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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틀:국기| ]][[틀:국기| ]] 이집트의 수도· 최대 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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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Cairo | القاهر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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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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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카이로 주 | ||
면적 | 3,805㎢ | ||
인문환경 | |||
인구 | 10,100,166명 (2022년) | ||
21,900,000명 (광역권) | |||
인구밀도 | 8,011명/㎢ | ||
기후 | 온난 사막 기후(BWh) | ||
정치 | |||
시장 | 칼레드 압델 알 | ||
카이로 무역관 (KOTRA) | 주 이집트 대한민국 대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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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타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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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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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흐리르 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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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 하산 모스크(마드라사)와 알 리파이 모스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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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K로 촬영한 카이로의 모습 |
유네스코 세계유산 | ||
이름 | 한국어 | 역사 도시 카이로 |
영어 | Historic Cairo | |
아랍어 | القاهرة الإسلاميّة | |
프랑스어 | Le Caire historique | |
국가·위치 | 이집트 카이로 주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79년 | |
등재기준 | (i)[1], (v)[2], (vi)[3] | |
지정번호 | 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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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이로(القاهرة)는 이집트의 수도이자 최대도시이다. 별명은 북아프리카의 수도. 인구는 대략 1,000만 명이며 카이로 도시권[4] 인구는 카이로, 기자, 칼리우비야, 무누피아를 모두 합산할 시 최소 2100만에 달하는 거대한 도시이다. 기자 주가 행정구역 변화로 카이로의 많은 지역을 가져오면서 두 지역의 인구차이가 거의 없어졌다. 실제로 북아프리카권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아랍 연맹을 포함한 여러 국제기구의 본부가 있다. 즉 아랍의 수도라는 별명이 틀린 별명이 아니라는 것. 요즘은 두바이로 위상이 옮겨가고 있지만 여전히 카이로는 중요한 도시이다.카이로는 이집트 북부 나일 강 근처에 위치해 있다.[5] 중동, 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중심지로 이미 옛날부터 북아프리카의 중심지로 활약했으며, 중동과 아프리카의 맹주를 자처하는 이집트의[6] 수도란 점에서 그렇다.
아랍어 명칭은 정관사 '알'을 붙인 '알-까히라'(القاهرة, al-Qāhirah)정도가 된다. 카이로라는 표기는 영어 이름을 받아들인 것이다. 북한에서는 아랍어 명칭을 그대로 차용해 '까히라'라고 쓰고 있다.
정복자 라는 뜻이다.
2. 전경
나일강
나일강 야경
알 무이즈 거리의 시장
술탄 앗 나시르 하산 모스크와 피라미드
아즈하르 공원
3. 역사
이집트 박물관 정면의 스핑크스 석상
3.1. 고대
하이집트의 주요 도시 & 유적 | ||||
알렉산드리아 (엘이스칸다리야) |
라쉬드 (로제타) |
발티므 |
다미에타 (두미야트) |
포트사이드 펠루시움 |
다만후르 |
데숙 부토 |
카프르엘셰이크 |
만수라 멘데스 |
타니스 |
사이스 | 탄타 |
마할라엘쿠브라 삼만누드 |
||
와디 엘 나트룬 엘사다트 시티 |
시빈엘콤 |
반하 아트리비스 |
자가지그 부바스티스 |
빌베이스 |
10월 6일시 | 기제 |
카이로 (엘까헤라) |
헬리오폴리스 (머쓰르 엘게디다) |
라마단 10일시 |
오늘날의 카이로가 위치해있는 나일강 삼각주 지역은 북아프리카, 수단 공화국, 레반트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였기에 오랫동안 고대 이집트의 중심지였다. 서남쪽의 헬완은 이집트의 첫 수도인 멤피스였고, 동북쪽 외곽에는 종교도시인 헬리오폴리스가 있었다. 그러나 기원전 525년 아케메네스 제국의 침공으로 크게 파괴되었고 후자는 기원전 1세기 무렵 버려졌다. 한편 기원전 568년 이집트를 정복한 신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현 카이로 남부에 바빌론 지명을 붙였다고 한다. 하이집트와 중이집트의 경계였기에 이곳을 지나는 선박들은 통행세를 납부했고, 이를 위한 세관이 있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정복 후 건설된 알렉산드리아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수도가 되면서 멤피스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흘러 2세기 초엽 로마 제국의 황제 트라야누스는 현재의 카이로 남쪽의 나일 강과 홍해를 잇는 운하를 세웠다. 서기 300년 무렵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운하를 감시하기 위해 운하가 합류하는 나일강 동안에 요새릏 세웠는데, 후일 바빌론 요새라 불리며 카이로의 모태가 되었다.
3-4세기 로마 제국 시기 건축된 바빌론 요새
그 무렵 더 북쪽의 현재 엘아즈바키야 (시가지 중북부) 일대에는 텐둔야스 (ϯⲁⲛⲧⲱⲛⲓⲁⲥ) 혹은 움 두나인이라 불린 성벽 도시가 세워졌다. 주민들은 대부분 기독교도였고, 그 주교 키루스가 449년 에페소 공의회에 참석했다. 로마-페르시아 전쟁이 절정에 이르던 620년경, 사산 제국군이 일대를 정복했고 주민들이 시골로 피난가며 도시는 일부 버려졌다. 629년 동로마 제국이 수복한 이후로 바빌론 성채 주변으로 도시와 콥트교 성당들이 세워졌고, 이를 '콥틱 카이로'로 부른다. 현재에도 기독교도 구역으로 남아있다.
