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30 11:33:12

도미니코회

파일:라틴 십자가.svg
가톨릭의 수도회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color=#000> 한국에서 활동하는 교황청 설립 수도회
<colbgcolor=#ffc224> 남자 수도회 <colbgcolor=#fff,#1c1d1f> 가르멜회 · 구속주회 · 그리스도의레지오회 · 글라렛선교회 · 꼰솔라따선교회 · 도미니코회 · 마리스타회 · 마리아회 · 마리아의아들회 · 말씀의선교회 · 바오로회 · 베네딕도회 · 사랑의선교회 · 살레시오회 · 삼위일체회 · 성모승천회 · 시토회 · 아우구스티노회 · 예수회 · 예수고난회 · 예수성심의로가찌오니스티회 · 예수성심전교회 · 예수의작은형제회 · 오블라띠선교회 · 천주의성요한의료봉사회 · 카르투시오회 · 프란치스코회
여자 수도회 가난한이들의작은자매회 · 가르멜회 · 거룩한열정의딸수도회 · 골롬반회 · 그리스도왕선교수녀회 · 그리스도의교육수녀회 · 그리스도의성혈흠숭수녀회 · 글라렛선교수녀회 · 길의성모재속회 · 노틀담회 · 느베르애덕수녀회 · 도미니코회 · 도움이신마리아수녀회 · 마리아수녀회 · 마리아회 · 마리아의종수녀회 · 메리놀회 · 바오로회 · 베네딕도회 · 보혈선교수녀회 · 복자회 · 안드레아수녀회 · 사랑의선교회 · 사랑의성모회 · 살레시오회 · 삼위일체회 ·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 성령선교수녀회 · 성모마리아방문봉쇄수녀회 · 성모승천봉헌자선교수녀회 · 성심수녀회 · 성체선교클라라수녀회 · 성프란치스코병원수녀회 · 세례자성요한수녀회 · 시토회 · 씨튼회 ·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 · 예수고난회 · 예수마리아성심전교수녀회 · 예수성심전교수녀회 · 예수수도회 · 예수의작은자매들의우애회 · 원죄없으신마리아교육선교수녀회 · 위로의성모수녀회 · 자비의메르세다리아스수녀회 · 작은자매관상선교수녀회 · 착한목자수녀회 · 천주섭리수녀회 · 카르투시오회 · 트르와사랑의성모수녀회 · 프란치스코회
한국에서 활동하는 교구 설립 수도회
남자 수도회 그리스도 수도회 · 꽃동네 수도회 · 미리내 수도회 · 복자회 · 작은예수회 · 프란치스코전교봉사회
여자 수도회 가르멜의모후수도회 · 거룩한말씀의회 · 꽃동네 수녀회 · 나자렛예수수녀회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 미리내 수도회 · 복자회 · 삼성산성령수녀회 · 섭리의딸수녀회 · 성가소비녀회 · 성령강림사도수녀회 · 성삼의딸들수녀회 · 성안드레아수녀회 · 수원성빈센트드뽈자비의수녀회 · 수원순교가르멜봉쇄여자수도원 · 순교자들의선교수녀회 · 순교자의모후전교수녀회 · 예수그리스도수녀회 · 예수성심시녀회 · 예수의선교수녀회 · 예수의성모수녀회 · 예수의소화수녀회 · 오순절요셉자매회 · 원죄없으신성모의기사성프란치스코수녀회 · 인보성체수녀회 · 작은예수회 · 천사의모후수녀회 · 티없으신마리아성심수녀회 · 파티마의성모프란치스코수녀회 · 프란치스코전교봉사회 · 한국성모의자애수녀회 · 한국외방선교수녀회
※ 이 표에 기재된 수도회 외에도 가톨릭의 수도회는 많습니다. 틀의 분량이 방대하므로 한국에서 활동하지 않는 수도회는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 여러 수도회를 하나의 명칭으로 종합하여 기재할 수 있는 경우에는 그렇게 하였으나, 누락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의 명칭으로 종합할 수 있는 수도회들이나 누락된 수도회들을 발견하신 분은 기여 또는 토론 생성을 부탁드립니다.
※ 전 세계의 수도회에 대한 정보는 영문 위키피디아 문서 영문 위키피디아 틀 등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상기 위키피디아 문서와 틀에 기재되어있지 않은 수도회도 있습니다.
}}}}}}}}}
파일:external/www.cpbc.co.kr/643657_1.0_titleImage_1.jpg
Ordo Fratrum Praedicatorum (OP)
LAUDARE, BENEDICERE, PRAEDICARE
찬양하고, 축복하고, 설교하라
<colcolor=#000000> 영문 명칭 <colbgcolor=white,#010101>Dominican Order
한글 명칭 도미니코회
설립일 1206년 ([age(1206-01-01)]주년)
주소
이탈리아 로마 산타 사비나 성당
대표 제라드 프란시스코 파르코 티모너 3세
성격 가톨릭 수도회
회원 수 XXXX명
(XXXX년 XX월 XX일 기준)
국제조직
국내조직
청년조직 한국어 이름 (원어 이름)
기타 조직 한국어 이름 (원어 이름)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한국의 도미니코회3. 매체에서의 도미니코회

