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17:56:12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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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1월 독일의 공영TV인 ZDF가 독일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독일인 1백인’을 발표한 명단이다.
TOP 10
1위 2위 3위 4위 5위
콘라트 아데나워 마르틴 루터 카를 마르크스 한스, 죠피 숄 남매 빌리 브란트
6위 7위 8위 9위 10위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오토 폰 비스마르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1위~100위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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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콘라트 추제 요제프 켄테니히 알베르트 슈바이처 카를하인츠 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헬무트 슈미트 레진 힐데브란트 알리체 슈바르처 토마스 고트샤크 허버트 그로네메이어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미하엘 슈마허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 귄터 야우흐 디터 볼렌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얀 울리히 슈테피 그라프 사무엘 하네만 디트리히 본회퍼 보리스 베커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프란츠 베켄바워 오스카 쉰들러 네나 한스 디트리히 겐셔 하인츠 뤼만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하랄트 슈미트 프리드리히 대왕 임마누엘 칸트 패트릭 린드너 하르트무트 엥겔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힐데가르트 폰 빙엔 헤이노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마를레네 디트리히
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로베르트 코흐 요슈카 피셔 카를 마이 로리오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루디 푈러 하인츠 에르하르트 로이 블랙 하인츠 하랄트 프렌첸 볼프강 아펠
61위 62위 63위 64위 65위
알렉산더 폰 훔볼트 피터 크라우스 베르너 폰 브라운 디르크 노비츠키 캄피노
66위 67위 68위 69위 70위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 세바스티안 크나이프 프리드리히 실러 리하르트 바그너 카타리나 비트
71위 72위 73위 74위 75위
프리츠 발터 니콜 프리드리히 폰 보델슈윙흐 오토 릴리엔탈 마리온 돈호프
76위 77위 78위 79위 80위
토마스 만 헤르만 헤세 로미 슈나이더 스벤 하나발트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여공작
81위 82위 83위 84위 85위
빌리 밀로위치 게르하르트 슈뢰더 요제프 보이스 프리드리히 니체 루디 두치크
86위 87위 88위 89위 90위
카를 레만 베아테 우제 트뤼머프라우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헬무트 란
91위 92위 93위 94위 95위
알브레히트 뒤러 막스 슈멜링 카를 벤츠 프리드리히 2세 라인하르트 메이
96위 97위 98위 99위 100위
하인리히 하이네 게오르크 엘저 콘라드 두덴 제임스 라스트 우베 젤러
출처
같이 보기 : 위대한 인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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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Time's Greatest Philosopher
※ 2005년 영국 BBC 방송이 BBC 라디오 4 청취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철학자'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카를 마르크스 데이비드 흄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프리드리히 니체 플라톤
6위 7위 8위 9위 10위
이마누엘 칸트 토마스 아퀴나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칼 포퍼
출처 }}}}}}}}}

<colbgcolor=#000><colcolor=#fff>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파일:Nietzsche187a.jpg
본명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1]
출생 1844년 10월 15일
독일 연방[2] 작센 주 뢰켄[3]
사망 1900년 8월 25일[4] (향년 55세)
독일 제국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바이마르
국적 [[프로이센 왕국|
파일:프로이센 왕국 국기(1803-1892).svg
프로이센 왕국]] (1844~1869)
무국적 (1869~1900)
직업 문헌학자, 철학자, 시인, 음악가
서명
파일:프리드리히 니체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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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모교 돔 김나지움 (1855년-1858년)
슐포르타 공립학교 (1858년-1864년)
본 대학교 (1864년-1865년 / 중퇴)
라이프치히 대학교 (1865년-1869년 / 문헌학 / 박사)
경력 바젤 대학교 고전 문헌학 정교수 (1869~78)[5]
학파 대륙철학, 독일 관념론, 허무주의, 투시주의, 실존주의, 후기 구조주의
연구 분야 미학, 반토대주의, 반소비지상주의, 무신론, 윤리학, 실존주의, 사실-가치 구분, 형이상학, 허무주의, 존재론, 철학사, , 심리학, 비극, 가치이론, 의지주의
가족 아버지 카를 빌헬름 루트비히 니체 (1813~1849)
어머니 프란치스카 니체 (1826~1897)
여동생 엘리자베스 니체 (1846~1935)
종교 무신론[6] [7] }}}}}}}}}

1. 개요2. 생애
2.1. 초년기2.2. 대학 생활2.3. 바그너와의 만남2.4. 폭발하는 정신2.5. 말년과 왜곡
3. 사상
3.1. 디오니소스적인 것3.2. 관점주의3.3. 힘에의 의지3.4. 귀족 도덕3.5. 영원회귀3.6. 네 운명을 사랑하라
4. 니체 사상에 대한 철학적 비판5. 영향력6. 오해와 논란
6.1. 나치의 파시즘을 옹호했다?6.2. 약자를 폄훼하는 비윤리적 이기주의자?6.3. 니체의 작업도 원한 감정이 아닌가?6.4. 무조건 예스(yes)?6.5. 부자와 경쟁 사회 옹호?6.6. 예수 비판?6.7. 여성혐오주의자였다?
7. 명언8. 저서
8.1. 읽는 순서8.2. 한국어판 전집에 대해8.3. 위작
9. 관련 강의 영상10. 관련 문서
10.1. 니체 철학 용어10.2. 관련 인물10.3. 기타
11. 여담

[clearfix]

1. 개요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여버렸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8]
《즐거운 학문(1882)》
나는 내 운명을 안다. 언젠가는 내 이름에 어떤 엄청난 것에 대한 회상이 접목될 것이다. – 지상에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던 위기에 대한, 가장 심원한 양심들의 충돌에 대한, 이제까지 믿어져 왔고 요구되어 왔으며 신성시되었던 모든 것에 거부를 불러일으키는 결단에 대한 회상이.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다. [9]
《이 사람을 보라(1908)》
독일 출신의 철학자, 문헌학자. 그가 주장한 주요 철학적 사상에는 신은 죽었다[10], 힘에의 의지[11], 위버멘쉬[12][13], 영원회귀[14], 운명을 사랑하라[15] 등이 있다.

특유의 급진적인 사상으로 생철학,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철학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대륙 철학의 근간을 마련했다.[16] 마르크스,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과 더불어 현대 인문학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이기도 하다. 실제로 저명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이 시대 지식인들이 얼마나 정직한지를 확인하려면 그들이 마르크스와 니체의 이론적 기여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 마르크스와 니체의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는 학자는 진실되지 못하다는 말로, 니체가 당대에 끼친 지성사적 영향력을 높이 평가한 발언이었다.[17][18]

특유의 공격적 비판으로 인해 오인되기도 하지만, 어떤 철학자보다 넓은 사상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철학자이며 그의 저서는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극단적일 정도로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19] 그러한 까닭 중 하나는 니체 특유의 서술 방식이다. 그의 저작은 대부분 압축적이고 강렬한 아포리즘으로 이루어지며 논리적이라기보다는 문학적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긴다.[20] 하지만 실제 성격은 온화하고 유머를 좋아했으며 사교성이 있었다고 한다.

2. 생애

2.1. 초년기

니체는 1844년 10월 15일 독일 연방 작센주 뢰켄[21]에서, 루터교 목사였던 아버지 카를 루트비히 니체와 다른 지역의 목사의 딸이었던 어머니 프란치스카 욀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애국심이 강했던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프로이센의 당대 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이름을 따서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로 지었다.[22] 2년 뒤에는 여동생 엘리자베스,[23] 또 2년 뒤엔 남동생 요제프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신앙심이 깊었으나 설교 도중에 발작을 일으키는 등 신경질환에 시달렸고, 니체가 5살 되던 해에 뇌연화증(뇌졸중)으로 숨을 거두었다. 몇달 후 남동생 요제프도 돌연 사망했다. 그래서 니체는 이후 여자들만 있는 집(외할머니, 2명의 이모, 어머니, 여동생, 하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니체 집안의 모든 여성들은 유일한 남자인 니체를 애지중지했지만, 두 번의 죽음으로 조숙해진 니체는 보통 아이들처럼 마음 편하게 어리광을 부린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죽은 후, 니체의 가족은 나움부르크에 있는 외할머니 집에 얹혀살았다. 그곳에서 니체는 6살이 되자마자 학교에 들어갔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돈이 없었기 때문에 가난한 집 아이들이 다니는 시립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후 평생동안 고통받을 고질적인 두통과 심각한 근시로 인해 학교에선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친구들은 조숙하고 생각이 신중했던 니체를 '꼬마 목사'라고 놀렸다. 어린 니체에게 유일한 친구는 음악이었다. 피아노에 재능이 있었으며 작곡을 직접하기도 했다.[24] 10살이 되던 해에는 기독교 학교인 돔 김나지움으로 옮겨 4년간 공부했다. 그리고 여기에서의 좋은 성적을 바탕으로 14살에는 당시 독일 연방에서 가장 전통 깊은 학교인 슐포르타에 입학할 수 있었다. 슐포르타의 교육방식은 수도원과 군대를 합쳐놓은 것과 같이 엄격한 기숙사 학교였다. 니체는 처음에 향수병이 심했지만 곧 적응하였고 그리스어와 라틴어 수업을 특히 좋아해서 학년 말에는 거의 수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수학과 체육은 형편없었다.

2.2. 대학 생활

슐포르타를 졸업하고 20살이 된 니체는 본 대학교에 입학했다. 어머니의 바람에 따라 신학 학부에 들어갔지만, 관심을 느낀 분야는 고전문헌학이었다. 본 대학교를 선택한 건 당시 이름난 고전문헌학자였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리츨(Friedrich Wilhelm Ritschl) 교수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니체는 여기서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는데, 공부를 위해 가입한 동아리에서는 공부보다는 술마시고 노래했던 적이 더 많았다. 이 무렵 니체는 과학서적과 다비트 프리드리히 슈트라우스(David Friedrich Strauß)가 쓴 《예수의 생애》를 읽었고, 기독교에 상당히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그해 부활절 성찬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부활절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면 마땅히 참석해야 하는 행사였다. 따라서 성찬식에 가지 않겠다고 한 니체의 행동은 어머니와 여동생이 보았을 때, 절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건이었다.

니체는 본 대학교에서 보낸 첫 두 학기 동안 얻은 것이 별로 없었다. 마침 리츨 교수가 동료교수와 다투고 라이프치히 대학교로 자리를 옮기자, 니체도 따라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넘어갔다. 라이프치히에서는 꽤 열심히 공부했다. 자신이 사는 건물 1층, 건물주가 운영하는 '론'이라는 이름의 헌책방에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우연히 발견한 것도 이때였다. 하지만 프로이센의 수상 비스마르크는 독일 연방을 해체시키고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독일 제국을 건설하겠다며 전쟁을 일으켰고, 프로이센 군대가 니체의 가족이 살던 작센주까지 점령한 것도 이시기였다. 그래서 니체는 프로이센 군인으로 소집되어 나움부르크에 주둔한 야전포병대 기마부대의 사병으로 복무할 수밖에 없었다. 군복무는 니체에게 지옥과 같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니체는 지독한 근시로 인해 훈련도중 말과 부딪쳐서 가슴에 뼈가 보일 정도로 상처를 입었고, 병가 신청이 받아들여져 군 복무가 면제되었다.

때마침 리츨 교수는 병가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니체에게 스위스에 위치한 바젤 대학교 문헌학 교수를 추천해주었다. 니체는 아직 학생 신분에 불과했고, 심지어 이때의 니체에게는 아무런 학위도 없었다! 그런데도 리츨 교수는 "내가 39년 동안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본 이래로 이토록 고전문헌학에 특출난 재능을 가진 학생을 본 적이 없다" [25]며 탄복한 나머지, 아무 학위도 가지지 않은 일개 학생에게 바로 교수자리를 추천해줬던 것이었다. 리츨 교수는 이례적으로 학위 논문 심사를 거치지도 않고 라이프치히 대학을 통해 박사 학위를 받도록 니체에게 도움을 주었는데, 이로써 니체는 불과 24살의 나이에 바젤 대학교의 최연소 교수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한 달 뒤, 바젤 대학교 고전문헌학 교수로서 수업을 시작했다. 바젤 대학교 문서에 따르면, 리츨 교수의 강한 추천과 니체의 문헌학에 대한 특출난 재능 때문에 이러한 이례적인 결단이 내려졌다고 한다.

아무튼 바젤 대학교는 니체가 다시 군대에 불려가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니체에게 프로이센 시민권을 포기하고 스위스 국적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래서 니체는 프로이센 시민권을 버렸지만, 스위스 시민권을 취득하는 데 필요한 요건을 채우지 못해 결국 평생 무국적자로 살게 된다.

2.3. 바그너와의 만남

니체가 교수직을 시작하며 스위스 바젤에 정착하던 무렵, 바그너 루체른호수의 트리브쉔 저택에 살고 있었다. 관현악의 대가로 알려졌던 바그너는 이미 50대 중반에 유럽 전역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니체도 당시에 유명했던 바그너를 물론 알고 있었고, 종종 바그너의 곡을 직접 피아노로 연주하기도 했다. 한번은 바그너의 여동생이 바그너에게 리츨 교수를 소개시켜주었는데, 리츨 교수는 그 자리에서 바그너가 연주하는 곡이 니체가 평소에 쳤던 곡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리츨교수는 바그너에게 니체에 대해 얘기했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니체도 그 다음 모임에 초대받아, 바그너와 함께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둘은 모두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에 얘기가 통했다. 사실 바그너는 기분 좋게 '교수'라는 호칭을 자주 듣기는 했지만 진짜 교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비록 그가 만든 오페라 「 니벨룽의 반지」가 '고대 그리스 4부작의 재탄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읽지 못해서 고전을 번역본으로만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니체의 지적 능력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니체에게도 바그너라는 거장은 철학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제였다.

이후 바그너는 자신의 집에 니체의 방을 따로 마련해줄 정도로 니체를 극진히 아꼈다. 니체도 거의 매일같이 바그너 집에 놀러가 거기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바그너와 니체는 31년이나 나이 차이가 났는데, 아버지 없이 자랐던 니체는 바그너에게 거의 아버지와 같은 정을 느꼈다. 바그너도 니체를 아들처럼 대했다. 니체는 바그너의 크리스마스 가족행사 때에도 초대받아 같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선물을 주고받기도 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무엇보다도 그러는 사이에 니체와 바그너가 나눈 수많은 철학적 대화들은, 니체에게는 철학적 영감을, 바그너에게는 음악적 영감을 고취시켰다. 니체는 바젤 대학교의 정교수로 임명된[26] 1870년 "디오니소스적 세계관"을 구상하기 시작했고,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발발하여 위생병으로 지원했다가 디프테리아와 이질에 걸려 다시 바젤로 돌아온 이후로 이를 다시 발전시켜 1872년 자신의 첫 저서인 『비극의 탄생』을 완성시켰다. 니체는 이 책을 바그너에게 헌정했다.

이 책에서 니체는 예술 본연의 정신을 살리고 있는 작곡가로 바그너를 지목한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조각이나 그림처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폴론적인 것이고, 음악과 비극처럼 눈으로 확인할 수 없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사람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정신을 몰입시켜 자기를 완전히 잊게 만드는 것은 디오니소스적인 것인데, 그리스 비극은 아폴론적인 '설명'과 디오니소스적인 '노래'를 합쳐서 '합창'이라는 형식을 탄생시킴으로써 그리스에 문화적 황금기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미덕은 변증법적인 논리를 가져야 된다'면서 아폴론적인 것만을 강력히 주장한 뒤로부터, 그리스의 문학적 세계관에서 디오니소스적 몰입과 광기가 사라져 버렸고, 그리스 비극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다. 그런 맥락에서 바그너는 쇼와 음악이 합쳐진 오페라를 부흥시킴으로써,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이 재결합하는 새로운 비극적 예술의 형태를 제시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바그너와 바그너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비극의 탄생』을 극찬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의 개념을 그리스 고전에 대입시킨 니체의 전략 ㅡ '표상'을 아폴론적인 것, '의지'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대입시키는 니체의 해석은, 완고한 고전문헌학자였던 리츨 교수가 학문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니체의 대학 후배면서 같은 고전학 교수이던 빌라모비츠 묄렌도르프가, 바그너식 '미래의 음악'을 비꼬아 '미래의 문헌학!'이라는 논문을 발표해서 니체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문헌학은 문헌학적 방법으로 과거를 엄격하게 찾아가는 것이지, 형이상학적 철학을 이용해 과거를 자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비극의 탄생』은 문헌학의 나쁜 사례라는 것이 묄렌도르프의 주장이었는데, 이는 어느 정도 일리있는 비판이었다. 사실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점차 깊숙히 빠지면서 고루한 문헌학에 흥미를 잃고 있었고, 대학이사회 회장에게 마침 공석이던 철학과 학과장 자리로 옮기고 싶다고 제안을 하기도 했다.[27] 그래서 어찌보면 니체가 기존의 문헌학적 방법에서 벗어나 철학적 해석을 시도했던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고전문헌학자로서의 니체의 명성은 말그대로 박살나 버렸다. 다음 학기 니체의 수업을 등록한 학생은 단 두 명뿐이었고, 심지어 두 사람 모두 문헌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한편, 바그너는 루트비히 2세의 후원을 바탕으로 바이로이트[28]에 그가 만든 오페라를 제대로 공연할 수 있는 거대한 극장을 짓기로 결심하고, 스위스를 떠나 독일(프로이센) 바이로이트에 정착했다. 스위스 바젤에 홀로 남은 니체는 공허감에 빠졌다. 게다가 건강이 점점 나빠지면서 두통과 안통이 심해졌는데, 특히 빛에 민감해서 니체는 모든 창문에 두꺼운 커튼을 치고는 거의 온종일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만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가 한 번씩 외출할 때는 두꺼운 초록 안경으로 눈을 보호하고, 챙이 긴 초록 모자로 얼굴을 완전히 가렸다. 결국 시력이 악화되면서 글을 읽거나 쓰는 일은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은 분명 최악의 불행이었지만, 니체는 한편으로는 그 병을 "최고의 축복"으로 여겼다. 그 병은, 니체를 '책읽기'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게끔 만들었고, 그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니체는 자신만의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29]

바그너는 바이로이트에 있으면서도 꾸준히 니체를 불렀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가지게 된 니체는 몇 가지 문제를 두고 견해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고, 서서히 바그너의 예술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바그너의 작품이 민족주의적이면서 기독교적 성격을 강하게 띄게 된 것이 그 원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문제로 사이가 틀어질 정도는 아니었다.[30] 니체가 바그너와 틀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그너의 편지에 있었다. 바그너는 니체의 건강 문제를 걱정하며 니체의 의사에게 경솔한 편지를 보냈다. 니체의 건강이 좋지 않은 이유가 자위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추측을 편지에 썼던 것이다.[31] 자위행위가 심각한 안구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당시 사람들의 믿음이었기 때문에, 바그너도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편지 내용이 흘러나와 사람들에게 가십거리가 되었고 그것을 니체가 알게 되었다는 데 있었다.[32] 하지만 그 사실을 안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그너가 죽음으로써, 그 문제는 니체의 마음 속에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게 된다. 이로써 니체는 정신적으로도 바그너와 완전한 결별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것은 쇼펜하우어와의 결별이기도 했다.

