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항목의 등장인물 표기는 정발판 기준으로 하되 항목 자체 개설은 흔히 알려진 이름으로 적습니다.
1. 개요
의외로 고증에 충실해서 잘 알려진 인물은 물론이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역사적 인물까지 구현되어 있다. 대부분의 항해사들은 실존 인물이며 현지어판 위키백과에도 등장하지 않는 인물들도 있다. 단 동일인물이 표기에 따라서 다른 인물로 나오기도 하고, 시대상 너무 일찍 나오거나, 너무 늦게 나오는 경우도 있긴 하다. 게임적 허용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단 한글판에 나오는 이름들을 보면 실제로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이름들이 많을 것이다. 아마 코론은 몰라도 콜럼버스는 알고 마가랴네스는 몰라도 마젤란은 알 것이다. 이는 일본에서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번역했기 때문이다.[1] 또한 서양사 전공서에서마저도 한두번 나오고 말 인물들은 현지 표기 → 일본식 표기 → 우리나라 표기로 일종의 중역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실제 이름과는 거리가 먼 이름들이 나온다. 게다가 게임 번역자들이 외래어 표기법을 준수하지 않아서 같은 국적, 같은 이름인데도 표기가 미묘하게 다른 경우가 왕왕 있다.
캐릭터 초상화는 다른 시리즈와 달리 실사 지향인데, 플레이어의 초상화는 나이에 따라서 머리색깔이 바뀌거나 수염이 나기도 하는 등 인물 묘사가 굉장히 사실적이다. 게다가 대항해시대 3은 플레이어가 여급과 결혼할 수 있으므로 아내 고르려고 취향에 따라 전세계 여급 얼굴을 보고 다니는 유저들도 있다. 여급은 나이를 먹어도 얼굴이 변하지는 않는다.
2. 주인공
- 라몬 데 마르시아스( 포르투갈)
- 에밀리오 알바레스( 에스파냐)
초기 소지금은 5000+10000닢[2]
능력 | 체력 76 지력 74 무력 76 매력 81 운 79 생년월일 1456년 3월 19일 탐험가 |
기술 | 항해 2 운용 2 검술 1 사격술 1 웅변 1 측량 1 역사학 2 회계 1 과학 1 |
어학 | 스페인어 2 포르투갈어 3 로망스어 3 아랍어 1 |
초기 소지금은 2500+10000[3]
능력 | 체력 65 지력 82 무력 60 매력 88 운 70 생년월일 1457년 2월 15일 발굴자 |
기술 | 항해 2 운용 2 검술 2 포술 1 사격술 1 측량 1 역사학 1 회계 1 신학 1 |
어학 | 스페인어 3 포르투갈어 2 로망스어 3 아랍어 1 |
2명의 주인공이 기본으로 만들어져 있지만 다른 캐릭터를 생성하여 플레이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기본적으로 설정된 캐릭터들은 스킬 배분이 그리 좋지 않으므로[4] 게임에 좀 익숙해진다면 새 캐릭터를 커스터마이즈해서 플레이하는 것을 추천. 탐험에는 여러가지 기술이 필요하며 중간중간에 끊임없이 캐릭터의 스킬을 육성하여야 한다.
3. 경쟁자
- 바르톨레메우 디아스(포르투갈 왕국)
- 바스코 다 가마(포르투갈 왕국)
- 세바스찬 데 엘카노(에스파니아 왕국)
- 아메리고 베스풋치(에스파니아 왕국)
- 아퐁소 데 알브켈케(포르투갈 왕국)
- 에르난 콜테스(에스파니아 왕국)
- 잭 칼티에( 프랑스 왕국)
- 존 캐벗( 제노바 공화국)
- 크리스트발 코론(제노바 공화국)
-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포르투갈 왕국)
- 페르난도 데 마가랴네스(포르투갈 왕국)
- 프란시스코 데 아르메이다(포르투갈 왕국)
- 프란시스코 피사로(에스파니아 왕국)
- 하산 분 무하마드( 하프스 왕조)
4. 항해자
아래 인물들은 만나서 물자구매도 가능하고 교전도 가능하나 등용은 불가능한 인물들이다.4.1. 포르투갈
- 두알테 파셰코 페레이라
- 디오고 로페스 데 세케이라
- 디오고 칸
- 로드리고 데 리마
- 안토니오 아브레우
- 아르발로 다만
- 아퐁소 아베이로 : 아퐁소 데 파이바와 동일인물으로 게임상에서는 다르게 구현.
- 에르난도 핀토 멘데스 : 포르투갈의 탐험가로 1542년경 일본에 표착, 타네가시마를 전달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핀투 여행기(원제는 편역. 일본에는 동양편역기로 발매되었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 조르제 알바레스
- 토메 피레스
- 페르난 고메스
- 페르난 페레스 데 안토라데 : 페르난 피레스 데 안토라데. 포트투갈의 상인 및 외교관으로 불랑기를 중국에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페르난 둘모
- 프란시스코 세란
4.2. 에스파니아
- 가스팔 콜테 레알 : 포르투갈의 탐험가로 북서항로 개척중 실종되었다. 게임에서는 에스파니아인으로 등장.
