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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 프랑스, F-BVFB |
Aérospatiale / BAC Concorde (아에로스파시알 / BAC 콩코드) Le Concorde / Concorde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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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코드의 개발사를 나타낸 카람볼라지(Karambolage) 영상.[1][2] | 콩코드의 비행을 감당할 수 없는 이유[3][4] |
개발 계획은 1954년 2월에 영국에서 초음속 여객기 제작을 위한 위원회가 결성되면서 시작되었고, 1962년 11월 29일에 프랑스와 영국에 의해 개발 프로젝트를 수립하는 조약이 체결되어 1965년 2월에 시제기 제작이 시작되어 1967년 11월 12일에 초도기가 툴루즈에서 롤아웃되었다. 초도기의 비행은 1969년 3월 2일에 툴루즈에서 성사되었고, 최초의 초음속 비행은 1969년 10월 1일에 성사되었으며, 1976년 1월 21일에 영국항공의 G-BOAA가 운항하는 런던-바레인 노선과 에어 프랑스의 F-BVFA가 운항하는 파리-다카르-리우데자네이루 노선을 위해 두 항공사의 기체가 문자 그대로 동시에 이륙하는 것으로 상업 운항이 시작되었고, 1976년 11월 2일에 총 20대[7] 생산을 끝으로 생산이 종료되었다. 2020년대 초반 기준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개발 비용에는 무려 1억 5,000만 파운드 정도가 들어갔다.
순항속도가 마하 2 이상의 초음속이지만 순항 중 애프터버너를 상시 가동하지는 않고 슈퍼 크루징으로 순항한다.[8] 애프터버너(Engine Reheat)를 사용하는 때는 이륙 과정(이륙~500ft)과 초음속 진입 과정(마하 0.7~ 마하 1.7[9])뿐이다. 한 번 가동하는 데 15분의 제한이 붙어있다. 초음속으로 설계된 항공기이기 때문에 여러 제약에 의한 아음속 비행을 할 때에는 연비가 굉장히 나쁘다.[10] 하지만 일반 여객기가 횡단에 7시간 걸리는 대서양을 3시간 20분 만에 주파할 수 있다.[11] 그래서 후술하듯 이코노미보다도 좁은 좌석 주제에 항공권 가격만 따지면 완벽한 일등석 전용 여객기였다. 운용 비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다보니 거의 대통령 전용기 수준의 각 항공사 최우수 승무원들만 근무했다는 특징도 있다.
콩코드의 이륙 방법도 다른 항공기들과는 달랐는데 일반적인 항공기들은 이륙할 때 엔진 스로틀을 천천히 중간까지 올려 추력이 정상적으로 올라오는지 확인하고 그 다음에 최대출력까지 (TOGA) 올려 이륙활주를 시작하지만, 콩코드는 이륙 직전 애프터버너 스위치를 키고 이륙할땐 처음부터 엔진 스로틀이 아이들인 (Idle, 엔진추력이 없는 상태) 상태에서 바로 최대출력으로 올려버린다. 바로 그 유명한 콜아웃, Three, Two, One, Now. 을 부르면서 말이다.[12] 실제 조종석 영상.
이륙직후 랜딩기어를 올리면 애프터버너의 타이머에 맞추어 소음 감소화 절차를 (Noise Abatement Procedure) 시행한다. 콜아웃 Three, Two, One, Noise에 맞추어 엔진 출력을 중간으로 줄임과 동시에 애프터버너 스위치를 끈다. 이후 250노트의 (약 시속 500km) 속도로 날면서 소음을 최소화하면서 다른 출도착 항공기들과 거리를 유지하며 대서양 방향으로 비행한다.
영국을 벗어나면 조금씩 속도를 올리다가 아일랜드 공역을 벗어나[13] 마하 0.7에 도달하면 엔진 스로틀을 최대출력으로 올린 후 다시 애프터버너 스위치를 켜서 마하 1.7까지 증속 후엔 애프터버너를 다시 끄고 MIL 파워로 마하2까지 속도를 올린 후 초음속 비행을 진행한다.
초음속 비행을 마친 후 하강을 할땐 먼저 엔진 출력을 중간으로 줄여 속도를 감속시킨다. 속도가 마하 1.5 정도 줄어들면 엔진 출력을 최소로 하고 하강을 시작해 캐나다 공역 또는 아일랜드 공역으로 진입, 250노트 이하로 비행하며 접근을 진행한다.
다른 항공기들은 엔진 스로틀 밑에 'Fuel Control Switch'가 있다. 한마디로 엔진에 시동을 걸거나 끌 수 있는 장치인데, 콩코드는 이 스위치가 아닌 애프터버너 스위치가 장착되어 있었다. 콩코드의 'Fuel Control Switch'는 조종석 위 'Overhead Pannel' 중간에 위치해 있는 것이 특이점.
또한 착륙 직후에 항공기가 바운스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장이 부기장에게 Sticks Forward (조종간을 밑으로 숙이라) 지시를 내렸었다. 이에 부기장이 조종간을 이양받아 항공기가 감속하는 동안 밑으로 숙였었는데, 이 방법은 다른 항공기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었던, 오직 콩코드에만 있었던 절차 중 하나였다.
콩코드의 속도가 지구의 자전 속도[14]보다 빠르기 때문에 이미 해가 져 깜깜한 런던에서 출발해 뉴욕에 도착하면 저녁노을이 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15] 이를 응용해 영국항공에서 "떠나기 전에 도착하라" 라는 슬로건으로 홍보했다.[16]
항속거리가 7,200km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태평양 직행 노선은 운행이 불가능하다.[17] 앵커리지 국제공항에서 중간 기착을 한다면 인천-앵커리지가 6천 km, 앵커리지-뉴욕이 5400km이니 운용이 가능하겠지만 앵커리지-뉴욕 노선이 내륙 지방을 날아간다는 특성상 소닉붐 때문에 초음속으로 날아갈 수 없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러면 콩코드를 탈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인천-앵커리지를 콩코드 타고 와서 앵커리지에서 아음속기로 갈아탄다면 환승시간 등 때문에 불편하고 비효율적이어서 이 역시 콩코드를 타는 의미가 퇴색된다.