3.2. 중세
중세 시기 카이로의 4개 도시들을 비교한 지도
639년, 아므르 이븐 알 아스가 이끄는 4천의 이슬람 제국군이 칼리파 우마르의 재가도 받기 전에 이집트를 침공했다. 동로마 제국의 (콥트교 포함) 비칼케돈 기독교 종파들에 대한 박해와 전후 높은 세금으로 중앙 정부에 대해 적개심이 있던 주민들은 환영했고, 아므르는 손쉽게 펠루시움과 빌바이스를 함락했다. 640년 여름, 주바이르 이븐 알 아왐의 원군과 합류한 아므르는 옛 헬리오폴리스에서 동로마군을 격파하고 바빌론 성채를 포위했다. 그는 개종 / 지즈야 (인두세) / 전쟁의 선택지를 내걸며 포위를 9개월간 이어갔고, 641년 4월에 수비대는 지즈야 납부를 조건으로 항복했다.
포위동안 아므르는 바빌론 성 북쪽에 진영을 세웠는데, 천막 위에 비둘기가 둥지를 짓자 행운을 내린 하늘의 징표라 여겨 그대로 두고 알렉산드리아 원정에 나섰다. 그해 9월, 알렉산드리아도 점령하며 이집트를 평정하고[7] 회군한 아므르는 비둘기 둥지를 중심으로 옛 주둔지에 새 암사르 (병영도시)를 세웠다. 지명은 '천막들'이란 뜻인 알 푸스타트 (الفسطاط)로 붙여졌고, 중심부에 우선 북아프리카 최초의 이슬람 사원인 아므르 이븐 알 아스 모스크가 세워졌다. 다만 아므르는 헬레니즘 기부터 중심지이자 대도시이던 알렉산드리아를 계속 통치 거점으로 삼고 싶어 했지만, 칼리파 우마르는 해군이 미약했던 아랍인들에게 치소로 부적격하다 여겨 푸스타트를 새 치소로 삼게 하였다. 따라서 이슬람 시기 들어 이집트의 중심지는 약 천년 만에 해안에서 내륙으로 이전되었다.
3.2.1. 푸스타트
2004년, 발굴로 모습을 드러낸 푸스타트 유적
이슬람 정복 후 평화가 지속되며 알 푸스타트 (점차 그냥 '푸스타트'로 불렸다)는 알렉산드로스에 버금가는 도시로 성장했다. 본래 기독교도들의 바빌론과 구별되던 시가지는 점차 사회가 안정되면서 확장되어 결국 합쳐지게 되었다. 7세기 중엽, 푸스타트는 670년 카이라완의 건설 전까지 이슬람 제국의 마그레브 정복의 후방 기지로 활용되었고, 따라서 미스르 알 푸스타트 (푸스타트 요새)로 불렸다. 그리고 아랍인들은 이집트 자체를 요새란 뜻인 미스르로 부르게 되었다. 푸스타트의 아랍 주민들은 대부분 히자즈 및 예멘 출신이었고, 일부 유대인도 유입되었다. 8세기 우마이야 왕조의 아랍화 정책과 함께 푸스타트의 주요 언어는 빠르게 아랍어로 대체되었다.[8] 9세기 무렵 푸스타트의 인구는 약 12만명이었다.
자우하르는 969년 8월 8일, 푸스타트의 북쪽에 새 도시를 세우고 승리의 행성인 화성의 이름을 따 '알 까히라'로 명명하였다. 971년 파티마 칼리파 알 무이즈가 튀니지의 알 만수리야에서 그곳으로 천도한 이래로, 까히라는 천년 넘게 이집트의 수도로 유지되고 있다. 다만 건설 이후로도 까히라는 칼리파 및 관리들의 행정 수도 혹은 궁성이었고, 여전히 경제적으로는 평민들이 거주하는 푸스타트가 중심지였다. 987년 지리가 이븐 하우칼은 푸스타트가 바그다드의 1/3 규모라고 기록했다. 십자군의 위협이 시작될 무렵인 1168년 기준 푸스타트의 인구는 20만에 달했다. 페르시아인 지리가 나시르 호스로에 의하면 시내에는 최대 14층 높이의 건물이 있었고, 옥상에는 소와 수차로 끌어올린 물로 정원이 조성되었다 한다. 이러한 건물들은 회랑으로 둘러진 원형 광장을 중심으로 조성되었고, 각각 약 200여 명이 거주했다 한다.
또한 시장에는 과일, 꽃, 보석, 도자기 등 물품이 가득했다고 묘사했다.[9] 발굴 결과 당시 푸스타트에는 안달루스, 중국, 심지어 베트남산 물건까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번영하던 푸스타트는 십자군의 이집트 원정과 함께 쇠락하였다. 1168년, 아모리 1세의 십자군은 빌베이스를 함락한 후 모든 주민을 학살하였다. 그후 아모리가 접근해오자, 무력으로 막을 수 없다고 여긴 재상 샤와르는 주민들을 (재산도 챙기지 못하게 서둘러) 까히라로 소개시킨 후 2만통의 나프타 (석유)와 1만개의 미슈알 (불 폭탄)을 부어 푸스타트에 거대한 화재를 내었다. 역사가 알 마크리지에 의하면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고, 불길은 54일간 지속되었다 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방법으로 십자군의 진격은 저지되었고, 칼리파 알 아디드의 요청으로 시르쿠와 살라흐 앗 딘의 원군이 다가오자 아모리는 연공을 대가로 철수했다.
