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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 데뷔 당시 | |
소속팀 | <colbgcolor=#ffffff,#191919> AC 밀란 ( 세리에 A) |
등번호 |
3 5(1987-1995) 6(1986-1995) 2(1986-1989) 4(1985-1987) 14(1984-1987) |
기록 | |
647경기
29득점 28도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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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경기
3득점 7도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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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경기 1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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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경기
1골 5도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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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경기 1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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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경기 1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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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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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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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산 성적 | |
901경기
33득점 43도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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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올로 말디니의 AC 밀란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사실상 말디니의 클럽 경력 전체를 소개하는 문서라고 봐도 무방하다.
1.1. 1985-86 시즌
1985년 1월 20일, 우디네세와의 경기에서 부상을 입은 세르지오 바티스티니와 교체되며 데뷔전을 갖는다. 이때 나이 고작 16세. 더 놀라운 건 17세의 나이일 때 AC 밀란의 주전이 되었다.1.2. 1986-87 시즌
마우로 타소티- 프랑코 바레시-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와 함께 단단한 수비 라인을 구축했고 1986-87 시즌에는 오렌지 삼총사가 결성되었다. 카를로 안첼로티, 로베르토 도나도니,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등 중원과 공격 라인도 막강했다. 이들은 밀란 제너레이션이라 불리며 아리고 사키의 지휘 아래 축구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1] 그렇게 그 시즌에 14골밖에 허용하지 않았고 첫 스쿠데토를 들어올린다.1.3. 1988-89 시즌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FC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를 상대로 4-0 완승을 거두며[2] 20년 만에 유러피언컵에서 우승한다.1.4. 1989-90 시즌
또다시 결승전에 오른 밀란은 프랑크 레이카르트의 결승골로 SL 벤피카를 1-0으로 꺾으며 유러피언컵 2연패를 이룩하고 승승장구한다.1.5. 1991-92 시즌
사키가 떠나고 카펠로가 감독으로 부임한 밀란은 계속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1991-92 시즌에는 아예 무패 우승을 달성했다.1.6. 1993-94 시즌
