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6 09:00:49

노나라

1. 魯
1.1.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왕조
1.1.1. 개요1.1.2. 역사1.1.3. 유력 세경가
1.1.3.1. 삼환(三桓)1.1.3.2. 삼환이 아닌 세경가
1.1.4. 역대 군주1.1.5. 기타
1.2. 수말당초의 왕조
2. 潞

1.

중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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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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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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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속기간 서기전 11세기 ~ 서기전 256년[2]
위치 중국 산둥
수도 곡부
국성 (姬)
국가원수 후작
언어 상고 중국어
문자 금문 전서 (대전체)
종교 중국 토속 종교[3]
종족 화하족
성립 이전 주나라
멸망 후 초나라
현재 국가 중국

[clearfix]

1.1.1. 개요

중국 서주 시대부터 존재하던 나라로 지금의 산둥성 일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시조는 주공 단의 장남인 노태공 백금이고 수도는 곡부다.

본래는 '로(魯)'나라이다. 두음법칙 때문에 국내에서는 노(魯)나라로 부른다.

주공 단은 주나라 원로 관직인 주공이 되어 주 문공으로 일컬어지며 장남 백금에게는 노나라를 주고 차남 군진에게는 자신의 주공 자리를 주니 그가 주 평공이다.

공자 고향으로 유명하다. 주나라의 예절을 따지는 노나라의 기풍을 생각하면 과연 공자에 걸맞은 고향이라 할 수 있다.

1.1.2. 역사

1.1.2.1. 서주
주나라의 예절이 가장 잘 보존된 나라였다.[4] 그런 만큼 기풍이 엄격하고 전통과 예의를 중시[5]하였으며, 여러 나라들 사이에서 전쟁을 중재하는 등 남을 배제하는 것이 상식인 난세에서 정도를 지키고자 한 특이한 케이스의 나라였다.
1.1.2.2. 춘추시대
서주 시대까지만 해도 시조 주공 단의 위상에 힘입어 송나라, 위나라와 더불어 주요 제후국 중 하나로 손꼽혔으나 이후 동주 춘추시대로 접어들면서 근린국인 제가 패자를 칭할 정도로 무섭도록 성장해 크게 압박을 받은 데다, 내부적으로도 맹손씨, 숙손씨, 계손씨라 불리는 세 가문, 일명 삼환(三桓)[6]이 공실을 제치고 실권을 손에 넣으면서, 이에 반발한 군주와 이들 간의 권력 다툼[7]으로 오랜 기간 혼란이 지속돼 약소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1.1.2.3. 전국시대
그래도 전국시대까지 아득바득 살아남았고, 노공공 때까지는 위나라와 연합해 제나라를 칠 정도의 여력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국 다른 나라들의 성장세를 따라가지 못해 전국시대 후기에 (楚) 고열왕의 침공으로 멸망한다. 상전이었던 주나라가 멸망하기 몇년 전 차이로 멸망하여 이미 군주의 작위를 박탈당한 위나라를 제외하면 전국칠웅을 제외한 제후들 중 가장 마지막까지 버티다 사라진데다 마지막 군주도 끔살당하는게 아닌 초나라의 배려로 천수를 누리다 갔으니 나름 호상이라 할 수 있겠다.

먼 훗날, 전한 평제가 노의 마지막 군주였던 경공의 6대손, 공자 관을 찾아내 제후로 봉한다.

