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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거란 전쟁/음악#s-2.1| Part 1
비상]]
서도밴드
2023. 12. 15.[[고려 거란 전쟁/음악#s-2.2| Part 2
폭풍]]
김장훈
2023. 12. 29.[[고려 거란 전쟁/음악#s-2.3| Part 3
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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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예은
2024. 01. 18.[[고려 거란 전쟁/음악#s-2.4| Part 4
그 겨울에
나는]]
IYAGI (이야기)
2024. 02. 03.그 외 오리지널 스코어는 음악 문서 참고.
<colbgcolor=#070707><colcolor=#fff> 박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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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 |
지위 |
충주호장 (3 ~ 18회) 장작주부 (19 ~ 26회) 개성부윤 (26 ~ 29회) |
가족 |
장남[1], 차남 박석[2], 양자(조카) 박영 부인, 며느리, 손주 2명[3] |
등장회차 |
3회, 5회, 9회, 12 ~ 14회, 17 ~ 18회, 20 ~ 29회 |
배우 | |
이재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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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BS 대하드라마 〈 고려 거란 전쟁〉의 등장인물. 배우는 이재용.[6] 역사상 현종이 몽진 다음날부터 '적성현(積城縣)[7]의 무졸-역인들', '창화현(昌化縣)[8]의 아전'에 의해 봉변을 겪었던 기록을 바탕으로 한 가공의 인물로, 본작에서 '충주의 호장'으로 등장한다.[9] 본작의 중간 보스 포지션이다.
2. 작중 행적
2.1. 3회
충주[10]의 호장으로서 김치양에게 동조하는 지방 호족 중 한 명으로 무장한 모습으로 수하 병사들로 하여금 병장기를 챙기게 하며 출전을 재촉하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했고, 그 광경[11]을 강감찬과 김종현이 멀리서 지켜봤다.2.2. 5회
강조가 요청한 동원령이 발동되면서 징집이 이루어지던 와중에 동원령에 협조하라면서 무장한 상태로 나타난 김종현 앞에서 "큰 아들이 지난 전쟁에서 죽었는데 이젠 둘째를 바치게 하냐?"면서 화를 내면서 반발했지만, 직후 김종현이 "동원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 그 처벌이 분명할 것이니 그리 알라."면서 떠나자, 분노하면서 위에서 올라온 동원령 문서를 내던진다. 그러나 이내 둘째 아들 박석을 노비와 함께 전장으로 보내면서 가족들 및 하인들과 안쓰럽게 바라보며 꼭 살아 오라고 등을 토닥인다.2.2.1. 회차 분석
이 회차에서 박진의 언행을 통해 당시(1000년경 고려 지방사회) 호족들이 어떠했는지 여러모로 유추해 볼 수 있다.-
"큰 아들이 지난 전쟁에서 죽었는데 이젠 둘째를 바치게 하냐?"
이 부분을 보면, 집안의 대를 잇고 말고 하기 전에 자신의 아들들을 모두 전쟁으로 인해서 잃어버리게 생겼는데, 반발을 안 하는 부모가 있을지를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면서 '개경 조정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란 식으로 표현해 개경의 중앙 조정과는 강한 거리감과 적대감을 내비치는데, 물론 지방에만 머물고 있던 박진이 전후사정을 전부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런 판단을 내릴 수도 있지만, 전쟁을 막는 것이 고려 조정(현대로 치면 정부)가 해야하는 일이고 상대가 국경을 흔들고 있던 해적이나 작은 부족이 아니고 당시 엄연한 강대국이던 거란 즉, 요나라와의 전면전이기 때문에 심하게 반발할 수 있다. 다만, 이 대사 이전인 4회에서도 나왔듯이 고려 조정에서는 현종과 신료들 모두 나름 전쟁을 막거나 대비하기 위해서 성격은 다르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 비난이 결과적으로 부당하지 않았다고 하기는 어렵다. 거기에 동원령 이전 거란의 사신이었던 한기가 떠날 때 강조와 현종이 한 행동을 보면, 애초 거란이 처음부터 전쟁을 하기로 마음 먹은 이상 고려 입장에서 달리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박진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그 대상이 다소 엇나간 것 역시 사실이다.[12]
심지어 박진은 위에도 언급했지만, 3회에서 김치양에게 동조해 그의 반란에 군사들을 지원하려고 했다. 거란이 강조의 정변을 전쟁의 명분으로 삼은 것을 생각하면 김치양의 반란이 성공해 목종을 축출하고 김치양의 아들을 황제로 옹립했을 경우 그 역시 비슷한 전개가 펼쳐졌을 것이다. 박진은 김종현에게 전쟁을 두려워하며 그를 막아야 하는 것이 조정의 책임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 역시 전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위험을 초래하려고 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아무래도 중앙 정부와 달리 지방 호족으로 국제 정세와 여러 이해 관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그런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이런 박진의 행태는 아직 고려 사회가 하나의 국가로 온전히 통합되지 않은 탓이다. (천년 넘게 통일국가와 중앙집권체제를 경험한 산 현대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삼국시대가 7백년이나 지속되었고, 백제는 부여계와 마한계 사이의 갈등, 신라는 진한계과 가야계 사이의 갈등이 빈번했던 만큼 고려 초반만 해도 모두 한 나라 사람이라는 인식이 부족했다. 아닌 게 아니라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에도 힘이 약해지자 후삼국시대가 열리고,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도 힘이 약해지자 각지에서 삼국 부흥운동이 일어나는 것처럼, 박진 같은 고려 각지의 호족은 자신들이 "고려인"이라는 인식 보다는 "개경에 복종하는 충주인"이라는 정체성이 더 강했을 것이다. 또한 후술될 호족들의 반응처럼 봉건제 하에서 복종하고 있는 자신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개경이 보호는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다양한 것을 갈취해가는 것은 엄연히 월권에 가깝게 여겨지고 있는것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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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의 경고와 퇴장, 그리고 문서를 집어던지면서 분노하는 박진
위에 언급된 박진의 반발에는 김종현의 태도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김종현이 박진보다 나이나 지위로서 아래이기 때문에 제대로 대우해주고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으면 저렇게 반발하지 않았을 것인데, 오히려 엄포를 놓고 갔으니 반발할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시대상을 따지기 전에 김종현이 무례한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황제도 아닌 군대의 일개 부장급[13]이 지방 호족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호장에게 저런 발언을 하고 간 점은 당시로서는 엄연히 월권 행위이다. 사실 전시라서 그냥 넘긴 것이지 그게 아니라면 박진이 김종현을 스스로 처단한다고 해도 딱히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무례를 범한 것이다. 당장 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지방 중 한 곳인 공주에서는 절도사 김은부가 동원령을 원만하게 수행하기 위해 지방 호장들의 협조를 구하고, 심지어 그들의 아들들은 동원에서 빼주기도 하는 상황인 점을 김종현이나 그 상관인 충주 절도사가 감안했어야 한다. 다만, 김종현이 "절도사께서 처벌을 내릴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단순히 김종현이 무례하게 행동한 것이 아니라 저렇게 엄포를 놓은 것 자체가 동원령에 대한 반발을 억누르기 위한 절도사의 명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박진이 분노만 하다가 김종현의 떠난 후 문서를 던진 것 외에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못한 것은 당시 충주의 절도사가 호장들에게 상당히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거나, 혹은 3회에서 김치양의 반란에 연루되었던 것 때문에 조정의 대리인인 절도사에게 적극적으로 반발할 수 없었던 듯하다.
