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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관계.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로마 제국 시절부터 깊은 관계를 맺었고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언어적, 혈통적으로 매우 가깝다. 두 국가 모두 유럽 연합 회원국이자 나토 회원국이다. 게다가 교류도 많은 편이다.
2. 역사적 관계
2.1. 중세~근세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와 백년전쟁 종결 이후 프랑스 왕국은 밀라노 공국, 나폴리 왕국 등 이탈리아 반도에 지속적으로 간섭하려 시도했고, 그 결과 이탈리아 전쟁이 벌어져 이탈리아 반도는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탈리아 전쟁은 1559년 카토캉브레지 조약으로 종결되었으나 르네상스를 꽃피우며 근대의 시작을 알렸던 이탈리아는 주요 전장터로 황폐화되었고, 프랑스도 사실상 이탈리아 반도에 대한 간섭을 포기하면서 실익은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만 거두었다. 다만 이탈리아 전쟁의 결과로 프랑스에게 점령당했던 사보이아 공국을 되찾은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공작은 1561년 공국의 공용어를 라틴어에서 이탈리아어[1]로 바꾸었고, 2년 뒤에는 사부아의 샹베리에서 피에몬테의 토리노로 천도하면서 지금까지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에서 애매한 정체성을 유지한 사보이아 가문이 이탈리아인으로 정착했고, 사보이아 공국도 이탈리아 역사에 전면으로 등장했다. 어떻게 보면 프랑스의 간섭이 먼 훗날 벌어진 이탈리아 통일에 큰 영향을 미친 셈. 하지만 프랑스는 사보이아 공국의 토리노 천도 이후에도 사사건건 사보이아 공국에 간섭하려 들었고, 결국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중 벌어진 토리노 공방전에서 사보이아 공작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와 오스트리아 사령관이자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의 6촌 사부아 공자 외젠이 프랑스군에게 큰 타격을 입히고 나서야 사보이아 공국은 프랑스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을 달성할 수 있었다.2.2. 19세기
나폴레옹 전쟁 당시 이탈리아 반도 국가 대부분은 프랑스 제1제국의 지방 행정구역으로 흡수당하거나[2], 괴뢰국[3]으로 전락했으나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빈 회의에서 빈 체제로 구체제가 복원되면서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 제국 산하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과 합스부르크 가문의 방계가 다스리는 토스카나 대공국과 모데나 레조 공국, 스페인 부르봉의 방계가 다스리는 파르마 공국, 양시칠리아 왕국, 교황의 교황령으로 정리되었다. 이 중 알베르토 헌법(Statuto Albertino)을 통해 입헌군주정을 받아들인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와 카밀로 카보우르의 주도로 프랑스 제2제국의 나폴레옹 3세와 연합해 오스트리아 제국을 롬바르디아에서 몰아냈고[4], 이후 촉발된 민족주의 운동으로 토스카나 대공국, 모데나 레조 공국, 파르마 공국을 흡수했으며, 주세페 가리발디의 대활약으로 양시칠리아 왕국까지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으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의 수호자를 자처한 나폴레옹 3세로 인해 신생 이탈리아 왕국의 로마 병합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벌어진 1870년까지 미루어졌으며 이후 통일 이탈리아와 프랑스 제3공화국의 사이는 불편한 이웃 관계가 되었다.[5]2.3. 20세기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베니토 무솔리니가 나치 독일과 함께 프랑스를 침공해 일부 지역을 합병하고 프랑스령 아프 리카 식민지까지 강탈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이탈리아가 역으로 밀리면서 1947년 파리 조약에 따라 니스 인근의 텐다(Tenda)[6]와 브리가 마리티마(Briga Marittima)[7] 등 리구리아 산악 지대 및 알프스 산악 지대 일부를 프랑스에 추가로 할양해 현재 프랑스-이탈리아 국경이 완성되었다. 로마 제국 붕괴 이후부터 프랑스가 이탈리아보다 강력했고, 프랑스가 이탈리아에 사사건건 간섭했기 때문에 프랑스에 대한 이탈리아인의 반감은 큰 편이었다.이탈리아가 성장한 지금도 어느 정도 우위에 있기에, 프랑스로 넘어가 일하는 이탈리아인들이 많다. 프랑스계 이탈리아인과 이탈리아계 프랑스인[8]도 제법 있는 편이다.