2. 제원[18]
- 승무원: 3명 (조종사 2명, 항공기관사 1명)
- 용량: 승객 92–120 명
- 길이: 202 ft 4 in (61.66 m)
- 날개폭: 84 ft 0 in (25.6 m)
- 높이: 40ft 0 in (12.2 m)
- 날개면적: 3,856 제곱피트 (358.25 제곱미터)
- 공허중량: 173,500 lb (78,700 kg)
- 유효탑재량: 245,000 lb (111,130 kg)
- 엔진: 4 × 롤스로이스/스네크마 올림푸스 593 Mk 610 재연소 터보제트
- 최대추력: 32,000 lbf (140 kN) 각각
- 재연소시추력: 38,050 lbf (169 kN) 각각
- 최대속도: 마하 2.04 (=1,354 mph, 2,179 km/h, 1,176 knots)
- 순항속도: 마하 2.02 (=1,340 mph, 2,158 km/h, 1,164 knots)
- 항속거리: 3,900 nmi (4,488.04마일, 7,222.8km)
- 상승한도: 60,000 피트 (18,300m)
- 상승률: 5,000 ft/min (25.41 m/s)
- 양항비: Low speed– 3.94, Approach– 4.35, 250 kn, 10,000 피트– 9.27, Mach 0.94– 11.47, Mach 2.04– 7.14
- 연료소비: 46.85 lb/mi (13.2 kg/km)
- 추력대중량비: 0.373
- 최대 열 차폐 온도: 260 °F (127 °C)
- 항공전자장비: EKCO E390/564 레이더
3. 운항 이력과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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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콩코드 노선도[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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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24일, 영국항공에 의한 콩코드 최후의 여객비행(뉴욕-런던 노선) 당시 영상.[20] |
주로 운용한 항공사는 영국항공과 에어 프랑스. 각각 런던(LHR) - 뉴욕(JFK), 파리(CDG) - 뉴욕(JFK) 구간에 운항되었다. 특히 둘 다 001편으로 운항하였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21] 브래니프 항공과 싱가포르항공에 웻 리스(wet lease) 형태로 대여 되어 댈러스(DFW) - 뉴욕(JFK), 런던(LHR)- 싱가포르(SIN)도 운항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제정시기 이란항공에서도 잠시 임차해서 운항한 적이 있었다.[22] 댈러스행은 브래니프가 콩코드를 운용할 시절, 편당 최다 탑승률이 15명 이상으로 넘어간 적이 없다고 한다.[23] 그야말로 초고가 공기수송이라 보면 된다.[24] 싱가포르행은 영공 통과국인 인도와 말레이시아 쪽에서 소닉붐 민원이 너무 많이 들어와 결국 운항이 중단되었다.[25]
대신에 서비스는 상상 이상이었는데, 콩코드 승객은 영국 런던 히스로 공항 4터미널과 뉴욕 JFK 국제공항 7터미널에 콩코드 승객만을 위한 전용 라운지 및 게이트를[26]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그 까다로운 미국 입국 심사도 단 2분 안에 통과할 정도였다고 한다.[27] 덕분에 불과 몇 시간 전 런던에서 아침에 일어난 사람이 오전 10시에 맨해튼 한복판에 도착하는 게 현실에서 가능하였다. 기내에서도 콩코드 승객만을 위한 전용 객실 승무원과 기내식[28], 기내 어메니티 키트, 면세품이 제공되었으며, 기내식은 웨지우드 도자기에 담아서 서빙했고[29], 와인과 샴페인이 무료로 제공되었다. 콩코드 기내식 관련 이야기 거기다가 콩코드의 fare code( 마일리지 적립 클래스)도 보통 1등석의 F가 아니라 R을 사용했는데, 현재 이 코드는 A380의 1등석이 물려받았다. A380이 물려받았다는 말은 그야말로 콩코드가 특1등석 대접을 받았다는 뜻이며, 콩코드 탑승은 말 그대로 부와 권위의 상징이었던 것을 의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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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 | 창문[30] |
콩코드 개발 당시에는 세계 항공업계의 판도를 바꿀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의외로 인기가 없어서[31] 20여 대밖에 생산되지 못했다. 미국이 아싸 좋구나 하고 개발에 뛰어들었다가 소닉붐, 비효율성, 오일 쇼크로 무섭게 뛰어버린 기름값 등 여러 가지 문제점에 뒤늦게 눈을 뜨고 모든 계획을 취소해버려서, 보잉의 보잉 2707과 록히드 마틴의 L-2000이 흑역사가 되어버리기도 했다.
콩코드의 존재를 의식한 소련은 독자적인 초음속 여객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이르렀고, 투폴레프는 Tu-144를 개발하였다.[32] Tu-144는 콩코드와 비슷한 단점을 보여주고 훨씬 심각한 사고를 내 화물기로만 쓰이다가 얼마 후 퇴역하였다.
높은 순항속도로 인해[33] 성층권을 비행하면서 오존층을 심각하게 파괴했다는 주장이 환경단체에서 나왔으나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이며, 콩코드가 몇 대 안 되기 때문에 실제 영향은 미미했을 가능성이 크다.[34]
300여 명 가까이 탑승이 가능한 보잉 747 같은 일반 여객기에 비해[35] 정원이 불과 100여명이라는 낮은 경제성 문제, 항공편이 하루 한두번 밖에 없어서 '아침은 파리, 점심은 뉴욕, 저녁은 다시 런던'이 이뤄질 수 없었다는 점이 항공사 운영에 있어서는 꽤 불리한 점이었다.[36] 또한 항공기 운항 비용이 점점 저렴해지니 다국적 기업은 원하는 시간에 사용할 수 있는 자기 회사 전용기를 쓰는 것이 편리하게 되었다.
콩코드가 대중적인 여객기가 되지 못한 까닭은 바로 엄청난 소음과 배기가스, 경제적 문제 때문이다. 운영하는 항공사나 탑승객이나 경제적으로 엄청난 골머리를 앓았다. 음속을 넘어가게 되면 충격파 현상으로 발생하게 되는 엄청난 소음과 배기가스 발생으로 인한 민원이 끊이질 않았으며, 롤스로이스 올림푸스 엔진과 전자제어 가변식 인테이크[37]를 도입해 초음속에 도달 후 애프터버너를 꺼도 초음속을 유지하는 슈퍼크루즈가 가능하였지만, 초음속에 도달할 때까지 항상 애프터버너를 사용하기에 연료비가 일반 비행기의 3~4배가 넘게 드는 기름 먹는 하마였다.[38] 그러면서도 정원이 120여 명 남짓이었기 때문에 전 좌석은 모두 프리미엄 이코노미 클래스에 준하는 좌석[39]이었는데도 콩코드의 좌석 가격은 일반적인 일등석 가격보다도 비쌌다고 한다.
충격파 현상으로 발생하게 되는 엄청난 소음 때문에 콩코드의 초음속 비행은 대부분 대서양 바다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니까 내륙 지방을 비행할 때는 다른 음속 항공기들과 같이 250노트 (약 시속 500km) 이하의 속도로 비행하고, 바다로 나가면 그때부터 속도를 올리기 시작해 마하 2까지 가속했다. 반대로 목적지 부근에 접근하면 속도를 마하 2에서 250노트까지 줄여 접근하였다.
이러한 소음 문제 때문에 미국에서는 콩코드를 워싱턴과 뉴욕에만 정기노선으로 취항했으며, 특히 뉴욕은 에어프랑스, 영국항공 콩코드의 이착륙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추가로 주변지역의 소음을 줄이기 위해 뉴욕 JFK 공항에서는 콩코드의 이륙 활주로가 따로 배정되었을 정도였다. 바로 31L 활주로[40]를 이용한 Canarsie Climb 출발절차다.[41] 이 출발절차는 31L 이륙직후 급좌선회를 하여 해안선을 끼면서 퀸즈 지역 상공을 통과하며, 콩코드의 경우 퀸즈 지역을 통과하면 추가적인 좌선회를 하여 대서양 방향으로 나갔다. 일반 항공기들은 이륙 직후 활주로 끝부분에서 좌선회하지만, 콩코드의 경우 소음을 최소화 하기 위해 이륙한지 5-10초만에 활주로 3/4 지점에서 급좌선회하여 뉴욕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콩코드의 JFK 이륙 영상. 한번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42] 참고. 실제 콩코드는 이 루트보다 더 빨리 좌선회했다.
당시 뉴욕- 파리, 런던 구간 탑승 비용이 15,000~20,000달러(1,950~2,160여만 원, 왕복 기준)로, 일반 여객기의 같은 구간 왕복 항공 운임이 퍼스트 클래스의 경우 5,000달러(650여만 원). 비즈니스 클래스는 2,000~3,000달러(260~390여만 원). 이코노미 클래스가 1,000달러(130여만 원) 였던 것에 비하면, 얼마나 비싼 운임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1983년 당시 콩코드 런던-뉴욕 왕복 노선 가격은 2021년 가치로 약 8610파운드(약 1360만 원)으로, 이는 비슷한 시기에 같은 노선에서의 일반적인 일등석 가격[43]보다 20% 이상 비싼 것이었다.