2.3. 9회
북쪽에서 고려와 거란이 대치 중인 상황에서 지역 내 다른 호족들과 함께 개경의 조정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 황제가 문제"라면서 신랄하게 비난[14]했다. 그러다가 둘째 아들과 같이 떠난 노비가 혼자 거지꼴로 돌아온 것을 보고,"벌써 전쟁이 끝났느냐?"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이내 둘째 아들이 보이지 않는 것에 뭔가 일이 생겼단 걸 깨닫곤 황망해하는 표정과 함께 황급히 아들을 찾지만[15], 노비가 수레에 싣고 온 아들의 시신을 맞이한다. 발목에 감긴 부적을 보고 자신의 아들임을 알고 마지막 얼굴이라도 보려는데 "거란군이 목을 베어가는 바람에 시신이 온전치 못하옵니다."라는 노비의 말을 듣는다.[16] 이 참혹한 말에 박진은 얼굴 전체를 파르르 떨다가 이를 악물고 거적데기를 들추지만 당연히 머리가 존재하지 않았고 이내 머리 없는 죽은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고 오열하기에 이른다. 이후 장면이 전환되어 공주의 호족들 중 일부는 동원령에 협조하는 대가로 자신의 아들들은 동원에서 뒤로 빼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것과 대비되어 더욱 비극성이 부각된다.[17]2.4. 12회
충주의 다른 호장들과 함께 동원령을 요구하는 통군사 최사위를 마주하면서 병력과 군량을 모으라는 그의 말에 박진은 이제 바칠 아들도 없다며[18] 병사가 필요하면 직접 징발하고, 군량이 필요하면 아무 집에다 들어가 곳간에서 찾으라고 소리치면서 남쪽의 백성이 모두 화살받이로 보이냐며 몽니[19]를 부린다. 그러면서 "이 전쟁은 성상 폐하께서 일으킨 전쟁이다."라고 일갈을 하자 분노한 최사위[20]가 칼을 빼들고 베려고 하는데, 갑자기 등장한 김종현이 두 사람의 사이를 벌려놓고 최사위에게 개경의 소식을 보고하면서 충돌은2.5. 13 ~ 14회
앞서 지난 회차에 이어 계곡에서 현종 앞에서 칼을 겨누며, "전란으로 장정들을 죽이게 만들어놓고 황후의 발바닥이나 만지는 어리석은 황제의 목숨을 가져가겠다."라고 선포한 직후 현종과 원정황후를 죽이려고 했다가 지채문, 장연우, 황보유의가 이끄는 군사가 쏜 화살에 어깨를 맞았고, 따르던 무리들도 전멸한 채 도주했다.[23] 지채문과 황보유의가 추격했지만, 이 둘을 피해 숨으면서 몰래 어깨에 박힌 화살을 뺀 뒤[24] 달아난다. 14회에서는 자신이 직접 벌인 1차 암살에 실패한 이후 자신과 같은 창화현(현재의 의정부시 및 양주시 일대)에서 그 지역들의 호장들[25]과 현종을 없앨 모의를 한다. 이후 그 곳에서 창화현 호장들과 동원된 백성들이 몽진 중이던 현종 일행을 막으면서 시선을 그 쪽으로 몰리는 사이 뒤에서 활을 겨누면서 현종을 노렸으나 이전 회차에서 맞은 어깨의 통증으로 인해 쉽게 쏘지 못하고 때마침 하공진이 나타나면서 그 지역의 호장들이 도망가자 이들 호장들을 한심하게 여기면서 자신은 충주로 내려간다.2.6. 17회
앞서 지난 14회 부분에서 거란의 침공으로 인해 현종의 몽진 수난과 황제 현종 암살 실패 이후 그는 한동안 충주 저택에서 내려가 칩거하며 다시 한번 도모를 계획한다. 일단 지난 전쟁에서 전사한 자식들로 인해 대가 끊기게 되자 그는 자신의 조카 박영를 양자로 삼았고, 그 자리에 자식들에게 달아준 부적과 사인을 알려주고는 황제의 아가리에 자식들의 부적을 쑤셔넣겠단 복수심을 드러내며 황제를 도모할 것임을 상기시켜줬다.[26] 이후 개경에서 병부낭중 최구가 박영에게 보낸 현종이 김은부와 함께 반호족 정책을 펼친다는 내용의 서찰을 보고 놀란다. 현종이 김은부와 함께 반호족 정책을 펼치자 이에 반발을 하며 그는 분노을 했고 고려 현종에게 불만을 품은 반 왕권 세력과 다른 지방의 호족 세력을[27] 비롯한 자신들의 최측근들과 함께 모여서 은밀하게 반군을 결성하여 반란을 하기 위한 회동을 갖는다.먼저 지난 전쟁의 상처 때문에 복구 중인 수도 개경으로 입성하여 사전 답사를 하며 자신이 살고 있는 충주에 내려가 반군을 결성하며 수도 개경으로 진입하여 현종을 퇴출시키고, 현종에게 불만을 품은 군부와 관료들과 함께 손을 잡으면서 현종의 주변 사람들을 제거하며 위험한 쿠데타를 일으켜 새로운 권력을 차지하게 위한 거대한 야욕을 드러냈다.
2.7. 18회
박진은 거리에서 원성황후와 대면을 하게 되었고 자신의 조카이자 양자 박영과 같이 현종이 보낸 고려의 호위병들이 원성황후를 동행하며 배웅하는 모습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충주에서 자신들의 음모를 캐기 위해 온 김은부의 큰 딸을 만나 그를 떠본 후, 충주을 떠나 고려 수도 개경에 올라와서 충주 유씨 집안인 내사시랑 평장사 유진을 만난다.[28] 유진과의 회동 이후 수창궁에서 수도 개경 복구에 협조 하겠다며 다른 호족들과 현종을 알현하며 재물과 목재와 돌 등 건설 재료를 바치며 다른 호족들과 함께 장작감에 임명됐는데 일전에 안면식이 있는 최사위가 이상하게 쳐다본다.[29] 박진의 조카이자 양자인 박영은 고려 황실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최구를 국밥집에서 만나서 회동을 가지며 황실의 동향를 수집하고 한편 같은 시간 박진은 고려 황제 현종 앞에서 대면하며 한쪽에선 몰래 반군을 결성하여 새로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쿠데타을 일으킬 계획을 세운다.2.8. 20회[30]
유진이 황제 현종(과 강감찬)에게 정치력으로 결국 밀려 김은부의 지방 개혁을 좌초시키는 데 실패하고, 김은부가 황제의 장인이 될 수 없는 명분으로 앞선 병역 비리 건을 내세우라고 권하자[31] "명분은 힘을 얹기 위한 껍데기에 불과하다"며 자포자기한 모습을 보이자,[32] 결국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말보다는 무력을 제공할 수 있는 자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한다. 한편 장작주부가 된 이후 그는 자신의 조카이자 양자 박영을 개경에서 만나서 황제 현종을 퇴출시켜 개경을 장악하여 새로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반군을 결성하며 계획을 세우며 노골적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본색을 드러냈다.2.9. 21 ~ 23회
21회에서는 반란을 일으키 위해서 김훈, 최질과 접촉하기 위해서 병사들에게 떡과 고기를 나눠준다. 이후 최구의 주선으로 김훈, 최질과 술자리를 갖고 술에 취한 최질이 왕실과 신료들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자 무신들도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면서 그들을 부추긴다.22회에서는 고려 왕실이 거란과 협상을 한다는 소식에 재상들만 나선다는 사실을 김훈, 최질한테 듣고 나라의 명운을 좌우하는 협상에 무신이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이해가 안간다면서 그러니까 무관들이 무시 당한다면서 부추기고 전략을 알려주어 김훈, 최질이 현종과 재상들 앞에서 반발하게 만들으며 뒤에선 반란을 준비하고 있다.
23회에서는 또 다시 문관을 행영도병마사로 임관한 것을 두고 반발하는 최질과 유방은 지난 전쟁에서 공이 있어서 나도 어쩔 수 없다는 김훈의 말을 듣고 묘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강감찬이 동북면 행영도병마사가 된 것을 두고 가장 무관과 먼 사람이 임명되었다고 분노를 터뜨리는 최질과 짜증을 내는 김훈에게 이렇게 무장들이 아무 목소리도 내지 않으니 아무것도 안된다고 말하면서 폐하께 무장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야 한다고 말하고 두 분만으로는 안되니 무장들이 집단 행동하라는 식으로 부추긴다. 그리고 김훈과 최질을 기다리면서 칼을 만지는데 돌아온 김훈과 최질에게 어떻게 되었냐는 말을 하고 큰 벌을 받을 뻔 했다는 김훈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분을 이기지 못하고 투구를 던지는 최질을 지켜본다.