- 고메스 라스콘 : Gomez Rascon. 콜럼버스가 1492년에 신대륙으로 출항할 때 동행했던 항해사.
- 곤살로 데 코르도바
- 디에고 데 알마구로
- 디에고 데 올다스 : 탐험가 및 군인. 콜롬비아와 파나마 일대를 탐험했다.
- 루이 로포스 데 빌라로보스 : 루이 로페즈 데 빌라로보스. 탐험가로 필리핀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이다.
- 마르코스 데 니사 :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로 알바르 누녜스 카베사 데 바카의 탐험을 기록하였다.
- 바스코 누녜스 데 바르보아
- 아롱소 데 오헤다 : 알론소 데 오헤다. 원래 콜럼버스의 부하로서 서인도 탐색 항해에 참여하였으나 이후 독립한 콩키스타도르로 파나마에 거점을 두고 기아나 일대를 탐험한 최초의 유럽인.
- 아롱소 데 크라도 : 알론소 데 그라도. 코르테스의 부하. 코르테스를 따라 멕시코에 와서 쿠아우테목의 왕비이자 몬테수마 2세의 딸인 테추키포와 결혼하였다.
- 아롱소 데 피네다 : 알론소 알바레즈 데 피네다. 탐험가 겸 지도제작자로 멕시코 만 일대를 탐험한 후 바닷길로 북상하여 텍사스 일대를 탐험했다.
- 안드레스 데 우르다네타 : 탐험가이자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자. 마젤란과 엘카노에 이어 2번째 세계일주 항해자로 필리핀에서 아카풀코까지 항해하는 항로를 이용하여 세계일주에 성공했다. 이후 이 항로 이름이 '우르다네타 루트'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 이유.
- 에르난데스 데 코르도바 :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 데 코르도바. 콩키스타도르로 1517년 마야인들과 최초로 조우하여 유카탄 반도를 최로로 정복했다. 동시대에 동명이인으로 니카라과를 건설한 탐험가가 있다.
- 에르난도 데 소토
- 팡필로 데 나르바에스
- 페드로 데 발디비아 : 콩키스타도르.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밑에서 일하다가 이후 칠레 정복 중 사망.
- 페르난데스 데 엔시소 : 마르틴 페르난데스 데 엔시소. 베네수엘라라는 이름을 지은 사람이다.
- 퐁세 데 레온
- 프란시스코 데 몬테보 : 프란시스코 데 몬테조. 콩키스타도르로 父, 子, 姪 3명이 있다. 유카탄 반도와 온두라스 일대를 탐험했다.
- 프란시스코 데 보바딜랴 : 콜럼버스의 원정에 참여하였다. 콜럼버스가 히스파니올라에서의 내부 반란으로 인하여 본국으로 송환되었을 당시 임시로 총독을 지냈으며, 콜롬버스 이후 2대 서인도 총독을 지냈다.
- 후안 데 그리할바 : Juan de Grijalva. 콩키스타도르. 1508년 히스파니올라로, 1511년 쿠바로 갔다가 1518년 코르테스의 원정에 참여하여 멕시코 해안을 탐험하며 타바스코 강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그리할바 강으로 명명했다.
- 후안 데 아쿠아도 : 후안 데 아구아도. 에스파냐의 관료. 콜럼버스가 개척하고 통치하던 라 이사벨라에서 콜럼버스가 폭정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접한 이사벨 1세가 그를 1492년 6월 2일에 라 이사벨라로 파견하였다. 그 폭정이 사실로 드러나자 콜럼버스는 후안 데 아쿠아도를 따라서 에스파냐로 돌아가 여왕에게 사죄한다.
- 후안 디아스 데 소리스 : 에스파냐 혹은 포르투갈의 탐험가로 유카탄과 브라질, 우루과이강, 파라냐강 일대를 탐험했다.
- 히메네스 데 케사다 : 에스파냐의 정복자. 콜롬비아를 정복하고 보고타를 건설했다.
4.3. 기타
- 도메니코 폰타롯사
- 발바로스 하이레딘 : 본편 최강의 전투력을 가진 사나이. 다만 전작과는 달리 웬만해선 얼굴 한 번 보기 힘들다.
- 세바스티안 캐벗
- 아밀 후세인 : 아미르 후세인 알 쿠르디. 맘루크의 군인. 인도 일대에서의 기득권과 메카를 지키기 위해 디우 해전에서 프란시스쿠 드 알메이다가 이끄는 포르투갈의 해군과 싸워 패배했다.
- 암브로즈 알핀펠 : 독일어로는 암브로지우스 에힝어(Ambrosius Ehinger), 에스파냐어로는 암브로시오 알핀게르. 신성로마제국의 콩키스타도르. 1530년 베네주엘라를 탐험했으며 지금의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일대인 클라인-베네디히(작은 베네치아)의 최초 통치자.
- 우르지 하이레딘
- 장 도 카사노바 : 장 드 카사노바. 프랑스의 해적으로 1467년에 콜럼버스를 습격했다.
- 조반니 다 베라차노 : 이탈리아의 탐험가로 플로렌스 공국의 지원을 받아 뉴펀들랜드 등을 탐험했다.