[clearfix]

1. 개요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ominicanFriars.jpg
도미니코회 수사(修士)들.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ccfd473957d24a39264b0c054ae3a61e.jpg
도미니코회 수녀(修女)들.
Contemplata aliis tradere
관상하라, 그리고 관상의 열매를 전하라

성 도미니코 데 구스만이 오스마의 주교 디에고와 함께 프랑스 툴루즈에서 조직했다. 1216년 이전에는 아직 수도회가 아니라 단순히 툴루즈 교구 소속의 단체였고, 1206년엔 이미 수녀회(옛 용어로 제 2회)의 전신이 되는 공동체가 있었다. 1216년에 교황의 인가를 받아 수도회가 되었다.

일명 설교자회라고도 한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앙의 진리를 만인에게 설교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수도회이다. 사실 라틴어 원문은 직역하면 '설교하는 형제들의 회' 정도 되고, 실제로 한국 도미니코회에 소장한 회칙에는 '설교자회'가 공식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의 관습을 고려해서 "'도미니코회'라고도 부를 수 있다."고 허락한다.

도미니코 수도회의 본질적인 수도생활 요소는 초대교회 사도들의 생활을 모범으로 삼으면서 관상생활과 연구생활, 공동체 생활 및 복음삼덕(청빈, 정결, 순명), 그리고 규칙 준수와 사도직 활동에 몰두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도미니코회는 순명 서원만을 발한다고 알려져 있고, 실제 서원을 할 때도 청빈과 정결을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복음삼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회칙 안에 청빈과 정결이 강조되어 있기 때문에 회칙에 의거하여 '하느님께 순명 서원을 발하면 나머지 두 덕목은 당연히 따라온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매우 학구적인 분위기를 가지며, 사실상 예수회와 함께 가톨릭의 두뇌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성 도미니코가 이 수도회를 설립한 계기 자체가 이단들의 주장을 논박하기 위함이니 이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남프랑스의 이단 종파 알비파와의 대립에서 선봉장을 맡아 활약한 것. 그러나 도미니코회는 사도적 청빈, 깊이 있는 설교, 성모 마리아 신심[1]으로 사람들을 정통 가톨릭으로 귀의시키려 노력했고, 당시 프랑스 왕권의 남프랑스 진출 패권에 편승해서 시행되었던 알비파에 대한 폭력과 무력탄압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만 성 도미니코와 알비 십자군의 지휘관이었던 몽포르의 시몬 사이에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음은 사실이고, 이 때문에 좋지 않은 이미지가 어느 정도 생겼다는 게 정설이다.

파일:external/www.sistersop.com/HomeBox_prayer-600x400.jpg

이러한 특징 때문에 중세에는 십자군에게 격려 설교를 하였으며, 이단심문관은 대부분 도미니코회 수도자들이 맡았으며, 교회 내의 저서를 검열하는 일도 맡았다.

다만 설립자인 도미니코 본인은 어디까지나 설교 권한을 받았지, 종교재판관과 이단심문관이었던 적은 없다. 종교재판과 이단심문관 제도가 갖춰진 것(1231)은 그가 선종(1221)한 후의 일이다. 또한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반대로, 이단심문관 일은 당시 수사들 사이에서 가장 환영받지 못하는 직종이었다. 거의 대부분 수사들이 '해야 하니까 한다.'는 마인드였고, 지속적으로 수도회 총회에 불만을 표시했다. 나중에는 수도회 총장이 편지로 '합법적으로 (이단심문관 일에서) 빠질 수 있으면 빠지세요.'라고 할 정도였다.

