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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폰 로이엔탈/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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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유년기 ~ 사관학교3. 위관 ~ 장성
3.1. 미터마이어를 만나다3.2. 황금사자를 만나다3.3. 제국령 침공작전 - 립슈타트 전역
4. 상급대장5. 제국원수6. 노이에란트 총독
6.1. 영광의 절정, 몰락의 시작6.2. 검으로 흥하고 검으로 쓰러지다
7. 사후

1. 개요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오스카 폰 로이엔탈의 생애를 정리한 문서.

2. 유년기 ~ 사관학교

우주력 767년 라이히스 리터(제국기사) 작위를 가지던 최하급 귀족인 로이엔탈 가문에서 태어난다. 라이히스 리터는 제국 초창기에는 그래도 귀족으로 대우받아 재무상서까지 오른 폰 베링같은 고위대신도 있었으나 이젠 하도 남발하여 값어치가 떨어져 귀족으로서 알아주지도 않았다. 이런 말뿐인 귀족집안에서 태어난 오스카의 아버지 폰 로이엔탈(퍼스트 네임은 밝혀지지 않았다)은 대학을 졸업하고 재무성에서 일했으나, 폐쇄성과 계급성이 강한 관리 체제에는 미래가 없다고 여기고 천연자원 광산에 투자하여 5년 만에 몇 대가 놀고먹을 정도로 막대한 부를 벌어들였다.

먹고살 걱정을 덜자 폰 로이엔탈은 40대가 넘어 어느 정도 명문가의 여식을 아내로 맞이하려고 했다. 이때 지인이 마르바흐 백작가의 3녀 레오노라 폰 마르바흐를 소개해 주었다. 마르바흐 백작가는 명문귀족이었지만 당주의 2대에 걸친 과소비로 재산을 탕진했고, 황실에서 생활안정을 위해[1] 내려준 고금리 채권까지 팔아야 할 정도로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폰 로이엔탈은 레오노라의 빼어난 외모와 명문귀족 출신이라는 것에 반해 마르바흐 백작가의 부채를 떠안는 조건으로 레오노라와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폰 로이엔탈은 레오노라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자신의 나이와 신분에 열등감을 느꼈고 이를 물질로 메우고자 했으며, 레오노라도 이를 통해 끊임없이 과소비를 일삼았고, 젊은 남자와 간통하면서 남편의 돈으로 남자의 생활비까지 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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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Leonora von Reuenthal.DNT.jpg
아기 시절의 오스카 폰 로이엔탈 어린 아들의 눈을 파내려는 레오노라
이런 상황에서 태어난 아들 오스카 폰 로이엔탈은 선천적으로 검은 눈과 푸른 눈을 가진 오드아이였다. 이걸 본 레오노라는 부정의 증거라며 자신의 불륜이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히스테리 상태로[2], 갓난 오스카의 검은 눈을 칼로 도려내려고 했다가 하녀에게 발각되어 실패했다. 부정이 드러나자 절망한 레오노라는 자살했고, 이 일은 오스카에게 두고두고 트라우마가 되어 그가 여성혐오에 빠진 원인이 된다.

아버지 로이엔탈은 아내의 불륜과 연이은 자살로 상심해 술독에 빠져 살면서 아내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를 아들에게 퍼부었다. 매일같이 "넌 우리 부부를 불행하게 하려고 태어났다. 너는 태어나지 말아야 했어."라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퍼부으며 자식으로나 사람으로나 취급도 하지 않았던 것. 이런 행태는 어린 오스카에게 큰 충격과 정신적 상처를 안겼다. 결국 과음만 일삼던 아버지는 오스카가 사관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죽어서 많은 재산을 물려주었고, 살아가기에 부족함은 없었지만 원치 않게 들은 출생의 비밀과 아버지의 폭언은 오스카의 영혼에 평생의 상처로 남았다.

나이가 되자 사관학교에 입학한 오스카 폰 로이엔탈은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했다.

3. 위관 ~ 장성

3.1. 미터마이어를 만나다

오스카 폰 로이엔탈과 볼프강 미터마이어가 처음으로 만난 것은 우주력 789년, 이제르론 요새에서였다. 당시 미터마이어는 중위로 승진했지만 로이엔탈은 대위에서 중위로 강등되어 있었다.

강등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당시 전함 크로센의 함장 단네만 중령의 딸에게 대위 두 명과 중위 한 명이 동시에 청혼하며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세 구혼자 사이에서 단네만 중령은 딸의 의사를 존중하여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중령의 딸은 세 사람 모두 마음에 드는 부분도 있고 안 드는 부분도 있어서 결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었는데 그때 로이엔탈이 나타났다. 세 구혼자의 단점을 모두 이겨버리는 로이엔탈을 본 중령의 딸은 그에게 완전히 빠져버렸지만 아무 관심이 없었던 로이엔탈은 그녀의 구애를 무시했다. 급기야 로이엔탈과 결혼하고 싶어 안달이 난 단네만 중령의 딸은 자신의 몸까지 내던졌다. 로이엔탈도 이를 선뜻 받아들여 관계를 맺긴 했으나 본래의 여성혐오적인 성격답게 딱 한번 자고 나서는 단네만 중령의 딸을 아는 척도 하지 않았고, 만리장성을 쌓았으니 당연히 결혼할 거라고 자신하다가 버림받은 중령의 딸은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만 로이엔탈은 그런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태도에 격분한 구혼자들이 로이엔탈에게 결투를 신청하자 로이엔탈은 권총-칼-권총으로 연달아 3번 결투하여 3번 전승하고 상대방들을 병원으로 보냈다. 그리고 군사법원에서는 장교 신분으로 사적인 결투를 벌인 죄로 관련자 모두가 1계급 강등처분되었다. 사망자가 없고 관련자 모두 똑같이 제국기사 신분을 지닌 하급귀족이라서 처벌이 강등에 그쳤지, 만약 상대가 문벌귀족 출신이었으면 이렇게 공정한 처분이 내려지지 않았을 거라고 언급되었다.

로이엔탈이 이 일로 본래의 임지를 떠나 이제르론 요새로 부임했을 때 비슷한 시기에 미터마이어도 이제르론 요새에 부임했다. 당시 이제르론에 있던 힌터 페잔이라는 술집에서, 한 취객이 일하는 여성을 사살하여 요새 전체가 들끓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서 만나게 된 로이엔탈과 미터마이어 흉금을 터놓는 친구 사이가 된다.