그후 살라흐 앗 딘이 집권, 샤와르를 처단하지만 이미 심하게 파괴된 푸스타트는 까히라에 주도권을 내어주고 그 교외 지역으로 남았다. 1166년 푸스타트에 정착한 유대인 의사 마이모니데스는 후일 살라흐 앗 딘의 주치의가 되었고, 푸스타트의 벤 에즈라 시나고그에서 미슈네 토라 등의 작품을 남겼다. 1182년, 살라흐 앗 딘은 푸스타트와 까히라를 모두 포괄하는 20km 길이의 성벽 건설을 추진했지만 1238년 무렵까지 상당 부분 건설되었음에도 결국 완성되지 못했다. 이로써 푸스타트의 부흥은 실패했고, 14세기 맘루크 시기부터 일대는 쓰레기 매립지 등으로 쓰이며 더욱 쇠퇴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독교도를 중심으로 수천의 인구가 있었고, 도자기 제작 및 쓰레기 수거 등을 업으로 하였다.
3.2.2. 아스카르 & 까타이
툴룬 왕조의 걸작인 이븐 툴룬 모스크
3차 피트나 말엽인 750년 6월, 패잔병과 함께 이집트에 당도한 마르완 2세는 이미 이집트가 압바스 왕조 측으로 배신한 것에 분노하며 총독 관저인 황금 궁전 및 나일 강의 교량들을 파괴하였다. 얼마 후 마르완 2세를 추격해 제거한 압바스 왕공 살리흐 빈 알리 ( 알 만수르의 숙부)는 푸스타트 북쪽에 '군사 도시'란 뜻인 마디나툴 아스카리 (مدينة العسكري)를 세워 호라산 부대를 정착시켰다. 장방형의 도시는 줄여서 알 아스카르 (العسكر)라 불리게 되었고, 9세기 중반 기독교 및 소작농 반란 시에 진압 거점이 되었다. 압바스 왕조는 9세기 후반 사마라의 혼란기를 겪으며 쇠퇴했는데, 그러던 868년 이집트 총독으로 부임한 페르가나 츌신의 튀르크 맘루크 아흐마드 빈 툴룬은 유능하면서 야망이 많은 자였다.
그는 우선 부임 시에 데려온 새로운 군대를 수용하기 위해 아스카르의 살짝 북쪽에 '구역들'이란 뜻인 알 까따이 (القطائع)를 건설하여 새 행정 수도로 삼았다. 까따이의 중심지인 야슈쿠르 산은 현지 전승에 따르면 대홍수 이후 노아의 방주가 닻을 내린 곳이라 한다. 도시 구조에 있어 아흐마드는 자신이 군사 훈련을 받은 이라크의 사마라를 참고하여 관료, 직원, 장교, 경찰, 수비대, 그리스인, 낙타 몰이꾼, 노예 등 계층별로 구역을 분리하였다. 까따이의 상징은 푸스타트의 아므르 이븐 알 아스 모스크가 과밀화되자[10] 아흐마드가 자신의 이름을 붙여 건설한 이븐 툴룬 모스크로, 현재까지도 카이로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모스크이다. 회랑의 끝이 뾰족한 아치는 2세기 후 유럽 기독교권에 수출된다.
9세기 중반 사마라 양식으로 세워진 나선형 첨탑 |
아흐마드가 세운 툴룬 왕조의 궁전인 다르 알 이마라 (아미르 궁전)는 사원 옆에 위치했고, 아미르는 개인 문을 통해 민바르 (설교대)에 드나들 수 있었다. 궁전은 넓은 연병장과 공원, 정원, 히드포룸 (경마장) 등을 갖추고 있었다. 또한 아흐마드는 도시로 이어지는 수도교를 세웠고, 873년에는 이집트 최초의 마리스탄 (병원)도 건설하였다. 또한 그는 878년 시리아를 원정하며 얻은 수익으로 여러 세금을 폐지하는 등 민중의 지지를 받았다. 한번은 칼리파 알 무타미드의 망명을 추진, 까따이를 이슬람권의 중심지로 만들 뻔했다. 884년 아흐마드의 사후 그를 계승한 아들 쿠마라와이는 압바스 조를 재차 격파하고 아스완 ~ 디야르바크르에 달하는 광활한 제국을 건설하였다. 이후 그는 궁전을 확장하고 관개 수로 및 하수도를 건설하는 등 인프라 증축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렇게 점점 도시의 위용을 갖추던 까따이는 896년 쿠마라와이가 젊은 나이에 암살당한 후 내분이 일어나는 등 쇠퇴했다. 14세의 나이로 계승한 그의 아들 자이쉬는 곧 살해되었고, 뒤이어 옹립된 하룬은 유약하여 재상들이 정치를 독점했다. 902년부터는 급진 시아파 조직인 카르마트가 시리아를 습격했고, 904년 무함마드 빈 술레이만 휘하 압바스 군대가 침공해 오는 와중에 하룬은 숙부 샤이반에게 살해되었다. 그리고 샤이반 역시 푸스타트에서 농성하다가 905년 1월 항복하며 툴룬 왕조는 멸망한다. 이후 까따이는 압바스 군에게 약탈당한 후 파괴되었다. 이후 행정 수도는 다시 아스카르로 환원되었고, 종교 시설이라 유일하게 남은 이븐 툴룬 모스크만이 번영하던 까따이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한편 아스카르, 까따이가 세워질 때에도 여전히 대다수의 주민이 거주하는 푸스타트가 실질적인 중심지였다. 3.2.3. 알 까히라
