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9 12:58:17

천황/칭호 표기 논쟁

덴노/칭호 표기 논쟁에서 넘어옴
1. 개요2. 현황3. 쟁점
3.1. '천황'과 '일왕'의 격에 관한 문제3.2. 일본의 식민지 지배 과거사와 관련하여3.3. 언론의 방송 보도상 용어로써의 '일왕'과 관련하여3.4. 일본 황실 궁중용어 표기에 관련하여3.5. 중국의 한국 '총통' 표기와 비교하여3.6. '천황'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과 언론 보도에 관련하여
4. 결론5. 보충: 학술 용어로서의 '천황' 사용에 대하여

1. 개요

'\[팩트체크\] "우리도 일본 천황이라 부르는 게 원칙"? 따져보니'
JTBC 뉴스룸 2019. 8. 21. 보도

일본의 군주인 천황 칭호를 표기하는 방법에 대한 대한민국 내의 정치, 언론 및 사회적 쟁점과 사례를 다루는 문서.

2. 현황

본 항목을 읽기에 앞서 천황 항목의 한국과의 관계를 한 번 읽고 오는 것을 권한다.

명목상의 국가원수로서 필연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근대 이후 강한 갈등 관계였던 한일관계 사이에서는 '천황', '덴노', '일왕' 등의 호칭 논란에서 알 수 있듯 중요한 갈등의 구심점이 되기도 하는 존재다. 특히 천황에 대한 언급이 금기시되는 것은 군국주의 시대의 만행이 천황의 이름을 걸고 행해졌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사용하는 공식 표기는 '천황'이다. #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도 일본의 군주를 천황이라고 불렀고,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한동안은 '일왕' 등이 사용되었으나, 1998년 국민의 정부 #에서 그러나 국민의 정부 시절인 1998년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으로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호칭할 때는 '천황'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후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 등 정권을 가리지 않고[1] 외교석상에서 일본의 군주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언론에서는 천황, 일왕 표현이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다. 네이버에서 제공되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1945년 01월 01일 ~1999년 12월 31일까지 데이터베이스로 검색해 보면 일왕(日王)이 1778건, 천황은 1,500건, 일황(日皇)은 762건, '왜황'은 22건이며, '일왕'이라는 칭호는, 쇼와 천황이 붕어한 연도 1989년을 전후해 갑작스럽게 그 빈도가 높아진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일황(日皇)이라는 표현이 주로 쓰여 오다 1988년부터 1989년에 쇼와 천황이 붕어하며 일제 시대가 조명되자, 한국에서의 반일 감정이 증가하며, 한국의 주요 언론들은 '천황'을 '일왕'이라고 낮추어서 호칭하고 있다.( 역대 언론자료로 본 천황 사용 비율 / 역대 언론자료로 본 일왕 사용 비율)

한국을 제외한 동아시아[2]에서는 모두 천황이라는 표기를 사용한다. 조선 시대에는 주로 쇼군에게 부르는 칭호였던 '일본 국왕'을 천황에게도 사용하였으나 천황(天皇), 왜황(倭皇), 왜왕(倭王), 국왕(國王), 위황(僞皇, 가짜 황제), 기군(其君, 그 나라 임금) 등 다종다양한 명칭을 혼용하여 사용해 왔다.

3. 쟁점

3.1. '천황'과 '일왕'의 격에 관한 문제

일왕이란 표현은 일종의 신문 용어다. 1980년대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과 재일동포 지문날인 강요로 반일 감정이 극에 달하면서 천황을 격하시켜 일왕으로 표기했다. 대통령은 천황이라 부르는데 신문과 방송은 꼬박꼬박 일왕으로 바꾸어 쓴 게 20년이 넘었다.
황성기 서울신문 논설위원, 서울신문 2008년 4월 24일자 오피니언 '일왕과 천황'에서 #
본보 역시 천황을 일왕으로 표기한다. 예외적으로 직접 인용한 발언이나 문서에 천황이라고 돼 있거나 ‘천황제’를 설명할 때만 천황으로 쓴다. 그러나 ‘큰 나라 미국 대통령도 대통령이고 작은 나라 한국도 대통령인 게 말이 되느냐’며 일본의 극우 언론이 한국은 ‘소통령’이라고 한다면…. 불쾌하겠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우리도 ‘천황’을 일왕으로 낮춰 부르니까.
동아일보

일왕 표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천황이라는 호칭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천황에 대해서는 '천황'을 고유명사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일반명사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거부감이 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문자 그대로 한자를 뜻풀이해 '하늘의 황제'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정서가 있어서 거부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중국에서 비롯된 황제 칭호가 ' 왕중왕'의 의미나 '신의 대리자', 하늘의 아들 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반면, 천황은 대리자도 아닌 아예 '하늘의 황제' 그 자체라는 뜻의 칭호에서부터 너무 과장이 심하다는 이유로 거부감을 가지기도 한다는 분석도 있다. 황제는 영토가 넓은 나라의 군주의 이미지가 있으며, 민족주의적 감정과 더불어 한국보다 3배 정도 넓지만, 세계적으로는 일본이 매우 넓은 영토를 갖는 나라는 아니기에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천황을 '황제'라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미디어물, 영화, 게임 등에서 큰 영토를 가지고 수많은 민족, 문화를 아우르는 국가의 수장에 대해선 대부분 '황제'라고 칭한 것 또한 이러한 호칭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높였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영화, 게임 등에서 등장하는 황제들은 거의 대다수가 여러 나라들을 병합하는 방법 등으로 드넒은 영토를 보유한 국가의 출신들이고 이러한 미디어물 게임 속의 황제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이 보기엔 천황과 이를 떠받드는 일본에 대해 나라도 상대적으로 작은 것이 황제를 칭하는 자뻑질로 보인다는 것이다.[3]

하지만 실제 역사는 게임과 미디어물과 다르게 황제/국왕 칭호를 쓰는 것은 단순한 영토 크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동로마 제국은 말기에 거의 대부분의 영토를 빼앗겨 수도인 콘스탄티노플과 그리스 남부의 몇몇 도시와 공국들을 가진 도시 국가 수준으로 전락했으나, 황제(임페라토르/바실레우스)라는 직함만큼은 유럽 세계에서 엄연히 유지되었고, 이는 왕도 마찬가지여서 대영제국처럼 중견국으로 출발하여 영토를 크게 넓히고 주변 여러 민족을 복속시킨 뒤에도 황제라고 칭호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국왕(King) 칭호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일왕 표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동로마 제국의 황제는 로마제국의 후손이고 동로마 즉 로마가 구미권에서는 '세계 그 자체였고 그 로마의 황제가 곧 세계의 황제로 간주되었던 것과 달리, 동아시아에서 3세기에 야마토 정권이 수립되고 그 통합된 정권의 수장인 히미코가 중국에 사신을 보낸 이래 1,700년의 세월 속에서 일본의 군주인 천황은 단 한 번도 동아시아 전역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왕 내지는 국왕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4]

하지만 일본의 천황은 일본 열도[5]라는 세계 안에서는 유일무이한 황제였고 실제로도 일본 열도 내에서 몇백년간 실권이 있던 시기도 존재했다. 거기에 구미권에서도 다른 문화권의 왕중왕 등을 황제라고 부르며, 황제란 그저 한 문화권에서의 최고 권력자라는 의미일 뿐이었다. 그마저도 근세 이후 너도나도 황제를 칭하기 시작하며 한 문화권의 최고 권력자라기보다는 국왕보다 더 격식이 높은 칭호일 뿐이었다.