이후 두 사람은 함께 싸워 수많은 무훈을 올렸다. 군부에서도 두 사람이 함께 일하면 능률이 오른다는 사실을 깨달아 의도적으로 둘을 같은 작전에 배치했다. 둘이 같이 실전에 나간 전투에서 장갑척탄병으로 참전하여 열심히 싸웠는데 압도적인 동맹군에게 포위되어 싸우다보니 정신을 차리니까 아군이라곤 이 둘만 남았다. 이제 둘 다 죽는구나라고 각오했는데 뒤늦게 도착한 아군의 지원부대가 와서 둘은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기쁨에서 복귀하여 샤워도 하고 이후 전사한 동료들을 기리며 둘은 술잔을 들었는데 이 자리에서 로이엔탈은 갑자기 자신의 개인적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그가 왜 여성혐오를 하는지 이야기하며 여자란 믿을 게 못된다라는 말을 하는 거였다. 미터마이어는 반대로 자신이 오래전부터 사랑하던 한 여성을 생각하며 가볍게 반론했지만 로이엔탈은 그렇지 않다며 바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과거도 모두 이야기했다. 술이 취하여 자제심이 없어져서인지 그야말로 숨겨온 과거에 대하여 이야기한 것이었고 미터마이어는 이 이야기를 듣고 상상으로 로이엔탈의 어머니가 칼로 갓 태어난 로이엔탈 눈을 도려내려다가 마침 들어온 메이드의 비명소리에 실패하는 걸 보며 착잡하게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한동안 말없이 생각하던 미터마이어는 뭔가 말하려고 했는데 술에 취한 로이엔탈이 잠들어버렸기에 더 이상 말은 하지 못했고 홀로 쓰디쓴 술을 계속 들이켜댔다. 다음날, 숙취로 머리 아퍼하며 아침식사도 별로 식욕이 없어하던 미터마이어에게 술이 깬 로이엔탈이 와서 어제 술자리에서 내가 말이 과했다고 사과하지만 미터마이어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뭐라고 했냐며 술김에 잊어 버린 듯한 얼굴로 대답하여 로이엔탈은 일부러 거짓말하는 걸 파악하면서도 그런 마음이 고마운지 미소지으며 "그래, 기억나지 않으면 됐네."라고 답했다.

3.2. 황금사자를 만나다

끊임없는 무훈을 올린 로이엔탈은 20대에 소장까지 올랐다. 우주력 795년 빌헬름 폰 클롭슈톡 후작의 테러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주최한 연회장에서 다수의 문벌귀족 사상자가 나왔고, 대귀족들은 복수전을 부르짖으며 클롭슈톡 후작령 토벌에 나섰다. 이때 로이엔탈과 미터마이어는 대귀족들의 지휘를 돕는 전투기술고문으로 참가했다.

그러나 대귀족들이 하도 말을 들어먹지 않아 토벌군은 1달이나 걸릴 정도로 고전한 끝에 겨우 후작령을 점령했지만, 점령 후 토벌군 청년귀족들은 후작령 주민들을 상대로 약탈과 폭행을 일삼았다. 분개한 미터마이어는 발로 뛰면서 이들을 말렸지만 결국 일이 터지고 만다.

사건의 발단은 한 청년귀족이 노부인을 폭행하고 사파이어 반지를 빼앗으려고 한 것이었다. 노부인이 빼앗기지 않으려고 반지를 삼키자 대위는 크게 웃고는 노부인을 살해하고 반지를 꺼냈다. 그걸 목격한 미터마이어가 분노해서 대위를 즉결처형하자 대위와 연줄이 있던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바로 미터마이어를 수감했다.

위기에 놓인 미터마이어를 구명하기 위해 로이엔탈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 대항하여 미터마이어를 구해 줄 인물을 찾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사람이 바로 라인하르트 폰 뮈젤 대장이었다.

우주력 795년 5월 2일, 로이엔탈은 비바람을 뚫고 라인하르트 폰 뮈젤이 살던 하숙집에 찾아와 미터마이어와 자신의 충성, 하급귀족 및 평민 장교들의 명망을 걸고 도움을 청했다. 골덴바움 왕조를 뒤엎을 생각이었던 라인하르트는 로이엔탈을 동지로 믿을 수 있는지 은근슬쩍 떠보았고, 로이엔탈은 골덴바움 왕조는 노쇠해 고름이 찌들었으니 외과수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 말에 라인하르트는 로이엔탈을 믿고 미터마이어의 구명에 힘 쏟았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라인하르트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이때 라인하르트는 주산나 폰 베네뮌데 후작부인과 대립하고 있었는데, 로이엔탈은 여성 경험이 아예 없는 키르히아이스, 라인하르트와 오로지 아내 말고 다른 여성 경험이 없는 미터마이어까지 세 사람을 대신해 베네뮌데 후작부인을 몰아붙일 책략을 고안하기도 했다. 바로 후작부인이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해 임신했다는 소문을 퍼뜨리자는 것. 이 말에 왜 로이엔탈이 저런 책략을 쓸 수 있고 여성 관계가 복잡한지 잘 아는 미터마이어는 말없이 침울하게 있었고 다른 둘은 멍하게 있었다. 아무튼, 이 책략은 널리널리 퍼져서 후작부인이 글레저 의사에게 분노했고 글레저의사조차 속마음으로 제대로 들어맞는 책략이라고 생각했다.

3.3. 제국령 침공작전 - 립슈타트 전역

우주력 796년, 자유행성동맹이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제국령을 침공하자 제국정부의 명에 따라 라인하르트 원수부가 요격 임무를 맡게 되었다. 로이엔탈은 라인하르트 휘하 장수로 알렉산드르 뷰코크 제독이 지휘하는 동맹군 제5함대를 패퇴시키고 암릿처 회전에서도 참전하였다. 이 때의 공으로 대장으로 승진한다.

립슈타트 전역이 터지자 로이엔탈은 라인하르트 파에 속하여 립슈타트 귀족연합을 진압하는 임무를 맡았다. 렌텐베르크 요새 공방전에서는 미터마이어와 함께 함정을 파 제국군 장갑척탄병 총감 오프레서 상급대장을 사로잡는 업적을 세우기도 했으나, 샨타우 성역 회전에서는 상대가 제국군의 숙장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상급대장이라서 고전하다가 결국 성역을 포기하고 철수했다.

그러나 무능한 문벌귀족들은 자신에 군재가 없음을 깨닫지 못하고 멋대로 출격하다가 끊임없이 패배했고, 귀족연합군은 제2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을 끝으로 와해된다. 그렇게 라인하르트군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점령하고 내전에서 승리했으나, 승전축하식에서 안스바흐 준장의 라인하르트 암살기도로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가 사망한다.

