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20:53:27

군종 신부

군종 사제에서 넘어옴

대한민국의 군종장교
<rowcolor=#000> 기독교1 가톨릭2 불교3 원불교
군종 목사 군종 신부 군종 승려 군종 교무
1: 한국군에서 기독교는 사실상 개신교만을 뜻함
2: 가톨릭 성직자는 남자만 해당.
3: 군종 불교는 조계종만 해당.

세계의 군종장교
<rowcolor=#000> 개신교 가톨릭 불교1 원불교 이슬람교2
군종 목사 군종 신부 군종 승려 군종 교무 군종 이맘
1: 중국은 전투승만 해당.
2: 한국군에는 없음
문서가 있는 경우에만 서술

1. 개요2. 한국에서의 유래3. 대한민국 국군의 군종 신부
3.1. 신학생 시절 병역 의무 이행3.2. 군종 신부로 임관
3.2.1. 선발 과정에서의 사상 검증3.2.2. 재입대
3.2.2.1. 기초군사훈련3.2.2.2. 임관3.2.2.3. 병들과의 관계3.2.2.4. 복무기간3.2.2.5. 광활한 사목 지역3.2.2.6. 경제적 어려움3.2.2.7. 기타 이야깃거리
4. 전시5. 관련 교회법6. 기타7. 유명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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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군부대 내에 예속이 되어 군종장교로 근무하는 가톨릭 신부. 말 그대로, 군대에서 복무하는 가톨릭 신부를 말한다.

대한민국 국군 천주교 군종교구 소속이다.

천주교 군종교구 홈페이지
파일:천주교 군종교구 세례성사.jpg
세례성사를 거행하는 서상범 티토 주교

2. 한국에서의 유래

한국에서 군종 신부의 시작은 1940년 사제서품을 받고 1950년 6.25 전쟁에 파견되어 포탄과 총탄을 뚫고 가서 시신들과 그 사이의 죽어가던 한국군과 유엔군의 임종을 지키며 포탄들 소리에 패닉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하는 병사들을 돌봐주던 미합중국 육군 군종장교 에밀 카폰 신부의 헌신이 군의 사기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보고 카투사에서 이승만 대통령에게 편지를 작성하여 이에 감명받아 정식으로 창설되었다.

카폰 신부는 중공군의 엄청난 공세에 퇴각명령이 내려지자 "남은 부상병들을 뒤로하고 나만 도망칠 수 없다"며 사실상 혼자 남아서 돌보기로 하며, 미 육군은 카폰 신부를 전투 중 행방불명 처리한다.

이후 부상병들과 남겨진 카폰 신부는 한반도에 찾아온 상상도 못할 엄청난 추위로 인해 부상병들에게 자신의 옷을 벗어 덮어주고 피로 젖은 옷들을 빨아주고 간호하며 사망자 발생시 종부성사를 집전한 뒤 얼어붙은 땅을 힘겹게 파서 무덤을 만들고 장례를 치렀으며 중공군이든 북한군이든 한국군이든 유엔군이든 구분없이 치료하여 어디에서든 명망이 높았으나 영하 40도의 상상도 못할 온도에서 옷까지 벗은 탓인지 쇠약해지고 세균에 감염돼 눈과 다리에 병이 들고 폐렴까지 걸렸으나 죽기 직전까지 고해성사를 집전하다 1951년 낡은 오두막인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하고 만다. 이후 그에게 목숨을 구원받은 수많은 증언을 통해 행적이 알려지고 1993년 교황청은 그를 하느님의 종으로 선포하였으며 2013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의해 명예 훈장을 받고 유해가 확인된 2021년 교황청은 그를 성인으로 시성할지를 논의하고 있다. 유해가 확인됨으로써 시성될 확률이 높아졌으므로, 신자 중 그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이 기뻐하고 있다.

3. 대한민국 국군의 군종 신부

2017년 기준 100명. 성당의 수는 282개, 교구 차원의 지원금은 약 30억 원 규모. 모두 천주교 군종교구(교구장: 서상범 티토 주교) 소속이다. 군종 법사들과 마찬가지로 '군신'이라고 줄여 부르지 않는다.
  • 군종 신부 100명 시대 (2017)
국방부와 천주교 군종교구의 2017년 천주교 군종 신부 충원 계획에 따르면 충원 인력은 육군 13명, 해군 4명, 공군 3명 등 총 20명이다. 군종 신부는 2016년 해군에 3명이 증원된 데 이어 2017년에 공군에 1명이 증원되면서 전체 정원이 100명 시대를 맞았다.

이로써 한국 전쟁 중이던 1951년 2월 28일 육군 군종요원 1기로 조인원 신부 등 11명의 신부가 입대한 이후 66년 만에 군종 신부 숫자 3자리 수 시대를 맞게 되었다.

대한민국 국군의 대장과 중장 직위를 합쳐야 40여명 남짓이고, 소장 직위까지 합하면 100명 이상으로 늘어난다. 군종 신부가 계급은 대위가 대부분이지만, 인원수로만 따지면 장성급 장교보다 희소한 존재이다.

군종 신부들은 신부에게 특혜가 주어져서는 안 되고[1] 병사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무 하에 한군두를 경험한 사람이며(즉, 일반 병사로 전역 후 재입대), 미사에 참여한 군인들에게 약식으로라도 세례를 준다. 세례는 꽤 오랜 기간을 갖고 종교 활동을 해야 받을 수 있음에도 하루이틀 만에 세례를 빠르게 주는 것. 약식으로라도 세례를 주는 이유는 간단하고도 가혹한데, 군인들은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세례를 주어 신의 뜻에 따라 천국이나 적어도 연옥으로까지는 인도해주려는 역할을 하는 것.

3.1. 신학생 시절 병역 의무 이행

군종 승려, 군종 목사와 이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현역으로 군대를 제대한 예비역 사제들만 군종 신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승려/목사의 경우 이미 병역을 마친 승려/목사에게 교단 측이 군종 장교로 복무해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있으나, 원칙적으로는 의무는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원 형태이다.