이탈리아의 국적 항공사인 알리탈리아는 프랑스 - 독일 - 영국제 비행기인 에어버스 기종을 많이 주문한다.
2.3.1. 2010년대
2017년에는 조선사 STX 프랑스의 지분 매각으로 프랑스와 갈등을 겪었다. # 2018년 3월 30일에는 바르도네키아라는 프랑스와 접한 도시에서 무장한 프랑스 세관원들이 무단으로 침입해 월권을 행사한 사건이 발생되면서 31일에 이탈리아 외무부는 주이탈리아 프랑스대사를 초치했고 갈등이 발생되었다. # 그리고 2018년 6월 6일에는 다리오 토리넬리 교통부장관은 토리노-리옹 고속도로공사를 검토한다고 밝혔다. #2018년에 난민들이 몰타와 이탈리아의 입항거부로 스페인 측이 받아들인 사건이 일어나자 난민문제를 둘러싸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측은 갈등이 일어났다. # 그리고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난민문제를 둘러싸고 외교갈등이 일어나면서 각각의 대사를 초치하는 조치를 취했다. # 유럽연합이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비판하자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유럽연합이 난민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 프랑스 장관은 난민을 이탈리아가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 2018년 10월 15일에는 이탈리아 외무부가 프랑스 경찰의 트럭 1대가 토리노 부근의 국경을 넘어서 난민으로 보이는 2명을 숲속에 내려주고 간 사건을 두고 해명을 요구했다. #
2018년 6월 6일에는 다리오 토리넬리 교통부 장관이 토리노-리옹 고속 도로 공사를 검토한다고 했고 2018년 11월 11일에 토리노에서 이탈리아-프랑스를 연결하는 이 고속도로를 두고 3만명이 반대 시위를 벌였다. # 2018년 7월 18일에는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이 모나리자에 축구 유니폼을 입힌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자 이탈리아가 반발했다. # 루브르 트위터
이탈리아에서는 해외로 도피중인 테러리스트를 체포하는 것을 실시하고 있고, 30명중 14명이 프랑스에 숨어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이탈리아 내무부는 밝혔고, 프랑스에도 송환요청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 이탈리아 부총리가 프랑스는 아프리카 식민지배를 멈추지 않고 있다고 발언하자 프랑스는 이탈리아 대사를 불러 항의했다. # 그리고 이탈리아측이 프랑스에 대해서 일련의 도발행위를 하고 노란조끼 시위대를 만나자 주이탈리아 프랑스 대사를 소환했다. #
그리고 몽블랑 산을 두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갈등이 있다. # 이탈리아는 정상 능선에 따른 국경선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프랑스는 몽블랑 산에서 가장 높은 세 봉우리(몽블랑ㆍ돔 뒤 고테ㆍ푼타헬브로너)를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2019년 2월 16일에 이탈리아 언론은 세르지오 마테렐라 대통령이 마크롱 대통령의 방문 초청을 수락했다고 보도하면서 양국간의 갈등이 진정화되고 있다. # 그리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미켈란젤로 사후 500주년을 계기로 화해를 모색하고 있다. #
2.3.2. 2020년대
2020년초부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이탈리아에서 확산되는 가운데, 프랑스의 한 방송사가 이탈리아 국기를 연상시키는 코로나 피자 광고를 하자 이탈리아측이 반발했고, 논란이 일어나자 공식사과했다. #사르데냐에서 프랑스 관광객이 모래를 허가없이 가져오다가 체포됐다. #
2022년 11월 11일, 프랑스와 이탈리아 양국이 난민 문제로 갈등이 생겨났다. #
3. 문화적 접점
양국은 각자 고대 로마 문명의 후예를 자처하며, 라틴어를 조상으로 하며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보다 문법적으로 조금 더 라틴어에 가까운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는 상당한 문법적 유사성을 공유하기도 한다.하지만 문화적 유사성과 별개로 양국 국민들 사이의 문화 관련 정서는 전혀 우호적이지 못한데, 이원복 교수가 쓴 '진짜 유럽 이야기'에 따르면 이탈리아인들은 프랑스를 굉장히 아니꼬와 하는 이유는 자기들한테 몽땅 배워간 주제에 자신들이 서유럽 문화를 대표한다고 거들먹거려서라고. 여기에 어쩌다 이탈리아산 포도주를 마셔본 프랑스인들은 한다는 소리가 "프랑스 와인이 아닌 것 치곤 제법이구만" 이런다고 한다.