둘도 없는 친구 키르히아이스를 잃은 라인하르트는 폐인이 되었고, 다른 장성들은 요새를 공동관리하며 함구령을 내렸지만 이미 한계에 도달한 상황. 그러나 어느 제독도 이 사태를 타개할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이때 참모장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중장이 와서 이걸 기회로 우리들을 숙청할 궁리를 하고 있는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공작을 먼저 숙청해야 한다고 다른 제독들을 설득하자 수긍하고 남은 제독들과 함께 제도 오딘으로 달려가 리히텐라데 공작을 몰아내고 국정을 장악했다. 이때 로이엔탈은 리히텐라데 공작 저택으로 달려가 그의 일족을 모조리 잡아들이는 역할을 맡았다.

오딘 제압이 끝나자 제독들은 라인하르트에게 결과를 보고해야 했는데,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아서 결국 제비뽑기를 했고 로이엔탈이 당첨되었다. 로이엔탈은 라인하르트에게 리히텐라데 일족에 대한 처분을 묻자 라인하르트는 여자와 아이들은 변경에 유배를 보내고 10세 이상의 남성은 모두 처형하라는 극단적인 처분을 내린다. 여기에 라인하르트는 로이엔탈의 야심에 불을 지피는 발언을 한다.[3]
『내가 유년학교에 들어간 것이 열 살 때였다. 그 나이가 되기 전에는 아직 제 몫을 다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으니, 목숨은 살려주겠다. 만약 성장해 나를 치려 한다면, 그것도 좋겠지. 실력이 없는 패자가 타도되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니.』
라인하르트는 웃었다. 화려한 웃음소리였으나 그것은 이전과는 어딘가 살짝 다른 울림을 내포한 것 같았다.
『경들도 마찬가지다. 나를 쓰러뜨릴 만한 자신과 각오가 있다면 언제든 도전해도 상관없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2권 <야망편>, 김완, 이타카(2011), p.356

립슈타트 전역이 끝나자 로이엔탈은 미터마이어와 오베르슈타인과 함께 상급대장으로 승진하여 라인하르트 체제의 3인자가 되었다.

4. 상급대장

4.1.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

제국재상 겸 제국군 최고사령관에 올라 군사, 정치 양면에서 전권을 장악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과학기술총감 안톤 힐머 폰 샤프트 대장이 제안한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워프작전을 듣고 양 웬리가 점거한 이제르론 요새 공략작전을 실행한다. 이 작전에서 로이엔탈은 미터마이어와 함께 제외되었는데, 두 제독이 공을 세우면 라인하르트와 동급의 자리가 될 것을 우려한 오베르슈타인이 둘을 제외하고 대장급 제독 중에서 결정하라고 라인하르트에게 충고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장급인 칼 구스타프 켐프 나이트하르트 뮐러가 이제르론 요새 공략에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켐프는 양 웬리 함대의 선전으로 요새를 함락시키지 못하고 전황은 교착상태에 빠지고 만다. 뒤늦게 켐프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안 라인하르트는 즉각 켐프를 돕도록 미터마이어와 로이엔탈을 출격시켰다. 그러나 로이엔탈이 전장에 도착했을 땐 켐프는 죽고 뮐러가 남은 패잔병을 이끌고 도망치던 중이었으며, 두 제독은 패잔병을 수용하고 무질서하게 쫓고 있던 응웬 반 티우 소장과 산도르 알라르콘 소장의 분함대에 일격을 가해 섬멸하는 공을 세웠다.

4.2.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에서 로이엔탈은 이제르론 회랑 방면군의 총사령관을 맡아 이제르론 요새 공략작전에 나서게 되었다. 서전에서 양 함대를 끌어내 양 웬리에게 한방 먹이지만 이걸 역이용한 양 웬리의 궤계에 낚여 기함 ' 트리스탄'에 동맹군 최정예 육전부대 로젠리터 연대의 침입을 허용하고 만다.

장갑척탄병이 기함 내를 휘젓고 다니자 로이엔탈은 급히 장갑복으로 갈아입으려 했으나 갈아입기도 전에 이제르론 요새 방어사령관 발터 폰 쇤코프 소장과 조우에 불리한 상태로 백병전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불리한 상황에도 쇤코프와 호각의 승부를 보이며, 제국군이 구원하러 올 때까지 버텼다.

이후 로이엔탈은 토르 하머의 사정권 내로 500척 정도의 그룹을 형성해 일격이탈 방식으로 요새를 공략한다. 그러나 요새는 건재했고, 2000척의 함정을 잃은 로이엔탈은 계획대로 오딘에 공략 실패를 보고했다.

계획대로 라인하르트는 이제르론에 지원군을 보내겠다고 떠들썩하게 한 다음 비밀리에 군대를 반전시켜 페잔 회랑을 점령하고, 뒤이어 동맹령 내로 침입한다. 로이엔탈은 양 웬리가 이제르론을 포기할 거라 보고 총공세를 가하지 않았지만 헬무트 렌넨캄프는 끊임없이 총공세를 주장했다. 결국 두 사람은 충돌하고, 동맹군 수송함대가 요새를 빠져나가자 렌넨캄프는 홀로 추격하다가 동맹군의 함정에 걸려 20만 장병을 잃는다. 로이엔탈은 속으로는 고소해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양 웬리를 그냥 보내준다. 양 웬리를 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다가 만약 정말로 잡았다가는 토사구팽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양 웬리가 요새를 버리고 동맹령으로 후퇴하자 로이엔탈은 요새에 무혈입성하는 데 성공한다. 로이엔탈은 요새는 코르넬리우스 루츠 대장에게 맡기고 자신은 간다르바 항성계 행성 우르바시에 주둔한 제국군과 합류한다.

그러나 양 웬리는 과감히 수도 하이네센의 방위를 포기하고 광대한 동맹령 내에서 유격전을 전개하여 제국군의 내로라하는 제독들을 패퇴시켰다. 그러자 라인하르트는 자신이 미끼가 되어 양 웬리와 싸우는 동안 동맹령을 점령하러 간 다른 제독들이 반전하여 양 함대를 포위섬멸하는 계획을 내놓는다. 로이엔탈은 이에 따라 리오베르데 성역을 점령하기 위해 출진했다.

그러나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 라인하르트는 뮐러의 난입에도 불구하고 패배하여 죽음을 앞에 두고 있었고, 이걸 본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는 미터마이어에게 달려가 즉각 하이네센을 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미터마이어는 인근 성계에 있던 로이엔탈과 연락해 하이네센으로 진공한다.