알 무이즈 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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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카이로 지도 | 알 아즈하르 모스크 |
이후 969년 8월, 이집트를 정복한 파티마 조의 대장군 자우하르 앗 사킬리는 아스카르 북쪽에 새 도시를 세웠다. 본래 그가 정한 지명은 튀니지에 있던 당시 파티마 조의 수도인 알 만수리야였는데, 그곳에 있던 칼리파 알 무이즈는 알 아즈하르 모스크 건설을 명령하였다. 도시가 완공된 973년, 알 무이즈는 공식적으로 천도하며 까히라탈 무이즈 (알 무이즈의 승리)로 명명하였다. 이는 후일 알 까히라, 즉 카이로의 어원이 되었다. 다만 이후로도 남쪽의 푸스타트가 최대 도시였고, 까히라는 칼리파 및 관료들이 거주하는 왕성으로 유지되었다. 이렇게 바그다드의 원형 도시와 유사한 2중 체제를 택한 이유는 집권층은 쉬아 이스마일파였던 것에 반해 민중은 (무슬림 중) 절대 다수가 수니파였기 때문이다. 파티마 조의 외면상 전성기를 이끈 알 하킴은 아즈하르 다음 가는 모스크를 세우는 등, 까히라는 조금씩 발전했고 왕실 및 군부의 현지화가 진행되었다.
알 하킴 모스크 | 알 무스탄시르 치세의 재상 바드르 알 자말리에 의해 지어진 알 푸투흐 성문 |
그러던 11세기 말엽, 알 무스탄시르의 재상이자 권신 바드르 알 자말리는 까히라의 규제를 완화하며 푸스타트에 거주하는 부유층의 이주를 허용했다. 1087 ~ 1092년에 그는 까히라에 현재까지 3개의 성문 등 일부가 남아있는 석축 성벽을 둘렀다. 각종 수공업과 나일 강의 교역항으로 번영하던 푸스타트는 1168년 십자군 전쟁 중 예루살렘 왕국의 공격 위협에 노출된 재상 샤와르에 의해 대대적으로 방화를 겪으며 쇠퇴했다. 이때 주민들이 대거 이주된 까히라가 이집트의 정치적 중심 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중심 도시로써 거듭나게 되었다. 당시 압바스 조의 바그다드는 쇠퇴일로에 있었으므로 이미 12-13세기부터 까히라는 아랍 세계에서 제일 큰 도시로 명성을 떨쳤고, 아이유브 왕조 및 맘루크 왕조 등 강대국의 수도가 되며 번영하였다.
1169년, 십자군을 격파하고 집권한 살라흐 앗 딘 유수프는 200년간의 시아파 색을 지우기 위해 파티마 조 때에 지어진 마스지드 (모스크)와 마드라사 (대학) 들에 대한 소외 정책을 편다. 알 아즈하르 대학의 시아파 교수들은 축출되었고 알 하킴 모스크는 기병들의 마구간으로 쓰이다가 후에는 십자군 포로들의 감옥으로 이용되었다. 다만 맘루크 왕조 대에 이르러 알 아즈하르 대학은 수니파 사상의 중심지로 자리 잡으며 현재까지 신학 대학으로의 명성을 유지하게 되었다. 한편 1176년부터 살라흐 앗 딘은 향후 7세기간 이집트 군주들의 거처가 될 카이로 시타델 건설에 나섰다. 시타델 건설 후 왕실 및 정부 기관들이 입주하며 카이로 시내는 특권층의 주거지에서 일반 평민들의 시가지로 변모했고 국내외 상인들로 북적였다. 한편 살라흐 앗 딘은 까히라와 푸스타트를 하나의 도시로 합치기 위해 둘을 두른 20km의 성벽을 둘렀으나 반세기 후까지 완공되지 않았다..
13-14세기 번영을 누리던 카이로는 중세 말부터 수난을 당하게 된다. 우선 흑사병이 14~15세기에 걸쳐 수십 차례나 유행하여 카이로 인구를 작살냈다. 당시 맘루크 왕조에서 맘루크를 사오는 주 거래처가 흑해 지역의 킵착계 튀르크 족속들이었는데, 이곳은 유럽 페스트 유행의 근원지였다. 따라서 흑사병이 진정되지 않고 계속 유행한 요인이 그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거기다가 중세 말 유럽 국가들이 지리상의 발견, 신항로 개척 등을 시작하면서 인도양을 통한 중개 무역을 주로 하던 이집트의 상업이 타격을 받았다. 맘루크들의 내분과 정치 불안 등 여러 요인으로 몰락하던 카이로는 결국 1517년 오스만 제국의 이집트 정복 이후 강대국의 수도에서 격이 떨어지긴 했지만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코스탄티니예)에 이은 제국 제2의 도시로서 체면치레는 했다.