- 케말 라이스 : 케말 레이스. 오스만 투르크의 군인.
- 피리 레이스 : 피리 레이스 제독의 지도 항목 참조.
- 로버트 리네거 : 잉글랜드의 탐험가.
4.4. 가공 인물
전 편 등장인물들. 레온 페렐로(페레로)는 등장하지만 다른 대항해시대2 인물들은 확인된 바가 없다.실제로 게임상에선 만날 수 없고 데이터로만 존재하는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 레온 페렐로
- 미케레 샤이록[5] : 셜록 은행장
- 알 베자스
- 에르네스트 로페스
- 옷토 스피놀라
- 조안 데 페렐로
- 카를로스 에제키에르 : 에제키엘 사령관
- 카타리나 데 에란쪼
- 피에트로 콘티
5. 동료
아래 인물들은 부관, 항해사, 측량사, 통역으로 등용이 가능한 인물들이다.5.1. 포르투갈
- 가르시아 데 소우자 : 1509년 디우 해전에 참전한 포르투갈의 군인.
- 가르시아 엔리케스
- 곤사로 고메스 데 에스피노사 : 곤살로 고메스 데 에스피노사. 페르디난트 마젤란의 함대에서 1520년에 루이스 데 멘도사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고, 시신을 효수했다.
- 곤사로 질 바르보아
- 누노 바스 페레이라 : 1509년 디우 해전에 참전한 이후 1517년에서 1518까지 말라카의 총독으로 부임했다.
- 니콜라스 코엘류 : 니콜라우 코엘류.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탐험과 페드로 알바레스 카브랄의 브라질 탐험에 참가했다. 1504년에 포르투갈로 귀국하는 도중에 모잠비크의 퀴림바스 군도 주변에서 프란시스코 데 알부케르케와 함께 사망했다.
- 두알테 발보자 : 마젤란의 의형제로, 스페인과의 계약을 주선한 인물이다. 문인으로 마젤란의 항해에 동승했다가 필리핀에서 죽었다.
- 디에고 디아스 : 디오고 디아스. 바르톨로뮤 디아스의 형제로 카보베르데를 발견한 사람.
- 디오고 발보자 : 두알테 발보자와 동일인물으로 게임상에서는 다르게 구현.[6]
- 로드리게스 데 마프라 : 후안 로드리게스 마프라. 마젤란 함대의 항해사로 세계일주를 마친 이후 얼마 안가 사망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에스파냐 사람인데 게임에서는 포르투갈 항해사로 입력되어 있다.
- 로포 소아레스 : 로포 소아레스 데 알베르가리아. 아폰소 데 알부케르케의 뒤를 이어 인도 총독을 지냈다.
- 루이 데 파레일로 : 마젤란의 친구이자 항해사.
- 바스코 고메스 가리에고 : 마젤란 함대의 항해사. 본래 포르투갈 사람이지만 이후 스페인으로 망명하여 마젤란의 함대에 합류했다.
- 벨로 데 에스코랄
- 아르바로 데 메스키타 : 마젤란의 사촌으로, 세계일주 도중에 산 안토니오 호의 선장으로 임명되었지만 이에 선원들이 불만을 가져 반란이 일어났다.
- 아이레스 코레아 : Aires Correia. 카브랄의 부하로서 캘리컷에 설립된 상관에 배치되었다가 아랍 상인들의 습격으로 죽는다.
- 아퐁소 데 소우자 : 마르팀 알폰소 데 소우자. 브라질 일대에서 활동하여 상 비센테(São Vicente)를 건설한 후 포르투갈령 인도 총독을 역임한다.
- 아퐁소 데 파이바 : 아퐁소 아베이로와 동일인물으로 게임상에서는 다르게 구현.
- 안토니오 다 모타 : 포르투갈 출신의 상인으로 1542년 샴 왕국에서 탈출하여 중국 상선에 탔다가 1543년 일본 다네가시마에 표류하여 조총을 전래한 세 명의 포르투갈 상인 중 한 명이다.[7]
- 안토니오 데 미란다 : 알부케르케의 부하. 1512년 샴의 왕이었던 라마티바디 2세(1491~1597)와의 우호통상을 위해 아유타야로 파견된 사절단의 대표였다.
- 안토니오 데 사르다냐 : 안토니오 데 살다냐. 알브켈케의 부하 군인이었으며 테이블 마운틴에 등정한 첫 유럽인이다.
- 안토니오 페이숏 : 포르투갈 출신의 상인으로 1542년 샴 왕국에서 탈출하여 중국 상선에 탔다가 1543년 일본 다네가시마에 표류하여 조총을 전래한 세 명의 포르투갈 상인 중 한 명이다.[8]
- 에스테반 고메스 : 지도제작자 겸 항해자로 노바스코샤와 메인 일대를 탐험했다. 마젤란 함대에 있을 때는 마젤란에게 불만을 품고 산 안토니오호를 탈주시켰다.
- 조르제 데 메네세스 : 인도네시아를 탐험한 탐험가로 이후 테르나테 총독을 지냈으며, 파푸아뉴기니의 '파푸아'라는 이름을 지은 사람이다.