현행 병역법이나 가톨릭 교리상 이런 재입대를 굳이 해야 할 필요성은 없다. 사제품을 받기까지 신학교에서 보내는 기간은 입영을 연기할 수 있는 사유인 대학교 및 대학원 과정에 해당하며, 먼저 군종 신부를 희망하는 신학생들을 추려낸 후 사제품을 받기까지 입대를 연기하고, 사제가 된 후 군종장교로 입대를 하면 된다. 비슷한 유형으로 의과대학에서 군의관을 희망하는 의대생들을 선발하여서 입대를 연기하고 공식적으로 의사가 된 뒤에 군의관으로 입대하는 형태가 있다. 실제로 1984년까지 "군종 후보생"이라는 병역제도가 있었지만 폐지했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생전에 이러한 병역제도에 대해서 성직자들에게 특권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했다.[2]
"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병역의 의무에서, 신학생들이 사관후보생과 같은 특별한 제도로 입대할 수 있는 특혜가 있어서는 안 된다."[3]

그래서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신학생 때 군 복무를 마칠 것을 요구한다. 즉, 순명과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성직의 길에 이런 제도상의 편의는 사치일 뿐이라고 고행을 자처하는 셈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신학생들은 신학대학 재학 도중 군에 입대하게 되고, 여러 가지 사유로 면제를 받았거나 신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군대를 갔다 온 경우에는 같은 기간 동안 각종 시설에서의 봉사활동으로 대신한다.[4] 다만 보충역이나 사회복무요원도 엄연히 대체복무를 이행한 군필이라 시설 봉사활동 의무와는 아무 상관 없다. 오직 전시근로역 병역면제의 경우에만 봉사활동의 의무가 있다.[5] 대신에 예비군훈련은 사제양성과정을 정상적으로 마쳤다면 칼같이 다른 학과 학생들과 같이 학생예비군 4년 꽉 채우고 5년차로 들어간다.
" 완전군장이 무거워봐야 예수님의 십자가보다 더 무겁겠습니까?"
"군대에서 미사 본다고 고참들한테 욕 먹어 봐야, 예수님이 먹었던 욕보다 더 많이 먹겠습니까!?"
KBS 스페셜 <영원과 하루 - 150년만의 공개, 가톨릭 신학교> 22분 18초. 김성수 마르코 신부(2014년 수품, 서울대교구). #

이렇게 입대한 신학생들은 대부분 군종병 이외의 다른 보직에서 군 생활을 하게 된다. 현역 대상자인 신학생 숫자는 전체 TO에 비하면 턱도 없이 적어서 TO를 신학생만으로 채우기 힘들고, 굳이 군종병 말고도 다른 군생활을 하고 싶어하는 신학생도 많다.

게다가 신학생이나 사제나 서로를 꺼린다. 신학생 출신 군종병에게 군종 신부는 단순한 군 상관이 아니라 대학 선배 및 예비 상사에 해당하므로 대하기 껄끄럽고, 차후 성직자를 준비하는 신분이다 보니 평신도 출신에 비해 압박과 갈굼이 세다. 평신도 출신 군종병이라면 용인될 수 있는 실수라도 신학생 출신 군종병에게는 용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군종 신부들은 대부분 병 생활을 해봐서 병들이 요령 피우는 방법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타 종파 군종병들처럼 설렁설렁 일하기도 곤란하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는 어느 정도 사정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고, 군종병이었던 신학생이 사제품 받을 때 그때 당시 자신이 보필하던 군종 신부였던 신부님이 찾아와서 선물을 주었다는 얘기가 있는 걸 보면 이쪽도 많이 개선되어 가고 있는 상태다.

반대로 일부 군종 신부들도 신학생들을 군종병으로 쓰기 꺼리는 경우가 있다. 신학생들에게 신부 본인이 모범이어야 하는데, 아무리 사제품을 받은 신부라고 할지라도 인간인지라 혹시라도 올바른 모습을 보이지 못해, 신학생의 신앙심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물론 군종 신부의 성격에 따라 오히려 신학생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군종병은 대부분 평신도들이 하게 된다. 물론 이 평신도들은 어렸을 때 복사로 활동하는 등 정말 열심히 본당에서 활동하고 성당 사정에 어느 정도 정통한 편이다.[6] 해군의 경우 군종병 등 육상 행정지원병은 6개월 이상 함정 및 격오지에서 근무한 갑판병에서 선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므로 종파 관계없이 한 번 이상 근무지를 옮긴 수병들이다. 예외가 있다면 육군훈련소 조교들로, 여기에서 복무하는 신학생들은 100% 군종병으로 활동한다. 육군훈련소 김대건 성당의 군종병 모임인 대건회 구성원들은 전부 육군훈련소 조교로 복무한다. 그 빡센 훈련 다 하고 그나마 쉴 수 있는 일요일에 새벽에 와서 같이 미사 준비한다. 그나마도 조금 군 생활이 풀리는 일병 말이나 상병에 와서야 가능하다.

3.2. 군종 신부로 임관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각 교구의 총 신부 숫자의 10%를 군종교구로 파견한다.'라고 결의했기 때문에 모든 교구가 군종 신부를 파견하게 된다. 병 대체복무인 군종 목사, 군종 법사와 다르게 한군두라서 지원율이 저조하다. 어떤 신부는 본당신부(주임신부라고도 함)가 되어 재량껏 사목하기 위해[7] 지망하는 경우도 있고, 신부 개인의 꿈과 희망에 따라 군종 신부로 자원입대가 가능해서 자의로 지망해서 꿈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각 신부 동기들이 제비뽑기를 해서 걸리는 사람이 오는 경우도 있고, 생년월일이나 사제품을 받은 순서로 따져서 막내급 사제들이 기쁘게 혹은 울면서 재입대를 해서 오는 경우도 있다. 사실상 각 교구에서 인원을 정해서 군종교구 측에 올려 보내면 군종교구장이 국방부에 제출하는 형식이다. 즉, 장교인데 징모혼합이라는 괴이한 형태의 충원 방식이다.