2.4. 폭발하는 정신

그 시작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책에서 부터였다. 아직 바그너가 살아있을 때, 니체는 요양차 들린 이탈리아에서 '도덕은 초월적 기원을 가지지 않으며, 인류는 오랜 시간 동안 세대와 세대를 거쳐 전해진 도덕적 본성을 발전시켜 왔다'고 주장하는 진화윤리학자 파울 레 박사[33]를 만났다. 당시 니체는 바그너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파울 레의 관점을 통해 바그너와 쇼펜하우어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렇게 나온 책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책이다. 니체는 건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짧게 쓸 수밖에 없었는데, 그 덕분에 단점이 장점으로 승화되었다. 강렬한 잠언식 글쓰기가 한층 더 심도 있는 질문으로 독자들을 자극할 수 있음을 니체는 깨달았다. 이로써 니체는 비로소 독창적인 문장가이자 진정한 사상가로 탄생할 수 있었지만, 이는 『비극의 탄생』을 통해 얻은 몇 안 되는 충실한 지지자들마저도 버리는 짓이기도 했다. 완전히 혼자가 된 그는 결국 1879년, 건강상의 이유를 대고 교수직마저 사임했다.

니체는 책과 그림 몇 점을 제외하고 가지고 있던 모든 물품을 처분했다. 그리고는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번갈아 돌아다니면서 2년간 방랑 생활을 이어갔다. (이때 『아침놀』을 집필함.) 그러던 1881년 7월의 어느 날, 니체는 스위스의 실스마리아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기분을 느꼈다. 병은 더욱 악화되었고 그로인한 고통은 비록 절망적이었지만, 고통의 깊이가 깊을수록 생각도 깊어져서 그전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근처 실바플라나 호숫가에서는 그가 나중에 '차라투스트라 바위'라고 부른 피라미드 모양의 거대한 바위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 영원 회귀 사상'을 생각해냈다. 이를 바탕으로 1882년에는 『즐거운 학문』을, 1883년에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1부를 완성했다. 1부 원고를 출판사에 보낸 뒤, 니체는 바그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니체는 진실을 약간 왜곡해, 바그너가 죽은 그 신성한 시각에 책의 마지막 부분이 완성되었다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니체에 따르면, 아버지인 바그너가 죽고, 아들인 차라투스트라가 태어난 것이다!

니체는 무아지경의 상태로 영감과 계시를 받아 열흘 만에 이 책을 썼다고 한다.[34] 원고 겉면에는 '다섯 번째 복음서'라고 썼다. 연이어 2부, 3부를 집필했지만, 출판업자는 니체의 책이 '다섯 번째 복음서'라고 불릴 정도의 책[35]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인쇄를 계속해서 미뤘다. 겨우 출판한 책마저도 거의 팔리지 않았다. 심저어 4부는 소규모로 해서 자비로 출간했다.

니체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 그는 눈 때문에 몹시 고통스러워했고, 며칠씩 이어지는 구토와 설사로 괴로워했다. 시야는 늘 흐릿했고, 밝은 빛은 항상 찌르는 듯한 통증을 일으켰다. 이제 니체 스스로 판단하기로 자신은 거의 8분의 7 정도의 맹인이 되었다. 하지만 더 괴로운 것이 있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니체는 자신이 이 책의 핵심사상을 성경 패러디로 감추거나 영웅의 서사적 전설로 포장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생각을 더욱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선악의 저편』을 썼다. 그 다음 책인 『도덕의 계보』는 『선악의 저편』의 내용을 더욱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썼다. 그제서야 비트만, 브라네스 등의 비평가들에게서 열광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특히, 브라네스가 코펜하겐에서 니체의 저서를 주제로 강연을 한 이후에, 니체는 마침내 대중의 찬사를 받게 되었다. 니체는 문득 자신에게 인류를 위해 받아들여야만 하는 운명같은 막중한 책임감이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류에게는 지금까지 숭배했던 모든 가치들의 전도가 필요하다! 이제 체계의 일부가 아니라 체계 전체를 철저히 무너뜨릴 계획을 세워야 한다. 니체는 그 책의 제목을 미리 『힘에의 의지 : 모든 가치의 전도에 대한 시도』라고 붙였다.

그 전의 예비적인 작업으로 1888년 9월에 『우상의 황혼』 집필을 끝냈다. 그리고 이탈리아 토리노로 건너가서 드디어 『힘에의 의지』를 쓰려고 몇 달 동안 남긴 어마어마한 양의 메모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새 책을 쓰기 시작한 그날, 그는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그 동안의 기획들을 "안티크리스트, 자유정신, 부도덕자, 디오니소스" 이렇게 4권의 책으로 구성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우선 『안티크리스트』를 먼저 썼다. 근데 책을 쓰면서, 자신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온 자서전이 『이 사람을 보라』다. 그러면서 『니체 대 바그너』를 써서 또 한번 바그너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이 모든 작업이 불과 석 달 안에 이뤄졌다. 게다가 니체는 친구 프란츠 오버베크(Franz Overbeck)에게 "위대한 재평가의 책 네 권[36]이 곧 나올 것" [37]이며, "내가 인류의 역사를 두 동강 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든다" [38]고 말했다. 하지만 니체의 정신은 뇌질환으로 인해 점차 붕괴되고 있었고 그 계획은 영원히 실행되지 못했다. 적어도 그 해 12월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광증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니체가 지인들에게 보낸 크리스마스 안부 편지에는 정신 이상 증세로 판단될 수 있는 기괴한 내용들이 쓰여져 있었다.

2.5. 말년과 왜곡

1889년 1월 3일, 그날 아침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확실치 않다. 사람들에 따르면, 니체는 보통 때처럼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 있는 하숙집을 찾아나서는 길이었다고 한다. 그날도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는 승객을 기다리는 몇몇 마차와 택시 사이에서 주인의 명령을 따르느라 속절없이 괴롭힘을 당하는 불쌍한 말들이 힘없이 축 늘어진 채로 서 있었다. 니체는 거기서 한 마부가 말에게 심하게 채찍질하는 모습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고는 몸을 던지다시피 마부를 가로막았고, 말의 목을 부둥켜안고는 목 놓아 울다가 정신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혹자는 이 유명한 일화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어찌되었든 하숙집 주인은 니체의 광증을 확인한 뒤 니체의 친구 오버베크에게 연락했고, 오버베크는 정확한 진단을 위하여 니체를 스위스로 데려왔다. 지금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니체는 '뇌연화증'으로 인해 광증이 나타난 것이지만, 당시 니체를 진단했던 의사는 '매독으로 인한 진행성 마비'로 잘못 판단했다.[39][40] 니체는 곧바로 예나에 있는 정신병원으로 옮겨졌다. 1년 뒤에는 판단력과 언어 능력을 거의 상실한 채로 병원에서 나와 어머니가 있는 나움부르크의 어린 시절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니체는 잊혀지는 듯 했으나...

1893년 유럽을 휩쓴 아방가르드의 열기로 니체의 책은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된다. 니체를 소개하는 강연과 저술은 큰 흥행을 이뤘으며, 이를 통해 니체의 이름이 순식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그의 영향을 받아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는 '절규'라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1896년에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교향시로 만들어 공연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때의 니체는 광증에 완전히 지배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유명세를 알지 못했다. 약삭빠른 여동생 엘리자베스는 오빠의 책에 쏟아지는 국제적 관심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집에다가 '니체 문서 보관소'를 짓는 것이었다. 2층에는 광증에 빠진 오빠 니체를 둔 채로, 1층에서는 토요일마다 사교파티가 벌어졌다. 니체의 추종자들은 그들의 우상이 바로 위층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흥분했다. 특별 손님은 2층으로 올라가 먼발치에서 그를 볼 수 있었다. 인지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니체는 그런 식으로 엘리자베스의 명성을 높여주는데 이용당했다. 어머니가 죽고 난 뒤로는, 문서 보관소를 바이마르로 옮겼다. 그러던 1900년 8월 25일, 니체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은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식으로 치러졌다.

반유대주의자였던 엘리자베스는 니체가 죽은 지 1년 만인 1901년에, 니체의 유고를 마음대로 편집해서 『힘에의 의지』를 출간했다. 『힘에의 의지』 확장판을 내고 난 1908년에는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고, 이후로도 세 번이나 니체에 대한 글로 수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예나대학교는 그녀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1933년에는 문서 보관소에서 히틀러를 맞이했고, 이때 엘리자베스는 니체의 지팡이를 히틀러에게 선물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니체의 글은 문서 보관소를 들락거리는 나치당원들에 의해 왜곡되었고, 히틀러는 자신의 이미지 정치에 니체의 '힘에의 의지'를 적극 이용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어느덧 90살를 앞둔 엘리자베스는 1935년에 고통 없이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의 장례식에 히틀러가 참석해서 화환을 내려놓았다.

현재 니체의 무덤은 라이프치히에서 남서쪽으로 약 21km 떨어진 작은 마을, '뢰켄'에 있다. 니체 사망 100주년을 기념하여 무덤을 둘러싸고, '니체와 팔짱을 끼고 있는 어머니', '발가벗은 니체 두 명이 본인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모습'(니체는 이 장면을 자신의 꿈에서 보았다고 친구에게 말했다.)을 표현한 조각상[41]이 세워져 있다.

3. 사상

이러한 주장 역시 하나의 해석에 불과할 뿐이라고 할 경우, 그대들은 그것에 대한 질시로 가득 차서 그것을 반박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더 좋다.
『선악의 저편』 中 [42]

똑같은 해석, 똑같은 설명, 누구나 똑같아져야 된다고 주장하는 종교, 도덕, 민주주의, 공산주의. 이런 것들은 결국 모든 것이 평범해져야 된다고 강제하며 문화를 따분하게 만들고 삶을 권태롭게 한다. 니체는 이런 사회가 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책임감있는 개인'이 기존 사회의 가치관과 다른 가치를 추구하더라도 우리사회는 그것을 허용해주어야 된다고 주장한다. 사실 모든 인식은 누군가의 관점이며, 그런 점에서 기존 가치들도 누군가의 관점을 정당화한 것에 불과하다. 그것을 다른 개인에게 강제한다는 것은 그에게 자신만의 생각을 멈추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각각의 개인은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가는 해석에서 삶의 의욕을 느낀다. 그런 창조적인 해석에서 위대한 작품이 탄생하며, 그 결과물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권태에서 벗어난다. 그러므로 개인의 해석을 가로막지말고, 서로의 창조적인 해석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된다고 니체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해석'이란 무엇인가? 모든 개인의 '살아있는' 해석은 누군가를 이기려고 하는 해석이며, 그것은 상대의 해석을 짓밟고자 하는 일종의 잔인하고도 교활한 지배욕이다. 그러나 짓밟기만 해서는 '창조적'이지 못하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그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 나가야만 한다. 그래야 삶의 의욕을 되찾고 현재를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다. 그래서 니체는 그것이 일종의 놀이라고 주장한다.

3.1. 디오니소스적인 것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그리스 비극의 기원을 말한다.[43] 그리스 비극은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유래했다. 디오니소스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은 포도주를 마시며 광란과 흥분의 욕구를 표출했는데, 사람들은 도취된 상태에서 자신의 개별성에 대한 의식을 상실하고, 흥분 상태의 축제 군중으로 스며들어 그들과 하나가 되어버린다. 이 흥분 상태의 집합체 안에서 다양한 환상과 이미지가 떠돌며, 하나로 융해된 사람들은 이런 환상과 이미지를 서로에게 감염시킨다. 그래서 디오니소스 축제에 도취된 사람들은 모두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체험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런 후에는 언제나 이 도취 상태에서 깨어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며, 이 순간이 되면 모두가 각자의 개별성을 되찾는다. 각성 상태로 돌아가는 이 과정은 어렵고도 위험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들을 도와주는 제의 과정이 발달하게 되는데, 디오니소스 축제 말미를 장식한 비극 상연은 다름 아닌 이 집단적 도취 상태로부터 현실의 일상적 삶으로의 이행을 돕는 제의였던 것이다.[44]

따라서 그리스 비극은 '도취적 음악'과 '명료한 형식'이 혼합된 것이다. 니체는 이를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설명한다. 아폴론형식, 명료성, 확고한 윤곽, 밝은 꿈, 그리고 무엇보다도 타인과 구별되는 개별화를 주관하는 신이다. 조각, 건축, 호메로스적인 신들의 세계, 서사시에 나타나는 정신,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아폴론적이다. 반면에 디오니소스해체, 열광, 황홀, 광란을 주관하는 사나운 신이다. 음악, 그리고 다함께 도취되어 하나가 되는 것이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다. 아폴론적인 예술의 매력은 구분하여 명료하게 하는데 있지만, 디오니소스적 예술에서는 경계가 유동적이어서 음악이나 춤, 혹은 다른 예술에 매혹된 사람은 그 거리감을 잃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그 두 가지가 조화롭게 합쳐진 예술이 '그리스 비극'이다.[45] 그리고 그 둘의 융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그 비극 무대에서의 '합창(코러스)'이다. 합창에서 일부 개인은 한동안 개별성을 유지하면서 집단적 합창에 대항해 자기 목소리를 가지려고 한다. 어찌보면 그것은 일종의 "불협화음"이다. 불협화음이란 게 원래 그렇듯, 이로 인해 무대 위 팽팽한 긴장 상태가 조성된다. 그러나 주인공들이 제각기 목소리를 내면서 합창에 벗어나고자 해도, 종내는 합창의 조화로 다시 섞여들어간다.[46] 이렇게 개인과 전체, 질서와 충동의 정서가 잘 조화된 것이 바로 그리스 비극이었다.

