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8:44:28

튜튼 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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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utonic 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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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Ordo fratrum domus Sanctae Mariae Teutonicorum Ierosolimitanorum
독일어 Orden der Brüder vom Deutschen Haus der Heiligen Maria in Jerusalem
영어 Order of Brothers of the German House of Saint Mary in Jerusalem
한국어 예루살렘 성모 마리아를 위한 독일 형제단
파일:external/www.mariuszkozik.com/Teutonic_Knight_A-copy-968x64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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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상의 파란색이 튜튼 기사단, 빨간색이 리보니아 기사단이다.

십자군 전쟁기에 조직된 기사수도회.[1] 독일 기사단국의 모태이며, 십자군 전쟁의 일부이자 과거부터 지속된 동방식민운동의 일부이기도 하다. 상징은 흰색 바탕에 검은색 십자가 문양이다.

2. 특징

4종류로 나뉘는 투구 장식이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사자의 갈기, 독수리의 날개, 황소의 뿔, 그리고 (다른 것에 비하면 조금 밋밋해보이는) 사람의 머리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는 각각 복음서의 네 저자인 마르코(사자), 사도 요한(독수리), 루카(황소), 그리고 마태오(사람)를 상징한다. 그리스도교 기사단의 상징성을 반영한 디자인으로 단순히 멋이나 겁주기 효과만 노린 건 아니었다.

기사수도회였기 때문에 단원은 모두 수도자였으며, 따라서 부양해야 할 처자식이 없으므로 소속 기사들은 다른 기사들보다 전투력이 강했다. 참고로 초기 규칙 중에는 목욕을 금하는 규정이 있었다고 한다. 덕택에 이슬람 측에서는 튜튼 기사단이 오는 것을 1마일 밖에서도 냄새로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헌데 수도자라고 하기는 참 못 할 짓을 많이 했다. 톤톤 기사단 명색이 수도자라 같은 그리스도인은 그나마 덜 괴롭혔지만, 그렇다고 안 괴롭힌 건 아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를 안 믿는 이교도한테는 아예 선이 없어서 당시 발트 신화 종교를 믿던 발트계 부족[2]들을 잡아다가 이슬람 국가에 노예로 팔아먹었고, 특히 가까운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꾸준히 괴롭혔다. 그리스도교 지역에서도 헝가리- 크로아티아 왕국 내정에 개입했다가 언드라시 2세에게 쫓겨나 방황하다가, 분열되어 있던 발트족을 내쫓아 달라는 마조프셰 공작 콘라트 1세의 요청에 따라 들어와서 폴란드 앞마당에 눌러앉아 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세워진 독일 기사단국은 이후 프로이센 공국을 거쳐 나중에는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에게 흡수되어 프로이센 왕국으로 발전되었다.

튜튼 기사단은 명목상으로는 폴란드 공작의 구호 요청으로 온 주제에 원래 타깃인 리투아니아 이교도뿐만 아니라 같은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와 상업 목적으로 온 다른 독일인 이주민 등에게도 학살, 방화, 강탈을 일삼은 까닭에, 15세기 탄넨베르크 전투 이후 이들의 위세가 크게 꺾이자 단치히 같은 서프로이센의 독일계 상업 도시들마저도 이들의 횡포에 맞서 폴란드 측에 죄다 달라 붙었다.

과거 영미권 중심의 서양 사학계에서는 1945년 이전 독일 군국주의 체제의 원형으로 여겼다. 호엔촐레른 가문의 프랑켄계 방계 출신이었던 튜튼 기사단의 기사단장 알브레히트 폰 호엔촐레른이 1525년에 루터교회로 개종하고 기사단국을 세속 국가로 전환한 것이 프로이센의 시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작 독일 사학계에서는 튜튼 기사단과 별 연관이 없고 베를린 중심의 중앙집권화 추구와 월경지 형태로 여기저기 이합집산되어있던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의 영토를 지키려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선제후의 정책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선제후는 오히려 브란덴부르크 중심 중앙집권제 국가를 위해 프로이센 공국 출신 융커들을 잔혹하리만치 탄압해 씨를 말려버려 프로이센 입장에서는 원수나 다름 없는 인물이었다. 또 여기에 더해 프로이센의 왕실인 호엔촐레른 가문 프로이센 왕국- 독일 제국의 뿌리를 수도인 베를린과 현재의 독일 브란덴부르크 주 지역을 영토로 두었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으로 여겼지 과거 프로이센 공국의 영토였던 동프로이센 지역은 나중에 합병한 역외 영토 정도로 취급했다.