- 조안 다 노바 : 주앙 다 노바. 1501년 포르투갈이 인도로 파견한 함대를 이끌면서 어센션 섬, 후안 데 노바 섬[9], 세인트헬레나 섬을 발견하였다. 이후 1509년 디우 해전에서 맘루크 함대와의 해전에서 승리하였다.
- 조안 데 리스보아 : 주안 데 리스본. 마젤란이 군인이던 1513년 아자모르 전투 당시 그의 상사였으나 마젤란과 사이가 나빴다.[10] 1506년 트리스탄 다 쿠냐와 함께 트리스탄 다 쿠냐 제도를 발견했으며 산 마티아스 만과 라플라타 강의 발견자로도 알려져있다.[11]
- 조안 데 메네제스
- 조안 세란 : 주안 세란. 마젤란의 사촌이며 위의 프란시스코 세란의 형제다. 산티아고호의 선장이었다.
- 조안 카르발료 : 주안 카르발류. 마젤란 함대의 항해사.
- 크리스트발 라벨로 : 마젤란 함대의 항해사.
- 트리스탄 데 메네제스 : Tristão de Menezes.
- 페드로 데 소우자 : 페드로 데 소우사. 마젤란이 군인일 때 참전한 믈라카 원정에서 불화로 인해 마젤란을 해고하였다.
- 페드로 데 코비랸 : 페루 다 코비랴(Pêro da Covilhã). 외교관 겸 탐험가로 프레스터 조안을 찾으라는 왕의 명을 받아 에티오피아에 다녀왔다.
- 페로 아퐁소 데 로로자 : Pero Afonso de Lorosa.
- 페로 포가사 : Pêro Ferreira Fogaça. 프란시스쿠 드 알메이다의 부하로 킬와의 수비 임무를 받고 그곳에 배치되지만 킬와 수비에 실패한다.
- 페르난도 쿠티뇨 : Fernando Coutinho. 아폰소 데 알부케르케가 프란시스코 데 알메이다에 의하여 투옥당했을 때 리스본에서 파견되어 알부케르케가 사면되도록 하였으며 이어 1509년 캘리컷 공략을 명령하였다.
-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
- 프란시스코 알바레스 : 선교사 겸 탐험가로 에티오피아 대사를 역임했다.
- 프란시스코 제이모토 : 포르투갈 출신의 상인으로 1542년 샴 왕국에서 탈출하여 중국 상선에 탔다가 1543년 일본 다네가시마에 표류하여 조총을 전래한 세 명의 포르투갈 상인 중 한 명이다.[12]
5.2. 에스파니아
- 가르시 오르긴
- 가르시아 호프레 데 로아이자: García Jofre de Loaisa
- 가스팔 데 케사다
- 디에고 가리에고
- 디에고 데 니에크사 : 디에고 데 니쿠에사. 콩키스타도르로 코스타리카와 파나마 일대에서 활동했다.
- 디에고 데 아라나 : 신대륙의 라 나비다드 총독을 지냈다.
- 로드리고 데 에스코베토 : 로드리고 데 에스코베도. 콜럼버스의 첫번째 항해에서 산타 마리아 호를 탔던 선원으로,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상륙의 첫 공증인.
- 로드리고 데 토리아나 : 로드리고 데 트리아나. 콜럼버스 선단 중 핀타 호의 선원으로 신대륙을 보고 육지다!!!라고 외친 사람.
- 로페 찬카 : 콜럼버스의 2차 아메리카대륙 원정에 동행하도록 스페인 왕정에서 임명시킨 의사.
- 로페스 데 카르데나스 : 1540년 그랜드 캐니언을 최초로 발견한 백인이다.
- 루이스 데 멘도사
- 루이스 데 모리나 : 마젤란 함대에서 가스팔 데 케사다를 따라 반란한 인물이지만, 반란이 진압되자 마젤란으로부터 협박을 받고 가스팔 데 케사다를 죽였다.
- 루이스 데 토레스 : 콜럼버스 선단의 통역사로 신대륙에 정착한 최초의 유대인이다.
- 마르틴 데 바렌시아 : 프란치스코회 수도자이며, 선교사로서 멕시코에서 선교활동을 하였다.
- 마르틴 아롱소 핀손 : 항해자 평제인 핀손 형제의 첫째로 콜럼버스 선단의 핀타 호의 선장.
- 마르틴 안다고야 : 피사로의 페루 원정에 참가했다고 한다.
- 미겔 데 로다스 : 엘 카노 함대의 부선장.
-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 : 바스크계 항해자로 필리핀 총독을 역임했다. 펠리페 데 사르세트의 할아버지.
- 미겔 산체스 : 엘 카노 함대에서 생존한 사람.
- 미겔 헤레스 데 에스테테 : 프란시스코 피사로 함대의 대원.
-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 바르톨로메 데 오르메도 : Bartolomé de Olmedo. 코르테스의 멕시코 정복에 참가한 성직자로 교섭 업무를 주로 수행하였다. 몬테수마 2세에게 세례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 바르톨로메 루이스 : Bartolomé Ruiz. 에스파냐의 콩키스타도르. 에콰도르를 처음으로 발견한 유럽인.
