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02 17:55:17

페테리아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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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전투 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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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208년, 한니발 바르카가 이끄는 카르타고군이 로크리 시로 진군하는 로마군을 기습한 전투.

2. 전투 경과

기원전 209년, 집정관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2차 타렌툼 공방전을 벌인 끝에 타렌툼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또다른 집정관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는 루카니아를 공략했고,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카누시움 전투에서 한니발을 저지했다. 이 일련의 성공에 고무된 로마군은 한니발의 손에 여전히 있는 주요 항구인 로크리 시를 공략하려 했지만, 한니발의 저지로 실패하고 겨울이 곧 다가오면서 이듬해에 작전을 지속하기로 했다. 기원전 208년 집정관에 선출된 마르켈루스는 살렌티노에 주둔한 군대 일부를 육로로 보내 로크리 시로 진군하게 했고, 자신은 본대를 이끌고 한니발을 견제하기로 했다. 또한 시칠리아 총독 루키우스 킨시우스 알리멘토는 함대를 이끌고 해상에서 도시를 공격하기로 했다.

한니발은 이러한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뒤 3,000명의 기병과 2,000명의 경보병을 파견해 페테리아 언덕 기슭에 매복시켰다. 로마군은 적이 그곳에 매복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 어떠한 예방 조치도 하지 않고 그대로 진군했다. 이윽고 카르타고군이 습격해오자 그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타란토로 퇴각했다. 이 전투에서 2,500명이 전사하고 1,500명이 포로 신세로 전락했다. 하지만 시칠리아 총독 루키우스 킨시우스 알라멘토가 파견한 함대는 별 방해를 받지 않고 해상에서 로크리 시를 봉쇄했고, 타란토에서 재차 파견된 육군이 이들과 합세했다.

한니발은 로크리를 구하러 가다가 베누시아에서 집정관 마르켈루스와 티투스 퀸크티우스 크리스피누스의 저지를 받았다. 그는 300명의 누미디아 기병대를 2개의 로마군 진영 사이의 숲이 우거진 고지로 보내서 적 정찰대에 타격을 입히게 했는데, 마르켈루스가 크리스피누스와 함께 그 곳을 직접 정찰하러 갔다가 누미디아 기병대의 습격을 받아 전사하고, 크리스피누스는 중상을 입고 진영으로 돌아간 사건이 벌어졌다. 한니발은 마르켈루스로부터 빼앗은 인장을 활용해 인근의 세라피아 시를 공략하려 했지만, 크리스피누스가 한니발이 마르켈루스의 인장을 얻었다는 사실을 제때에 알렸기 때문에 실패했다. 이후 크리스피누스가 잔여 병력을 이끌고 철수하자, 한니발은 로크리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고, 로크리를 포위하던 로마군은 즉시 철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