1996년 기준으로 영국항공의 콩코드 뉴욕-런던 왕복 항공편 가격이 7574달러[44]였다. # 동시기 영국항공의 뉴욕-런던 편도 항공편 가격도 4509달러[45]로 일반 1등석 가격(2109달러[46])의 2배 이상으로 많았다.[47] #
이와 관련되어 항속거리도 짧아 대서양은 넘을 수 있지만, 엄청난 연료 소모 때문에 대한민국, 일본 등의 극동에서 태평양을 횡단하려면 알래스카 앵커리지 국제공항에서 중간 기착을 해야 한다. 싱가포르항공에서 운항했을 당시에는 바레인에서 중간 기착을 했다. 따라서 일반 여객기에 비해 엄청난 소음과 배기가스 발생으로 인한 잦은 민원, 막대한 양의 연료 소모, 적은 승객, 엄청나게 비싼 운임, 잦은 기체 손상 등으로 인한 유지비용 증가 등의 문제도 있었다.
유지 보수비용도 장난이 아니었다. 콩코드 여객기의 표면의 금속판 이음새는 특이하게도 상당히 여유 있게(헐렁거리게) 만들어져 있는데, 상당한 열팽창이 일어나 총길이가 10~20cm 늘어나기 때문에 해놓은 조치이다.[48] 이건 SR-71도 마찬가지.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운항 후 기체 손상으로 인한 고장이 잦았으며, 보수 비용이 많이 들어갔다고 한다. 거기다가 기체 하나당 가격도 장난 아니게 비싸 1977년 기준으로 단가가 2,300만 파운드[49]였기 때문에 콩코드는 '역사상 가장 비싼 여객기'라는 타이틀도 얻게 되었다.
유지 보수비에는 인건비도 포함되었다. 타는 손님들의 급이 일반적인 1등석의 수준을 넘는 VVIP였으므로 이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객실 승무원과 항공기를 정비하는 메카닉들 역시 업계 최고를 넘어 대통령 내지 왕실 전용기와 동일한 수준으로 배치해야 했다. 게다가 항법 장비도 재래식방식인 INS를 퇴역할 때까지 사용하고 운항난이도[50]가 워낙높았기 때문에, 1990년대에 들어서 사라지기 시작한 항공기관사도 탑승을 해야만 했다.[51] 항공기관사를 제외시키려면 다른 여객기에서 그랬듯 항법 장비를 현대식(전자식)으로 개수해야 했지만, 워낙 항공기의 개체수가 적었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가 역으로 작용해서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52] 콩코드는 워낙 대수가 적은 탓에 개수에 필요한 값비싼 엔지니어들의 인건비를 수백 대의 기체에 나누어 가격을 낮추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결국 비용 문제 때문에 항공기관사들이 퇴역할 때까지 탑승하여야 했던, 미래를 상징하였지만 미래가 없는 실패작으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운항 당시에 콩코드 조종사 및 항공기관사들은 승객들, 그리고 항공사 내에서도 최고의 인기와 영광을 누렸었다. 아무래도 운항 난이도 역시 항공기들 중 최상이었고, 그런 만큼 콩코드 조종사는 조종사 중에서도 최장시간 무사고는 기본 축에도 못 끼는 그야말로 최고 수준의 인원만 뽑아야 했기에 다른 어느 항공기 조종사들보다도 더 높은 직급과 연봉을 받았었다. 이 때문에 콩코드는 에어프랑스, 영국항공 항공사 조종사들이 가장 조종하고 싶은 항공기 중에 하나였다. 추가로 항공기가 특별했기 때문에 콩코드가 어디를 가던지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주목받았었다.
서유럽 국가에서 개발된 항공기임에도 정작 객실 내부는 서유럽인의 체격하고는 전혀 맞지 않았다. 시트 재질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비행 성능을 위해 비행기 내부는 매우 좁고 불편한데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겨우 현대의 프리미엄 이코노미 수준의 시트가 깔리고, 동체의 폭도 리저널 제트기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조종사 뿐만 아니라 승객이나 승무원 모두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소음, 창문도 어른 손바닥만한데다, 그것마저 엄청나게 큰 날개가 걸림돌이 되어 밖을 구경하면서 비행을 즐기는 것조차 힘들었다.[53] 때문에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더 편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탑승 가능한 항공기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지사. 여담이지만, 기내 엔터테인먼트는 영화 없이 음악만 제공되었으며, 기내 격벽에는 비행 고도와 속도를 알려주는 전광판이 있었다.
사실 콩코드의 설계도 문제가 있었다. 물체가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가벼워야 한다.[54] 보잉 2707이 설계를 계속 바꾼 이유도 무게 때문이었다.
콩코드도 이런 이유에서 경량화를 위해 없어도 되는 부품을 과감히 뺐는데, 빠진 부품 중에는 고양력 장치(플랩, 스포일러 등)도 있었다. 그 이전에 수평미익이 따로 없는 델타익 항공기에는 플랩이 있을 수가 없다. 에일러론을 내리면 기수도 같이 내려가서 이륙이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다른 항공기들과 달리 지상에서 속도를 최대한 높여서 이륙해야 했다.[55][56] 위와 같은 성능을 얻기 위해 랜딩기어의 개수를 줄이고 타이어 또한 더욱더 고하중 고속으로 회전하는 환경으로 설계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인해 아음속 비행기에 비해 타이어 관련 사고 위험성이 30배 더 높았으며 1979년 7월에서 1981년 2월까지 2회 발생한 타이어 관련 기체 파손 사고 조사 후속조치로 NTSB는 이 문제로 프랑스 BEA에 위험성을 보고 및 기체 강성 개선 조치를 요구하였으나 기체 중량 증가 및 경제성 문제로 묵인되었다. 운용기간 동안 70회의 타이어 관련 준사고가 발생하였으며 그 중 에어 프랑스 4590편 추락 사고를 포함한 8회는 타이어 파편으로 인한 기체 파손이 발생한 중대한 사고였다.
다만 콩코드가 대중화에는 실패했어도 대규모 발주는 하지 않은 덕인지 생각보다 꽤 수익을 냈다고 한다. 항공사에서 1979년 즈음 양 운항사가 명확한 수요층이 확인되는 뉴욕 노선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영국항공의 경우 연 10억 파운드의 운용비용에 17억 파운드 가량의 수익을 내면서 이익을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57] 기체 도입 비용도 사실상 양국 정부에서 도입 비용의 상당액을 부담한지라 회사 입장에서는 크게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차츰 운항을 하다 보니 처음 타겟층으로 설정한 계층보다 실제 이용 계층은 더 소비 여력이 크면서, 정기적으로 대서양 양편을 오가는 비즈니스맨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초기 설정한 가격보다 가격을 더 올리면서 수익성을 개선 시키기도 했다. 콩코드가 정말로 수익성이 없었다면 영국항공이 1987년 민영화 된 이후 10년이 넘는 추가 기간을 단지 상징성 하나 때문에 운용하지는 않았을 것 이다. 오히려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런던-뉴욕간 일일 2회 왕복으로 운항 횟수가 더 늘어났다. 하지만 아래 2000년 사고와 2001년 9.11 테러 이후 유지비·보안 비용·연료비 급상승과 항공 수요 급감으로 더 이상 수익성 보장이 힘들자 결국 운항을 중지하게 된다.