심지어 전역하고 본래 있던 교구로 복귀하려고 했는데 자리가 없으니 1년 더 하고 오라고 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연장 복무신청을 하게 되기도 한다. 물론, 군 체질이 적성에 맞으면 장기지원을 해서 20여년 이상 말뚝박고 전역하는 신부도 있다. 어쨌든 군대를 두 번 가야 하며, 딱히 군종 신부가 일반 신부보다 더 봉급을 많이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8], 만일 목사, 법사와 같이 자유의사에 따라 군종 신부를 오게 한다면 그 날로 군종 신부는 오는 사람이 없어서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그나마 대위라는 매우 희귀한 계급장이 군복무에 대한 큰 보상에 해당된다. 바깥 세상의 군인이 이 계급이면 무려 본부중대를 제외한 중대장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낙점된 신부들은 이 결정은 하느님의 뜻으로 인정하고 "나는 군대를 가는 것이 아니라, 군대에 있는 어린 양들을 돌보러 간다" 라고 생각하고 재입대를 한다. 그리고 군대를 재입대한다는 거부감과 군사훈련을 다시 받아야 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다른 신부들에 비해 대우가 크게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대한민국 국군 한국 천주교에다 종교 관련 행정처리를 위임한 상태이기 때문에 원교구에서의 사목활동비는 안 나오지만 그래도 중위, 혹은 대위 3호봉으로 받는 급여가 민간교구에서 주는 사목활동비에 비해 넘사벽인 것도 있고 군대를 2번 간다거나 훈련을 또 받는다는 점도 종교적 신념으로 생각하면 일종의 고행 과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천주교 교리의 관념으로 보면, 천주교 사제들의 사목 업무는 "더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피한다" 같은 개념 자체가 없다. 실제로 포장이 아니라 사실이다. 군종 사목 자체가 어떻게 보면 군대에서 미종교인 병사들에게 천주교를 전파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선교 사목으로 볼 수 있기도 하다. 또한, 천주교 사제들의 4대 덕목 중 하나인 '순명의 서약' 이 적용된 사례다. 2022년을 기준으로 현재 군종교구장인 서상범 티토 주교는 군종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총 4번의 군생활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처음부터 군종 신부가 하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지원하는 신부도 있다.

이는 군대에서 그렇게 병사 시절부터 고초를 겪고도 재입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심지어 어떤 신부는 "나는 어릴 때부터 군인도 신부도 꿈꿔왔기 때문에, 정말로 꿈꿔왔던 군종 신부가 정말로 하고 싶었다. 주임신부님 주교님 제발 나 좀 군종 신부로 꼭 좀 보내 달라"주임신부와 소속 교구 및 주교 등에 찾아가서 군종 신부로 보내달라고 강하게 요청을 해서, 주교가 그럼 신부가 원하는대로 군종 신부로 꼭 보내 주겠다고 약속해 그토록 정말로 하고 싶었던 군종 신부로 임관을 해서 원하던 군종 신부의 꿈을 이루었고,[9] 우수한 성적으로 임관했다고 한다.[10] 반드시 군종 신부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주교가 임관 당일에 해당 군종 신부의 꿈을 이룬 신부를 찾아와서 해당 군종 신부에게 선물을 줬다고 하는 사례도 있다. 이는 군종 신부가 평소부터 장병들 신앙생활 여건 보장과 인성함양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는데다, 무엇보다도 전시 군종 신부의 임무는 고해성사, 병자성사의 존재로 인해 가장 중요하면서도 매우 성스럽기 때문이다.

3.2.1. 선발 과정에서의 사상 검증

국방부가 2013년 1월 군종장교 선발 과정에서 제주 해군기지, 연평도 포격전 등에 대한 생각을 물어본 뒤 아래와 같은 반응을 보인 신부 3명을 탈락시켰다.

탈락한 3명에 대한 질문과 답변은 다음과 같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하느님의 뜻일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해군기지는 내용보다 이행 과정이 잘못됐다. 잘못된 과정으로 사람들이 아파하는데, 그것이 과연 하느님의 뜻이겠는가”
“북한이 도발한 연평도 포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분단국가의 60년 응어리가 곪아터진 것이다. 사제 입장에서 어느 한편에 치우친 대답을 하기 어렵다”

당시 면접에는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4명의 군종장교와 3명의 육·해·공군 정훈 영관장교가 면접관으로 참여했으며. 국방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군종장교 4명은 이들에 대해 ‘합격’ 의견을 냈으나, 정훈장교 3명 중 일부가 ‘탈락’ 의견을 냈다고 한다.

국방부의 한 면접관은 “지난해 김관진[11] 국방장관이 ‘장교들의 국가관을 확실히 검증하라’고 지시했고, 그에 따라 이번에 군종장교를 뽑는 데서도 그런 기준을 좀 더 엄격하게 적용했다”고 밝혔다.

현재 복무 중인 한 군종 신부에 따르면 “과거 면접에선 이렇게 사상을 검증하는 듯한 질문이 없었다. 아마도 지난 정부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이 제주도 해군기지 사업에 반대[12]한 일이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한 관계자도 “(과거에) 군종 신부 지원자가 탈락하는 것은 신체검사에서 전염병이 발견된 경우 정도였다. 군종 신부는 군 복무를 이미 마친 사람이고, 교구에서 추천하기 때문에 면접에서 탈락하는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고 말했다.

군종신부 선발 ‘사상검증’…지원자 3명 첫 탈락

3.2.2. 재입대

파일:external/www.catholictimes.org/P2780_2012_0617_0902.jpg
훈련받는 신부들
3.2.2.1. 기초군사훈련
신학생 시절 병역 의무를 마친 신부들이 군종 신부가 되기 위해 재입대하면 거의 예비군이 끝나고 민방위에 들어가는 시점이다. 군생활과 봉사활동을 마치고 신학교에 돌아오면 예비군 1~2년차고 교육과정이 7년인 것을 생각해보면, 이들이 신부가 되어 초임지로 발령이 날때는 예비군 5~6년차다. 그리고 바로 군종 신부로 오는 것이 아니라, 약 3~4년 정도 각 교구의 보좌 신부로 있다가 오기 때문에 대부분 군종 신부로 오는 사람은 예비군, 민방위 경험자들이다.