3.3. 근대
알 아즈하르 모스크 옆에 18세기 말엽 이집트에서 자립한 알리 베이 알 카비르가 세운 아불 다하브 모스크
1809년 카이로 지도
오스만 제국의 속령으로 지내다 18세기 말 나폴레옹 전쟁 이후 무함마드 알리 왕조가 이집트를 통째 들고 독립하면서 이집트 국가의 수도가 되었다. 메흐메드 알리의 통치 시기 동안 카이로에는 조명이 설치되고 극장, 오페라가 건립되는 등 현대화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1882년 영국-이집트 전쟁이후 이집트는 영국의 지배를 받게되었고 카이로의 서쪽에는 유럽풍 건물들이 들어서고 유럽인들이 정착하여[11] 경제 중심지가 빠르게 동쪽에서 서쪽으로 바뀌었다.
영국의 지배는 20세기 초까지 지속되었고 이 시기 카이로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결국 1922년 영국은 이집트를 이집트 왕국으로 독립시켜주었다.[12]
이집트 왕국이 생겨난 후 카이로는 계속 성장하여 1882년 34만명이던 인구가 1937년 거의 4배에 가까운 130만명으로 증가하였고 면적도 10㎢에서 163㎢으로 확장되었다.
3.4. 현대
1950년대 카이로
카르스 엘닐 다리
현대 카이로 전경
그러던 1952년 검은 토요일 사건[13]으로 카이로 시내에 있는 거의 700개의 상점, 영화관, 카지노, 호텔이 파괴되었다. 이후 이집트 혁명이 일어나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카이로를 떠났으나 도시의 인구는 계속 증가했고 결국 당시 대통령이었던 가말 압델 나세르는 다리와 고속도로 네트워크를 개선하고 게지라 섬[14]과 강 주변을 개발했다.
20세기 후반 카이로는 인구가 급속하게 늘어났고 [15]이로인해 카이로 근교에 불법주택문제가 심화되는 등 여러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1992년 10월 12일 규모 5.8[16]의 지진이 발생해 545명이 사망하고 6512명이 부상,기자 피라미드의 벽돌이 떨어져 나가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17] 한국에는 당시 이집트와 수교 전이였기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나름 유럽권 언론에는 크게 보도된 사건이다.
2011년 아랍 민주화의 물결이 이집트에도 불어닥쳤고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200만명이 넘는 시위대가 당시 30년째 이집트를 통치하던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를 끌어내리기 위한 시위를 벌였고 결국 무바라크는 하야하게 된다.
무바라크의 사임 이후 무슬림형제단의 무함마드 무르시를 거쳐 압델 파타 엘 시시가 집권한 이후에는 카이로 동쪽에 새로운 행정수도가 건설되고 있다.
한국 현대사와도 인연이 있는 도시인데, 한국의 독립을 처음으로 언급한 국제 협약인 카이로 선언이 발표된 의미있는 곳이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에서 해당 선언이 있었던 장소에 카이로 선언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
4. 지리
카이로 광역권의 위성사진
도심을 관통하는 나일 강
이집트 북부의 도시로 나일강이 삼각주로 분기되는 지점의 바로 남쪽에 위치하여있다. 지중해에서 남쪽으로 165km, 수에즈 운하에서 120km떨어져있다.
5. 기후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카이로는 사막기후(BWh)에 속한다. 사하라 사막에서 바람이 불어오다보니 3월부터 5월까지는 굉장히 건조하다고한다. 여름 평균기온은 약 27.8°C이며 겨울 평균기온은 약 14.8°C이다.6. 환경
하지만 개발도상국의 대도시답게 공해가 심각해서 카이로의 유물들에 직접적인 손상을 끼치는 수준까지 와 버렸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1970-80년대 경제개발기 때와 흡사하다. 수천년을 버텨 온 파라오 람세스 2세의 거석상이 공해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2005년 카이로 밖으로 밀려난 게 대표적인 케이스다.
게다가 곳곳에 짓다가 만 건물들이 가득한데 다 지으면 세금을 부과하기에 몇몇 부분은 남겨둬서 '공사 중입니다.' 라는 표지판만 내걸면 건물세가 보류되기 때문이다. 건물주들은 좋을지 몰라도 이런 건물이 꽤 많아서 도시 미관에 나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여기는 땅만 파면 유물이 쏟아지는 도시로 여러모로 유명하다. 그래서 카이로 지하철을 놓을 때 땅 한번 파니까 국보급 유물이 쏟아져나와서 여러모로 고생 좀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인구가 많아서 200만 명은 공동묘지(!)에 살고 있다. #
7. 행정구역
카이로를 카이로 주(州)로 한정한다면 나일강 동쪽 지역 일부지만, 이집트 사람들이 생각하는 카이로의 범위는 더 넓다!(그래서 나일강 서쪽지역의 정확한 행정구역은 기자이지만 배달 음식 시킬때 그냥 카이로라고 해도 온다.) 이 범위를 대 카이로(القاهرة الكبرى,알 까히라 알 쿠브라)라고 한다. 본 문서에는 일반적인 인식을 따라서 대 카이로로 작성한다.7.1. 카이로 주(محافظة القاهرة)
카이로 주 (이집트) | ||
행정구역상 카이로에 속하는 지역만 쓸 것.
나일 강의 동쪽에 위치한다.
7.1.1. 카이로 동부
뉴카이로 전경. 카이로 동쪽에는 여러 계획도시들이 많다.
- 엘 마르그(المرج): 카이로 지하철 1호선 종점이다. 깔루비야 주와 경계선을 맞대고 있다.
- 앗 살람(السلام)
- 아인 샴스(عين شمس): 원래는 아인샴스 대학 전체가 이 곳에 있었으나, 현재는 카이로 시 서부의 압바시아 지역으로 옮겨갔다. 서울대학교와 비슷한 케이스.