- 바스케스 데 코로나도 : 당시 멕시코의 총독이던 안토니오 멘도사로부터 ' 시볼라의 일곱 고을'을 찾으라는 명령을 받고 미국 남서부 지역을 탐험한다. 이 과정에서 콜로라도 강, 그랜드캐니언을 발견하기도 했고 부에블로 인디언과 아메리카 들소를 보기도 했지만 시볼라의 일곱 고을을 찾는데 실패하고 1542년 멕시코로 귀환했다.
- 베르나르 디아스 델 카스틸료
- 비센테 데 바르벨테 : 도미니코회 수도자로 페루 일대에서 선교활동을 했다.
- 비센테 야녜스 핀손 : 항해자 형제인 핀손 형제의 막내로 콜럼버스 선단의 니냐 호의 선장.
- 사비에르 데 야소
- 세바스찬 베날카살 : 세바스티앙 데 벨라카자르(Sebastián de Belalcázar). 콩키스타도르로 에콰도르, 콜롬비아 일대에서 활동했다.
- 시에사 데 레온 : 페드로 시에자 데 레온. 콩키스타도르로 페루에서 활동하였다. 책을 남겨 그의 활동을 알 수 있다.
- 아르바 누녜스 카베사 데 바카
- 아르발로 데 사아베트라 : 코르테스의 명으로 1527년 아메리카로부터 태평양을 넘어 몰루카 제도까지 도착하였다.
- 아마돌 데 라레스 : Amador de Lares. 코르테스가 산티아고 데 쿠바에 있을 무렵의 콘타도르였으며 재무관이었다. 코르테스와 친밀하여 그의 탐험계획을 듣고 승인해주었다.
- 안드레스 데 두에로 : Andrés de Duero. 아마돌 데 라레스의 비서. 코르테스와 친밀한 상인이었기 때문에 회계 특기가 높다.
- 안드레스 데 산마르틴 : Andrés de San Martín. 마젤란 함대의 수석 항해사이자 천문학자였기 때문에 과학과 측량 기술레벨이 3이다.
- 안토니오 데 모르가 : Antonio de Morga. 스페인의 군인이었으며 필리핀의 민속풍습 등을 기록한 책 Suceos de las islas Filipinas을 출간하였다.
- 안토니오 데 몬테시노스 : 도미니코회 수도자로 히스파놀라에서 선교활동을 하였으며, 아이티에서의 원주민 학대를 규탄하는 등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와 함께 도메니코회의 일원으로서 아메리카 원주민을 구제하는 데에 힘썼다.
- 안토니오 데 코카 : 마젤란 함대의 경리관이며 산 안토니오호의 선장이었지만 느닷없이 선장에서 해임당하자 앙심을 품고 반란에 가담한다.
- 안톤 콜메네로 : Antón Hernández Colmenero. 엘카노 함대의 항해사.
- 에르난도 데 그리할바 : Hernando de Grijalva.
- 에르난도 데 토레 : Hernando de la Torre.
- 엔리케 미라이에스 : 일명 믈라카의 엔리케. 마젤란이 믈라카에서 사들인 노예였으나 마젤란이 사후에 그의 재산을 떼 주려고 생각했을 정도로 그를 아꼈다. 마젤란의 함대에 승선했으나 마젤란 사후에 마젤란의 친척들의 모욕으로 인해 불만을 가지고 탐험대를 배신했다.
- 오르티스 데 레테스
- 이니게스 데 카르키사노 : Martín Íñiguez de Carquizano. 가르시아 호프레 데 로아이자의 향료 제도(몰루카 제도)의 원정을 따라 참가하였으나, 로라이자, 엘카노, 살라사르를 비롯한 총대장들의 잇딴 사망 끝에 총대장이 되어 1527년에 함대를 길롤로 섬까지 이끌었다. 그곳에서 포르투갈 함대와 대립하거나 휴전을 하기도 하지만 포르투갈 사절단을 초청한 연회에서 결국 독살당한다. 에르난도 데 토레가 그의 지휘권을 대신한다.
- 크리스트발 데 모리나
- 크리스트발 킨텔로
- 토르피오 아롱소 데 살라사르 : Toribio Alonso de Salazar.
- 파스크왈 데 안다고야 : 파스쿠알 데 안다고야. 바스크계 콩키스타도르. 파나마와 콜롬비아 일대에서 활동했으며 파나마 남쪽의 강가에서 비루 족을 만났는데, 그 부족의 이름이 오늘날 페루의 유래이다.
- 페드로 데 멘도사 : 콩키스타도르. 라플라타 강 일대를 탐험하였다.
- 페드로 데 아르바라트 : 페드로 데 알바라도. 코르테스의 부관으로서 코르테스가 자신을 진압하러 온 판필로 데 나르바에스와 싸우기 위하여 쿠바로 떠난 사이 아즈텍의 식인축제인 톡스카틀 축제를 참관하다가 경악한 나머지 인디오들을 학살해버렸다. 이 톡스카틀제의 대학살로 인하여 아즈텍인들이 코르테스에게 봉기하게 된다.
