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18:29:32

이승하(야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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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0번
공필성
(1992~2000)
<colbgcolor=#000> 이승화
(2001~2003)
정보명
(2009~2010)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번
이명우
(2005)
이승화
(2006~2012)
장성호
(2013~2014)
캔버라 캐벌리 등번호 1번
팀 창단 이승화
(2010-11)
D.J. 데이비스
(2016-17)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51번
이상화
(2012)
이승화
(2013~2014)
이웅한
(2015)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번
장성호
(2013~2014)
이우민
(2015)
손승락
(2016~2019)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7번
심수창
(2014~2015)
이우민
(2016~2017)
채태인
(2018~2019)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5번
김원형
(2017~2018)
이우민
(2019)
김주현
(2020~20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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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1]
李승하|Lee Seung-ha
출생 1982년 5월 4일 ([age(1982-05-04)]세)
부산직할시 남구
(現 부산광역시 남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수영초 - 부산중 - 부산상고
포지션 외야수[2]
투타 우투좌타
프로 입단 2001년 2차 2라운드 (전체 17번, 롯데)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2001~2017)
캔버라 캐벌리 (2010/11)
지도자 개성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18)
롯데 자이언츠 2군 수비·작전코치 (2019)[3]
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주루코치 (2019)[4]
센텀중학교 야구부 코치 (2020~2021)
개성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22)
병역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4~2005)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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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곡 Meghan Trainor - 〈Me too〉
응원가 The Beatles - 〈 Ob-la-di Ob-la-da[가사1]
멕시코 민요 - 〈 라 쿠카라차[가사2][7]
종교 불교 }}}}}}}}}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여담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선수 시절 수비를 제외하면 특출난 성적을 남기지 못한 채 은퇴했지만[8], 문규현과 함께 21세기 롯데 자이언츠 원 클럽 플레이어다.

박종윤과 더불어 실력에 비해서는 운이 좋은 선수였다. 2012년 김주찬 이적 이후 2017년 민병헌 영입까지 5년 동안 무주공산이었던 롯데 자이언츠의 좌익수 문제 + 전준우의 군 입대로 인한 2년간의 중견수 공백으로 인해 부족한 실력에 비해 상당히 많은 출전 기회를 얻었고,[9] 통산 2할 3푼대의 2군급 외야수로는 극히 이례적으로 FA 자격까지 취득하는 행운을 누렸다. 성실한 선수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터질 것이라는 기대감과 대수비로서의 가치 때문에 앞서 방출된 이인구, 김민하[10]보다 저조한 타격 실력에도 불구하고 2017 시즌까지 살아남았다. 그래도 나올 때마다 팬들의 모진 비판에 시달렸던 박종윤과 달리 이승하는 팬들 사이에서도 크게 악평을 받았던 적은 없었고, 현역 마지막 시즌을 제2의 전성기로 장식하면서 그럭저럭 좋은 모습으로 작별할 수 있었다.

2.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이승하(야구선수)/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파일:ABL 로고.svg
2010-11년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잠시 모교인 개성고등학교 야구부의 코치를 맡다가 2018년 시즌 종료 후 롯데 자이언츠의 2군 주루코치로 선임되면서 친정팀에 복귀했다. # 롯데 팬들도 FA 신청 시점과는 달리 코치로 합류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환영하는 분위기다. 현역 시절부터 알아줬던 뛰어난 수비력과 높은 성실성이 팬들의 생각을 바꾼 듯. 한편 롯데에 코치로 복귀한 것에 대한 소감을 묻자 신인 시절과 비슷한 기분이라며 떨린다고 밝혔다. #

2019년 7월 23일 코치진 개편 과정에서 1군으로 콜업되면서 오랜만에 사직구장 그라운드를 밟게 됐다. 윤재국의 뒤를 이어 외야 수비코치 겸 1루 베이스 코치를 맡는다.

그러나 2019년 시즌 종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으며 1년만에 다시 롯데 유니폼을 벗고 말았다. 이듬해인 2020년에 센텀중학교 코치로 부임했다.