그런데 그리스 비극에 소크라테스가 영향을 끼치면서 그리스 비극은 점차 몰락한다. '선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의식되어야 한다'는 변증법적 소크라테스식 사유가 음악의 힘을 분쇄해버린 것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이제 흥분과 열정의 감정들은 사라지고 논리적인 계산이 무대를 지배한다. 무대 위에서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고 토론이 벌어질 뿐이다. 무대 위의 사건은 그 비밀을 상실하며, 주인공들은 계산 착오로 인해 고통을 당한다. 비극적 근본 분위기는 어느새 다 사라지고 없다.[47] 그리하여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없어지고 아폴론적인 것만 남은 그리스 비극은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졌던 것이다. 니체는 사라진 그리스 비극을 되살릴 적임자로 바그너를 지목한다.
사실 나는 괴테가 디오니소스적 예술의 모태가 되는 주신제와 같은 것을 그리스적 영혼의 가능성들로부터 원칙적으로 배제해버렸으리라는 점을 의심치 않는다. 따라서 괴테는 그리스인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디오니소스적 비밀제의에서야, 디오니소스적 상태의 심리학에서야 비로소 그리스적 본능의 근본적인 사실, 즉 '생에의 의지'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은 이런 비밀제의에 의해 무엇을 보장했는가? 영원한 삶, 삶의 영원회귀였다. 과거 속에서 약속되고 신성시된 미래였다. 죽음과 변화를 넘어서 있는 삶에 대한 의기양양한 긍정이었다. 그리고 생식과 성의 신비를 통한 총제적 생명의 존속으로서의 진정한 삶이었다. 이 때문에 그리스인에게 성적 상징은 경외할 만한 상징 자체였고, 모든 고대적 경건성에 내재한 심오한 의미였다. 생식ㆍ수태ㆍ출산의 행위에 속하는 세부적인 하나하나의 일이 최고의 엄숙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비밀제의의 가르침에서는 고통이 신성한 것으로 선포되고 있다. '산모의 통증'은 고통 일반을 신성한 것으로 만든다. ㅡ 모든 생성과 성장, 미래를 보증하는 모든 것이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창조의 기쁨이 존재하려면, 삶에의 의지가 자신을 영원히 긍정할 수 있으려면, '산모의 고통'도 영원히 존재해야만 한다. 이 모든 것을 디오니소스라는 말이 의미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그리스적 상징, 디오니소스 축제의 상징보다 더 고귀한 상징을 알지 못한다. 그것에서는 삶의 가장 깊은 본능, 곧 삶의 미래와 삶의 영원성을 향하는 본능이 종교적으로 체험되고 있다. 삶으로 향하는 길 자체가, 곧 생식이 신성한 길로 체험되고 있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48]
니체의 초기 저술에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개념은, 후기 니체로 가면서 '디오니소스적인 것' 뿐만이 아니라 그 속에 '아폴론적인 것'마저도 포함하는 '영원 회귀'의 개념으로 바뀐다. 즉, 후기 니체에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삶의 도취에 대한 비밀, 그것은 과거의 자신을 죽이고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것,[49] 이를 통해 상반된 가치의 의지들이 '태어남(창조)의 순간'을 매개로 서로 긴밀히 이어져 있다는 것을 말한다.[50]

3.2. 관점주의

오직 관점적인 봄만이, 오직 관점적인 '인식'만이 존재한다.
『도덕의 계보』 세 번째 논문 12절[51]
신, 이데아, 물자체 등 불변하는 가상에 진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형이상학자들은 모든 가치들이 진리와 비진리로 대립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니체는 대부분의 생각들이 본능에 의해 은밀하게 인도되고 움직이므로, 우리가 평소에 상반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치들이 사실은 대립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52] 어떤 명제, 착상, 영감 등은 대부분 그들의 마음속 소망이 추상적으로 변형된 선입견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그것들은 나중에 찾은 근거들에 의해서 정당화되고 있을 뿐이다.[53] 그렇다! 모든 철학은 항상 자신의 모습에 따라 세계를 창조하려는 충동 그 자체이며, 각 철학을 창시한 자들의 일종의 자기 고백이자 의도하지도 않았고 자신도 모르게 쓴 일종의 회고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어떤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서, 그의 내밀한 본능들이 어떠한 위계질서를 갖는지 확인할 수 있다.[54]

플라톤, 그리스도교, 스토아 철학자, 칸트, 셸링, 헤겔 등도 자신의 충동과 믿음에 따라, 자연을 단편적으로 이해해왔다. 생각의 주체인 자아가 존재한다는 데카르트도, 자신의 확신을 일종의 직관적 인식에 호소하면서 ㅡ 생각하는 어떤 것이 나라는 것, 생각하는 어떤 것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 생각이란 그것의 원인으로 간주되는 어떤 존재의 활동이며 작용이라는 것, 하나의 '나'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라는 ㅡ 논증하기 불가능한 일련의 대담한 주장들을 펼쳤던 것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물리학은 보고 만질 수 있는 감각적 근거에 기초하므로 적어도 그것은 최소한의 확실성을 담보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물리학만으로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전부 다 보여줄 수 없으므로, 그것 또한 자연에 대한 하나의 해석에 불과하다.[55] 심지어 앞선 철학들보다도 삶을 더 힘차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의미와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56] 그것은 (삶의 가치가 아니라) 도구나 다름없다.[57]

이렇게 철학자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달랐으므로, 인간의 기본충동들 모두는 이미 한 번은 각자의 철학을 수행해왔다고 볼 수 있다.[58] 그리고 이런 충동들은 세계를 각자의 방식으로 왜곡해왔기 때문에 잘못된 판단이고 오류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왜곡이라고 하더라도 포기할 수 없다. 우리는 상상도 못할 자유, 무분별, 경솔함, 왕성함, 삶의 명랑함을 즐기기 위해서, 즉 삶을 즐기기 위해서 이렇게 단순화되고 철저하게 인위적이고 적당히 꾸며지고 적당히 왜곡된 세계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59] 심지어 사상 자체에서나 통치, 웅변과 설득, 예술, 윤리 등의 어느 분야에서든지 이 지상에서 자유롭고 정교하며 대담하고 춤처럼 경쾌하며 대가다운 확신을 갖는 것으로서 존재하거나 존재해온 모든 것도 그런 왜곡된 판단 덕분에 비로소 발전해온 것이었다.[60] 즉, 그것은 삶의 조건이므로, 그것이 잘못된 판단이라고 애써 그것을 우리의 삶 밖으로 밀어내서는 안 된다.[61]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모든 충동은 지배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각각의 기본충동들은 하나하나가 바로 자신을 기꺼이 존재의 궁극목표이자 나머지 모든 충동 위에 군림하는 정당한 주인으로 내세우고 싶어 한다.[62] 그것은 "나 자신 이외의 아무것도 진리가 아니다"라고 외치면서, 수많은 다른 가치들을 없애려고 한다. 그러나 어떤 한 사람에게 정당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반드시 정당할 것이라고 할 수 없듯이,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가치를 요구하는 것은 각자의 가치추구를 방해함으로써 각자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것임을 알아야 한다.[63]

가치를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해석만 강요하는 것도 부당하다면, 우리는 다양한 관점들과 정념들이 개입하는 해석들을 최대한 허용하는 가설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하나의 사태에 대해서 더 많은 정념으로 하여금 말하게 할수록, 우리가 동일한 사태에 대해서 더 많은 눈과 다양한 눈을 동원하면 할수록, 이러한 사태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보다 유연해지고 보다 넓어질 것이다.[64] 그렇다고 회의주의나 상대주의처럼 다양한 관점을 그저 수집하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된다. 다양한 가치 앞에서 단순히 중립을 지키려고 한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지 않게 됨으로써 허무주의로 귀결된다.[65] 우리는 결국 저 다양한 관점들을 자기만의 방식대로 연결하고 관점들의 위계를 재설정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야만 한다! 우리는 새로운 어떤 것으로 존재해야 하고, 새로운 어떤 것을 의미해야 하며, 새로운 가치를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66] 그래서 진정한 철학자는 명령하는 자며 입법자다. 그들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우선 인간이 어디로 가야 하고 어떠한 목적을 가져야 할지를 규정하는 작업을 하면서, 과거를 정리해온 모든 사람들의 준비 작업을 자신의 뜻대로 사용한다. 그들은 창조적인 손으로 미래를 붙잡는다. 그들의 '인식'은 창조이며, 그들의 창조는 하나의 입법이고, 그들의 진리에의 의지는 힘에의 의지다.[67]

3.3. 힘에의 의지

이제 '자연 그대로의 인간'(homo natura)의 정념들과 그 정념들의 적나라한 위계를 모두 솔직하게 드러내는 해석을 하는 것이 니체의 목표가 된다.[68] 사유가 욕망과 열정의 충동들 상호 간의 연관에 불과하다면, 시험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가능하다. "이 '주어져 있는 것(충동)'만으로도 이른바 기계적(또는 '물리적인') 세계까지도 이해하기에 충분하지 않는가?" 즉 그것은 유기체적인 과정 속에서 분화되고 전개되어나가기 이전에 모든 것이 강력한 통일체 속에 통합되어 있는 보다 원초적인 형태의 정념 세계, 일종의 충동적 생을 의미한다. 기계적 세계를 이러한 생명의 초기형태로서 이해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우리의 충동적인 생 전체를 의지의 유일한 근본형태, 즉 힘에의 의지의 분화와 전개로서 설명할 수 있다면, 또한 모든 유기적 기능을 이러한 힘에의 의지로 환원할 수 있다면, 작용하는 모든 힘을 '힘에의 의지'로서 분명하게 규정하는 것은 정당성을 얻게 될 것이다. 내부로부터 관찰된 세계, 그것이 갖는 '예지적 성격'에 의해서 규정되고 정의된 세계는 '힘에의 의지', 이외의 것이 아니다.[69]

자연을 있는 그대로 생각해보라. 그것은 한없이 낭비적이고 아무런 관심도 의도도 없으며, 정의감도 배려도 자비도 없고, 풍요로운가 하면 황량하고 동시에 불확실하다.[70] 그러한 자연 속의 놓여진 생명 자체는 본질적으로 자신보다 약한 타자를 자기 것으로 하고 그것에게 위해를 가하고 그것을 억압하는 것이다. 그것은 냉혹하며, 자신의 형식을 타자에게 강제하고 타자를 자신에게 동화시키는 것이고, 가장 부드럽게 말한다고 해도 최소한 착취하는 것이다. 그것은 유기체의 근본적인 기능으로서 살아 있는 것의 본질에 속하며, 생명의 의지 자체인 본래의 힘에의 의지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주장에 불편해질런지도 모르지만, 이는 모든 역사의 근본적인 사실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인정할 정도로 우리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71]

한 인간의 정신에 있어서도 그런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정신'이라고 불리는 저 명령적 존재는 자신과 자신의 주위에 대해서 주인이 되고 싶어 하고 자신을 주인으로서 느끼고 싶어 한다. 그것은 살아 있고 성장하며 번식하는 모든 생명체가 지니는 동일한 욕구와 능력을 가지며, 낯선 것을 결합하고 구속하고 지배하려고 하고 실제로 지배하는 의지를 갖는다. 정신은 낯선 것이나 '외부세계'에 속하는 모든 것의 특정한 윤곽이나 특징을 자의적으로 강조하고 자신에 맞게 왜곡한다. 이 경우 정신이 의도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을 자기 것으로 체화하고 새로운 사물들을 기존의 계열 속에 편입시키는 데, 즉 성장하는 데 있으며, 보다 분명하게 말하자면, 성장한다는 느낌, 힘이 증대되었다는 느낌을 갖는 데 있다.[72]
주거를 제공하고, 오락을 제공하고, 음식과 영양을 제공하고, 건강을 주었음에도, 사람은 여전히 불행과 불만을 느낀다.
사람은 압도적인 힘을 원하는 것이다.
《아침놀》 中
이러한 의지란 많은 감정과 사유들의 복합체이며, 단어로서만 단일체로 표현될 뿐이다. 또한 '힘에의 의지'는 기존의 해석을 넘어서려는 자신만의 새로운 해석이며, 무엇보다도 그것은 명령의 정념이다. '의지의 자유'라고 불리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사람들이 자신의 명령에 순종해야만 하는 것에 대해서 갖는 우월감이다. 즉 "나는 자유롭다. '그'는 복종해야 한다"는 의식이 모든 의지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의지 속에는 저 주의집중, 오로지 하나의 목표에만 똑바로 고정된 시선, '지금 이것 이외의 다른 것은 전적으로 불필요하다'는 저 무조건적인 가치평가, 복종시킬 수 있다는 내적인 확신, 명령하는 자의 상태에 속하는 그 모든 것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한 인간, 의욕하는 인간은 복종하거나 복종하리라고 믿는 자기 내부의 어떤 것에 대해서 명령을 내린다. 동시에 그는 그 명령을 수행하는 자이므로, 인간은 '명령하는 자'면서 동시에 '복종하는 자'다. 그러면서 그는 내면의 또 다른 의지와 함께 이 명령에 저항하는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한 인간은 수많은 의지들이 저마다의 힘을 과시하는 장이자 그들의 위계를 두고 싸우는 전쟁터인 것이다.[73] [74]

그것은 사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옛날부터 모험심, 대담함, 복수심, 교활함, 약탈욕, 지배욕과 같이 강력하고 위험한 충동들은 외부의 적에 대항하기 위해서 이제까지 집단에 유용하다는 의미에서 존중되었을 뿐 아니라 크게 육성되고 단련돼야만 했다. 하지만 사회가 안정된 지금에 와서는 그러한 충동들이 이웃들에게 위험하다고 여겨졌고 점차 부도덕한 것으로 낙인이 찍히고 비난을 받게 되었다.[75] 그래서 의지가 병들고 퇴화한다. 오늘날 보다 높은 인간, 보다 높은 영혼, 보다 높은 의무, 보다 높은 책임, 창조력과 지배력으로 넘치는 대부분의 것들은 배척된다. 그들은 독립적으로 결단을 내릴 줄 모르며 의지에 깃들인 용감한 쾌감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 의지박약자와 다르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 홀로 서고 고독을 즐기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고귀한 인간의 조건이 된다.[76]

고귀한 인간은 자신 속 강력하고 서로 화해하기 어려운 충동들을 능숙하고 교묘하게 조정하여, 그러한 본성 안의 대립과 싸움을, 삶을 자극하고 북돋는 것으로 만든다. 그리하여 기묘한 마력을 지닌 저 불가해하고 불가사의한 인간, 승리를 거두고 사람을 유혹하도록 미리 운명지어진 수수께끼 같은 인간이 출현하게 된다.[77] 또한 고귀한 인간은 자신을 가치를 규정하는 자라고 느끼기 때문에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속하는 것을 존중하며, 충만한 느낌, 넘쳐흐르려고 하는 힘의 느낌, 고도의 긴장에서 오는 행복감, 베풀어주고 싶어 하는 풍요로움의 느낌을 가진다. 그도 불행한 자를 돕지만, 동정에서가 아니라 넘쳐나는 힘에서 비롯된 충동에서 돕는다. 고귀한 인간은 자신 안에 존재하는 강력한 자를 존중하는바, 이 강력한 자란 자신을 제어할 힘을 가지고 있으며, 말하고 침묵하는 법을 알고 있고, 자기 자신을 엄격하고 혹독하게 다루는 데서 기쁨을 느끼며, 엄격하고 혹독한 모든 것을 존경하는 자다. 그렇기에 고귀한 인간들은 겁 많은 인간, 불안해하는 인간, 소심한 인간,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는 인간, 편협하고 의심 많은 인간, 비굴한 인간, 학대를 감수하는 개 같은 인간, 거지 같은 아첨꾼,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짓말쟁이를 경멸한다.[78]

소심하고 비굴한 인간들은 가능하다면 고통을 없애려고 한다. 하지만 고귀한 인간은 오히려 일찍이 없었던 정도로 고통을 증대시키고 더 악화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안락과 같은 것은 그의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우습고 경멸받아야 할 것으로 만드는 상태이다! 고통을 견디는 훈련, 거대한 고통을 견디는 훈련, 이러한 훈련만이 지금까지 인류의 모든 고양을 가능하게 했다. 영혼의 힘을 강화시켜주는 불행 속에서 영혼이 느끼는 긴장, 위대한 파멸을 눈앞에 볼 때 영혼이 느끼는 전율, 불행을 짊어지고 견뎌내고 해석하고 이용하는 영혼의 독창성과 용기, 그리고 또한 일찍이 비밀, 가면, 정신, 간지(奸智), 위대함에 의해 영혼에게 선사된 것, 이것들은 고통을 겪으면서 그리고 거대한 고통의 훈련을 겪으면서 영혼에게 선사된 것이 아닌가? [79]
존재를 최대한 풍요롭게 실천하고 최대한 만끽하기 위한 비결은 바로 이것이다.
위험하게 살아라! 베수비오 화산의 비탈에 너의 도시를 세워라!
『즐거운 학문』

3.4. 귀족 도덕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좋음ㆍ선함(gut)'이라는 단어에 대한 어원학적 탐구를 통해 그것의 원래 의미를 찾아나간다. '좋음(gut)'은 원래 귀족을 가리키는 '고귀한', '기품 있는', '특권을 지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또한 '좋음'과 관련된 단어들과 어근에서는, 귀족들이 스스로를 '강력한 자', '지배하는 자', '명령하는 자'라는 뉘앙스로 지칭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립하는 단어인 'schlecht'라는 독일어는 원래 평민을 가리키는 '소박한', '단순한'이라는 뜻에 불과했다. 거기에는 아무런 비난의 의미가 없었다. 즉, 귀족들은 스스로를 '좋은 것(gut)'으로 평가하고 나서, 이후에 그렇지 못한 평민들을 '나쁜 것(schlecht)'으로 평가했던 것이다. 반면 gut에 대립하는 또 다른 단어, '악함(böse)'은 귀족이 생각해낸 단어가 아니다. 넘쳐흐르는 자신감과 활력을 지니고 있는 귀족은 자신의 넘치는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적을 필요로 하므로 경멸할 점이 전혀 없고 존경할 점이 매우 많은 자만을 자신의 적으로 삼기 때문에 '(상대가) 악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악함(böse)'이라는 단어는 어디서 유래된 것일까?

우리는 모든 귀족적인 종족의 근저에서 맹수, 즉 전리품과 승리를 탐욕스럽게 찾아 헤매는 야만인(Barbar)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미치광이 같고 비이성적이고 갑작스럽게 표출되는 '대담함',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그들이 행하는 모험의 예측 불가능함, 안전ㆍ육체ㆍ생명ㆍ안락에 대한 그들의 무관심과 경멸, 온갖 파괴를 자행하고 승리와 잔인함을 탐닉하면서 그들이 보여주는 전율할 정도의 쾌활함과 깊은 쾌감 등을 말이다. 그들 기사적 귀족에게는 강한 육체, 젊고 왕성하며 넘쳐흐르기까지 하는 건강, 그러한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 즉 전쟁, 모험, 사냥, 춤, 투기와 강하고 자유로우며 쾌활한 행동을 포함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추구해야할 가치다.

반면 이러한 귀족들에게 억압당하고 짓밟히고 능욕당한 자들은 무력감에서 비롯된 복수심 서린 간계(奸計)로 자기들끼리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저 악한 자들과는 다른 존재, 선한 존재가 되자! 선한 인간이란 능욕하지 않는 자, 그 누구도 해치지 않는자, 공격하지 않는 자, 보복하지 않는 자, 우리처럼 인내하고 겸손하며 올바른 자이다." 즉, 약한 자들은 가장 깊은 증오와 원한을 가지고, 자신의 적과 정복자들의 가치(좋은=고귀한=강력한=아름다운=행복한=신의 사랑을 받는)를 철저하게 '악한 것(böse)'으로 전도시켰던 것이다. 이른바 노예도덕에서는,[80] 보복하지 못하는 무력함이 '선량함'으로 바뀌고, 겁에 가득찬 비굴함은 '겸손'으로 바뀌며, 자신이 증오하는 자들에 대한 복종은 '순종'으로 바뀌고, 약한 자의 비공격성, 그가 풍부하게 지닌 비겁함 자체, 문 앞에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은 '인내'로 바뀐다. 여기에선 복수할 수 없음이 복수하고 싶어 하지 않음이라고 불리고 심지어는 용서라고까지 불린다.