이때 해프닝이 있었는데, 미터마이어 부하 칼 에두아르트 바이어라인은 로이엔탈을 나쁘게 보고 있었던 터라 로이엔탈 함대를 상대로 제1급 임전태세를 걸었다. 사실 로이엔탈도 자신의 야심 때문에 어느 정도 고민하기는 했으나, 결국 하이네센으로 진공하기로 결정했다. 어쨌든 로이엔탈은 미터마이어와 함께 바라트 성계로 진공하여 동맹정부의 항복을 받는 데 성공한다.

5. 제국원수

5.1. 하이드리히 랑과의 악연

로엔그람 왕조 창건 이후 로이엔탈은 제국원수로 승진하여 통수본부총장에 임명된다. 이 때 스스로를 리히텐라데 공작 일족이라고 주장하는 엘프리데 폰 콜라우슈에게 암살당할 뻔하는데, 오히려 엘프리데를 제압하고 강간해버렸다.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으로 제국 고등판무관 헬무트 렌넨캄프 대장이 자살하자 상급대장 이상의 고관들로 회의가 열려 로이엔탈도 이 회의에 참석했다. 양 웬리의 처벌을 두고 오베르슈타인과 다른 제독들간의 논쟁이 격렬해지자 내무성 내국안전보장국장 하이드리히 랑이 미터마이어를 두고 렌넨캄프를 비판하는 것은 황제를 비판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자 로이엔탈은 바로 랑을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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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쳐라, 이 상것!"
채찍을 내려치는 듯한 질타는 당사자인 미터마이어가 아니라 로이엔탈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이었다.
"사령장관의 정론을 가로막으려고 자신의 견식이 아니라 감히 폐하의 어명,御名,을 들먹이느냐! 호랑이의 위세를 빌리려는 약삭빠른 여우같으니! 애초에 네놈은 내무성의 일개 국장에 불과한 몸이 아니더냐. 무슨 까닭으로 상급대장 이상만이 출석할 수 있는 이 회의에 낯짝을 들이댄 것이냐. 하물며 원수들의 토론에 끼어들다니,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구나. 당장 나가지 못할까! 아니면 제 발로 걸어서 나가기 싫은가?"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6권 <비상편>, 김완, 이타카(2011), p.306

이 말을 들은 랑은 그대로 사색이 되어 제독들의 조소를 받으며 퇴실해야 했다. 이 일 이후로 랑은 로이엔탈을 증오하게 된다.

제2차 라그나뢰크 작전이 발발하자 로이엔탈은 통수본부총장으로서 황제 바로 옆에서 황제를 보좌했다.

5.2. 탄핵

하이네센 제압으로 자유행성동맹이 멸망한지 얼마 안 된 우주력 800년 2월 쯤 페잔에 있던 사법상서 브룩도르프는 로이엔탈 원수에게 불온한 기척이 있다는 보고서를 하이네센의 제국군 총본영에 올렸다. 이 보고서가 도착하자 라인하르트는 이제르론 회랑 친정을 중단하고, 로이엔탈을 구금했다.

이 보고서가 만들어진 경위는 이렇다. 구 동맹의 특사로 미터마이어 원수와 회담을 했던 윌리엄 오데츠는 회담이 결렬된 이후 황제를 만나러 페잔으로 향했지만 황제는 만나주지도 않았다. 그러자 오데츠는 페잔을 돌아다니며 로이엔탈 원수에 역모의 의도가 있다는 소문을 유포했고, 로이엔탈을 끌어내리고 벼르고 있던 랑과 군부에 대한 사법성의 우위를 확립하고 싶어한 브룩도르프가 달려들어 로이엔탈의 사저에 있던 엘프리데 폰 콜라우슈의 신분과 그녀의 증언을 청취하여[4] 로이엔탈을 탄핵한 것이다.[5]

다만 브룩도르프에 의해 로이엔탈이 탄핵되었어도, 국가의 중신인 만큼 가혹한 심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이엔탈을 심문한 나이트하르트 뮐러는 로이엔탈에 깍듯히 예의를 지켰으며, 로이엔탈의 심복 한스 에두아르트 베르겐그륀의 배석을 허가했다. 이 자리에서 로이엔탈은 자신의 의혹에 대해 해명한 후 뮐러에게 황제 알현을 부탁했다.

알현 장소는 겨울장미원이 보이는 구 동맹 국립미술관의 대형 홀이었다. 이 자리에서 로이엔탈은 엘프리데를 사저에 둔 것에 대해 뉘우치고 있으나 역모와는 전혀 관계도 없으며, 엘프리데가 증언한 아이의 탄생을 축복하며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겠다는 발언은 사실이 아니고 아이를 가진 사실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이 장소에서 라인하르트는 로이엔탈과의 우의를 믿어 당장 별다른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6. 노이에란트 총독

6.1. 영광의 절정, 몰락의 시작

하이네센 대화재 직후, 라인하르트는 구 동맹령 전체를 노이에란트로 명명하고, 통치기구로 정치-군사 양면을 총괄하는 노이에란트 총독부를 설립했다. 그리고 로이엔탈을 통수본부총장에서 해임하고, 초대 노이에란트 총독에 임명하였다.
"로이엔탈 원수, 경을 통수본부총장에서 해임한다."
말없는 술렁임이 급격히 가청 영역까지 높아지려 했으나, 첫 선고에 이은 라인하르트의 목소리는 겨울장미원 전역에서 사람들의 불안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아울러 경에게 명령한다. 제국 노이에란트,Neueland, 새 영토. 여기서는 구동맹령,의 총독으로서 행성 하이네센에 주재하며 구동맹령 전역의 정치 및 군사를 총괄하라. 노이에란트 총독은 각 행정성의 상서와 동등한 지위를 가진 것으로 간주하며, 대우도 이에 따를 것이다. 또한 오로지 황제에게만 책임을 진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7권 <노도편>, 김완, 이타카(2011), p.321

노이에란트 총독에 임명된 로이엔탈은 통수본부총장에 오르기 전에 지휘하던 자신의 함대와 브루노 폰 크납슈타인, 알프레트 그릴파르처의 함대도 휘하에 두었다. 그리하여 함정 35,800척, 장병 522만 6400명에 달하는 노이에란트 치안군이 탄생했는데, 이는 제국 총병력의 20%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으며 자유행성동맹군 말기 총병력을 능가하는 수준이자 카이저 라인하르트에 이어 은하제국에서 2번째로 강력한 무력집단이었다. 거기에다 노이에란트 총독은 황제의 직속일 뿐만 아니라 그 지위와 대우는 행정부의 상서와 동일하며 전 제국령에 필적하는 노이에란트의 군사와 행정권을 가지고 있으니, 제국의 부제(副帝)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주력 800년 6월 20일, 회랑 전투가 마무리되자 로이엔탈은 정식으로 통수본부총장에서 해임되고 노이에란트 총독에 임명되어 하이네센에 잔류했다. 500만 명에 넘는 장병들이 노이에란트에 잔류했으며 1만 명의 문관들이 제국 정부에서 파견되어 로이엔탈 밑에 배속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구 동맹령에 정통한 행정관이라는 이유로 욥 트뤼니히트가 황제의 칙명을 받아 노이에란트 총독부 고등참사관으로 부임했다. 이 인사에 베르겐그륀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로이엔탈은 이제 라인하르트에게는 트뤼니히트에게 수치를 주는 게 낙이 되었다고 통찰했다. 트뤼니히트가 부임하자 로이엔탈은 조국을 말라죽인 기생충 주제에 무슨 낮짝으로 여기에 왔느냐며 속으로 불쾌해했으나 부임 인사 도중 트뤼니히트에게 위험을 감지하여 감시를 붙이고 경계했다.