이렇듯 다들 현역병 생활과 예비군까지 모조리 마친데다 나이도 많다보니 군종 신부 교육생이 육군학생군사학교 사관후보생 교육을 받으러 입영하면 이미 말년병장 포스를 넘어선 말년차 향토 예비군 포스, 더 심하면 민방위대원 포스가 줄줄 뿜어져 나온다. 그래서 교육 조교들이 애를 먹는다. 기지 내에서 군종 신부 교육생들끼리 이동할 때는 간부들에게 절대 경례하는 법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생활은 이렇게 막장으로 해도 기초군사훈련의 점수는 항상 최상위권이라 교육 조교들이 뭐라 꼬투리를 잡을 게 없다고 한다. 예를 들면, 각개전투를 할 때도 군종 신부들은 이전에 다 해봤기 때문에 "아! 오랜만에 재밌는 거 또 하는구나!! 아싸!! 예전 현역 때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겠어!!"라고 아주 재미있게 훈련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군종장교 임관식 때 거의 군종 신부들이 1등을 하고 나머지 군종 신부들이 1~20위 안에 들어가는 예가 적지 않다. 그게 가능한 또 다른 이유는 신부 등 성직자가 될 사람들은 거의 군종병으로 복무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신부들이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신학생들은 군종병으로 잘 안 받아준다고 한다.[13] 그래서 신학생들은 대부분 다른 주특기, 대부분 최전방 특기[14]로 복무하여, 다른 병사들과 똑같은 훈련을 받기에 그러한 실력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나이에 따른 저질스런 체력만은 어쩔 수가 없는데다 어차피 전투 보직도 아니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도 훈련의 강도를 너무 빡세게 하지는 않는 편이다. 이는 군법무관, 군의관 등 다른 특수사관도 마찬가지지만 군종 신부는 그 중에서도 평균 연령이 높은 편[15]이어서 학생군사학교 간부나 조교들도 일반 사관후보생들과 달리 군종관 과정으로 온 이들은 일단 군인 이전에 성직자란 신분 탓에 비교적 정중하게 대하는 편이다.
3.2.2.2. 임관
군의관, 법무관과 마찬가지로 임관 시 육해공군 선택권 없이 무작위 배치되며, 계급은 사제 경력 3년 이상은 대위, 그 미만은 중위이다. 그러나 그 동안의 짬밥과 호봉을 인정받기 때문에 거의 99% 대위로 임관한다. 정확히는 2년 간의 군생활을 호봉으로 인정받으며, 또한 사목 생활과 학력을 추가로 합산하여 대위로 임관한다. 사제들이 신학교에서 최소 석사 과정을 밟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병장 만기전역한 경우에도 중위로 임관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가끔 있다.

물론 병장 제대 안 한 매우 희귀한 사례[16]라면 중위로 시작한다. 해군 군종관은 임관 후 해군교육사령부 충무공리더십센터에서 해군화 교육을 받고 근무지를 받는다.

군종 신부가 되면 대부분 전방 사단이나 함대, 비행단으로 전입된다. 여기서 2년을 있다가 후방이나 상급 부대로 전출하여 군생활을 마감하거나 본인 희망에 따라서 장기복무나 연장복무가 되어 중요 부대로 전출 가는 사례도 있다.

병으로 입대했을 때나, 군종 신부로 입대했을 때나 부대 배치는 랜덤이다. 특전사를 갔다 온 뒤 다시 UDT/SEAL 군종실에 배치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신학교에 들어오기 이전에 특전사로 군대를 갔다 와서 '공수부대 다녀왔으니 설마 또 보내겠어' 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3.2.2.3. 병들과의 관계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장교로 임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군종 신부들에게는 최악의 단점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최고의 장점이 되기도 한다.

일단 기초군사훈련을 다시 받으면서 적응하지 못하는 일은 사실상 없고 병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임관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다른 군종장교보다 병사의 생활을 더 잘 이해하고 병들의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유격을 마치고 복귀행군을 하는 날 다른 군종장교들은 위문품을 들고 와서 좋은 이야기와 기도를 해주고 바로 복귀하는 반면에 군종 신부는 직접 군장을 메고 병사들과 같이 행군하며 동기를 부여한 사례가 많다. 유능한 군인들도 어지간하면 피한다는 공수훈련을 모두 이수한 군종 신부인 이건승 공군 대위의 사례도 보도되었다.

임관 이전의 행보 덕분에 다른 군종장교보다 병사들의 지지도가 더 크다. 병사 시절에 복무한 군과 군종 신부로 임관한 후의 군이 일치하면 지지도는 배가 된다. 해병대 성당에서 해군 군종 신부가 "저도 해병으로 복무해서 아는데..."라고 말하는 것으로도 호응이 크지만 "제가 해병 ○○○기 출신인데 여기 계시는 후배 전우 여러분들은..."이라고 강론을 시작하면 호응도가 더 크게 올라간다.
3.2.2.4. 복무기간
이들 중 약 20% 가량 소수는 원해서 군종 신부로 임관후 장기지원을 해서 중요부대로 전출해서, 군종관이 달 수 있는 최종 계급인 대령으로 전역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80%는 자의로 복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원소속 교구로 복귀하고 싶어하고, 따라서 군종 목사들처럼 박터지는 진급경쟁도 없다. 사실 가톨릭 군종 신부가 대령을 달기는 굉장히 어렵다. 군종장교 자체가 타 병과에 비해 대령 보직이 매우 적다. 특히 해군 공군에서는 대령 보직이 군종장교의 최종보스 격인 군종감 하나뿐이다. 2024년 기준 육군 해군 군종병과장 및 군종실장을 신부가, 공군 군종병과장 및 군종실장은 법사가 맡고 있는 것에서 보듯, 개신교 위주였던 옛날보다는 개선되었지만, 수 자체가 많다보니 거의 대부분 군종 목사가 차지한다. 2010-2020년대 기준으로 군종병과장은 천-기-불 혹은 대부분 기-천-기-불 순서로 돌아가므로 군종 목사가 군종병과장을 맡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개신교 불교의 군종 장교가 3년 이내에 조기 전역하면 남은 기간을 병으로 다시 갔다 와야 하지만, 신부들은 이미 다들 군필자이므로 또 다시 군대 갈 필요가 없다. 전역을 해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생활을 걱정해야 하는 군종 법사와 달리, 군종 신부는 전역하는 순간 본 교구로 원상복귀하여 다른 보직을 맡을 수 있다. 이는 군종 교무도 군종 신부랑 비슷하다. 군종 목사는 군목 경력을 우대받는다.