훗날 나치 독일은 구 튜튼 기사단의 유산을 나쁜 쪽으로 활용했다. 1920년경 독일 국가인민당(DNVP)에서 제작한 선전물 중에는 "Rettet den Osten(동방 영토를 지키자)"란 문구와 함께 뒤에서 칼에 찔리는 기사단원의 모습을 그린 포스터가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아돌프 히틀러가 "잃어버린 신성한 독일의 고토를 찾자"는 대의명분으로 내세우기도 했으나 결국 나치 독일은 패망했고 독일은 동프로이센을 상실했다.

3. 직책/계급 체계

튜튼 기사단의 직책과 계급 체계는 중세부터 쭉 이어져 내려온다. 근본적으로 현재 기재되는 직책과 계급 체계는 중세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 기사단장(호흐마이스터): 튜튼기사단의 총 지휘관. 총회를 통해 선출되며 공식적으로는 1인자이나 실질적으로는 어디까지나 동등한 가운데에 첫 번째에 불과하였다.
  • 대총감: 튜튼 기사단 내의 기사단장 아래의 2인자이자 행정 업무를 담당.
  • 재무총감: 회계 담당자
  • 의무총감: 병원 업무 담당자
  • 의복총감: 군수/보급 담당자
  • 사령관: 군사 참모총장
  • 지역총감(란트마이스터): 각 지역을 담당하는 지역사령관. 튜튼 기사단은 독일, 프로이센, 리보니아의 지방단장이 존재하였다. 초기에는 각 지역에서 기사단장의 대리인 역할을 하였으나 점차 각 지역의 실권자가 되어 기사단장 조차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 리블란트 란트마이스터: 튜튼 기사단의 리보니아 지부장, 사실상 리보니아 검우 기사단의 단장(헤렌마이스터)의 연속선상인데 1237년 튜튼 기사단의 산하로 들어왔을 뿐 리보니아의 자체적인 단장은 란트마이스터로서 유지되었다. 이후 리보니아의 마지막 지부장이었던 고트하르트 케틀러는 1561년 루터교로 개종, 세속화하여 쿠클란트 공국의 공작이 되었다.
    • 프로이센 란트마이스터: 튜튼 기사단의 프로이센의 지부장, 1309년 이후부터 기사단장직과 통합되었다. 이후 독일 기사단국을 이끌던 마지막 단장인 알브레히트 폰 호엔촐레른은 1525년 루터교로 개종, 세속화하여 프로이센 공국의 공작이 되었다.
    • 도이치 란트마이스터: 튜튼 기사단의 독일 지부장, 당시에는 신성 로마 제국만 존재할 뿐 독일이란 나라 자체는 없었으니 엄밀하게는 독일 지역 담당이라 할 수 있다. 1525년 프로이센의 세속화에 반발한 독일 지부장인 발터 폰 크론베르크가 1527년 기사단장을 자처함에 따라 이후 1531년 카를 5세에 의해 기사단장직과 통합되었다. 이를 독일 지역총감 겸 기사단장(호흐운트 도이치마이스터)이라고도 한다.
  • 지역군행관: 지방단장 아래에서 그 지역의 군사를 담당한 사령관
  • 군행관: 10여 명의 수도기사와 100여 명의 병사를 지휘하는 사령관
  • 수도기사: 귀족출신 기사
  • 복무기사: 비귀족출신 기사

4. 역대 기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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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튼기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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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뒤세머 빈리히 폰 크니프로테 콘라트 촐너 폰 로텐슈타인 콘라트 폰 발렌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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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역사

독일인을 중심으로 북유럽 동유럽의 독일인 기사로 구성되어 '독일 기사단'으로도 불린다. 현대 독일 오스트리아에서는 주로 '도이치(독일) 기사단'(Deutscher Orden)으로 부른다. 튜튼이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에서 고대 게르만족의 한 부족인 테우토네스(Teutones,Τεύτονες)[3]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는 사람, 부족이라는 의미를 지닌 게르만 조어의 'Þeudanōz'에서 유래하며,[4] 이 단어는 Deutsch(도이치)의 어원과도 같기 때문에 실제로 영미권에서는 근대까지만 해도 독일인들을 튜튼인(Teutons)이라고 자주 칭했다.