2.10. 24회
24회에서는 그는 자신의 조카이자 양아들인 박영과 같이 반란을 하기 위한 사전 전략을 세우며 확실하게 수행하기 위해 우선 또 다시 무관들과 병사들에게 떡과 술과 고기를 자신의 양자이자 조카 박영을 통해 전달하며 치밀하게 반란의 명분을 세운다. 그리고 장연우와 말싸움한 최질을 따로 불러 황제에 대한 속내를 드러내고 "당신이 나서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무관들은 문관들 발 밑에서 비참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면서 최질에게 반란을 부추긴다. 이후 세월이 지나 서기 1014년 고려는 거란과의 국지전과 정전 복구를 포함한 전후 처리로 인해 힘든 상황에서 최질을 만나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33] 먼저 자신의 편이 될 만한 사람들을 끌어모으라는 이야기를 하며 전쟁이 막 끝났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2.11. 25회
원정왕후의 전각에 찾아가서 원정황후를 만나 부족함이 있는지 물어보고 원정황후는 부족함 없이 흡족하다고 대답한다. 모란꽃 장식에 대해 황후의 고결함을 상징한다고 설명하면서 전각 한 편에 모신 부처에 대해 마음의 평안을 얻기를 바라면서 진심을 다해 비는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형부시랑의 여식도 궐 밖으로 내쫓을 수 있다고 말하며 반응을 살피는데 원정황후가 장작주부 박진의 정체를 의심하자, 충주의 호장이라고 말하고 이제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다고 말해 혼란을 준다. 그리고 궐에서 최사위를 만나서 인사를 하는데 최사위는 황제를 싫어하던 그가 사재를 털어서 개경을 재건한 것에 대해서 의심하고 이에 박진은 울분을 토하면서 개경에 자신의 아들들의 이름이 새겨진 작은 석탑을 세워 이 고려가 절대 내 아들을 잊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걸 들은 최사위는 박진을 더더욱 의심해서 어사대에 있는 노전과 김종현에 조사를 의뢰하게 된다. 그 후 황보유의와 장연우가 영업전을 무관들에게 뺏어 문관들의 녹봉으로 삼는 일을 계획하고 있는 것을 엿 들은 최구가 박진 부자에게 알리자 박영과 같이 이 일을 상의하고 김훈 최질과 같이 본격적인 거사를 준비하고 본격적으로 주도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동북면과 서북면 군사들이 들이 닥칠 것을 김훈과 최질이 걱정하자 원정황후를 방패막이 삼을 생각을 한다. 그 후 반란이 일어나자 김씨 부인을 인질로 사로 잡고 원정황후에게 이제 알아서 하라고 하고 원정황후는 이건 반역이라고 말하자 본색을 드러내 황제의 목숨이 위험할 것이라고 협박하면서 동북면, 서북면의 군사들이 못 들어오도록 교서를 내리라고 밤새 압박한다.2.12. 26회
원정왕후를 겁박하여 서북면 군사들을 돌려보내는 데 성공하고, 최질을 움직여 김훈을 실각시킨다. 이후 최질의 천거로 개성부윤에 임명되었지만, 그 동안의 행적들이 재상들에 의해 끼워맞춰지며[34] 그가 난의 배후라는 심증이 서고, 더욱이 결정적으로 최사위가 몽진 길의 암살 배후로 지목한다. 이후 강감찬과 마주치고 지나가던 중 강감찬이 갑작스럽게 어깨 좀 보자하여 강제로 어깨를 들춰 지난 13화에서 화살을 맞았던 탓에 생긴 흉터가 드러나면서, 강감찬에 의해 추포되고 만다.2.13. 27회
앞서 26회 끝부분에서 강감찬이 박진을 의심하며, 황제 현종을 암살시도 한 대역죄인의 신분이 되었지만 이를 알고도 최질이 적극적으로 비호하였다. 이제는 대놓고 현종의 목에 칼까지 겨누며 자신의 아들들을 잃어버린 참담한 현 상황을 하소연함은 물론 현종에게 친조를 하러 거란 땅으로 가라는 강요를 하였다. 그 과정에서 현종의 요청에 따라 최질 일파를 처단하려는 김훈을 잡게 되었다. 박진은 거란의 친조를 하러 상장군 최질과 함께 현종을 데리고 서경으로 몽진하게 되었다.2.14. 28회
서경의 불온한 움직임을 눈치채고 서경으로의 입성을 망설이고 있다. 서경 군사들을 통주로 내보내기 위해 가짜 조서를 쓰고 고려 황제의 옥새까지 찍었지만 자신의 조카이자 양자인 박영이 이건 아니라면서 말하며 형님들은 거란의 손에 죽었다면서 지난 전쟁에서 죽은 친자식을 언급하자 발끈하며 분노한다. 행군을 잠시 멈춘 현종에게 다가가서 현종에 두 아들이 죽은 연유를 묻자 소상히 이야기 하고 현종에게 미안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무시하고 거란땅에서 고통스럽게 죽으라고 이야기하자 현종은 그것은 고려의 모든 부모들이 피눈물을 흘리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거란에게 죽은 박진의 두 아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말하자 할 말을 잃고 물러난다.[35] 서경에 도착한 후 현종이 연회를 연다는 소식에 최구와 박영을 보내는데 박영은 죄책감에 최구가 연회장 외부에 숨고 있는 지채문 손에 죽는데도 외면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돌아온 박영과 술을 기울이는데 박진은 현종을 거란으로 보낸 후 개경으로 다시 돌아와서 기념탑을 세워 죽은 자식들의 이름을 새기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고 최질도 막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 하나 황제 현종이 주도한 진압군 병사들이 여기 연회장에 위장하여 있고 반란을 주도한 최질과 김훈이 곧 죽을 것이라고 박영이 말하자 이에 박진은 배신감을 느낀다. 그리고 지난 전쟁에서 죽은 친자식들이 거란 때문에 죽었다는 박영의 말에 격노하자 언쟁을 벌이다가 양자 박영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만다. 양자 박영을 살해한 이후 망연자실하여 울부짖다가 황제를 원망하며 활과 화살을 들고 연회장으로 향한다.[36]2.15. 29회
앞서 지난 회차의 끝부분에서 자식들이 거란군 때문에 죽었다며 언쟁을 벌이다가 홧김에 자신의 조카이자 양자 박영을 살해하고 연회장에서 최질마저 죽고 상황이 정리된 말미에 등장. 격노한 채로 활과 화살을 들고, 이제 다 끝났다는 선언에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 황제 때문에 내 아들이 또 죽었다"라며 울부짖는다.[37] 그러면서 끝끝내 화살을 쏘지만 그마저도 빗나가고 결국 지채문의 칼에 주살당한다. 처음 칼을 맞아 쓰러진 후[38]에도 집념으로 두동강난 활을 잡으려 시도했지만, 결국 재차 찌른 칼에 절명하고 만다. 사후 그의 시신은 가족들이 있는 충주로 전달되고, 박진의 가족들에게는 죄를 묻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극에서 완전히 퇴장했다.3. 묘사
박진의 모티브가 된 향리(아전)에 관한 일화는 다음과 같다.고려사 등 사서에 의하면 고려 현종은 50명 정도의 인원을 데리고 몽진을 하고 있었는데, 단조역에서 활까지 쏘는 도적들을 막아가며 힘겹게 나아가다가 오늘날 경기 양주시 일대에 해당하는 창화현에 이르렀는데 이 곳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향리[39]가 현종을 문전박대 및 면전에서 하대하며 본인을 알기는 하냐는 발언을 하는 등 고려 황실을 능멸하였고, 현종으로 인해 유배를 간 하공진이 온다는 정보로 그가 복수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주어 행렬을 더 와해시켰다. 설상가상으로 야간에는 하공진의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적도들이 몰려와 행렬을 급습해가며 살해 시도를 하였으나 지채문이 잘 대치하여 막아낸 덕분에 무사했지만, 또 행렬이 와해되자 현종은 두 왕후를 먼저 보내어 서로 떨어지기도 하였고, 지채문은 이후 실제 하공진 일행을 만나 오해를 풀었다.[40] 원작 소설에서는 해당 일화가 사서에 적힌 그대로 재현되었다. 참고로 창화현의 아전은 이후 행적에 대해서 확인된 바 없고, 현종의 몽진 당시 전라도에서 괴롭혔던 전주의 조용겸을 비롯한 일부 관리들은 전쟁 이후 유배를 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해당 향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인물인 박진의 경우, 담당 배우인 이재용의 뛰어난 연기력 덕분에 후일 고려 조정과 임금을 위험에 빠뜨리는 인물임에도 많이 공감된다는 평가가 대다수이다. 특히 9회에서 둘째 아들에게 변고가 생긴 것을 직감한 듯한 표정, 아들의 목이 잘려나갔다는 말에 얼굴을 파르르 떠는 모습, 그리고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거적을 들춰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참척의 고통에 울부짖는 등, 실감나는 연기를 선보여서 작중 인물의 행적을 이해할만하다는 시선들이 많다. 이처럼 박진은 매력있는 빌런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나중에 "임금께서는 나의 이름과 얼굴을 아시겠습니까?" 라는 대사가 가진 무게감이 완전히 다르게 되었다. 원래는 지방 유지가 자기 세력권에 들어온 고려 황제에게 거만함을 드러내는 말이고, 드라마에서는 두 아들을 고려 황실 때문에 잃은 자신을 알아보기는 하냐는 투의 원한을 품은 대사로 바뀌었다.[41]
비극적인 개인사를 빼면, 여러모로 고려 지방 호족의 모습과 그 한계를 보여주는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무리 원래부터 고려 황실에 대한 반감이 있다고 해도 김치양의 반역에 동조한다든가[42] 엄연히 거란이 고려에 쳐들어 온 것임에도 두 아들을 죽인 거란이 아닌 고려 황실을 원망하든가, 자기 지방과 가문만 최우선시하고 국제 정세에 어둡거나 나라를 생각하는 것에서는 부족한 면모를 보인다. 물론 중세의 평범한 지방호족이 국제정세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난 게 더 이상한 노릇이긴 하다. 그리고 나라의 징병으로 인해 두 아들을 잃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현종의 앞에서 대놓고 그를 죽이겠다는 역심을 드러낸 것으로 인해 추후 멸문지화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박진은 본인의 정체를 감추고 변장을 하여 몰래 기습이라도 시도했지, 작중 단역인 안 호장이란 인물은 대놓고 "황제께서는 나의 이름을 아십니까?" 처럼 노골적으로 고려 황실을 능멸하는 발언을 던지고는 이후 박진에게 '황제가 보복으로 삼족을 멸할 것'이라는 경고를 듣자 자신의 상황을 깨닫는 등, 일반 호족들은 박진보다도 정치적 식견이나 통찰력이 부족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젠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호장들이 황제를 습격해야 하는데, 그것마저 제대로 통솔하지 못하고 하공진이 오는 것을 보고 도망치자 박진이 그들을 "무능한 자들"이라고 비웃는다. 과연 사극 베태랑 연기자의 연기력을 더해져 그의 최후를 어떻게 그려낼 지 귀추가 주목된다는 반응이 있었다.