니체는 이러한 가치의 전도가 '양심의 가책(죄책감)'에서 이루어졌다고 본다. 그리고 양심의 기원을 알아내기 위해서 '형벌'을 우선 살펴본다. 머나먼 과거에 형벌이라는 것은, 갚지 못한 빚에 대한 보상으로, 채무자에게 고통을 가함으로써 채권자가 그 쾌감을 맛보게 하고 피해에 대한 분노를 풀기 위한 것이었다. 잔인함이라는 것이 고대 인류의 거대한 축제에 있어서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 것이었던가. 그것은 오늘날에도 정신화되고 신성화되어서 이어져오고 있다. 실로 냉혹한 명제이긴 하나, 타인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은 더욱더 유쾌한 일이다.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긴 역사는 '잔인함이 없이는 축제도 없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형벌에도 축제적인 성격이 참으로 많이 존재한다! 이런 자들에게서 '양심의 가책'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처음부터 자명하다. 반대로 형벌을 당하는 입장에 있는 '죄 지은 자'에게서 형벌은, 대체로 인간을 비정하게 그리고 냉혹하게 만드는 것이다. 범죄자는 재판 절차나 집행 절차를 실제로 목격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행위와 행위방식을 그 자체로서 비난받아야 할 것으로 보지 않게 된다. 행동만 놓고 보면, 자신의 범죄나 공동체의 형벌이나 그 폭력적 행위 자체는 똑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벌이 죄를 지은 자에게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을 불러일으킨다는 믿음은 틀린 것이다. 역사 시대가 시작되기 이전의 저 수천 년을 생각해본다면, 죄책감의 발달을 가장 강력하게 저지한 것은 도리어 형벌이었다고 주저 없이 단정할 수 있다.

그럼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지배자는 국가가 만들어지자 그 권력으로 약자들을 더 용이하게 관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점차 '잔인한 형벌'을 금지시켰고, 약자들은 그 잔인함에서 비롯되는 쾌감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렇다고 지배자의 권력에 자유를 억압당한 약자들이 딱히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외부로 향하던 그 자유의 본능을, 방향을 바꾸어 그 자신의 내면세계에 폭발시키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적의, 잔인함, 박해를 가하려고 하고 습격하려고 하며 변혁하고 파괴하려는 욕망, 이 모든 것이 바깥으로 발산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러한 본능의 소유자 자신을 향하는 것. 이러한 내면화가 바로 '양심의 가책'의 기원이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괴로워 하는 병에 걸린 인간은 성급하게 자기 자신을 찢고 박해하고 물어뜯고 괴롭히고 학대했다. 이 은밀한 자기 학대, 이러한 예술가적인 잔인성, 자기라는 둔중하고 반항적이며 고통스러워하는 소재에 하나의 형식을 부여하여, 그것에 의지, 비판, 모순, 경멸, 부정을 새겨 넣는 이 쾌감, 자신을 괴롭히면서 느끼는 쾌감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면서 의도적으로 자신을 분열시키는 영혼의 이러한 능동적인 '양심의 가책' 전체야말로 이상적이고 공상적인 사건들의 진정한 모태로서 수많은 신기한 아름다움과 긍정을 출현하게 한 것이기도 하다.

한편, 종족 공동체에서 현재의 세대는 이전 세대의 희생과 업적의 덕택으로 존속한다는 확신에서 조상에게 그러한 빚을 되갚아야 한다는 일종의 법률적 의무를 인정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빚을 지불하기 위해, 제물, 축제, 예배당, 의례, 특히 조상이 만든 모든 관습에 대한 복종함으로서 그 의무를 행했다. 관습에 대한 복종 의무에서 비롯된 힘과 그 힘에서 느끼게 되는 '조상에 대한 공포'는, 종족 자체의 힘이 증대되는 것에 정확히 비례해서 필연적으로 점점 커진다. 가장 강력한 종족들의 선조는 증대되는 공포 자체의 상상에 의해서 종내에는 어마어마한 존재로 커지게 되고, 결국에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신으로 변형되어 믿어진다. 아마도 여기에 신들의 기원 자체가, 즉 공포로부터의 기원이 존재한다! 역사가 가르쳐주듯이, 신성에 대해서 빚을 지고 있다는 이러한 의식은 혈연에 기초한 '공동체'의 조직 형태가 몰락한 후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저 널리 퍼져 있던 노예들과 예속된 주민들은 강제에 의해서든 굴종과 모방에 의해서든 그들을 지배하는 자들의 신들을 숭배하였고, 이와 함께 '신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의식' 역시도 수천 년에 걸쳐서 부단히 성장했다. 세계제국을 향해서 나아가는 투쟁과 통합의 역사는 또한 항상 보편적인 신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었으며, 독립적인 귀족계급을 제압하는 것으로 성립되는 전제 정치는 항상 어떤 일신교로 나아가는 길을 여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제까지 도달된 최대의 신인 그리스도교 신의 출현과 함께 또한 최대의 부채의식이 지상에 나타나게 되었다.

여기서 '양심의 가책'이 다시 등장한다. 이제 비관적인 일이지만, 빚을 완전히 변제할 가능성은 영원히 사라져버렸는데도, 인간은 신에게 진 그 빚마저도 '자신의 고통'으로 변제하려고 한다. 제물, 축제, 예배당, 의례 등 예전의 어떤 방식으로도 빚을 완전히 변제할 가능성이 영원히 사라져버렸다는 것은, 인간에게 그 죄를 내면화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인간은 이윽고 신에 대한 그 빚에 괴로워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스스로에게 '잔인한' 고문을 가하기 시작한다. 원래부터 '양심의 가책'에는 귀족(지배자)으로 인해 동물적 본능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약자들의 기억이 새겨져 있었는데, 죄의 내면화는 이러한 인간 자신의 동물적 본능들 자체를 신에 대한 죄로 해석하게 만들었고, 그러한 동물적 본능이 일어날 때마다 인간은 '신'과 '악마' 사이의 대립이 일어나는 장이 되었다. 그러나 마침내는 빚을 상환할 수 없다는 것과 함께 어떠한 벌로도 자신이 지은 죄를 보상할 수 없다는 생각, 즉 속죄가 불가능하다는 '영원한 벌'의 사상이 싹튼다. 인간은 이러한 이상을 세움으로써 그와 같은 이상 앞에서 자신이 절대적으로 무가치하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하려고 든다.[81] 물론 그런 잔인한 확인 속에는 은밀한 쾌감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금욕주의적인 삶을 살아감으로써 현실에서의 삶을 소외시키고 배제한다.

니체는 이렇게 '자신의 삶을 부정함으로써 그 고통에서 오는 쾌락으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자'를 병든 사람으로 보았다. 그들은 삶의 고통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결국 '활력있는 삶의 생생한 가치들'을 부정함으로써 병든 자들을 더욱 병들게 만들고 상황을 악화시킨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타인에게 강제하려고 하고 거기서 기쁨을 느낀다. 이를 통해 혐오와 동정이 전염되면서 건강한 자들마저도 병들게 만든다. 그래서 거리의 파토스가 양자의 임무를 영원토록 분리시켜야만 한다고 니체는 주장한다. 즉,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정도로 강하고 솔직하며 강한 활력을 지닌 고귀한 자가 동등한 힘과 활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의 힘과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놔둬야 한다는 것이다.[82] 자신의 말에 책임도 못지면서 허황된 말만 하고 남의 의지를 깍아내리려는 저열한 자가 고귀한 자를 달콤한 말로 속이게 놔둬서는 안 된다. 고귀한 자들의 생존권, 불쾌한 소리만 내는 깨져버린 종에 대해서 완벽한 소리를 내는 종이 갖는 특권은 실로 천배나 더 큰 것이다. 니체는 그렇기에 고귀한 자를 우리 사회가 '양육'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3.5. 영원회귀

니체가 스위스의 실스마리아 근처 실바플라나 호숫가에서 ' 영원 회귀 사상'을 생각해냈을 당시, 니체는 에너지 보존 법칙을 공부하고 있었다. 니체가 파악한 에너지 보존 법칙이란, 한정된 공간 안에 있는 어떤 에너지는 다른 에너지로 변하는 것이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니체는 에너지(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무한의 시간 속에서 우연으로 가능한 모든 경우의 조합이 빠짐없이 한 번 씩은 나타나게 될 것이고, 미래의 언젠가는 과거의 동일한 조건과 동일한 순서를 반복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즉, 한정된 공간에서 '우연'한 존재는 무한한 시간이 흘렀을 때 그 결과가 '필연'으로 귀결된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유한한 자'는 아무리 자유롭게 생각하고 활동해도 '무한한 시간'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의 유한한 활동범위와 역량 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모두 이루어질 것이고, 그래서 했던 것을 다시 반복하게 될 것이라는게 니체의 통찰이었다.

철학도 마찬가지다. 개개의 철학적 개념들은 제멋대로 생기지도 독자적으로 성장하지도 않으며 상호 간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 그것들은 겉보기에는 사유의 역사에서 갑자기 제멋대로 출현한 것처럼 보이거나, 각자가 비판적이거나 체계적인 의지를 갖고서 서로에 대해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 내부의 어떤 것, 즉 개념들의 저 타고난 체계와 친족성이 그들을 일정한 순서로 차례로 몰아댄다. 이러한 사실은 전적으로 입장을 달리하는 철학자들도 나타날 수 있는 철학들의 일정한 근본도식을 항상 거듭해서 확실하게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마력에 사로잡혀 항상 또다시 동일한 궤도를 달린다. 그들의 사고는 사실 새로운 발견이라기보다는 재인식이자 재기억이며, 그 개념들이 원래 유래했던 영혼의 아득한 태곳적 공유재산으로의 회귀이며 귀향이다. 이런 점에서, 철학한다는 것은 일종의 최고급의 격세유전이다.[83]

그렇다면 영원회귀란 '자신만의 가치'가 사실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또 다른 허무주의요,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이 아닌가? 과거의 모든 조건들이 똑같이 재구성되고 미래의 가치들도 누군가 이미 지나온 길이라면 우리는 권태라는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나며 여기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되는가?

다시금 힘에의 의지를 생각해본다면, 모든 철학은 충동에 근거하고 있고, 충동은 몸의 건강에 따라 좌우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인간은 건강할 때 활기찬 충동에서 긍정적인 생각을, 건강하지 않을 때 무기력한 충동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므로, 철학이란 사실 "몸의 건강을 해석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언젠가 건강을 잃어버리게 되므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고통에 직면하면서 무기력에 사로잡히고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은 어느 정도 필연적이다. 모든 인간은 몰락을 통해서 자신만의 비극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니체는 이러한 비극 속에서 하나의 사실을 발견한다. 허무주의가 우리를 끝끝내 좌절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우리를 깊이있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말이다.[84] 우리는 허무라는 심연을 통과하면서, 삶이 고통스러운 문제이긴 하나, 그렇기에 우리에게 의미를 가진 문제로 다가올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삶의 문제를 풀어가는 우리의 탐구, 호기심, 모험, 이로 인해 매번 색다른 시도로 달라지는 문제 풀이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삶을 살아가게끔 해주는 하나의 의미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기 위해선 문제 앞에서의 무거운 사색, 우울한 진지함이 아니라 조롱과 경멸, 그리고 문제를 가볍게 받아들이는 일시적이고 피상적인 쾌활함, "예술가로서의 쾌활함"이 필요한 게 아닌가? 어쩌면 삶이란 이러한 문제 풀이를 즐기는 것, 즉 '즐거운 학문'일 것이다! [85]

니체는 이런 질문들에서 과거의 조건과 미래의 결론보다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의 '결심'을 소중히해야 함을 깨닫는다. 삶의 의미는 '어떤 좋은 조건과 좋은 결론을 가지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인 그 삶이라는 문제 앞에서 자신이 내놓은 결론(방향)을 향해, 당신은 직접 참여하고 체험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주어진 조건이 동일하고 추구하는 결론들도 종국에는 똑같아질지라도, '그가 선택하고 만들어온 ㅡ 그리고 만들어갈 가치'이기 때문에 그것은 그에게만큼은 그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할 충분한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주어진 것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반복해서 '현재의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일종의 놀이이며 구경거리다. 현재에 몰입해서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놀이 말이다.

따라서 세상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영원회귀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 속에서조차 우리 자신을 살아있게끔 만드는 순간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 한 순간을 긍정할 수 있다면, 그 순간을 위해 이제까지 희생됐던 시간과 앞으로 희생될 시간 모두를 구원받을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86] 아니, 오히려 그러한 희생됐고 희생할 시간들로 인해 그 한 순간이 비로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삶에서 부정당한 측면을 단지 필요한 것일 뿐만 아니라 바랄 만한 것으로, 아니, 바랄 만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가 더 강력하고, 더 풍부하고, 더 진실된 삶의 측면이라고 여겨야 한다.[87]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으며 없어도 좋은 것은 없다는 긍정이 필요하다! [88] (단, 주어진 모든 것들을 긍정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 자신의 삶과 선택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니체는 모든 필연적인 것들을 긍정한다고 해서, '나 자신의 선택'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니체는 그런 '선택의 자유'마저 마치 '필연'인 것처럼 느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필연'의 개념을 일종의 예술가적 '몰입'과 비슷한 것으로 본다.[89] [90])
나처럼 어떤 수수께끼 같은 갈망을 가지고 염세주의를 그 밑바닥에 이르기까지 사유하면서, 염세주의를 마침내 금세기에 쇼펜하우어 철학의 형태로 나타났던, 반쯤은 그리스도교적이고 반쯤은 독일적인 편협함과 순진함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오랜 동안 노력해왔던 사람, 아시아적이거나 초아시아적인 눈으로 온갖 사고방식들 중에서도 가장 세계 부정적인 사고방식의 정체를 ㅡ 부처나 쇼펜하우어처럼 도덕적인 속박이나 망상에 사로잡혀서가 아니라 선악의 저편에서 ㅡ 꿰뚫어보고 그 밑바닥에 이르기까지 내려다본 사람은 아마도 바로 이로 말미암아 전혀 의도치 않게 정반대의 이상에 눈을 뜨게 되었을 것이다.[91] 그러한 이상이란 가장 대담하고 생명력이 넘치며 극한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긍정하는 인간의 이상이다. 그러한 인간은 과거에 존재했고 현재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만족하고 그것과 화해하는 법을 배웠을 뿐 아니라 그 모든 것을 과거에 존재했고 지금도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그대로 다시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러한 인간은 자기 자신과 인생의 연극과 구경거리 전체 뿐 아니라 바로 이러한 구경거리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또한 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자기 자신을 향해서 그야말로 영원에 걸쳐서 물릴 줄 모르고 '처음부터 다시(da capo)'라고 부르짖는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거듭해서 자기 자신을 필요로 하고 필요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92] 뭐라고? 이것이야말로 악순환의 신(circulus vitiosus deus[93])이 아닌가?
『선악의 저편』 56절.[94]
니체는 '영원회귀'야말로 자신의 가장 중요한 생각이라고 말했고 여러 군데에서 언급하지만 이를 더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 놓지는 않았기 때문에, 영원회귀는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고 다양하게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이 형이상학적 사상을 펼치는 니체의 전략만큼은 비교적 분명하다. (니체가 형이상학을 반대하는 사상가라는 걸 안다면 이게 얼마나 역설적인 상황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영원의 형상을 새기는 것이다.[95] 마치 플라톤과 그리스도교가 예측할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고 이상적인 가상 세계를 만들어 세계에 대한 이해를 뒤집었듯이, 니체 역시도 우리의 삶, 그 현실 자체에 영원의 권위를 부여하여 이전 가치에 대한 이해를 다시 한번 뒤집은 것이다. 변화하는 현실에 영원의 권위를 부여하는 것. 이 역설적인 가치전도가 오류지 않냐고? 그렇다. 하나의 오류를 다른 오류로 대체하는 것, 그것이 삶의 긍정에 도움을 준다면 무슨 상관이겠는가! [96]

3.6. 네 운명을 사랑하라

니체에 따르면 '행복'이란 자신의 삶이 가리키는 하나의 목표, 즉 자기 내부의 의지가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해 내리는 명령이 있으며, 바로 그 명령 ㅡ 그 자신의 강한 의지가 원하는 과제ㆍ사명을 찾음으로서 흘러 넘치도록 풍요로운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97] 그 의지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가 원하는 과제를 수행함으로서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자 한다.[98] 심지어 과거에서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자기 자신으로 살아왔고 살아갈 모든 부분에서 자신의 의지가 원하는 것이라는 필연성을 느끼고자 하며, 그리하여 일체의 '그러했다'를 '나는 그러길 원했다!'로 변형시키고자 한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결의를 다지는 모든 것[99]이 니체에게 있어서 '운명'을 가리킨다.[100] [101] [102]

인간은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되는가? 인간은 어떻게 자신의 과제와 사명을 발견하는가? 그것은 어느 한 순간의 자신의 의도나, 종교, 도덕이 지시하는 목적의 결과가 아니다.[103] 우리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가치를 설정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104] 단지 우리가 모든 위대한 말과 모든 위대한 태도에 현혹되지만 않는다면,[105] 조직하고 지배하도록 예정되어 있는 '본능(이념[106])'이 우리의 의식 깊은 곳에서 점점 자라나서 명령하기 시작하며, 우리가 옆길과 잘못된 길에서 되돌아오도록 서서히 인도한다. 그 본능은 어떤 지배적인 과제, 즉 '목표', '목적', '의미'에 대해 무엇인가를 알려주기도 전에, 미리 그것에 봉사하는 모든 능력들이 차례로 형성되도록 준비한다. 그래서 모든 능력이 성숙되고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그 순간에, 그 자신의 삶 자체에서 비롯되는 사명이 갑작스레 그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는 '구체적인 무언가'를 이루려고 애써본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107] [108]