1.1.3. 유력 세경가

1.1.3.1. 삼환(三桓)
노환공의 장자인 노장공을 제외한 자식인 서장자 경보, 서차자 숙아, 적차자 계우의 후손으로 노나라 멸망 때까지 권력을 쥐고 흔들었다. 양호가 이들의 처결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했고, 공자는 삼환 권력을 약화를 노리며 헌신했으나 실패했다.
  • 맹손(孟孫)씨: 맹(孟)씨 혹은 중손(仲孫)씨라고도 한다. 노환공의 서장자인 맹공자 맹경보의 후손.
  • 숙손(叔孫)씨: 노환공의 서차자인 숙희자 숙아의 후손.
  • 계손(季孫)씨: 계(季)씨라고도 한다. 노환공의 적차자인 계성자 계우의 후손.
1.1.3.2. 삼환이 아닌 세경가
  • 장손(臧孫)씨: 장(臧)씨라고도 한다. 노효공의 아들인 장희백 장손구의 후손. 노나라의 성인이라고 불리던 장무중 장흘의 대에 가세가 절정에 이르렀으나 계씨의 후계 문제에 참여하였다가 중손씨, 맹손씨의 후계 문제에까지 엮이면서 장무중이 제나라로 망명한 이후 가세가 기울었다.
  • 동문(東門)씨: 자가(子家)씨라고도 한다. 노장공의 아들인 동문양중 동문수의 자손. 동문양중의 아들인 동문귀보가 계씨 집안과 대적한 뒤 패배하여 제나라로 도망간 이후 자가씨로 개칭되었다.
  • 공(孔)씨: 송나라에서 망명 온 집안이다. 유력한 가문은 아니었으나 공자를 배출했다.
  • 남궁(南宮)씨: 맹희자의 차남이자 맹의자의 동생인 남궁경숙 남궁괄이 분가하여 세운 가문. 남궁괄은 공자의 제자로도 유명하다.
  • 전(展)씨: 노효공의 아들인 희전의 후손. 유명한 인물은 전획, 전척, 전희 삼형제. 이 삼형제는 사실 유하혜(전획)[8], 도척(전척)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유하혜는 훗날 유씨(柳氏) 집안의 시조로 추앙받기도 한다.
  • 유(柳)씨: 앞서 말한 노효공의 아들인 희전의 후손으로 전획, 곧 유하혜가 시조이다. 유하(柳下)는 식읍이고 혜(惠)는 시호이다. 후손들이 유씨(柳氏)로 삼고 유하혜를 시조로 받들었다. 남북조에서 수당시기 문벌귀족으로 성장한다. 곧 중국 유씨는 노나라 공실(公室)의 자손, 곧 주공(周公) 단(旦)의 후손이자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후손이다.

1.1.4. 역대 군주

파일:노 전서체.png
노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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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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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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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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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양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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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유공
5대

위공
6대

여공
7대

헌공
8대

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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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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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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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
1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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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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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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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선공
2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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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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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야
2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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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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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목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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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3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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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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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문공
36대