1993-94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명장 요한 크루이프가 이끌던 '드림팀' 1기 FC 바르셀로나를 4:0으로 학살하고[3] 빅 이어를 들어올렸고, 같은 시즌 세리에 A 우승까지 차지하며 더블을 기록한다. 그리고 같은 해 1994 미국 월드컵에서의 준우승과 겹쳐 말디니 본인도 1994년 발롱도르 3위,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1위를 차지한다.1.7. 1994-95 시즌 ~ 1999-00 시즌
1994-95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2연속으로 진출했지만 AFC 아약스에게 0-1로 패하여 준우승을 차지한다. 말디니 본인은 1995년 FIFA 올해의 선수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카펠로가 떠나고 사키가 다시 부임했지만, 리그 11위를 하는 등 사키라는 이름값에 맞지 않게 굉장히 부진했고 카펠로를 다시 감독으로 선임하지만 팀의 기량은 점점 하락하고 있었다.밀란 제너레이션 1기 세대가 끝나며 2000년대 초반까지는 그렇다 할 성적 하나 내지 못했다. 굳이 뽑자면
1.8. 2000-01 시즌
그러나 2000-01 시즌에 카를로 안첼로티가 감독으로 부임한다. 이때 말디니는 저주가 걸렸던(…) 산 시로 구장에서 그만 부상을 당해 15경기를 뛰는 데 그쳤고,[4] 무관에 그친다.1.9. 2002-03 시즌 ~ 2003-04 시즌
다음 시즌에 후이 코스타, 알레산드로 네스타, 카푸 등의 영입이 이어지며 2002-03시즌에는 주장 완장을 찬 말디니의 밀란이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말디니는 발롱도르 3위에 등극한다.[5]1.10. 2004-05 시즌 ~ 2005-06 시즌
2004-05 시즌부터는 안드레아 피를로, 안드리 셰브첸코, 카카, 젠나로 가투소 등이 제대로 활약하며 밀란에도 점점 따듯한 바람이 부는 듯 했다. 또 야프 스탐이 오면서 말네스카 라인을 형성하지만 사실 이 수비 라인이 제대로 가동된 시간은 한 시즌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말디니와 카푸는 이미 30줄을 타고 있었고 네스타는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나오지 못했기 때문. 리그 최저 실점도 리그 우승과 함께 유벤투스 FC에게 내줬다.때문에 2004-05 시즌에 남은건 챔피언스 리그뿐이었고 결국에는 결승까지 진출한다. 결승전은 리버풀 FC와의 경기였는데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말디니의 챔스 최단 시간 골,[6] 이후 에르난 크레스포의 쐐기를 박는 2골로 전반전이 끝나며 빅 이어를 확실히 드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후반전 스티븐 제라드의 헤더 골을 시작으로 3골을 내리 먹히며 승부차기까지 갔고 예지 두덱이라는 벽에 막혀 결국 패배하고 만다. 이것이 바로 이스탄불의 악몽. 이때부터 풀백으로서는 예전 같은 모습이 나오지 않자 말디니는 아예 센터백으로 주 포지션을 변경했다.
1.11. 2006-07 시즌
2006-07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리버풀을 상대로 설욕에 성공해, 빅 이어를 들어올렸다.
말디니는 2006-07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할 예정이었고, 재계약을 시도하던 밀란과의 협상도 연봉 문제로 진전이 안 되었지만, 5위로 그치면서 체면을 제대로 구긴 밀란이 안타까웠는지 2008년까지 더 뛰겠다고 발표를 했다.
1.12. 2007-08 시즌
2007-08 시즌에는 웬만한 젊은 수비수보다도 뛰어난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아스날전에선 평점이 제일 높았다. 사실 그 경기를 보면서 가장 혀를 찼던 것은, 상대 팀 아스날의 주장이라는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말디니가 프로 데뷔했을 때 태어나지도 않은 새파란 것이었으니[7] 그리고 또 한 시즌 더 뛰겠다고 했다.1.13. 2008-09 시즌
은퇴 시즌인 2008-09 시즌 말기에는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조르조 키엘리니한테 빡쳐서 키엘리니의 멱살잡는 평소 말디니답지 않은 거친 행동을 보이면서[8][9] 경고를 받았다. 참고로 보통 이런 멱살잡이가 벌어지면 벤치 클리어링으로 이어지는데 상대가 말디니이다 보니 키엘리니 동료들도 말디니 달래기로 일관했다.[10]그의 마지막 홈 경기에서는 밀란 팬들에게 야유를 받기도 했다. 밀란 팬들은 말디니를 존중하지만, 우리의 캡틴은 영원히 프랑코 바레시라고 했는데, 이는 예전 2004-05 시즌에 이스탄불에서 벌어졌던 챔스 결승전에서 밀란 팬들이 밀란의 드라마틱한 패배에 분노하여 비난하자 말디니가 역으로 팬들을 비난했던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는 것과 밀란 보드진의 막장 경영 때문에 애꿎은 말디니가 희생되었다는 것.
어쨌든 이 일은 유럽 축구계의 저명한 선수, 인사들 모두가 '희대의 병신짓'이라고 비난할 정도로 희대의 병크였다.[11]
2. 은퇴
이후 2009년에 40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여담으로 말디니는 밀란에서만 24년동안 902경기나 뛰며,[12] 7개의 스쿠데토와 5개의 빅 이어[13]를 들어올렸다.