로이엔탈이 부임하면서 노이에란트 총독부는 자리를 잡아갔다. 로이엔탈은 총독의 권한을 군사와 정치로 나뉘어 각각 보좌관을 임명했는데, 군사 부문에는 오랫동안 자신을 보좌한 한스 에두아르트 베르겐그륀 대장을 군사사열감에 임명하였고 정치 부문에는 내무성차관과 민정성차관을 역임한 경력이 있으며 카이저의 천거를 받은 율리우스 엘스하이머를 민사장관에 임명하였다. 이 인사에 크납슈타인과 그릴파르처는 자기들도 대장이고 라인하르트 밑에 있었는데 베르겐그륀 밑에 있어야 하는게 말이 안된다고 불만을 품었지만, 로이엔탈은 베르겐그륀은 두 사람보다 경력도 많고 선임이며 만약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군사사열감에 임명했으면 나머지 한 쪽은 받아들일 수 있겠냐고 다독여서 불만을 잠재웠다.

총독에 취임한 로이엔탈은 본격적으로 노이에란트 통치에 나섰다. 옛 동맹 시민들의 시민 소비생활과 치안은 동맹 말기 수준을 밑돌지 않았으며, 500만 명에 달하는 노이에란트 치안군 장병들은 치외법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군기가 엄정하여 대민범죄를 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통제를 잃은 구 자유행성동맹군 이탈자들이 일으킨 범죄가 문제시될 정도였으며, 로이엔탈의 통치가 자리를 잡아가자 동맹 시민들도 총독의 통치에 순응했다.

이후 로이엔탈은 일종의 전시행정으로 구 동맹을 좀먹은 이권정치가나 군수산업 경영자들을 일망타진했다. 구 체제의 부패를 탄핵하여 신 체제의 정의를 선전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로이엔탈은 민주주의의 치밀하지만 더딘 조치에 대비되게 거칠지만 빠른 조치로 인심을 얻으려 했다. 총독부는 구 동맹의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즐겨 쓰던 증거인멸, 법률 해석, 증인 매수라는 보호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그들을 체포했다. 총독이 발부하는 영장만 있으면 관헌들은 강제수사와 구속을 할 수 있었고, 이런 조치로 부패 정치가와 기업인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그리고 로이엔탈은 구 동맹에서 망가져가던 시민 서비스를 개선하여 지하철이 정시운행되게 한다든가, 일선 공무원들의 태도가 공손해지도록 하는 등 세세한 부분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렇게 구 동맹 시민들은 제국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듯 했으나, 우주력 800년 9월 1일 응웬 킴 호아 광장 사건이 터지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동맹 시민들은 반제국 시위를 벌이면서 라인하르트와 로이엔탈이 정치를 잘해봤자 결국 침략자와 압제자에 불과하다고 소리쳤으며, 반제국 감정은 수면 위로 올라와 노이에란트 전역에 폭동이 벌어졌다. 로이엔탈이 아무리 훌륭하게 동맹을 잘 다스린다고 해도 160년이 넘게 전쟁을 벌이던 제국에 대한 감정은 동맹 민중들에게 대대로 뿌리깊게 박혀있던 만큼, 이렇게 짧게 무너질 현실이었던 것을 로이엔탈도 씁쓸하게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지구교 아드리안 루빈스키는 로이엔탈이 반역을 일으키려고 유도했으며, 로이엔탈 스스로도 난세의 무인으로서 평화 속에서 찌들어 사는 것보다는 전장에서 죽는 것, 카이저와 맞붙는 것, 오베르슈타인이나 하이드리히 랑 따위에 숙청당하는 것을 거부하는 감정이 있었다. 결국 지구교의 모략으로 우르바시 사건이 터지면서 로이엔탈은 반역자가 되고 만다.
"카이저께 고개를 숙이는 것은 상관없다. 아니, 신하로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로이엔탈은 입을 다물었으나 베르겐그륀은 그의 흉중에 담긴 주장을 상상할 수 있었다.
'오베르슈타인이나 랑 따위에게 고개를 숙일 수 있겠는가.'
(중략)
"반역자가 되는 것은 언제든 상관없네, 그러나 남 손에 의해 반역자가 되는 것은 사양하고 싶군."
오스카 폰 로이엔탈, 우르바시 사건으로 코르넬리우스 루츠 상급대장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반란을 일으킬 것을 결심하며./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9권 회천편, 김완, 이타카(2011), p. 173

페잔에서 로이엔탈이 조만간 어떤 형식이든 반란을 일으켜 제위를 찬탈할 것이라는 기괴한 소문이 흐르고, 반대로 로이엔탈에게는 황제가 병환을 앓는 사이 간신들이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는 정보가 흘러갔다. 그러자 로이엔탈은 황제의 감정을 확인하기 위해 초청장을 보냈고, 로이엔탈은 믿은 라인하르트는 신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노이에란트 순방에 나섰지만 경유지였던 우르바시에서 주둔군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카이저 라인하르트가 노이에란트에서 행방불명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다.