3.1. 16회 이후 묘사
16회까지의 모습과는 달리, 17회부터는 무리한 전개와 막장 각본으로 시청자들의 분노와 발암을 유발시키며 드라마를 산으로 가게 만든 배역으로 전락했다.제2차 여요전쟁이 진행할 때만 해도 황제를 시해 시도하다 죽거나 혐의로 멸문지화 당하면서 퇴장하지 않을까 했으나 오히려 살아남았고, 오히려 제2차 여요전쟁 후 현종의 개혁에 반기를 드는 주요 호족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애초에 가공 인물인데 극의 개입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또 다른 가공인물인 박진의 조카이자 양자인 박영이 최구와 연결이 되고 있는데, 최구가 실제 역사에는 ' 김훈·최질의 난'의 주동자들과 어울렸다는 기록이 있기에 박영도 가담하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일었다. 20회를 기점으로 박진이 재상진인 유진 대신 다른 호응세력을 물색하기 시작하고 김훈, 최질이 극 중 불만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자연스레 연결이 되면서 사실상 김훈·최질의 난의 흑막으로 묘사되기 시작한다. 난이 진행되자 함께 가담을 해 조정 쪽이 아닌 황후들 쪽으로 맡게 되는데, 원정황후를 겁박하고 원성황후를 험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여준다. 난의 성공 이후에는 그야말로 모든 실존인물이 가상인물인 박진에게 휘둘려 실존인물의 계책이나 행동을 박진은 모조리 예측하여 무산시키고, 연회를 이용한 계책도 박진의 의심을 받아 양자 박영이 배신하지 않았으면 이마저 실패할 뻔 할 정도로 쓸데없이 쟁쟁했던 실제 인물들을 능가할 정도로 능력치 보정을 받고 있는다.
결과적으로 담당 배우가 아까운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 이야기 하는 것처럼 13회에서 지채문의 화살을 맞고 깔끔하게 퇴장할 수 있었는데, 질질 끌다가 퇴장할 타이밍을 놓치며 무리하게 후반부까지 생존하게 만들면서 김훈·최질의 난의 주동자인 김훈과 최질의 비중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이 생겼으며[43] 가상 인물이 정통사극을 표방하는 작품의 스토리에 지나칠 정도로 중요한 역할 및 비중을 받아 관여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평이 다수의 시청자들의 의견이다.[44] 일개 충주 호장이 무관으로서 최고 지위에 오른 상장군에게 도와달라고 말해보라고 하거나, 심지어는 아예 황실 전체를 자신의 손아귀에 움켜쥐는 듯한 모습까지 보여주면서 아무리 드라마로서 창작의 영역이라 해도 도무지 용납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고작 충주 지역에서만 힘을 행사하는 작은 호족인데다가 중앙에서 장작주부라는 하급 관리(장작감이란 관청의 종7품 벼슬)에 오른 박진이 황제를 치기 위해 자기보다 급이 높은 상장군(정3품으로 무관 중 최고위직) 김훈과 최질의 뒤에서 모략을 꾸미는 묘사는 너무 무리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17회를 기점으로 드라마가 막장 전개를 보이면서 '고려궐안전쟁'이라는 악명이 생겼는데, 박진도 그 원인 중 하나인 셈이다.[45] 더욱이 25회부터는 선을 넘어 버리는데 원정황후까지 겁박하고 조종하는 모습, 27회에는 뜬금없이 현종의 침전에 침입해 칼을 겨누며 겁박하는 모습[46]이 묘사되는 진짜 이젠 도저히 그냥 봐줄 수가 없는 막장 전개에 무리수들로 온 시청자들 분노하게 만들었으며 심지어 이정우 작가의 메리 수가 아니냐는 극도의 비판까지 뒤따랐다. 28회 방영 후 김훈·최질의 난이 박진의 마지막 이벤트가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실제로도 김훈·최질의 난 이후에는 빠듯한 분량 상 고려 내부상황을 잠깐 보여 주고 곧바로 제3차 여요전쟁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김훈·최질의 난 진압 중에 살아남아 거란으로 도주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으나 29회 초반에 사망하여 제3차 여요전쟁 이전 그나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4. 총평
명실상부 고려 거란 전쟁에서 가장 큰 비판을 받은 배역으로, 배우 이재용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문제투성이의 각본으로 인해 드라마의 완성도를 몰락시킨 가장 큰 문제점이 된 캐릭터라고 평가 할 수 있다.우선 박진의 드라마 속 역할을 보자면, 외적과의 전쟁만이 아니라 전쟁 중 고려 내부에 있었던 여러 고난과 그에 따른 환란을 표현한[47] 실제 역사에 없는, 동시에 원작 소설에서도 없던 엄연히 이 드라마의 가상 오리지널 캐릭터이다. 이런 캐릭터성은 등장 초기에는 담당 배우인 이재용의 연기와 어우러져 캐릭터성에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제2차 여요전쟁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는 후반부부터 드라마의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엄연히 가상 캐릭터인 박진에게 더 큰 서사와 무리한 캐릭터 보정이 들어가며 캐릭터는 물론 드라마까지 더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지기 시작했다.[48] 16화 이후 드라마의 무리한 전개로 인한 고려사 곡해가 심각해지는 와중에 그 후반부를 이끌 목적으로 추가된 박진의 서사는 가상 인물에 불과한 그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고 있었다.[49]
본래 "고려 거란 전쟁"이니만큼 외적과의 싸움을 중점으로 다뤄야 하는 작품이 속칭 "고려궐안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내부 암투에만 집중한 나머지 캐릭터가 제때 퇴장하지 못한 상황에서 오히려 비중이 지나치게 커져버렸고[50], 그 바람에 가상 캐릭터라는 특징까지 겹쳐 역사 왜곡까지 심화되었다.[51] 이렇게 제작진이 역사 왜곡을 크게 저지른 상황에서 그 내부 암투마저도 허술한 삼류 각본으로 인해 개연성이 모조리 추락해 최악의 평가를 받으면서 회생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심지어 '고려거란전쟁'이란 사극이 주인공인 강감찬, 상대 세력인 거란보다 박진이 더 오래 나오는 "고려 박진 전쟁" 드라마가 되어버린 건 덤이다. 물론 대하사극에 가상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며, 당장 KBS의 역대 대하사극에서도 무인시대의 두두을이나 정도전의 양지처럼 가상 인물을 비중있게 활용한 전례가 숱하게 존재한다. 문제는 이전의 다른 대하 사극 작품들에 등장했던 가상 인물들은 사서로 설명이 안되는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작품 속 사건들의 개연성을 만드는 역할에서 그쳤을 뿐, 박진처럼 실제 기록상의 역사에 노골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박진의 행적 때문에 실제 역사 속 모습과 괴리감이 커진 인물들이 다수 발생했고,엄연히 실제 역사에서 기록된 역사적인 사건들의 전개가 바뀌면서 결국 본 드라마 전체가 대하사극의 탈을 쓰면서 역사를 괴상하게 왜곡하는 작품이라는 오명을 쓰게 만들었다.
또한 박진은 겹치는 시기를 다룬 천추태후의 소찰리와 궤를 같이하는 캐릭터다. 둘 모두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상 인물이라는 점,[52] 그리고 전란이 끝난 직후 내부적인 갈등과 불화를 조장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천추태후의 소찰리는 최소한 1차 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목종 즉위 초기 때만 등장하여 성종을 중독시킨 약을 문화왕후를 통해 목종에게도 몰래 주다가 천추태후에게 들켜 척살당할때까지 극의 흥미를 돋는 정도의 역할만 하였지만, 박진은 초창기 사건부터 최후반부까지 끊임 없이 극의 메인 빌런인 양 행세하여 그 비중을 너무나도 과하게 가져갔다. 그야말로 대하 사극의 흑역사라고 평가받았던 그 천추태후보다도 못하게 가상 인물의 비중 조절을 실패했다는 것이다. ' 고려 거란 전쟁'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정작 극의 메인 빌런으로 나왔어야 할 야율융서와 소배압의 비중을 후반부에 모두 합쳐도 박진보다 적은 지경이니 말 다한 셈이다.[53] 제작진은 대하사극으로 봐달라고 말하지만, 이 드라마가 대하사극이 될 수 없게 된 결정적 실책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종영 후 이어진 고려거란전쟁 스페셜 회차에서 KBS 박진의 취급이 어떠한지를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데, 실존 인물이자 메인 빌런인 야율융서조차 능가하는 비중을 가졌음에도 박진은 한 마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54] 그 최악의 평가를 받은 궁중암투 부분도 짧게나마 다뤄졌고 원정왕후와 원성왕후조차 방영 중 이름을 올린 것을 감안하면, 배우와 KBS 제작진 사이에서조차 박진은 완전히 실패한 캐릭터로 취급하여 언급 자체를 회피하는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4.1. 왜 이렇게 되었는가?
