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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W/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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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시작3. WWF의 인수4. NWA에 재인수5. TBS의 인수6. Monday Night War7. 말기8. 인수 이후

1. 개요


한 때 WWE를 위협했던[1] WCW의 역사를 기록한 문서이다.

2. 시작

본래 NWA 산하단체 '조지아 챔피언쉽 프로레슬링(GCW)'이 애틀랜타의 ABC계 지역방송사 WXIA-TV[2]에서 방송하고 있던 프로그램이었다. 테드 터너는 1976년부터 케이블TV TBS를 개국하면서 GCW를 전국 방송하기 시작했고, 1982년에 WCW라는 이름으로 바꾼다. 이 시기의 WCW는 GCW를 방송하는 TBS의 한 프로그램 타이틀이었을 뿐이었다.

3. WWF의 인수

한편 WWF 빈스 맥마흔은 방송의 전국 확대를 노리고 테드 터너와 TBS에서 WWF방송을 타진했지만, 테드 터너의 반대로 이는 성사되지 않았다. 1984년 빈스 맥마흔은 우회적인 수단으로 진출을 시도하는데 GCW의 다른 대형 주주들과 접촉하여 GCW를 인수하고 토요일 저녁의 WCW 프로그램의 방송 시간을 손에 넣었다. 1984년 7월 7일 빈스 맥마흔은 새로운 GCW의 소유자로서 WCW 방송에 등장했다.

하지만 갑자기 WWF 형식으로 바뀐 프로레슬링 방송은 기존 시청자들을 격분하게 만들었고, TBS에 항의 전화와 투서가 밀려들어와 테드 터너는 분노하게 된다. 테드 터너는 다른 프로레슬링 프로모터들과 협력하여 일요일 밤 시간대에 '미드 사우스 레슬링'을, 토요일 아침 시간대에 '챔피언쉽 레슬링 프롬 조지아'를 배치하여 빈스 맥마흔이 점령한 월드 챔피언쉽 레슬링을 압박했다. 빈스 맥마흔 테드 터너의 조치가 자신이 얻은 TBS에서 프로레슬링을 독점할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분노했지만, 토요일 아침의 쇼마저 빈스 맥마흔의 월드 챔피언쉽 레슬링의 시청률을 능가하면서 빈스의 굴욕이 되어버렸다.(...)

4. NWA에 재인수

1985년 4월, 빈스는 1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GCW의 주식을 다시 매각했다. 애틀랜타를 본거지로 하던 짐 크로켓 프로모션즈가 GCW의 권리를 얻어 WCW가 본격출범하게 된다. 크로켓 프로모션은 NWA 플로리다 부문, 1987년에는 루이지애나의 UWF까지 인수했다. 짐 크로켓은 NWA의 회장직도 차지했다. 하지만 급격한 거대화에 대처하지 못했고, WWF의 맹렬한 공세에 짐 크로켓 프로모션즈의 경영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결국 짐 크로켓 프로모션즈는 파산을 하고 말았다. WWF는 GCW에게 설욕을 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5. TBS의 인수

1988년 11월, 진정한 최종보스 테드 터너가 직접 나섰다. TBS가 짐 크로켓 프로모션즈를 인수하여 WCW는 TBS산하의 프로레슬링 부문 자회사가 되었던 것이다.

이전까지 WCW는 하나의 TV쇼 프로그램 타이틀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때부터 WCW 자체가 회사명이 되고 독립 단체로 취급되어 NWA와 계약하고 NWA-WCW로 불리게 된다.

CNN의 설립자이자 방송재벌인 테드 터너 소유의 레슬링 단체가 된 만큼, 자금 사정은 매우 좋아졌다. 그러나, 프로레슬링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던 TBS 소속 고문 변호사들이 낙하산 인사 격으로 사장으로 올라오면서 초기에는 여러모로 삽질을 거듭하며 상황이 매우 안 좋았다.

