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9 05:02:46

108번뇌(정치)

1. 개요2. 역사3. 현역 108번뇌 역대 명단4. 총평 및 결론5. 여담6. 관련 문서

1. 개요

제17대 국회 당시 열린우리당의 초선의원 108명을 비꼬아 일컫던 말. 유래는 108번뇌.

2. 역사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에 힘입어 대승하며 152명의 당선자를 낸 거대 여당이 되었다.[1] 그런데 그중에서 초선 의원이 무려 108명에 달했고, 이들 중엔 386세대 운동권 출신이거나 노동계 출신들이 많았다.

이들은 당선 이후 초선답게 기존의 의원들과는 달리 튀는 행보를 이어갔다. 당론과 배치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하는가 하면, 토론에서 자기 의견만 내세우다 날밤 새우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이들의 안티 측에선 이들을 가리켜서 열린우리당의 골칫거리라는 의미에서 108번뇌라는 멸칭을 붙였다. 그리고 이런 비아냥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게, 당시 국회선진화법도 없어서 과반수의 머릿수로 법안을 밀어붙여도 다 됐을 여당임에도 의원들이 개인 플레이를 벌이며 제멋대로 놀아나느라 121석밖에 없던 한나라당에게 끌려다니며 법안 하나도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하며 국정 동력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이다. 자기들 입장에서는 진영 논리에 휩쓸리지 않는, 참신하고 양심적인 행보를 보인다고 자평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악수가 되었다.

결국 이 108번뇌 중 상당수가 차기 18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재선에 성공한 의원들은 자기들이 비판하던 선배 의원들이 하던 방식대로 지역구를 관리해서 재선하기도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들을 부르던 또 다른 별칭으로 탄핵 역풍의 수혜자란 의미에서 탄돌이라는 표현도 있었다.

3. 현역 108번뇌 역대 명단

3.1. 제17대 국회 당시


이상 108명의 의원들이 소위 말하는 108번뇌였는데, 지역구 의원 85명, 비례대표 의원 2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비례대표 김혁규 의원은 임기 중 탈당하여 의원직을 상실, 정덕구 의원은 의원직 자진사퇴, 박홍수 의원 역시 입각으로 인해 의원직을 사퇴했으나 그 자리를 서혜석, 신명, 김영대가 승계하여 108명의 숫자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3.2. 제18대 국회 당시

그러나 17대 대선 전에 열린우리당이 여러 차례 이합집산을 거치며 대통합민주신당이 된 후 역대급으로 대참패를 당하면서 정권을 빼앗겼고, 또한 그 직후에 통합민주당으로 재편해 치른 18대 총선마저도 대참패를 기록했다. 이 때 이 108번뇌 중에서 무려 73명이 낙선하거나 아예 공천에서 탈락하는 고배를 마시게 된다. 18대 총선에서 살아남은 108번뇌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이중에 강길부 2007년에 열린우리당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탈당하여 한나라당으로 이적해 버렸고, 권선택 이상민 또한 자유선진당으로 이적해 버렸다. 그리하여 108번뇌 중에서 단 33명 만이 18대 국회에 살아남았고, 이 중 민주당 잔류자는 30명에 불과했다.

3.3. 제19대 국회 당시

18대 국회를 거치면서 108번뇌들은 사실상 거의 대부분이 정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일부는 아예 지자체장으로 전향한 경우도 있다. 그리고 19대 총선에서 일부가 다시 등장하게 된다. 19대 국회에 남은 108번뇌들은 다음과 같다.

이렇게 18대 총선 때 떨어졌던 사람들이 컴백해서 총 47명이 19대 국회에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이 19대 국회에 살아남은 108번뇌 중에서 강길부는 이미 지난 국회부터 한나라당으로 전향한 지 오래였고, 2015년 연말에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으로 갈라지면서 문병호, 김동철, 주승용 등은 국민의당으로 가버렸고, 조경태 또한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으로 이적해 버렸다.

그런데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김종인이 컷오프 칼바람을 일으키는 바람에 이 47명의 잔류파들이 대거 낙천되는 사태를 낳았다.

3.4. 제20대 국회~ 제21대 국회 당시

그 결과 20대 국회에서 살아남은 108번뇌들은 민병두, 유승희, 우원식, 우상호, 노웅래, 이인영, 박영선, 김영주, 김진표, 김태년, 김현미, 윤호중, 안민석, 조정식, 정성호, 오제세, 변재일, 이상민, 양승조, 김동철, 주승용, 조경태, 강길부, 강창일, 최재성[2]까지 단 24명 뿐이다.

그리고 이 25명 중에서 열린우리당의 후신인 더불어민주당에 잔류해 있는 인원은 단 21명 뿐이다.

이 중 21대 총선에서 살아남은 인물들은 20대에서도 살아남았던 14명에 21대 국회를 통하여 컴백한 5명을 합쳐 총 19명이다.

20대 총선에서 살아남은 108번뇌 중 21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108번뇌들의 행방은 다음과 같다.