이러한 사명은 그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과 취향에 따라 그에게만 맞는 과제와 그에게만 맞는 방식으로 주어지며, 그것은 그 자신의 삶을 더 강하고 더 대담하고 더 쾌활하게 만들어준다.[109]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얻기 위해 급해질 필요는 없다. 본능이 너무 일찍 자신을 자각하여 자신의 미성숙한 능력에 비해 감당하지 못할 과제와 사명을 갖게 되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심지어 인생의 실책들, 즉 때때로 옆길로 샌다든지, 길을 잘못 든다든지, 주저한다든지, 소극적으로 군다든지, 자신의 과제가 아닌 과제들에 진지한 관심을 낭비한다든지 등과 같은 실책들조차도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 오히려 이러한 실패의 경험들은 자신의 능력이 성숙해질 때까지 자신을 진정으로 시험할 고통을 탐색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110]

인간은 일생동안 병든 상태와 건강한 상태를 넘나든다. 이 모든 것에서 명령을 내리는 것은 자기보존 본능이며, 병들어 있다는 것은 자기보존 본능, 즉 방어 본능과 공격 본능이 쇠퇴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111] 정신이 병들고 약해졌을 때 그는 무기력에 빠져 허무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알 필요도 못 느낀다. 이로 인해 그는 약해진 상태에서 더 약해진다. 반면에 정신이 건강하고 강해졌을 때 인간은 충만함으로 가득찬 채 넘치는 의욕으로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고자 하며 이를 통해 자기 자신이 진정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지를 확인하고자 한다. 그러한 자는 사명을 수행함으로써 더욱 강해지고 굳건해진다.[112] 그러므로 인간은, 아니 인간의 삶은 무엇보다도 우선 병에서 회복하여 건강해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러한 병에서 회복하여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가? 니체의 처방에 따르면, 회복하려는 자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부정적인 목적에 힘을 낭비해선 안 된다. 그는 강행군 끝에 눈 속에 쓰러지고 마는 러시아 군인이 보여주는 무저항의 숙명론처럼 '다른 것'에 가능한 한 드물게 반응해야 한다.[113] 자기 자신을 하나의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것, '다른' 자신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그것은 그러한 경우에 위대함 그 자체며, 이로서 건강하고 강한 의지를 회복할 수 있다.[114]

건강하고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은 그 어떤 고통 속에서도 자신이 극복할 과제와 사명을 발견할 수 있고 발견할 것이다. 사실, 사명은 저항과 고통 속에서만 더욱 뚜렷해지고 점차 확신으로 다가온다. 따라서 그러한 자, 의욕에 넘치는 자는 일부러 저항과 고통을 찾아 모험을 나선다. 그러한 자가 얼마나 성장할 것인가는 그가 보다 강력한 적수 또는 보다 강력한 문제를 찾아 나서는가 아닌가에서 드러난다. 상대가 나보다 약할 경우 굳이 결투할 필요가 없다. 그의 과제는 단순히 일반적인 저항을 제압하는 데 있지 않고, 자신의 모든 힘과 유연함 그리고 싸움 기술을 쏟아부을 만한 저항을, 즉 자신과 대등한 적수를 제압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115] 그는 자신만큼 강한 적에게만 희열을 느낀다. 그에게 고통은 기쁨이 된다. 그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116]

아모르 파티(Amor Fati) ㅡ 운명을 사랑하라. 그것은 이러한 자신의 과제와 사명, 이에 대한 스스로의 대답과 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과 앞으로 올 모든 것을 필연으로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 과제와 사명은 그 자신에게만큼은 의욕이며, 삶이며, 놀이이며, 구경거리이기 때문이다. 이 의욕에서 나오는 기쁨은 너무나 강력해서 심지어 그의 본능은 자신의 내부로부터 솟아나오는 힘들의 압도적인 압력으로 인해 그 자신을 신중하게 보호하는 것마저 잊어버린다. 그는 그 자신의 과제를 위해 자신을 탕진하고 자신을 아끼지 않다가 기어코 자기 자신을 파멸로 이끌어낸다. 그는 필연적으로, 숙명적으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으며, 강물이 강둑을 넘어서 흐르듯이 아무런 생각 없이 그렇게 한다.[117] 이는 상승함으로서 하강하는 것이다. 기쁨을 누리고자 고통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118] 그것은 일종의 디오니소스적 도취이자 삶과 창조에의 몰입이다.[119]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다리라는 데에 있다. 인간에게서 사랑받을 만한 점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자 내려가는 존재라는 데에 있다. 사랑하노라! 하강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 모르는 사람들을.[120] 그러한 유형의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모든 필연적인 것들을 사랑하고자 하며 현실의 무시무시하고 의심스러운 모든 것을 자신 안에도 가지고 있다.[121] 그것은 가장 낯설고 가혹한 삶의 문제들과 직면해 있으면서도 삶을 긍정하는 것, 자신의 무궁무진성에 기쁨을 느끼면서 삶의 최고의 전형을 희생하는 것도 불사하는 생에의 의지,[122] ㅡ 그는 이런 고통스런 운명에 스스로 기쁨의 축복을 내린다. 그는 스스로의 몰락마저 사랑할 줄 안다.[123] [124] 사랑, 그것은 진지하고 철저하고 깊고 장엄한 것 앞에서, 어리숙하더라도 노래부르고 춤추고 웃을 줄 아는 것.[125] 삶이란 사랑하는 것이다. 너 자신의 의지가 운명이 되는 그런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모든 것이 처음으로 되돌아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할지라도.[126]
"나는 나의 말을 했고, 나의 그 말 때문에 부서진다. 그러므로 나의 영원한 운명은 다음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
예고자로서 나는 파멸하고자 한다! 이제 몰락하는 자가 자신에게 축복을 내릴 때가 왔다."
니체,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4. 니체 사상에 대한 철학적 비판

니체 사상에 대한 철학적인 비판은 꾸준히 있어 왔다. 그 중에서도 철학계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는 비판은 매킨타이어에 의한 비판이다. 매킨타이어는 《덕의 상실 (After virtue)》에서 니체를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사회와 정치에 대한 담론을 다룰 때는 도덕을 논하지 않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문제인데, 결국 니체의 예술가적 귀족주의는 정치철학적으로 볼 때 '엘리트주의적 개인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개인마다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개인에게 자신만의 가치판단을 하게 놔둬야 한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지만, 가치 판단을 개개인에게 맡김으로써 사회가 도덕판단의 영역을 애써 피하려다 보면, 사회 구속력으로서의 도덕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고, 이로 인해 근본주의와 극단주의의 득세를 돕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니체를 비판하는 학자들이 자주 언급하는 예를 들자면, '극단주의자들이 살인이나 방화를 하는 경우, 우리는 가치평가가 개인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고 그래서 저런 극단적인 주장에도 사회는 중립을 지켜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127]

물론, 니체는 소수의 '책임감 있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귀족 도덕을 허용했으며, 다수가 따르는 노예 도덕을 격렬하게 공격하긴 했지만 그것이 아예 없어져야 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또한 천개의 나라에 천개의 도덕이 있으며 도덕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은 이어져 오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니체의 논리를 따라서 소수의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기 위해 도덕을 해체한다고 하더라도, 기존 도덕이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소수의 사람들'의 행복만을 따지더라도, 그 행복이 오로지 '그 자신의 창조적 가치'와 고독에만 달려있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 매킨타이어의 지적이다. 매킨타이어에 따르면, 그러한 소수의 사람들에게조차 행복은 사람들 사이에서의 '연대'에 우선적으로 기초하고 있다.

단 이 문제는 소수의 의견을 니체의 사상으로 보고, 다수의 의견을 공동체주의 철학자의 사상으로 봐서, 소수와 다수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는지를 묻는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의무'는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문제이므로, 이들도 역시 '우선 순위'에 대해 싸우는 것이지 하나를 완전히 배제해 버리겠다고 싸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128] 따라서 이 문제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로 보장하면서도 어떻게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가', '자유에 제한을 가해야 한다면 어떤 근거와 한계가 있어야 하는가',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의무 중, 상황에 따른 우선 순위를 어떻게 두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이지, 단순히 소수가 맞다거나 아니면 다수가 맞다는 식으로 환원되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애초에 소수나 다수 중 한쪽이 무조건 맞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개인주의나 공동체주의가 아니라 그냥 이기주의나 전체주의이다. 공동체가 있음으로해서 자유가 작동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자유의 기능이 없으면 공동체가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5. 영향력

니체는 20세기 지성사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 사상가이며, 그의 사상은 현대에도 그 적시성으로 인해 여전히 철학 담론의 중심에 서 있다. 경직된 학문들은 니체의 영향으로 감각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로 넘치게 되었다. 이성에서 감성과 그 표현으로, 주류에서 그간 외면받아왔던 비주류로, 집단에서 개인으로 옮겨갔으며, 이들은 수많은 이론과 사조를 터놓았다. 이는 철학에만 그치지 않고 정신사와 문화사 전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처음에 니체는 예술가로 이해되었다. 니체 사후에 학계는 그에 대해 침묵했으나 1940년 전후 하이데거에 의해 니체는 서양 형이상학 전통으로 등재된다. 이후 1960년대 프랑스에서 니체는 화려하게 부활했으며 19세기 최고의 철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간주되었다. 이때, 니체의 사상은 철학 이외에도 사회학, 신학, 심리학, 문학, 음악 그리고 조형 예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수용되면서 20세기의 주요 철학자로 우뚝 떠올랐다.

1960년대 이후 구조주의의 그림자를 밟은 일군의 프랑스 철학자들은 '니체만 아는 니체'에서 한 걸음 나아가 '니체가 모르는 니체'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니체는 프랑스 철학자들의 ' 헤겔 이후에 새로운 철학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근거였다. 그 답변들이 1980년대 이후 국내 학자들에게도 적극 수용되었다. 하이데거와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은 니체와 함께 프로이트 마르크스를 호출했다. 자크 라캉은 프로이트를, 루이 알튀세르는 마르크스를, 미셸 푸코 질 들뢰즈 그리고 자크 데리다는 니체를 불러냈다. 이 탈근대 사상가들은 저마다 다른 무기를 통해 유럽 모더니즘의 척추인 기원과 중심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들뢰즈는 니체의 망치를 들고 프로이트를 가격한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자본주의의 반인간적인 측면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니체는 지금도 다양한 모습으로 세계 정신사에 등장하고 있다. 현대 정신사의 최전선이나 역사적 사회적 현장에 니체가 나타나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가 해석되어 나타나는 모습은 매우 다양해서 언뜻 보기에 그의 사상이라 단언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면 이성적 권위를 해체하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그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모습 가운데는 서양 근대 문명의 병리 현상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129], 자본주의, 인간 왜소화 현상 등 서양 근대 이념과 제도, 근대 문명을 비판하는 모습도 있고, 권력화되고 세속화된 기독교에 대한 통렬한 비판도 있다.

니체를 읽는 시각은 다양하다. 점차 속물화되고 천민화되는 현대 인간에게서 정신적 깊이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새로운 휴머니즘의 주창자로 니체를 읽기도 하고, 인간 영혼의 내부를 최초로 심도 있게 해부한 현대 심층심리학의 선구자로 보는 시각도 있다. 어떤 이들은 니체를 인간 사유의 한계를 깨뜨리며 사유 기호의 자유로운 놀이 세계를 열어 놓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 보기도 하며, 이전에 몰랐던 인간의 강인한 면모를 부각시키고 개별자로서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라고 주장한 점에세는 현대 철학의 아버지이자, 키르케고르와 함께 실존주의의 시조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는 우주적 무아(無我)를 주창함으로써 자기 자각을 추구하는 서구적 불교사상으로 읽기도 한다.[130]

대부분의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은 니체를 자신들의 지적 선구자로 제시한다. 여기서 니체가 비체계적 관점주의와 전통적 가치에 대한 재평가를 주장하였음을 상기하자. 니체가 제시하는 주제들 중 몇몇은, 그들의 관심사와 일견 유사성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넓고 다양한 시각으로 읽을 수 있는 니체의 특성상 포스트모던 철학만이 그에 후계자라고 자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니체는 20세기 프랑스 철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깨쳤다.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는 니체의 반이성주의적 성향을 계승하면서 전통적 진리에 대해 비판하는 니체를 원하였고, 미셸 푸코는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강조하는 니체를 원하였다. 그들은 니체 철학의 주제인 영원회귀, 힘에의 의지, 허무주의, 위버멘쉬 등에 초점을 맞춰 니체의 텍스트들을 해석의 전거(典據) 또는 대상으로 삼았고, 니체를 각자의 철학적 입장을 옹호하는 데 이용했다.
니체의 가장 일반적인 기획은 철학에 의미와 가치의 개념을 도입하는 데 있다. 분명, 현대 철학은 대부분 니체의 덕으로 살아왔고 여전히 니체의 덕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니체가 원했던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질 들뢰즈, 니체와 철학 제1장 中
  • 음악
음악에서는 지금까지 약 219명의 작곡가가 420개 작품에서 니체의 텍스트나 시에 음악을 붙여 작곡하거나 그의 음악 이념 혹은 예술정신에 영향을 받으며 작곡했다. 니체의 주저 제목을 그대로 단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작곡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나 프레더릭 딜리어스(F. Delius), 구스타프 말러, 안톤 베베른, 카를 오르프, 파울 힌데미트 등 수많은 작곡가가 니체의 기독교 비판이나 삶의 예술, 혹은 극복의 사상에 영향을 받으며 작곡했다. 또한 불협화음을 해방시킴으로써 무조음악을 창시한 아르놀트 쇤베르크도 니체와 친근한 거리에 있었다. 표현주의 음악을 선도했던 그는 음열 구성에서 복잡성이나 점묘성을 증대시키는 방법으로 12음 기법을 체계화하는 ‘신음악(Neue Musik)’을 주도하며 그의 제자인 베르크나 베베른에게 영향을 미치는 등 20세기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미술
니체는 현대미술의 탄생에도 중심적 역할을 했다. 아르 누보의 독일적 양식이라 할 수 있는 유겐트스틸(Jugendstil)의 잡지 <판(PAN)>은 그 정신적 이념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가져왔고, 이 양식을 ‘차라투스트라-양식’이라고 불렀다. 또한 움베르토 보초니(U. Boccioni), 지노 세베리니(G. Severini), 카를로 카라(C. Carrà), 루이지 루솔로, 자코모 발라(G. Balla) 등 이탈리아 미래주의 화가들은 니체 사상에 나타난 삶의 역동성을 기반으로 기계 문명이나 거대 도시, 젊음, 운동, 힘, 속도 등 새로운 시대의 역동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초래한 서양 문명을 비판하며 합리적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회의를 품고 삶의 개혁을 추진하며 일상의 예술작품을 보여준 반(反)예술운동으로서 다다이즘도 실상 니체의 그늘에 있었다.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프란츠 마르크, 가브리엘레 뮌터(G. Münter) 등 청기사파 그룹의 표현주의 작가들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E.L. Kirchner), 에리히 헤켈]E. Heckel) 등 다리파 화가들은 그 예술 모임의 명칭을 <차라투스트라>에게서 빌려 왔다. 이들의 뒤를 이어 나온 뭉크(E. Munch)는 시대적 불안이나 병리 현상 및 그것을 극복하는 빛과 힘, 에너지의 모습을 형상화했고, 딕스(O. Dix)는 전후(戰後) 일상의 어두운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추의 미학을 표현주의적으로 묘사했다.