6. Monday Night War

1993년 WCW는 NWA에서 탈퇴했다. NWA의 독과점 체계는 이미 무너져버렸고, NWA계열 거물 프로모터들이 완전히 몰락한 상황이라[3] 더 이상 NWA에 가맹하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 1994년 에릭 비숍이 부사장으로 발탁되면서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 WCW에서 사장은 TBS의 고문 변호사 격으로 앉아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부사장이 회사를 이끄는 톱이었다.[4]

에릭 비숍은 방송국을 등에 업은 막강한 자금력으로 헐크 호건 등 WWF 소속 인기 프로레슬러를 차례차례 데려왔으며 특히 1996년에는 에릭 비숍이 만들어낸 최고의 히트작인 nWo가 TV쇼에 등장. 상기한 대로 시청률 전쟁에서 WWF를 앞지르게 된다. 반대로 WWF는 모회사의 막대한 자금을 앞세운 WCW에게 유명 선수를 닥치는 대로 빼앗기면서 엄청난 압박을 받게 되었다.[5] 거기다가 에릭 비숍은 시청자들이 RAW로 채널을 돌리지 못하게 RAW의 결과를 스포일러 하는 부정행위를 저질렀으며, WWF와 좋게 끝나고 WCW로 이적한 선수들에게 WWE를 비난하라고 요구하면서 WWF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려고 했다.[6] 이 와중에 WWF의 얼룬드라 블레이즈가 WCW로 옮겨오면서 WWF 위민스 타이틀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세그먼트까지 나오게 된다.[7][8] 여하간 이런 전략을 쓴 탓에 에릭 비숍이 보기에 WWF에서 가장 위협적인 요소는 세이블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자기들이 스포일링해도 세이블을 보기 위해 남성 시청자들은 RAW를 볼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스포일러를 잘못해서 세이블이 뭔가 섹시한 세그먼트를 했다고 하면 더더욱 역효과일테니. 다만 에릭 비숍의 발언이고 한 만큼 어느 정도 허풍을 감안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9]

1996년 WCW는 WWF를 시청률에서 앞서게 되며, 프로레슬링 역사상 유례없는 거대 양강 구도를 형성하며 미국 프로레슬링의 황금기를 장식하게 된다. 오죽하면 당시 WCW와 WWF의 시청률 전쟁을 가리켜 Monday Night War라고 칭할 정도 였다. 그러나 '대등한 양강 구도'라고 하기에는 WCW의 기세가 압도적이었다. WCW가 WWF를 시청률에서 앞지른 기간이 1996년 6월 10일에서 1998년 4월 13일까지 거의 2년, 84주가 넘을 정도였다.

실질적으로 WCW 전성기에는 압도적인 자금력을 내세운 WCW 앞에 WWF는 많이 밀리는 편이었으며 거의 '압살' 당할 지경의 위기였다. 헐크 호건 같이 WWF의 아이콘 급 유명 선수들을 닥치는대로 빼가는 판이었으니 WWF는 버틸 수가 없었다. 1997년에는 WWE의 심장이라 할 수 있던 브렛 하트마저 WCW에게 빼앗기게 된다.[10] 1994년의 WCW PPV 스타케이드는 66만건이 넘는 구매를 이룩했다. 대조적으로 당시 WWF 레슬매니아 13은 20~30만 건으로 사상 최저 건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만큼 nWo에 노골적으로 기대는 스토리라인[11]이 진행되면서, nWo와 관계없이 일본이나 멕시코 무대에서 성장해 WCW에 입성한 유망주 레슬러들에게[12] 기회를 주지 않았고 차츰 WCW만의 색깔을 잃기 시작했다. ECW가 하드코어함을 무기로 승부했다면, WCW는 WWF와 별 다를 바 없다고 여겨질 정도로 빅맨 선호에, WWF에서 익히 봐왔던 레슬러들로만 계속 우려먹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빈스 맥마흔의 눈물의 똥꼬쇼가 시작되었다.

WWF는 당시 암흑기의 또다른 아이콘이었던 숀 마이클스를 필두로 스티브 오스틴, 더 락, 트리플 H 등 새로운 스타들을 발굴하였고, 빈스 맥마흔 회장까지 악덕 사장 기믹으로 쇼에 출연하여 눈물겨운 노력과 이전까지 프로레슬링에서 볼 수 없었던 과격한 연출을 동원한 결과 엄청난 화제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자세한 것은 애티튜드 시대 참조.

게다가, RAW의 결과를 스포일링하는 부정행위가 오히려 WCW에게 결정타를 먹이기도 했다. 믹 폴리가 챔피언에 등극하자 WCW는 평소처럼 이를 스포일링하며 믹 폴리를 조롱했지만 오히려 시청자들은 믹 폴리가 챔피언이 된 것을 보기 위해 채널을 돌렸다. 이때 0.6의 시청율이 RAW로 향했고 이후 WCW는 WWF의 시청률을 넘지 못했다.[13] WCW는 WWF에 대해 과거 자기네 회사에서 챔피언 타이틀과는 거리가 멀었던 선수를 챔피언으로 등극시킬 만큼 인재가 없는 회사라고 어필하려는게 목적이었으나, 되려 시청자들이 믹 폴리가 챔피언이 될만큼 성장했는지 확인하려고 하게된 것이다.