일왕 표기를 고집하는 이들은, 국왕이라는 호칭에 천자로부터 분봉되는 제후왕으로서의 의미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독립국 군주로서의 왕도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천황을 일왕이라고 부르는 것이 격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천황을 왕으로 부르는 것이 감정적인 비하이고 격하이며 왕은 비하하는 호칭이라고 한다면 다른 국가의 '국왕'이라고 불리는 군주들도 똑같이 '황제'라고 높여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논리도 성립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구미권에서도 황제보다 국왕이 격이 낮은 호칭이라는 것은 확인할 수 있는데, 어느 프랑스 국왕은 종교학자와 법학자들을 동원해 “국왕은 자기 자신의 왕국에서는 황제이다.”라는 말을 남겼었고 #, 나폴레옹은 스스로 프랑스 황제를 칭했고, 이탈리아와 영국의 국왕들은 각각 에티오피아 제국의 황제와, 인도 제국의 여제라는 타이틀로 스스로를 높였다. 만약 황제 칭호와 국왕 칭호가 동등하다면 이러한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 이는 엄연히 황제가 국왕보다 더 격이 높은 칭호였다는 것을 방증한다.

황제라는 단어만큼이나 '왕'이라는 단어 역시 충분히 오해를 사고 있는 단어인데, 왕은 흔히 황제보다 아래이며 황제에게 분봉된 제후왕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애초에 황제라는 용어가 진시황에 의해 등장하기 전에 황제 즉 '천자'는 왕이었다. 즉 진나라 이전 춘추전국시대에 왕이라는 칭호가 남발[6]되어 되자 천자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황제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것이다. 즉 진나라 이전에는 최고 군주의 칭호가 왕이었던 것인데 이때 당시 나온 공자와 맹자 등 제자백가들의 책 및 이념, 단어에는 왕(王) 자가 군주의 의미로 쓰일 수 밖에 없다.[7]

이 기사에서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 # 일본 천황가를 소개할 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왕가는 일본의 황실입니다"(世界最古の王家は日本の皇室)라며 일본의 황실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왕가'라고 부르고 있는데 왕가라는 말은 모나코 공실, 일본 황실, 영국 왕실처럼 군주국의 군주 가문을 의미하는 단어로, 군주가 국왕이던 공작이던 황제건 작위를 가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상술했듯이 왕이라는 단어가 황제보다 먼저 만들어진 관념이자 단어이기 때문에 이러한 단어가 만들어질 당시는 왕이 곧 군주였던 것이다.[8] 즉 왕보다 격을 높이기 위하여 황제 칭호가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군주를 칭하는 말로 그 격의 높고낮음과 상관없이 왕이라 칭하기도 했던 것이다. 진나라 이후 중국 군주들은 황제를 칭호로 했는데도 불구하고 왕도정치, 왕조 등의 말은 잘만 사용했다.

일왕 표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본 역사서에서 왕(王)자가 들어가는 단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근거로, 일본인들도 천황을 왕으로 불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상술했듯이 왕조, 왕가, 왕사 등은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황제한테 사용했던 단어들이고 여기에서의 왕은 그냥 군주라는 의미인 것이다. 이러한 논리로 일본의 천황을 국왕이라 부른다면 중국의 황제도 왕이라고 칭한 기록이 얼마든지 존재한다. 상술한 왕사라는 단어도 처음으로 황제 칭호를 사용한 진나라가 세워지기도 몇백년 전에나 만들어진 단어이고 겨우 왕(王)자를 몇번 쓴다고 국왕이라고 단정짓게 되면 중국의 명 왕조, 청 왕조 등도 왕(王) 자가 들어가는 단어를 쓰므로, 전부 국왕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덧붙여 조선이 제후국을 자처하면서도 국왕에게 올리는 묘호를 비롯해서 일부는 고려 이전부터 사용하던 외왕내제식 제도나 ' 성상(聖上)' 등의 용어가 온존하며 쓰이고 있었다. '주상'뿐 아니라 # 일본에서 천황을 가리킬 때 '국왕'과 함께 사용했던 용어 가운데 일부는 조선에서도 버젓이 잘만 썼던 것이며, 고다이고 천황이 가마쿠라 막부 타도를 위해 일본 전국 각지에 내린 명령서를 가리키는 ' 윤지(綸旨)'라는 용어는 조선에서도 국왕의 명령서라는 의미로 일본과 거의 똑같이 쓰였다. 심지어 조선 후기가 되면 중국에서 황제의 사망을 가리킬 때 쓰던 붕어(천붕), 황제의 명령을 가리키는 성지(聖旨) 역시 조선에서 국왕의 죽음, 또는 국왕의 명령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기도 했지만 조선 국왕을 그 어느 누구도 황제라고 칭하지는 않는다. 황제가 쓰는 용어와 왕이 쓰는 용어를 혼용한다 해도 엄연히 일본 군주의 공식 명칭은 천황, 조선 군주의 공식 명칭은 왕일 뿐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과거 천자가 왕을 칭할 당시의 용어는 지금의 황제가 쓰는 용어(폐하, 태자, 성지, 붕어 등)를 썼지만 진시황이 황제로 한 단계 격상하며 그 전까지 제후가 쓰던 용어(전하, 세자, 교서 등)를 왕이 쓰게 되었는데 중국 대륙에서는 그래도 이것이 명확히 지켜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대륙 너머 한반도에는 중국만큼 명확히 지켜지지는 않았다. 거기에 완전 섬인 일본 열도에는 중국의 영향력이 제후국이었던 한반도만큼 크지 않아, 대놓고 황제가 쓰는 용어를 사용했다.