- 페드로 산체스 데 라 레이나 : 마젤란 함대에 있던 선상사제였으나 반란에 가담하여 후안 데 카르타헤나와 함께 버려졌다.
- 페드로 코레아
- 페라롱소 니뇨 : 페드로 알론소 니뇨(Pedro Alonso Niño)로도 불린다. 콜럼버스의 첫 원정의 산타 마리아 호의 조종사였다.
- 페르난데스 데 부스타만테 : 마젤란 함대에서 생존한 이발사 겸 외과 의사.[13]
- 펠리페 데 사르세트: Felipe de Salcedo. 멕시코에서 필리핀으로 항해한 미구엘 로페스 데 레가스피의 원정대의 일원이었다.
- 프란시스코 데 오레랴나 : 콩키스타도르. 아마존 강을 처음으로 종주하여 오렐라냐 강이라고 이름붙였다.
- 프란시스코 데 헤레스 : 프란시스코 피사로 함대의 대원.
- 프란시스코 로르당 : 콜럼버스의 함대에 합류한 항해사였으며 히스파니올라의 관리자로 임명되지만 1498년에 그곳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 프란시스코 아르보 : 마젤란 함대의 생존자.
- 헤르니모 로페스 데 게라 : 마젤란에게 불만을 품은 에스테반 고메스가 탈주시킨 산 안토니오 호의 선장이 되었다.
- 헤로니모 아기랄 : 스페인 출신의 성직자로 에르난 코르테스의 멕시코 원정에 참가하여 말린체와 함께 인디오들의 언어를 스페인어로 통역했다.
- 후안 니뇨 : Juan Niño de Tabora. 필리핀의 19대 총독이었다. 대만에서 네덜란드 군대를 격퇴하였으며 마카오 탐험, 졸로 섬 정복 등 동남아에서 활약하였다.
- 후안 데 가에타노 : 위의 루이 로페즈 데 빌라로보스와 함께 항해하였으며, 하와이와 마셜 제도를 탐험한 최초의 유럽인으로 꼽힌다.
- 후안 데 라 코사 : 항해사 겸 지도제작자. 여러 항해자들을 따라다니며 지도를 만들었으며 특히 콜럼버스의 2차 탐험에 참여하면서 제작한 지도는 해당 탐험을 기록한 유일한 지도로서 가치가 높다.
- 후안 데 산탄델 : 마젤란 함대의 항해사.
- 후안 데 스마라가 : 멕시코 교구의 초대 주교.
- 후안 데 아쿠리오 : 마젤란 함대의 항해사.
- 후안 데 에롤리아가 : 마젤란 함대의 항해사로, 반란에 저항하다가 살해당했다.
- 후안 데 카르타헤나 : 회계사로 마젤란과 갈등을 일으킨 사람.
5.3. 기타
- 나코다 이스마엘 : 몰루카 제도 일대의 상인. 이 자의 선단이 자바 섬에 표류되는 바람에 포르투갈에 자바 섬의 존재가 알려지게 된다.
- 니콜라스 데 페데르만 : 니콜라우스 페데르만. 독일계 콩키스타도르로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지역을 다스렸다.
- 니콜라오 데 나포레스 : 마젤란 부대의 갑판원.
- 도냐 마리나
- 로드위고 바르테마 : 루도비코 디 바르테마. 이탈리아인 여행가로 비 무슬림 순례자로는 최초로 메카에 방문했다.
- 마르틴 데 유디시프스 : Martin de Judicibus. 마젤란 함대의 감독관으로 마젤란이 죽은 후에 엘 카노가 이끌고 돌아온 빅토리아 호의 생존자 중 한 명.
- 미케레 데 크레오
- 바티스타 다 이모라
- 아흐마드 이븐 마지드
- 안토니오 피가페타
- 윌리엄 호킨스 : William Hawkins 또는 Hawkyns. 영국 출신의 상인. 1528년경 기니 해안으로 출항하여 무역을 했으며 1530년대에는 브라질 해안에 진출하여 원주민들과 교류했다. 칼레 해전으로 유명한 존 호킨스의 아버지.
- 조지 안드루즈 : 영국인이지만 에스파냐로 귀화했다. 마젤란 함대의 트리니다드 호의 포술장이었다.
- 휴 윌로비
5.4. 가공 인물
- 디에고 코레아
- 라비 아브라함 데 베자
- 롯꼬 아렘켈
- 조안 소아레스
- 주세 데 루메고
- 프란시스코 데 우료아
- 후안 데 에스칸테
- 후안 로드리고 아코스타
-
감찰관 : 정식 항해사는 아니고, 스폰서와 계약을 맺을 때 감시역으로 따라오는 사람이다. 이름은 랜덤으로, 매번 계약을 맺을 때마다 바뀐다. 정규 항해사가 아니라 하는 일은 없지만, 발견물을 찾을 때마다 멘트를 넣거나, 부관과 만담을 하거나 맞장구 등을 쳐주기 때문에 굳이 계약건이 아니더라도 데리고 다닐만 하다.