박진은 비록 가상의 인물이지만 초반에만 해도 2차 거란 침공 시절의 귀족 계층을 형상화 시킨 캐릭터란 서사에 배우의 열연에 힘입어 호평받은 캐릭터였다. 하지만 드라마 중 후반부 들어 퇴장하기까지 박진이 고려 거란 전쟁을 망친 원흉 취급까지 받는 이유는 크게 5가지를 들 수 있다.-
공감가지 않는 캐릭터성
거란의 제1차 침공으로 아들이 전사했는데, 정작 박진은 고려 황제에게만 분노를 쏟아낸다. 물론, 아들을 징집한 국가에 분노하는 것이 크게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박진은 오로지 고려 황제 현종에게만 분노한다. 심지어 첫째 아들이 죽은 일은 현종 때의 일도 아닌 성종 때의 일인데도 그것까지 한꺼번에 현종의 탓만을 하고 있다. 이 정도면 전쟁 이전에 그냥 현종이라는 사람에게 악감정을 가진 것이 아니고서야 이해 불가능한 수준의 분노이다. 16회 이전엔 그래도 고려 조정의 정점인 군주 자체를 혐오해 목종을 치려는 김치양의 역모에 사병을 보내려고 했으며 왜 고려 조정을 싫어하는지 이유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17회를 기점으로 이게 현종 개인에 대한 원한으로 변질되었다. 심지어 자기 아들을 죽인 진짜 원수인 거란에게 황제와 함께 사실상 고려를 통째로 팔아먹으려는 모습까지 보이면서, 더 이상 복수귀가 아니라 그냥 매국노에 불과한 캐릭터로 전락해버렸다. 현종을 증오하는 설득력은 부족한 주제에 행위는 과하게 극단적이니 시청자들이 박진에게 공감을 가지는 게 아니라 그냥 어린 아이가 생떼를 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아들이 거란에게 죽은 건 그저 화를 낼 구실일 뿐이고 처음부터 고려라는 나라와 황제 자체에 불만이 있던 게 아닌가 싶을 지경. 그 결정타로 28회에서는 이 문제를 지적하며 박진의 폭주를 막으려는 양자 박영까지 본인이 직접 죽였음에도, 막상 박영이 죽자 또다시 황제를 탓하며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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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할 정도의 비중과 능력 묘사
박진은 고작해야 장작 주부라는 하급 관리일 뿐이다. 하지만 박진이 나중에 두 상장군을 조종하거나, 심지어 황실의 2인자인 황후마저 겁박하는 모습은 과연 이게 정말 일개 호장이 벌일 수 있는 스케일의 행위가 맞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호장 한 명이 이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면 고려는 도대체 저런 호장이 수십 수백명이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중앙 집권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비중 역시 제2차 여요전쟁 때 하차했어야 할 캐릭터가 제3차 여요전쟁 직전까지 출연함에 따라 다른 캐릭터의 비중까지 잡아먹어 버렸고, 졸지에 주인공인 강감찬이 그때 박진의 계략에 아무것도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광개토태왕의 국상 개연수도 극중 지나치게 후계자 계열에 든 담덕을 경계하며 자기의 지지 세력만 끌어 안고 자신의 딸 도영까지 이용한 반역자인 인물로 그려졌지만 담덕과 다른 악역의 매력은 가지고 있었고 퇴장하기 전 결국 무리수가 틀어지니까 도영이를 버린 건 담덕 그놈이다 원망 이전 아들이라도 살린 후 무너진 모습이라도 있기에 반역 스케일은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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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에 맞지 않는 행적
맏아들이 전장에서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것이 그렇게 트라우마가 되었던 것이라면, 어째서 둘째 아들의 징병을 뺄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말단 주부 주제에 고려의 황실을 겁박하고 상장군들의 반란을 지원할 정도로 능력있으며 궁궐 복구에 사재를 대고 뇌물도 뿌릴 정도로 재력도 큰 사람이, 자식 군대 하나 못빼서 두 아들을 모두 죽게 만든다는 사실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박진이 국가에 엄청난 충성심을 가진 캐릭터도 아니고, 두 아들의 복수를 위해 나라 자체를 팔아먹을 정도로 극단적인 사람인데다가, 절대 동원령을 뺄 수 없을 정도로 절도사들이 철저했던 것도 아니고 오히려 철저하게 동원령을 이행하려던 절도사인 김은부조차 호장들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호장들의 아들의 징병을 빼주는 모습까지 묘사됐는데 박진은 그 능력으로 도대체 왜 아들의 징병을 빼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지 설명조차 되지 않는다.[55] 이 때문인지 고의로 황제를 몰아낼 명분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차남의 징병을 일부로 빼지 않은게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나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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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지나친 핍진성 부족과 역사 왜곡
상술되었듯 그리 높은 지위의 호족도 아닌 자가 상장군이라는 재상급 무관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황실에 대한 도를 넘은 능멸에도[56]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등 군주제 국가라고 하기 어려운 핍진성의 파괴가 드러난다. 또한 난과 관계가 없는 원정황후를 난의 적극 협조자로 만드는 등 역사 왜곡도 심각하다. 그 외에도 황제를 시해하려 한 것도 모자라 나라 전체를 거란에 갖다 바치려 했던 매국노임에도 그를 척살한 뒤 그의 가족들에겐 죄를 묻지 않겠다고 하는 것 등 또한 시대에 심각하게 맞지 않는 설정 오류라는 지적이 많은데[57] 자세한 것은 고려 거란 전쟁/평가/역사 왜곡 논란 문서의 2.3 문단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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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근간을 바꿔버린 행적
본 캐릭터의 가장 큰 비판점이며 위의 "과할 정도의 비중"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문제점이다. 본 드라마에 시청자들이 크게 관심을 가진 이유는 지금까지 판을 치던 로맨스/정치 사극과는 달리, 제목에 대놓고 "전쟁"을 박아놓을 정도로 전쟁을 깊이 다루는 드라마라는 사실에 신선함과 끌림을 느낀 것이다. 실제로 전반부에는 처절한 전쟁과 외교의 실태를 잘 다뤄서 호평을 받았으나, 갈수록 전쟁을 다루기는커녕 정치사극+로맨스로 방향을 틀어버리고, 그 정치와 로맨스도 다른 사극들에 비하면 깊이가 형편없는 수준이었기에 시청자들이 크게 실망한 것이다. 그 후반부를 이끄는 주역이 박진이었고, 그로 인해 "전쟁"이라는 장르가 사라지고 그나마 29회부터 진행된 3차 여요전쟁도 전보다 훨씬 떨어진 퀄리티로 말아먹고 말았으니, 그 중심에 서 있는 박진에게 시청자들의 분노가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박진의 문제점은 무려 황제 암살 미수범이 현종 습격 사건을 기점으로 하차했어야 할 것을 제2차 여요전쟁이 끝난 뒤에도 계속 출연하게 한 것, 그 과정에서 고려 내부 암투의 개연성을 세우겠답시고 억지로 과도한 서사를 부여한 점 등이 있다. 이쯤 되면 하차시켜야 하는 캐릭터를 제때 하차시키지 못하면 작품 전체가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 사례라고 할 수 있으며, 바로 본 드라마가 명작의 반열에 오르지도 시청률이 엄청난 대박을 더 치지도 못한 채 용두사미 평가를 받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 된 캐릭터인 셈이다. 아니 나아가 여태 한국의 창작물들 캐릭터 중에서 최악이라고 뽑을 수 있는 캐릭터라고 할 수도 있으며 고려 거란 전쟁을 대하드라마 넘어서 한국 창작물계에서도 역대 최악의 망작으로 뽑을 정도로 만든 원흉이라고 할 수 있다.[58]
5. 어록
지난번 거란과의 전쟁 때 큰아들 놈을 잃었네! 한데 이번엔 둘째까지 바치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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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도적 몇 놈도 잡아 주지 못하는
개경의 황제가 우리 자식들을 모두 전장으로 끌고 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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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석이... 우리 석이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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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할 만큼 했소. 더는 갖다 바칠 자식들도 없소. 그러니 통군사가 알아서 하시오. 군사가 필요하면 통군사가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마음대로 끌고 가시오. 군량미가 필요하면 통군사가 아무 집이나 들어가 곳간을 열고 가져가시오! 알아서 하란 말이오! 개경이 일으킨 전쟁이오! 한데 왜 우리가 죽어나가야 하는 거요! 조정의 재상들의 눈에는 남쪽의 백성들이 전부 화살받이로 보이는 거요? 성상 폐하께서 초래하신 전쟁이오! 싸우려거든 성상 폐하가 직접 하라고 하시오! - 군사를 징발하라는 현종의 명을 전달하는 최사위에게 반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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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 장정들을 전장으로 내몰고도 외적 하나 제대로 물리치지 못하는 못난 황제의 목숨이오. 거란군에 목이 잘린 내 아들 놈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던 이 길에서 황후의 발바닥이나 만지작거리는 가증스러운 황제의 목숨이오! 그럼... 부디 잘 가시게. - 현종을 암살하려고 할 때에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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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활을 내려라! 이제 다 끝났다!) 박진: 난 아직 안 끝났소!! (오열하며) 폐하가 내 아들을 죽였소...하나 남은 놈까지 폐하 때문에 죽었소...!! 내가 이제, 폐하를 지옥으로 보낼 것이오. 내 아들놈이 그곳에서...폐하를 반겨줄 것이야...!! - 박진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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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담
- 박진에게는 어린 손자가 있는데, 성인으로 자랐을 쯤에는 제3차 여요전쟁이 발발하기 때문에 귀주 대첩을 비롯한 제3차 여요전쟁에 박진의 손자까지 징병된다는 예측도 있다. 사실 이게 오히려 다행인 것이 대놓고 현종을 해치려고 할 텐데, 2차 여요전쟁이 끝나고 역적으로 집안이 멸문당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현종이 자비를 베푼 것이다.[59] 일단 역사서에 현종을 해치려던 아전이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살 가능성이 있으며, 실제로 본작에서 박진의 처자식들은 죄를 받지 않았다.[60]
- 9회 엔딩에서 박진이 차남의 시체를 보면서 절규하던 컷씬 옆에 공교롭게도 최수종의 상조 광고 배너가 같이 떠 '고려 황실과 강감찬이 대놓고 티배깅을 한다.', '이러니 몽진길이 지옥이 되는 것이지.' 등의 반응들이 나왔다.