3.2. 일본의 식민지 지배 과거사와 관련하여

몇몇 사람들은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식민지배했으므로 천황을 왕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리핀, 대만과도 같이 한국처럼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를 입은 나라들도 많은데 그들은 '일본 황제(천황)'를 '국왕' 이라고 격하해 부르지 않는다. 타 제국주의 국가였던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 등은 '러시아 황제'니 '독일 황제' 같은 표현은 전혀 거리낌 없이 쓰면서 일본 황제만은 부득부득 '일왕'이라고 낮춰 부르는 것은 알량한 자격지심과 민족적 감정에 불과하다. 러시아 황제, 독일 황제도 수많은 잔학 행위와 해악을 저질렀는데[9] '일본 제국주의는 해악을 저질렀으므로 그 상징을 천황이라 부를 수 없다'고 한다면, 러시아 황제(차르) 또한 노왕으로, 독일 황제(카이저) 또한 독왕으로 격하해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지이다. 한국이 작은 나라라고 같은 한자 문화권인 일본이나 중국 등에서 한국 대통령을 소통령이라고 억지로 비하하지는 않는다. 또한 같은 논리로, 고구려를 침공했던 수양제 당태종도 수양 또는 당태으로 불러야 하는 비판도 나온다. #

영국 제국주의는 혐성국 밈이 부각될 만큼 충분히 잔혹하였으며, 벨기에는 '손목국' 이라는 멸칭이 나올 정도로 레오폴드 2세 콩고 자유국 내 잔학 행위가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에게도 비난받을 정도였는데 영국 국왕은 영국 공작으로 호칭할 것인지, 벨기에 국왕은 벨기에 공작으로 격하하여 호칭할 것인지, 또한, 미국은 수많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냉전 시기에는 반공을 목표로 독재 정권을 쿠데타로 만들도록 후원했는데, 그럼 미국 대통령은 소통령으로 격하할 것인지, 중화인민공화국 티베트, 위구르, 홍콩 등에서 압제를 벌이고 있으니 '중국 주석'은 '말석'으로 격하해 부를 것인지, 독재를 강화하고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 대통령은 어떻게 호칭힐 것인지도 의문점이다. 거기에 교황의 원어는 Papa이고 군주 또는 황제라는 의미 자체가 전혀 없는데도 잘만 부르면서 일본에 대해서만 '일왕'으로 표기하는것은 한국인들의 '몰지각'한 컴플렉스이고 과거사 열등감일 뿐이다.

일왕 표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지적들은 지나치게 비판을 위한 비판이고 끌어오기이며, 천황을 일왕이라 부르는 것은 천황 비하를 위한 감정적인 표현이라는 전제에서 나온 논점 이탈의 오류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영국이나 벨기에가 일본 정도로 무리하게 자국의 식민지 지배에 얽힌 과거사를 미화하거나 감추기, 덮어놓고 피해자 코스프레로 일관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 # 미국은 자국 건국 직후부터의 서부 개척 과정에서 1억 명에 달하는 원주민들을 학살했고 수많은 흑인 노예를 혹사시키면서 농장을 경영했으며 근현대까지 인종차별이 암암리에 혹은 대놓고 자국 내에서 자행되었다는 것과, 자국이 제3세계에서 벌인 외교적 실책들을 일본 정도로 숨기거나 왜곡하기는커녕 오히려 대놓고 대중에 공개하고 가르치며 이에 대한 학계와 언론, 대중의 대정부 비판도 버젓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면서 교황 역시도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프란치스코 교황에 이르기까지 몇 명의 교황이 대를 물려가며 "과거 기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많은 범죄들에 대해 사죄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런 논리대로라면 사죄와 반성을 하지 않으면 국왕이고 사죄와 반성을 하면 황제라는 억지 논리일 뿐이다. 사죄여부와 국가원수의 호칭을 격하하여 호칭하는 것은 어떠한 관련도 없을 뿐더러 독일은 아프리카 지배에 대해서는 사죄와 배상을 하지도 않았는데 독일 제국의 황제는 잘만 황제라고 부른다. 물론, 그 나라들과 피식민지국 사이의 관계가 한일관계 설명에 딱 들어맞는 것도 아니겠지만, 사죄와 반성을 하지 않았다고 군주의 격을 한층 떨어뜨리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한국을 제외하면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제국주의 국가의 군주였던 '러시아 황제' '독일 황제' 같은 표현은 전혀 거리낌 없이 쓰면서 일본 황제만은 부득부득 '일왕'이라고 낮춰 부르는 것은 알량한 자격지심과 민족적 감정에 불과하다. 실제로 민주당계 정당의 대통령인 김대중도 자신의 육성 회고록에서 천황을 일왕이라고 부르는 것은 열등감이라 비판한 바 있다. #

즉 세계 그 어디에서도 그러한 논리로 지배국가의 군주 칭호를 한 단계 내리는 멍청한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심지어 일본 제국과 맞서 싸워 엄청난 수의 희생자를 낸 중화민국, 일제가 수탈했던 베트남 등 에서도 일본 천황을 왜황이라고 일본 국가 자체를 비하할지언정 황제를 국왕으로 내리지 않는다. 즉 일본제국이 식민지배로 수탈한것과 일본 군주의 격을 끌어내리는 것에는 어떠한 연결성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3.3. 언론의 방송 보도상 용어로써의 '일왕'과 관련하여

국내 언론의 경우, 일본 황실 구성원 호칭에 대한 통일된 원칙은 없는지[10] '천황'을 '일왕'으로 부름과 동시에 '황태자' 역시 '왕세자'로 현지화하되 정작 한자 표기는 '皇太子'를 유지하고선 '고타이시'라는 일본음을 달아 두는가 하면( #[11]), '일왕'의 장남 '황태자'라는 괴이한(?) 서술도 있는 형편이다( #). 차라리 왕태자로 썼다면 모를까... 또한 '천황'을 일왕으로 표기하더라도 그 언론의 영문기사에선 국제 표준에 맞춰 '일본 황제(Japanese Emperor)'로 표기한다.[12]

3.4. 일본 황실 궁중용어 표기에 관련하여

천황을 '일왕'으로 부르게 되면 일본 황실은 왕실, 황후는 왕비, 황태자는 왕세자가 되는 식으로 일률적으로 칭호가 바뀌게 되는데, 천황 호칭에 딸려 있는 수많은 일본 고유명사 호칭도 덩달아 바뀌어야 하고 여기서 혼선이 야기된다. 일본은 따로 친왕과 왕 등 각각의 작위가 황실전범[13] 통해 규정되어 있으며, 천황을 지칭할 때 '일왕'이란 단어를 일본인들은 쓰지 않기 때문이다.[14] 여기에 '친왕/내친왕[15]', '왕/여왕[16]' 같은 일본 황실 용어들은 어떻게 바꿔야 할지도 난감해진다는 것이다.