너, 내 동료가 되라!만일 가짜 발견물로 스폰서를 속이려고 할 때, 돈을 주고 매수할 수도 있고 여차하면 죽여버릴 수도 있다. 물론 들키면 감옥행이고, 안 들켜도 감찰관이 없어졌다는 것이 발각되면 지명수배자로 쫓기는 신세가 되어 감옥행을 예약하게 된다. 또한 계약은 한 번에 1계약만 가능한데, 감찰관을 데리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스폰서와 계약을 하게 되면 마찬가지로 감찰관을 처분해버림과 동시에 이전 스폰서로부터 지명수배를 받게 된다.
6. 스폰서
굵은 글씨는 A급 스폰서.6.1. 포르투갈
- 가스팔 코레아
- 디오고 오르티스
- 루카스 램
- 바르톨로메우 말키오니
- 아르발로 다 코스타 : 스페인에 있던 포르투갈 대사로, 마젤란과 스페인의 밀약을 눈치채고 그의 암살을 지시했다.
- 아르발로 데 브라간사 : 포르투갈의 귀족으로 마누엘 1세의 백부였다. 궁중 내 보수파를 누르고 마누엘 1세의 왕권강화에 기여하였다.
- 아퐁소 데 알브켈케
- 안토니오 발디 : 1471년에 리스본에 은행을 개업했던 상인이지만 게임상에선 오포르토에서 등장하고 있다.
- 안토니오 브리토 : 포르투갈령 몰루카 제도의 행정관장. 마누엘1세에게 스페인의 후원으로 향료제도에 도달한 마젤란에 대해 보고서를 보냈다. 1521년 테르나테에서 등장하므로 동아시아나 오세아니아 발견물 탐색에 쓰면 편한 스폰서.
- 조안 2세 → 마누엘 1세
- 조안 에스토레이트
- 페르난 마르티스
6.2. 에스파니아
- 가스팔 데 에스피노사
- 게랄루스 메르카토르
- 곤사로 피사로
- 니콜라스 데 오반도
- 돈 엔리케 데 구스만
- 디에고 베라스케스
- 루이스 데 산탄헬
- 막시밀리아노 트란실바노
- 산초 데 마티엔소
- 안토니오 데 네브리하 : 언어학자. 스페인 최초의 문법서인 '카스틸랴어 문법서'를 편집, 간행하였다.
- 안토니오 데 멘도사 :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의 초대 부왕.
- 안토니오 데 엘레라 : 마드리드의 역사학자. 곤살로 피사로의 아마존 강 유역 탐험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 알퐁소 구티엘레스 : 세빌리아 시회의원.
- 에르난도 루케
-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 예수회의 설립자
- 이자벨 1세 → 카를로스 1세[14]
- 크리스트발 데 알로 : 푸거상회 마드리드 주재 대리인. 마젤란 함대를 지원하였다.
- 페드라리아스 다빌라 : 페드로 아리아스 다빌라. 일면 페드라리아스. 스페인 정복자들의 첫 정착이지이던 산타마리아 라 안티구아 데 다리엔(현재는 콜롬비아 영토)이 해적소굴이 되자 1519년 스페인에서 파견되어 그곳을 평정한다. 이후 파나마시티를 개발한다.
- 프라이 에르난도 데 타라벨라
- 프란시스코 데 마르도나도
- 프란시스코 레이넬 파레일로 : 마젤란의 항해사였던 루이 파레일로의 형제.
- 후안 로드리게스 데 폰세카 : 스페인의 통상원총감으로 향로제도의 서회항로 탐색을 위해 마젤란을 기용하였다.
- 후안 페레스 데 마르체나 : 콜럼버스가 처음 에스파냐에 왔을때 의탁하던 수도원의 원장으로, 콜럼버스의 항해 계획을 듣고는 개인적 친분이 있던 이사벨 1세와의 만남을 주선해주었다.
6.3. 이탈리아 제국(諸國)
- 니콜로 마키아벨리
- 로드리고 일 몰로
- 로렌쪼 데 메디치 → 지롤라모 사보나로라 → 알렉산드로 데 메디치[15]
-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 미켈레 스피놀라
- 인노첸시오 8세 → 레오 10세
- 자노 프레고소
- 체자레 보르지아
- 카를로 첸토리오네
- 파올로 델 폿쪼 토스카넬리 : 수학자 및 천문학자였으며 핼리 혜성을 비롯한 혜성의 궤도 계산에 공을 들였다.
- 펠난드 델라 스칼라
- 프란체스코 귀짜르가디
- 프란체스코 키엘리가디
6.4. 신성 로마 제국
- 리하르트 그라이펜크라우
- 마르틴 루터
- 마르틴 발트제뮬러
- 마르틴 베하임
- 야코브 풋거
- 엔리크스 마르테르스
- 요제프 벨자
- 요하네스 로이히린
- 요한 모이팅
- 프란츠 투르쫀
- 프리드리히 3세
- 프리드리히 현공
- 필립 대공
6.5. 기타
6.6. 가공 인물
7. 이벤트상의 인물
- 가정제 - 마카오 개항 이벤트에서 등장.