이렇듯 초음속 여객기의 운용은 굉장히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콩코드는 실패로 끝난 Tu-144나 취소된 보잉 2707에 비하면 굉장히 잘 운용되었다. 과거에 출판된 어린이 대백과나 교통에 관련된 서적에선 콩코드를 사고와 위험으로 가득찬 여객기로 묘사하곤 했지만, 후술할 2000년의 사고 전까지는 승객 사망 사고가 0건이었던 안전하고 빠른 여객기였으며, 사용 기간도 생각해 보면 그리 짧은 기간[58]도 아니다. 이를 단지 영국과 프랑스의 자존심으로 버텨온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콩코드가 운항하던 시절 런던 히스로 공항(LHR) - 뉴욕시(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노선은 부의 상징으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오죽하면 엘리자베스 2세의 전용기로 쓰였겠는가. 콩코드는 최악의 써클링 랜딩을 자랑했던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에도 착륙했었다. 2000년 1월 1일에는 새 천년의 첫 일출을 좀 더 오래, 색다르게 보겠다는 사람들이 콩코드 2대를 전세내서 하늘에 뜬 채로 일출을 감상하기도 했다. 콩코드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비행기로 평가할 수 있으며 적어도 속도 면에서 이 여객기를 뛰어넘는 여객기는 없다.
콩코드의 기념비적 위치는 영국항공에서 최장기간 비행한 콩코드 조종사 저크 로우의 아래 회상에 잘 드러난다.[59]
콩코드의 성공은 토론토의 에어쇼로 날아갔을 때 처음으로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거기서 나는 SR-71 블랙버드 스파이기의 조종사들을 만났다. 그들은 우주복과 헬멧을 쓰고 쿠바 상공 6만 피트 고도에서 사진 촬영 임무를 수행하는데 익숙해져 있다고 말했다. 어느 날 관제탑에서 그들에게 오른쪽으로 20마일 비키라고 했고 그들은 이유를 물었다. 관제탑은「 카라카스[60]를 출발한 항공기 한 대가 옆으로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조종사들은 '정말 그랬다. 셔츠를 입고 샴페인을 마시는 몇 명의 승객을 태운 에어 프랑스의 콩코드가 우리 옆에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들은 우주복을 입고 거기 앉아 있었는데. |
하지만 결국 2000년 7월 25일에 에어 프랑스 4590편 추락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는 사전에 발생한 7회의 유사사고의 천운과 적은 기체수, 당대 최상위권 운용사들의 엘리트 운용인력에 가려져 오며 이제까지 인사 사고 한 번 없던 콩코드의 안전성을 실추시키는 사고였다. 이 사고의 영향으로 모든 콩코드는 2000년 8월 15일부터 운항이 중지되었다. 이후 이륙 전 활주로 검사를 꼼꼼히 하도록 매뉴얼을 정비하고, 연료 탱크의 누출을 막기 위해 방탄복에 쓰이는 케블라 천을 탱크 내부에 덧대고, 고속 주행 중 타이어의 파열을 막기 위해 미쉐린에서 특수 타이어[61]를 개발하는 노력 끝에 2001년 11월 7일에 다시 운항을 재개하였으나, 9.11 테러 이후 불황이 찾아오고 항공보안이 강화되어 비행기를 타는 게 불편해져서[62] 항공 수요도 감소하는 바람에 비싼 값을 주고 콩코드를 탈 수 있는 사람도 줄어들게 되었다.
결국 원래 2007~2017년 사이에 콩코드를 퇴역할 예정이었던 영국항공과 에어 프랑스는 2003년 4월 10일에 동시에 콩코드를 그해 말에 퇴역하겠다고 발표하게 되었다. 먼저 에어 프랑스는 동년 5월 31일에 F-BVFB의 파리-비스케이 만-파리 노선 운항을 마지막으로 콩코드 여객기를 완전 퇴역시켰으며, 영국항공도 상단 영상에 나온 10월 24일자 뉴욕-런던 비행에 3대의 콩코드[63]가 참여한 것을 마지막으로 콩코드 여객기를 완전히 퇴역시키며 콩코드 여객기는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64] 그리고 2003년 11월 26일에 영국항공 소속의 G-BOAF가 브리스톨의 필튼에 착륙한 것을 끝으로 당시까지 현존하던 모든 콩코드는 박물관에서 귀한 유물로 전시되게 되었다.
지금은 뉴욕 맨해튼의 인트레피드 해양항공우주박물관,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 별관, 파리 샤를 드 골 국제공항, 독일 진스하임 아우토&테크니크박물관 #, 보잉에서 운영하는 시애틀 Museum of Flight 등에서 전시중이다. 진스하임에 전시중인 기체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Tu-144와 함께 전시 중이다.[65]
4. 이후의 초음속 여객기
새로 등장할 초음속 여객기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완될 점은 소음 제거, 연료 효율성 증대, 그에 따라 경제성(운임, 유지 보수 비용 등)의 확보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콩코드는 결국 비싼 유지 보수 비용 때문에 2003년에 퇴역하였지만, 속도가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르며 여러 곳에서 초음속 여객기를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경제학적으로는 시간절약도 돈이며 해외 유출입 인구의 규모는 쭉 늘어날 전망이기에, 장기간 동안 문제없이 운행한다는 조건하에 기술적 난제의 해결, 그에 따른 경제성 제고, 차세대 항공기의 추가 구매가 계속 이루어지면 이러한 움직임은 앞으로도 가속화될 듯.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는 2035년쯤이면 초음속 여객기가 전 세계적으로 2000대가 넘어갈 것으로 예상하며, 소음 및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 운항 규정 등을 만들 예정이다.프랑스는 영국 대신 일본을 끌어들여 콩코드의 핏줄을 잇는 마하 4짜리 초음속 여객기를 만들고 있다. 기체 명칭은 Zehst(Zero Emission High Speed Transport: 배기 가스 방출이 없는 초고속 수송 수단).
또한 영국 역시 독자적으로 LAPCAT이라는 마하 5~8짜리 비행기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NASA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붐'이라는 스타트업 기업에서 초음속 여객기의 실증기(XB-1) 개발에 성공하여 2017년 말부터 시험 비행에 착수한다. 소닉 붐 제거와 소음 절감, 속도도 마하 2.2로 콩코드보다 더 빠르다고 한다. 버진 애틀랜틱항공과 일본항공이 선수금 투자를 했다. 이를 통해, 2021년 6월 Boom에서 개발 중인 초음속 여객기 붐 오버추어가 2029년부터 운용 예정으로, 콩코드 이후 가장 빠른 초음속 여객기 상용 운용 복귀작이 될 예정이다. 개발 방향이 주로 유지비 및 효율 개선 위주이고, 소닉붐 감소는 크게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콩코드처럼 대양을 횡단하는 노선 위주로 운항할 것으로 예상된다. 런치 커스터머는 유나이티드 항공이 될 예정이다.
차세대 초음속 여객기의 시험비행 성공 사례가 속속 보도되고 있다. 에어버스를 비롯한 여러 회사 출신 기술자들로 구성된 미국 기업 '스파이크'에서 개발한 S-512 기종으로 첫 비행은 2021년, 실제 상용화는 2023년에 이루어질 계획이라고 한다. 이로써 초음속 여객기는 기술적으로 성공한 셈이며, 이제 경제성을 높이는 일만 남았다.