니체는 더 나아가 초현실주의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앙드레 브르통은 자아의 생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열과 경련의 아름다움을 그려냈고, 몸의 리비도가 정신화되어 세계로 유출되는 과정을 수수께끼 같은 영상적 언어로 표현한 살바도르 달리는 아리아드네, 마스크, 기만, 관점주의, 가치전도, 놀이 등 니체적 주제를 변주하며 초현실주의적 세계를 그려냈다. 조르조 데 키리코(G. de Chirico)는 니체에 의존해 자신의 ‘형이상학적 회화’를 만들어냈으며, 막스 에른스트(M. Ernst)는 가면과 정신을 통해 인간의 이면을 탐구했고, 안드레 마송(A. Masson)은 생성소멸의 과정 속에서 인간 존재의 자각 모습을 회화적으로 표현했다. 음악과 연극, 미술의 영역을 넘나들며 행위의 자발성이나 즉흥성, 즉 해프닝을 통해 기존의 인습적 형식 예술을 깨뜨리고 비형식적 현실을 찾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플럭서스 운동 역시 니체적 영감을 조형한 것이었다.
  • 무용
현대무용의 새로운 무대도 니체적 영향 아래 펼쳐졌다. 현대무용을 창시한 이사도라 덩컨은 니체를 ‘최초의 춤추는 철학자’라고 부르며 <차라투스트라>를 평생 자신의 침대 곁에 놓고 보았으며, 니체에게서 신체의 자연성, 몸의 긍정, 그리스적 세계관, 자유정신을 체현하는 몸의 율동을 얻었고 이를 통해 현대 무용의 문을 연 것이다. 그녀는 기존의 무대에서 벗어나 바다로 나가 춤을 추거나 그리스 신전을 찾아가 춤을 추었고, 전통적 발레 형식을 벗어나 벌거벗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자유로운 신체의 움직임을 보여주며 각성된 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이와 동시에 우주의 춤에 인간이 참여한다는 ‘운동의 합창’ 개념을 만들고 음악 기보법을 최초로 정립한 루돌프 폰 라반(Rudolf von Laban), 그의 제자이자 ‘무(無)음악의 무용’이라는 표현주의 무용을 만든 마리 뷔그만(Mary Wigman), ‘열린 장’의 개념으로 ‘새로운 춤’을 만든 포스트모더니즘 무용의 아버지 머스 커닝엄 등도 니체적 실험 정신의 표현자로 볼 수 있다. 커닝엄은 무용에서 우연성을 강조함으로써 춤의 주제, 주인공, 사건을 떠나 ‘춤의 본질’ 자체에 눈을 돌리게 했다. 몸의 긍정이나 자유정신, 자유로운 움직임이나 우연의 강조 등 현대 무용의 탄생 과정이나 그 전개 과정 역시 니체와 직·간접적인 영향 아래서 진행되었던 것이다. 한국 현대 무용의 문을 연 최승희 역시 일본의 이시이 바쿠에게서 무용을 배웠는데, 그 역시 니체주의자 마리 뷔그만의 표현주의의 우산 속에 있었다.
  • 문학
문학에 끼친 니체의 영향은 너무 지대한 것이어서 소수의 작가만이 그의 영향권 밖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독일 문학에서는 자신의 소설 <파우스트 박사>를 니체적 소설이라고 부른 토마스 만이나 니체의 미학적 개인주의의 영향을 받은 하인리히 만(Heinrich Mann), <특성 없는 남자>의 저자인 로베르트 무질 등이 있으며, 토마스 만과 동시대에 활동한 헤르만 헤세도 니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영미 문학에서 조지 버나드 쇼,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D. H. 로렌스, 제임스 조이스 등이, 프랑스 문학에서는 폴 발레리, 앙드레 지드, 앙드레 말로와 같은 작가가 있고, 이탈리아와 그리스 문학에서는 가브리엘레 단눈치오(G. d'Annunzio)나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F.T. Marinetti), 니코스 카잔차키스 등이, 러시아 문학에서는 막심 고리키 상징주의 작가 안드레이 벨리(А. Белый, A. Bely) 등이 있었다.
  • 심리학
니체는 현대의 심층 심리학이나 다양한 심리치료이론이 탄생하고 형성되는 데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나 카를 융 분석심리학, 알프레드 아들러 개인심리학, 오토 랑크(O. Rank)의 의지심리학 등 인간 영혼의 내면 세계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시도한 심층심리학의 탄생 역시 니체의 영향이 있었다. 스스로를 위대한 심리학자로 규정하며 서양 정신사 전체를 해체하고 이를 심리학적으로 재구성하는 니체의 작업은 인간 영혼의 내면을 탐색하는 수많은 심리학적 자원을 남겼다. 니체사상은 현대의 심층심리학이 탄생하는 데 중요한 조산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빅토르 프랑클 의미치료, 어빈 얄롬(I. Yalom)의 실존적 심리 치료, 아헨바흐(G. Achenbach)의 철학 실천(철학 상담), 임상 철학 등이 형성되고 발육되는 데도 풍부한 정신적 자양분을 제공했다.
  • 철학
또한 철학 영역에서도 실존주의, 해석학, 비판이론,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페미니즘 등 현대사상의 거의 전 영역에 걸쳐 니체의 정신적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하이데거 야스퍼스, 뢰비트, 핑크와 같은 실존철학자는 니체에게서 인간의 실존과 삶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이론적 단서를 발견했고, 호르크하이머 테오도어 아도르노와 같은 비판이론가들이나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등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가들, 더 나아가 사라 코프만, 브롱델, 이리가레, 엘렌 식수 등 페미니즘 사상가들은 서양 근대의 병든 문명을 비판하거나 새로운 탈근대적 사유문 법을 찾았다. 또한 자유민주주의 이후의 인간의 모습을 진단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중심에도 니체의 마지막 인간과 극복인 사상이 놓여있으며, 페터 슬로터다이크(P. Sloterdijk)의 현대사회의 문화투쟁론 및 자기 긍정의 언어학으로서의 복음론에도 니체는 여전히 진행형의 이념 논쟁을 제공해 주고 있다.
  • 한국
니체는 서양 지성사뿐만 아니라 20세기 초 한국에도 깊이 침윤되기 시작했다. 니체와 한국의 중요한 만남 가운데 하나가 독일 바이마르에서 일어났는데, 예나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던 안호상이 1928년에 철학자 오이켄의 미망인과 함께 니체문서보관소(Nietzsche-Archiv)를 방문해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스(Elisabeth Förster Nietzsche)를 만났던 것이다. 안호상은 엘리자베스의 안내로 니체의 유고를 보았고, 이때 니체의 위대성을 느끼며 니체를 한국에 소개하기로 약속했다. 귀국 후 1935년에 그는 < 조선중앙일보>에 7차례 연재형식으로 <니-최 부흥의 현대적 의의>라는 글을 발표함으로써 한국에 니체를 소개하겠다는 니체 여동생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는 후일 대한민국의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내며 한국 교육의 초석을 놓았으며 한국에 니체를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니체가 처음 소개된 것은 그보다 훨씬 이른 1909년 박은식이 주필로 있는 <서북학회월보>에서였다. 여기에 실린 작자미상의 ‘윤리총화(倫理叢話)’라는 글에서 ‘니체주의’는 ‘톨스토이주의’와 비교되었는데, 전자는 자애(自愛)를 강조하는 개인주의를, 후자는 타애(他愛)를 강조하는 이타적 사회주의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1893년 이후 일본의 니체 담론과 1902년 이후 중국의 량치차오(梁啓超)와 왕궈웨이(王國維)의 니체 논의는 모두 사회진화론적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는데, 이러한 동아시아의 지성사적 논의가 개화, 자강, 애국 계몽 운동을 하던 지식인들에 의해 대한 제국에서도 시작된 것이다. 그 후 니체가 다시 다루어진 것은 1920년 천도교의 월간지 <개벽>의 창간호에서였다. 니체는 1920년대에 김기전, 박달성[131], 이돈화, 김억, 이대위 등 지성인에 의해 사회진화론, 개인과 사회, 개인(자아)해방과 사회 평화 등 사회철학적 물음 속에서 소개되면서 개화, 근대화, 항일 운동, 신문화 운동과 연관되어 한국의 정신세계에 들어온 것이다. 초기 지식인들이 받아들인 니체는 민족주의적 의상을 입은 한국적 니체였고, 식민지 시대의 시대적 고민을 넘어서려는 강력한 힘의 철학, 의지의 철학을 표명하는 사회철학자로서 니체였다. 이후 시대를 거듭하며 전원배, 박종홍, 하기락 등에 의해 니체가 체계적으로 소개되고 철학적으로 논의되었다.

1930년대에는 니체사상을 토대로 김오성(본명 김형준)이 문학이란 새로운 능동적 실천적 창조적 인간 유형을 창조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보며 ‘네오휴머니즘’의 문예 비평 사상을 주창했다. 이 당시 문학의 영역에서 니체 수용의 또 하나의 결실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시인 그룹 ‘생명파’의 탄생이었다. 서정주 유치환 오장환 윤곤강 등 생명파 시인들은 생명·의지·초극·휴머니즘이라는 공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니체 철학의 한국적 시적 변주였던 것이다. 김오성의 네오휴머니즘은 이후 김동리의 ‘제3휴머니즘’으로 이어지게 된다. 문학의 본질은 휴머니즘의 발굴에 있다는 김동리의 순수문학론에는 근대성 비판, 자기극복, 인간성의 발굴, 아름다운 삶의 조형 등 니체 사상이 깃들어 있는데, 이는 195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 문학계의 이념적 지형도의 한 축을 차지하게 된다. 1980년대 이후 90년대를 지나며 정동호, 이진우와 원광대 김정현 교수를 비롯해 독일에서 니체를 연구한 연구자들이 배출되고, 여러 연구자의 노력으로 세계 표준판 <니체비평전집>이 출간되었다. 이러한 연구 흐름 가운데 다양한 니체 사상의 주제가 다루어지고 새로운 해석이 나오게 되었으며, 여러 학문 영역을 가로지르며 현재까지 니체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6. 오해와 논란

6.1. 나치의 파시즘을 옹호했다?

나는 이상주의를 믿는 저 최근의 투기꾼들인 반유대주의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은 오늘날 저 그리스도적ㆍ아리아적ㆍ속물적인 태도로 자신들의 눈을 희번덕이면서, 가장 값싼 수단인 도덕적 태도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남용하면서 민중 속에 있는 모든 멍청이들을 자극하려고 한다. 오늘날 독일에서 모든 종류의 정신적 사기가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은 독일 정신이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명백하게 황폐하게 되었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황폐화의 원인은 신문과 정치와 맥주와 바그너의 음악만을 너무 지나치게 섭취한 데 있으며, 덧붙여서 이러한 섭생법의 전제가 되는 것, 즉 첫째는 민족적인 강박과 허영, "독일이여! 독일이여! 만방에 빛나는 독일이여!"라는 저 강력하면서도 편협한 원리이고, 둘째로는 '현대적 이념'이라는 진전마비(파킨슨 병)이다.[132]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
니체가 나치의 파시즘과 반유대주의를 옹호했다는 오해가 있지만 사실과는 다르다. 정작 니체는 반유대주의자들을 확 쏴버리고 싶다고 할 정도로 싫어했는데 생전에도 자신과 엮으려는 부류가 있어서 특히 더 싫어했다. 니체와 나치를 연관시키는 이러한 오해는 바로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스[133]에게서 나왔다. 니체의 여동생인 엘리자베스는 '니체 문서 보관소'를 만들어 니체추종자들을 모았는데, 여기에 모인 니체추종자들 중 일부가 니체의 사상을 마음대로 왜곡하여 전파시켰고, 이들의 '선택적 읽기'를 통해 니체의 사상은 파시즘적인 것으로 잘못 알려졌던 것이었다. 이를 본 나치가 자신의 나치즘을 정당화하기 위해 니체의 사상을 더욱 적극적으로 왜곡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오해는 더 커지게 되었다.

사실, 나치의 국가사회주의 체제에 제일 반대되는 사상을 가진 사람 중 한명이 니체다. 니체의 대표적인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새로운 우상에 대하여」 편에서도, "모든 사람이 서서히 죽어가면서 '산다는 건 원래 이런 거야'라고 말하는 곳. 그곳을 나는 국가라고 부른다" 라고 말했듯이, 니체가 전체주의와 국가주의 및 민족주의를 혐오했다는 것은, 기타 저술 및 편지 등에서 거듭 확인되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니체는 공동체를 혐오했고 공동체의 도덕 또한 혐오했다. 공동체가 창조적인 개인을 말살시키기 때문이다. 니체에 따르면, "모든 공동체는 항상 사람을 천박하게 만든다." [134]

물론 니체는 자신의 저서에서 유대인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상적 맥락에서 유대인들을 비판한 것이지, 히틀러처럼 인종적인 이유로 유대인을 공격한 것은 아니었다. 니체는 오히려 민족주의적 면모를 보인다는 이유로 독일인들을 더 강하게 비판한다. 예를 들어 니체는 유대인의 노예 도덕이 기독교의 근본이라고 비판했지만, 그 반면에 유대인을 오랜 고난의 세월을 통해 단련된 민족이며 질적으로 가장 뛰어난 민족이라 평한다. 또한 니체는 반유대주의자들이 유대인들을 공격하는 논거가 단지 유대인들의 돈에 대한 시기와 질투, 원한일 뿐이라고 비판하는데, 이 경우 유대인을 시기하는 독일인들이 노예도덕을 가진 게 된다. 아예 후기 저서에서는 반유대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공격하는데, 그가 바그너와 갈라선 이유 중에는 바그너의 완강한 반유대주의적 성향도 포함되어 있었다.[135]

더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니체가 민주주의 자유주의를 비판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니체의 사상이 파시즘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많이 받아왔다. 하지만 동시에 니체는 민족주의, 국가주의, 공산주의 등을 전부 비판하기 때문에, 니체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비판한다고 해서 파시즘을 옹호할 것이라는 주장은 니체를 너무나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니체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이유는 그 이념이 모든 사람들을 동일하고 평범하게 만든다는 데에 있는데, 나치의 파시즘 역시 사람들을 동일한 국가의 목적과 명령에 종사하게끔 만드므로, 니체의 사상을 파시즘과 연결시키는 것은 학술적으로도 옳지 못하다. 이는 니체의 사상이 오해하기 쉽기 때문이기도 한데, 니체는 엘리트주의와 계급주의를 옹호하면서도 그 권위주의적 제도 자체가 적극적인 저항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즉, 니체의 주장에 따르면 카이사르 같은 폭군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그에게 복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에게 저항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이다.[136] 그렇다고 니체의 사상이 온전한 엘리트주의를 지향하는 것도 아닌게, 그의 사상은 엘리트주의와 평등주의의 절충을 택하고 있어서 복잡하다.[137] 그러므로 니체의 사상은, 동질적인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 수준에서의 완전한 통합을 주장하는 파시즘과는 정반대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차라리 그의 사상이 엘리트주의나 계급주의로 비판받을지언정,[138] 파시즘이나 나치즘으로 비판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139]

6.2. 약자를 폄훼하는 비윤리적 이기주의자?

바보가 아니라면 내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비윤리적이라고 불리는 많은 행위들은 피해져야 하고 극복되어야 하며 윤리적이라고 불리는 많은 행위들은 행해져야 하고 장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자도 후자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근거들로부터 행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다르게 배워야만 한다. 아마 상당히 오랜 후가 될지도 모르지만, 마침내 더 많은 것에 도달하기 위해서, 즉 다르게 느끼기 위해서.
프리드리히 니체 『아침놀』 103절.
『선악의 저편』이나 『도덕의 계보』를 읽다가 보면, 니체가 마치 약자 그 자체를 폄훼하고 강자 그 자체를 옹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니체가 약육강식을 옹호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불편함이 종종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이는 니체 특유의 문학적 강조법[140] 때문에 오해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지 않으려면 니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심리학자'로서 책을 썼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즉, 여기서 니체가 말하는 '강자'는 단순히 힘쎈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강자', 즉 내면이 강한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반대로 약자는 자기를 불신하는 사람이다.[141]

니체에 따르면 자기 확신(자기 긍정)을 가진 사람(강자)은 도덕과 종교 등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렇다고 도덕과 종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142] 자기를 확신하고 긍정하는 사람은 도덕과 종교를 자기 자신의 삶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지, 도덕과 종교 그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143] 그래서 니체의 '자유' 개념은 다른 철학자들과는 매우 다른데, 니체에 의하면 자유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극복할 어떤 것에 시간이나 정성을 쏟아붓는 만큼 얻을 수 있는 것이다.[144] 이러한 니체의 정의에 따르면, 저항할 가치가 있으면서도 그 저항이 클수록 '더' 많은 자유와 행복을 쟁취할 수 있으므로, 역설적으로 진정한 강자는 '깊어지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삶의 고통을 찾아 낮은 데로 내려가고자 한다.[145] 남을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더욱 성숙시키기 위해서. 따라서 니체가 말하는 강자는 낮은 데로 내려가 이런 삶의 허무를 마주할 용기를 가졌으면서도, 체념이나 포기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필요에 의해서 '명랑함'을 가지려는 사람이다. 이는 좌절과 극복의 변증법적 과정이기도 하다.[146]

또한 니체는 동정을 아예 하지말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의 제1원리가 '동정'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 니체의 문제의식이다. 그래서 니체는 '동정'을 공격한다. 전통적인 스토아 철학, 가톨릭 철학에서 동정한다는 것은 나의 관점이 아닌 '타인의 관점으로 체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니체의 '관점주의'에서는 모든 가치가 '나의 관점'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따라서 니체에게 있어서 '동정'이라는 것은 나의 관점에서 해석된 '나의 이웃 사랑'이어야지, 타인의 관점으로 강요되는 이웃 사랑이 되어선 안 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니체는 인간의 '건강한 이기심'과 '병든 이기심'을 구분하고는, '건강한 이기심'에 '건강한 이타심'의 속성을 포함시킨다.[147] 니체에 의하면, 자신 자신을 사랑하는 '건강한 이기심'을 가진 사람은 그 넘치는 의욕으로 남에게까지 퍼주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이는 의식적인 자랑이나 과시가 아닌 의지 작용에 따라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병든 이기심'을 가진 사람은 자기 자신만의 이익과 평온에만 몰두하며,[148] [149] '병든 이타심'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사랑할 줄도 모르면서 종교나 도덕에서 '남을 사랑해야 된다'고 말하니까 남을 사랑하고자 한다. 니체의 동정에 대한 공격은 바로 이런 병든 이기심과 병든 이타심을 지적하는 데서 시작된다. 다시 말해, 니체의 이웃 사랑에 대한 비판은 이웃 사랑이 아예 없어져야 한다는 의도가 아니라,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남을 사랑할 줄도 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대들의 이웃을 항상 자신처럼 사랑하라. 그러나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라!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50]
그러므로 니체가 도덕에서 극복하려는 것은 도덕 그 자체가 아니라 도덕에 대한 그릇된 편견임을 알 수 있다. 기존 유럽의 종교와 철학은 도덕의 기원을 인간의 경험적인 심리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이데아의 세계나 신의 계시, 또는 양심에서 찾았다. 이에 반해 니체는 모든 도덕규범들은 사실 인간의 육체적ㆍ정신적 삶을 건강하면서도 강인하게 구현해나갈 수 있는 지침에 불과하다고 본다. 즉 니체는 도덕규범이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무조건 타당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건강한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변형할 수 있고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니체가 이른바 초월적인 도덕규범의 존재를 부정한 것은 악이 횡행하는 무법천지의 세계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초월적인 도덕규범의 잔인한 지배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인간의 잠재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정신적 토대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151] [152]

즉 니체는 스스로를 "비도덕주의자"라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로 기존 도덕에 대해 격렬한 비판을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은 기존 도덕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느끼기 위해서" 비판한 것이지, 기존 도덕을 아예 없애기 위해서 비판한 것은 아니었다.[153] 오히려 '기존 도덕'과 니체가 주장하는 '건강한 도덕'은 상호보완적이다. 니체가 말했듯이 "길러냄의 도덕[154]과 길들임의 도덕[155]은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서로 완벽하게 협동할 수 있다."[156]

6.3. 니체의 작업도 원한 감정이 아닌가?