- 이전에 야인시대에서 배우 이재용이 일제강점기를 다룬 1부 최종보스 미와 와사부로를 맡은 전력이라던가, 현종의 몽진 중 검은 변복을 입고 기습하는 등의 행적 때문에 닌자에 비유돼서 '고려닌자 미와=상', '아이사츠 전 엠부쉬 1회는 유효' 같은 인살어 드립이 붙기도 했다.
- 이렇게 박진을 포함한 지방 호족들이 현종을 공격하는 일은 한국보다는 일본과 유럽의 작품들에나 어울리는데한국 시청자들은 오랫동안 통일 국가와 중앙집권체제, 그리고 백성까지 뿌리내린 유교사상 속에 살아서 지방 세력이 국가원수를 공격하는 게 익숙지 않지만, 중앙집권제보다 봉건제가 더 익숙한 일본인들과 유럽인들에게 현종이 당하는 일은 자기네 역사책에 숱하게 나오는 사례이기 때문으로 보인다.[61]
- 김훈·최질의 난 전개 과정에서 장작주부라는 비교적 낮은 직위를 가졌으면서 상장군인 김훈, 최질은 물론 황후의 전각에도 출입하며 급기야 흑마법을 연상케하는 이정우 작가의 질낮은 묘사에 " 고려 상류사회에 침투해서 흑마법으로 세뇌까지 할 수 있으면서 정작 자기 아들 군대 하나 못 빼서 전쟁터에서 헛된 죽음을 당하게 하느냐"는 비웃음 섞인 비판이 있다.
- 이정우 작가는 이전 작품이던 조선 총잡이에서도 임오군란을 민씨 친정의 군납비리와 별기군 편애로 촉발된 것이 아닌, 수구파로 묘사된 안동 김씨들이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식으로 스토리를 진행시킨 적이 있는데 그 스토리를 재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그 배후 조종자를 이번 드라마에서는 박진으로 바꾼 것 뿐이다. 한국판 배후중상설을 만들어내고 여기에 감정 이입하는 작가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나마 조선 총잡이는 가상 인물들이 주역에 실존 인물들이 곁다리로 나오는 퓨전 사극이라 주목도가 덜했지만 본작은 엄연한 정통 사극이라는 점에서 제대로 문제가 터졌다.
- KBS 대하드라마 갤러리 등에선 마치 김훈, 최질, 원정황후에게 마인드 컨트롤을 거는 것 같다고 해서 '고려거란전쟁 판 암흑 집정관'으로 불리고 있으며 사실상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세계관의 울레자즈와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다. 이밖에도 스타워즈의 쉬브 팰퍼틴 취급을 하는 글도 보일 정도. 그러나 시리즈 내에서 손꼽는 악역인 울레자즈와 쉬브 팰퍼틴에 비유하는 것 조차 저 둘에게 대단한 실례고 작품 전체를 말아먹은 실패한 악역이라는 점에서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실바나스 윈드러너 남성판으로 꼽을 수 있다.[62]
- 심지어 디시인사이드에선 2022년대 이후 '저질 최종보스 캐릭터'의 아이콘이 된 마법천자문 2부의 암흑상제보다 더 질 나쁜 캐릭터란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다만 비판받는 이유는 정반대에 가까운데 암흑상제는 108요괴의 상관임에도 그만한 파워를 보여주지 못하고 캐릭터성이 일관되지 못해 지적을 받는 거라면 박진은 지나친 푸쉬이기 때문이다.[63] 그래도 둘 다 작품의 완성도와 다른 캐릭터들에게 악역향을 미쳤고 비슷한 점이 많으며 두 캐릭터들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64]
- 상술한 온갖 본 캐릭터에 대한 막장 전개 각본 개연성으로 이정우 작가는 더 이상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게 해선 안 된다는 의견들 또한 적지 않게 존재한다.
- 어떻게 보면 김숙흥의 안티테제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두 캐릭터는 상당한 공통점과 대비점이 존재한다.
- 박진은 가공인물이지만 김숙흥은 실존인물이다.
- 박진은 남방의 호족 출신이지만 김숙흥은 북방의 평민 출신[67]이다.
- 박진은 기본적으로 전쟁이나 거란에 관심이 없고 정치와 처세에 능한 인물로 묘사된다. 반대로 김숙흥은 정치에는 일말의 관심이나 인연도 없고 오직 거란군을 죽이는 전쟁에만 모든 것을 바치는 인물이다. 또한 박진은 고려에 대한 충심 자체가 없지만, 김숙흥은 장군답게 충심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68]
- 박진은 악역, 김숙흥은 선역이지만 둘 다 광인(狂人)에 가깝게 그려진다.
- 둘 다 거란군에 의해 가족을 잃었다. 박진은 아들 둘, 김숙흥은 아버지.
- 복수에 대한 태도. 박진은 아들들을 잃었다는 복수심에 휩싸이다 못해 잡아먹혀서 갈수록 완전히 엇나가고 타락해버린다. 그러나 김숙흥은 "뭘 어떻게 복수해야 죽은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냐?"라면서 복수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69]
- 결국 자신의 행적으로 인해 박진은 고려의 매국노 역적으로서 주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김숙흥은 사후 삼한후벽상공신까지 오르는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받게 된다.[70]
[1]
제1차 여요전쟁 때 사망했는지 작중에서는 이미 고인이고 이름도 밝혀지지 않았다. 27회에서 박진 본인이 언급하기를 눈에 화살을 맞은 채로 시신이 돌아왔다고 한다.
[2]
5회에서 군영으로 향할 때에 담담한 표정으로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전장으로 나섰다. 이를 보면 전쟁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나가서 공을 세우려고 했거나 첫 전쟁에서 전사한 형의 원수를 갚을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3]
차남 박석의 아이들이다.
[4]
아마
제1차 여요전쟁 때
소손녕의 거란군에 의해 죽은 걸로 추정된다. 거란이
만부교 사건을 구실로 침입해온 점을 보아 "고려 조정이 일으킨 전쟁"이라 간주한 듯하다. 이건 철저하게 구실이고 거란은 송나라 침공을 위해 배후 안정을 위해 고려를 침공한 것이다. 고려 입장에서는 송나라가 무너지면 다음은 바로 자신이니 송나라가 버티고 있을 때 균형을 맞춰야 한다.
[5]
고려는 중앙집권체제가 나름 잘 잡혀 있지만, 현실적인 한계로 지방 호족과 타협해 행정을 운영했다. 이는 중앙정부가 혼란할 때 이성계 같은 준군벌이 나타나는 씨앗이기도 하다.
[6]
야인시대에서
미와 경부,
뿌리 깊은 나무에서
조말생,
징비록에서
이산해,
화정에서
김상헌 역을 맡았다. 여담으로 강감찬 역의 최수종보다 1살 아래로 주조연 배우에선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배우다.
[7]
오늘날의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과 그 주변 지역.
[8]
오늘날의
서울 도봉구.
출처 과거엔 오늘날 양주시~의정부시~도봉구 일대가 모두 양주시라 불렸다.
양주시/역사 문서 참고.
[9]
굳이 양주가 아니라 충주의 호족으로 설정한 것은 충주의 지방관으로 일한 적이 있는 강감찬이나 본관이 충주 유씨인 유진 같은 인물들과 엮을 소지를 더 만들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8회에서 내사시랑 평장사인 유진을 찾아와서 자신이 충주의 호장이라며 충주 출신인 유진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10]
우연이겠지만 정종과 광종의 외가가 '충주 유씨'로 혜종과 달리 집안이 막강해 강한 왕권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었으며, 피살당한 목종이 광종의 손자다.
[11]
이 장면은 고려의 행정체제를 잘 보여주는 모습인데 조선 시대와 달리 봉건제와 관료제가 적당히 섞여 호족이 반란을 일으킬 정도의 힘은 없지만, 동시에 지방을 완전히 장악할 힘이 없는 고려 조정이 적당히 타협한 형태다.
[12]
다만 정보가 넘치는 오늘날에도 함부로 국제 정세를 판단하기 어려운 것을 보았을 때, 1차는 만부교 사건, 2차는 강조의 반란 등 겉으로 보이는 원인에 이목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거란의 흉계라고 해도 변명처럼 보이기에 잘못된 판단이라고 해도 비합리적인 것까지는 아니다. 박진의 분노는 여기에 기본적으로 지방 호족으로서 중앙에 품은 여러 불만이 합쳐진 결과물로 보인다.