2022년 다시 모교인 개성고등학교 야구부의 코치로 복귀했다.

2024년 이대호의 유튜브에 출연해 이우민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홍보했다.

4. 플레이 스타일

파일:external/lh4.googleusercontent.com/%25EC%259D%25B4%25EC%258A%25B9%25ED%2599%2594.jpg
전체 포지션 통틀어서 득점 방어율[11] 1위의 위엄.JPG[12]

극단적인 수비형 외야수로, 동나이대 외야수 중 김강민과 더불어 KBO 리그 최고 수준의 외야 수비를 자랑하던 선수였다. 그러나 1군급이라고 보기 어려운 타격이 발목을 잡아 슈퍼백업 수준에서 끝나버린 선수이기도 하다.

2007년부터 2014년까지는 빠른 포구 판단, 넓은 수비 범위, 강한 어깨를 모두 갖추어 수비만으로는 단연코 국내 최고의 외야수 수비수 중 한명으로 꼽혔다. 중견수 수비를 주로 하지만 좌익수나 우익수 대수비로도 마찬가지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롯데 외야수 답지 않은 빠른 타구 판단 능력이 빛나는데 잡아내기 쉽지 않은 타구를 매우 쉽게 잡아낸다. 대부분의 중견수들이 다이빙 캐치할 타구를 달려가서 쉽게 처리한 후 깔끔한 넥스트 플레이까지 완벽하다. 다만 홈 송구시에 지나치게 원바운드 송구를 선호하다보니 송구가 마운드에 튕겨서 빗나가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단점. 김주찬의 이탈과 전준우의 군복무로 손아섭 외에는 제대로 된 외야수가 없던 시절에는 시절 2할 5푼 정도만 때려주면 주전이 가능하다고 했을 정도. 그러나 2015년부터 슬슬 노쇠화가 왔는지 수비능력이 감소하기 시작했고, 눈 뜨고 못 봐줄 수비까지는 아니지만 전성기 수비력에 상당히 못미치며 대수비로라도 1군에 놔둘 메리트마저 사라졌다. 그래도 2001시즌 ~ 2020시즌 구간 팀내 외야수 WAA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주력을 보자면, 발 자체는 2007년 불과 반 시즌 동안 3루타를 8개나 칠 정도로 빠르지만 주루 센스가 떨어지다보니 도루사나 견제사가 매우 많아서 대주자로서는 쓰지 않는 게 좋다. 통산 도루 성공률은 58.9% 밖에 안되는 처참한 수준이다. 참고로 KBO에서 도루 손익분기점이 약 73%이고, KBO선수 전체 평균 도루성공률이 약 70%인 것을 생각해보면 코칭스태프가 도루를 못하게 막아야할 수준이다. [13] 스톡킹에서 본인이 나와서 말한 바에 의하면 시작부터 빠른 스타일이 아니라 달리면서 가속이 붙는 스타일이라 발은 빠르지만 도루에 적합한 주루 스타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제일 큰 문제는 타격. KBO 리그 최상위권으로 여겨지는 수비력을 가지고 통산 WAR이 0에 수렴한다는 점에서 그의 타격 능력을 짐작할 수 있다. 평균 이하의 컨택에 선구안도 특출나지 않고, 장타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커리어 하이인 2007 시즌에는 반시즌동안 타율 3할을 기록한 적이 있지만[14], 이후에는 기대에 충족하는 타격성적을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김주찬 이적 후 5년 동안 좌익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롯데의 사정상 2할 6푼 이상의 타율과 6할대 후반의 OPS만 유지해도 주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는데, 그정도의 타격 조차 보여주지 못했다.

이승하를 처음 접한 지도자들은 걸출한 수비력에 홀딱 반해서 타격이 최소한의 명분만 채워줄 수준만 되어도 주전으로 쓰고 싶은 욕망을 참을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 이승하의 스윙폼은 연습 때만큼은 깔끔해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한다. 결국 수비에서 벌어들인 이득을 다 까먹고도 감점이 남는 극악의 타격 때문에 할 수 없이 주전에서 내리더라도 아예 포기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미련을 남겨둔다.