- 엘 마따리야(المطرية)
- 엘 노즈하(النزهة): 카이로 국제공항이 위치해 있다.
- 마스르 엘 게디다( 뉴카이로, مصر الجديدة): 이름을 풀이해보자면 '새 이집트'라는 뜻으로, 이름에 걸맞게 이름난 부촌이기도 하며, 유럽식 건물들이 많이 있다. 뉴카이로 내부에는 중동에서 가장 규모가 큰 CFC (Cairo Festival City) 가 위치해있다.
- 나스르 시티(مدينة النصر): 신도시 중 비교적 오래된 신도시 중 하나로, 다시 동쪽과 서쪽으로 나뉜다. 아즈하르 대학교 본교캠퍼스가 여기에 위치해 있으며, 또한 헬리오폴리스와 맞닿아 있는 지역에는 시티 스타스(city stars)가 여기에 위치해 있다. 1981년 10월 6일 안와르 사다트 전 대통령이 암살당한 곳도 이곳이다. 다운타운에 비하면 살기 좋은 동네이나, 지하철이 없어서 교통편이 매우 불편한 것이 단점이다.
- 멘시예트 나스르(منشية ناصر ): 이집트 최대 빈민가 중 하나. 파티마 왕조 시기부터 형성 된 무덤들이 있는 “죽은 자들의 도시”가 이 곳에 있으며, 여기에는 10만이 넘는 빈민이 살고 있다! 그 옆에 모까땀과 마주한 곳에는 성지순례 필수 코스인 쓰레기 마을과 동굴 성당으로 알려져 있는 성 시몬 성당이 있다.
7.1.2. 카이로 서부
'카이로의 맨해튼'인 게지라 섬 일대
- 엘 와일리(الوايلى): 압바시야라는 지명으로 더 불린다. 한국어과가 있는 대학으로 유명한 아인샴스 대학교가 여기에 위치해 있다. [18]
- 엘 모스키(الموسكى): 카이로 지하철 2,3호선 환승역이자 유명한 시장인 아타바가 이곳에 있다.
- 밥 엘 샤아리야(باب الشعرية): 칸 엘 칼릴리가 있는 무에즈 거리를 여기를 통해서 갈 수 있다. 3호선 밥 엘 샤아리야 역에서 내려서 쭉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살라훗 딘 시절에 지은 성벽이 남아 있다.
- 불라끄(بولاق)
- 엘 아즈바키야(الأزبكية): 보통은 인근 지하철 역인 1호선 감므라 역이나 엘 데메르다쉬 역으로 불린다. 콥트 정교회 본산이 있는 성 마르코 대성당이 있다.
- 가릅(غرب)
- 압딘(عابدين): 다운타운에 속하는 곳에 하나로, 카이로 주 청사와 압딘 궁(palace)이 이 곳에 위치해 있다.
- 까스르 엘 닐(قصر النيل): 다운타운에 속하는 곳이자 유명한 거리 중 하나로, 타흐리르 광장과 이집트 박물관, 부촌 중 하나인 가든 시티(garden city)가 이 곳에 위치해 있다.[19] 1,2호선 사다트 역이 있다.
-
자말렉(الزمالك): 게지라(الجزيرة) 라고 불리기도 한다. 나일강 섬에 있기 때문에.. 카이로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카이로 타운과 오페라하우스, 그리고 외국 공관[20]이 매우 많이 위치해 있고, 이집트에서도 손 꼽히는 부촌이자 외국인 거주지역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한남동-이태원 위치.
월세도 비싸다. 기본 1000$[21]
7.1.3. 카이로 남부
이집트 최초의 이슬람 사원인 아므르 이븐 알 아스 사원
- 싸예다 제이납(السيدة زينب): 무함마드의 교우 중 하나인 제이납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모스크가 있다.
- 엘 바사틴(البساتين)
- 엘 타빈( التبين)
- 마스르 엘 까디마(مصر القديمة): 올드 카이로 중 콥트 박물관과 성가정이 피신한 장소에 세워진 성당, 642년 완공된 아므르 이븐 알 아스 모스크 등이 있다. 푸스타트가 바로 이곳이다.
- 다르 엘 살람(دار السلام)
- 엘 칼리파(الخليفة): 살라훗딘의 시타델이 있는 곳이다.
- 마아디(المعادي): 자말렉과 더불어 이름난 부촌 중 하나. 미국계 사립학교가 이 곳에 위치해 있어, 대부분의 한인들이 여기서 산다. 카이로에 있는 한국 식당 5개 중 4개는 여기에 있을 정도이다. 호스니 무바라크가 구금되어 있는 군 병원도 이 곳에 있다.
- 모까땀(المقطم): 시타델을 가다보면 큰 돌 산이 있는데, 그곳을 모까땀이라고 한다. 쓰레기 마을을 보통 모까땀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멘시예트 나스르에 속해있는 곳이다. 여하튼 산을 넘으면 고급 빌라가 굉장히 늘어서 있는 곳이다.
- 헬완 (حلوان): 원래는 헬완 주(州)였으나, 카이로 주로 편입되었다.
- 5월 15일 지역(15 مايو)
7.1.4. 카이로 북부
- 앗 제이툰(زيتون): 콥틱 교회에 의하면 이 곳에 있는 교회에 성모가 출현했다고 한다.