1190년 아크레 공성전에서 창설된 야전병원이 모체로, 1192년 가톨릭 교황으로부터 기사단 조직 인가를 받은 뒤 구호 집단으로 활약하다가 1198년 군사 기사단으로 전환했다. 초기에는 다른 십자군 및 여타 기사단과 함께 성지 예루살렘과 주변 지역에서 활동했으나, 1211년 헝가리 국왕 언드라시 2세(II. András, 재위: 1205 ~ 1235)의 권유로 트란실바니아로 이주, 카르파티아 산맥 동쪽 쿠만족의 침입을 받고 있던 헝가리를 구원했다. 이후 트란실바니아 지역의 방어 및 독일인의 이주를 통한 개척 역할을 수행하다가 1225년 언드라시 2세와 갈등을 빚자 교황의 지원을 받아 독립을 시도하다가 언드라시 2세의 분노를 사 헝가리에서 쫓겨났다.

1226년에 당시 기사단장이던 헤르만 폰 잘차는 마조프셰 공작 콘라트 1세(Konrad I Mazowiecki)[5]의 요청으로 헤움노(쿨름)[6] 지역에 거점을 마련한 뒤, 리미니의 금인칙서를 통해 프로이센 지역의 소유권을 인정받고 콘라트와 함께 프로이센 원주민에 대한 북방 십자군 전쟁에 나선다. 기사단은 이 지역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규합하여 이교도를 격퇴하는 임무를 맡아 이교도 원주민을 정복하고 독일 동부 농민들을 이주시켜 프로이센 일대에 독일 기사단국을 세웠다. 1237년에는 리보니아 검우 기사단을 흡수하여 프로이센에서 에스토니아 일대를 장악하고, 1242년 러시아 정교회를 무너뜨리고 가톨릭을 전파하기 위해 러시아로 진격했지만, 노브고로드 공국 알렉산드르 넵스키에 의해 페이푸스 호 전투에서 대패를 당하며 러시아 정복은 좌절되었다.

1260년에는 튜튼 기사단 영지에서 헤르쿠스 만타스(Herkus Mantas, ?~1273)[7]가 이끈 프루스인들이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켜서 많은 기사들이 전사하였다. 기사단은 독일로부터 다시 기사들을 영입하고, 프루스인들을 대대적으로 학살 및 추방하여 반란을 진압하고 후에 부족해진 인구는 독일에서 이민을 받음으로써,[8] 동프로이센의 독일화를 부추겼다. 1291년에는 리투아니아 원정을 단행하여 리투아니아의 상당 부분[9]을 장악하였고, 14세기가 되어 독일 기사단국은 발트해 연안과 폴란드 북부, 독일 동부를 지배하는 동유럽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그러나 14세기 이후 튜튼 기사단에게 많은 영토를 빼앗긴 리투아니아 대공 요가일라가 폴란드 앙주 왕조의 야드비가 여왕과 결혼, 두 나라가 동군연합 관계가 되고, 그 힘으로 기사단 국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결국 기사단은 1410년 그룬발트 전투에서 1.5배 규모의 폴란드-리투아니아군[10]을 상대로 싸우다가 대패하면서 많은 영토를 잃고 세력이 크게 축소되었다.