이승하의 선수 생활 롯데 감독을 했던 사람들 중 이승하 양아버지 소리를 못 들어본 사람이 없는 수준다. 이승하 양아버지 소리를 아예 안 들어본 감독은 재임기에 군대를 보냈던 양상문과 철저한 빅볼을 추구한 제리 로이스터 감독 뿐이다. 로이스터 감독조차 외야에 술에 재능을 빼앗긴 정수근, 수비가 안 되는 김주찬 손아섭, 체력이 안 되는 이인구, 재임 마지막 해 3루에서 컨버젼한 전준우 밖에 없어서 기회 자체는 제법 줬다.

하지만 경기에 투입되면 연습 때만큼의 스윙을 못 한다는 게 문제. 게다가 이 소리는 매년 나오는 소리라 경험이나 스킬의 부족보다는 멘탈의 문제가 큰 것으로 보인다. 부산을 6년만에 방문한 레전드 외국인 선수 펠릭스 호세도 이승하의 문제점을 멘탈로 꼽은 것을 보면 그것이 더딘 성장세의 원인임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손아섭과 함께 롯데에서 개인훈련에 가장 힘쓰는 선수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롯데 자이언츠 팬들이 싫어한다기 보다는 매우 안타까워 하는 선수였다. 이승하의 물집이 잔뜩 담긴 손 짤은 이미 유명하다.[15]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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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롯데 선수들 사이에서 이원석과 함께 후로게이 커플로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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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무 야구단에 있던 시절, 자신의 각오와 함께 신인 시절 때의 모습[16]을 싸이월드에 올렸던 적이 있었다. 이 때, 친구의 반응이... 이후 꼴갤에서는 우리팀 선수가 힛 바이 피치를 당하면 몸때라고 부르고 있다.
  • 상술했듯이 14 시즌이 끝나고 개명을 했는데, 흔히들 손아섭이 이름을 바꾼 작명소에서 바꿨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사실은 모친이 다니던 절의 승려가 해 주었다고 한다. 후보군이 다섯개 정도 있었는데 그 중 네 개나 다른 선수들과 겹치길래 지금의 이름으로 골랐다고... 비용으론 30만원 정도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은퇴 이후 또 "이승하"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는데 이대호의 유튜브에서 밝히기로는 '본인 의지랑 1도 없이 자고 일어났더니 법원에서 개명 신청 문자가 와있었다고.'[17]
  • 개명을 하면서 쌍수까지 했다고한다. 병원에서 가서 한게 아니라 부모님 지인이 해줬다고하는데 그래도 만족하는 편인지 예전보단 지금의 외모가 더 괜찮다고 느끼는 듯하다.
  • 대부분의 선수들이 루틴을 가지는 편인데 특이케이스라고 봐야될지는 몰라도 루틴이 없는 편에 속하는 선수였다.
  • 사실상 이승하의 자리를 밀어내며 롯데로 이적한 민병헌이 시즌 초반 부상으로 이탈하고, 복귀한 뒤에도 부진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우민병헌, 80억 이우민 소리를 듣고 있다.
파일:external/cphoto.asiae.co.kr/2016020407381890903_1.jpg
파일:external/ultraimg.com/1028405838_e558d3ac.jpg
  • 이대호, 추신수와는 수영초등학교 동기다. 참고로 이대호의 별명 중 하나인 '공주(포의 둥이)'는 이승화의 미니홈피에 이대호가 남긴 (장난)악플 때문에 생긴 별명이다