도미니코회의 별명은 '주님의 개(Domini canis)'이다. 스펠링을 보면 알겠지만, Dominicani'(도미니코회원)의 언어유희이다. 이단심문관 역사만 보면 뭔가 악역 같은 포스(?)가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중세의 서방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자연철학을 발전시켜 더 나아가 과학혁명의 계기를 제공한 성 대(大) 알베르토, 스콜라 철학의 끝판왕인 성 토마스 아퀴나스 등 무수한 성인들을 배출한 명실상부한 가톨릭 신학계의 에이스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중세 독일 신비사상을 대표하는 인물에 속하는 마이스터 엑카르트(1260~1328), 요한네스 타울러(1300~1361), 하인리히 소이세(1295~1366)가 도미니코회 수도자들이다.

또한 가톨릭 중국 선교 초창기 때, 중국 의례 문제를 두고 예수회와 대립했다. 예수회는 상류층 및 사대부 위주로 선교했기에 원리원칙에 입각한 유교를 보았고, 따라서 유교식 제사는 종교적 색채가 탈피되었으므로 우상숭배가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는 시골의 서민층 위주로 선교하였기에 각종 민간신앙과 섞인 유교를 보았고, 그렇기에 유교식 제사를 우상숭배라고 해석하였다. 또한 예수회가 Deus를 관용적으로 상제, 천(天)으로 번역 가능하다고 본 반면,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는 오직 천주(天主)만이 가능하며 상제, 천으로의 번역은 Deus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보았다.

또한 이런 부분 외에도 은총논쟁 관련으로 예수회와 라이벌 격으로 대립하기도 하였다. 자세한 건 이 항목을 참조하자.

2016년 미국에선 황당한 오해를 당하기도 했다. KKK 항목 참조.

2019년 7월 19일, 사상 최초로 아시아계 회원이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필리핀계 신부로 88대 총장에 취임하여 9년간 재임한다. 바티칸뉴스 기사

도미니코회 출신의 네임드 근현대 신학자로는 마리조셉 라그랑쥬(Marie-Joseph Lagrange) 신부와 이브 콩가르(Yves Congar) 추기경을 거론할 수 있다.

2. 한국의 도미니코회

한국의 경우 예수회 프란치스코회, 베네딕토회 같은 여타 유명 수도회에 비하여 진출이 상당히 늦었다.

도미니코회의 한국 진출이 처음 시도된 것은 16세기였다. 그러나 이 시도는 시도하기도 전에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유럽에는 한국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고 항해 시기를 잘못 잡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몆 차례의 시도 끝에 당시 선교 임무를 받은 선교사들은 중도 포기해서 일부는 필리핀으로 돌아가고 대부분은 일본 공동체의 요청에 따라 일본에 남았는데, 곧이어 박해가 터져 이들은 모두 순교자가 된다.

그 이후부터 1982년 개최된 도미니코 수도회 아시아 총회 전까지 도미니코회와 한국은 전혀 인연이 없다가 결국 한국 진출이 논의되었다. 로사리오 관구를 통해 한국 진출에 대한 관심이 표명되자 로마 본부 책임자가 3개월여에 걸쳐 한국을 순방했고, 1987년 열린 아시아 총회에서 한국 선교가 로사리오 관구에 공식 위임됐다. 이후 한국 진출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초청을 받아 1990년 한국에 첫 선교사를 파견한 도미니코회는 1992년부터 한국인 지원자를 모집하게 되었고, 1994년 서울특별시 강북구 미아동에서 수도원 축복식을 열었다.

현재 한국 도미니코회의 활동은 각 본당 미사 집전 및 강론, 영성지도, 피정지도 등이다. 1475년 창립된 평신도 신심단체 '로사리오회'와 ' 토마스 아퀴나스 청년회' 등을 지도한다.

공동체는 각각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에 있다. 한국에 있는 도미니코회는 '수도원(Convento)'이 아니라 한 단계 낮은 '공동체(Casa)'로 취급된다[2]. 수도원이 되기 위해선 종신서원을 한 수도자가 일정한 수를 넘어야 하는데, 한국 공동체는 아직 모자라기 때문이다. 상록구 공동체는 원래 한국인 도미니코회원 양성을 위한 수련소로 승인받았으나, 관구에서 홍콩에 국제 양성소를 건립하면서 수련소 목적은 폐지되고[3], 지원기(약 1년)만 이곳에서 보낸다.