사실 이탈리아어 또한 라틴어의 직계후손이라기보다는 프랑크족의 정복으로 인해 유입된 프랑크-갈로로망어(고대 프랑스어)가 프랑크족의 철수 이후에 프랑크족과 갈리아인에 대한 반감 때문에 라틴어식으로 과잉교정된 형태에 가깝다. 하지만 로망스어의 본고장은 어디까지나 로마제국의 본토인 이탈리아이기 때문에 이탈리아인들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이 점을 인정하기 싫어하며, 천년 넘게 사분오열돼있던 이탈리아에서 근대 민족주의가 발흥할 수 있었던 것에도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꾸준한 침략과 횡포에 대한 반감의 지분이 컸다.
특히 혁명 이후로 쇼비니즘을 기조로 삼은 프랑스 민족 또한 고대 로마 제국의 직계라는 족보를 도구삼아 프랑스의 문화적 종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탈리아인들을 고깝게 본다. 즉 양국 국민들은 문화 면에 있어서는 아주 훌륭한 앙숙인 셈이다.[9] 비슷하게 스페인도 프랑스의 잦은 침공과 충돌이 자국 민족주의랑 연계되어 있고 문화적 호승심도 강해 프랑스를 향한 질시가 심한 편이다.
프랑스인들이 이런 이탈리아를 제대로 빡치게 만든 것이 이탈리아 요리 항목에서도 서술한 '생크림 까르보나라 사건'이다. 자국내 요리법에는 엄격하기로 소문난 프랑스가 정작 이웃나라 요리를 엉터리로 만드는 동영상을 웹상에 올리면서 이탈리아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키웠다.
또한 두 나라 다 축구 강국으로도 유명하다보니 당연하게도 축구로도 라이벌 관계다. 양국 다 국가 대표와 리그 모두 상위권으로 통한다.
4. 관련 문서
- 프랑스/외교
- 이탈리아/외교
- 유럽연합
- 라틴 연합
- 주요 7개국 정상회담
- 프랑스/역사
- 이탈리아/역사
- 프랑스/문화
- 이탈리아/문화
- 프랑스/경제
- 이탈리아/경제
- 프랑스인 / 이탈리아인
- 프랑스어 / 이탈리아어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서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남유럽 국가
[1]
알프스 서부
사부아와
발레다오스타에서는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지정한다는 내용이 있었으나 후술할 토리노 천도와 맞물려 이탈리아어가 사보이아 공국의 주요 공용어로 자리 잡았다.
[2]
사르데냐 왕국의
사부아와
니차,
피에몬테,
발레다오스타,
제노바 공화국 등
[3]
이탈리아 왕국(나폴레옹),
나폴리 왕국 등.
[4]
원래는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 전체 합병이 목표였으나 중간에 나폴레옹 3세가 배신해서 롬바르디아만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으로 편입되었고
베네토 지역은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이후 이탈리아 왕국으로 병합되었다.
[5]
특히 지원의 댓가로 사르데냐 왕국이 프랑스에 넘긴
니스의 경우, 프랑스는 이 지역에 강압적인 프랑스화를 시도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인 실향민들이
토리노,
제노바,
밀라노 등 이탈리아 반도 북부로 대거 유입되었다.
[6]
현재 프랑스
탕드(Tende).
[7]
현재 프랑스 라 브리그(La Brigue).
[8]
특히 과거
제노바 공화국 영토였던
코르시카에 많다. 당장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부터가 코르시카 태생의 이탈리아계 프랑스인이었는데, 그의
이탈리아어 이름은 '나폴레오네 부오나파르테' 였다. 그에 따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프랑스 황제로서의 칭호가 '나폴레옹 1세' 이며
이탈리아 국왕으로서의 칭호는 '나폴레오네 왕' 이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속했던 보나파르트 가문 또한 프랑스의 황가로서는 말 그대로 '
보나파르트 왕조' 였으며 이탈리아의 왕가로서는 '부오나파르테 왕조' 였다.
[9]
물론 남북갈등이라는 세부적인 사정을 파보면 오히려 남프랑스 주민이 이탈리아인보다 파리 사람을 더 싫어한다던가 북이탈리아 주민이 프랑스인보다 남이탈리아 사람을 더 싫어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대강은 그렇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