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24:55

파올로 말디니/클럽 경력/AC 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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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말디니 데뷔전.jpg
▲ 1985년 데뷔 당시
소속팀 <colbgcolor=#ffffff,#191919> AC 밀란 ( 세리에 A)
등번호 3
5(1987-1995)
6(1986-1995)
2(1986-1989)
4(1985-1987)
14(1984-1987)
기록
파일:세리에 A 로고.svg
647경기
29득점 28도움
135경기
3득점 7도움
파일:UEFA 유로파 리그 로고 화이트.svg
22경기 1도움
파일:코파 이탈리아.png
72경기
1골 5도움
파일:Supercoppa_logo.png
6경기 1도움
파일:UEFA 슈퍼컵 로고_white.svg
7경기 1도움
2경기
파일:인터image.jpg
5경기
합산 성적
901경기
33득점 43도움
1. 개요
1.1. 1985-86 시즌1.2. 1986-87 시즌1.3. 1988-89 시즌1.4. 1989-90 시즌 1.5. 1991-92 시즌1.6. 1993-94 시즌1.7. 1994-95 시즌 ~ 1999-00 시즌1.8. 2000-01 시즌1.9. 2002-03 시즌 ~ 2003-04 시즌1.10. 2004-05 시즌 ~ 2005-06 시즌1.11. 2006-07 시즌1.12. 2007-08 시즌1.13. 2008-09 시즌
2. 은퇴
2.1. 말디니가 만나본 선수들과 감독들

[clearfix]

1. 개요

파올로 말디니 AC 밀란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
사실상 말디니의 클럽 경력 전체를 소개하는 문서라고 봐도 무방하다.

1.1. 1985-86 시즌

1985년 1월 20일, 우디네세와의 경기에서 부상을 입은 세르지오 바티스티니와 교체되며 데뷔전을 갖는다. 이때 나이 고작 16세. 더 놀라운 건 17세의 나이일 때 AC 밀란의 주전이 되었다.

1.2. 1986-87 시즌

마우로 타소티- 프랑코 바레시-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와 함께 단단한 수비 라인을 구축했고 1986-87 시즌에는 오렌지 삼총사가 결성되었다. 카를로 안첼로티, 로베르토 도나도니,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등 중원과 공격 라인도 막강했다. 이들은 밀란 제너레이션이라 불리며 아리고 사키 지휘 아래 축구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1] 그렇게 그 시즌에 14골밖에 허용하지 않았고 첫 스쿠데토를 들어올린다.

1.3. 1988-89 시즌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FC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를 상대로 4-0 완승을 거두며[2] 20년 만에 유러피언컵에서 우승한다.

1.4. 1989-90 시즌

또다시 결승전에 오른 밀란은 프랑크 레이카르트의 결승골로 SL 벤피카를 1-0으로 꺾으며 유러피언컵 2연패를 이룩하고 승승장구한다.

1.5. 1991-92 시즌

사키가 떠나고 카펠로가 감독으로 부임한 밀란은 계속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1991-92 시즌에는 아예 무패 우승을 달성했다.

1.6. 1993-94 시즌

1993-94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명장 요한 크루이프가 이끌던 '드림팀' 1기 FC 바르셀로나를 4:0으로 학살하고[3] 빅 이어를 들어올렸고, 같은 시즌 세리에 A 우승까지 차지하며 더블을 기록한다. 그리고 같은 해 1994 미국 월드컵에서의 준우승과 겹쳐 말디니 본인도 1994년 발롱도르 3위,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1위를 차지한다.

1.7. 1994-95 시즌 ~ 1999-00 시즌

1994-95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2연속으로 진출했지만 AFC 아약스에게 0-1로 패하여 준우승을 차지한다. 말디니 본인은 1995년 FIFA 올해의 선수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카펠로가 떠나고 사키가 다시 부임했지만, 리그 11위를 하는 등 사키라는 이름값에 맞지 않게 굉장히 부진했고 카펠로를 다시 감독으로 선임하지만 팀의 기량은 점점 하락하고 있었다.

밀란 제너레이션 1기 세대가 끝나며 2000년대 초반까지는 그렇다 할 성적 하나 내지 못했다. 굳이 뽑자면 알베르토 자케로니 올리버 비어호프를 활용한 뚝배기사커 하나로 뜬금없이 이뤄낸 스쿠데토 하나뿐이었다.

1.8. 2000-01 시즌

그러나 2000-01 시즌에 카를로 안첼로티가 감독으로 부임한다. 이때 말디니는 저주가 걸렸던(…) 산 시로 구장에서 그만 부상을 당해 15경기를 뛰는 데 그쳤고,[4] 무관에 그친다.