파일:EWR0OSf.jpg
  • 이대호와는 초등학교 동창으로 친분이 매우 깊다고 한다. 어린 시절이 매우 불우했던 이대호를 자기 집에서 거의 살다시피하게 했다고... 기사 참조 처음에는 그의 체격에 놀라 형인 줄 알았다고 한다. 또한 이대호의 사투리가 너무 심했을 무렵에는 아예 본인이 통역을 자처했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같이 졸업하고 이후 롯데 입단 후 다시 만나 2군 시절 준석이랑 종윤이랑 4명이서 많이 놀러 다녔다고 한다. #
  • 추신수는 이승화에서 이우민으로 개명한 걸 모르는 걸 봐서 그다지 친분이 있는 거 같지는 않다. 이대호와 이승하는 초등학교 동창에, 롯데 입단 동기로, 이대호가 일본에 진출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같은 팀에 있었다. 추신수와 이승하는 중학교 이후에 길이 갈려 서로 볼 일이 없다 하더라도 초등학교-중학교 동창인데 서로 친분이 없었던 것 같다. 인터뷰 1년 후인 2017년 개명한 사실을 안 것 같다. 스톡킹에서 밝히기로는 자기네들보단 오히려 어머님들이 굉장히 친한 편이라 자주 연락하고 지내신다고 한다.
  • 이승하의 어머니는 사직야구장 근처에 승하집이라는 한식집을 운영하고 있다.

6. 관련 문서


[1] 개명 전 이름은 이승화(李承和), 이우민(李禹旼). [2] 통산 이닝은 중견수 591경기 3,144.1이닝, 좌익수 209경기 1,153.1이닝, 우익수 119경기 506.1이닝을 출전했다. 대부분은 중견수 위주로 나왔으나 2013년에는 무주공산이 된 좌익수로 많이 출전하기도 했다. 당시 중견수는 전준우였기 때문. [3] ~7월 22일 [4] 7월 23일~ [가사1] 롯데의 이승화 이승화 안~타! 안타 안타 이승화~ (×2) [가사2] 이우민 안~타~ 이우민 안~타~ 안타 안타 이우민~ (×4) [7] 박현승 - 박종윤 - 이승하 - 나경민 - 이병규 순으로 사용되었던 응원가다. [8] 역대로 롯데 자이언츠에 처음 부임하는 감독은 리그 정상급 수비에 혀를 내두를 정도의 성실함, 팀에 대한 헌신에 반해서 항상 초반엔 이승하를 중용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부족한 타격 때문에 자연스레 백업으로, 2군으로 밀려나는 게 이승하의 커리어이기도 하다. 그래도 어찌어찌 2번째 OPS 7할 시즌인 2017 시즌에 1,000경기 출전은 찍었다. [9] 다만 후술하듯 김강민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A+급의 수비 능력과 실전이 아닐 때는 깔끔한 타격 실력, 그리고 2007년의 3할 기록 또한 출전 기회를 부여받는 데 역할을 했다. [10] 다행히도 김민하 롯데 자이언츠에서 방출된 뒤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면서 현역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11] 해당선수가 1시즌 동안 얼마의 점수를 수비로써 막아냈냐를 알아내는 지표. [12] 이 자료가 만들어질 당시의 이름은 '이승화'였다. [13] 근데 본인도 도루는 정말 하고싶지 않았다며 스톡킹에서 회고했다. 감독들이 자꾸 발 빠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도루 사인을 내니 답답한 나머지 나중에는 요령 피우면서 뛰지않았다고. [14] 다만 2007 시즌은 내야안타의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았기 때문에 의문의 여지는 있다. 후반부의 부진도 내야안타에 대한 상대의 대응이 좋아지면서 어려워졌다는 것으로 이는 이대형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다는 점이 잘 보여준다. 자세한 사항은 이 글을 참조. [15] 본인 피셜 12년도 스캠 때 황재균이 갑자기 자기 방에 와서 사진 하나 찍고 나가더니 방송사에서 이슈가 되어 유명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너무나 끔찍한 부진을 겪은 나머지 부상 투혼으로 독하게 훈련한 성과라고 [16] 스톡킹에서 회고하기를 저 때 친구는 재활군에 있었다고 하며 본인은 1군 데뷔 첫 타석이었다고... [17] 이 영상에서는 "엄마가 사기를 너무 많이 쳤나봐(...)"로 역탈룰라를 했는데, 실제로는 부모님의 희망으로 바꾼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