또한 인사 체계도 다른 군종장교처럼 각군본부 인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군종 신부는 각 교구에서 일단 파견한 후 각군 인사에서 승인하는 식으로 인사가 이루어진다. 모든 성직자의 인사이동은 교황청을 대리하여 해당 성직자의 소속 교구장의 권한으로 시행하기 때문이다.[17]

따라서 군종 신부들은 군종장교들 중에서 가장 눈치를 보지 않는다.[18] 일반 장교들이 다른 하위 장교들과 같이 똑같이 굴리려고 했다가 신부들의 포스와 지략에 바로 버로우 타거나 진급까지 막히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므로, 일반 장교들도 군종 신부들에 대해서는 터치하지 않는 것이 대세다. 게다가 평신도와 사제 간 위계가 엄격한 천주교 특성상 일개 평신도인 지휘관이 사제서품을 받은 군종 신부에게 군대계급빨로 함부로 갑질했다간 교회법에 의해 처벌( 파문, 조당 등)받아[19] 지휘관 자신의 앞날 신앙생활이 쫑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군종장교 역시 군인이므로 군법을 어기면 다른 군인과 같이 처벌받긴 하지만, 군종 신부는 좀 특이한 존재기 때문에 간부들이 대우를 매우 잘 해준다.

한동안, 군종 신부들은 다른 종파와 달리 3년의 의무복무 외 1년의 연장복무 후에 전역했다. 원래 의무복무는 3년이나, 군종 신부는 2년 주기로 인사이동을 한다. 의무복무만 채운다면 2번째 임지에서 1년만에 전역해버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년을 더 하는 것이다. 장기복무자도 있지만 그 문이 좁기에 많지는 않으며, 진급할수록 그 자리는 엄청나게 적어진다. 일단 평균적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능력이 출중해서인지 육군과 공군 군종병과장을 군종 신부가 맡는 일이 잦다.[20] 20년 이상의 장기복무를 한 신부들은 교구에 복귀를 해서도 그 경력을 인정받아 요직에 기용된다.

최근에는 1년의 연장복무가 사라지게 되었다. 이유는 개신교와 불교에서 불공평하다고 컴플레인을 넣었기 때문이다. 상술했지만 천주교를 제외한 다른 군종 장교들은 장기복무를 하는 것에 목을 매는 상황이고, 천주교에서 관례상으로 1년을 의무 복무처럼 연장해버리니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특혜를 받는다고 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1년 연장이 어디까지나 2년을 맞추기 위한 편의를 위해서다. 하지만, 이같은 처사에 많은 군종 사제들과 군종에 뽑힐 예정인 사제들이 오히려 빨리 전역할 수 있다면서 좋아하고 있다.[21] 군 복무기간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365일이나 줄어들었으니, 군종 사제직에 특별히 애착을 갖지 않는 이상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다들 군대를 갔다온 사람들이니 오랫동안 붙어있는 것도 싫어하는 경우도 많다.
3.2.2.5. 광활한 사목 지역
군종 신부의 업무는 고달픈 편이다. 일단, 군종장교의 TO나 적임자의 숫자 모두 적기 때문에 주말이면 매우 고생한다. 육군의 경우 개신교는 대대급, 불교에는 연대급까지 군종장교가 있지만 군종 신부는 사단 이상에만 존재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종교행사 군종 목사 군종 법사는 민간에서 들어온 전도사와 포교사에게 일임시킬 수도 있지만,[22] 천주교는 사제품을 받은 사제만이 성체성사( 미사)를 포함한 일곱 성사를 집전할 수 있다. 부제 수도자, 아니면 평신도 선교사나 군종병이 공소예절이라는 의식을 할 수는 있지만, 이것은 미사와 같은 종교행사의 레벨이 될 수 없다. 그저 어쩔 수 없이 성당에 갈 수 없는 경우에 치르는 종교의식이다. 가톨릭 남자만 사제가 될 수 있으므로[23] 남자의 출입을 금지하는 봉쇄 수녀원에도 성사를 집전하기 위해서는 사제가 와야 한다.

그러므로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이들은 각 예하 부대의 공소 본당을 전전하며 미사를 집전한다.[24] 전방의 어떤 부대에서는 많을 때는 10개 이상의 부대에서 미사를 집전하며 200km 정도의 이동거리를 뽐내기도 한다. 또한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성당은 충청남도 서산시에 있지만 관할 부대 중 하나가 전라북도 군산시에 위치한 제38비행전대이기 때문에 매주 100km가 넘는 거리를 왕복해야 한다.

이보다 더한 경우는 공군의 각 방공유도탄여단 군종 신부들과 국군방첩사령부, 국군의무사령부 군종 신부이다. 이들의 관할구역은 전국이다.[25] 물론 종교행사의 경우에는 가까운 부대나, 그마저도 어려울 경우에는 민간 성당에 위임하는 경우가 많지만, 행정적으로는 산골짜기에 있는 부대의 일도 이들이 처리해야 할 때가 많다.

해군에서는, 군종관이 배치되지 않는 부대 중 격오지의 경우는 인근 민간 종교시설에 위탁해 종교활동을 진행하므로, 상대적으로 일이 수월한 편이다. 공군의 방공포대 역시도 비슷하다.
3.2.2.6. 경제적 어려움
또한 재정상황도 영 좋지 않은 편. 대부분 병 만기전역 후 대위로 임관하기 때문에 대개 대위 3호봉 기본급에서 출발하는데, 이 월급은 성직자의 소득에 비하면 넘사벽급으로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부족하다. 가족 부양과 관련된 수당이나 복지 혜택이 없고, 병들의 간식비나 성당 유지비로 상당량이 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례식을 위해 교리수업을 할 때 장병들이 많이 오면 초코파이가 모자랄까봐 걱정, 장병들이 적게 오면 남을까봐 걱정인 상황이라 한다.