니체는 종교와 도덕을 약자의 원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강자에게 억압 당한 약자들이 '강한 힘'을 나쁜 것으로 몰아감으로서 생기게 된 규칙이 종교와 도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강한 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하더라도 종교와 도덕은 그것을 불안하게 보며 그런 강자의 자신감에 찬 행동 자체를 비판하고 제한하려고 든다. 하지만 종교와 도덕이 강자의 의욕과 욕망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렇게 제한 당하고 있는 강자는 사실 약자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니체 자신도 약자의 입장에서 원한 감정에 사로잡혀 종교와 도덕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한 니체의 생각은 이렇다. 약자의 원한 감정에서 비롯된 비판은 자신의 의욕을 끌어올리기 보다는 강자의 의욕을 끌어내리기를 원하기 때문에 약자 자신의 삶에는 도움이 안 된다. 반면에 강자의 호전적 모험심에서 비롯된 비판은 약자의 의욕과 상관없이 강자 자신의 의욕을 끌어올리기를 원하기 때문에 강자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된다. 즉, 같은 비판이라고 하더라도 약자 자신의 무력함에서 비롯된 비판은 상대도 무력해지기를 바라는 의미의 비판이라서 상대가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좋아하지만, 강자 자신의 호전성에서 비롯된 비판은 자신의 넘치는 의욕에서 나오는 비판이기 때문에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좋아하고 그 자신의 의욕도 같이 커지게 되는 의미의 비판인 것이다.
공격하는 자의 강함이 어느 정도인가는 그가 필요로 하는 적이 어떤 사람인지를 척도로 하여 측정할 수 있다. 그가 얼마나 성장하였는가는 그가 보다 강력한 적수 또는 보다 강력한 문제를 찾아 나서는가 아닌가에서 드러난다. 왜냐하면 호전적인 철학자는 문제들에게조차 결투를 신청하기 때문이다. 그의 과제는 단순히 일반적인 저항을 제압하는 데 있지 않고, 자신의 모든 힘과 유연함 그리고 싸움 기술을 쏟아부을 만한 저항을, 즉 자신과 대등한 적수를 제압하는 데 있다. 적과 대등하다는 것 ㅡ 이것이 정의로운 결투를 위한 첫 번째 전제다. 상대가 내가 얕봐도 되는 상대일 경우, 전쟁은 할 수 없다. 상대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 같은 경우, 즉 상대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경우에는 전쟁을 할 것까지도 없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157]
다시 말해,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적에게 증오심과 원한을 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고양하고 강화할 기회를 준 것으로 여기면서 감사해 한다. 자신과 자신의 적은 서로 '이겨야 할 상대'이지 '약해져야 할 무엇'이 아니다. 이에 반해 약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자신을 힘들게 하는 상대에게 증오심과 원한을 품고 자신의 적을 '약해져야 할 무엇'으로 상정한다. 이들은 종교와 도덕을 통해 "인간은 이러저러하게 존재해야 한다!"고 강요하므로, 이들의 의지는 결국 약한 상태에서 더 '약해지게' 된다. 매우 약해진 이들은 삶의 아주 작은 고통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이런 약해진 의지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허무주의자의 삶과 다를 바 없다. 삶은, 아니 생명은 '강한 의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종교나 도덕 등 타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자들은 근본적으로 스스로의 의지를 따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강한 의지'를 길러낼 수 없다는 것이 니체의 생각이다.[158] 이러한 생각에 따르면, 니체는 자신의 적, 더 정확하게는 자신과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가는 그 적의 신념과 논리가, 더 강해지기를 바라므로 자신의 비판이 원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이렇게 말하는 자신도 비판하라고 종용한다. 니체 자신도 자신의 적을 통해 성장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렇게 도발한다. "이러한 주장 역시 하나의 해석에 불과할 뿐이라고 할 경우, 그대들은 그것에 대한 질시로 가득 차서 그것을 반박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더 좋다."[159]
나의 제자들이여, 나는 이제 홀로 가련다! 그대들도 이제 홀로 떠나라!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다. 나를 떠나서 차라투스트라에 저항하라! 아니 차라리 그를 부끄러워하라! 그가 그대를 속였을 수도 있으니... 언제까지나 제자인 채로 머무는 것은, 스승에 대한 제대로 된 보답이 아니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나의 월계관을 빼앗으려 하지 않는가?... 이제 나는 그대들에게 명한다. 나를 버리고 그대들 자신을 찾아라. 그대들이 모두 나를 부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대들에게 돌아오리라.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60]

6.4. 무조건 예스(yes)?

니체가 '운명(필연)'을 강조하므로 니체의 사랑 개념이 어떤 것에 대해서든 무조건 '예스(yes)'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니체가 말하는 사랑은 무조건 '예스'를 말하고 이를 견뎌내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니체의 필연 개념이 어떨 때 적용되는지 몰라서 생기는 오해다. 니체에 의하면, 세계 자체는 '우연'이지만 그 우연을 '자기 자신'의 해석을 통해 자기 자신만의 가치로 만들게 되면서, 그 가치가 그 자신에게만큼은 '필연으로 여겨질 정도의 확신'이 된다. 즉, 어떤 우연에 마주쳤을 때, 자신의 취향에 따라 '예'와 '아니오'를 말할 수 있는 자유, ㅡ 즉,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이 있어야, 그 이후의 결과들을 필연적인 것으로 여기며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자신의 선택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니체가 말했듯이 일단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극복해내는 과정, 그래서 자신만의 관점으로 녹여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식의 무조건적 긍정은 절반의 진실이다. '자기 자신이 만든 가치라서'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것이지, '자기 자신이 만든 가치가 아닌데도' 피할 수 없으니까 즐겨야 된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161] 그래서 니체는, 나 자신의 선택 이후에야, 그 선택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것들을 비로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런 이후에야 니체는 그것을 자신의 긍지와 확신를 파괴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자극제로 변환시킨다. 니체가 말하는 '위대한 경멸'도 바로 그러한 것을 의미한다.[162]

이러한 점은 니체의 글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렇게 마냥 긍정만하는 예스맨을 '나귀'라고 비판한다.[163]
"저들 모두가 다시 경건해졌구나. 기도를 하고 있다니, 미쳤구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고는 그 터무니없음에 놀라버렸다. 그리고 실제로! 그 모든 좀 더 높은 인간들, 두 명의 왕, 실직한 교황, 고약한 마술사, 자발적 거지, 방랑자이자 그림자, 늙은 예언자, 정신의 양심을 갖춘 자 그리고 가장 추악한 자가 어린애나 독실한 노파들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 나귀를 경배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 가장 추악한 자가, 그의 내면에서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나오려고 하는 것처럼 꾸르륵대며 헐떡이기 시작했다. 그가 그것을 말로 드러내었을 때, 보라, 그것은 저들이 향을 피워 올리며 경배하는 그 나귀를 찬양하는, 경건하고 기이한 기도(Litanei; 연도)였다. 이 기도는 이렇게 울렸다. (중략)

그는 우리의 짐을 짊어진다. 종의 모습을 하고는, 진심으로 인내하며, '아니'라고 말하는 법이 없다. 그리고 자신의 신을 사랑하는 자가 신에게 채찍질을 한다.[164]
ㅡ 그러자 나귀가 '이 - 아'[165]하고 화답했다. (중략)

그가 긴 귀를 갖고서 오직 '그렇다'라고만 할 뿐, 결코 '아니다'를 말하지 않는 것, 이 얼마나 감추어진 지혜인가![166] 그는 자신의 형상에 따라, 말하자면 가능한 한 멍청하게 세상을 창조해내지 않았던가?
ㅡ 그러자 나귀가 '이 - 아'하고 화답했다. (중략)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67]
또한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행복의 공식: 하나의 '예', 하나의 '아니오', 하나의 직선, 하나의 목표." (Formel meines Glücks: ein Ja, ein Nein, eine gerade Linie, ein Ziel...)[168] 즉, 내 취향에 따라 "예" 또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은 나 자신으로 살 수 있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런 삶의 목적[169]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의 결단에서 비롯된 좌절과 슬픔, 경멸마저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니체의 생각이지, 그냥 무작정 예스만 말한다고 해서 삶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봐서는 안 되는 것이다.[170] 물론, 그런 '취향이나 목표를 이룬 나'로 고정되기를 고집하는 삶도 니체가 바라는 것이 아니다. 작든 크든 끊임없이 자신의 의지가 원하는 창조적인 가치로 자신의 삶을 채워나가는 것, 그래서 자신이 창조한 것마저도 끊임없이 넘어서려는, 삶에 대한 담담하고도 명랑한 자세를 바라는 것이다.

6.5. 부자와 경쟁 사회 옹호?

노예의 르상티망(원망)이 귀족의 의지를 부당하게 깎아내리고 있다는 니체의 주장은, 부자들을 시기 질투하는 가난한 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그래서 니체는 부자들을 옹호하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가 많은데, 이는 니체가 추구하는 바를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이다. 니체는 생전에 자신의 '귀족' 개념이 핏줄이나 돈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 바 있다.[171] 니체는 돈 많은 사람을 귀족이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고귀함'을 가진 사람을 귀족이라고 부른 것이다.[172] 그리고 니체에 따르면 정신적으로 고귀한 사람은 남이 하니까 따라하는 사람을 경멸하면서 매순간 자신의 삶을 자신의 창조적 가치로 채우려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한 사람은 '자신의 창조적 가치'를 추구하지, 남들도 다들 추구하는 '돈'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앞서 말했던 '부자들을 시기 질투하는 가난한 자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니체에게 있어서 가난한 자나 부자나 모두 똑같이 비천한 사람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니체가 '경쟁'을 옹호한 것은 맞지만, 니체의 경쟁 개념은 결코 '물질적 경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 경쟁 사회가 그러하듯, 돈을 남들보다 더 벌어야 된다든지 성적을 남들보다 더 올려야 된다든지 명예를 남들보다 더 가져야 된다든지 등을 말하는 게 아닌 것이다.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명예와 여자와 돈 때문에 애쓰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173] 그렇다면 '니체가 말하는 경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물질적 부, 성적, 명예를 얻기 위한 경쟁이 아닌, 자신만의 '가치'를 갈고 닦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가치를 두고 펼치는 경쟁을 말한다. 즉, '가치의 경쟁'이다. 이러한 니체적 경쟁은 승자만 살아남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승자독식의 세계가 아니라, 승자와 패자 모두 자신을 반성적으로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 이 반성을 통해 모두가 성장할 수 있게끔 한다.[174]

니체가 물질적 경쟁 사회에 연연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비판했다는 사실은 그의 글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니체는 『아침놀』 204절 「다나에와 황금의 신」[175] 편에서, 주식시장과 그곳에서 돈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한다. "옛사람들이 '신을 위해서' 행했던 것을 요즘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 행한다."(und was man ehedem "um Gottes willen" that, thut man jetzt um des Geldes willen.)[176] 자본주의는 니체에게 있어서 돈이 신이 되어버린 사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또다른 '신'을 받드는 사람일 뿐이다.[177]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새로운 우상에 대하여」에서도 국가에 관한 얘기를 꺼내면서, 그 속에서 사람들은 부와 권력을 추구하지만 그로 인해 정신적으로는 더 빈곤해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들 쓸모없는 자들을 보라! 그들은 부를 획득하지만 그 때문에 더욱 가난해진다. 그들은 권력을 원하고 무엇보다도 권력의 지렛대인 많은 돈을 원한다. 이 무능력한 자들은!", "보라, 이 재빠른 원숭이들이 기어오르는 꼴을! 그들은 서로 밀치며 기어오르고, 따라서 서로를 진흙탕과 심연 속으로 끌어내린다. 그들 모두는 왕좌에 오르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광기다. 마치 행복이 왕좌에 앉아 있기라도 하다는 듯! 때로는 진흙탕이 왕좌에 앉아 있고, 때로는 왕좌가 진흙탕에 앉아 있다."

6.6. 예수 비판?

니체는 종교를 비판했지 예수 그리스도를 비판한 것은 아니다. 니체는 자신의 책 『안티크리스트』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존경심을 표하되, 그의 이름으로 성장한 기독교라는 '종교'는 혹독하게 비판한다. 기독교는 현실의 삶보다 내세의 삶(천국)을 더 강조하기에, '현실에서의 삶'은 점점더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교회와 사제는 대중들의 원망(르상티망)이라는 심리를 이용해, 더 높은 힘을 추구하는 자의 욕망에 대한 의지를 꺾어버림으로써 전 인류를 노예근성에 빠뜨렸다는 것이 니체의 지적이다.

즉 니체는 자신이 비난하고자 하는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교회와 사제들에 한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오히려 인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존경심을 표했다. 니체는 도스토옙스키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층민과 소외계층, 죄인을 일깨워 지배 질서에 저항하게 한 성스러운 아나키스트였다고 말한다. '기쁜 소식을 가져온 자'인 그리스도는 그가 살아왔던 방식과 그가 가르친 방식대로 죽음을 맞았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가 인류에게 남긴 것은 그가 실천한 모습이다. 재판관과 간수 앞에서, 온갖 조롱과 비난 앞에서,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 앞에서 그가 보여준 태도가 이를 증명했다. 그는 악에 맞서지 않았고, 부당한 상황에도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사랑했다. 르상티망(원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태도로서 '네 운명을 사랑하라'라는 영원한 긍정을 몸소 가르쳤다.[178]

하지만 지금의 기독교를 탄생시킨 사도 바울로가 그리스도의 모범적인 삶을 가장 혐오스럽고 야만적인 형태로 둔갑시켰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다.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대신해 희생했다는 전설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아무 죄 없는 사람(예수)의 피로 죗값을 대신하다니 이 얼마나 끔직한 이교도의 모습이냐고 니체는 반문한다. 사도 바울로는 세상을 향해, 인간의 육체를 향해 증오심을 키웠고, 최대한 모든 기회를 이용해 르상티망을 퍼뜨려서 기독교라는 거대한 힘을 탄생시켰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다.[179]
'그리스도교'란 말 자체는 이미 오해되어 온 개념이다. 근본적으로는 오직 단 한 명의 그리스도교인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는 십자가에서 죽었다. '복음'도 십자가에서 죽었다. 이 순간 이래로 '복음'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가 살았던 삶과는 이미 정반대의 것이었다. 하나의 신앙을 갖는다는 것, 즉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으리라는 신앙을 그리스도교인의 징표로 보는 것은 터무니없이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적인 실천,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살았던 것과 같은 삶만이 그리스도교적인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안티크리스트』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니체는 예수를 '숭고한 것과 병적인 것과 유치한 것이 기이하게 결합하여 있는 가장 흥미 있는 데카당'이라고 보고 있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위버멘쉬의 유형으로는 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니체의 생각에 따르면, 예수는 현실에 대한 모든 저항과 투쟁을 포기하고 내면적인 평화로 도피해 들어가려고 하는 정신이기 때문이다.[180]

6.7. 여성혐오주의자였다?

니체가 여성혐오주의자였다는 의혹은 그의 글 전반에서 드러나는 매우 공격적인 어조로 인해 처음부터 널리 퍼져있었고, 이에 대한 논쟁은 항상 있어왔다. 의견은 크게 긍정, 부정, 수정으로 나뉜다.