경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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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대 태공(太公) 백금(伯禽) ? ~ 서기전 998년 : 주공 단의 아들. 원래 주공 단이 노나라를 다스려야 하나 삼감의 난 진압과 주나라 내부 정무에 힘써야 해서 대신 아들을 보낸 것이다.
  • 2대 고공(考公) 추(酋) 서기전 997년 ~ 서기전 994년 : 노공 백금의 아들.
  • 3대 양공(煬公) 희(熙) 서기전 993년 ~ 서기전 988년 : 노공 백금의 아들이며, 노 고공의 아우.
  • 4대 유공(幽公) 재(宰) 서기전 987년 ~ 서기전 974년 : 노 양공의 아들.
  • 5대 위공(魏公) 희(晞) 서기전 973 ~ 서기전 924년 : 노 양공의 아들이며 노 유공의 아우.
  • 6대 여공(厲公) 탁(擢) 서기전 923년 ~ 서기전 887년 : 노 위공의 아들
  • 7대 헌공(獻公) 구(具) 서기전 886년 ~ 서기전 855년 : 노 위공의 아들, 노 여공의 아우
  • 8대 진공(眞公) 비(濞) 서기전 854년 ~ 서기전 825년 : 노 헌공의 아들.
  • 9대 무공(武公) 오(敖) 서기전 824년 ~ 서기전 816년 : 노 헌공의 아들. 노 진공의 아우.
  • 10대 의공(懿公) 희(戲) 서기전 815년 ~ 서기전 807년 : 노 무공의 아들.
  • 11대 폐공(廢公) 백어(伯御) 서기전 806년~ 서기전 796년 : 노 무공의 손자.
  • 12대 효공(孝公) 칭(稱) 서기전 795년 ~ 서기전 769년 : 노 무공의 아들, 노 의공의 아우.
  • 13대 혜공(惠公) 불녈(弗涅) 서기전 768년 ~ 서기전 723년 : 노 효공의 아들.
  • 14대 은공(隱公) 식고(息姑) 서기전 722년 ~ 서기전 712년 : 노 혜공의 아들. 노은공 원년부터 춘추의 기록이 시작된다. 신하에게 시해당한 뒤 동생인 노 환공이 즉위함.
  • 15대 환공(桓公) 윤(允), 궤(軌) 서기전 711년 ~ 서기전 694년 : 노 혜공의 아들. 노 은공의 아우. 형이 죽은 뒤 노후가 됨. 제희공의 딸인 문강과 결혼하지만 그녀와 내연 관계였던 문강의 이복 오빠, 제양공에게 나중에 살해당함. 여담이지만 삼환은 바로 이 양반의 자손들이다.
  • 16대 장공(莊公) 동(同) 서기전 693년 ~ 서기전 662년 : 노 환공과 문강 사이에서 난 아들. 제나라에게 영토를 빼앗겼으나 조말의 도움으로 땅을 되찾았다.
  • 17대 노군반(魯君斑) 서기전 662년 : 노 장공의 아들. 숙부인 공자 경보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 18대 민공(閔公) 계(啓) 서기전 661년 ~ 서기전 660년 : 노 장공의 아들. 역시 공자 경보가 죽인다.
  • 19대 희공(僖公) 신(申) 서기전 659년 ~ 서기전 627년 : 노 장공의 아들. 노 민공의 아우.
  • 20대 문공(文公) 흥(興) 서기전 626 년~ 서기전 609년 : 노 희공의 아들.
  • 21대 선공(宣公) 뇌(餒) 서기전 608년 ~ 서기전 591년 : 노 문공의 아들.
  • 22대 성공(成公) 흑굉(黑肱) 서기전 590년 ~ 서기전 573년 : 노 선공의 아들.
  • 23대 양공(襄公) 오(午) 서기전 572년 ~ 서기전 542년 : 노 성공의 아들.
  • 24대 희야(姬野) 서기전 542 : 노 양공의 아들. 노나라의 군주가 된지 3개월 만에 사망한다.
  • 25대 소공(昭公) 조(稠) 서기전 541년 ~ 서기전 510년 : 노 양공의 아들. 계손씨가 정권을 장악한 것에 불만을 품고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국외로 망명한다.
  • 26대 정공(定公) 송(宋) 서기전 509년 ~ 서기전 495년 : 노 양공의 아들. 노 소공의 아우. 공자를 등용해 나라를 안정시켰으나 이후 제 경공의 미인계에 넘어가[9] 향락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게 된다. 노정공의 변심에 공자는 크게 실망하고 이는 나중에 그가 자신의 구상을 실현해 줄 군주를 찾아 천하를 주유하는 계기가 된다.
  • 27대 애공(哀公) 장(將) 서기전 494년 ~ 서기전 468년 : 노 정공의 아들. 춘추는 이때까지 기록된다.
  • 28대 도공(悼公) 영(寧) 서기전 467년 ~ 서기전 437년 : 노 애공의 아들.
  • 29대 원공(元公) 가(嘉) 서기전 436년 ~ 서기전 416년 : 노 도공의 아들.
  • 30대 목공(穆公) 현(顯) 서기전 415년 ~ 서기전 383년 : 노 원공의 아들.
  • 31대 공공(共公) 분(奮) 서기전 382년 ~ 서기전 353년 : 노 목공의 아들.
  • 32대 강공(康公) 둔(屯) 서기전 352년 ~ 서기전 344년 : 노 공공의 아들.
  • 33대 경공(景公) 언(匽) 서기전 343년 ~ 서기전 323년 : 노 강공의 아들.
  • 34대 평공(平公) 숙(叔) 서기전 322년 ~ 서기전 303년 : 노 경공의 아들.
  • 35대 민공(緡公)[10] 고(賈) 서기전 302년 ~ BC 280년 : 노 평공의 아들.
  • 36대 경공(頃公) 구(仇) 서기전 280년 ~ 서기전 256년 : 노나라의 마지막 군주이자 노 민공의 아들. 초나라 고열왕의 침략을 받아 멸망한다.[11]

