가의 일원은 아니지만, 1860년 전하(Serene Highness) 칭호를 받았고, 빌헬름 프리드리히 필리프의 장손인 빌헬름 카를은 리투아니아의 민다우가스 2세(Mindaugas II)로 추대 된 적이 있었다. 종교는 가톨릭이고 현존하며, 현 당주는 빌헬름 알베르트이다.
- 프리드리히 2세 오이겐의 칠남인 알렉산더 프리드리히 공작을 조상으로 두고있는 알츠하우젠(Altshausen) 분가는 종교가 가톨릭이고,[12] 현존하며 1921년 직계가 단절된 이래로 뷔르템베르크 가문의 수장이다.
5. 관련 문서
[1]
사실
바덴 대공국도 1815년 이전 보유한 영토는 이후의 대공국 영역의 20%에 불과했다.
나폴레옹에 줄선 대가로 슈바벤 지역의 교회령,
하이델베르크,
만하임 등 옛
팔츠 선제후국의 영토, 외지오스트리아(Vorderösterreich)라 불리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월경지를 합병한 것을
빈 회의 때 인정받았는데 외지오스트리아 거주 인구가 많아서 가톨릭 인구가 많았을 뿐이다. 실제 바덴 대공가였던 체링겐 가문의 바덴두를라흐계는 16세기 종교 개혁 이래로
루터파 개신교였고, 이때문에 바덴 대공국의 개신교는 1856년 이전까지 많은 특혜를 받았다.
[2]
프리드리히 1세의 남동생인 루트비히 공작의 막내아들 알렉산더 공작은 헝가리 귀족인 키스레데 여백작 레데이 클라우디아와
귀천상혼하였는데, 이 알렉산더 공작의 유일한 아들인
테크 공작 프란츠는 영국의 공주인
케임브리지의 메리 애들레이드 공녀와 결혼해 훗날
조지 5세의 왕비가 되는
테크의 메리를 낳았다.
[3]
2번 결혼(사별후 재혼), 토스카나 대공가의 수장(마지막 대공
페르디난도 4세의 3남이다)인
페터 페르디난트의 딸 헬레네 여대공과 혼인했다가 사별한 뒤 본래 처제였던 로자 여대공과 재혼했다. 헬레네와의 사이에서는 1녀를, 로자와의 사이에서는 2남 4녀를 두었다.
[4]
부인은
오를레앙 가문 출신으로, 현재 오를레앙 가문의 수장인 장의 고모다. 4남 2녀를 두었다.
[5]
빌헬름의 할아버지 카를의 네 아들들 중 차남 에버하르트는 귀천상혼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다만 실제 가문에서 귀천상혼으로 규정하였는지에 관한 정보는 불분명하다, 2010년생 아들 1명이 있다), 3남 필리프는
비텔스바흐 가문 출신의 마리카롤리네(현 수장 프란츠의 조카이자,
리히텐슈타인 공세자빈 조피의 여동생이다)와 결혼해 1남 3녀를 두고 있으며, 4남은 결혼했지만 자녀가 없다. 물론 아직 빌헬름이 젊기에 결혼해서 후계자를 얻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지만, 빌헬름에게는 남자 형제가 없기에(여동생 두 명이 있다) 현 시점에서는 빌헬름의 숙부인 에버하르트나 필리프 중 한 명이 추정상속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6]
이 사람은 마지막 왕
빌헬름 2세의 여계후손이기도 하다. 어머니 마리 추 비트(Marie zu Wied,
슈탄데스헤어 가문 출신이다)가 빌헬름 2세의 장녀 파울리네의 증손녀이다.
[7]
둘째 남동생 프란츠는 1910년 자녀없이 사망
[8]
알렉산더는
올버니의 앨리스 공녀와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었는데 하필 그녀가 혈우병 보인자였던 탓에 장남 루퍼트가 과다출혈로 사망한것과 차남 모리스가 생후 5개월에 요절한게 타격이 컸다.
[9]
아돌퍼스의 차남인 프레더릭은 2차 세계대전에서 미혼인 상태에서 전사
[10]
바덴 대공국의 수도였던
카를스루에(Karlsruhe)와는 다른 지명이며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독일 영토였던
폴란드
오폴스키에에 위치한 Pokój의 독일어 지명이다. 정식 명칭은 Bad Carlsruhe
[11]
카를스루에 직계 당주였던 오이겐 공작(1846 ~ 1877)은 그리스 왕비였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의 여동생인 베라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과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지만, 1875년생인 아들 카를 공작은 생후 7개월만에 요절했고, 그 이후에 태어난 쌍둥이 자매인 엘자와 올가만 둔 상태에서 30세의 나이로 요절하였고, 오이겐의 이복 큰 숙부인 빌헬름은 미혼, 막내 이복 숙부인 니콜라우스는 자신의 이복 조카이자, 오이겐의 누나인 빌헬미네 여공작과 결혼하였지만 그 역시 자녀 없이 사망하였다. 빌헬름 2세 입장에서는 자신의 아들인 울리히 왕자와 카를 공작의 요절이 여러모로 뼈아팠다.(이유는 당연히 왕위가 가톨릭 계통인 알츠하우젠 분가로 넘어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12]
알렉산더 프리드리히의 아들인 알렉산더가 프랑스 국왕
루이필리프 1세의 차녀 마리와 결혼하는 과정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그 후손들이 가톨릭을 믿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