- 하다옉 옵바(حدائق القبة)
- 앗 샤라비야(الشرابية)
- 로드 엘 파라그(روض الفرج)
- 엘 싸힐(الساحل)
- 엘 자와히야 엘 함므라(الزاوية الحمراء)
- 엘 쇼브라(شبرا): 뒤에 나올 쇼브라 엘 케이마랑은 다르다! 쇼브라는 카이로 주, 쇼브라 엘 케이마는 깔루비야 주에 소속되어 있다.
7.2. 기자 시(مدينة الجيزة )
기자 (이집트) | ||
행정구역상 기자에 속하는 곳만 기재할 것.
나일 강의 서쪽에 위치한다.[22]
- 도끼(الدقى)[23]: 다운타운에서 다리를 건너서 자말렉을 지나서 서쪽으로 가면 도끼가 보인다. 자말렉과 마찬가지로 외국공관이 많으며, 대한민국 대사관도 여기에 위치해 있다. 아랍어 학원이 많이 위치해 있어 외국 학생(한국인 유학생 포함)들이 많이 거주하며, 이집트에서도 중산층 이상이 사는 곳이다.
- 아구자(العجوزة): 무한데신이라는 거리가 유명하다.
- 불라끄 엘 다크루르(بولاق الدكرور): 유명한 빈민가 중 하나.
- 하람(الهرم ): 피라미드와 인접한 곳으로, 관광호텔들이 많은 까닭에 카바레라고 불리는 환락가가 이곳에 있다. 애초에 피라미드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으로 피라미드가 이집트 아랍어로 엘-하람이다.
- 엘 아므라니야(العمرانية)
- 임바바(إمبابة): 쇼브라 엘 케이마, 불라끄 엘 다크두르와 더불어서 유명한 빈민가 중 하나다.
- 북 기자(شمال الجيزة)
-
남 기자(جنوب الجيزة):
카이로 대학교가 이 근방에 있다.
카이로 대학교인데 기자에 있는 게 함정 - 엘 모닙(المنيب)
- 킷 캣(الكيت كات)
7.3. 그 외 기타 지역
- 쇼브라 엘 케이마(شبرا الخيمة): 깔루비야 주의 주도로, 공업도시이자 유명한 빈민가이다.
- 뉴카이로(القاهرة الجديدة): 주로 타감마아 카미스, 레합, 까따미야 등의 부유층을 위한 신도시다. 차 없으면 다니기 힘들다.
- 10월 6일(مدينة 6 أكنوبر)시& 쉐이크 자이드 시(مدينة الشيخ زايد)
- 오부르 시(مدينة العبور)
- 슈룩 시(الشروق)
- 마디나티(مدينتى)
8. 교통
카이로 지하철 노선지도
람세스역 내부
카이로는 광범위한 도로망, 철도 시스템, 지하철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특히 람세스 역이 이집트 교통망의 중심지역할을 한다.
9. 경제
카이로는 이집트 인구의 약11%, 이집트 GDP(PPP)의 약 22%를 차지한다. 대다수의 출판사와 언론 매체, 영화 스튜디오가 카이로에 있으며 전국의 병원과 대학의 절반이 이곳에 있다. 카이로의 경제는 전통적으로 정부 기관과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며, 관광업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10. 기타
12세기 파티마 조 때에 지어진 알 아크마르 모스크
구시가지의 성벽
맘루크 왕조 시기 건축물이 즐비한 알 무이즈 거리
1997년 대한민국의 서울특별시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이에는 카이로 선언이 발표된 곳이라는 역사적인 배경도 작용했으리라 보인다. 면적과 인구가 모두 서울과 비슷하다.
대한항공이 한때 타슈켄트 경유로 인천 - 카이로 노선을 운항했지만, 2011년 이집트 혁명 이후의 내정 불안으로 인해 현재는 단항되어서 두바이, 이스탄불,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해야 한다. 2019년부터 대한항공이 여행사를 통한 전세기 직항편을 운항한다.
이슬람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헬리오폴리스같이 고대 이집트 문명 관련 유서 깊은 지역도 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아랍 지역에 불어닥친 반유대주의의 영향으로 천여년간 이어진 카이로의 유대인 공동체는 거의 사라졌으나, 2022년 기준 3명이 여전히 거주 중이다. #
11. 자매결연 도시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슈투트가르트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서울 -
[[러시아| ]][[틀:국기| ]][[틀:국기| ]] 모스크바 -
[[리비아| ]][[틀:국기| ]][[틀:국기| ]] 트리폴리 -
[[모로코| ]][[틀:국기| ]][[틀:국기| ]] 라바트 -
[[수단 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하르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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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 ]][[틀:국기| ]][[틀:국기| ]] 아부다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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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틀:국기| ]][[틀:국기| ]] 이스탄불 -
[[팔레스타인| ]][[틀:국기| ]][[틀:국기| ]] 동에루살렘
12. 매체에서 등장
12.1. 만화 및 애니메이션
12.1.1. 닥터 스톤
애니메이션 1기 1화에서 석화 광선이 퍼지는 도시중 하나로 나온다. 정확히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위치한 기자 시.12.1.2. 죠죠의 기묘한 모험
3부 스타더스트 크루세이더즈에서는 주역들의 최종 목적지이자 최후의 결전이 일어난 장소이다.12.2. 게임
12.2.1. 징기스칸 4
아이유브 왕조와 맘루크 왕조의 수도로 나온다.12.2.2. 도미네이션즈
부두 원정 목적지 중 하나로 등장한다.자세한 내용은 카이로(도미네이션즈) 문서 참고하십시오.