또한 앞서 언급한 오스틴, 더 락, 헌터의 경우, 신인시절에는 그 누구도 이들이 차후 아이콘, 메인이벤터가 될 것이라 예상을 못했음에도 WWE는 이들을 아이콘, 메인이벤터로 성장시켰을 정도로 인재 키우기에도 WCW를 앞섰다. WCW가 노장들 위주로 밀고 나가느라 잘만 키우면 차기 메인이벤터가 될만한 유망주들을 키우지 못했던 것과는 상반되는 부분.

또한 WWF에는 발 비너스, 빌리 건, 리키쉬 등 훗날엔 잦은 부상 등으로 메인이벤터가 되지 못한 아까운 유망주로 거론되게 되었으나, 이 당시엔 차기 메인이벤터로 거론되던 유망주들도 여럿 있었고, 이들 외에도 드로즈, 딜로 브라운의 경우는 메인이벤터가 되는 일을 앞둔 상황에서 각각 선수 생명이 끝장날 정도의 치명적인 부상, 동료 선수의 생명을 끝장내버렸다는 죄책감으로 인한 기량 저하로 추락한 케이스였는데, 이 두 선수들 또한 차기 메인이벤터로 거론될 정도였으니 WWF는 단순히 유망주들이 많다 정도로 끝이 아니라 유망주들을 활용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WCW는 이외에도 온갖 삽질을 반복했다. 사실 WWE의 스파이였던 헐크 호건 등이 백 스테이지 권력을 남용하며 현장에서는 갖은 사고가 터졌고, 시청자들이 TV쇼로서 보기에도 납득이 안 가는 '방송 사고' 수준의 사태가 빈발했던 것이다.

게다가 기껏 영입해온 브렛 하트에 대해선 제대로 써먹지도 못했고, 아예 비숍부터가 브렛한테 대놓고 "당신을 어떻게 써먹어야할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했을 정도였다.

WCW는 가장 결정적으로 노장 선수들 위주로 밀고 가느라 신규 메인이벤터를 발굴하지 못했고, 젊은 유망주들로 세대 교체를 하는 것도 하지 못했으며, 적잖은 유망주들이 WCW로 잘못 오는 바람에 높은 위치로 갈 기회를 얻지 못한채 아까운 유망주가 되어버린건 덤. 이 당시 WCW를 나와서 WWF에 줄을 선 선수들은 줄을 잘 선 덕분에 메인이벤터가 된 경우가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이미 WCW가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이자 필연적이었다. 만약에 기존의 노장 선수들이 죄다 죽거나 은퇴하게되면 기존 노장 선수들이 있던 빈자리를 대체 무슨 수로 메꿨을지도 의문일 정도였고, 가령 그때가서 뒤늦게 유망주들을 키운다 해도 이미 성장 시기를 놓친 선수들인 이상 성장에 한계가 있었을 것인데다, 성장 시기를 놓친 선수들을 뒤늦게 키워도 이미 망하는 중인 WCW를 되살리기는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사실 후술할 빈스 루소는 이 신세대 유망주들을 메인이벤터로 키울 계획이 있었으나, WCW가 망하면서 백지화되었다.

1999년 9월 10일 에릭 비숍은 실적 부진으로 해고당하고 말지만 그 이후로도 실적은 지지부진했고 2000년에 WCW는 다시 에릭 비숍을 불러온다.

7. 말기

WCW가 취한 마지막 선택은 적장 빈스 루소의 영입이었다. 빈스 루소는 1996년도부터 WWF의 각본을 맡아 애티튜드 시대를 이끌며 시청률 우위를 뒤집은 장본인이었지만, 그의 Crash TV[14]는 WWF 애티튜드 시절의 열화 카피에 불과했으며, 이를 뒤집기 위해 데이비드 아퀘트나 본인의 월드 챔피언 등극 등 파격적인 사건만 일으키다 각본의 혼란을 가중시켰고 시청률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빈스 루소에 대한 자세한 글 루소 본인은 자기는 너무 늦게 들어왔기에 WCW의 몰락에 책임이 없다고 하지만 적어도 몰락을 가속화시킨 책임은 있을 것이다. 당시 WCW는 언젠가 몰락하는게 필연적이었던데다, WCW의 몰락이 시간 문제인 상황이었기에 빈스 루소 또한 "어차피 WCW는 내가 없었어도 몰락했을 것이고 나는 WCW가 이미 몰락하고 있을때 들어왔으니 WCW의 몰락에 내 책임은 없다"식으로 말해도 틀린 주장은 아니다. 다만 스테파니 맥마흔은 인터뷰에서 빈스 루소의 아이디어는 빈스 맥마흔이 조율을 해줘야 효과적인데, 빈스 맥마흔 없이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15]