디에고 마라도나부터 미셸 플라티니, 호마리우,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호나우두, 지네딘 지단, 루이스 피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모두 상대해본 유일무이한 수비수.[14] 이것만으로도 말디니의 위엄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2.1. 말디니가 만나본 선수들과 감독들
말디니는 선수생활을 20년 넘게 지속하며 수많은 선수들과 감독과 뛰거나 상대해봤다. 말디니가 밀란 소속으로 뛰면서 같이 뛰거나 상대해봤던 선수들을 나열한 목록은 다음과 같다.- 공격수: 마르코 반 바스텐, 위르겐 클린스만, 호마리우, 장피에르 파팽, 잔루카 비알리,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조지 웨아, 히바우두, 로베르토 바조, 라울 곤살레스, 필리포 인자기, 안드리 셰브첸코, 에르난 크레스포, 욘 달 토마손, 호나우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크리스티안 비에리, 아드리아누, 루이스 피구,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다비드 트레제게, 파브리치오 라바넬리, 프란체스코 토티, 루드 반니스텔로이,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티에리 앙리, 호나우지뉴, 데얀 사비체비치, 잔루카 만치니, 지안프랑코 졸라, 주세페 시뇨리, 패트릭 클라위베르트, 마르크 오베르마스, 은완코 카누, 주앙 핀투, 이안 라이트, 마르코 델베키오, 아벨 발보, 다니엘 폰세카, 빈첸조 몬텔라, 파올로 디카니오, 크리스토프 뒤가리, 다니엘레 마사로, 올리버 비어호프, 엔리코 키에사, 피에를루이지 카시라기, 마르시우 아모로주, 파울루 세르지우, 마우리치오 간츠, 하칸 쉬퀴르, 안정환, 시모네 인자기, 이반 사모라노, 마르셀로 살라스, 다르코 코바체비치, 아드리안 무투, 마르코 디 바이오, 앨런 스미스, 마크 비두카, 디에고 트리스탄, 로이 마카이, 니콜라 아넬카, 훌리오 크루스, 루벤 소사,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누누 고메스, 얀 콜러, 빈첸초 이아퀸타, 사보 밀로셰비치
- 미드필더: 미셸 플라티니, 디에고 마라도나, 루드 굴리트, 프랑크 레이카르트, 카를로 안첼로티, 즈보니미르 보반, 로베르토 도나도니, 로타어 마테우스, 디디에 데샹, 알바로 레코바, 데니스 베르캄프, 지네딘 지단, 스티븐 제라드, 샤비 알론소,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프랭크 램파드, 데이비드 베컴, 파벨 네드베드, 카카,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마시모 암브로시니, 젠나로 가투소, 안드레아 피를로, 클라렌스 세이도르프, 후이 코스타, 크리스티안 브로키, 디노 바조, 안토니오 콘테, 에드가 다비즈, 안드레아스 묄러, 호세 마리 바케로, 펩 과르디올라, 에마뉘엘 프티, 유리 조르카에프, 디에고 시메오네, 데얀 스탄코비치, 엔조 프란체스콜리, 로날트 더부르, 야리 리트마넨, 파울루 벤투, 다비드 지놀라, 파울루 소자, 안젤로 디 리비오, 블라디미르 유고비치, 크리스티아노 자네티, 폴 인스,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세르지우 콘세이상, 크리스티앙 카랑뵈, 다미아노 토마시, 루이지 디 비아조, 에우세비오 디프란체스코, 레오나르두 아라우주, 알랭 보고시앙, 디에고 푸세르, 브누아 코에, 산드로 코이스, 마르틴 예르겐센, 예스퍼 블롬퀴스트, 기예르모 아모르, 거스 포옛, 게오르게 하지, 나카타 히데토시, 마티아스 알메이다, 마르코스 아순상, 스테파노 피오레, 아리엘 오르테가, 필립 코쿠, 루이스 엔리케, 사비 에르난데스, 마우로 실바, 미켈 아르테타, 제이제이 오코차, 슈테판 로이터, 토마시 로시츠키, 라르스 리켄, 루이스 엘게라[15], 가이스카 멘디에타