1.9. 2002-03 시즌 ~ 2003-04 시즌

다음 시즌에 후이 코스타, 알레산드로 네스타, 카푸 등의 영입이 이어지며 2002-03시즌에는 주장 완장을 찬 말디니의 밀란이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말디니는 발롱도르 3위에 등극한다.[5]

파일:FB_IMG_1608207337889.jpg

1.10. 2004-05 시즌 ~ 2005-06 시즌

2004-05 시즌부터는 안드레아 피를로, 안드리 셰브첸코, 카카, 젠나로 가투소 등이 제대로 활약하며 밀란에도 점점 따듯한 바람이 부는 듯 했다. 또 야프 스탐이 오면서 말네스카 라인을 형성하지만 사실 이 수비 라인이 제대로 가동된 시간은 한 시즌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말디니와 카푸는 이미 30줄을 타고 있었고 네스타는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나오지 못했기 때문. 리그 최저 실점도 리그 우승과 함께 유벤투스 FC에게 내줬다.

때문에 2004-05 시즌에 남은건 챔피언스 리그뿐이었고 결국에는 결승까지 진출한다. 결승전은 리버풀 FC와의 경기였는데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말디니의 챔스 최단 시간 골,[6] 이후 에르난 크레스포의 쐐기를 박는 2골로 전반전이 끝나며 빅 이어를 확실히 드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후반전 스티븐 제라드의 헤더 골을 시작으로 3골을 내리 먹히며 승부차기까지 갔고 예지 두덱이라는 벽에 막혀 결국 패배하고 만다. 이것이 바로 이스탄불의 악몽. 이때부터 풀백으로서는 예전 같은 모습이 나오지 않자 말디니는 아예 센터백으로 주 포지션을 변경했다.

1.11. 2006-07 시즌

파일:2006-07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빅 이어를 들어올리는 말디니.png

2006-07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리버풀을 상대로 설욕에 성공해, 빅 이어를 들어올렸다.

말디니는 2006-07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할 예정이었고, 재계약을 시도하던 밀란과의 협상도 연봉 문제로 진전이 안 되었지만, 5위로 그치면서 체면을 제대로 구긴 밀란이 안타까웠는지 2008년까지 더 뛰겠다고 발표를 했다.

1.12. 2007-08 시즌

2007-08 시즌에는 웬만한 젊은 수비수보다도 뛰어난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아스날전에선 평점이 제일 높았다. 사실 그 경기를 보면서 가장 혀를 찼던 것은, 상대 팀 아스날의 주장이라는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말디니가 프로 데뷔했을 때 태어나지도 않은 새파란 것이었으니[7] 그리고 또 한 시즌 더 뛰겠다고 했다.

1.13. 2008-09 시즌

은퇴 시즌인 2008-09 시즌 말기에는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조르조 키엘리니한테 빡쳐서 키엘리니의 멱살잡는 평소 말디니답지 않은 거친 행동을 보이면서[8][9] 경고를 받았다. 참고로 보통 이런 멱살잡이가 벌어지면 벤치 클리어링으로 이어지는데 상대가 말디니이다 보니 키엘리니 동료들도 말디니 달래기로 일관했다.[10]

그의 마지막 홈 경기에서는 밀란 팬들에게 야유를 받기도 했다. 밀란 팬들은 말디니를 존중하지만, 우리의 캡틴은 영원히 프랑코 바레시라고 했는데, 이는 예전 2004-05 시즌에 이스탄불에서 벌어졌던 챔스 결승전에서 밀란 팬들이 밀란의 드라마틱한 패배에 분노하여 비난하자 말디니가 역으로 팬들을 비난했던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는 것과 밀란 보드진의 막장 경영 때문에 애꿎은 말디니가 희생되었다는 것.

어쨌든 이 일은 유럽 축구계의 저명한 선수, 인사들 모두가 '희대의 병신짓'이라고 비난할 정도로 희대의 병크였다.[11]

2. 은퇴

이후 2009년에 40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여담으로 말디니는 밀란에서만 24년동안 902경기나 뛰며,[12] 7개의 스쿠데토와 5개의 빅 이어[13]를 들어올렸다.

디에고 마라도나부터 미셸 플라티니, 호마리우,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호나우두, 지네딘 지단, 루이스 피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모두 상대해본 유일무이한 수비수.[14] 이것만으로도 말디니의 위엄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2.1. 말디니가 만나본 선수들과 감독들

말디니는 선수생활을 20년 넘게 지속하며 수많은 선수들과 감독과 뛰거나 상대해봤다. 말디니가 밀란 소속으로 뛰면서 같이 뛰거나 상대해봤던 선수들을 나열한 목록은 다음과 같다.
말디니가 만나온 선수들은 그 숫자와 이들의 클래스[16]를 고려하면 말디니의 선수 커리어가 정말 괴랄하기 그지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대했던 팀들이나 지도를 받았던 감독들도 명장들이 쏟아지는데 밀란에선 아리고 사키, 파비오 카펠로, 카를로 안첼로티[17], 알베르토 자케로니, 파티흐 테림이 있으며, 세리에에선 즈데넥 제만, 디노 조프, 마르첼로 리피, 스벤예란 에릭손, 조반니 트라파토니,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카를로 마초네, 로베르토 만치니, 주제 무리뉴, 로이 호지슨, 네비오 스칼라, 알베르토 말레사니, 체사레 프란델리, 프란체스코 귀돌린, 마르코 타르델리, 엑토르 쿠페르, 다니엘 파사레야 가 있고, 국가대표 팀에선 아버지인 체사레 말디니의 지도도 받았었고, 국제적으로는 요한 크루이프, 루이 판할, 알렉스 퍼거슨, 조지 그레이엄, 잔루카 비알리, 루이스 페르난데스, 하비에르 이루레타, 마티아스 자머 등이 있다.