WCW의 래리 즈비스코(Larry Zbysko)가 회상한 바에 따르면 당시 에릭 비숍이 물러나고 회계사였던 빌 부쉬가 운영하게 된 시점이었는데, 이때 부쉬는 즈비스코에게 자신이 빈스 루소를 "훔쳐왔다"며 좋아했다고 한다[16]. 그러나 즈비스코는 부쉬에게 맥마흔이 루소와 계약을 하지 않은건 루소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 소리 해줘야 했다[17].

골드버그의 173연승 [18]과 같은 당시에는 참신했던 스토리를 통해 한 때 반등에도 성공했지만 결국 막장까지 치달은 백스테이지 암투와 각본의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고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 - 더 락, 트리플 H 트로이카 체제의 WWF에 밀려 결국 2001년에 WWF에 흡수되었다.

WCW가 WWE에 매각될 당시 WCW의 적자가 큰 이유였지만 모기업인 타임워너가 IT 버블붕괴로 인해 재정상황이 안 좋아져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각종 유형자산을 매각하면서 앞으로도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WCW가 최우선 매각 대상이 된 것.[19][20]

참고로 WCW 체제 내에서의 마지막 WCW 챔피언은 부커 T였으며, WCW가 WWF에 인수당하기 전 개최된 마지막 매치는 부커T와 스캇 스타이너 간의 챔피언쉽 매치였다. 많은 사람들이 WCW의 마지막 경기로 알고 있는 릭 플레어 vs 스팅의 경기가 열리는 날, WCW는 이미 WWF에 인수되어 있던 상태였기에 이날 쇼는 굳이 따지자면 WWE 관할 내에서 진행되었던 쇼이다. 물론 WCW 쇼의 마지막 경기는 맞다. 부제는 나이트 오브 챔피언스.

8. 인수 이후

WWE는 인수 이후 WCW 계열 레슬러들을 팀으로 묶어 대립 항쟁을 하는 등 어떻게든 브랜드 활용을 했으나 월요일 밤의 전쟁을 겪으며 매우 높은 충성도를 지니게 된 WWE 팬들이 WCW를 좋아할 이유가 없었고 WWE 수뇌부는 어떻게든 반응을 살려보려고 WCW 이전에 인수했던 ECW까지 각본에 투입하는 초강경 처방을 내렸다. 하지만 이미 WCW는 각본상 절대 악이 되어버린 상태였고 결국 서바이버 시리즈 2001을 끝으로 WCW는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한편 WWE가 WCW를 인수한 직후엔 WWE로 이적하지 않았던 WCW 출신들도 많았는데, 그래도 골드버그, 레이 미스테리오, 울티모 드래곤, 루써 레인즈, 스팅, AJ 스타일스 등 일부 선수들은 2002년이나 혹은 그 이후에 WWE로 오기도 했다. 그외 나머지 선수들은 계속 타 단체에서만 활동중이거나 WWE로는 끝까지 오지 않은 채로 은퇴, 사망했다. WWE가 인수했다는 공통점이 있는 또 다른 단체인 ECW의 경우는 그래도 ECW가 인수된 이후 ECW 출신들중 WWE에서 잠시라도 활동했던 선수들이 무려 수십명 단위인데 비해, WCW 출신들 중에는 현역 선수임에도 WWE로는 오지 않은 선수들이 상당히 많았다.

WWE로 이적해온 WCW 출신 선수들의 경우 WCW가 인수되기 전에 이적했느냐, 인수된 이후에 이적했느냐로 크게 나뉘었고, 전자에 해당하는 경우, 메인이벤터가 될만큼 푸쉬를 크게 받은 경우가 많았지만, 반면 후자에 해당할 경우 푸쉬를 못받은 경우가 많았다. 전자는 빅쇼, 에지, 크리스 제리코, 에디 게레로, 크리스 벤와 등이 대표적이던데다 이들은 모두 메인이벤터가 되었고, 후자는 션 오헤어, 마크 진드락, 척 팔럼보, 루써 레인즈, 울티모 드래곤 등이 대표적이었는데 그나마 같은 후자라도 빌리 키드먼, 제이미 노블, 랜스 스톰 등은 잠시나마 푸쉬를 받긴 했었다. 이외엔 레이 미스테리오, 부커 T, 골드버그, 스팅 등이 WCW가 인수된 이후에 이적했음에도 메인이벤터급 푸쉬를 받았거나, 후에 메인이벤터로 올라갔다. 결국 WCW가 인수되기 전에 미리 이적해온 선수들은 줄을 잘 선 셈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2014년에 이 WCW와 WWE의 시청률 경쟁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다. 제목은 'WWE 먼데이 나잇 워 WWE VS WCW'. 한국에서는 IB SPORTS를 통해 자막 방영되었으며, 내레이션은 정찬우 아나운서가 맡았다.