설교자회 회칙은 ( 사제서품에 필요한) 기초적 학업이 가능한 한 수도회 내부에서 이뤄지도록 규정하고 있는데(Liber Constitutionum et Ordinationum fratrum Ordinis praedicatorum (이하 LCO) 232) 현재 로사리오 관구의 설교자회의 자체적인 신학교는 한국에는 없고 마카오에 있다. 왜냐하면 현 지침에는 "로사리오 관구에서는 마카오와 본부인 홍콩[4]에만 신학교가 있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한국 도미니코회는 도미니코회의 로사리오 관구[5]에 소속되어 있다. 로사리오 관구는 한국, 일본, 대만, 홍콩[6], 마카오[7], 스페인, 동티모르, 베네수엘라, 미얀마, 싱가포르, 필리핀 일부[8] 등을 담당하며, 신학교는 마카오에 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최양업 토마스 신부, 최방제 프란치스코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9] 따라서 양성은 100% 영어로 진행된다.

참고로, "양성이 아무리 영어로 진행되어도, 살다 보면 한국어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할 수도 있는데, 청원기부터는 교육 자체가 국외에서 이뤄진다. 영어가 싫어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다면 중간에 퇴회하거나 종신서원[10]을 하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 또한 로사리오 관구의 개별 양성 지침(Ratio Formationis Particularis, RFP)과 개별 학업 지침(Ratio Studiorum Particularis, RSP)에서도 영어 공부가 의무임을 명시하고 있다.
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하여, 지역 교회에서 요구되는 학문적 수준을 갖추어야 한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실제적인 영어 지식을 지니는 것은 이상적이다.

RFP, 제2장; 수련기 이전, 제1절 기술, 목표 허가를 위한 요건의 31의 c항.
우리 선교 관구의 현실을 고려할 때, 홍콩의 관구 수련소로 보내질 수 있기 전에 적절한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것은 모든 청원자들에게 요구되는 기본조건이다. (후략)

RFP, 제2장; 수련기 이전, 제2절; 청원기 양성 계획의 33 (ACPHK 2009, 131)
따라서, 직접 청원자의 양성을 맡고 있는 이들은 여러 장소에 따른 상이한 교육적 배경들과 그 필요들을 고려하여 청원자들의 다음의 기본 과정을 하도록 보장할 것이다.

집중적인 영어 코스. / RFP, 제2장; 수련기 이전, 제2절; 청원기 양성계획의 34 中
음악과 성가, 영어(우리 관구에서는, 영어에 더 능숙하게 되는 것이 목표가 될 것이다).

RFP, 제3장; 수련기, 제2절; 수련기 양성 계획의 55의 f항.

따라서 한국인이 도미니코회 수도자가 되고 싶다면,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영어로 양성되는 교육을 소화해 낼 의지가 있어야 한다.

참고로, 도미니코회는 꼰벤투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예수회처럼 입회시 수능이나 내신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외국 신학교 입학을 위한 시험이 따로 있다.

3. 매체에서의 도미니코회



[1] 대표적으로 묵주기도 [2] 명칭이 프랑스어나 영어가 아닌 이유는, 로사리오 관구의 문서에 쓰이는 언어가 스페인어라 그렇다. 애초에 스페인에서 설립된 수도회이기도 하고(…). [3] 하지만 건물 명패에 나와있는 명칭은 여전히 '수련소'. 참고로 수도회 내부에서는 '지원소' 혹은 '청원소' 등으로 호칭이 갈리는데, 대부분 수도자들이 그마저도 더 줄여서 그냥 안산이라고만 부른다(…). [4] 다만 실제로 도미니코회 소속 신학교는 없고, 홍콩 교구 신학교에 중국 국적 신학생 수사들을 보낸다. 중국 국적 소지자는 마카오 거주가 불가능하기 때문. [5] 공식 명칭은 '로사리오의 성모 마리아 관구'. [6] 관구 본부(+청원소)와 수련소(+중국인 유기서원소)가 있다. [7] 유기서원소(+신학교)가 있다. [8] 필리핀의 경우 엄밀히는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필리핀 관구가 독립하게 되면서 일부 공동체가 남게 된 것이다. [9] 실제로는 파리외방전교회가 설치한 신학원에서 공부하셨다. 외방전교회는 현재는 철수한 상태. [10] 더 좁게는 사제품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로 이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관구장이 해외로 발령을 보내면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