로이엔탈은 사태를 보고받자 즉시 황제 일행을 찾아 보호할 것을 명령했으며 알프레트 그릴파르처 대장을 우르바시로 파견하여 혼란을 진정시키고 사태의 전모를 파악할 것을 명했다. 그러나 우주가 평화로워지면서 더 이상 무훈을 세워 출세하지 못할 거라고 판단한 그릴파르처는 무훈을 세울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사건과 지구교와 연관이 있다는 관련증거들을 모조리 은폐하고 진상을 숨겨 로이엔탈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결국 황제가 자신의 관할구역에서 행방불명되고, 동료이자 카이저의 신임받는 장군인 코르넬리우스 루츠가 전사하기까지 했는데 사건의 원인도 모르게 되어 결국 오스카 폰 로이엔탈은 자신이 통솔하는 노이에란트 치안군을 이끌고 원하지도 않은 반란을 일으켜 로엔그람 왕조 최초의 반역자가 되었다.[6]

로이엔탈이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정말 복합적이다. 로이엔탈 스스로의 야심, 언제나 완벽했고 언제까지나 완벽해야만 했던 황제가 보이는 양 웬리에 대한 집착감과 병세가 생기며 금이 가기 시작한 완벽한 군주상의 모습, 자신을 끌어내려는 하이드리히 랑과 뒤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던 오베르슈타인에 대한 반감, 한번 반역자로 의심받은 처지에서 벗어났다 싶었더니 또다시 반역자로 내몰렸다는 절망감,[7] 무엇보다 우르바시에서 황제가 자신의 부하들에게 공격당해 도망치듯 행성을 빠져나가 실종되었고 루츠 상급대장이 살해당했다는 초유의 사태, 이에 대해 변명할 어떠할 증거도 없다는 점까지 겹치며 자포자기적 심경이 완성된 것이다.

즉, 반란을 일으키고 싶어 일으킨 게 아니었다는 뜻. 루츠가 죽었다는 보고를 듣고 그도 멘붕하여 나도 모르게 로엔그람 왕조의 첫 반역자가 되고 말았다고 할 정도였다. 충직한 참모인 베르겐그륀은 존경하는 상관인 그가 절대 그럴 리 없음을 잘 알기에 애원하듯이 "이대로 있으면 안됩니다! 각하, 각하가 무고한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전혀 각하가 저지른 것도! 각하의 뜻도 아님을 카이저에게 알려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필사적으로 외쳤으나 페잔에 가기도 전에 랑이나 오베르슈타인이 놔두겠느냐고 자포자기하자 베르겐그륀도 뭐라고 못했다. 하지만, 베르겐그륀에게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경은 이 반역자를 체포하려면 체포하게나."라고 말할 정도로 처음부터 반란을 일으킬 마음은 없었다. 이렇게 순순히 손을 내밀고 날 체포하라고 했던 걸 봐도 원하지도 않은 반역에 그도 멘붕한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베르겐그륀은 차마 존경하는 상관을 그렇게 할 수 없었고 그도 반역자의 참모로서 원치 않은 반란에 스스로 끼어들게 된다.

어쨌든 거병한 로이엔탈은 라인하르트가 병환을 앓는 사이 국정을 농단하는 랑과 오베르슈타인 같은 간신들을 척결하겠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로이엔탈의 명분은 노이에란트 치안군 병사[8]들조차 제대로 납득하지 못했고, 제국 정부는 즉시 로이엔탈의 계급과 직책을 모두 박탈하였으며, 볼프강 미터마이어 원수를 토벌군 사령관으로 한 토벌군을 편성하여 노이에란트로 진입하였다. 로이엔탈은 방어 계획을 수립하고 제국군이 이제르론 회랑을 통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전 엘 파실 혁명군 참모장 무라이 퇴역중장을 사절로 보내 이제르론 공화정부와 교섭했다. 로이엔탈은 이제르론 공화정부가 제국군의 회랑 통과를 저지한다면 구동맹령의 지배권과 더불어 욥 트뤼니히트의 신병을 인도하겠다고 제안했고, 트뤼니히트를 증오하는 공화정부 인사들은 크게 흔들렸지만 냉정하게 판단한 끝에 로이엔탈의 제안을 거부하고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함대의 회랑 통과를 허용했다.

한편 페잔 회랑 방면에서 출발한 미터마이어의 진군 속도가 예상을 상회하자 로이엔탈은 방어를 위해 분산 배치한 병력을 다시 집중시키고, 전 병력을 이끌고 란테마리오 성역에서 제국군과 격돌했다. 양측 지휘관의 능력이 비슷해서 전술적으로 보면 무승부에 가까웠지만, 토벌군 4만 척 뒤에 수십만 척이 제국 본토에서 대기하고 있는 은하제국과 달리 로이엔탈의 병력은 단 4만 척 뿐이었고 이게 다 소모되면 보충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결판을 내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가다가 이제르론의 협조로 회랑을 통과한 메크링거 함대가 하이네센으로 진격했고, 본거지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로이엔탈은 질서정연하게 란테마리오 성역에서 철수했다. 그리고 미터마이어는 로이엔탈에게 재정비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추격을 서둘렀는데, 로이엔탈이 반격을 가하려는 찰나 그동안 음모의 칼을 갈아온 알프레트 그릴파르처의 배신으로 휘하 함대는 와해되고 기함 트리스탄이 피탄당해 로이엔탈은 쇄골 밑에 40cm 짜리 파편이 박히는 치명상을 입는다.

6.2. 검으로 흥하고 검으로 쓰러지다

그릴파르처의 배신으로 일시적으로 붕괴위기에 몰린 로이엔탈군은 빠르게 함대를 재편성하여 배신자 그릴파르처 함대에게 분노의 반격을 퍼부어 '역겨운' 배신행위는 진압되었으나 총기함 트리스탄이 파손되어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릴파르처의 배신으로 500만이 넘는 노이에란트 치안군 대부분은 와해되었고, 그를 따라 하이네센으로 돌아간 병력은 전체의 1할을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렇게 노이에란트 전역은 실질적으로 여기서 종결되었다. 휘하 함대를 잃어버린 로이엔탈에게 남은 것은 죽음 뿐이다. 자신이 반란을 성공시키기는 커녕 반란을 이어나갈 힘마저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로이엔탈은 중상을 입었음에도 군의관의 수술 권고도 거절하고 기초적인 응급처치만을 받는다.

로이엔탈은 진통제와 조혈제,造血劑,만 주기적으로 맞을 뿐 그 어떠한 치료도 받지 않았으며, 상상도 못 할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게 분명함에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지휘석에 앉아 정확한 판단과 지시로 부대를 지휘했다. 게다가 중간에 로이엔탈이 뇌빈혈로 의식을 잃는 바람에 병상으로 옮기려 했으나, 부하들이 로이엔탈의 몸에 손을 대는 순간 마치 자신이 언제 의식을 잃었냐는 듯 정신을 차리고 부하들을 호통쳐서 돌려보내면서 지휘석을 떠나는 것을 거부했다.[9] 게다가 기함 트리스탄이 워프를 하면서 발생한 진동으로 상처가 터지는 바람에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었을 때도, 수혈을 받고 의식을 되찾은 후에 트리스탄의 지휘석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즉 로이엔탈은 이 시점에서 이미 살 생각을 포기했다.