[1] 사실상 WWE vs WCW는 프로레슬링 역사상 현재까지 최후의 메이저 단체 간 경쟁이었다. 이후로는 WWE의 사실상 독점체제. [2] 현재는 NBC와 제휴중이다. [3] WWE의 맹공과 특히 엄청난 자본을 들인 레슬매니아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이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무너져갔지만 이에 완전히 쐐기를 박은 건 WCW의 탈퇴였다. [4] 비슷한 사례로 같은 터너 계열 스포츠 사업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애틀랜타 호크스의 실세가 바로 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공동 구단주 스탠 카스텐이었다. [5] 거기다 ECW 역시 주요 선수들을 많이 뺏겼다. 폴 헤이먼은 아예 이를 갈 정도. 근데 데려온 선수들을 제대로 활용을 못해 ECW로 다시 가버린 선수도 많았다. [6] 예시로 렉스 루거. 루거는 자신은 WWF와 빈스 맥마흔과 좋은 관계였는데 그들을 비난하라고 하는 것을 못마땅해 했지만 에릭 비숍은 그 쪽이 더 임팩트 있는 데뷔를 만들 것이라고 얘기했다. [7] 빈스 맥마흔 몬트리올 스크류잡까지 하게 된 것은 이 사건을 보고 WCW가 브렛에게 비슷한 짓을 하게 하면 어쩌나하는 걱정도 있었다. [8] 후에 메두사가 밝히기로는 부사장이였던 에릭 비숍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했다고 한다. [9] 사실 이 말의 뜻은 세이블이 벗지 않으면 쟤네들은 우릴 따라오지 못한다는 조롱에 가까운 말이다. [10] 이 과정에서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벌어진다. [11] nWo와 나머지 간의 대립으로만 몇 년을 우려먹었다(...) [12] 저 유명한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이나 크리스 제리코, 에디 게레로와 같이 후일에 WWE 타이틀을 거머쥐며 천하를 호령했던 레슬러들이 WCW에서는 중용되지 못했다. [13] 물론 여기에는 '핑커 포크 오브 둠'이라는 삽질도 한 몫 했지만 그 외에도 믹 폴리 WWF 챔피언 등극이 일종의 아메리칸 드림으로 여겨진 점도 있다. [14] 자극적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DX의 생방송 중 스트립쇼, 발 비너스의 성기 절단 세그먼트, 마크 헨리 매 영과의 섹스 스캔들 & 임신 각본등 섹스와 폭력, 범죄로 얼룩진 각본은 다 그가 기획한 각본이다. [15] WWE 50에서 빈스 루소 뿐 아니라 헐크 호건, 에릭 비숍, 클릭 같은 이들은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빈스 맥마흔이 조율을 할 때는 괜찮은 성과를 올리다가도 다른 곳에 가면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폭주하는 경향이 매우 짙다. [16] 당시 루소는 WWF측과 계약도 안된 상태였다 [17] WWE 50의 월요일 밤의 전쟁: The End 챕터에서 [18] 패가 없었던건 맞는데, 문제는 뻥튀기 기록이라는것. 한주 사이에 10연승이 추가된 일도 있었다고. 케빈 내시에게 패하면서 연승행진이 끝났다. 그런데 내시가 승리한 이 경기도 깨끗하게 끝났다고 보기 힘든 게 심판이 한눈 파는 사이 스캇 홀에게 전기충격기 로 공격을 당했다. [19] 이후 타임워너는 2004년에 애틀랜타 호크스 및 스래셔스를 브루스 레벤슨이 이끄는 애틀랜타 스피릿에, 2007년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리버티 미디어에 각각 팔며 스포츠 사업에서 손을 뗀다. [20] 게다가 경영진들 사이에서는 프로레슬링에 대해 '삼류 저급프로'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에 설령 WCW가 정상적인 궤도에 있었다고 해도 매각될 운명은 피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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