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12:11:45

모(성씨)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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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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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牟 (보리 모)
1.1. 실존인물
2. 毛 (털 모)
2.1. 실존인물
2.1.1. 한국계 인물2.1.2. 중국계 인물
3. 募 (모을 모)4. 모씨 성을 가진 가상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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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牟 (보리 모)

한국의 성씨이다. 본관은 함평 모씨 단본.

시조는 북송의 모경(牟慶)이며 대장군(大將軍)[1]의 직위를 가졌다. 고려에서 이자겸의 난이 발발하자 고려의 요청에 의해 송나라로부터 파견되었고, 난을 진압한 일등공신으로 고려 정부로부터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이라는 공적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 정강의 변에 의해 북송이 망하면서 고려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는데, 고려 17대 왕 인종 이자겸의 난 때의 공로 등을 감안하여 전라도 함평 군수의 직위와 함께 공주를 배필로 삼아 정착토록 하였고, 결국 고려에 귀화하여 전라도 함평군수를 맡아 지냈다.[2]

삼국시대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정복한 부여를 관리하기 위해 북부여수사라는 관직을 주어 파견한 모두루(牟頭婁)라는 인물의 묘지명이 발굴되었는데 모두루의 가문은 초대 국왕 동명성왕대부터 고구려 왕실을 섬기며 공을 세워온 직속 가신 가문으로 여겨진다. 성씨 사용이 활발하던 시절이 아니라 모두루가 그냥 이름인지 성+이름인진 불분명하나 성씨를 사용한 것이 맞다면 고구려에서 모씨는 부여를 세습적으로 관리해온 귀족 가문이 된다. 모두루는 부임지인 부여에서 광개토대왕의 승하 소식을 들었는데 몹시 슬퍼했다고 한다.

백제 문주왕의 성씨가 모씨(牟氏)라는 기록이 있는데, 문주왕이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송(宋)나라와 주고받은 서신에서 등장한다. 같은 모씨(牟氏)인지는 알 수 없으나 드문 한자인데 특이하게 한자가 같다. 삼국유사에도 모씨(牟氏)가 등장하는데, '백제 동성왕은 '모대(牟大)', 문주왕의 동생이자 곤지의 아들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일본서기에는 '말다(末多)'로 기록되어 있는데, 발음은 비슷하다. 참고로 혈연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문주왕의 동생이라는 기록과 문주왕의 아들이라는 기록이 있어서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3]

한편 최근 발굴된 백제의 목간에서 6품 나솔을 역임한 모씨(牟氏)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아예 이름이 모씨였는지 이름을 제외한 그냥 성씨만으로 모씨라 적힌 건지는 불명.

대한민국 내 인구는 2020년 기준 21,534명이다.

1.1. 실존인물

2. 毛 (털 모)

본관은 광주(廣州), 시조 및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다. 주로 이북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삼국사기에 주로 고구려, 후고구려 계통의 성명으로 등장하며 간혹 백제의 성명으로도 등장한다. 따라서 고대의 모씨가 성씨라면 이들은 고구려, 백제와 연관된 가문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내 인구는 2000년 기준 879명, 15년 뒤인 2015년 인구조사 때는 361명뿐이어서 모(牟)씨보다 훨씬 적으며 잘 알려진 인물로는 모윤숙이 있다.

모씨는 중국, 대만 중화권에도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중국의 성씨에서는 한국보다 순위가 더 많다. 모씨로써 가장 유명한 중국인 마오쩌둥.

2.1. 실존인물

2.1.1. 한국계 인물

2.1.2. 중국계 인물

3. 募 (모을 모)

중국 사서들인 양서(梁書), 통전(通展), 남사(南史)에는 신라 법흥왕의 성씨는 '모씨(募氏)', 이름은 '진(秦)'이라는 기록이 있다. 다른 중국 사서인 책부원귀에는 법흥왕 성씨는 '모씨(募氏)', 이름은 '태(泰)'라는 기록이 있다. 법흥왕은 진흥왕의 큰 아버지이다. 진흥왕은 김씨(金氏) 성을 사용한 최초의 인물로 신라 최초의 성씨로 추정하고 있다. 법흥왕 대에 작성된 한국 측 금석문에는 왕의 이름을 '모즉지'라고 표기하였는데, 대부분의 한국 학계에서는 '모(募)'를 성씨가 아닌 이름의 일부로 보고 있으며, 중국 측 사서들의 기록은 성과 이름을 혼동한 결과 생긴 오류인 것으로 보고 있다.

4. 모씨 성을 가진 가상인물



[1] 현대로 치면 참모총장급. [2] 다만, 모경의 행적은 정사에서는 검증할 수 없는 족보상의 기록인 관계로 사대주의 숭조사상으로 인한 곡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3] 그러나 백제의 왕성은 부여씨였고 문주, 모대, 말다 등은 그냥 이름으로, 당시의 고유어를 한자로 음차한 것으로 본다(모두 당시 말로 '맏이'의 음차로 추정된다). 모를 성씨로 사용한 것은 다른 사서에도 전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가능성은 매우 떨어진다. 혈연적인 부분은 보통 동성왕이 문주왕의 동생인 부여곤지의 아들인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