에어버스 사에서는 '콩코드 2.0'이라는 기종을 연구 중에 있으며 특허까지 따낸 프로젝트이다. 일반 제트엔진과 램제트 엔진, 로켓 엔진이 짬뽕된 것이 특징이며, 날카로운 일반 초음속기의 모습과는 달리 현존 여객기와 비슷하게 둥근 앞머리 형상을 채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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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쉽의 최우선 목적은 화성 및 타행성 탐사용이지만 스타쉽의 대규모 생산을 위한 규모의 경제 같은 이점이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스타십 문서로.
5. 기타
5.1. 기네스북
5.2. 개기일식 관측
개기일식은 천문학에서 아주 의미있는 이벤트인데, 달그림자가 지표면을 지나치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기 때문에 지구상의 한 지점에서는 길어봐야 약 7분 정도만 관측이 가능하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달그림자를 따라 이동하면 좀더 오랫동안 개기일식을 관측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달그림자는 개기일식을 관측하는 위도와 경도에 따라 지표면을 지나치는 속도가 달라지는데, 콩코드의 속도인 마하 2보다 달그림자의 속도가 느려지는 구간을 비행하면 그림자를 따라가며 일식을 관측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에 과학자들은 당시 가장 빠른 민간용 이동수단인 콩코드를 타고 개기일식을 추적한다는 계획을 세웠다.[66] 마침 1973년 6월 30일 예정되어 있던 개기일식은 20세기에 존재했던 개기일식 중 꽤 오래 지속되는 편에 속했기에 실험에 안성맞춤이었고, 실제로 실험은 시행되었다. 과학자들은 콩코드 1대를 통째로 전세내서 이 전무후무한 관측 계획에 도전했고, 장장 74분간의 개기일식 관측에 성공했다. 관련 블로그의 좀더 자세한 내용 보기 다만 들인 돈에 비해 새롭게 알아낸 사실은 없었고, 이후 태양관측위성의 개발로 개기일식중이 아니라도 관련 연구를 수행할 수 있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돈지랄의 좋은 사례가 되었다. #5.3. 기체 목록
콩코드 여객기는 시제기 4대, 에어 프랑스 8대, 영국항공에서 8대 총 20대가 생산되었다.현재 추락한 1기[67]와 해체된 나머지 1기[68]를 제외하면 전부 보존되고 있다.
등록번호가 F로 시작하는 기체는 프랑스에서 제작, G로 시작하는 기체는 영국에서 제작한 것이다.
번호 | 등록번호 | 최초 비행 | 마지막 비행 | 비행 시간 | 비고 |
001 | F-WTSS | 1969년 3월 2일 | 1973년 10월 19일 | 812 | 시제기. 현재 프랑스 르 부르지 항공 우주 박물관에 F-BTSD와 함께 보존 |
002 | G-BSST | 1969년 4월 9일 | 1976년 3월 4일 | 836 | Fleet Air Arm Museum에 전시중 |
101 | G-AXDN | 1971년 12월 17일 | 1977년 8월 20일 | 632 | 덕스포드 전쟁박물관에 전시중 |
102 | F-WTSA | 1973년 1월 10일 | 1976년 5월 20일 | 656 | Musée Delta에 전시중 |
201 | F-WTSB | 1973년 12월 6일 | 1985년 4월 19일 | 909 | 프랑스 툴루즈 에어버스 항공박물관[69]에 전시중[70] |
202 | G-BBDG | 1974년 12월 13일 | 1981년 12월 24일 | 1,282 | 브룩랜즈 박물관에 전시중[71] |
203 | F-BTSC | 1975년 1월 31일 | 2000년 7월 25일 | 11,989 | 에어 프랑스 4590편 추락 사고로 소실 |
204 | G-BOAC | 1975년 2월 27일 | 2003년 10월 31일 | 22,260 | BOAC 항공사[72]의 첫 콩코드. 현재는 맨체스터 공항에 보존. |
205 | F-BVFA | 1975년 10월 27일 | 2003년 6월 12일 | 17,824 |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에 보존 |
206 | G-BOAA | 1975년 11월 5일 | 2000년 8월 12일 | 22,768 | 스코틀랜드 국립 항공 박물관에 보존 |
207 | F-BVFB | 1976년 3월 6일 | 2003년 6월 24일 | 14,771 | 진스하임 자동차&기술 박물관에 전시중 |
208 | G-BOAB | 1976년 5월 18일 | 2000년 8월 18일 | 22,296 | 히스로 공항에 보존 |
209 | F-BVFC | 1976년 7월 9일 | 2003년 6월 27일 | 14,332 | 프랑스 툴루즈 에어버스 항공박물관에 전시중 |
210 | G-BOAD | 1976년 8월 25일 | 2003년 11월 10일 | 23,397 | 싱가포르항공과 공동 운행, 뉴욕 인트레피드 항모 박물관에 보존 전시중[73] |
211 | F-BVFD | 1977년 2월 10일 | 1982년 5월 27일 | 5,814 | 1994년에 스크랩 처리 |
212 | G-BOAE | 1977년 3월 17일 | 2003년 11월 17일 | 23,376 | 바베이도스의 한 격납고에 전시 중 |
213 | F-BTSD | 1978년 4월 21일 | 2003년 6월 14일 | 12,974 | 르 부르지 항공 우주 박물관에 시제기인 F-WTSS와 함께 보존. 아직도 상당수의 부품이 작동함. |
214 | G-BOAG | 1978년 4월 21일 | 2003년 11월 5일 | 16,239 | 시애틀 뮤지엄 오브 플라이트에 전시중 |
215 | F-BVFF | 1978년 12월 26일 | 2000년 6월 11일 | 12,421 | 샤를 드 골 공항에 보존 |
216 | G-BOAF | 1979년 4월 20일 | 2003년 11월 26일 | 18,257 | 브리스톨 항공우주박물관(Aerospace Bristol)에 전시중 |
|
F-BTSD[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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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OAG, 마지막으로 여객 운항을 한 콩코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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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VFB[75] |
5.4. 그 외
- 역사상 단 둘뿐인 초음속 여객기였다는 상징성 덕분에 콩코드가 다녀간 공항에서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두고두고 회자되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에도 콩코드기가 방문한 적이 있는데, 1976년 11월 9일 극동지역 판매촉진을 목적으로 런던-파리-바레인-싱가포르를 경유해서 김포공항에 착륙했었다. 주한 프랑스 대사와 영국대사를 태우고 서해상을 비행한 후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갔다. # 박근혜 전 대통령도 당시 대통령 영애 자격으로 탑승했었다고. 대한항공과 구매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라는 관계자의 말이 신문에 실렸던 것으로 보아 대한항공도 구매할 의향이 약간은 있었던 듯.[76] 싱가포르 - 김포 구간은 초음속으로 비행했는데, 불과 2시간 50분 만에 주파했다. 일반적인 제트 여객기로는 6시간 정도 소요된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한국에 온 콩코드는 F-BTSC(203)으로 에어 프랑스 4590편 추락 사고로 인해 파괴되었다.
- 1992년 인천국제공항 건설 당시 콩코드의 이착륙도 대비해서 건설하였다.[77] 1992년 대한뉴스를 보면 인천-JFK간 4시간 대가 가능한 초음속기가 취항할 수 있게 건설한다는 대목이 있기 때문. 하지만 정작 인천공항이 개항한 후로 콩코드가 운행하지 않게 되면서... 하지만 붐 오버추어가 인천에 취항한다면 실제로 소음피해가 많이 적어질 것이다.[78]
- 콩고민주공화국(당시에는 자이르)의 독재자였던 모부투 세세 세코는 고향인 그바돌리테(Gbadolite)에 있는 그바돌리테 국제공항에 에어 프랑스의 콩코드를 전세내어 해외 순방과 쇼핑을 할 때에 애용했으며, 심지어 1985년에는 그바돌리테 근처의 카웰레(Kawele)에 있는 초호화 별장에서 생일 파티를 한다며 프랑스의 유명 파티시에가 만든 생일 케이크를 배달해 먹겠다고 그 비싼 콩코드를 전세내기도 했다.[79]
- 당연한 소리지만 프랑스에서는 콩코드를 프랑스제 여객기로 여기고, 영국에서는 콩코드를 영국제 여객기로 여긴다고 한다.