상념에 빠져있던 로이엔탈은 디터스도르프의 설득, 그리고 필사적인 방어 지휘로 남은 함대 일부를 지휘하여 자신의 집무실, 노이에란트 총독부 소재지 하이네센으로 복귀한다. 로이엔탈이 전장을 떠난 이후 디터스도르프도 부상을 입고 항복, 남은 치안군은 전원 투항한다.

싸우다 전사하거나, 싸우다 힘에 부쳐 항복하긴 했어도 그릴파르처를 제외한 로이엔탈의 부하들은 장교부터 말단 병사까지 그 누구도 도망치거나 배반하지 않았다. 몇몇 부하들은 자신들이 반역으로 처형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반란이 실패했다는 사실도 잘 알았으나 로이엔탈을 향한 충성심이 사라지기는 커녕 무려 약 4천 명의 장병이 로이엔탈과 최후를 함께 하겠다라 하며 총독부에 집결하였다. 그 말을 들은 로이엔탈은, "그래? 의외로 세상에는 바보가 많군."이라 평했다.[10]

총독부로 돌아온 로이엔탈은 연금에서 풀려난 민사장관 율리우스 엘스하이머에게 노이에란트 총독부의 정무와 사무의 전권을 맡기고 마지막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욥 트뤼니히트를 불러온다. 불려오자마자 욥 트뤼니히트는 궤변가답게 자신만만하게 말을 쏟아내지만, 내뱉은 말 중에 라인하르트를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애송이'라고 부른 게 화근이 되어 로이엔탈에게 블래스터로 처형당한다. 트뤼니히트를 쏴죽인 뒤, 로이엔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네놈이 민주공화정치를 우롱하건, 국가를 잡아먹건, 시민을 현혹하건, 그런 것은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로이엔탈의 색이 다른 두 눈이 냉혹한 빛으로 트뤼니히트의 얼굴을 쏘아보고, 자유행성동맹 전 국가원수의 장신을 떨게 했다.
"그러나, 그러나 그 지저분한 혀로 카이저의 존엄에 오물을 처바르는 행위는 용서하지 못한다. 나는 네놈 따위에게 모욕당할 분을 섬기거나 저버린 적이 없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9권 회천편, 김완, 이타카(2011), p.298~299

트뤼니히트가 죽자, 로이엔탈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끝끝내 불쾌한 놈이로군. 내가 생애 최후에 죽인 자가 무기도 들지 않았다니....... 내게 불명예를 남겼구나"
은하영웅전설 9권 <회천편>, 김완, 이타카(2011), p.299[11]

죽은 트뤼니히트의 시체를 치워버리고, 죽음에 점차 가까워진 로이엔탈 앞에 엘프리데 폰 콜라우슈가 나타났다. 어린 아이를 안고 있어서 당신 아이냐고 묻자 그녀는 네 아들이라고 받아쳤다. 그는 이전부터 아이가 있다는 사실 자체는 알고 있었는데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아이를 원하는 모범적 부모가 될 수 있는 미터마이어 부부에겐 아이가 없고, 아버지가 될 자격이 없는 자신에게서 아이가 태어난 아이러니를 자조하면서, 아이를 친우 미터마이어에게 맡기라는 말을 남기고 엘프리데에게 자신을 죽일 테면 죽이라고 한다. 그러나 엘프리데는 로이엔탈을 죽이지 않고,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준 후 당번병에게 아이를 미터마이어에게 맡겨 달라는 말을 남기고 총독부를 떠난다.

엘프리데 입장에서는 이미 로이엔탈을 향한 살의와 증오가 어느 정도 누그러진 지 오래이기도 하고, 자신의 가문을 멸문시키고 강간 후 임신까지 시킨 로이엔탈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통쾌한 복수다. 이미 대원수 로이엔탈은 반역귀족이 되어 죽음은 예정되었으니 굳이 손에 피를 흘려서까지 죽일 필요도 없다. 스스로 누군가의 아버지가 될 수 없다 생각하며 낙태를 바란 로이엔탈에게 엘프리데는 10개월 동안 태아를 품다 죽기 직전에 친히 '로이엔탈의 강간과 (생물학적인) 부성의 증거'인 사생아를 낳아 데려옴으로써 또 한 번 절망에 빠트리고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꼴을 볼 수 있기 때문.

당번병 하인리히 람베르츠가 아이를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묻자 로이엔탈은 미터마이어가 올 때까지 아이를 안아주고, 위스키와 잔 두 개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술을 준비하고 친구 미터마이어를 기다리던 로이엔탈은, 미터마이어가 노이에란트 총독부에 도착하기 겨우 몇 시간 전에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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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는 것 아닌가, 미터마이어......."
미주의 향이 색채를 잃어가는 시각을 조용히 침범하기 시작했다.
"경이 올 때까지 살아있을 생각이었건만, 왜 이리 늦는단 말인가. 질풍 볼프라는 현란한 별명에 부끄럽지도 않은가......."
은하영웅전설 9권 <회천편>, 김완, 이타카(2011), p.305
『마인 카이저. 미터마이어, 지크, 죽음.』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9권 <회천편>, 김완, 이타카(2011), p.312

12월 16일 16시 51분. 오스카 폰 로이엔탈은 서른 세 살, 항상 그와 반대 진영에 있던 양 웬리와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해에 죽었다. 죽기 전에 그는 입을 벙긋거리며 마지막 유언을 남겼는데 이걸 본 당번병 람베르츠가 달려가 얼른 그가 한 말을 적었다. 이 말을 끝내고 그대로 숨을 거둔 로이엔탈에게 람베르츠는 울음을 참으며 경례를 했다.

7. 사후

로이엔탈이 죽고 두 시간 뒤 미터마이어, 바렌, 비텐펠트, 바이어라인이 하이네센 우주항에 착륙했다. 사열부총감 리츨 중장과 민사장관 엘스하이머가 문무관을 대표하여 마중을 나왔으며 로이엔탈의 부고를 전했다. 미터마이어는 로이엔탈의 부고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트뤼니히트가 죽었다는 보고를 받자 로이엔탈이 카이저를 위해 노이에란트를 대청소했다고 탄식했다.[12]

로이엔탈이 죽은 뒤 총독부에는 베르겐그륀, 존넨펠스, 레켄도르프와 수많은 장병들이 총독부를 지키고 있었다. 미터마이어 일행이 오자 아직 무장을 해제하지 않은 병사들이 미터마이어에게 총을 겨누었으나 카이저의 대리인이자 로이엔탈 총독의 친구에게 무슨 망발이냐고 존넨펠스 중장이 호통을 치자 병사들은 즉시 받들어총 자세로 경례했다. 집무실로 들어간 미터마이어는 죽은 로이엔탈과 아이를 안고 있는 람베르츠를 보았으며, 람베르츠는 로이엔탈 원수의 죽음을 보고하다가 감정이 복받쳐 울음을 터트렸고 그에 따라 아기도 울었다. 일행 중 가장 어린 바이어라인이 두 사람을 달래며 옆방으로 데려갔고 미터마이어는 죽은 벗의 시신에 자신의 군용 망토를 걸쳐주었다.[13]