또한 '일왕'이라는 표현으로 천황이라는 존재를 대치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점도 제기된다. 예를 들어, 일본 극우파들이 "덴노 헤이카 반자이!(天皇陛下万歳)"를 외친 사건이 일어나면 한국 언론들은 "일본 극우파들이 '일왕 만세'를 외쳤다"고 보도하게 되는데 # 이런 식으로 사용 주체가 한국인이 아닐 경우, 특히 일본인일 경우엔 일왕이란 표기는 영 어색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점은 표현상의 문제이고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 개인의 재량에 달려 있는 것이기는 하다.[17]

다만 현대 한국인 관점으로는 일본 황실에 대해 따로 교육을 받거나 관심이 없는 이상에야 의미 전달에 혼선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친왕 문서에 보듯, 왕 작위의 개념에 익숙하지도 않을 뿐더러, '왕'이라고 하면 일국의 지존이라는 이미지가 짙다. 천황(황제)과 왕을 황족 내부에서의 위계에 따른 호칭으로 보기보다는 일단, 격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나라의 수장에 대한 칭호로 생각하기 때문에 한 나라에 군주가 여럿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전달하고자 하는 대상이 제후국 체제였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인들이라면 어느 정도 바꾸는 게 언어 소통 면에서 명확하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또한 한국어로 그대로 음차할 수 있는 일본 천황과 황족 작위들을 '왕'이나 '왕세자' 등으로 현지화하는 것이 언어의 경제성과 사회성을 모두 거스르는 것이라는 주장은 일본의 황실을 설명할 때에 천황과 황후, 황태자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 언론에서 굳이 일일이 다룰 일이 거의 없는데 중요도도 인지도도 없고 언론 노출도 별로 없는 인물을 위해서 굳이 고유명사 표기를 따로 도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경제성, 사회성 모두에 대한 반론도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18] 친왕이라는 용어는 현직 천황의 친자식들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상황의 자식과 그 아들들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천황의 딸을 가리키는 내친왕이라는 용어가 한국에서는 아예 쓰이지도 않는다는 점에서[19] 차라리 히사히토 '왕손'이나 아이코 '공주'라는 표기가 히사히토 '친왕'이라는 고유명사 표기보다 더욱 쉽게 와 닿을 뿐 아니라 # 고유명사 표기의 경우 전근대에는 천황이 정실 황후뿐 아니라 측실이나 궁녀로부터도 자식을 얻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그러한 경우 정실 소생이냐 아니냐 또는 친왕선하를 받았느냐 그렇지 않느냐, 나아가 승려로써 출가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친왕/왕/법친왕 또는 내친왕/여왕으로 구별하거나 해야 할 필요가 일단 현재는 없기 때문이다.

당장 천황이 양위하는 경우 양위한 천황을 상황이라고 부르게 되지만, 여기서 또 출가하면 법황(法皇)이라고 부르는 용어가 따로 있고, 나아가 양위하고 출가까지 한 천황이 인세이를 행하는 경우까지 있고 인세이를 행하는 천황을 '치천의 군'이니 '인(院)'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보니 이러한 복잡하면서도 특수한 일본 역사에서의 복잡한 전개 및 환경을 설명하기 위해서도 이러한 천황/상황/법황/원정 등의 용어 사용은 불가피하며 필수적인 것이지만, 적어도 근현대 언론 보도에는 그럴 우려가 없다. 아키히토는 나루히토에게 양위하고 '상황'이 되었지만 정치에 관여하는 '치천의 군'도 아니고 승려로써 출가한 '법황'도 아니며, 현대 일본의 종친 중에도 승려로 출가한 '법친왕'은 없다.

천황을 일왕으로 격하한다면 왕(王)이 들어가는 여러 관직이나[20] 세습친왕가들도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지도 의문이 된다.

3.5. 중국의 한국 '총통' 표기와 비교하여

중국의 경우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천황/일왕 호칭 논쟁과 견줄 만한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한국을 포함해 공화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의 국가원수는 대부분 공식 표기가 '대통령(大統領)'이고[21][22] 한국 역시도 국가원수를 대통령이라 공식 칭호이자 직함으로 정하고 있지만, 중국은 그런 걸 쿨하게 무시하는 건지 아니면 관심이 없는 건지 '대통령'이 아니라 굳이 ' 총통(总统)'으로 번역한다는 것이다. 이 점은 세계의 다른 공화제 국가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되어, 한국에서는 미국 대통령(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러시아 대통령(Президент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독일 대통령(Bundespräsident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이라고 표기되는 지위가 중국 언론에서는 각각 '美利坚合众国总统', '俄罗斯联邦总统', '德國聯邦總統'인 것이다. 즉 '한국 대통령'은 중국이나 대만에서는 '한국 총통'이다.

2013년 한중정상회담 때에도 인민일보 등 중국 언론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가리켜 '한국 총통'이라고 번역했지 '한국 대통령'이라고 번역하지 않았고 # 한국인들에게는 당연히 '총통'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고 총통 하면 히틀러부터 먼저 떠올리는지라 한국인들은 한국 대통령이 무슨 독재자란 말이냐 라고 항의하기도 했지만, 현행 중국어 위키나 # 바이두 백과에서도 # 심지어 외신의 중국어 번역에서도 # 그러한 '한국(대한민국) 총통' 표기는 바뀌지 않고 있다. 중국뿐 아니라 대만도 이 점에서 차이는 없다. [23]
이번에 박정희 씨가 승리하면, 앞으로는 선거도 없는 영구집권의 총통제를 한다는데 대한 확고한 증거를 나는 가지고 있습니다.
김대중 당시 신민당 7대 대통령 후보, 대선 당시 충남 지역 선거 유세를 앞두고

묘하게도 한국에서 총통이라는 단어는 '대통령'이나 '원수'에 비해 훨씬 '독재자'의 이미지가 강한 뉘앙스의 단어로 쓰인다. # # 아무래도 당시 총통이라 소개되던 이들, 한국인들이 접한 '총통'들이 나치 독일의 '히총통' 아돌프 히틀러나, 36년 동안 에스파냐를 독재 통치했던 총통 프란시스코 프랑코, 그리고 1949년 국부천대 이후 대만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1975년에 사망할 때까지 대만(자유중국)의 총통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은 '종신총통' 장제스까지.[24] 김대중이 신민당 후보로 출마한 7대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공화당 박정희 후보가 3선 개헌을 강행하면서까지[25]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것을 두고 '영구집권의 총통제를 하려고 한다'고 했을 때 웃기게도 그때 한국 안에 신민당도 그렇고 공화당도 그렇고 '대통령'이나 '총통'이나 똑같이 미국에서도 쓰는 그 'President'의 이역(異譯)인 줄을 아는 사람이 없었던지, 공화당에서도 "박정희가 당선되어도 총통제를 시행할 일은 없다"고 항변할 정도였다.