게다가 천주교 군종교구에서는 품위 유지비가 나오지 않는다. 원 교구에서도 모든 인사를 군종교구에 위임한 상태이기 때문에 군종교구에 파견가 있는 동안에는 원 교구에서 나오는 사목 활동비는 절대 나오지 않으며, 결정적으로 천주교 군종교구는 다른 교구에서 지원을 받지 않고, 담당 신부가 군종 파견 되기 전 보좌신부 사목했었던 본당이나 서품 동기 신부가 주임신부 또는 보좌신부로 사목 중인 일반 민간 본당들을 1년에 한 번 돌면서 받는 후원금으로만 운영되기 때문에[26] 군종 신부에게 줄 돈이 없다. 다만, 군 성당 자체 재정으로 달마다 성무활동비 명목으로 25만 원씩을 지급하지만, 누구 코에 갖다 붙이라고 수준의 푼돈이라 별 도움은 안 된다. 심지어 원소속 교구 관할 내에서 군 사목 중이라면 후원금 받으러 다니기엔 힘들지 않겠지만 만약 원소속 교구 관할 지역에서 한참 떨어진 타 교구 지역에서 군 사목 중이라면 이것 또한 차로 장거리를 이동할 때 드는 기름값 등 큰 불편함이 있다.

다른 교구나 군종후원회에서도 군종교구에 지원을 하지만, 각 개별 성당이나 한 신부에게 주는 유지비는 없다. 그야말로 군 월급만으로 생활한다. 심지어는 군종 신부 개인이 대출을 해서 때우는 막장스러운 상황도 있다고 한다. 전역할 때 받는 퇴직금도 건물을 짓거나 더 많은 간식을 사주는 데 기부하는 사례가 많다. 관련기사

물론 장기복무 후 계급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대우가 좋아지므로 다른 동기 신부들에 비하면 풍족하게 잘 사는 편이지만, 그래도 전역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하는 신부들도 많다. 의무복무 대위까지는 중급 인력 대우, 장기복무 대위부터 고급인력으로 대우해 준다.

군인 및 군 가족 신자가 많은 곳은 재정 상태가 훨씬 양호한 편이다. 아무래도 이들은 헌금과 교무금을 열심히 내는 계층이고, 장교의 경우 특히 월급이 계급별로 비교적 일정하기 때문에 교무금 책정이 일반 본당보다 용이한 편이다. 일반 교구는 삼십일조를 기준으로 교무금을 책정할 것을 권고하는 수준이지만, 군성당의 경우 계급을 서로 알기 때문에 얄짤없다. 그렇기 때문에 장교, 부사관 비율이 높은 해공군 군종성당이 사정이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군종 신부는 육군 출신이다.
3.2.2.7. 기타 이야깃거리
  • 군종 신부가 착용하는 복장은 성직 칼라와 같이 착용하는 경우가 있다. 전투복일 경우는 성직 칼라 위에 입고 정복이나 근무복인 경우 규정대로 입거나 셔츠와 넥타이만 수단으로 대체한다. 야전상의를 착용한 경우 전투복을 입지 않고 로만 칼라만 입고 야전상의 단추를 하나 풀기도 한다. 애초 성직 칼라로 된 해군 하정복은 그냥 그대로 입는다. 주로 각군본부 군종실 같은 상급 부대보단 일선부대 근무자들의 혼착률이 높다. 일단 군종교구에선 군종 신부들은 이 부분에서만큼은 예외를 인정하므로 미사 등이 아닌 경우에 로만 칼라를 착용 안 하고 다녀도 아무도 뭐라 안 한다. 일반 교구의 신부들도 미사나 공식 석상이 아니면 사제복을 안 입고 다니기도 하며, 이런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애초에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15조조차 공적 회합이나 공식 행사 외의 때에 성직자 복장을 입어야 하는지 여부를 규정하지는 않으며, 그간 신부들이 성직자 복장을 상시 입은 것은 암묵적인 분위기에 의한 것이었을 뿐이다.
  • 부임한 부대가 육군특수전사령부 또는 특공여단이거나 군종관으로 파병을 다녀온 군종 신부들은 훈련에 모두 참여하기 때문에 공수강하 휘장은 기본이다. 강하 횟수가 많아서 휘장에 별이 붙기도 한다. 병사들 사이에서는 '특공 신부'로 통한다. 약장 수도 어지간한 전투병과 장교들 수준으로 보유한 케이스도 왕왕 있다. 국군에 오래 근무하여 영관급 장교가 된 신부들이 거의 그렇다.
  • 육군훈련소에서 장병들에게 세례성사를 줄 때 세례명을 알아서 지을 수 있도록 성인의 이름을 대략 40개 정도 PPT에 띄워서 알아서 정하게 한다. 다만 훈련소에서 세례를 받는 병사들은 대부분 먹을 것에 눈이 멀어서 온 경우이고 신앙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없다. 그러니 군종 신부들도 그리 강하게 굴지 않는 편이다. 아예 앞으로 신앙 생활을 하지 않을 병사는 세례받지 말고 선물만 받으라고 하기도 한다.

4. 전시

교회법 1003조 2항에서는 사제의 의무로 병자성사를 집전해 줄 것을 두고 있다. 즉, 심각한 부상자가 발생하면 거기가 포탄이 쏟아지는 참호든 지뢰와 불발탄이 널려있는 무인지대든 간에 가서 병자성사를 주어야 한다. 실제 유명한 사례로, 제101공수사단의 카랑탕 전투 때 사단 군종실장 존 말로니 신부(육군 중령)가 시가전 중인 도로 한가운데에서 종부성사[27]를 집전해 준 것으로 무공 훈장인 은성 훈장을 받았다.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도 잠깐 나온다. 이 분은 기적적으로 부상도 안 당했다. 정작 그 광경을 보는 101사단 장병들은 전장 한복판을 성큼성큼 걸으면서 종부성사를 주는 말로니 신부를 보면서 미쳤다고 혀를 내두른다. 말로니 신부는 동 드라마 6화 바스토뉴 공방전에서도 전방에 직접 지프차 끌고 와 장병들에게 미사 집전 및 축복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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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인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초반 상륙 장면에서도 기관총과 포탄이 빗발치는 오마하 해변에서 죽어가는 미군들 옆에서 종부성사를 주고 있는 군종 신부의 모습이 나온다. 돈 까밀로 신부도 1차 세계대전 때 총탄이 빗발치는 전선 한가운데서 쓰러진 아군 병사에게 종부성사를 주다가 머리에 총을 맞았다.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는 사진과 같이 방탄모에 군종관임을 표시하는 등 최대한 공격을 덜 받을 수 있게 부착물 등을 추가하거나 하는 배려를 해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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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많은 신부들은 장병들한테 성사가 필요하다면 그곳이 총포탄이 빗발치는 헬게이트라도 달려가야 했다. 사진은 퓰리처 상 수상작품으로 1963년 베네수엘라 내전 당시 사진기자 핵터 론돈(Hector Rondon)이 촬영했다. 사진 속의 Luis Padillo 신부는 내전을 무사히 넘겼다고 한다. 사진 기자에 따르면 당시 여러 신부들이 총격전이 벌어지는 시가전 현장을 누볐다고 한다.