[13]
실제 역사에서는 확실하지 않지만
제2차 여요전쟁 이전에는 7품이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원작 및 드라마 상 5회 시점에서 김종현의 지위는 7품 이상에 속한 외관직인 '충주사록'이다.
[14]
박진 입장에서는 두 아들과 휘하 병력을 전쟁에 보내고, 적어진 병력으로 어떻게든 치안을 유지하려는데, 조정에서는 도와주지도 않으니 저런 소리가 나온 것으로 영화
황산벌에서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함에도 중신들이 "해주는 거는 쥐뿔도 없으면서 툭하면 병력을 내라마라야"라는 대사와 일맥상통한다.
[15]
바로 자기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을 직감하는데, 이런 박진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것이 "첫째 아들이 죽은 경험" 때문에 바로 알아차린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한 번 경험한 비극이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 비극이니, 바로 알아차린 것.
[16]
이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경악하면서 고개를 돌렸는데, 엑스트라 연기자들의 연기력이 빛을 발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17]
우연히도 해당 회차 엔딩에 박진이 오열하는 장면 전후의 배너 광고로 최수종이 출연한 상조 회사 광고가 올라왔다.
[18]
박진이 단순히 개경조정의 불만이 아니라 두 아들을 잃은 원인을 개경조정에 돌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
음흉하고 심술궂게 욕심 부리는 성질 혹은 받고자 하는 대우를 받지 못할 때 내는 심술이란 뜻으로 아들의 죽음은 거란의 책임이고 호장에게 요구하는 것은 국가를 구하기 위함인데 이 의무를 지닌 호장이 지키지 않고 화만 내니 '몽니'라는 단어가 굉장히 어울린다.
[20]
사실 그는 선전포고를 하려 온 거란 사신 한기를 상대로 '거란이 고려에 전쟁을 일으키면 지략이 출중한 장수와 용맹한 병사가 결사항전하여 물리칠 것'이라면서 엄포를 놓았고, 서경이 고립된 것을 알고 목숨을 걸고 지킬 정도로 강직한 사람이다.
[21]
여기에서 조정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호장이 황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데, 조정의 신하는 고려의 임금에 대해 최소한 예의를 갖추어 얘기하지만 지방의 호족은 언성을 높이며 군주를 거론한다.
[22]
이때 모습이 마치
닌자를 연상케 하여 같은 배우가 맡은 일본인 캐릭터인
미와 경부 드립이 나돌기도 하였다.
[23]
현종을 죽이려던 박진의 무리들이 너무나도 쉽게 전멸해서 싱겁다는 반응이 나오지만 이는 절대 잘못된 반응으로 지방을 다르리는 호족들의 수장인 호장을 따르는 무리들이니 절대 약할 수가 없다. 막말로 거란군이 박진이 다스리는 지역으로 쳐들어오고 박진이 맞서 싸운다고치면 싱겁게 전멸했다는 이들이 거란군들과 싸워야 하며 지역의 도적 및 반란군을 가장 먼저 상대해야 하는 자들이니 절대로 약할 수가 없다. 다만 그런 이들이 상대한 인물들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고려 전체의 국경선 및 최전선에서 거란과 여진족을 비롯한 이민족들과 항상 목숨을 걸고 싸우던 고려 전체의 정예병들이니만큼 당연히 박진의 무리들이 상대가 될 수가 없는 상대라서 쉽게 전멸한 것이지 절대로 약하다고 판단하면 안된다.
[24]
물론 화살촉까지 빼지는 못했다.
[25]
이미 한 번 시도했다가 일부 백성들이 지채문에 의해 나가 떨어지면서 실패했다.
[26]
여기서 아들들의 사인이 나오는데, 첫째는 눈에 화살이 박힌채로 죽어서 왔고, 둘째는 알다시피 목이 잘려 돌아왔다. 참척의 분노를 여실히 드러내는 박진의 모습은 처음 둘째 시신을 봤을 때보다 더 맹렬한 분노를 태우는 모습을 보였다.
[27]
지금의
호남권인 옛
후백제의 출신 호족세력과 지금의
영남권인 옛
신라의 출신 호족세력을 만난 것으로 추정된다.
[28]
유진이 더 직위가 높은 만큼 나이가 훨씬 많게 묘사되는데, 실제로는 박진의 배역을 맡은 배우인
이재용이 유진을 맡은
조희봉보다 8살이나 많다.
[29]
최사위와는 악연으로 동원령에 협조해달라고 찾아온 그에게 박진이 직접 징발하고 아무 집이나 찾아가서 곳간을 털라면서 면전에서 모욕을 한데다 개경은 우리가 우습냐며 현종을 모욕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런 박진이 개경 복구에 협조 하겠다며 많은 재물과 복구에 필요한 재료를 바치니 의아할 수 밖에 없는 것.
[30]
참고로 19회에서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장작주부로 임명된 것이 언급되었다.
[31]
왕의 장인인 국구가 되기 위해서는 전과 등의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
[32]
실제로 탁사정이 이를 명분으로 내세워 상소를 올렸다가 유진을 포함한 재상들의 비협조와 현종의 몽진 당시 황제를 모신 공으로 사하면 된다는 최항의 반론으로 파훼당했다.
[33]
이때부터 최질이 박진에게 존대를 한다.
[34]
강감찬은 충주 호장 시절 1차 여요전쟁의 여파로 맏아들을 잃은 뒤부터 중앙 정부에 불만을 품었고, 김치양의 난에 가담하려고 했었다는 정황을, 그런 사람이 개경의 재건을 돕겠다면서 올라온 것도 이상한 데, 유진은 그 다음에 그가 자신에게 접근하여 형부시랑(김은부)을 쫓아낼 책략을 건네줬다는 것, 이후 최사위가 그러다가 그가 김훈과 최질과 친분을 쌓아 그들이 난을 일으키도록 충동질한 것 같은 정황, 한 가지 더 수상한 것은 현종의 몽진 행렬이 충주를 지날 무렵 그가 충주에서 사라진 것으로 보아 몽진 길 암살의 배후로 의심된다는 것을 언급한다.
[35]
하지만 그것이 복선이 되었다.
[36]
애초에 박진의 주요 증오대상은 황제가 아닌 거란족이 주이고 황실에 대한 증오는 부여야 타당한 사람이다. 하지만 증오대상을 잘못 설정한 캐릭터를 제때(원래라면 16화 전에 죽였어야 할 캐릭터다.) 퇴장 못 시키고 질질 끌고 오다가 캐릭터가 다 망가진 것을 배우 이재용의 호연으로 간신히 끌고 온 것이다.
[37]
역시나 자기가 자신의 양자를 죽인 것을 끝까지 황제가 죽였다고 부정하고 있다.
[38]
그 와중에 한번에 죽지 않는 모습도 보인다.
[39]
조선시대와는 달리 고려의 아전은 지방에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호족들이 주류를 차지한 실권자들이었다. 현종에게 이렇게 무례하게 대한 것엔 그런 뒷배도 있어서 가능했다.
[40]
현종의 행렬은 이런 사건 등으로 인해 몽진 7일차까지 40km 가량밖에 남하하지 못해서 거란 추격군이 걸어서 수 시간 거리까지 좁혀지기까지 했다. 이때 지채문이 현종을 배신하거나 하공진이 사신으로 거란군 진영에 가서 교섭 명목으로 시간을 끌지 않았다면, 현종 일행은 그야말로 거란군에게 잡혔을 수도 있었다.
[41]
참고로, 드라마에서는 실제 역사처럼 현종에게 자신을 아냐고 묻는 말 자체를 창화현의 호장인 '안 호장'이 대신 말하는 식으로 넘겼다.
[42]
김종현이 박진에게 동원령을 전달할 때 무례하게 군 것도 본인이 강감찬과 함께 박진이 김치양을 위해 병력을 동원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43]
김훈, 최질이 할 수도 있는 부분들을 박진이 처리하고 있었다. 명색이
김훈·최질의 난으로 역사적 기록이 있는데 25회에서는 비중이 김훈, 최질보다 많이 나오는 박진·최질의 난이 되어버림으로써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평이 많다. 특히 김훈과 최질은 주동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원정황후, 원성황후의 신변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듯한 다소 어처구니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44]
이쯤 되면
작가가 박진이라는 캐릭에 동화되어 표현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45]
전란이 채 수습되기도 전에 현종이 지방 개혁을 갑작스럽게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탁사정, 박섬 등 전란 당시 도망치거나 죄를 지은 자들을 속죄하는 조건으로 기용하는 것을 두고 전란 당시 전사자들의 유족들을 포함해 서북면의 장수와 군사들이 반발하고 있고, 여기에 거란은 재침을 준비하기 위해 척후까지 띄우고 군사들을 모집하고 있는 장면이 드라마 17~18회에 나타냈다. 이에 한림학사 승지인 강감찬이 이러한 이유를 들면서 현종에게 따지다가 파직 당하고 관리들이 사직했다가 복귀하는 등 극 중 고려 조정은 그야말로 실제 역사에도 없던 일까지 나와 혼란 그 자체이다.
