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8-26 10:50:26

1차 베네벤툼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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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전투 경과4. 전투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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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214년, 이탈리아 중남부 캄파니아의 베네벤툼(현재 베네벤토)에서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가 이끄는 노예 부대가 한노가 이끄는 카르타고군과 격돌한 전투.

2. 배경

기원전 216년 8월 2일, 한니발 바르카 칸나이 전투에서 로마군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동생 마고 바르카에게 분견대를 맡겨 삼니움 또는 브루티움의 여러 도시를 돌며 항복을 받아내게 했다. 마고가 카르타고로 돌아가서 원군을 받아내는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한노가 부대를 이끌고 브루티움에서 임무를 독자적으로 수행했다. 기원전 214년, 한니발은 앞서 2차례 공격했지만 공략에 실패했던 놀라 시를 재차 공격할 채비를 했다. 그는 한노에게 브루티움에서 아피아 가도를 따라 북상하여 자신과 합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한노는 명령에 따라 17,000명의 카르타고+브루티움+루카니아 혼성 부대와 1,200명의 누미디아 기병을 이끌고 진군했다.

한편, 집정관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는 한니발이 놀라 시로 진군한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대응책에 착수했다. 마르켈루스는 수에술라 언덕에 주둔한 군대를 이끌고 놀라 시로 이동했고, 파비우스는 별도로 군대를 이끌고 한니발에 가세한 카푸아 시를 압박했다. 그러면서 루카니아에서 숙영중이던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에게 즉시 베네벤툼으로 진군하여 브루티움에서 북상 중인 한노의 별동대를 저지하라고 명령했다. 그라쿠스는 명령에 따라 베네벤툼에 이동한 뒤, 한노가 도시에서 3마일 떨어진 칼로레 강변에 진을 치고 주변 영토를 약탈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성벽을 떠나 1,000보 거리까지 진군하여 진을 친 뒤, 병사들에게 연설했다.

당시 그가 이끌던 장병들은 노예 출신으로, 전쟁에 참여하면 해방시키겠다는 약속을 믿고 2년간 그를 따랐다. 그러나 자유를 줄 기미가 없자, 그들은 더 이상 싸우지 않으려 했다. 이에 그라쿠스는 그들이 오랫동안 자유를 공개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묵묵히 따라줬던 걸 칭찬하고, 이번에 큰 공을 세운다면 자신의 명예를 걸고 원로원에 그들을 해방시켜달라고 요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누구든지 적의 머리를 가지고 돌아오면 즉시 자유를 주겠지만, 도망친다면 채찍을 맞으며 비천하게 살아가는 노예로 돌아갈 거라고 밝혔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에 따르면, 그라쿠스의 연설을 들은 장병들은 당장 싸우자고 외쳤고, 다음날 전투를 벌이겠다는 그라쿠스의 통보를 받은 뒤 무기를 갈고 닦으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3. 전투 경과

다음날, 전투 개시를 알리는 나팔 소리와 함께 그라쿠스의 노예부대가 적을 향해 진군했다. 이에 한노의 카르타고군이 응전하면서 전투가 벌어졌다. 4시간 동안 격렬한 접전이 벌어졌으나 어느 한쪽이 승기를 잡지 못했다. 그러던 중, 그라쿠스는 장병들이 한 손으로 잘린 적의 머리를 쥐고 있어서 후속 전투에서 제 힘을 발휘하기 힘들어한다는 걸 눈치채고, 그들에게 "이번에 이긴다면 머리를 가지고 있건 말건 상관없이 모두 해방시켜줄 테니, 머리를 일단 내려놓고 적을 쓸어버려라!"라고 외쳤다. 이에 장병들은 지시에 따라 머리를 내려놓고 적을 상대로 분전했다.

하지만 카르타고군 역시 만만치 않았고, 누미디아 기병대가 양측면을 위협했다. 노예 병사들이 긴 전투에 힘겨워하며 물러서려 하자, 그라쿠스는 "너희가 패배하여 도망간다면, 자유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외쳤다. 그 말을 들은 병사들은 적을 향해 미친듯이 달려들었고, 카르타고군은 악귀처럼 달려드는 그들에게 질려 등을 돌려 진영으로 달아났다. 노예 장병들은 적의 진지까지 추격했고, 적진에 붙들려 있던 로마군 포로들이 대거 봉기하는 바람에 퇴로가 끊긴 카르타고군은 대거 살육되었다. 리비우스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카르타고군은 한노를 비롯한 2,000명 뿐이었고, 로마군의 전사자는 2,000명이었다고 한다.

4. 전투 이후

로마군이 적진으로 침투했을 때, 4,000명 가량의 노예 병사들은 카르타고 진영에 진입하길 거부했다. 그들은 처벌이 두려워서 언덕으로 피신했다. 다음날 트리부누스 밀리툼들이 당장 내려오라고 명령하자, 그들은 두려움에 떨며 용서를 빌었다. 이에 그라쿠스는 적진을 함락한 노예들 뿐만 아니라 그들 역시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주겠으며, 이 결정은 그들과 공화국 모두에게 행운과 기쁨, 그리고 행복을 가져다 줄 거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이후 노예 병사들은 위풍당당하게 베네벤툼 시로 귀환했고, 군중은 시내에 몰려들어 그들을 껴안고 진심어린 감사 인사를 건넸고, 자신들의 집으로 초대해 융숭한 대접을 했다. 원로원 역시 큰 승리에 기뻐하며 그라쿠스가 한 약속대로 노예부대 전원을 해방시키기로 결의했다.

그라쿠스는 기원전 213년 소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와 함께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이후에도 해방노예 부대를 이끌고 루카니아 일대에서 카르타고군과 맞섰다. 그러나 기원전 212년, 루카니아에서 베네벤툼으로 이동하던 중 루카니아 부족 동맹 지도자 플라부스의 배신으로 적의 매복에 휘말려 전사했고, 해방노예 부대는 이 소식을 듣고 뿔뿔이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