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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982년형 인노첸티 미니 밀레 |
MINI |
Innocenti Mini / Mini Mille
Innocenti Minitre / 500 / 650 / 990 / Small
1. 개요
이탈리아의 오토바이 회사였던 인노첸티가 영국의 브리티시 모터 코퍼레이션(BMC)으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아 생산한 미니 라인업의 명칭이자, 1974년부터 같은 차종에 새 차체를 씌워 1993년까지 생산한 경차이다.2. 역사
2.1. 1965~1975년형
인노첸티 미니 쿠퍼 1300 |
“영어 좀 하나?!“ / “옛, 나리!“- 1972년 광고 중
본래 인노첸티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의 궁핍한 경제사정과 그와 반대로 급증하는 이동수단의 수요를 토대로 삼아 람브레타(Lambretta) 스쿠터를 만들며 돈을 벌었다. 하지만 1950년대를 거쳐 1960년대부터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1인 평균소득이 늘어나면서 오토바이의 수요가 감소, 자가용으로 수요가 점차 넘어감에 따라 업종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계기로 인노첸티는 1959년에 영국의 브리티시 모터 코퍼레이션(이하 BMC)으로부터 사륜차의 라이선스를 얻어 1960년 말부터 BMC의 소형차 라인업을 현지생산했다. 1960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자동차 사업 진출을 공식화한 뒤 1961년부터 오스틴 A40 파리나의 현지생산 모델인 인노첸티 오스틴 A40, 오스틴-힐리 스프라이트 기반의 고유모델인 950 스파이더 2개 차종으로 자동차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라인업을 점차 확장하다가 1965년 11월부터는 미니를 라이선스 생산하기 시작했다. # #
처음에는 850 트림을 판매하다가 점차 1001, 쿠퍼와 1300 쿠퍼, 그리고 인노첸티 버전 미니로서는 유일하게 다른 바디 타입을 채용한 라인업인 T 에스테이트 등으로 라인업을 확장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원판 대비 인테리어 내장재와 옵션을 고급화한 덕분에 몇몇 국가에서는 영국산 미니보다 더 많은 인기를 모았다. 1975년에 생산이 중단되었다.
2.2. 미니 90/120 (P53, 1974~1993)
초기형 인노첸티 미니 90 |
BMC에서 가져온 미니와 BMC ADO16 등이 상업적인 성공을 이끄는 동안, 인노첸티에서는 BMC에 주요 자원을 의존하지 않는 고유모델 개발에도 관심을 두고 있었다. 때문에 1968년부터 완전신형 4기통 엔진에 전륜 맥퍼슨 스트럿 + 후륜 세미 트레일링 암 조합의 완전독립식 서스펜션을 갖춘 경승용차 라인업인 인노첸티 750을 개발했다. 이때 디자인 시안은 누치오 베르토네(Nuccio Bertone:1914~1997)가 운영하던 그루포 베르토네(Gruppo Bertone)와 당시 BMC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미켈로티(Michelotti)로부터 받아들였으며, 두 회사 모두 기존의 미니와는 완전히 다른 현대적인 디자인을 제시했다. #
하지만 그 동안 BMC의 차종들을 라이선스 생산하던 수준의 회사였던 인노첸티에게 750은 너무 이상에 가까웠던 프로젝트였고, 결국 750 프로젝트를 폐지하고 BMC의 후신인 브리티시 레일랜드와 라이선스 계약을 7년 연장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또한 1969년에 이탈리아 북부를 휩쓴 대규모 파업이 벌어지는 등, 경제상황까지 나빠지자 인노첸티의 경영진이었던 인노첸티 가문은 회사를 브리티시 레일랜드에 매각, 1972년 5월에 인노첸티는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자회사가 되었다.
