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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한글 | 발레타 시 |
영어 | City of Valletta | |
프랑스어 | Ville de La Valette | |
국가·위치 | 몰타 발레타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80년 | |
등재기준 | (i)[1], (vi)[2] | |
지정번호 | 131 |
[clearfix]
1. 개요
몰타에서 가장 큰 섬인 몰타 섬에 있는 몰타 수도. 행정구역상 발레타의 면적은 0.8 km2에 불과하고 인구도 6,444명에 불과하지만 주변 도시권을 합한 인구는 40만 명에 이르며 몰타 인구가 53만명임을 감안하면 그냥 몰타인 대부분(95% 이상)이 발레타 도시권에 산다고 봐도 무방하다.2. 역사
도시의 역사는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는 성 요한 기사단이 로도스 섬을 오스만 제국에게 뺏겨 근거지를 잃자 그들에게 몰타 섬을 내주었다.[3]
성 요한 기사단은 이곳을 거점으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특히 과거 로도스 시절을 잊지 않은 기사단원들은 사라센 선박과 해적선 모두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공격했다고 한다. 지도만 봐도 뻔하지만 이들이 자리잡은 몰타 섬은 북아프리카의 항만과 항로들을 기습하기 최적화된 곳이라서 오스만 제국의 골치를 엄청나게 썩였다. 결국 쉴레이만 1세는 1565년 몰타를 공격하기로 결심하고 2만 명(최대 4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을 파병하지만 세 달에 걸친[4] 공방전 끝에 함락에 실패한다. 당시 방어 병력은 기사단원 500~600 명에 현지 징집병과 전투 직전에 고용한 용병 등을 포함한 6~8천 정도였다.[5] 이 승리로 기사단은 명성을 단숨에 전 유럽에 떨쳤다.
공방전 당시 일흔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앞장서서 싸운 기사단장 장 파리소 드 라 발레트는 공방전 이후 기사단 요새를 복구하고 증축하는 작업까지 모두 마치고 눈을 감는데, 이 기사단 요새가 도시로 발전했고 이 도시의 이름을 발레트라는 이름에서 따와 발레타라 하였다. 몰타 공방전 이후 기사단에 입단하는 지망자도 늘어나고, 스페인과 교황청을 위시한 가톨릭 국가들의 기금 원조도 늘어나 기사단은 사라센 해적과 상선들을 대상으로 더욱 혁혁한 성과를 거뒀다.
성 요한 기사단이 프랑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군에 항복한 이후로는 몰타 섬 전체와 함께 프랑스령이 되었으나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빈 회의를 통해 영국령이 되었다. 발레타는 영국령 몰타의 수도로 기능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몰타 항공전으로 인해 몰타는 내내 추축국의 폭격에 시달렸으며, 발레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몰타에서 가장 큰 항구가 발레타이기에 연합군의 물자 보급을 끊으려면 발레타 항의 기능을 마비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폭격 피해를 심하게 받아 16세기부터 지어지기 시작한 역사적인 건물 다수가 파괴되었다. 그럼에도 발레타 항은 항공전 기간 내내 기능을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고, 발레타도 다른 몰타 지역과 함께 내내 영국령으로 남았다.
1964년에 몰타가 몰타 공화국으로 독립한 이후로는 몰타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으며, 1980년에는 발레타 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18년에는 유럽 문화 수도로 지정되었다.
1980년에 체스 올림피아드를 개최한 이력이 있다.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2]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3]
물론 공짜로 양도한게 아니라 엄연히 빌려준 것이라서 카를 5세는 형식적으로 1년에 한번씩 조공을 바칠 것을 요구하였는데, 그 공물이라는 것이 몰타 토종 매 1마리였다. 사실상 기부한 것이나 다름 없는 셈. 그래도 기사단은 카를 5세의 은혜에 감사하며 매년마다 엄선하여 고른 잘 훈련된 매를 마드리드의 왕궁으로 보냈으며, 1798년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 의해 기사단이 해체되던 해까지 단 한번도 빼먹지 않고 약속을 지켰다.
[4]
정확히 3개월하고 3주, 3일 동안 계속되었다.
[5]
이후 스페인령
시칠리아에서 8천여 명의 지원병을 파병해주기는 했는데, 이들은 4개월쯤 지나서 도착했다. 사실 지원 부대는 조기에 소집되었으나, 함대 손실을 우려한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가 병력 수송을 제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