- 1970년대 초에는 콩코드를 시작으로 초음속 여객기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상에 따라 콩코드가 취항할만한 경제력과 수요가 있는 국가에서 앞다퉈 공항 확장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 초음속 여객기는 일반 여객기보가 더 긴 활주로가 필요했기 때문. 워싱턴 덜러스 국제공항,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 파리 오를리 공항 등이 이에 해당하며, 나리타 국제공항도 건설 초안에서는 초음속기가 주기할 수 있는 활주로와 주기장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초음속 여객기가 상업적으로 실패했지만, 이후 여객 수요가 증가하고 보잉 747이 마찬가지로 긴 활주로를 필요로 하면서 대부분의 공항에서 초음속기에 대비한 확장 시설을 유효하게 써먹었다.
6. 참고 링크
- (한국어 위키백과) 콩코드 (비행기)
- (영문 위키백과) Concorde
- Heritage Concorde - 전직 콩코드 엔지니어들이 만든 사이트.
7. 미디어
- 에어포트 후속작인 콩코드 에어포트 79와 그 아류작인 콩코드 어페어 79에 등장한다.
- 영국의 록 밴드 블랙 컨트리, 뉴 로드의 2집 앨범 Ants from Up There의 주요 모티프로 사용되었다. 싱글 발매곡의 제목이기도 하다.
- 소닉윙즈 2에서 프랑스 파리 맵의 보스로 2대가 나온다.
- 구혼 작전에서 주인공인 왕자가 파트너이자 친구인 신하와 같이 뉴욕에 갈때 탄 여객기로 나온다.
8. 여담
비슷하게 기종의 스펙은 무시무시했으나 효율성의 문제로 도태된 기종이 우연의 일치이긴 하지만 에어버스에서 하나 더 나왔는데, 바로 A380. 이쪽은 속도보다는 수송량에서 세계 최고를 이룩했으나, 2000년대까지의 항공업계 패러다임이었던 허브 앤 스포크 방식에만 치중한 탓에, 좌석을 다 채우지 못했을 때의 손실 문제와 이로 인한 항로 설정의 제약이 커서 2010년대부터의 포인트 투 포인트 방식에 대응할 수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화물기로의 개조에 대한 고려가 미흡했던 탓에 채 생산 20년도 채우지 못하고 시장에서 도태되고 말았다. 속도에만 치중한 결과 다른 모든 것을 잃은 콩코드와 비슷한 결말인 셈이다.[81] 하지만 2022년 7월 이후 코로나가 슬슬 엔데믹으로 끝나가자 그에 걸맞게 항공 수요가 폭증하면서 기존의 비행기로는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게되자 다시금 A380이 투입되기 시작해서 퇴역을 이미 완료했거나 결정했던 루프트한자와 에티하드 항공 등은 2022년 12월 A380의 컴백을 공식화했다. 2022년 7월을 기점으로 서양권 항공사들이 A380의 재투입 및 재취항에 들어갔다. 가장 큰 고객이었던 에미레이트 항공은 에어버스 측에 A380의 후속 기종 제작을 요청하고 있다는 내용도 언론 보도 되었다.2023년 레고 아이콘 시리즈로 출시되었다. 제품번호 10318, 가격은 269,900원. 매우 크고 아름다운 사이즈를 자랑한다.[82] 도색은 시제기인 F-WTSS를 모티브로 했다.
9. 관련 문서
[1]
카람볼라지는
쿠르츠게작트와 비슷한 상식 영상 시리즈다. 간혹 그림체만 보고 쿠르트게작트인줄 아는 사람들도 있는데, 상세히 보면 다른 면이 많다. 프랑스-독일 합작이며 공영방송에서도 가끔 나간다고 한다.
[2]
애니메이션 내에서 콩코드의 기수 부분이 검게 먹칠된 게
옥의 티. 그리고
KGB가 콩코드 사진을 찍어 소련에 보내 투폴레프
Tu-144가 되었다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정보도 희화화 되어 있으니 걸러가며 보자.
[3]
한글 자막이 있다.
[4]
Mustard의 영상이다.
[5]
루브르 박물관 앞에 위치한 콩코르드 광장(구 혁명광장)과 어원이 같다. 다만 광장 쪽은
7월 왕정 당시 지어진 이름이다.
[6]
이를 "드룹 스눗(Droop Snoot)"이라고 한다.
[7]
시제기 2대+선행 양산형 2대+양산형 16대
[8]
애프터버너를 이용한 추가적인 가속 없이 오로지 드라이 파워로만 초음속으로 순항하는 것. 현용 5세대 전투기들 정도가 이 슈퍼크루징이 가능하다.
[9]
마하 1.7에 도달하면 애프터버너를 끄고 마하 2.2까지 증속하게 된다.
[10]
1인이 1km당 사용하는 연료의 양이
보잉 747의 5배 정도로 알려져 있다. 단, 이는 어디까지나 1인당 기준이다. 승객 수는 보잉 747이 3~4배가량 되고 실제 연료 소모량은 25% 정도 차이가 난다.
[11]
후술되어 있는 것처럼 1996년 2월 7일 G-BOAD 기체는 뉴욕-런던 노선을 2시간 52분 59초만에 비행한 기록이 있다. 콩코드의 속도로
ICN-
JFK 구간을 운행하면 5시간 30분에서 6시간 사이에 도착한다.
[12]
Three 할 때 운항시간을 재는 시계를 작동시키고, One 할 때 애프터버너 타이머를 작동시킨다 (약 1분). 그리고 Now에서 엔진 트로틀을 최대출력으로 올린다. 영어로는 'Slamming the throttle' 이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스로틀을 세게 친다'라고 생각하면 된다.
[13]
또는 뉴욕을 벗어나 조금씩 속도를 올리다가 캐나다 공역을 지난 후
[14]
위도 50도(런던)에서 약 1,000km/h, 위도 40도(뉴욕)에서 약 1,300km/h.
[15]
비행 중 창문 밖을 바라보면
해가 서쪽에서 떠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는 서쪽에서 뜨는 게 아니라 해는 지는데 콩코드가 엄청난 속도로 서쪽을 향해 이동해서 지구 표면 시점에서 봤을 때 태양을 추월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16]
거꾸로 유럽으로 돌아가는 노선은 시차가 거꾸로 작용해 시간 잡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콩코드는 런던 → 뉴욕이 70% 정도 탑승률이 나왔다면 뉴욕 → 런던은 50% 정도로 차이가 많이 났다.
[17]
참고로 1세대 제트 여객기인
보잉 707의 최초형인 보잉 707-120의 항속거리가 6,900km 정도였다.