1.1.5. 기타

  • 공자의 모국이다. 공자 말고도 묵자 등 많은 학자들을 배출한 나라로, 정치, 군사적으로는 별 거 없지만 사상, 이념 등 문화적으로 굉장히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히브리와 비슷하다. 사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예법을 정리했다고 알려진 주공 단에게 봉해진 나라[12]이기도 해서 상징성은 클 수 밖에 없다.
  • 다만 문화적인 융성함과는 별개로 나라가 안정적으로 오랜 기간 잘 다스려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예법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군(弑君)[13], 정변, 세도 가문의 권력 독점 등 풍파가 적지 않은 편이었다. 7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항상 아름다운 일만 있을 순 없겠지만 괴리가 느껴지는 것도 분명한 사실. 이상은 높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고나 할까. 이런 점 때문에 사마천도 〈노주공세가〉에서 노나라 역사를 서술하다 말미에 '겉으로 보이는 예는 (예전) 그대로였건만 벌어진 일들은 어찌 정반대였는가?'라며 깠다. 사실 공자도 그래서 생전 삼환을 몰아내려 애쓰기도 했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 실각하고 천하를 주유한다. 그래도 상기되어있듯 그 끝은 나름 호상이긴 했다.
  • 초한전쟁 당시, 항우가 죽은 직후 초나라의 잔여 세력이 모두 항복하던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항우에게 충성하겠다며 유방 한나라에게 저항했던 곳이 이 노나라 지역인 노현 일대였다. 유방은 본래 노현의 저항을 유혈 진압하려 했으나, 마지막에 마음이 약해졌는지 항우의 목을 보여주며 노현의 세력을 항복시킨 뒤, 항우를 노나라 제후란 뜻의 노공(魯公)으로 봉하고 예를 갖추어 장례를 지냈다.
  • 노호(魯縞)라는 얇은 비단 특산품이였다. 노호는 사자성어 강노지말에서 무거운 쇠뇌로 쏜 화살도 거리가 멀어지면 노호조차도 뚫지 못한다는 내용으로 언급된다.
  • 현대 중국에서는 성(省)별로 그 지역의 옛 나라 이름을 따서 자동차 번호판을 다는데, 산둥성의 자동차 번호판이 바로 노(魯)다. 정작 더 강국이자 이웃국이기도 했던 제(齊)는 무시된 것인데, 알고 보면 이해는 되는게 노나라와 달리 제나라는 허베이 성과 산둥 성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 대표하는 나라가 노나라가 된 것.

1.2. 수말당초의 왕조

수말당초 주요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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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량(李涼) 이오(李吳) 임초(林楚) 두하(竇夏)
이궤 이자통 임사홍 두건덕
왕정(王鄭) 이위(李魏) 후소량(後蕭梁) 정양(定楊)
왕세충 이밀 소선 유무주
설진(薛秦) 양양(梁梁) 고연(高燕)
,초대,
설거
,2대,
설인고
양사도 고개도
보송(輔宋) 우문허(宇文許) 주초(朱楚) 심양(沈梁)
보공석 우문화급 주찬 심법흥
한동왕(漢東王) 서노(徐魯) 당(唐)
유흑달 서원랑 ,초대,
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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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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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당교체기 서원랑이 세운 단기정권이다. 통칭 서로(徐魯).

2.

춘추시대 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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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 진(晉) 연(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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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에 적적(赤狄)족의 일파가 세웠으나 나중에 진(晉)나라에게 멸망당했다. 항목 1과 동음이의의 노나라이다.