[1] 실제로 가장 강력했던 축구 클럽 순위를 정할 때, 0809~1112 바르셀로나를 제외하면 가장 최일선에서 거론된다. [2] 반 바스텐 루드 굴리트가 멀티골을 기록했다. [3] 여담으로 이때 크루이프 감독이 인터뷰에서 "AC 밀란에게 진짜 축구가 무엇인지 가르쳐주겠다" 라며 비아냥 거렸지만 현실은... [4] 그래서 데려온게 칼라제다. [5] 여담이지만 네드베드의 수상으로 끝난 03년도 발롱도르 시상 당시 이탈리아 축구계는 전폭적으로 말디니의 수상을 지지했다. 다만 유벤투스 라인은 차마 네드베드와 말디니 둘 중에 하나를 지지할 수가 없어서 조심스러운 중립을 유지했다. 네드베드 수상 이후에 이탈리안 축구인들의 반응이 의외로 코믹하다. 특히 가투소와 토티. 해당 링크 [6] 이때 말디니의 나이는 36세 333일로 이 골로 말디니는 챔스 결승 역대 최고령 득점자로 남아 있다. [7] 파브레가스 87년생, 말디니 1군 데뷔 85년... [8] 카카와의 공중 볼 경합 중에 키엘리니가 손으로 카카의 얼굴을 쳤는데 그걸 본 말디니가 "너 이 새끼 왜 우리 카카 때려"하면서 멱살을 잡은 것. [9] 이 일로 키엘리니는 완전 상처를 받았는데, 다름 아닌 키엘리니의 우상이 바로 말디니이기 때문. 키엘리니는 프로 데뷔 시절부터 레프트백과 센터백을 오갈 수 있는 차세대 말디니로 각광받기도 했고, 본인도 말디니를 따르다 못해 본인은 그에 비하면 미천한 몸이라고까지 하며 하악댔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당시 장면을 보면 멱살은 잡혔으나 싸우거나 화를 내기는 커녕 말디니에게 하소연하는 키엘리니의 모습에서 억울함과 서러움이 뚝뚝 묻어난다. 실제로 나중에 울었다... 결국 말디니가 추후에 사과했다. 경기내내 너무 거친스타일로 카카를 괴롭히는 키엘리니를 보고 참다가 터진... [10] 실제 영상을 보면, 상대팀 키퍼인 잔루이지 부폰이 말디니를 안고 달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이 때 말디니는 이탈리아의 현역 레전드이자 대선배였기 때문에 멱살잡는다고 대들만한 상대는 이탈리아 리그 내에 없었다(...). 발로텔리라도 덤빌 수 없는 상황 이천수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더군다나, 부폰의 경우 말디니가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있을 당시에 같이 선수 생활을 한 경험이 있어서 다른 선수들보다 말디니의 실제 모습이나 성격을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같은 팀 동료가 멱살 잡힌 것에 대해 말디니에게 항의를 하기 보다는 말디니를 먼저 달래주고 나중에 상황을 수습하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11] 심지어 상대였던 로마의 감독 루치아노 스팔레티도 격분하였다. 그래서일까, 바르샤의 과르디올라 감독은 08-09 챔스 우승 이후 우승의 영광을 말디니에게 돌리는 등 그에 대한 존경심을 전했다. [12] 밀란 역사상 최다출장 기록이다. [13] 밀란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횟수가 7회라는 점으로 볼 때 클럽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태반 이상의 공적을 세운 셈. [14] 아쉽게도 메시를 직접 상대한 적은 없다. [15] 이반 엘게라의 동생이다. [16] 적어도 한 시즌 이상 소속팀과 리그, 국가대표팀에서 준주전~주전으로 활약했고, 자신이 속한 팀의 주장직을 맡았던 선수들도 꽤있으며, 소속팀과 국가대표에서 굵은 족적을 남기며 레전드가 된 선수들이 대다수이고, 월드컵, 유로, 챔피언스 리그, 코파 아메리카, UEFA컵, 컵 위너스 컵 우승자와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 UEFA 올해의 클럽 선수,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국제 메이저 대회 MVP 수상자들도 심심찮게 있고, 팀의 영구결번까지 될 정도의 선수들도 있다. [17] 어렸을 때에 같이 뛰었다가 안첼로티가 감독으로 밀란에 다시 왔을때까지 말디니는 확고한 주전이었고, 안첼로티가 밀란을 떠나는 시즌에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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