이 전투에서 튜튼 기사단의 고위 간부들이 상당수 전사해 버리는 사태가 발생했으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이 기사단의 본부인 마리엔부르크 공략에는 실패하고 퇴각함으로써 그나마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전투로 기사단의 군사력은 거의 붕괴되었고,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이후 1454년부터는 1466년까지 13년에 걸쳐 폴란드와 전쟁을 벌였다가 패배하여 기사단국의 기존 수도였던 마리엔부르크와 비옥한 비스와강 하역, 무역 중심지였던 그단스크, 마조프셰의 콘라트가 봉토로 주었던 헤움노(Chelmno) 등을 모조리 잃고 독일 기사단국의 기사단장이 폴란드 왕의 신하가 되었고 수도를 훗날 쾨니히스베르크로 천도했다. 이후 1525년 기사단장 알브레히트 폰 호엔촐레른 루터교회로 개종하고 폴란드 왕국의 봉신으로 충성을 맹세, 프로이센 공국을 세우고 공작이 되면서 독일 기사단국은 프로이센으로 계승되고 동프로이센 쪽의 기사단은 가톨릭 교황과 단절되었다.

그 후 신성 로마 제국과 동유럽에 작은 형태의 영지가 유지되었으나 1808년 나폴레옹 전쟁의 결과로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면서 기사단 국가의 남은 영지가 몰수되고 기사단 조직도 소멸했다.

5.1.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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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오스트리아 제국 합스부르크 왕가의 후원으로 기사단 조직이 부활, 1929년 무력이 배제된 봉사 단체로 완전히 변모하여 현재는 도이치 수도회(Deutsche Orden)라는, 을 근거지로 하여 여러가지 봉사활동을 하는 가톨릭 수도회로 활동하고 있다. 홈페이지 소개

한편 기사단의 검은 십자가 문장은 이후 독일군 국적 마크로 사용되고 있으며, 기사단의 주요 거점이었던 마리엔부르크 성( 말보르크 성)은 오늘날 폴란드의 말보르크에 있다.

튜튼 기사단이 세운 도시들 화보

6. 미디어

성전기사단, 구호기사단에 비해 100년이나 늦게 창설되었고 십자군 전쟁의 주 무대이던 중동이 아닌 동, 북유럽 일대에서 주로 활동해서인지 매체에서의 등장 빈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다만 특유의 화려한 복장 때문인지 컬트적인 인기를 끄는 편.

6.1.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문명/튜턴족 문서
5.2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6.2. 인피니티(게임)

판오세아니아의 정예 보병. 튜튼기사단(인피니티) 참조.

6.3. 미디블2: 토탈 워

오리지날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의 십자군 기사단 특수 유닛으로 나온다. 다른 가톨릭 국가는 성전 기사단(성 요셉 기사단: Knight Templar)와 구호 기사단(성 요한 기사단, Knight Hospitalar). 스페인 포르투갈의 경우는 산티아고 기사단이 따로 있다. 능력치는 똑같지만 깡통하면 이를 부득부득 가는 신롬 유닛답게 정작 깡통은 지들이 제일 많으면서 메이스를 들고 다녀서 게임상에서 기병 싸움을 붙이면 사실상 최강이고 디자인이 간지나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

그 영향인지 킹덤즈의 미니 모드 4개 중 Teutonic이라는 시나리오에서 주인공 격 팩션이다. 시나리오 내부에서는 토탈 워판 프로토스라 불릴 정도로 무지막지한 유닛 조합을 자랑하며 특히 윙드 그레이트 헬름을 쓰고 '적을 겁에 질리게 함'이라는 특성을 단 리터브뤼더가 참으로 흉악하다. 허나 시나리오 자체가 어려워 빨리 끝내지 않으면 다굴 맞고 뻗게 된다. 팩션 자체 특성으로 도시 테크트리를 제대로 탈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서 중후반 자금 수급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또한 킹덤즈의 튜토닉 캠페인에 들어간 배경음악들도 춥고 황량한 동유럽 지역의 음울하고 음침한 느낌을 잘 살려내었고 유저들한테도 평이 좋다. 이로 인해 튜튼 기사단이 등장하는 다른 게임들에도 등장할 정도다.