미국나 독일 같은 구미권이야 아예 언어 체계 자체가 다르니 그렇다 쳐도 일단 한자 문화권을 공유하는 한국에 대해서 한국에서 사용하는 표기대로 번역해도 문제가 없을 것을 굳이 자기네 한자 표기대로 바꾸는 중국의 사례는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한국내 일각의 주장처럼 일본에서 부르는 대로 일왕이 아닌 '천황'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맞다면, 마찬가지로 총통이나 대통령이나 어차피 'president'의 번역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에서 '총통'이라는 표기에 대해서 아무래도 낯설기도 하고 거부감이 있는 만큼, 미국 등 구미권은 논외로 하더라도 일단 같은 동아시아권 국가로써 한국에 대해서는 '총통'이라고 부르기보다 한국에서 부르는 대로 '대통령'이라고 불러 주는 것이 맞다는 논리도 성립된다. 일단 일본 언론에서는 '총통'과 '대통령'을 분리해서 쓰고 있다. # #

하지만 총통과 대통령은 그 격의 높고낮음이 구별되는 황제-국왕과 달리 단지 President 의 번역어일 뿐이다. President의 일본식 번역어가 대통령이고 중국식 번역어가 총통인 것이다. 즉 한국에서의 일왕 표기는, 그 전까지 일황, 천황등의 표현을 잘만 쓰다 특정 기간에 반일감정이 증폭되며 나온 엄연한 격하의 의미이지만, 중화권에서의 총통 표기는 비하의 의미가 아닌 예전부터 사용하던 President의 번역어라는 의미이다. 한국에서 대만 총통을 대만 대통령이라 하여 비하가 아닌 이유도 이와 동일하다. 중화민국- 대만의 국가원수에 대하여 한국에서는 예전부터 총통이라 표기했기 때문인 것이다.

3.6. '천황'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과 언론 보도에 관련하여

앞에서 언급했듯이 1998년 국민의 정부 #에서 '천황'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여, 이후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 등 정권을 가리지 않고 외교석상에서 일본의 군주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헌법으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의 영역으로 인정될 수 있다. 그러한 문제적인 발언을 함으로써 본인들에게 닥칠 후폭풍이나 발언 자체의 가부 논쟁 및 사회적 문제에 대한 논란 및 비판, 나아가 그로 인해 발언자 본인의 사회적 지위가 흔들리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그러한 모든 패널티에 대한 각오를 하고서라도 뇌 필터를 거치든 말든 자기한테 달린 입으로 자기 하고 싶은대로 떠들고 다니겠다는데야 대중의 입장에서는 그 발언의 법리적 시시비비를 가려[26] 법으로 규정된 만큼의 패널티를 가하고, 또는 곱게 사회적으로 파묻어 줄지언정 발언하는 행위 자체를 무언가 법적으로 제재할 수는 없다.

천황을 일왕으로 표기하는 결정적인 사건은, 1989년 당시 일본 천황인 쇼와 천황의 붕어인데, 그 전까지는 일황 내지 천황을 쓰거나, 일왕을 쓰더라도 아주 드물게 썼음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통해 알 수 있다. # 하지만 일제시대 당시에도 천황을 지냈던 쇼와 천황이 붕어하자, 일제시대가 평소에 비해 대폭 조명되고, 반일감정이 증가했다. 이를 통해 일본 천황을 일왕이라고 부르는 언론이 증가했던 것이다. 이러한 천황을 일왕이라 부르는 풍조는 민주당계 정당의 대통령이었던 김대중조차 열등감이라 비판한 바 있지만, 일왕 표현을 언론에서는 계속 사용했다.

요컨대 천황이라는 표현이 전 세계적 그리고 국가, 정부 차원에서 사용되는 용어라고 해서 그것을 방송이나 저널리즘, 일반 시민들에게 강요하기는 어렵다. 이 또한 전 항목에서의 서술과 마찬가지로 각자의 자유에 맡길 문제이며, 그에 수반되는 비판 여론 역시 각자의 몫이다.

4. 결론

천황이라는 칭호는 일본 정부의 공식 용어이자 한국 정부의 외교석상에서의 공식 칭호로, 학술 대회나 외교 석상에서 학술적인 견지 및 외교적 수사로서 사용하는 것은 결코 문제가 없다. 그리고 일본 국왕(일왕)이라는 칭호 역시 엄연히 역사성이 존재하는 용어어이기는 하나 이는 군주라는 의미의 보통명사이지, 다이카 개신 이후 일본 군주의 공식적인 명칭은 언제까지나 천황이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특정 연도에 일왕이라는 표기가 급격하게 증가하는것으로 미루어보아 쇼와 천황의 붕어 이후 천황의 장례식 조문 문제로 인해 일제시대가 조명되며 천황을 일왕으로 부르는 횟수가 증가한 것이다. 즉 이는 역사적으로 군주를 국왕이라 부른 것을 감안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천황의 붕어 이후 반일감정의 증가에 의한 것으로 일본의 역사서에서도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건 말건 관련이 없다.

5. 보충: 학술 용어로서의 '천황' 사용에 대하여

한국어 말뭉치 물결21 코퍼스 # 상에 '천황'을 입력해 보면 '천황'의 용례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단순히 일본의 천황뿐 아니라 치우천황이나 지리산 천황봉 혹은 고사성어 파천황 등도 중복되어 있으며, 시사 방송뿐 아니라 천황이라는 존재와 지위의 역사성을 추적한 학술 교양 서적에 대한 서평 기사도 공존하고 있다.

이원복 교수는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에서 일본어 발음을 그대로 쓰는 '덴노'라는 표기를 주장했다. 이 주장은 덴노를 천황으로서의 의미보다는 ‘ 파라오’나 ' 카이저', ' 차르'처럼 일종의 고유명사로서 바라보자는 근거를 곁들였다. 2012년부터 고등교과목으로 채택된 동아시아사는 천황이라고 써서 논란이 일고 있는데, 사실 고대사를 다룰 때 '천황제의 확립'과 같은 표현은 일반적인 편이다. 물론 이쪽도 '일본의 고유명사', '일본식의 특이한 세계관'을 표현하는 것임을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한반도 국가는 물론이고 중국도 일본에게 '조공'했다는 일본서기 식의 표현을 이해하기 위함이며 일본서기 자체가 가려 볼 점이 많다는 전제가 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에서 우리가 중국의 황제를 인정해서 황제라 하는 것이 아니고 고대 이집트 파라오 애급의 애왕이라고 표기하지 않듯[27] 천황도 일왕보다는 그들이 말하는 대로 표기하고, 대신 그들이 천황이라 하든, 황제라 하든, 파라오라 하든, 카이저라 하든 우리는 으로 인식하면 그만이라고 했다. 즉 한자 뜻에 얽매이지 말고 현지에서 쓰는 고유명사로서 보자는 취지이다.

천황이나 일왕이 아니라 '일본 군주'와 같이 한국어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일반 명사 ‘군주’로 통일하자는 의견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영국 여왕 등 작위와 관련없이 군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실제 작위가 대공인 모나코 등 소국 군주도 한국에서 일반적으로는 군주라 부르기 때문이다.

한편 책에서는 천황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지만 '일왕'을 사용하는 책들도 있다. 일례로 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에서는 천황을 사용했지만 Go Go 카카오프렌즈에서는 일왕을 사용했다.