근방에 사제가 없으면 옆에 있는 다른 가톨릭 신자가 비신자에게 대신 해주기라도 가능한 임종대세( 세례성사)와는 다르게, 병자성사 고해성사 사제가 집전해야 하고, 또한 죽기 전에 해 줘야 교리상 그나마 대죄에 대한 심판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인이지만 군종장교라서 개인화기가 편제되어 있지 않다. 일단 자기호신용 K-5 권총을 지급받고 자기 총번도 알고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서류상 지급이지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전쟁 나서 진짜 군종장교까지 투입이 되어야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면, 그 전쟁은 이미 졌다고 봐야 한다.

천주교 군종병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인 신부님을 보좌하는 업무는 전시에도 당연히 유지되며, 이 보좌 업무엔 경호도 포함되므로, 전시에는 총기를 휴대하여 신부님과 같이 다니게 된다고 한다.

5. 관련 교회법

아래의 교회법에서 보듯 가톨릭 교회는 기본적으로 성직자와 신학생들의 군 복무를 아주 적극 권장하지는 않는다. 이는 아래 ①항의 '군 복무는 성직자 신분에 덜 맞으므로'와 ②항의 '면제권을 사용하여야 한다'와 같은 문구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아주 적극 반대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이었다면 애당초 교황청이 한국의 천주교 군종교구처럼 세계 각국에 있는 군종교구를 승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① 군 복무는 성직자 신분에 덜 맞으므로, 성직자들과 성품 후보자들은 자기 직권자의 허가가 없는 한 군대에 자원 입대하지 말아야 한다.

② 성직자들은 성직자 신분에 안 맞는 임무나 국가 공직의 수행에 대하여 법률이나 협약이나 관습이 그들에게 혜택을 주는 면제권을 사용하여야 한다. 다만 소속 직권자가 달리 결정한 개별적인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교회법』 289조. 원문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6. 기타

대부분이 병사생활을 거치고 임관한 자원들인지라[28], 미사 강론 시간에 “제가 병사 시절에~”를 적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제3대 군종교구장을 역임한 유수일 주교 작은형제회 수사 신부 출신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군종교구 교구 사제들 뿐만 아니라 수도회 사제들도 군종사제로 들이려는 계획이 있다고 한다.[29]

개신교에서는 여성 군종목사, 불교에서는 여성 군종법사( 비구니)가 배출되었지만, 가톨릭에서는 남성만 성직자로 수품될 수 있다. 수녀는 '사제'가 아니라 수도자[30] 신분이므로 군종 신부가 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가톨릭 교회의 중심 전례는 성체성사, 곧, 미사이며, 이를 포함한 일곱 성사 집전은 성품성사를 받은 사제만이 할 수 있으므로, 설령 군종 수녀 제도가 생겨서 수녀가 입대한다고 해도 현재 군종 신부의 역할을 대체할 수는 없다.

천주교 군종교구에서 보급하는 군용 천주교 예비신자 교리책의 표지모델이 ' 김태희 베르다 자매님'이다. 아아 예쁘다. 군종교구에서 군 선교를 이유로 사진을 이용하겠다고 소속사와 김태희에게 연락을 하자, 김태희는 선뜻 받아들이고 군 선교를 위해 무료로 모델이 돼주었다고 한다. 물론, 사진도 군종교구에서 새로 찍은 것이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군종교구에서 진정한 홍보모델로 여기는 연예인은 ' 홍수아 마리스텔라 자매님'이다. 그 홍드로 맞다! 연예인이 되고 난 다음에 당시 육군 제12보병사단 군종 신부였던 김병수 신부에게 직접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은 것이 인연이 되어 군 선교에 열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련기사. 스케쥴을 쪼개서 직접 간식을 싸들고 각 전방부대를 다닌다고 하니 대단하다.

