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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
잉그바르 캄프라드 | 역사 | 특징 | 제품 | 매장 구성 | 반품과 교환 | 지점 | 국외 진출 | 논란 | |
대한민국 | |
역사 | 매장 특징 | 지점 | 온라인 | |
운영 중인 지점 | |
광명점 | 고양점 | 기흥점 | 동부산점 | |
기타 지점 | |
개점 예정( 강동점) | 폐점 | 개점 취소 | |
일본 | |
역사 | 지점 |
<colcolor=#fbd914> 잉그바르 캄프라드 Ingvar Kampr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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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8ab> 본명 |
페오도르 잉그바르 캄프라드 Feodor Ingvar Kampr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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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6년 3월 30일 | |
사망 | 2018년 1월 17일 (향년 92세) | |
국적 |
[[스웨덴|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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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부모 | 페오도르 캄프라드, 베르타 캄프라드 |
배우자 |
셰르스틴 바들링 (1950년–1960년) 마르가레타 캄프라드 (1963년–201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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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마티아스 캄프라드, 요나스 캄프라드, 페테르 캄프라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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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의 기업가. 세계적인 가구 브랜드로 성장한 이케아의 창업주이다. 이케아(IKEA)라는 이름은 창업자 잉그바르의 이름과 주변 환경을 조합해서 만든 명칭이다.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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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스웨덴 엘름훌트의 농장에서 태어나 옛날에 성공한 여러 사업가가 그러했듯이 어린 시절부터 사업가의 자질을 보였다. 1943년 17세의 어린 나이에 이케아를 설립했다. 창업 초기에는 생활용품을 포함한 다양한 물품을 판매하는 잡화점에 가까웠으나 1950년대 스웨덴의 대규모 주택단지 건설사업과 맞물려 크게 사세를 확장했다. 대량구입으로 효율적으로 원가절감을 하여 경쟁업체보다 20%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조립식 가구를 내놓으면서 호응을 얻었고 대형매장도 세우기 시작하며 성공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60년대부터 해외로 사업을 확장하였고 1980년대에 본사를 네덜란드로 옮겨서 다국적 기업으로서의 색채를 갖추었다.
3. 비판
- 17세 때 스웨덴의 대표적 나치 지지자였던 파시스트 페르 엥달이 창설한 나치 정당 '새로운 스웨덴 운동(Nysvenska Rörelsen)'에 가입해 자금을 모으고 신입 당원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했던 전력이 있다. 원래 잉그바르 본인의 가족 자체가 독일계 이민자 출신으로, 히틀러의 지지자였다고도 한다. 논란이 되자 정당 가입과 활동 자체에 대해서는 1994년에 '인생의 가장 큰 실수'라며 공개적으로 사과와 해명을 했었으나 페르 엥달에 대한 지지 자체는 철회하지 않았다. 2010년의 인터뷰에서는 '페르 엥달은 훌륭한 사람이었으며 그 생각은 죽을 때까지 바뀌지 않을 것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물론 당시의 캄프라드는 10대 나이의 어린 소년이었겠지만 세상 물정 모르고 조부모나 부모를 생각 없이 따라야 하는 영유아 나이의 아동은 아니었으며 현재까지 완전한 반성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사망했기에 책임을 피할 수가 없다.
- 비용 절감을 위해 생산 시설을 동유럽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동유럽 국가의 독재 정권과 유착관계를 형성하기도 했으며, 동독의 비밀 경찰과 협력관계를 가져 강제 노동 수용소의 재소자에게 이케아의 가구를 만들도록 하기도 했다. 이런 여러가지 행적으로 인해 이케아는 전범기업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4. 기타
- 매우 검소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케아라는 거대 기업의 창업주라는 점에서도 유명하고 한 때는 세계 부자 순위 5위에 오른 적이 있으며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재단 관련 재산이 워낙 많아 당시 세계 최고 부자였던 빌 게이츠와 그의 동료이자 투자계의 거물인 워렌 버핏보다 부자였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로 거부라는 점에서도 그러했지만 그런 부자임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자린고비 행각으로 굉장한 구두쇠였다는 점에서 유명한 부분도 있다. 비행기를 타고 다닐 때 이코노미석만을 타는 것을 고집하고 출퇴근할 때 10여 년이 넘은 볼보 자동차를 몰 정도다. 사원들에게 컵이 소모되는 게 아깝다고 1회용 컵을 씻어서 사용하게 하거나 출장을 가야 하는 직원이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이코노미석이 남아있지 않아 1등석 밖에 없어서 전화를 했더니 허락할 수 없다며 택시를 타고 수천킬로미터를 달리게 만드는 등 직원들에게도 자린고비 정신을 반강요했던 모양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만큼 짠돌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다만 무작정 짠돌이는 아닌지 스위스에 있을 때 포르쉐도 가끔씩 모는 사실이 전 이케아 임원에게 폭로 당하기도 했는데 자신이 하는 가장 호화로운 사치가 휴가철에 고향을 방문하는 것과 계절마다 새 셔츠를 구매하는 것 정도라고 한 것만 알려진 적도 있다.
- 국내에서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리 유명한 편이 아니어서 이름이 정확히 언급되지 않는 불상사도 있었는데 '잉그바르 캄프라드'가 아닌 '잉그리드 캄프라드'라고 언급되는 바람에 검색해서 찾는 데에 오래 걸렸다는 일화도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이 아닌 스웨덴의 기업가였기에 정보가 더욱 틀리기 쉬웠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