일본의 사극을 보면 메이지 유신 이전, 막부 말기까지 해당 시기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에서 천황을 가리킬 때에는 거의 대부분이 '미카도(御門)'나 '슈조(주상)', '오카미(大君)' 아니면 '~~테이(帝)'라고 부르지 '덴노 헤이카(천황 폐하)'라고 곧장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담으로 NHK 대하드라마 다이라노 기요모리(2012년)의 경우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 극중에서 천황가를 가리켜 왕가(王家)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일본 내부에서도 "천황가인데 왜 왕가라고 낮춰서 부르느냐"고 말이 나올 만큼 어메이징한 일이었다. [28] 담당자에 따르면 놀랍게도 그게 학술적 견지를 따른 거였다. 당시 다카하시 마사아키와 함께 다이라노 기요모리의 시대 고증을 맡은 혼고 가즈토(本郷和人)[29]의 저서 <수수께끼 다이라노 기요모리(謎とき平清盛)> 62~64쪽에 소개되어 있는 일화를 보면
<ドラマ・平清盛>では、天皇や上皇の家を「王家」と称します。ですが、今までの大河ドラマでは、天皇家とか皇室とかの語を用い、王家とはいわなかった。どうして今回は新しい呼び方を取り入れるのか。
先ず押さえておかねばならぬのは、当時の言葉の使い方です。
そこで調べてみると、天皇家も皇室も王家も、使われていない、が正解です。当時は天皇や上皇や皇太子や女院などをひとまとめにして「ファミリー」として考える、ということをしなかった。
ある研究者の整理(「<王家>をめぐる学説史」歴史評論2011年8月号)によると、王家という語が用いられるようになったのは、第1章(3)でふれた黒田俊雄氏の権門体制論からのようです。
その後、西洋史の影響を受けて、日本の歴史学でも「王権」の分析が盛んになりました。戦前のように、日本の天皇は他国に例を見ない唯一無二の存在である、というのではなく、天皇を国の頂点に君臨する王と捉える。そうすると自ずと他国との対照・比較の視点が開け、東アジアの中の日本、世界の中の日本を考える際にも有用である。ですので、現在の学界では、王家という呼び方が確実に市民権を得ているのです。そこで時代考証の判断として、学問的な見地から、「王家」の語の採用を提案しました。
(번역) <드라마 다이라노 키요모리>에서는 천황이나 상황의 집안을 '왕가'라고 칭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대하드라마에서는 천황가라든가 황실이라든가 하는 말을 사용했지 왕가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번에는 새로운 호칭을 도입하는가.
먼저 분명히 해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당시의 언어 사용법입니다.
그래서 조사해 보니 '천황가'도 '황실'도 '왕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가 정답입니다.[30] 당시에는 천황이나 상황이나 황태자나 궁녀 등을 한데 묶어 '패밀리'로 생각한다, 는 게 없었습니다.
한 연구자[31]의 정리(<왕가>를 둘러싼 학설사> 역사평론 2011년 8월호)[32]에 따르면 왕가라는 단어가 사용되게 된 것은 제1장(3)에서 언급된 구로다 토시오(黒田俊雄)의 권문체제론(權門體制論)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 서양사의 영향을 받아 일본 역사학에서도 왕권 분석이 활발해졌습니다. 전쟁 전처럼 일본 천황은 타국에 유례가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아니라 천황을 국가의 정상에 군림하는 '왕'으로 파악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와의 대조·비교의 시점이 열려 동아시아 속의 일본, 세계 속의 일본을 생각할 때에도 유용합니다. 그래서 현재 학계에서는 '왕가'라는 호칭이 확실히 시민권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대고증의 판단으로 학문적 견지에서 '왕가'라는 단어를 채택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일본 학계에서는 이미 '인세이'를 포함한 일본의 중세사를 연구함에 있어 '왕가'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점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 혼고 가즈토의 책에 나온 이 구로다 토시오의 권문체제론이란 쉽게 말해서 중세 일본이라는 나라는 군주 즉 '왕가'를 국가의 핵심에 두면서도 '섭가'와 '무가' 등 여러 '권문(權門)'[33]이 상호 보완적으로 존재하며 국가권력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국가관으로, 현대 일본 중세사 연구에 있어서는 거의 정론이 되어 있다.[34]

구로다 토시오는 이 권문체제론을 주장하면서 '천황가'나 '황실'이라는 용어는 근대 일본 국가권력에 의해서 사용된 용어라는 점을 지적했는데, 근대에 성립한 용어로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모종의 선입견, 이데올로기 등 사고상의 제약을 줄 수 있다[35] 보았기에 그러한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중세 당시에 실제로 자주 사용된 예를 볼 수 있는 '왕가'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제창한 것이다.[36] 쉽게 말해 '천황가'니 '황실'이라는 용어가 엄연히 천황가에 비등하게(혹은 그 이상으로) 중세 일본 역사 전개의 중추를 차지했던 섭가나 무가를[37] 단순히 천황가나 황실에 부속된 곁가지이고 독립성이 없었다고 여겨지게 함으로써 일본 역사를 지나치게 천황 중심으로만 이해해 버리는 착오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 구로다의 지적이다.