미터마이어는 로이엔탈의 죽음을 확인한 뒤 카이저에게 내전 종결을 보고하기 위해 하이네센을 떠났다. 겉으로는 구 동맹 시민들에게 내전에 대한 기억을 빨리 지우기 위한 조치였으나 속으로는 친구가 죽은 불길한 행성을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미터마이어는 이때까지 꾹 참았으나 기함인 베어볼프를 타고 페잔으로 돌아갈때 슬며시 부하들을 등돌리고 함교 가장자리에 서서 우주를 바라보며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며 둘도 없는 벗의 죽음에 대하여 슬퍼했다. 이 모습을 본 부장인 바이에르라인은 "나는 평생 이 광경을 잊을 수 없을 거다. '질풍 볼프'가 울고 있다니…"라는 감상을 남겼다. 미터마이어에게 맡긴 아이도 같이 페잔으로 데려갔고 얼마 뒤 미터마이어의 양아들 ' 펠릭스 미터마이어'가 된다.

로이엔탈의 부고가 전해지자 카이저 라인하르트는 박탈했던 로이엔탈의 원수 칭호를 반환했다. 로이엔탈을 총독에 임명했던 건 잘못이라 해도 원수에 서임했던 것은 잘못이라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역에 동참해서 자결 또는 전사한 자들의 계급도 박탈하지 않았지만 추하게 배신한 알프레트 그릴파르처는 계급 박탈과 자결을 명했다.

그의 부하 베르겐그륀은 상관의 죽음에 비관한 나머지 자살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한 한이 얼마나 깊었는지 라인하르트를 향해 뼈 있는 독설을 날렸다. 그가 모신 상관들이 한 명 때문에 죽었으니 그럴만 하다. OVA에선 바로 미터마이어와 참모진이 있던 자리에서 문잠그고 안에서 이런 소리를 하고 자살하여 미터마이어가 착잡한 얼굴을 한다.

한편 로이엔탈이 죽은 유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두고 사람들이 논쟁을 벌였다. 특히 '지크'가 문제가 되었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말 그대로 승리(sieg)를 뜻하는 것이라는 설과 '지크 카이저, 설령 이 몸은 죽음을 맞더라도'라 하려던 것이라는 설,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의 죽음으로 인해.......'라고 말하려다 힘이 다했다는 설이 있었다. 하인리히 람베르츠는 이에 대해 내가 기록한 것은 의미를 가진 말뿐이었으며, 의미가 불확실한 음성은 적지 않았고 타인의 해석이 책임을 질 수 없다고 말했으며 평생 이와 관한 화제에 참여하지 않았다.


[1] 실제로 문벌귀족쯤 되면 재산이 없으면 국가나 황실에서 원조해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파산할 정도라면 마르바흐 백작가 당주의 사치와 빛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던 듯하다. [2] 레오노라는 점술이나 운명학을 신봉했기 때문에 레오노라의 정부,情夫,가 검은 눈이어서 아이의 눈이 반반 색깔로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3] 이 때, 손을 살짝 움츠린다. [4] 콜라우슈는 로이엔탈의 아이를 가졌는데, 이 소식을 들은 로이엔탈 원수는 그 사실을 축복하면서 그 아이를 위해 더 높이 올라가겠다고 콜라우슈가 증언했다. [5] 다만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사람은 랑이었고 브룩도르프는 랑의 논리에 휘말려 이름만 빌려준 것으로 끝났다. [6] 로이엔탈이든 휘하 참모들이든 반역의 의사가 조금도 없었고 우르바시 사건도 노이에란트 총독부에서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기에 베르겐그륀 대장이 나서 결백을 호소해야 한다고 간청했으나 이미 한번 반역 의혹에 연루된 로이엔탈은 또다시 변명해야 함을, 더구나 루츠 상급대장이 전사해버린 상황에서 또다시 결백을 호소할 수 있겠냐 판단했다. 더구나 오래전부터 자신을 공격해오던 랑이나 오베르슈타인을 생각하면 이대로 있다가는 손도 못쓰고 불명예스럽게 죽음을 맞이할 운명임을 직감하며 진짜로 반역을 일으켰다. [7] 한번 걸렸다고 또 걸렸으니 다음에 또 걸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그 배후에 랑과 오베르슈타인이 있었으니(더 나아가 루빈스키와 트뤼니히트까지 포함) 절대 빠져나올길이 없다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8] 작중에서도 치안군 장병들이 "황제 폐하와 싸운다니 이건 반역이 아닌가?"/"반역이 아니라 폐하 주위의 간신들을 처단하는 거야."/"그래도 군무상서(오베르슈타인)그 사람은 사욕을 부리는 작자는 아니던데."라고 수군거리는 묘사가 나온다. [9] 설명으로는 이 모습에 부하들은 외경심을 가졌다고 한다. [10] 물론 마음 속으로는 "그리고 그 우두머리는 너다......."라고 쓴웃음지었다. 이 부하들은 나중에 미터마이어가 오자 살기어린 눈으로 총을 겨누다가, 존넨펠스가 "폐하의 대리인이자, 로이엔탈 원수의 둘도 없는 친구인 미터마이어 원수에게 이 무슨 추태냐! 총을 냉큼 거두지 못할까!" 라고 호통치자 얼른 총을 거뒀다. [11] 을지서적판에서는 집무 데스크에 장착된 레일건(…)을 남은 힘을 쥐어짜 밀어내어 발포하여 죽였다고 번역했다. [12] 트뤼니히트는 동맹을 좀먹으면서도 편법을 통해 꼬투리 잡힐 일 없이 요리조리 빠져나갔기에 동맹은 물론 제국 수뇌부에서도 그 악명이 자자했다. 여기에 군인의 명예를 중시하는 라인하르트나 미터마이어 같은 제국 장성들은 중죄를 저지른 게 아닌 이상 비무장한 관료나 민간인을 멋대로 사살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기에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다. [13] OVA에서는 방에 있던 로엔그람 황조 상징인 황금사자기를 찢어 로이엔탈에게 덮어주었기에 곁에 있던 부하들이 놀란 얼굴을 했다. 하마터면 대역에 동참하는 거 아니냐 소리도 나올 짓이지만 아무 문제없이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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