6.4.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

1편과 2편에서 신정 국가 및 기사단 국가는 플레이할 수 없기에 NPC 국가로 등장한다.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는 가톨릭 기사단으로 구현되었고 튜튼 기사단은 Holy Fury DLC가 있다면 13세기 무렵에 발트 십자군을 개시해서 발트 신화를 믿는 영주들을 공격한다. 플레이어가 가톨릭 영주라면 기사단을 지원할 수도 있으며, 발트 신화를 믿는다면 가톨릭으로 개종해서 성전을 피하거나 맞서싸워야 한다. 여담으로 Holy Fury DLC 표지에서 발트 이교 전사와 함께 주인공을 맡고있다.

6.5. 유로파 유니버설리스 4

파일:1REOWoA.jpg
튜튼 기사단 유닛 스킨

본편 시작 시점에서 이미 쇠락하던 시점이라 그런지 국가 자체는 4티어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후로도 폴란드 왕국-리투아니아 대공국 동군연합[11]과 13년 전쟁을 치르고 폴란드의 봉신국이 돼서도 계속 독립을 시도하고 마침내 프로이센 공국으로 전환되는 원 역사를 토대로 해서인지 2~3티어급 국력에 전용 아이디어와 미션도 짱짱하고 브란덴부르크 다음으로 프로이센을 형성하기 쉬운 나라가 튜튼 기사단이다. 튜튼 기사단은 프로이센 형성에 필요한 영토가 딱 하나,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쾨니히스베르크인 만큼 유리할 수 있고, 처음부터 폴란드의 공세를 버텨야 하지만 역으로 커먼웰스가 괴물이 되기 전에 제압하는 게 가능하다면 그 이후는 상대적으로 편해진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1444년 처음 시작 시점에서 가지고 있는 영토를 그대로 지키기만 하고 확장을 아예 하지 않아도 행정 레벨 10 찍고 개신교나 개혁교회로 개종하면 그대로 프로이센 형성이 가능하다.[12] 프로이센을 형성하는 주요 국가 중 브란덴부르크가 프로이센 지방을 향한 진출과 점령이 주요 관점이라면 튜튼 기사단은 수성이 주요 관점이라 볼 수 있다.

브란덴부르크로 플레이할 때와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브란덴부르크는 신롬 소속, 그것도 선제후국이라 신롬 소속 국가들 안에서 외교나 확장을 할 때 어느 정도 메리트가 있는 반면, 튜튼 기사단은 아예 신롬 소속이 아니라 신롬 방향으로 진출할 때 애로사항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신롬 말고 다른 방향으로 진출하기엔 폴란드, 리투아니아, 검우기사단, 덴마크 등 사실상 외교 없이는 정복하기 힘든 나라들뿐이다.

튜튼 기사단으로 플레이할 시 가장 우선적으로 동맹을 맺어야 하는 대상은 검우기사단, 헝가리, 폴란드를 라이벌로 찍는 모든 국가. 운과 실력으로 극초반에 폴란드를 제압할 수 있으면 게임이 굉장히 쉬워지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상당히 힘드므로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어그로가 너무 끌리지 않게 주변 국가들의 동맹 관계를 이용하거나 상대방이 전쟁 중일 때 뒤통수를 치면서 천천히 서쪽으로 나아간다는 생각으로 플레이하면 된다. 신롬 방향을 먹어야 될 땅에는 미리 클레임을 만들되 가능하다면 모든 동맹국이 참전하도록 방어전을 노리는 것도 방법. 스웨덴을 데리고 있는 덴마크, 보헤미아, 헝가리 중 둘 이상을 동맹으로 만들고 폴란드에는 클레임만 박아놓은 뒤, 폴란드의 침공에 방어전으로 나서면 폴리투를 역으로 털어버릴 수 있다.

아니면 시작하자마자 오스트리아와 관계도를 올려서 신성로마제국에 가입하자. 일단 가입하고 나면 폴란드로부터의 선빵 걱정은 사라진다. 가입한 뒤에는 선거권 없는 브란덴부르크 같은 느낌으로 플레이하면 된다.(외교, 확장 방향, 아이디어 등) 일반적으로 신성 로마 제국 소속의 선제후나 황제가 아닌 국가가 디시전으로 다른 나라를 형성하면 신성로마제국에서 빠져나가게 되지만 튜튼 기사단으로 프로이센을 형성하는 디시전은 예외적으로 신성로마제국 소속을 유지할 수 있다.