일본 학계에서는 이미 천황의 지배 권력을 쇼군의 권력과 마찬가지로 '왕권'으로 표현하며 근현대 이후로 천황에 대한 학술 연구에 '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들이 늘어났는데, '왕권'이나 '왕가', '왕조'라는 용어 역시 일본 학계에서는 타국의 왕정 국가에 대한 서술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사에 있어 천황의 군주정을 다루면서 진작에 사용한 용어였다.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영상화 작품에 그러한 학계의 견지가 반영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1] 참여정부 독도 분쟁으로 천황 표기의 일왕(日王) 전환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2] 일본, 대만, 북한, 중국 등 [3] 이와 같은 미디어물과 게임, 소설에 익숙해진 일부 사람들이 이런 식의 기준과 잣대를 들이댄 것이 대한제국의 칭제건원으로 식민지도 하나도 없는 나라 주제에 무슨 제국이냐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4] 애초에 근본적으로 이런 논지에는 어폐가 있는 것이, 애초부터 상대국의 군주를 호칭할 때에는 상대국 스스로 자국의 군주를 자칭하는 표현에 기반한다. 표현의 지위상의 위계를 떠나서 일본이 천황을 황제(Emperor)으로 자칭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 군주를 대하는 예로 그렇게 칭해야 한다는 것이지, 일본을 우대하려는 의도에서만 비롯된 주장으로 치부하는 것은 무리이다. 실제로 왕(King)과 황제(Emperor)은 단순히 수직적 위계관계가 아니라 엄밀히 구분되는 표현이었으며, 일례로 인도를 통치하던 시절 영국은 로마 제국과 관련된 역사적 문제 등으로 '영국의 황제'를 자칭하지 않았으며, 인도 제국의 황제를 따로 만들어서 '인도 황제'만을 자칭했다. 따라서 영국 국왕은 영국의 왕(King)인 동시에 인도의 황제(Emperor)였으며, 당연히 자국의 군주를 국왕(King)으로 자칭했기 때문에 외국에서는 '영국의 황제' 따위로 칭하지도 않았으며, 이는 당연히 영국 국왕을 비하하고 격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천황이니 국왕이니 하는 호칭은 모두 해당국에서 스스로 선포한 호칭에 기반하는 것이지, 격상이나 비하의 의미로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왕을 국왕이라 부르고 천황을 천황이라 부르는 것을 놓고 '일본 천황을 천황으로 칭하고 나머지 국왕을 국왕으로 부르는 것을 일본만을 칭송하고 나머지 국가를 싸그리 비하하는 의미'라는 식의 주장을 펼치며 '일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까우며, 오히려 이런 주장이 도리어 황제-국왕 호칭 간의 위계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했다고 볼 수도 있다. [5] 일본은 다이카 개신 이후로 많은 문물들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받아들인 문물을 자기 스스로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등, 섬이라는 이점을 잘 활용하여 대륙과 가까워 중국 왕조와의 교류와 간섭이 많았던 한국사의 왕조와는 달리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중국과 한국과는 다른 일본만의 세계관과 문화를 발전시켰다. [6] 고조선의 군주도 원래는 조선후였지만 중국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칭왕했다. [7] 황제라는 단어가 완전히 정착하기도 전인데다가 진나라가 오래가지도 못해 진나라 이후에도 황제라는 단어가 쓰일지는 알 수 없었다. 이는 두번째 중국 통일왕조인 한나라가 황제 칭호를 쓰며 본격적으로 황제 칭호가 천자의 칭호로 정착하면서 황제란 곧 천자가 되었다. [8] 당연하게도 왕이라는 단어가 황제보다 더 먼저 나올 수 밖에 없다. 황제란 왕들의 왕, 즉 왕중왕이라는 뜻인데 당연히 왕이라는 개념이 전제되야 황제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9] 전제군주국가 러시아 제국은 피의 일요일과 같은 끔찍한 민중 탄압을 저지른 악행의 주체이며, 독일 제국 또한 영국 프랑스만큼 영토가 넓지 않았을 뿐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제국주의적 침탈, 폭력을 저지른 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10] 사실 천황이냐 일왕이냐 문제에 대해 통일이 안 되어 있으니 이런 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기는 한데, 후술하듯 언론사마다 논조의 차이가 생기는 것 역시도 '언론의 자유'의 영역이다. [11] 해당 기사에선 '상황', '상황후', ' 황사' 등도 모두 '상왕', '상왕비', '왕사'로 일률 조정하되 정작 한자 표기는 '上皇', '上皇后', '皇嗣'로 해 두고선 각각에 '조코', '조코고', '고시'라는 일본음을 달아 두었다. 한자 표기를 사실상 일본식 호칭 전용으로만 쓴 셈이다. [12] 예제 1 예제 2 [13] 심지어 한국에서는 이것도 왕실전범이라고 하기도 한다. [14] 일왕이라는 표현은 일본인들이 자기네 군주를 격하해 부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일본은 한자문화권인데다가 날 일(日) 다음에 임금 왕(王)자가 붙었으므로 그럴 수밖에. 물론 천황이라고 쓴 책들도 많고 나무위키나 위키백과 등 인터넷 자료에서도 천황이라고 부르므로 다양한 자료들을 보면 오해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그리고 애초에 일왕은 '일본 (국)왕'의 줄임말일 뿐이지 그 자체가 고유명사조차 아니다. 미국 군대를 ' 미군'이라고 줄여 부르는 것과 같은 용법이다.(현지 표기도 United States Armed Forces 이지 U. S. Armed Forces 같은 줄임말이 아니다.) 공수처의 정식 명칭은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고 그걸 편의상 줄여서 '공수처'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언론 보도가 한국인을 위주로 작성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15] 천황의 손자/손녀까지를 친왕/내친왕이라 부른다. 단 1947년 현행 황실전범이 제정되기 전에는 4대손까지를 친왕/내친왕이라 했다. [16] 천황의 증손자/증손녀부터는 왕/여왕이라 부른다. 단 1947년 현행 황실전범이 제정되기 전에는 5대손부터를 왕/여왕이라 했다. [17] 경향신문의 박용채 기자는 2008년 당시 일본 황실에서 한창 벌어지던 나루히토 당시 황태자와 일본 황실(정확히는 궁내청 안의 우익 세력) 사이의 알력을 보도하면서, 기사 전체상에서는 '일왕', '왕세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기사 안에서 거론하는 하케다 신고 궁내청 장관 등 일본측 인사나 일본측 언론의 발언, 보도를 따옴표 처리로 전하면서는 '폐하', '황태자', '천황' 등의 용어를 그대로 살리는 괴이한 번역을 한 바 있다. 본 기사 안에서 박용채 기자가 사용한 '주상'과 '동궁'은 일본 공식 매체 및 언론에서 버젓이 천황과 황태자를 부르는 호칭으로 쓰이는 용어다. # [18] 와닿지 않는다면 현재 천황의 작은 할아버지 아들 부인을 한국 언론이 언급할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생각해 보자. 