이후 인노첸티의 경영감독으로 부임한 브리티시 레일랜드 재무팀 출신의 제오프리 로빈슨(Geoffrey Robinson)이 프로젝트를 이어가며 P53이라는 코드명 하에 개발이 계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니 기반의 리스킨 고유모델로 개발방향이 변경되었고, 디자인은 베르토네 소속 마르첼로 간디니의 쐐기형 2박스 디자인 시안을 채택해 현대적인 해치게이트와 2열 폴딩시트가 적용되는 완전한 해치백으로 만들어졌다.[1] 여기에 파워트레인도 미니의 파워트레인을 유지하되 전동식 냉각팬과 엔진 앞에 붙는 라디에이터를 장착하며 정숙성도 미니 대비 항상시켰다. #
1974년 9월에 생산을 시작하여 동년 10월 토리노 모터쇼에서 공개된 신형 미니는 외모상으로는 완전히 다른 차였고, 그동안 인노첸티가 만들던 차들이 그랬듯 영국 본토에서 만드는 차들보다 구성도 고급스러웠지만 미니에서 쓰던 998cc 43마력과 1275cc 63마력짜리 A-시리즈 엔진 및 "러버콘(Rubber Cone)" 압축고무 서스펜션이 그대로 적용되었고, 때문에 뛰어난 핸들링과 덜컹거리는 승차감을 보여주는 등 차량의 특성 역시 미니와 비슷했다. 다만 경쟁차종들 대비 가격이 비쌌고, 인테리어 패키징도 미니보다는 효율성이 떨어져서[2] 판매량에서 발목이 잡히기도 했다.
수출은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유럽 국가 딜러망을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그 동안 미니를 인노첸티에 제공하던 브리티시 레일랜드에서도 기존 미니를 이 차로 대체하는 방안을 고려했으나 1974년 12월에 브리티시 레일랜드가 파산하고 국유화 과정을 거치면서 무산되었다. 결국 영국 진출은 브리티시 레일랜드 국유화 이후인 1979년에 수입차 딜러였던 런던 개러지스 리미티드(London Garages Limited)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후 인노첸티는 1976년 5월에 데 토마조의 창립자 겸 회장인 알레한드로 데 토마소(Alejandro de Tomaso)가 운영하던 슈퍼카 업체인 데 토마조(De Tomaso)로 팔려나갔다. 인노첸티의 주인이 바뀌는 동시에 회사명도 "Nuova Innocenti"[3]로 변경되었지만, 브리티시 레일랜드는 인노첸티의 지분 5%를 계속 가지고 있었으며 라인업도 계속 유지되었다.
한편 데 토마조에서는 인노첸티 미니를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노렸다. 먼저, 고성능 버전인 "인노첸티 데 토마조"가 1976년에 토리노에서 공개된 뒤 1977년 초부터 판매되었다. 미니 데 토마조는 기존의 미니 90과 120에 적용되었던 크롬장식을 제거하고 플라스틱 범퍼 커버와 몰딩을 덧붙였으며, 알로이휠과 이를 위해 넓어진 휠아치, 후드 스쿠프(흡기구), 범퍼와 통합된 안개등을 갖추어 스포티함을 과시하는 스타일링을 잡았다. 최고 출력은 71마력으로, 1978년에 74마력으로 성능이 소폭 항상되었다.
1980년에 신선도 유지를 위해 인노첸티 미니 밀레(Mini Mille)라는 이름 하에 페이스리프트 버전이 출시되었다. 기존의 미니 120에 플라스틱 범퍼 커버와 두툼한 사이드 몰딩이 적용되어 전장이 5cm 가량 늘어났고, 범퍼 디자인의 변경과 함께 헤드램프와 후미등의 디자인도 일부 변경되었다. 저배기량 트림이였던 미니 90은 큰 변화없이 사양을 조정해 1981년에 90LS II가, 이듬해에는 90SL이 라인업에 추가되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1982년, 브리티시 레일랜드가 경영난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인노첸티로부터 손을 때면서 기술적 지원과 수출시장 지원이 끊어졌다. 이때 인노첸티와 데 토마조에서는 그전까지 만들었던 재고차량을 판매하면서 여러 가지 엔진들을 시험한 끝에 일본의 경차 전문업체 다이하츠(Daihatsu)의 3기통 엔진과 부품들을 장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1984년형 인노첸티 미니트레 SE |