3.5.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기준

21대 이후 22대 총선에서 살아남은 인물들은 21대에서도 살아남았던 10명에 22대 국회를 통하여 컴백한 1명을 합쳐 총 11명이다.
* 우원식 - 서울 노원구 을(5선)
* 정청래 - 서울 마포구 을(4선)-처음으로 선거에서 내리 2연승을 하며 4선 성공
* 이인영 - 서울 구로구 갑(5선)
* 김교흥 - 인천 서구 갑(3선)-처음으로 선거에서 내리 2연승을 하며 3선 성공
* 김태년 - 경기 성남시 수정구 (5선)
* 윤호중 - 경기 구리시(5선)
* 조정식 - 경기 시흥시 을(6선)-조경태와 단 둘뿐인 내리 6선, 역대 시흥시 국회의원(제헌 국회 포함)들 중 최다선[5]
* 정성호 - 경기 동두천시·양주시·연천군 갑(5선)-17, 19대 지역구는 양주시·동두천시, 20대, 21대는 양주시 단독, 22대는 동두천시·양주시·연천군 갑 선거구에서 당선.
* 복기왕 - 충남 아산시 갑(재선) - 17대 총선 때 아산시 단독 선거구에서 당선...됐으나 2005년 3월 10일 임기 9개월 15일만에 의원직 상실. 복권 후 2010년, 2014년 아산시장 재선 성공, 2018년 충남도지사 공천 탈락, 21대 총선 아산시 갑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이명수와의 리턴매치에서 패배. 4년 뒤인 22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하여 19년 만에 원내 복귀
* 한병도 - 전북 익산시 을(3선)-처음으로 선거에서 내리 2연승을 하며 3선 성공
* 조경태 - 부산 사하구 을(6선)-조정식과 단 둘뿐인 내리 6선 다만 알다시피 지금은 보수정당( 국민의힘) 소속.
우상호, 김진표는 불출마 선언[6], 노웅래, 유기홍, 안민석, 변재일은 공천 탈락, 김영주 이상민은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으로 전향해 22대 총선에 출마했으나 각각 채현일 前 영등포구청장과 황정아 후보에게 크게 밀려 낙선, 이광재는 21대 총선 도중 강원도지사에 출마했다 김진태에게 크게 밀려 낙선하고 선거구를 경기 성남시 분당구 갑으로 변경해 출마했으나 출구조사 1위와 달리 안철수에게 밀리며 낙선했기 때문에 여기에 설명한 인물 9명은 22대 국회에서 볼 수가 없다.

4. 총평 및 결론

결론적으로 그 당시 108번뇌들 중 단 1번의 낙선 없이 22대 국회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조정식, 조경태 단 둘 뿐이고 22대 국회에서 이 둘이 최다선 중진급 의원 4인에 포함되어 있다.[7][8]

조경태는 알다시피 현재 국민의힘 소속이고, 조정식만 계속 민주당계 정당으로 내리 6선하여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며 22대 총선에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당이 됨에 따라 각주에 말한 추미애와 같이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5. 여담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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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지만 당시 여론을 생각하면 대승이라고 여기기도 어렵다. 당시 추측엔 155석에서 180석, 최대 200석까지도 전망하고 있었으며, 한나라당은 50~120석으로 예상했는데, # ## 정동영의 60대 이상은 투표를 안 해도 된다는 망언과 수도권 및 강성 지역에서 세력이 공고했던 한나라당의 수성, 거대 여당 집권에 대한 반발이 있었기에 열린우리당은 예상보다 못한 승리를, 한나라당은 예상 외 선전을 거뒀다. [2] 20대 총선에는 불출마했고, 2018년 재보궐선거에서 지역구를 옮겨 송파구 을에 출마해 국회에 복귀했다. [3] 입각 당시부터 불출마를 결단하고 입각. [4] 21대 총선도 출마 의지가 강했지만, 부정적인 지역구 여론도 그렇고 본인의 후임 장관도 빨리 찾지 못함에 따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불출마. 첨부터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채 장관에 입각한 박영선과는 케이스가 미묘하게 다르다. [5] 물론 21대 총선에서 당선(5선)되면서 이때부터 최다선 타이틀을 가지고 있긴 했다. [6] 김진표는 국회의장을 역임해서 다음 총선인 22대 총선에서 관례에 따라 불출마 [7] 나머지 둘은 추미애(경기 하남시 갑/6선)와 주호영(대구 수성구 갑/6선, 주호영 역시 이 둘과 같이 17대 총선에서 첫 당선) [8] 감이 안온다면 이 둘이 초선인 17대 국회에서 최다선이 6선인 김원기 의원(전북 정읍시/17대 전반기 국회의장), 차다선이 5선 김덕규(서울 중랑구 을/17대 전반기 부의장), 강재섭(대구 서구), 정몽준(울산 동구), 이상득(경북 포항시 남구·울릉군/17대 후반기 부의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