워낙 가십거리를 많이 날리고 다녀 언론에 자주 오르게 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일본 황실 인사들에 대해 한국 언론이 세세히 보도할 일도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19] 중국에서도 내친왕이라는 용어는 공주라는 용어에 밀려 완벽하게 사장됐다. [20] 율령제하의 일본에서 2관 8성중 하나이고 국가 제사를 담당하던 신기관의 장관인 신기백을 세습하던 가문인 시라카와 백왕가(白川伯王家)는 현직 신기백에 한해 '왕'의 칭호를 쓸 수 있는 권리를 누렸다. [21] 물론 이것도 한국이나 일본 안에서나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것이기는 하다. [22] 한국의 사학자 전우용은 일왕 표기를 비하, 격하라고 보는 주장에 대해 '중세적 사고방식'이라며 'President'라는 영어를 '대통령'으로 번역한 것은 일본에서였고, 그 의식 자체에 미국의 President를 일본의 천황(Japanese Emperor)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깎아 내리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지적하며 이런 의도를 가지고 호칭을 문제삼을 거면 '대통령'이라는 호칭부터 문제삼아야 한다고 하였다. # 하지만 이러한 전우용의 발언까지도 "이런 걸 설명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 사람들이 '일왕' 표기를 격하 표현이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일왕은 천황의 다른 표기일 뿐'이라는 중립적이고, 비하 의도 없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식으로 반론할 이유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23] 참고로 중화권은 아돌프 히틀러의 직책인 퓌러를 '원수'라고 번역한다. 그래서 한국어 문장에서 '대통령에서 총통으로 바뀌었다'는 중국어에서는 '총통에서 원수로 바뀌었다'라고 번역해야 자연스럽다. 대통령을 의미하는 단어로 이미 총통을 두고 있기 때문. '총통'과 달리 '원수'는 한국어에서 독재자라는 이미지는 지니고 있지 않다. [24] 물론 현재의 대만 총통제는 결코 독재국가의 그것은 아니지만, 국부천대 이후 '총통' 장제스가 대만에서 벌인 행위는 명백한 1인 종신독재이자 반민주적 폭거였으며, 한국에서 대만을 '자유중국'이라고 부른 것과 달리 그 시절의 대만은 전혀 자유롭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았다. 심지어 장제스가 사망하고도 21년이나 지난 1996년에야 대만에서는 총통 직선제가 시행되면서 국민당에 의한 1당 독재가 막을 내렸고 # 이는 한국에서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이루어진 9차 개헌에서 대통령 직선제로 전환하고 9년 뒤의 일이다. 9차 개헌으로 개정된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되기 3개월 전인 1987년 10월에야 대만에서는 장제스가 사망하는 순간까지도 풀지 않았던 계엄령이 38년만에 그의 아들에 의해 해제됐다. [25] 박정희는 제5대, 제6대 대통령을 연임했다. [26] 예를 들면 명예훼손이라든가 허위 사실 유포라든가. [27]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식민지 조선의 신문이나 근현대(1995년) 신문에서도 이집트 국왕을 ' 애급왕'/' 애왕'으로 표기한 전례가 존재하기는 한다. [28] 일본 참의원 총무위원회에서 NHK에 배정할 예산을 심의할 때 가타야마 사쓰키(片山さつき) 참의원 의원이 참고인으로 출석한 NHK 회장 마쓰모토 마사유키(松本正之)에게 한 질문에도 "우리나라에서 이 왕가라는 호칭이 헤이안 시대에 일반적이었다는 역사 교육에 어느 정도 합의된 바가 전혀 없는데 무슨 생각으로 이 국민적인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런 판단을 하셨느냐?"라는 질문을 던질 정도였다. 여기에 대해 마쓰모토는 "전문가에 따르면 헤이안 말기부터 가마쿠라기에 걸친 중세사 연구의 역사, 학술적 분야에서는 당시 정치의 중심에 있던 법황을 중심으로 하는 '집안'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데 '왕가'라는 말이 사용되었다고 한다"라고 답변했다. #(138/140, 320 참조) 당시 혼고 가즈토나 # 이소 도모아키 프로그램 수석 프로듀서 역시 모두 '왕가'라는 표현은 결코 천황가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었다(週刊ポスト2012年2月3日号)라고 일본 언론에 일일이 해명해야 했다. 이때 데인 경험인지 2022년 같은 시대를 다룬 가마쿠라도노의 13인에서는 '왕가'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다. [29] 도쿄대 사학과 교수로 전공은 일본 중세사. 한국에는 그의 저서 <센고쿠 시대 무장의 명암 - 세키가하라 전투의 배신과 음모>가 2022년에 번역되어 나왔다. 일본에서 새로운 연호 레이와(令和)가 선포되었을 때, "令에는 '명령'이라는 뜻이 있는데 꼭 '평화롭게 지내라'라고 권위적으로 명령하는 것 같다."라고 이 레이와 연호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일본에서 국회의원이 세습 비슷하게 대물림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원래 일본인들은 세습을 좋아했다"며 "일본은 역사적으로 과거제 같은 것도 없었고 섬나라 특성상 도망갈 데도 없으니 치열한 경쟁보다는 출생으로 모든 게 납득되는 세습이 받아들여지기 쉬운 환경이었다"고 씁쓸하게 지적한 적도 있다. # 혼고 가즈토는 일본의 역사탐정 같은 역사 다큐멘터리에도 출연해 일본사를 설명하거나 도망을 잘 치는 도련님 같은 일본사를 소재로 다룬 만화 작품에서 해당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역사에 대한 간단한 설명 및 해설을 써 주거나 하는 등으로 일본사의 대중적 홍보에도 힘쓰고 있다. 일본의 총선거를 일본 중세사나 전국시대에 비교하여 분석하는 글을 기고하거나, 방송에 초대되기도 하였다. 여담으로 AKB48의 엄청난 팬이시란다. [30] 정확하게 말하면 '천황가'라고 쓰나 '왕가'라고 쓰나 어느 쪽이든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왕가라고 쓴 것이 꼭 사실에 맞다고도 할 수 없지만, 천황가라고 쓰는 것도 사실에 맞는 건 아니라는 얘기. [31] 다카마쓰 모모카(高松百香) [32] <「王家」をめぐる学説史> 『歴史評論』 2011年8月号 # [33] 이 '권문'은 한국사의 권문세족이라는 용어에도 나오는 그 권문인데, 한국에서와는 달리 구로다 토시오는 이 권문에 '왕가' 즉 천황과 상황의 가문들까지도 포함시킨다. 이는 천황이라는 '군주'가 정점에 군림하면서 '문신 권문'인 공가들이나 '무사 권문'인 무가들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그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또한 공가나 무가는 무조건적으로 천황에게 복종하면서) 상황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천황 역시도 공가나 무가와 마찬가지로 '권력'을 가진 한 '축'으로서 기능하면서 이들 '축'이 서로 융합하고 견제하기를 반복하며 일본 역사가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34] 물론 반론이 없는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두 개의 왕권론(二つの王権論)을 제시한 고미 후미히코(五味文彦). 두 개의 왕권론은 천황의 조정과 쇼군의 막부를 각각 하나의 '왕권'으로 간주한다. [35] 황실이라는 용어 자체는 이미 고대의 사서인 속일본기에도 나온다. 구로다의 이 주장은 이전까지는 왕으로 불렀는데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천황으로 고치면서 천황 용어만을 쓰도록 했다는 게 아니라, 그전까지는 '천황'이라고 부르든 '왕'이라고 부르든 이중 어느 한쪽이 경칭이라거나 격하라거나 하는 인식이 없었던 것을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천황'만이 높이는 칭호이고 왕이라는 칭호는 낮추는 칭호라는 인식을 메이지 신정부라는 국가 권력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정립시키고 대중에 프로파간다로 퍼뜨렸다는 것이다. [36] 구로다 토시오 '중세 천황제의 기본적 성격', 1977. [37] 일본 역사를 공부해 보면 알겠지만 일본 역사는 결코 군주인 천황이 주도해서 뭔가를 운영하거나 결단한 역사가 거의 손에 꼽을 정도로 없다. 말 좀 험하게 보태면 일본이라는 '국가'의 역사에서 군주의 역사는 조선과 같은 군약신강을 넘어서 그냥 군주가 섭관 혹은 쇼군의 권력에 연명하는 구조로 메이지 시대까지 천 년 넘게 이어졌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2333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2333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