[1] Baxter-Sagart의 재구에 의하면 상고음은 /*rˤaʔ/ 또는 /*r.ŋˤaʔ/. 현대 발음은 lǔ. 魯. [2] 사기에선 249년. [3] 단, 춘추전국시대 사람들은 세속적인 편이었다. [4] 공구, ' 논어', 김형찬 역, 홍익출판사, 2016, p19. [5] 특이한 점은 이웃한 제나라는 이와는 반대로 열국 중에서 손꼽힐 만큼 실리를 따졌다. 입장이 상반된 두 나라가 인접해 있었던 것. 노와 제의 이러한 성향차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주나라가 상나라를 쓰러뜨리고 천자국이 되자 큰 공을 세운 왕족, 대신들이 제각각 제후로 임명되어 봉지로 부임하게 된다. 강태공은 제를, 주 문공의 장남 백금은 섭정 직을 맡아 분주한 부친을 대신해 노를 다스리게 됐는데, 강태공은 고작 5개월 만에 대강의 업무를 마치고 봉국의 상황을 조정에 보고하러 온 데 반해 백금은 무려 3년 지나서야 겨우 입조한다. 한 사람은 너무 빠르고 한 사람은 너무 늦으니 상반된 결과에 놀란 주 문공이 그 까닭을 물으니 강태공은 현지 사정에 맞춰 예법을 간소화했기에 금방 일을 끝낼 수 있었다고 말하고, 백금은 아예 처음부터 풍속을 완전히 뜯어고쳐 (어머니 3년 상도 치르고) 예에 합치되게 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한다. 양국의 창설자들이 서로 이토록 사고가 달랐으니 이후에도 그러한 면들이 시정(施政)에 반영됐던 것. 여담이지만 주 문공은 두 사람의 대답을 듣곤 정치의 요체는 간단함에 있어서, 행하기 쉬워야지만 백성들이 모이고 따른다며 노는 장차 제에게 잡혀 지내겠다고 탄식했다 한다. [6] 노 희공이 할아버지 노 환공의 아들들, 즉 삼촌들을 중신으로 임명한 데서 비롯됐다. 맹손씨는 경보, 숙손씨는 숙아, 계손씨는 계우가 시조. [7] 삼환을 몰아내기 위해 군주가 직접 나섰다가 쫒겨난 사례도 있다. 공자가 아직 젊었을 무렵, 사소한 사건이 발단이 돼(자세한 내막은 노소공 항목 참조) 당시 노나라 임금이었던 소공이 측근인 후소백을 비롯해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이끌고 삼환 중 하나인 계손씨를 공격하였다. 그런데 계손씨가 밀리자 뒤에서 사태를 관망하던 숙손씨와 맹손씨가 공실이 강해질 것을 우려해 계손씨의 편을 들었고 결국 세 가문의 힘을 당해내지 못한 소공은 싸움에 패해 제나라로 달아난다. 이렇듯 삼환은 강성하기도 강성하거니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곧잘 단합하였기에 노나라 군주에게는 가히 골칫거리였는데, 결국 백 년 뒤인 노 원공 대에서 이르러서야 겨우 몰락한다. 참고로 공자도 생전 벼슬할 때 삼환 세력을 약화시키려다 역공을 당해 실각한 바 있다. [8] 본명이 전획, 시호는 혜. 유하는 그의 식읍 봉지이다. [9] 당연히 제 경공이 직접 미인계를 부린 건 아니고(...) 우호를 위한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자국의 미녀들을 노나라로 보냈다. [10] 달리 시호가 문공(文公)이라 먼저 있는 노 문공과 구별하기 위해 노후문공(魯後文公)이라고 한다. [11] 당시 노나라는 정말 말할 것도 없는 약소국이었지만, 초나라도 초회왕 초양왕의 실정으로 기울어가던 중이었음은 염두에 두자. [12] 물론 주나라 본국에 주둔했던 주공 단이라 본인의 장자에게 노나라를 관리하게 한다. [13] 특히 노 은공이 죽고 노 희공이 즉위하기까지 약 50년 동안의 기간은 동생을 죽이고 숙부가 조카를 죽이고 계모 의붓자식을 죽이는 등 매우 어지러웠다. 그나마 노 장공이 제나라의 침략이라는 위기 상황에서도 그럭저럭 나라를 잘 다스리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