1982년 4월, 다이하츠 샤레이드(Charade)의 993cc 52PS 엔진과 독립식 맥퍼슨 스트럿 전륜 서스펜션, 그리고 위시본 + 가로배치 리프 스프링 구성의 후륜 서스펜션이 장착된 "Tre Cilindri(트레 칠린드리, 3기통)", 1984년 1월부터는 이를 줄여서 Minitre(미니트레)를 출시했다. 외관상으로는 벳지와 앞범퍼에 추가된 스포일러 외에는 밀레와 별 차이가 없었지만, 다이하츠가 5단 수동변속기에 토크 컨버터와 유성 기어를 장착한 다이매틱(Daimatic) 2단 반자동변속기를 미니매틱(Minimatic)이라는 이름 하에 옵션으로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공차중량이 55kg 증가했고 미니트레의 다이하츠 엔진은 영국에서 가져왔던 이전의 BMC A-시리즈 엔진보다 비싼 값을 치렀는데, 알레한드로 데 토마소 회장에 의하면 비싸진 엔진 값은 보증수리 요구가 감소하면서 어느 정도 충당되었으며 다이하츠 엔진의 품질이 훨씬 좋았기 때문에 보증수리 수가 무려 70%나 감소했다고 한다.[4]
한편, 기존 모델의 재고처리가 계속되면서 판매량은 1981년에 23,187대였던 것이 다음 해에는 21,646대, 재고를 다 떨어낸 1983년까지 13,688대로 감소했는데, 1984년부터는 다이하츠 엔진의 높은 신뢰성과 인노첸티와 데 토마조의 재개 노력 덕분에 판매량이 다시 증가했다. 그리고 다이하츠의 유럽 딜러망을 쓸 수 있게 되면서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라는 제한된 곳에서나마 수출도 다시 재개되었으며 독일에서는 다이하츠의 독일 수입처에서 인노첸티의 차를 1983년부터 다시 수입하기 시작했다. 또한 판매량을 만회하기 위해 인노첸티에서는 SE 트림의 파워 윈도우와 파워 백미러, 전자시계같은 고급 편의장비들을 제공하는 등, 피아트 판다를 비롯한 당대 경쟁차종보다 높은 수준의 옵션을 강조하였다. #
1983년 12월에 공개되어 1984년 1월에 판매가 시작된 인노첸티 데 토마조의 업데이트 버전은 "데 토마조 터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72마력을 내는 2밸브식 엔진을 얹고 새로운 범퍼 디자인과 스커트, 새로 변경된 알로이휠을 위해 또 변경된 펜더 디자인, 가죽 스티어링이 같이 적용되었다. 처음에는 데 토마조가 직접 설계한 기존의 자연흡기식 엔진에다가 IHI제 터보를 장착했으나 1984년 중반쯤에는 데 토마조 버전도 다이하츠의 엔진을 받아들였다. 다이하츠 엔진은 휠씬 작은 터보차저가 장착되었으나 터보 바가 0.37에서 0.5로 증가하였으며, 최고출력을 내는 RPM수도 6200rpm에서 5700rpm으로 낮아져 엔진 회전수가 낮은 구간에서의 가속 성능과 견인력도 개선되었다. 1988년 7월에는 엔진 업데이트(CB61) 때는 이전의 빨간색 엔진 캐스팅을 회색으로 바꾸었다.
1984년~1987년 사이에는 캐나다 몬트리올의 Incacars를 통해 터보 데 토마조의 캐나다 수출도 이루어졌다. 캐나다 사양은 스위스 사양의 그것과 같은 카뷰레터 구조의 68마력짜리 CB60 엔진이 장착되었으며 캐나다 규정에 맞추어 직사각형 반사등이 장착되었다.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 차가 가지고 있었던 심각한 품질문제 관련 우려로 판매량이 첫해의 2천 대에서 1986년의 반년 동안의 고작 196대로 추락하는 실적부진을 겪었다. 인노첸티 데 토마조 터보는 스티어링과 가벼운 중량, 스타일링이 장점으로 평가되었던 반면 운전 자세와 편의성, 언더브레이킹 등이 단점으로 지목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줄어드는 판매량을 만회하기 위해, 데 토마조에서는 인노첸티 미니의 라인업을 꾸준히 확장하기 시작했다. 1984년 4월에 공개된 디젤 사양을 시작으로 라인업 확장이 이루어졌으며, 최고출력 37PS의 1L 디젤 엔진을 장착한 '미니디젤(Minidiesel)'은 당시로서 가장 작은 승용차용 디젤엔진을 장착한 차종이었다. 엔진 성능과 작은 덩치가 결합되면서 당대 자연흡기식 디젤 중에서 가장 성능이 좋았던 차종이자, 디젤 엔진 차종으로서는 주행성능이 출중했다는 평을 받았다. 런칭 당시에는 실질적인 경쟁차종이 없다시피 했던 덕분[5]에 출시 후에는 가솔린 버전의 판매량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고 예상하고 있었던 전체 판매량의 20%를 뛰어넘어, 1984년 전체 판매량인 약 2만대 중에서 약 30%를 기록했다.