1.30 때 노이마르크가 두 개의 프로빈스로 쪼개졌다. AI는 이벤트가 뜨면 팔아치우므로 브란덴부르크, 혹은 이벤트 전에 먹을 폴란드 버프. 그래도 플레이어가 잡으면 온전히 쓸 수 있다. 한가지 특이점으로는 원래 노이마르크의 문화는 작센인이었는데, 쪼개진 프로빈스 중 북동쪽 프로빈스의 문화는 포메른이다.

1.29까지 1450년에 뜨던 프로이센 연합의 반란(단치히 독립) 이벤트[13]가 1.30에서 1460년으로 미뤄졌는데, 디시전[14]이 바뀐 영향이다. 1.30에서 단치히 독립 이벤트를 띄우지 않기 위한 디시전(프로이센 연합 축소)의 조건을 맞추는 방법은 몇가지가 있다. 디시전의 조건은 안정도 1 이상, 반군이 차지한 지역 없음, 지방분권주의자 반군[15] 없음, 직할지 40% 이상의 네 가지.

그러나 튜튼 기사단은 시작하자마자 프로이센 연합이라는 이벤트가 뜨며, 이게 직할지의 10%를 상인 계층에서 뜯어가는 효과를 가진다. 처음 직할지가 29.998%라 직할지가 19.998%인 상태로 시작하게 된다. 1444년에 시작하자마자 토지 회수하고, 기간에 정확히 맞춰 토지를 회수해 직할지를 늘리면 1460년 직전까지 20%[16]를 확보할 수 있고, 개발 몇번만 해주면 직할지 비율이 40%를 넘기기에 1460년에 예정되어 있는 프로이센 연합 반란 이벤트를 막을 프로이센 연합 축소 디시전을 가까스로 누를 수 있다. 이게 정석이나, 조금만 실수해서 토지 회수가 두세 달 이상 미뤄지면[17] 디시전 활성화 이전에 1460년이 되어 그동안의 작업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물론 프로이센 연합 반란 이벤트가 1460년이 되었다고 항상 칼같이 뜨는 건 아니지만, 이를 노리기엔 도박성이 짙다.

그래서 이를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이벤트가 바로 수도를 뺀 모든 프로빈스의 최소 자치도를 25%로 유지하며, 최대 절대주의를 5 깎는 특권[18][19]을 성직자[20]에게 부여하는 대신, 직할지를 30% 확보하는 이벤트.[21] 이 이벤트는 직할지가 10% 이하일 때 발생하니 이 조건을 맞추는 게 우선이다. 방법은 두가지로, 개발하는 방법과 하지 않는 방법이 있다. 우선 개발하지 않는 방법으로, 역시 시작하자마자 계층에게 직할지를 주는 특권을 쥐어줘서 10%의 직할지를 줄이고 프로이센 연합 이벤트를 보면 된다. 그러면 직할지의 비율이 9.998%가 되어 상술한 이벤트가 발생하게 되고, 이벤트의 선택지를 고르기 전에, 그러니까 이벤트 창이 뜬 상태로 계층으로부터 토지를 회수하고(+5%) 선택지를 누르면(+30%)[22] 직할지 비율이 44.998%가 되어 프로이센 연합 축소 디시전이 가능해진다. 두 번째인 개발하는 방법도 시작은 비슷한데, 계층에게 특권으로 땅을 나누어 주고,[23] 남는 땅은 계층에게 팔아서 직할지 비율을 0%로 만든다. 이렇게 하고 나서 프로이센 연합 이벤트를 보면 이미 직할지 비율이 0%라 더 줄어들지 않는다. 곧 이어지는 Estate Statutory Rights 이벤트에선 개발하지 않는 방법과 똑같이, 토지 회수부터 누르고 선택지를 고르자. 이대로 따라 왔다면 35%의 직할지를 확보하게 되었을 텐데, 개발 비용 싼 곳을 골라 개발해도 되고 르네상스 등장 이후 르네상스 빨리 얻을 겸 개발해도 되니 직할지 비율이 40%를 넘길 정도로만 개발해주면 끝이다.

