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晉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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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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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氾腾생몰년도 미상
서진 시기의 은사. 자는 무기(無忌). 양주(涼州) 돈황군(敦煌郡) 출신.
2. 생애
효렴으로 천거되어 낭중에 제수받았으나, 천하가 병란에 휩싸이자 관직을 버리고 귀향하였다. 태수 장비(張閟)가 찾아와 예물을 선물하자, 범등은 문을 굳게 닫고 만나지 않았다. 그렇게 허탕을 친 장비가 떠나고, 범등이 한탄하였다."난세에 태어난 이상 귀해진다 하여도 이내 가난해지는 것을 어찌 면할 수 있을쏘냐!"
그러고는 50만 전에 달하는 집안의 재산을 흩뿌려 친척들에게 모두 나눠준 뒤, 거문고를 타고 독서를 하며 유유자적하게 시간을 보냈다. 양주자사
장궤가 범등을 사마로 초빙하려 했으나, 범등은"한 번 닫힌 문이 어찌 다시 열리겠는가!"
라며 굳게 사양하였다. 이후 2달여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