또한 인노첸티에서는 'Minidue(2기통)'로 알려진 새로운 저배기량 버전의 프로젝트도 진행되었다. 당시 데 토마조가 소유한 오토바이 회사 모토구찌(Moto Gucci)의 650cc짜리 V Twin(V2)형 모터사이클 엔진을 개량해서 장착할 것으로 예측했고 실제로 해당 사양의 시험차들도 일부 만들어졌으나, 오토바이 엔진을 승용차에 맞게 손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오자 다이하츠 쿠오레(Cuore, 다이하츠 미라의 전신)의 616cc 엔진을 대신 도입해 650을 만들었다.인노첸티 650은 기본형과 SE의 2개 트림으로 구성되었는데, 2개 트림은 모두 비대칭형 은색 그릴과 후미등 중앙의 반사등을 대체하는 검은색 플라스틱 부품이 장착되었으며 SE 트림에는 전용 허브캡이 장착되었다. 인테리어 역시 대시보드 수납장 뚜껑을 제거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 보급형으로 세팅했으며, 612cc 다이하츠 엔진은 31마력의 저출력 사양을 지녔지만 쇼트 스트로크로 설계되었고 이중 밸런스축을 갖춘 덕분에 엔진이 부드럽게 작동했다.
인노첸티 990 매틱(Matic) SE[6] |
또한 상급 라인업으로는, 휠베이스를 16cm 연장한 인노첸티 990을 1986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공개하였다. 인노첸티 990은 커진 차체에 맞추어 기존 모델들보다 안락함을 추구하고자 했는데 트렁크 용량이 기존의 280리터에서 296리터로 살짝 늘어났으며, 이전보다 훨씬 유용한 뒷좌석이 적용되었다.[7] 스타일링상으로는 A필러를 뒤로 눕히면서 쪽창을 제거하고 백미러를 휠씬 앞으로 빼낸 동시에 휠씬 큰 범퍼와 새로운 디자인의 그릴, 그리고 인노첸티의 머릿글자를 반영한 'i'자 형상의 신규 엠블럼이 적용되었고 후미부에 적용되는 번호판의 위치도 뒷범퍼에서 후미등 사이로 올라갔다. SL과 SE의 2개 트림이 준비되었고, 1리터 가솔린이나 1리터 디젤엔진을 고를 수 있었다. 또한 인노첸티는 프랑스에서 기존의 미니트레 디젤 기반의 미니디젤 소시에떼(Minidiesel Société)를 판매한 경력을 바탕으로 승용밴 라인업인 990C(Commerciale)을 휘발유와 디젤 양쪽으로 준비했는데, 이미 3미터 초반급의 작은 덩치와 10년이 넘은 낙후한 설계를 기반으로 하다 보니 화물칸 용량은 작을 수밖에 없었다. 1987년 7월에는 990 트림을 밀어주기 위한 전략적 차원으로 데 토마조 버전을 제외한 모든 1리터 트림을 단종시켰다.