- 수비수: 프랑코 바레시,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마우로 타소티, 주세페 베르고미, 하비에르 사네티, 안드레아스 브레메, 이반 코르도바, 마르코 마테라치, 마티아스 자머, 호베르투 카를루스, 카푸, 릴리앙 튀랑, 파비오 칸나바로, 알레산드로 네스타, 카를레스 푸욜, 마르셀 드사이, 로랑 블랑, 위르겐 콜러, 로날드 쿠만, 로베르토 센시니, 페르난두 쿠투, 프랑크 더부르, 미카엘 라이지거, 잔루카 잠브로타, 토니 아담스, 리 딕슨, 마틴 키언, 시니샤 미하일로비치, 아우다이르, 안드레아 소틸, 치로 페라라, 파올로 몬테로, 이고르 투도르, 잔루카 페소토, 비셴테 리사라수, 크리스티안 파누치, 프란체스코 코코, 호세 안토니오 샤모트, 크리스티안 치게, 주세페 판카로, 파올로 네그로, 토마스 헬베그, 다리오 시미치, 루이지 사르토르, 뱅상 칸델라, 토마스 레프카, 외르크 하인리히, 줄리오 팔코네, 파스콸레 파달리노, 모레노 토리첼리, 프랑크 르뵈프, 세르지뉴, 로베르토 아얄라, 미켈레 세레나, 카카베르 칼라제, 호케 주니오르, 안토니오 자고, 파올로 바놀리, 세르지 바르주안, 호안 카프데빌라, 마레크 얀쿨로프스키, 왈테르 사무엘, 마테오 페라리, 마르틴 라우르센, 데데, 크리스티안 뵈른스, 크리스토프 메첼더, 코스민 콘트라
-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 비토르 바이아, 이케르 카시야스, 디다, 세바스티아노 로시, 올리버 칸, 파비앵 바르테즈, 잔루카 팔리우카, 안젤로 페루치, 발테르 쳉가, 안도니 수비사레타, 에드윈 반 데 사르, 데이비드 시먼, 프란체스코 톨도, 루카 마르케자니, 크리스티안 아비아티, 클라우지우 타파레우, 세바스티앵 프레이, 폴 로빈슨, 옌스 레만
말디니가 만나온 선수들은 그 숫자와 이들의 클래스[16]를 고려하면 말디니의 선수 커리어가 정말 괴랄하기 그지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대했던 팀들이나 지도를 받았던 감독들도 명장들이 쏟아지는데 밀란에선 아리고 사키, 파비오 카펠로, 카를로 안첼로티[17], 알베르토 자케로니, 파티흐 테림이 있으며, 세리에에선 즈데넥 제만, 디노 조프, 마르첼로 리피, 스벤예란 에릭손, 조반니 트라파토니,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카를로 마초네, 로베르토 만치니, 주제 무리뉴, 로이 호지슨, 네비오 스칼라, 알베르토 말레사니, 체사레 프란델리, 프란체스코 귀돌린, 마르코 타르델리, 엑토르 쿠페르, 다니엘 파사레야 가 있고, 국가대표 팀에선 아버지인 체사레 말디니의 지도도 받았었고, 국제적으로는 요한 크루이프, 루이 판할, 알렉스 퍼거슨, 조지 그레이엄, 잔루카 비알리, 루이스 페르난데스, 하비에르 이루레타, 마티아스 자머 등이 있다.
[1]
실제로 가장 강력했던 축구 클럽 순위를 정할 때, 0809~1112 바르셀로나를 제외하면 가장 최일선에서 거론된다.
[2]
반 바스텐과
루드 굴리트가 멀티골을 기록했다.
[3]
여담으로 이때 크루이프 감독이 인터뷰에서 "AC 밀란에게 진짜 축구가 무엇인지 가르쳐주겠다" 라며 비아냥 거렸지만 현실은...
[4]
그래서 데려온게 칼라제다.