1.34 패치인 북방의 사자 DLC 이후로 분기점 미션 루트가 생기고 세분화가 되었다. 최초 시작 시점에서 폴란드를 패배시키면 기존 역사를 반영하여 신교로 개종하지 않고 가톨릭 신앙을 유지한 채로 프로이센을 형성하는 루트, 리투아니아 개종 이후 십자군 기사단의 동진이 멈췄던 기존 역사와 달리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완벽히 패배시키고, 러시아를 침공하여 개종시키며, 이후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이 사는 초원 지대까지 십자군 원정을 계속한 끝에 그들과 동화되어 말박이가 되는 홀리 호드 루트로 나뉜다. 유목민 기사단 정부 체제가 해금되며 종국에는 결국 신성 유목민 기사단 십자군 제국이라는 환장할 무언가가 탄생하는 게 특징.

추가적으로 홀리 호드(신성 유목민) 루트를 선택할 경우 몽골 제국의 형성에 필요한 영토를 전부 획득할 경우, 십자군 제국이라는 정부 체제를 지니고 몽골 제국을 형성할 수 있다.

주문화를 폴란드로 세탁하여 폴란드를 형성한 뒤, 몽골 제국까지 형성하여 폴란드의 국가 이념인 윙드 후사르(기병 전투력 +30%)를 비롯한 미션 보상 등을 덕지덕지 달고 기병 전투력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환장의 십자군 몽골 제국을 만들 수 있다. 정말 극한의 말박이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기병뽕에 더해 독일 기사단국이 이교도들을 개종시키고 몰아내는 사명을 받아 끝없는 초원 지대를 정복한다는 뇌절의 극한을 달린 대체역사스러운 설정을 바탕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얻은 루트.

튜튼 기사단에 관련된 업적은 Baltic Crusader. 튜튼 기사단이나 리보니아 기사단으로 러시아 전역에 코어를 가지고 모두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면 된다. 러시아 전역이란 크리미아, 러시아, 우랄 지역을 의미한다. 이 업적은 통상적인 튜튼 기사단의 방향과는 정반대로 프로이센을 형성하면 안되고, 개신교나 개혁교회로 개종해서도 안된다. 리보니아 기사단으로도 달성할 수 있지만 폴란드를 잡기에는 튜튼 기사단이 더 낫다. 가톨릭으로 종교를 유지하게 되니 종교 내란 재앙이나 종교 리그 등에서 적절한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6.6. 엠파이어 어스 2

독일 캠페인이 튜튼 기사단의 발트 정복부터 시작한다.

6.7. 라이즈 오브 킹덤즈

독일의 기마병이 4티어부터 튜튼 기사단이다.

6.8. 그 외

7. 여담

튜튼 기사단이 연상되는 복장을 하고 수도권 전철 1호선을 탄 남자가 화제가 된 적있다. 다만 복장만 저렇게 하였을 뿐 특별한 민폐를 끼친 건 아니어서 1호선 빌런은 아니다.

과거 튜튼 기사단이 발트해 지역 주민들한테 저지른 학살과 노예 사냥이 무척이나 큰 정신적 상처로 남았는지, 오늘날에도 발트 3국의 민담에서 튜튼 기사단은 사악한 요괴나 악마로 묘사된다.

