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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216년,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한니발 바르카의 카르타고군으로부터 놀라 시를 사수한 전투.
2. 전투 경과
기원전 216년 8월 2일, 한니발 바르카가 이끄는 카르타고군은 칸나이 전투에서 로마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다. 누미디아 기병대 지휘관 마하르발은 승리의 기세를 타 로마로 진격하자고 주장했지만, 한니발은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며 받아들이지 않고, 이탈리아 남부 일대의 도시 국가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노력했다. 한니발의 동생 마고 바르카는 분견대를 이끌고 삼니움과 브루티움 일대를 돌며 여러 도시의 항복을 받아냈다. 한편 한니발 본인은 본대를 이끌고 캄파니아로 진군해, 일련의 협상 끝에 이탈리아에서 로마 다음으로 강대한 도시로 손꼽히는 카푸아의 지지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카푸아의 배신은 아직까지 로마를 따르던 이탈리아 남부의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동요하게 했고, 여러 중소 도시들이 잇따라 한니발에게 복종했다. 하지만 주요 항구 도시인 네아폴리스(오늘날 나폴리)는 끝까지 로마의 편을 들었다. 한니발이 성벽 앞에 이르러 자신의 편에 서라고 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며칠간 포위하다가 포기하고 베수비우스 산 인근으로 이동했다. 그 근방의 도시인 놀라 시민들은 한니발의 군세가 가까이 이른 걸 보고 동요했다.
당시 놀라 원로원과 지도층은 로마를 계속 따르려 했지만, 시민들은 자기들 농경지가 카르타고군에게 파괴되는 꼴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고, 로마가 한니발에게 패망할 게 분명하다고 보고 한니발의 편에 들고 싶어 했다. 놀라 원로원은 시민들의 의견을 따르는 척하면서, 캄파니아의 수에술라 인근에 진을 치고 있던 법무관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마르켈루스는 즉시 놀라로 달려가 주둔하였고, 한니발은 일단 네아폴리스로 돌아갔다.
한니발은 네아폴리스 주민들에게 밀사를 보내 자신의 대의에 따르라고 요청했지만, 네아폴리스 주민들은 로마를 계속 따르겠다고 답했다. 네아폴리스는 천혜의 요새로서 명성이 자자했기에, 한니발은 감히 공성전을 벌이지 않기로 하고 누케리아로 이동했다. 그는 이번에도 시민들을 설득했으나, 그들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한니발은 누케리아 시를 포위 공격하여 며칠만에 함락시키고, 도시를 철저하게 파괴하고 시민들을 노예로 삼았다.
누케리아 시의 운명을 전해들은 놀라 시민들은 몹시 두려워했고, 일부는 한니발에게 서신을 보내 놀라로 온다면 항복하겠다고 제안했다. 한니발은 즉시 누케리아에서 출진하여 놀라로 진군했다. 이때 마르켈루스는 누군가가 적과 내통하고 있을 거라 여기고, 그들이 성문을 몰래 열어줄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전군을 성벽 바로 앞에 포진하게 했다. 이후 양자는 소규모 접전을 벌일 뿐, 본격적인 전투를 벌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몇몇 원로원 의원이 마르켈루스를 찾아와서 시민들과 카르타고인들 사이에 밀담이 오갔다고 보고했다. 로마군이 도시를 나선 사이에 시민들이 성벽을 점령하고 성문을 걸어잠가서, 로마군이 성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카르타고군에게 몰살당하게 만들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의원들에게 알려줘서 고맙다며 감사를 표한 뒤, 군대를 세 갈래로 나누어 적과 마주보는 세 개의 문 앞에 각각 두었다. 또한 보급품들을 군대의 바로 뒤편에 배치했다. 중앙 성문에는 자신의 군단 중 가장 우수한 군단과 로마 기병을 배치했고, 측면의 2개 문 뒤에는 신병과 벨리테스, 라틴 동맹 기병대를 배치했다. 아울러 시민들이 성벽 위에 올라가거나 성문에 접근하는 걸 금지했다.
한편, 한니발은 군대를 이끌고 성 가까이 진군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적이 출격하지 않고 성벽에 무장한 병사가 없는 걸 이상하게 여기다가, 놀라 시민들과 짠 계획이 들통났다는 걸 깨달았다. 이에 군대를 진영 안으로 들어보낸 후 시민들이 봉기할 때 본격적으로 공격하기로 했다. 한니발이 군을 돌려 돌아갈 때, 마르켈루스가 전군에 돌격 명령을 내렸다. 이에 나팔수가 나팔을 요란하게 불렀고, 로마군은 즉시 출격하여 후퇴하는 적병을 향해 맹렬히 돌격했다.
적이 이토록 맹렬하게 돌격할 거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던 카르타고군은 2,800명의 병력을 잃고 패퇴했다. 반면 로마군의 사상자는 500명에 불과했다. 그 후 한니발은 놀라 공략을 단념하고 아케라로 향했다. 마르켈루스는 성문을 닫고 아무도 나갈 수 없도록 보초들을 배치한 뒤, 적과 밀담을 나눈 자들을 색출해 70명 이상을 체포한 후, 반역 혐의로 처형하고 재산을 몰수하여 로마로 보냈다. 이후 도시 운영을 놀라 원로원에게 맡긴 뒤 수에술라 언덕으로 이동하여 한니발의 움직임을 관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