[46]
아무리 최질의 비호아래 권력을 쥐었다 하더라도 상식 밖의 연출이다.
[47]
흥화진의 백성들과 더불어 아들의 시체를 어루만지며 대성통곡하는 박진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러면서도 황제의 명에 대놓고 반발하는 등 백성들의 입장만이 아닌 당대 고려의 지배층이었던 호족의 입장에서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을 상징했다고 볼 수 있다.
[48]
시청자들은
이정우 작가가 캐릭터 방향을 수정했다고 추측하고 있다. 작품을 전개할 때는 메인 작가가 전체적인 흐름을 잡고 보조 작가들이 조금씩 수정하기 때문에 충분히 추측이 가능하다.
[49]
예나 지금이나 실제 역사를 다루는 매체에서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 캐릭터의 활약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퓨전 사극이나 판타지 사극을 표방하지 않는 한, 사극에서 가상 인물들의 지나친 비중은 역사 왜곡의 위험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역사 속 가상 캐릭터가 주인공인 작품이라도 실제 역사를 표방한다면 이는 변하지 않는다. 특히 한국은 2010년대 이후 주변국들의 역사 왜곡과 문화 침탈에 크게 시달리는 중이라 이런 왜곡에 더더욱 민감해졌고,
조선구마사라는 대형 사건까지 터지면서 근래 만들어지는 사극들에 대해 시청자들의 시선이 더욱 엄격해졌다. 물론 다큐가 아닌 사극이기에 자잘한 수준의 왜곡은 넘어가는 것이 도리겠지만 박진의 경우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는 것이 문제다.
[50]
즉 박진은 드라마의 근간마저 뿌리채 뽑아버렸다는 뜻이다. 캐릭터 하나가 작품의 근간마저 파괴하는 일은 전례가 거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심각한 문제다.
[51]
이 과도한 비중 때문에 일반 시청자들 사이에서 박진을 실존 인물로 착각하는 이들도 있었고, 반대로 그와 엮여 있던 최구를 가상 인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52]
소찰리는
거란과 국교를 맺은 뒤 고려 성종이
거란과 국혼을 예정했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상 인물이며, 박진은 몽진 길에 현종을 습격한 호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상 인물이다.
[53]
일각에서는 드라마 전개의 문제가 대두되던 17~18회 방영 이후 원작자 길승수 작가가 밝힌 바에 의하면, 이정우 작가가 처음 참여한 제작 회의에서 제작진으로부터
천추태후가 메인 빌런으로 거란이 고려를 침공하도록 조종한다는 스토리를 제시했고 이에 길승수 작가는 "역사왜곡 논란으로
조선구마사와 같은 홍역을 치르게 된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역사왜곡 논란을 피하기 위해 기존 천추태후에게 부여하려했던 캐릭터성을 가상 캐릭터 박진에게 부여한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도 있다.
[54]
심지어 방송에서 보여주는 드라마 본편의 자료화면에조차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 캐릭터가 가장 크게 활약한 김훈·최질의 난의 장면을 보여줄 때도 박진은 일절 비추지 않고 넘어갔다.
[55]
16회까지라면 이건
김치양에게 사병을 보내주려던 행적 때문에 약점 잡혀 어쩔 수 없었다고 할 여지는 있다. 그러나 17회부터는 그렇게 역모에 동참하려 한 것으로 약점 잡힌 사람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무장들을 선동하는 것의 설득력이 약해진다. 그리고 김치양에게 협조한 것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개연성있게 추측한 것이지 극중에서 설명된 바는 없다.
[56]
원정황후를 겁박해 교서를 내리게끔 만들고, 군주 시해 미수라는 대역죄에도 비호받아 유유히 빠져나가고, 아예 황제의 침실에서 칼로 위협과 희롱을 하기까지 한다.
[57]
이건 박진 자체보단 제작진이 만든
현종의 묘사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박진 편애의 연장선상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58]
어떻게 보면 역시 가장 안타까운 점은 박진은 본래 부정적이고 폄하적인 요소만 가득한 캐릭터가 결국 아니였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17화 전까지 실감나는 연기를 선보여서 작중 인물의 행적을 이해할만하다는 시선들이 많으면서 후일 고려 조정과 임금을 위험에 빠뜨리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공감된다는 평을 받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좋은 캐릭터를 작가가 망쳐버린 셈이다.
[59]
본작에서는 박진의 손자가 등장이 없이 맥거핀으로 끝났는데 만약에 살아있다면 이는 아마도 박진이 본인을 죽이려고 한 이유가 자신만의 이익이 아니라 작중에서 나온 것처럼 현종조차도 납득이 되는 이유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정이 제대로 움직이지를 않아서 군사적 강대국과 전쟁이 일어났고 자신의 아들이 둘 씩이나 전쟁터에서 죽었는데 지방의 어느 호족 및 영주급들이 가만히 있겠는가?"를 생각하면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심지어 17~18화 기준 현종이 감싸고 도는 김은부는 호족의 자식을 임의로 편의를 봐준 자이고, 박진의 눈에 그런 현종과 김은부는 더더욱 가증스러울 것이다.
[60]
여담으로
천추태후에서 후반부 등장했던 같은 아전을 모델로 했던 캐릭터(
오성열 분)는 현종을 습격했으나 호위병들에게 패배하고 본인은
강감찬에게 살해당했다.
[61]
물론 이를 감안해도 해외 역사에서 지방 세력 출신 간부들이 국가 원수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는 사례는 무수히 많았지만, 지방 세력 쪽이 패배하면 주도자를 비롯해 그의 주변 사람들이 처형 당하는건 아무 일도 아니고, 상황에 따라선 해당 지방 출신 양민들도 차별을 받는 신세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본작의 박진은 아예 전시에 나라 자체를 외세에 팔아먹으려는 악행을 저질렀는데도 자신의 가족들 만큼은 현종에게 용서를 받는 묘사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62]
와우는 실바나스가 메인 악역으로 나온 격전의 아제로스~어둠땅이 암흑기였는데 실바나스가 하차한 후 용군단부터 반등했다.
[63]
물론 암흑상제도 42권 이후 10권이나 되는 분량을 잡아먹는 참사를 일으켰다.
[64]
물론 암흑상제는 무리한 장기연재화와 이로 인해 급조된 설계로 캐릭터가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에 그칠 뿐이라면, 박진은 고려 거란 전쟁을 고려 박진 전쟁이라고 부를 정도로 작품의 근간부터 뿌리채 뽑아버릴 정도 단순히 작품성을 망치는 것을 모자라 아예 역사 왜곡을 일으킨지라 이쪽이 훨씬 더 심각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65]
암흑상제 역시 22권부터 언급이 되었던 캐릭터로, 마법천자문의 원작자이자 초대 작가
스튜디오 시리얼이 19권 이후 완전히 하차한 것을 생각하면 사실상 스튜디오 시리얼이 만든 캐릭터가 아니다. 박진은 실제 역사에서 기록되지 않은 실존 인물이 아닐 뿐만 아니라, 해당 드라마의 원작이 된 길승수 작가의 역사 소설
고려거란전쟁: 고려의 영웅들에서도 등장하지 않는 드라마 오리지널 캐릭터다.
[66]
비록 다른 상제들에 의해 자신의 육신을 빼았기고 암흑계에 갇혀버리는 피해자가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육신을 되찾고 암흑계에 벗어나기 위해 저지른 각종 악행들이 납득을 받기 힘든 수준에, 그저 "상제들의 잘못에 의한 피해자였지만 현재는 대립할 수 밖에 없는 마왕"이라는 이미지에서 "빛과 어둠의 균형을 위해 열심히 일했던 상제"로 과도하게 미화시키면서 논란이 일어났고, 결국 서사 자체가 없는 악역이 되어버렸다. 박진 역시 장남과 차남이 전쟁에 강제로 징집시켜 죽게만든 것에 대한 고려 황실에 대한 분노로 시작한 캐릭터였지만, 정작 장남의 죽음조차 현종의 탓으로 돌리거나, 종국에는 고려 황실을 멸망시키려고 아예 진짜 원수인 거란과 손을 잡은데다 양자를 죽이는 등, 도저히 복수귀로 볼 수 없는 캐릭터성으로 인해 완전히 실패한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67]
실제 역사에서 김숙흥의 출신과 연고지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원작 소설에서의 김숙흥은 어렸을 때부터 귀주에서 자라 관직에 오른 캐릭터로,
경순왕의 손자라는 오리지널 설정을 가졌으나 그로 인한 끗발은 거의 묘사되지 않는다.
[68]
양규와 함께 전사할 때 "고려 만세"라고 읊조리고 죽었다. 드라마 본편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공식 유튜브에 올라온 해당 장면의 김숙흥 무편집본에서 대사가 나온다.
[69]
물론 거란에 대한 미친듯한 살육에 아예 복수심을 배제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김숙흥은 작중에서 단 한번도 자신이 아버지의 복수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아버지에 대한 언급 자체를 거의 하지 않는다.
[70]
이 삼한후벽상공신에는 김숙흥과 마지막까지 함께한 드라마의 진 주인공 양규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