[18]
출처:
위키백과 콩코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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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이
에어 프랑스, 빨간색이
영국항공 노선이다. 콩코드가 퇴역하기 직전의 노선을 보면 (1992년-2003년) 에어 프랑스는 정규노선이 파리-뉴욕밖에 없었고, 영국항공 역시 정규노선은 런던-워싱턴/뉴욕, 그리고 겨울 한정으로 전세운영한 런던-바베이도스 (브리지타운)가 전부였다. 가끔씩 전세편으로 영국 지방 공항으로 운항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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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속 기체의 테일넘버는 G-BOAG로, 1978년 4월 21일에 초도비행을 한 후 1980년 2월 6일에 'G-BFKW'라는 테일넘버로 등록되었으나 1981년 2월에 테일넘버가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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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 노선은 1977년 11월 22일에 운항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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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이란은 콩코드의 성능에 만족했는지 나아가 2기를 주문하기까지 했으나, 결국 혁명으로 인해 인도가 무산되었다. 이때 이란항공이 주문한 기체들은
영국항공이 인수해 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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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운항하던 시기는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절이었다. 브래니프는 이후에도 뻘짓을 하다 1982년 5월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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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좌석 설계, 배치는 초음속 여객기 특유의 높은 운항비용을 메꾸기 위한
가축수송을 염두에 두었다는 게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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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얼마나 심하냐 하면 오래된 건물에는 금이 가고 임신 중인 동물들은 유산을 당할 정도로 소음이 매우 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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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로 공항 4터미널: 20, 21번/JFK 공항: 거의 대부분 1, 2번 사용, 가끔씩 다른 게이트도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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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이후 보안 검색이 대폭 강화되었기 때문에 패스트트랙 및 자동 출입국 심사의 보급 전까지는 무슨 짓거리를 해도 입국 심사대 고속 통과는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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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보퀴즈가 기내식 메뉴 개발에 참여한 적도 있다고 한다. 다만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1969년 첫 비행 당시 메뉴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고...
#(
더 타임즈 구독을 해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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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이전에는 포크, 나이프, 스푼도 은으로 만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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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손바닥 하나 정도의 크기라고 하는데, 이는 기체와 창의 열팽창률이 달라 창을 크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반 비행기 창문과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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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인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괄 취소 시기부터
인도분이 제작중이던 런치 커스터머
팬 아메리칸 항공부터
트랜스 월드 항공,
아메리칸 항공,
루프트한자,
일본항공, 냉전 시절
중국민항 등 20여 개의 항공사가 100여 대의 항공기를 인도받을 예정이었다. 콩코드 개발진들은 콩코드가 1980년까지 총 350대가 팔릴 거라고 예측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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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144는 콩코드보다 먼저 초도비행을 시작하였으나, 취항 일자는 콩코드보다 늦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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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항공기들은 40000피트 아래로 비행하지만, 콩코드는 이보다 더 높은 60000피트까지 비행했다. 이유는 다른 항공기와의 충돌을 피하고, 더 안정적으로 비행하기 위함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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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대기의 규모를 생각해볼 때, 삽으로 앞마당을 깊게 파면 지반 약화로 집이 무너진다는 소리와 동급의 헛소리이다. 이런식의 논리면 콩코드보다 훨씬 기체 수가 많고 날렵한
전투기들부터 금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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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은 최대 500명까지 탑승이 가능하나 이건 일본 국내선용 모델인 SR 한정. 전량 일반석에 화장실 같은 편의 시설을 줄이면 500명 가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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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런던 - 뉴욕은 하루 항공편이 30회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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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공기 흡입구의 개폐 조절을 컴퓨터로 제어하는 방식. 당시로서는 최신 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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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물리 상식으로만 생각해 봐도 물체의 운동 에너지는 속력의 제곱에 비례한다. 게다가 공기저항도 고속의 물체에 대해서는 물체의 속력의 제곱에 비례한다. 거기에 초음속 비행에 의한 충격 파면을 돌파하기 위한 에너지까지 생각해 보면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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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폭 17인치, 앞뒤 간격 38인치. 심지어 동체 폭이 좁았기 때문에 콩코드의 좌석에는 리클라이닝 기능이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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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밑에 가로로 있는 활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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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코드가 이륙할 때만 이 활주로를 사용한 이유는 다른 활주로보다 이륙할 때의 소음을 최소화 할 수 있고, 도심 방면이 아닌 바다 방면으로 빨리 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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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콩코드가 퇴역한 지금도 일반 항공기들은 Howard Beach 지역의 소음을 최소화 하기 위해 이 출발 절차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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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가치로 약 7130파운드(약 1127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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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환율로 15148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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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가치로 9018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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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가치로 4218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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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국의 1인당 GDP는 29968달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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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음속에서 압축으로 인해 기체가 불에 달군 것처럼 뜨거워지고, 또한 엄청난 속도로 인한 공기와의 마찰로 인해 마하 2에서 표면 온도가 100도 이상(코에서 날개끝까지의 경우 127도) 올라가게 되는데, 만일 그 위에다
삼겹살을 올려 놓는다면 단 몇 초만에 익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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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기준으로는 약 1억 5,200만 파운드, 한화로는 무려 약 2,370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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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적인 예시로 무게배분을 위해 연료탱크만 9개로 나눠져있다. 비슷한 시기에 초도기가 출시된 B747은 B747-400에 와서 자동 연료분배 체계가 도입되었고, 더 이후에 출시된 A380도 이것이 자동으로 되긴 한다. 하지만 1960년대 기술로 만든 비행기에 이런 게 있었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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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제작된 항공기여서 그런지 GPWS의 콜아웃 시스템이 없어서 퇴역할 때까지 항공기관사는 항공기가 착륙할 때마다 직접 고도 콜아웃을(500피트, 400피트, 300피트......) 했어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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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코드와 비슷한 연식의 대부분의 여객기들은 이미 80년대 후반에 FMC와 MCDU라는 전자운항관리 체계 개조가 가능해졌다. 심지어 21세기에 와서는 항공전자기술이 더 발달해서 이제는 콩코드보다 연식이 오래된
보잉 707 같은 기종도 풀글래스콕핏 장착이 가능한 시대이다. 실제로 미국 공군이 운용하는 대부분의 보잉 707 기반 전술기들이 이러한 개조를 받았고 민간기체들도 이러한 개조를 받은 기체가 널리고 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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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직관적으로 비유하자면 기체내부 치수가 Q400이나 ATR72랑 크게 다를바 없고 오히려 창문크기는 훨씬 작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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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중량 대비 추력을 증가시키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쉬운지는 자명하다. 미국은 그 어려운 후자를 해내지만, 돈과 기술력이 넘치기에 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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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콩코드는 당시 보잉 757이나 승객을 적게 태운 보잉 767도 안 사용하는 헤비콜사인을 사용해야 했다. 활주거리가 웬만한 광동체 여객기들보다도 더 길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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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이륙 속도가 200노트(약 시속 400km) 이상이었기 때문에 활주 거리가 다소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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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편당 최다 탑승률이 15명으로 심각한 적자가 났던 노선은
브래니프 항공의 댈러스(DFW) 노선이다. 전 구간 내륙을 운항하다 보니 소닉붐을 일으키게 되는 초음속 운항을 절대 할 수 없었고, 그러면서도 애프터버너를 켜서 운항하였기 때문에 콩코드의 돈지랄이 아주 잘 드러나게 되었고,(심지어 브래니프가 콩코드를 운영하던 시기는 2차 오일쇼크 와중이었다.) 결국 이는 70년대까지 성장가도를 달리던 브래니프 항공이 1982년에 파산하게 된 주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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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기종 전체 누계운항시간은 27년간 25만 시간 수준으로 일반적인 중장거리 제트기가 기체당 10만시간 전후로 퇴역하는 것을 고려허면 2.5대 분량 수준으로 매우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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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자부심에 의한 과장이 상당히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저 대화의 출처조차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 저 당시 SR-71의 조종사가 비공개라는 점은 물론이고 내화 내용조차도 속도차는 둘째치고 SR-71의 통상 임무고도는 8만 피트로 정식 임무시엔 콩코드와 고도가 겹칠 일이 없었다, 심지어 비공식적으로는 8만 7천 피트 이상으로 올라간 경우도 많았다. 인터뷰 늬앙스가 SR-71은 같은 고도인데도 여압복을 입어야 하는 제약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실제론 SR-71의 경우는 탈출도 염두에 둬야 하니 조종실 여압여부에 상관없이 여압복은 당연히 입어야 한다. 그리고 발생하는 열의 차이도 넘사벽이다. SR-71의 경우 기수부분만해도 섭씨 400도 이상에 공기흡입구에서는 650도를 넘는다. 아래 발언과 반대로 SR-71의 자부심이 강한 벤 리치는 7년이나 먼저 나온 SR-71 블랙버드가 콩코드에 비해 넘사벽으로 빠르고 고도도 높았다는 식으로 깠다. 사실 M2의 속도와 6만 피트의 고도는 MiG-21같은 2~3세대 고속 전투기 대부분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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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베네수엘라는 석유국유화로 엄청난 번영을 일시적으로 누렸다. 지금 에어 프랑스는 카라카스에서 철수한 지 오래지만 당시엔 콩코드가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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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타이어는 나중에 콩코드 뿐만 아니라 다른 여객기들에도 적용되며 미쉐린의 주력 항공기 타이어모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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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적인 예로 모든 국가의 입국심사 과정이 복잡해졌을 뿐만 아니라 특히 테러당사자인 미국은 9.11 테러 이전만 해도 하이패스와 다름없는 입국심사 난이도 였으나, 이후에는 단순히 비 영어권국가 시민이 입국 심사 중 입국심사관의 "몇명과 함께 왔습니까?"라는 질문에 실수로 단수와 복수 명사 정도를 헷갈려 잘못 말한 것 정도로도 일단 시큐리티 룸으로 데려가 조사를 한다.