-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 누진가 누쿠우 - 콩고 왕국의 왕, 게임에서는 베닌 왕국 국적으로 되어있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 다빈치 이벤트의 정확한 진행은 일단은 1486년 까지 만나야 하며 계약 중에는 설득이 불가능하니 만날 수 없다. 1487년에 다빈치에게 잠수폭탄을 받으면, 즉시 잠수폭탄을 소지한 상태로 다빈치를 다시 만나서 "무기가 도움이 되었냐며 이번엔 다른 무기를 개발 중"이란 대사를 들어야 한다. 위의 대화를 한 이후 정확히 1년 후에 다빈치를 만나면 작렬탄을 받을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무기가 도움이 되었냐며 이번엔 다른 무기를 개발 중" 대사를 들은 후 1년 후에 속사포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저 대사가 진행된 이후에도 해당 아이템이 없는 상태로 재방문하면 같은 아템을 받을 수 있으며, 만약 1487년 12월 31일에 잠수폭탄을 받아서 "무기가 도움이 되었냐며 이번엔 다른 무기를 개발 중" 대사를 들은 후, 1년이 더 지나서 다빈치를 만나도 작렬탄을 받을 수 있으며, 1492년 12월 31일까지는 다빈치 이벤트는 진행되는 것이다 - 모크테스마 2세 - 아즈텍 제국의 마지막 황제.
- 미켈란젤로 붜나로띠
- 브라도 쩨페시
- 아타와르바 - 잉카 제국의 황제 아타우알파
- 우르그 벡 - 알제의 해적으로 게임에서만 나오는 가공 인물
- 조안 바로스 - 포르투갈의 역사학자. 'Décadas da Ásia'라는 책을 썼다. 게임에서는 운송 이벤트로 등장한다.
- 츠카하라 보쿠덴 - 항목 참조. 게임에서는 금각사 이벤트에서 일기토 상대로 등장하나 데이터를 뜯어보기 전에는 이름을 알 수 없다. 여담으로 검술 수치가 0.
- 토팍 와루카 - 게임상에서는 아타우알파와 내전중인 동생으로 나온다. 이로써 미루어 볼 때, 아타우알파의 이복형제였던 와스카르로 추정. 위키백과
버그가 있으니 정확한 진행을 안했어도 이벤트가 진행될 수도 있지만, 다빈치 이벤트를 끝까지 진행 못했다면, 앞에 서술된 과정을 정확히 진행하자
[1]
딱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크리스토발 콜론이나 페르난도 데 마가야네스는 모두 에스파냐에 귀화해서 에스파냐의 지원을 받으면서 활동했다. 역사인물은 현지식으로 부르는게 보다 올바르다고 본다면 단 한번도 인연을 맺지 않은 영어식 이름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나 페르디난드 마젤란보다는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만 해도 과거에는 줄리어스 시저라고 부르다가 카이사르라고 부르지 않는가. 다만 문제는 콜론을 코론으로, 마가야네스를 마가랴네스로 기록한 것이다. 이건 일본어 읽기를 잘못한 것이며 역사인물의 이름이 뭐였는지를 몰랐다는 얘기도 된다.
[2]
초기 자금은 5000닢이지만 후원자 파브리스 데 페레로에게 10000닢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3]
초기 자금은 2500닢이지만 후원자 프란시스코 데 에란쪼에게 10000닢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4]
성능이 나쁜 건 아니고, 항해사로 쉽게 커버할 수 있는 기술들 위주로 찍혀있어서 항해사로 쉽게 커버할 수 없는 의학이나 과학 등을 위주로 커스터마이즈한 캐릭터에 비해 장기적으로 불리한 것이 문제다. 거기에 운도 나름대로 중요한 요소인데 라몬은 좀 낫지만, 운이 이벤트를 보더라도 80을 넘기지 못하는 에밀리오의 경우 확실히 동전 굴릴때 난관이 좀 있다.
[5]
본래는 '미켈레 샤일록'이 올바른 표기이다.
[6]
대항해시대3 가이드북에는 마젤란의 친구이자 장인으로서 다른 인물로 기록되어있다.
[7]
멘데스 핀투의 기록과는 다르다. 안토니오 가르완의 세계신구발견사(Tratado dos Descobrimentos)에선 안토니오 다 모타, 안토니오 페이숏, 프란시스코 제이모토가 일본에 조총을 전래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8]
멘데스 핀투의 기록과는 다르다. 안토니오 가르완의 세계신구발견사(Tratado dos Descobrimentos)에선 안토니오 다 모타, 안토니오 페이숏, 프란시스코 제이모토가 일본에 조총을 전래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9]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섬이지만 어째서인지 에스파냐식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10]
이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브라질의 역사학자는 그가 마젤란의 탐험대의 일원이라고 잘못 발표하기도 했다.
[11]
다만 라플라타 강의 발견자인지에 대해서는 스페인 측과 포르투갈 측의 의견차이가 있다.
[12]
멘데스 핀투의 기록과는 다르다. 안토니오 가르완의 세계신구발견사(Tratado dos Descobrimentos)에선 안토니오 다 모타, 안토니오 페이숏, 프란시스코 제이모토가 일본에 조총을 전래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13]
중세에는
이발사가
외과
의사를 겸하는 일이 흔했다.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14]
후아나와
펠리페 1세는 생략된다.
[15]
로렌초 데 메디치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