12.2.3. 아스팔트 9: 레전드
트랙으로 나온다.1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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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계의 뜨는 여행지 | |||
<colbgcolor=#FFFFFF><colcolor=#000> 1위 | 마요르카, 발레아레스 제도 | |||
2위 | 카이로, 이집트 | |||
3위 | 로도스, 도데카니스 제도 | |||
4위 | 툴룸, 멕시코 | |||
5위 | 두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 | |||
6위 | 이비사, 발레아레스 제도 | |||
7위 | 나타우, 브라질 | |||
8위 | 아루샤, 탄자니아 | |||
9위 | 괴레메, 튀르키예 | |||
10위 | 산토리니, 키클라데스 제도 | |||
11위 | 파라티, 브라질 | |||
12위 | 아루바, 안틸레스 제도 | |||
13위 | 스플리트, 크로아티아 | |||
14위 | 플라야 델 카르멘, 멕시코 | |||
15위 | 하와이 섬, 하와이 | |||
16위 | 룩소르, 이집트 | |||
17위 | 도미니카 공화국 | |||
18위 | 찰스턴, 사우스캐롤라이나 | |||
19위 | 생마르탱/신트마르턴 | |||
20위 | 북 말레아톨, 몰디브 | |||
21위 | 잔지바르, 잔지바르 군도 | |||
22위 | 라 포르투나 데 산 카를로스, 코스타리카 |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2]
특히 번복할 수 없는 변화의 영향으로 취약해졌을 때 환경이나 인간의 상호 작용이나 문화를 대변하는 전통적 정주지나 육지·바다의 사용을 예증하는 대표 사례
[3]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4]
대한민국의
서울, 인천, 경기도 등 수도권 지역 같은 것.
[5]
사실 이집트 국토 자체가 나일강 유역 및 삼각주에 인구가 집중되어있어서 영토는 남한의 10배가 넘지만 실질 가용면적을 고려하면 남한보다 작은 북부 나일강 삼각주 지역에 대략 7000만 명 정도가 산다.
[6]
그런데 실제로 이집트는 제4차 중동전쟁 후 캠프 데이비드 평화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을 정식 독립 국가로 승인하면서 중동 아랍 국가들의 격분을 사며 이로 인해 아랍 국가들의 지역기구인 아랍 연맹에서도 추방당하는 등 중동 및 북아프리카 아랍 세계 국가들로부터 외교적으로 고립되자 르완다, 가나, 우간다, 케냐, 카메룬, 탄자니아, 잠비아, 모잠비크 같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우호관계를 만들며 남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영향력 행사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맺기 전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주도하며 중동 아랍권의 맹주를 자처할때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이스라엘과의 국교 단절을 요구하는 등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대한 외교적 영향력이 있긴 있었다.
[7]
641년 11월 동로마 총독 키로스는 인두세 및 공물을 대가로 교회의 자치를 보장받고, 이듬해 9월까지 남은 병력과 함께 이집트를 떠났다.
[8]
다만 상이집트에서 콥트어는 맘루크 시기까지 주요 언어 지위를 유지한다
[9]
한 학자는 하루 걷히는 세금만 2억원 어치였을 것으로 추산한다
[10]
역사가 알 마크리지에 의하면 금요 예배 시에 아흐마드 휘하 일행이 다 들어가지 못했다 한다
[11]
19세기 말 유럽인은 카이로 인구의 5%를 차지했다.
[12]
하지만 영국군은 1956년까지 이집트에 주둔했다.
[13]
카이로 화재라고도 한다.
[14]
카이로를 지나는 나일 강에 위치한 섬이다. 미국 뉴욕시의 맨해튼 섬의 도시에서의 위치와 비슷하다.
[15]
1947년 약 300만명이었던 카이로 광역권의 인구는 2006년 1600만명으로 증가했다.
[16]
경주 지진과 규모 자체는 같고,최대진도도 VIII(8)로 비슷하지만 안 그래도 후진국인 이집트에서 그것도 1992년에 일어났기에 피해가 극심했다.
[17]
의외로 간과하기 쉬운 사실인데,이집트를 포함한 북아프리카는 세계적으로 봐도 상당히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다.아프리카판과 유라시아판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더군다나 카이로는 아라비아판도 근처에 있는 상당한 지진 위험지대다.당장 세계적인
초화산으로 꼽히는
산토리니와
캄피 플리그레이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자.
[18]
구글링에 의하면, 아인샴스 대학은 총 8개의 캠퍼스로 카이로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고 한다. 아인샴스 대학의 공식 페이스북
#에 표기된 대학의 위치는 엘 와일리 지역인 것으로 보아 메인 캠퍼스는 엘 와일리 지역에 있는 것이 맞는 듯하다.
[19]
여담으로 이 지역에 나일강을 건너는 다리가 놓여져 있는데, 이 다리가 어떤 곳이냐면 바로 만화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서 빌런
DIO가
쿠죠 죠타로한테
로드롤러를 떨군 곳이기도 한다.
[20]
북한 대사관도 있다!
[21]
한인 식당이 하나 위치해 있다. 그 외 나머지 한인 식당은 전부 마디에 있다.
[22]
기자 시는 기자 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23]
이집트 아랍어로는 “도으이”라고 발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