8. 관련 문서


[1] 가톨릭 수도회의 일종으로, 회원 한 명 한 명이 기사인 체제이다. 중세에 탄생한 기사단은 모조리 가톨릭 기사수도회이다. [2] 오늘날 발트 3국의 원주민들. [3] 테우토네스는 유틀란트 반도 북부의 티(Thy) 지방에 살던 부족으로 기원전 1세기 유틀란트 반도 기후 변화로 인한 기근으로 인해 유틀란트 반도에 살던 다른 부족인 킴브리족, 암브로니족, 티구리니족 등과 함께 따뜻한 남쪽으로 대이주를 시도하다가 로마 제국과의 킴브리 전쟁으로 인해 멸망했다. [4] 실제로 이들의 원 출신지로 비정되고 있는 티(Thy) 지방도 어원이 이 단어이다. [5] 당시 프로이센 지역의 원주민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도움을 받을 목적으로 독일계 기사들을 초청했다. 그 독일계 기사의 후신인 프로이센과 독일 제국, 나치 독일이 폴란드에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를 생각한다면 만악의 근원이라고 볼 수도 있다. [6] 기사단이 거점을 세운 헤움노는 토룬(토른) 서쪽 지역이다. 훗날 나치 절멸수용소가 세워진 헤움노는 우치 근처다. [7] 기사단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프루스인이 소멸한 탓에 친척뻘인 리투아니아에서 민족 영웅으로 밀어주며, 1972년에 소련 소속이었던 리투아니아에서 그가 주인공인 전기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8] 동방식민운동 참조. [9] 오늘날의 클라이페다(당시 메멜)에 해당하는 '소 리투아니아' 지역과 리투아니아 북서부인 사모기티아 지역. [10] 독일 기사단 2만 7천여 명, 폴란드-리투아니아군 3만 9천여 명. [11] 루블린 연합 이전이라 이 시점에서는 별개의 국가였다. [12] 다만 실제 역사에서의 프로이센 왕국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 계승국가였다. [13] 선택지가 상당히 성가신데, 하나는 '안정도 -1, 단치히 독립 인정'이고, 나머지 하나는 전쟁 선포. 그러나 전쟁도 공격자 취급이라 동맹을 불러오기 어렵고, 단치히는 연쇄 이벤트로 폴란드와의 동맹이 가능하기에 곧 폴란드가 딸려온다. 유저로서는 이벤트를 띄우지 않는 것이 최선. [14] 1.29까지는 상인 계층의 영지를 모두 몰수하면 디시전을 누를 수 있었다. [15] 왜 지방분권주의자 반군이 조건인가 하면, 프로이센 연합이 속하는 상인 계층의 반군이 이 분류이기 때문이다. [16] 한번 회수에 5%, 다시 회수할 때까지 5년 필요. 1444-1449-1454-1459의 4번. 11월에 회수하게 되는 구조상 시간의 여유가 얼마 없다. [17] 특히 토지 회수는 전쟁 상태에서 불가능하다는 특징이 있어서, 전쟁 중에도 기간에 맞춰 전쟁을 끝내야 하는 필요가 생긴다. [18] 1.30.2까지는 바로 회수할 수 있었으나, 1.30.3부터는 20년의 회수 불가능 기간이 붙는다. 회수를 위해선 20년이 지난 이후 성직자 충성도가 성직자 영향력보다 높아야 되는데, 튜튼 기사단은 신정의 후계자를 고를 때 성직자 충성도를 올리는 선택지를 고르는 걸로 충분히 해결된다. 물론 특권 자체가 성직자 영향력을 10% 올리는 효과가 있다는 것도 잊지 말자. [19] 조금만 실수해도 단치히 독립 이벤트를 보는 길을 걷느니, 최소 자치도 25%를 받는 길이 더 낫다. 토지 회수를 하지 않으니 그로 인해 계층 충성도가 깎이지 않는다는 사소한 이익도 있으며, 신롬에 가입하기 쉬운 튜튼은 신롬 가입 이후 덴마크와 폴란드의 선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자치도 25%의 패널티를 받아도 신롬 소국을 상대하는건 어렵지 않다. 토지 회수를 위해 유리한 전쟁도 멈춰야 하는 일도 없는 건 덤. [20] 신정이라 시작시 성직자 영향력이 가장 커서 성직자에게 부여된다. 다른 국가들도 이벤트가 뜰 당시의 계층들 영향력에 따라 특권을 받는 계층이 달라진다. [21] 계층의 법적 권리(Estate Statutory Rights)라는 이벤트다. 이 이벤트를 이용할 때의 추가적인 장점은 토지 회수를 적게 하므로 계층들의 충성도가 높다는 것. [22] 토지 회수를 먼저 하는 이유는, 저 이벤트로 주어지는 최소 자치도 특권이 있는 한 토지 회수가 불가능해지기 때문. [23] 만약 군주 포인트 특권을 주고 싶다면, 각 특권당 10%의 직할지를 요구하기에, 처음 직할지가 30%를 넘어야 하므로 아무 곳이나 한번만 개발해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