한편, 인노첸티는 650의 성공을 기반으로 새로운 저배기량 라인업을 투입했다. 다이하츠가 기존의 612cc 2기통 엔진을 단종시키자 훨씬 작은 550cc 엔진을 가져다가 장착한 미니 550을 1987년 12월에 공개했다. 1988년 1월에 L과 LS 트림으로 출시된 이 차는 990에서 적용된 프론트와 계기판 디자인이 이식되었고, 뒤에 장착되는 번호판도 후미등 사이로 이동하였으며 500LS에는 분할식 뒷좌석이 적용되었다. 이전의 650처럼 550cc 엔진 역시 31마력에 최고시속 116km/h라는 빈약한 성능을 기록했으나 프랑스에서는 저출력 세팅이 이점으로 작용, 저렴한 자동차세가 부과되어 나름대로의 인기를 구사할 수 있었다.[8] 당시 프랑스에서도 이 차의 실질적인 경쟁차는 기껏해야 오래된 구성의 뒷바퀴굴림 소형차인 피아트 126 정도였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Innocenti_Small_in_Avellino.jpg |
인노첸티 스몰 500 |
그리고 1990년. 데 토마조가 경영난에 빠지면서 피아트가 인노첸티를 인수했다. 피아트에서는 디젤과 반자동, 터보 데 토마조를 모두 단종시킨 뒤 이름도 스몰(Small)로 개명했다.[9] 1990년 11월에는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졌고, 500의 엔진이 1990년 3월 일본 경차규정 변화에 맞추어 659cc 엔진으로 대체되었는데 연료효율도 개선되었고 같은 출력으로도 최고시속이 120km/h로 빨라졌다. 1992년에는 (비록 성능은 떨어졌지만)연료분사 엔진을 라인업에 추가했고 , 1991년 7월에 990을 기반으로 캔버스탑 옵션과 의류업체인 미쏘니(Missoni)에서 디자인한 알칸타라 인테리어, 투톤 루프가 적용된 "Serie Speciale"라는 고급형 트림을 제공했으며, 1993년에는 990의 차체와 500의 엔진을 결한한 스몰 500SE를 출기하기도 했다. 이후 출시 19년차인 1993년 3월 31일에 단종되었으며, 공장도 폐쇄한 후 남은 재고는 1994년까지 판매되었다.
그 이후, 인노첸티는 피아트 그룹의 염가차 전문 브랜드로 개편되어 브라질 및 폴란드에서 생산된 피아트 우노 2종[10]과 다이하츠 하이젯[11]을 1997년 10월까지 판매한 뒤 해체되었다.
오스틴 스프라이트를 현지화한 인노첸티 950 스파이더에 이어 등장한 인노첸티의 몇 안되는 고유모델이라는 의의가 있으며, 자동차 업체로서의 인노첸티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1]
기존의 미니는 해치백처럼 생기기는 했지만, 트렁크가 승차 공간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있고 뒷좌석 역시 고정되어 있는 2도어 세단이다.
[2]
뒷좌석이 좁아 어른이 타기에는 어려웠다. 제오프리 로빈슨은 인노첸티 미니의 전장을 9인치(약 229mm) 정도 늘려야 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이에 필요한 추가개발비 1백만 파운드가 없어 불가능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인노첸티가 데 토마조 그룹에서 기획한 비슷한 신차인 인노첸티 990이 등장하며 이 기획이 부분적으로 현실화되었다.
[3]
영어로는 "뉴 인노첸티"
[4]
그 대신 품질 항상으로 줄어든 보증수리 수가 서서히 줄어드는 판매량과 엮이면서 인노첸티의 서비스망이 과잉고용 상태에 빠지는 문제가 새로 발생했다.
[5]
당시 시장에 있던
피아트 우노나 판다,
폭스바겐 폴로는 디젤 옵션이 있었으나 인노첸티 미니보다 체급도 훨씬 컸고 세금이나 연비 면에서도 상대가 되디 못했다.
[6]
1열 쪽창의 부재와 더 경사진 앞창문으로 구분할 수 있다.
[7]
여전히 뒷좌석에 어른 둘이 타기도 어려웠는데도 '5인승'으로 분류되었다.
[8]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CV'라는 단위를 사용, 세그먼트 대비 최대출력을 계산해 자동차세에 반영하고 있다.
[9]
하지만 피아트의 인노첸티 인수는 다이하츠 브랜드가 유럽에서 영향력을 넓혀가는 것을 막기 위한 피아트의 '꼼수'가 아니냐는 음모론도 있었다. 나온 지 10년이 넘은 경차 하나를 가지치기해서 판매하던 인노첸티로부터 피아트가 얻어갈 만한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10]
브라질 사양 피아트 우노에 기반한 해치백인 인노첸티 밀레와 왜건 및 승용밴인 인노첸티 엘바. 밀레의 경우는 당시 폴란드에서 생산하던 유럽형 우노를 기반으로 하는 밀레 클립도 존재했다.
[11]
인노첸티 포터라는 이름으로 이탈리아에서 판매되었고, 이후
피아지오가 이 차의 생산을 담당했다. 대한민국에서도 동일 세대의 하이젯이
아시아 타우너로 판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