7. 유명 인물



[1] 만약 신부를 지향한다고 군 면제 특혜를 받는다면 악용할 사람들이 넘쳐날 것은 뻔하다. [2] 성직자나 신학생이 국가가 제공하는 병역 면제 혜택을 누리는 것에 대해서 교회법에서는 오히려 긍정한다. 교회법에 따르면 군 복무는 성직자 신분에 덜 맞는 일이기 때문이다. ( 관련 교회법 문단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술할 부분대로 한국 천주교는 오히려 군복무를 순명과 희생으로 여겨 혜택을 포기한 것이다. [3] 이 발언은 김수환 추기경이 사망한 이후, 천주교에서 매주 발매하는 주보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일화를 나열하면서 처음 언급된 내용이다. [4] 그런데 수원가톨릭대학교같이 군필 늦깎이로 신학교에 입학한 경우에는 이것도 면제해주는 경우도 있다. [5] 다만 보충역으로 소집해제한 사람이 3급 이상으로 신체등위를 올려 부사관이나 장교를 지원하여 다시 군대를 가는 사례는 드물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이러한 지휘관도 있다! 이런 부류는 주로 신장체중의 사유나 경미한 질병으로 보충역 판정을 받았던 경우가 많다. 병 신체검사와 간부 신체검사는 서로 공유되지 않고 완전히 별도로 진행되기 때문에 정신과 병력이나 전과만 없으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6]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다. 원래는 관심이 없었거나 아니면 사제의 길과 다른 길 중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사회생활을 택했지만, 결국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사제의 길을 택한 늦깎이 신학생들이 주로 그렇다. 다만 이 같은 경우 사회생활할 때 군대를 이미 마친 상황의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군대에서는 늦깎이 신학생 출신 군종병을 거의 볼 수가 없다. 그리고 전술했듯 군종 신부에 따라서는 오히려 신학생을 선호하는 신부님도 있다. [7] 군종교구에는 보좌신부 또는 부주임신부가 없다. 서울대교구, 대구대교구, 부산교구 등 대도시 관할 교구에서는 2024년 기준으로 보좌신부나 부주임신부 생활을 다른 교구에 비해 오랫동안 해야 본당신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군종 신부는 다른 동창 신부들보다 일찍 본당신부로서 사목할 수 있다. [8] 사실 신부를 포함한 성직자들도 사회인들만큼은 아니지만, 봉급이 오를수록 좋긴 하다. 이들도 삶을 영위해가야 하는 것도 있고 봉급이 오를수록 더 많은 기부와 사목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9] 개신교의 곽은광 목사와 비슷한 케이스이다. 군인도 목사도 꿈꿔와서 2가지 꿈을 모두 이룬 행운아가 되었다고 말했다. [10] "강하게 요청" 했다는 부분에 볼드체가 되어 있는 이유는 교회법에 따르면 군 복무는 성직자 신분에 덜 맞는 일이기 때문에 주교가 허락하지 않으면 신부, 신학생은 자원입대 할 수 없기 때문. [11] 천주교 신자로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다. [12] 가톨릭 교회의 문화에 익숙지 않은 일부에서는 제주교구 강우일 베드로 주교가 반대한 것을 가지고 마치 한국 천주교가 반대한 것처럼 과장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교회법 절차와 교구장의 적법한 권한 범위 내에서 교구장이 내린 결정은 설사 추기경이나 대주교라 하더라도 번복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제주교구내의 사안에 대해서는 교구장 주교의 결정을 한국 천주교의 다른 주교들도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애초 한국 천주교내 각 교구는 상호 독립된 별개 교구로, 각 교구가 바로 교황청으로 연결된 구조이다. 그래서 추기경인 서울대교구 교구장이라 할 지라도 한국 내 다른 교구의 일이나 결정에 간섭할 수 없다. [13] 천주교 군종병들은 대부분 평신도 중에서 독실한 신자들 중에서 뽑아간다. 물론 군종 신부 중에서도 전례 거행의 여러 부분을 좀더 폭넓게 담당할 수 있는 신학생 출신 군종병을 원하는 경우도 있다. 신학생이 군종병으로 복무하는 경우는 기존 보직을 하면서 대대.중대의 군종병으로 주말 내내 봉사하는 이중보직이다. [14] 육군의 경우 보병, 해군의 경우 갑판, 공군의 경우 군사경찰이나 정비사 등이 있다. [15] 신학교는 7년 과정이고, 중간에 2년 군복무를 하고 교구 본당에서 몇 년 사목하다 군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젊어봐야 30대 초중반이고 늦으면 40대까지도 올라간다. [16] 이 경우는 대부분 신검 4급을 받고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의무를 수행한 뒤 입대 시 재검 받아 기준치를 달성한 후에 군종장교로 오는 케이스. 드물게 사회복무요원 출신이 장교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그 중 하나다. 아니면 여러 이유로 조기 전역한 경우도 해당되나, 이 경우는 대부분 군에서도 잘 안 받아준다. [17] 오직 예외는 중국뿐이다. 가톨릭 문서의 ' 중국과의 마찰' 문단으로. [18] 천주교 대구대교구 사제단에서 나도는 전설 중에는, 사단장이 자신을 하위장교로 대하자 빡쳐서 그 지휘봉을 부러뜨려 버렸다는 전설까지 존재한다. [19] 천주교에서 성직자에 대한 폭언ㆍ폭력ㆍ갑질(을질)ㆍ비난은 독성죄로 취급된다. [20] 해군/해병대는 주로 개신교에서 맡는다. [21] 물론, 이런 처사가 타 종교의 입김에 이루어진 것이니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22] 심지어 개신교는 성직자도 아닌 장로에게 일을 일임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주로 목사가 쫓겨난 교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23] " 세례 받은 남자만이 (거룩한) 서품을 유효하게 받는다( 가톨릭교회법 제1024조)." [24]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74조 1항에 의거, 토요일 오후 4시 이후부터 일요일 밤까지 봉헌되는 미사는 주일 미사로 친다. [25] 뒷 내용에 후술되지만, 이러한 전국구급 사령부 예하 부대들은 각 지역 해당부대에 파견된 형식이기 때문에, 종교행사의 경우 파견된 부대와 동일한 장소에서 종교행사를 하게 된다. [26] 한국 천주교 전례력 중 '연중 제27주일'은 군인 주일로 병 복무중인 모든 군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2차 헌금을 군종교구에 기부한다. [27]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는 ' 병자성사'가 아니라 '종부성사'였다. 7성사 문서로. [28] 신학생들은 병역면제를 받지 않는 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며, 면제를 받지 않는 한 최소한 사회복무요원으로도 갔다 온다. 다만 신학교 가기 전에 대학을 졸업한 소위 '늦깎이'들의 경우 장교로 병역을 해결한 경우도 있다. 이태석 신부도 원래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후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하고 군의관 복무까지 마쳤으나 늦깎이로 신학대학에 온 케이스였다. 그래서 남수단에서도 직접 의료봉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29] 지금까지 한국 수도회에서 군종 신부로 임관한 사람은 딱 1명이었지만, 그마저도 현재 전역한 상태다. 그 신부는 바로 현재 군종교구 총대리인 이응석 신부다. [30] 남성 수도자는 '수사(修士)'라고 한다. 수사 중에는 성품성사를 받지 않은 평수사와, 성품성사를 받은 성직수사가 있다. 후자는 수사신부, 수도사제라고도 부른다. 일선 성당에 있는 신부들은 교구사제들이다. [31] 별명은 '우표 신부님'. 2020년에 9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32] 군대만 4번 갔다왔다. 서품 전 현역복무, 군종사제, 군종교구 총대리 신부, 군종교구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