[63]
비행 순으로 G-BOAE, G-BOAF, G-BOAG. 영상에 나온 기체는 상술했듯 가장 마지막에 비행한 G-BOAG다.
[64]
콩코드의 마지막 비행에는 여배우
조안 콜린스와 방송 진행자 데이비드 프로스트 경(Sir David Paradine, 1939~2013)도 탑승했다.
[65]
자동차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자매 박물관인 슈파이어 테크니크 박물관
#에는 퇴역한
루프트한자
보잉 747기가 첨탑 위에 떡 하니 올려져 있고(화물칸에 들어가 볼 수 있고. 덧붙여 주익 위에도 올라가 볼 수 있다.), 러시아의 우주왕복선
부란 1기도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독일 남부에 거주 중이거나 여행 중인 항덕(또는 차덕. 진스하임 박물관 명에 AUTO란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이라면 시간을 내서 둘 중 하나라도(웬만하면 둘 다) 한번 가보자. 두 박물관 모두 웬만한 국가의 국립항공박물관보다 월등한 전시품 및 컨텐츠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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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를 이용하면 당연히 이보다 빠르게 비행할 수 있지만, 실험장비 탑재는커녕 과학자도 후방석에 한명 타고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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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사항은
에어 프랑스 4590편 추락 사고를 참조.
[68]
에어 프랑스 소속의 등록번호 F-BVFD로,
브래니프 항공에 아주 잠깐 임차되었던 이력과 동시에 1977년에
세네갈
다카르에서 하드랜딩을 하던 중 뒷부분의 보조기어와 엔진 일부가 손상되어 수리를 받은 적이 있는 기체였다. 해체된 이유를 대략 보자면 콩코드가 들어가는 노선 중에 파리 - 세네갈 다카르(경유) - 브라질 리우인 노선이 있었는데, 크게 의미가 없었던 노선이라 1982년에 폐지되었고, 이 노선이 폐지됨에 따라 안그래도 운항스케줄이 잉여롭던 마당에 8대 중 1대는 아예 놀고 있어도 될 판이었다. 거기다 유지비 등 금액이 만만치 않았을테니 차라리 해체해서 부품셔틀로 돌리는 쪽이 더 이득이었던 셈. 안 그래도 해당 기체는 앞서 언급한 사고 이력이 있는지라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비행기가 되었고, 결국 해당 노선이 폐지된 해에 운행에서 빠졌다. 이후 창고에서 부품셔틀이라는 명목으로 썩고 있다가, 상태가 안 좋아지자 운행에서 빠진지 12년만인 1994년에 해체하였다. 현재도 동체 부품 몇개가 프랑스에 있고, 기수는 미국의 한 개인이 사갔다고 한다.
정보 원문(영문)
[69]
Aeroscopia 라고 하며 에어버스 공장 옆에 위치해 있다. 추가로 이곳에서 콩코드 시뮬레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
[70]
하기 F-BVFC와 함께 전시중이며 이 기종은 내부 관람도 가능하다
[71]
이곳에서 콩코드 시뮬레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
[72]
현 영국항공의 전신. 1974년
영국유럽항공(BEA)와 합병.
[73]
파리에서 뉴욕까지 운행한 마지막 비행이 끝나자마자 그대로 끌려왔다는 전설이 있다.
[74]
오른쪽에 보이는 기체는 F-WTSS로, 시제기 버전의 콩코드이다.
[75]
콩코드 앞에 전시되어 있는 것은 Tu-144이다.
[76]
당시 한국 돈으로 보잉 747 1기가 약 100억 원 정도 했는데 콩코드는 350억으로 747 3.5대값과 맞먹었으므로 현실적으로 실행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내국인의 출국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항공에게 당장 급한건 콩코드가 아니라 화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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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주로의 길이와 폭이 넓었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거대했던 항공기인
An-225도 무리없이 착륙이 가능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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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유나이티드 항공이 기체만 제대로 완성된다면
LA-
도쿄 노선에 투입하기로 발표하였기 때문에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과 합병하면 1990년대 수준의 한국허브를 개설할 가능성도 있고, 2019년부터 서비스 고급화를 하며 재기를 노리는 유나이티드 항공이 오버추어로도 운항을 할 가능성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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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모부투 세세 세코는 당대 아프리카 국가 중 최상급의 원조를 받으면서도
도둑정치라는 말이 붙을 정도의 극도의 부정부패로 자이르를 세계 최악의 최빈국으로 거덜낸 지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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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나온 역대 콩코드 운항노선도에도 서술되었지만 당시
에어프랑스 취항노선도 상에는 다카 경유 리우까지 나와있으나(작은 지도 참조) 정기노선은 아닌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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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처지이자 A380의 개발 모델이었던
보잉 747은 그래도 허브 앤 스포크 방식이 유행하던 시절에 본격적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이미 많은 이득을 봤고 최근에서야 밀려난 처지이며, 화물기로서의 효율은 꽤나 좋은 편이고 개조 또한 용이해서 747을 개조한 화물기들 혹은 중고매물로 나온 순정 화물기들은 인기가 너무 많아 가격이 점점 비싸짐에도 불구하고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결과적으로 여객용 항공기의 대세는 모나지 않은 적절함의 상징인
보잉 777과 작지만 야무진 고효율로 승부하는
보잉 787,
A330,
A350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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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가 무려 1.05m로, 역대 레고의 모든 비행기 제품 중에서 가장 크다. 동봉된 스탠드에 올려놓으면 엄청난 위용을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