[5]
여담이지만 네드베드의 수상으로 끝난 03년도 발롱도르 시상 당시 이탈리아 축구계는 전폭적으로 말디니의 수상을 지지했다. 다만 유벤투스 라인은 차마 네드베드와 말디니 둘 중에 하나를 지지할 수가 없어서 조심스러운 중립을 유지했다. 네드베드 수상 이후에 이탈리안 축구인들의 반응이 의외로 코믹하다. 특히 가투소와 토티.
해당 링크
[6]
이때 말디니의 나이는 36세 333일로 이 골로 말디니는 챔스 결승 역대 최고령 득점자로 남아 있다.
[7]
파브레가스 87년생, 말디니 1군 데뷔 85년...
[8]
카카와의 공중 볼 경합 중에 키엘리니가 손으로 카카의 얼굴을 쳤는데 그걸 본 말디니가 "너 이 새끼 왜 우리 카카 때려"하면서 멱살을 잡은 것.
[9]
이 일로 키엘리니는 완전 상처를 받았는데, 다름 아닌 키엘리니의 우상이 바로 말디니이기 때문. 키엘리니는 프로 데뷔 시절부터 레프트백과 센터백을 오갈 수 있는 차세대 말디니로 각광받기도 했고, 본인도 말디니를 따르다 못해 본인은 그에 비하면 미천한 몸이라고까지 하며 하악댔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당시 장면을 보면 멱살은 잡혔으나 싸우거나 화를 내기는 커녕 말디니에게 하소연하는 키엘리니의 모습에서 억울함과 서러움이 뚝뚝 묻어난다. 실제로 나중에 울었다... 결국 말디니가 추후에 사과했다. 경기내내 너무 거친스타일로 카카를 괴롭히는 키엘리니를 보고 참다가 터진...
[10]
실제 영상을 보면, 상대팀 키퍼인
잔루이지 부폰이 말디니를 안고 달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이 때 말디니는 이탈리아의 현역 레전드이자 대선배였기 때문에 멱살잡는다고 대들만한 상대는 이탈리아 리그 내에 없었다(...). 발로텔리라도 덤빌 수 없는 상황 이천수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더군다나, 부폰의 경우 말디니가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있을 당시에 같이 선수 생활을 한 경험이 있어서 다른 선수들보다 말디니의 실제 모습이나 성격을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같은 팀 동료가 멱살 잡힌 것에 대해 말디니에게 항의를 하기 보다는 말디니를 먼저 달래주고 나중에 상황을 수습하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11]
심지어 상대였던 로마의 감독
루치아노 스팔레티도 격분하였다. 그래서일까, 바르샤의 과르디올라 감독은 08-09 챔스 우승 이후 우승의 영광을 말디니에게 돌리는 등 그에 대한 존경심을 전했다.
[12]
밀란 역사상 최다출장 기록이다.
[13]
밀란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횟수가 7회라는 점으로 볼 때 클럽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태반 이상의 공적을 세운 셈.
[14]
아쉽게도 메시를 직접 상대한 적은 없다.
[15]
이반 엘게라의 동생이다.
[16]
적어도 한 시즌 이상 소속팀과 리그, 국가대표팀에서 준주전~주전으로 활약했고, 자신이 속한 팀의 주장직을 맡았던 선수들도 꽤있으며, 소속팀과 국가대표에서 굵은 족적을 남기며 레전드가 된 선수들이 대다수이고, 월드컵, 유로, 챔피언스 리그, 코파 아메리카, UEFA컵, 컵 위너스 컵 우승자와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 UEFA 올해의 클럽 선수,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국제 메이저 대회 MVP 수상자들도 심심찮게 있고, 팀의 영구결번까지 될 정도의 선수들도 있다.
[17]
어렸을 때에 같이 뛰었다가 안첼로티가 감독으로 밀란에 다시 왔을때까지 말디니는 확고한 주전이었고, 안첼로티가 밀란을 떠나는 시즌에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