여성혐오주의자라고 해석하는 쪽에서는 그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 여성의 권리에 대한 반감을 여과없이 드러낸 내용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여자들에게 정치와 학문의 개별적인 부분들이 맡겨진다면, 작지 않은 위험이 생긴다. 왜냐하면 학문이 뭔지 정말 안다고 하는 여자보다 무엇이 더 낯설겠는가?",[181] "여성 해방에 대하여 - 여자들이 사랑하는 데, 그리고 찬성하거나 반대하거나 똑같이 느끼는 데 그렇게 익숙하다면, 그들은 도대체 고정할 수 있을까? 따라서 그들은 또한 어떤 사태에는 드물게 홀딱 빠지지 않지만, 사람에게는 자주 홀딱 빠진다. 그들이 사태에 홀딱 빠질 경우, 그들은 곧바로 이것들의 당파적 추종자가 되고 그로서 이것들의 순수하고 무구한 작용을 망쳐버린다.",[182] "그래서 여자는 복종해야 하며, 자신의 표면에 대응하는 깊이를 찾아내야 한다. 여자의 기질은 피상적이며, 얕은 물 위에서 쉽게 변하고 격렬하게 흔들리는 피막(皮膜)과 같다. 그러나 남자의 기질은 깊다. 그것은 지하의 동굴 속을 소리 내어 흐르는 격류이다. 여자는 그의 힘을 예감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한다.―" [183]

반면 여성혐오주의자가 아니라고 해석하는 쪽에서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인용한다. "그러므로 아마도 삶의 가장 강력한 마법은 이런 것일 것이다. 아름다운 가능성으로 빛나는 금실로 짠 너울이 삶 위에 놓여 있다. 미래를 예고하면서, 저항하고, 부끄러워하며, 조롱하는가 하면, 동정하고, 유혹하면서. 그렇다. 삶은 한 여자이다.",[184] "여성은 철학적 차원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제까지 철학자들에 의해 보편적 진리라고 주장된 것은 서투른 독단이고, 실제 진리의 모습은 여성의 태도와 행위에 가깝다는 관찰이 그것이다." [185] 여기에서 니체는 여성성을 진리에 비유하기도 하는 등 여성성의 재발견을 이끌어낸다. 다시 말해 여성성은 없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성은 진리에 가깝기 때문에 심지어 남성도 참조해야 할 좋은 것이다. 따라서 여성성을 은연중에 극복할 것으로 치부하고 성별 간의 차이를 없애려고 한 당대의 여성 운동에 대하여 니체는 대체로 비판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관점이다. 또 해체론적 시각에서는, 니체가 현대적 페미니즘과는 다르게 사회적ㆍ정치적 관점에 국한되지 않는 철학적 분석과 주장을 하였다고 말한다.[186]

수정주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바라본다.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려는 니체의 관점주의적 의도를 생각해본다면, 니체는 '여성혐오적인 부정적 시각'과 '여성성이 진리라는 긍정적 시각' 모두를 주장했다는 것이 제일 타당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187] 설혹 여러 관점에서 살피는 것이 서로 모순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로써 니체는 사건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예를 들면, 니체는 여성에게 성적인 것들은 유해하고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세뇌시켜 순결을 강요하는 문화를 비판한다. 결국 순결을 지키는 여자는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남자인 남편에 의해, 유해하고 수치스러운 일(섹스)을 당하게 될 것이지 않는가? 니체는 거기서 "여성은 평등하지 않은 심리적 매듭을 묶게 된다"고 지적한다.[188]

니체가 살던 시기가 19세기였던 것과 당대의 사회적 한계를 감안했을 때 이런 내용은 오히려 진보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독일의 독특한 보수적 성향과 1860년대 중반 이후의 독일 자유주의의 쇠퇴, 독일 중간계급의 정치적 취약성의 결과가 반영된 19세기 독일 여성 운동의 성격은, 교육의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어머니로서의 소양 교육 정도에 만족하고, 기혼 여성의 재산권이나 자녀에 대한 권리를 말하면서도 그 적극적 모색에는 주저하며, 여성 참정권에 대한 강력한 주장도 오랫동안 표출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하에서 “여성의 영향력은 여성의 권리와 요구가 증대한 것에 비해 감소되어 왔다”는 말에서처럼, 초기 페미니즘의 동일화 운동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

현대 제3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은 니체가 제기했던 이러한 인식을 수용하고, 여성성이 파괴되지 않는 양성 평등을 지지한다. 여성성이 지니는 고유의 장점을 결핍으로 파악하고, 인위적으로 남성성과의 동일화를 꾀하여 여성성을 없애려 한 당시의 페미니즘의 경향은 니체가 볼 때 그릇된 운동이 될 수밖에 없다. 니체가 당대 페미니즘의 선봉장이었던 말비다 폰 마이젠부크와 친교를 나누고, 여성에게 동등한 기회를 요구하며 캠페인 활동도 벌였던 신여성이자 페미니스트였던 메타 폰 잘리스 마흐슐린스와도 교류를 했던 것도, 니체가 여성 혐오주의자가 아니라는 근거로 거론된다.[189] 또한 니체는 다수가 반대하는 가운데에도 바젤대학 박사학위 과정의 여성 입학을 허용하는 결정에 찬성표를 던지기도 했다.[190] #

7. 명언

나는 언젠가 사람들이 나를 신성시할까 봐 두렵기 그지없다. 이제 사람들은 내가 왜 이 책을 먼저 출간하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헛소리를 하는 것을 막고 싶은 것이다. ⋯ 나는 성자가 되고 싶지 않다. 차라리 어릿광대가 되고 싶다. [191]
춤추는 별을 낳기 위해선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 [192]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193]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네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194] [195]
음악이 없다면 인생은 잘못된 것이다.[196]
모든 글 중에서 나는 누군가가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197]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198]
위험하게 살아라! 베수비오 화산의 비탈에 너의 도시를 세워라! [199]
삶의 여로를 걷는 우리들은 여행자다. 가장 비참한 여행자는 누군가를 따라가는 인간이며, 가장 위대한 여행자는 습득한 모든 지혜를 남김없이 발휘하여 스스로 목적지를 선택하는 인간이다. [200]
하루의 3분의 2를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다. [201]
젊은이를 망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 대신에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존경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202]
깊이있는 모든 사상가들은 오해받는 것보다 이해받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203]
그대의 몸은 그대의 철학보다 더 많은 지혜를 품고 있다. [204]
더러운 것에 대한 혐오가 지나치면, 스스로를 정화시키고자 하거나 정당화하는 데에 장애가 될 수 있다. [205]
진리는 추악하다. 진리에 의해서 멸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예술을 가지는 것이다. [206]
옛사람들이 '신을 위해서' 행했던 것을 요즘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 행한다. [207]
나는 욕구가 소박한 예술가를 사랑한다.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단 두 가지, 자신이 먹을 빵과 자신의 예술이다. [208]
우리는 정말 우리 삶의 시인이 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사소하고 가장 평범한 일에서부터. [209]
결혼 생활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의 결핍이 아니라 우정의 결핍이다. [210]
아이들이냐 아니면 책이냐. [211]
인간이 신의 실수인가, 신이 인간의 실수인가? [212]
친구를 최고의 적으로 삼아야 한다. 친구에게 반대할 때, 너는 마음속으로 그를 더없이 가깝게 여겨야 한다. [213]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어떤 방식으로든 견뎌낼 수 있다. [214]
오늘 가장 잘 웃는 자가 최후에도 웃을 것이다. [215]
기억력이 나쁜 것의 장점은 동일한 좋은 것을 여러 번이나 마치 처음처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216]
인간의 성숙 : 어렸을 때 놀이에서 가졌던 진지함을 다시 발견하는 것. [217]
네 운명을 사랑하라 (Amor fati[218]) : 이것이 지금부터 나의 사랑이 될 것이다! 나는 추한 것과 전쟁을 벌이지 않으련다. 나는 비난하지 않으련다. 나를 비난하는 자도 비난하지 않으련다. 눈길을 돌리는 것이 나의 유일한 부정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언젠가 긍정하는 자가 될 것이다! [219]
이것이 삶이었나?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220]
모두 그리고 각자에게 하는 질문: "너는 이 삶을 다시 한 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하길 원하는가?" 는 마치 최대의 중량으로 그대의 행동 위에 얹힐 것이다! [221]

==# 읽을 만한 글귀 #==
깊이 있는 사상가라면 누구나 오해되기보다는 이해되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오해받는 것으로 인해 그가 괴로워할 경우 이는 아마도 그의 허영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해받는 것으로 인해 그가 괴로워할 경우 이는 그의 동정심 때문이다. 그의 동정심은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아아, 그대들은 왜 나처럼 어렵게 살려고 하는가?"[222]
『선악의 저편』 中
나의 제자들이여, 나는 이제 홀로 가련다! 그대들도 이제 홀로 떠나라!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다. 나를 떠나서 차라투스트라에 저항하라! 아니 차라리 그를 부끄러워하라! 그가 그대를 속였을 수도 있으니... 언제나 제자인 채로 머문다면, 그대들은 스승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나의 월계관을 빼앗으려 하지 않는가?... 이제 나는 그대들에게 명한다. 나를 버리고 그대들 자신을 찾아라. 그대들이 모두 나를 부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대들에게 돌아오리라. [22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내가 기록하고 그린 그대 사상들이여, 내가 많은 색깔과 다양한 터치와 50가지의 황색, 갈색, 녹색, 적색으로 그려낸 것은 그대들의 오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그려낸 것들로부터 어느 누구도 그대들이 아침에 어떤 모습을 했는지를 알아낼 수는 없다. 나의 고독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불꽃과 기적이여, 나의 오래고도 사랑스런 나쁜 사상들이여!
『선악의 저편』 中

그대들은 그대들의 내면에서 역사를, 큰 동요를, 지진을, 오랫동안 지속되는 큰 슬픔을, 섬광 같은 행복을 체험했는가? 그대들은 크고 작은 바보들과 함께 바보로 존재한 적이 있는가? 그대들은 선량한 인간들의 광기와 아픔을 정말 체험했는가? 그리고 최악의 인간들의 아픔과 행복을 체험했는가? 그렇다면 내게 도덕에 대해 말해도 좋다. 하지만 그런 적이 없다면 내게 도덕을 말하지 말라!
『아침놀』 中

많은 것을 보지 말고, 듣지 말며, 자기에게 접근하게 놔두지 말라는 것ㅡ 이런 자기 방어 본능에 대한 관용적 표현은 취향이다. 이것은 가능한 한 부정을 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계속 되풀이되는 부정을 필요로 하게 될 만한 곳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분리하라고 명령한다. 아주 작은 방어적 지출이라 하더라도 규칙적이 되고 습관적이 되며 엄청나면서도 전적으로 불필요한 빈곤을 유발시킨다는 합리적 이유에서다. 우리가 하는 가장 큰 지출은 지극히 자주 거듭되는 작은 지출들이 모인 것이다.

가시를 갖는다는 것도 일종의 낭비이고, 가시가 아닌 너그러움을 마음대로 가질 수 있을 때에는 가시는 심지어 이중의 사치인 것이다.
『이 사람을 보라』 中

소년이었을 때 나는 와인을 마시는 것은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젊은 남자들의 공허한 허상에서 출발하여 나중에는 나쁜 습관이 되어버리는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좀더 정신적인 본성들을 소유한 사람들 모두에게 알코올을 무조건 금하라고 충고한다.

든든한 식사가 너무 양이 적은 식사보다 소화가 더 잘된다. 위 전체가 활동을 한다는 것은 소화가 잘되기 위한 첫 번째 전제 조건이다. 누구든 자기 위의 크기를 알고 있어야만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오래 질질 끄는 식사는 하지 말아야 한다. 간식도 하지 말고, 커피도 마시지 말라 : 커피는 우울하게 만든다.

차는 아침에 마셔야만 건강에 이롭다. 약간만이되 강하게 마셔라; 차는 조금만 약해도 건강에 아주 좋지 않으며, 하루 종일 힘들게 만든다. 차를 마실 때는 누구든 자기의 한도가 있는 법이며, 그것들 사이의 경계는 종종 아주 좁고도 미묘하다. 심한 자극성 기후에서 차는 하루의 시작으로는 권할 만하지 않다 : (마시려면) 차 마시기 한 시간 전에 기름을 뺀 진한 카카오 한 잔을 먼저 마시게 해야 한다.

가능한 한 앉아 있지 말라 ; 야외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생겨나지 않은 생각은 무엇이든 믿지 말라ㅡ근육이 춤을 추듯이 움직이는 생각이 아닌 것도 믿지 말라. 모든 편견은 내장에서 나온다. ㅡ꾹 눌러앉아 있는 끈기ㅡ이것에 대해 나는 이미 한번 말했었다ㅡ신성한 정신에 위배되는 진정한 죄라고.
『이 사람을 보라』 中
이게 철학자야 헬스트레이너야

에피쿠로스는 이미 이런 종류의 선행 형식과 싸운 적이 있었다. 에피쿠로스가 무엇과 싸웠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루크레티우스를 읽어보라. 그는 이교도와 싸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 그리스도교'에 맞서 싸웠다. 말하자면 죄 개념에 의한, 벌과 불멸 개념에 의한 영혼의 타락에 맞서 싸웠다.ㅡ 그는 지하적 제의들, 잠복하고 있던 그리스도교 전체와 맞서 싸웠다ㅡ 불멸을 부정한다는 것은 당시에 이미 진정한 구원이었다.ㅡ 그리고 에피쿠로스가 이겼을 수도 있다. 로마 제국의 존경할 만한 사람은 전부 에피쿠로스주의자였기에.

그때 바오로가 등장한 것이다. 바오로, 로마의 '세상'에 대한 찬달라적 증오의 육화이자 찬달라적 증오의 천재인 바울, 유대인이며 영원한 유대인의 전형인 바울...... 그가 알아차렸던 것, 그것은 어떻게 유대교 변두리의 작고도 종파적인 그리스도교-운동을 이용하여 '세계적인 불길'을 일으킬 수 있을지, 어떻게 '십자가의 신'이라는 상징을 가지고서 하부에 있는 모든 것, 은밀히-반항하는 모든 것, 로마 제국 안에 있는 아나키적 책동의 유산 전체를 거대한 힘에 이르게 할 수 있을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바오로는 진리에 가차 없는 폭압을 가하면서 그 찬달라적 종교들의 매혹 수단이었던 표상들을 자신의 고안물인 '구세주'의 입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비단 입 안에만 넣은 것이 아니다ㅡ그는 구세주를 미트라의 사제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그 무엇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때가 그가 다마스커스로 가던 때였다. 그는 '세상'의 가치를 빼앗아버리기 위해서는 불멸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파악해 냈다. 그는 '지옥' 개념이라면 로마를 지배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ㅡ'피안'이 삶을 죽여버린다는 사실을 파악해 냈다.
『안티크리스트』 中

1. 신의 탄생

스스로를 믿고 있는 민족은 자기네의 고유한 신 또한 갖는다. 신 안에서 그 민족은 그들을 정상에 위치시키는 조건들, 즉 그들의 덕을 숭배한다. 자신에 대한 기쁨을, 자신이 힘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그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는 존재에 투사한다. 풍요로운 자는 베풀기를 원한다. 긍지에 찬 민족은 희생하기 위해 신을 필요로 한다. 그런 전제들 안에서 종교는 감사하는 형식의 하나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감사한다. 이를 위해 신을 필요로 한다.

2. 선하며 악한 신

그런 신은 이로울 수도 해로울 수도 있어야 하며, 친구일 수도 적일 수도 있어야 한다. 그는 선한 점으로나 악한 점으로 인해 반드시 경탄받는다. 신에게는 반자연적인 거세를 가해 한갓 선한 신으로 만드는 것은 여기서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악한 신을 선한 신만큼이나 필요로 한다. 그들 고유의 존재는 관용과 박애 덕분만은 아니니까. 복수와 분노와 질투와 조소와 간계와 폭력을 알지 못하는 신이 무슨 가치가 있을 것인가? 승리와 파괴의 황홀한 열정조차 알지 못할 그런 신, 누구도 그런 신은 이해하지 못할 것인데. 왜 그런 신을 가져야 한단 말인가?

3. 거세, 선한 신과 악마

한 민족이 몰락할 때, 미래에 대한 믿음, 자유에 대한 그들의 희망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고 느낄 때, 복종이 가장 이로우며, 복종한 자의 덕목이 보존 조건이라고 그들이 의식할 때, 그들의 신 또한 바뀌지 않을 수 없다. 신은이제 음헌한 위선자가 되고 겁도 많아지고 겸손해져서 '영혼의 평화'를, 더 이상-증오하지-않기를, 관용을, 친구와 적마저도 '사랑'하기를 권할 것이다. 신은 계속해서 도덕화하고, 모든 개인적인 덕의 동굴로 기어 들어가, 모든 이를 위한 신이 되고, 사인(私人)이 되며, 세계인(cosmopolitan,코스모폴리탄)이 된다. 신은 예전에는 한 민족, 한 민족의 강력한 힘, 한 민족의 영혼에서 나오는 공격적인 모든 것과 모든 힘에의 갈망을 표현했었다. 이제 신은 한갓 선한 신일 뿐이다.

가장 남성적인 덕목과 충동들을 제거당한 데카당스의 신은 이제 필연적으로 생리적으로 퇴행한 자들, 약자들의 신이 된다. 이들은 스스로를 약자라고 부르지 않고, '선한 자'라고 부른다. 우리는 더 이상 어떤 힌트도 필요없이 역사의 어느 순간에 선한 신과 악한 신이라는 이분법적 허구가 비로소 가능해졌는지를 이해하고 있다. 자기네(피정복자)의 신을 '선 그 자체'로 끌어내리는 피정복자들의 본능이 정복자들의 신의 선한 속성을 삭제해버린다. 이들은 자신의 지배자들에게 그들의 신을 악마로 만들며 복수하는 것이다. 선한 신 그리고 악마, 양자 모두 데카당스의 소산이다.

4. 선한 신의 여행

신 개념이 지친 자들을 위한 지팡이라는 상징으로, 물에 빠진 모든 자를 위한 구조대라는 상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침몰해간다면, 신 개념이 가난한 자들의 신, 죄인의 신, 병자의 신의 전형이 된되면, 그리고 구세주, 구원자라는 술어가 말하자면 신에 대한 술어로 남게 된다면.. 이런 변신은 무엇을 뜻하는가? 신적인 것의 이러한 환원은 무엇을 뜻하는가? 물론ㅡ신의 왕국은 그렇게 해서 좀더 커졌다. 예전에 신은 단지 그의 민족, 그의 선택된 민족만을 가졌을 뿐이었다. 이제 그는 자신의 민족과 같이 외국으로 나가 사방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어디서든 가만히 눌러 있지 못하게 되었다. 그가 마침내 온갖 곳에 본거지를 틀고 위대한 세계인(cosmopolitan)이 되기에 이르도록. 그가 '대다수'를 그리고 지구의 반쪽을 자기편으로 얻기에 이르도록 말이다.

5. 신의 붕괴 (철학자를 만난 신)

창백한 자들 중에서 가장 창백한 자인 형이상학자 제씨들, 이 개념의 백색증 환자들마저 그 신을 지배하게 되었다. 신이 그들이 짓거리에 최면이 걸려 한 마리 거미가, 형이상학자가 되어버릴 때까지 그들은 신의 주변에 오랫동안 그물을 쳤다. 이제 신은 세계를 다시 자기 자신에게서 짜냈으며ㅡ스피노자적으로ㅡ 이제 스스로를 점점 더 얇게 점점 더 창백하게 변모시켜, 그는 '이상'이 되었고, '순수정신'이 되었으며, '절대자'가 되었고, '물자체'가 되었다. 신의 붕괴 : 신이 '물자체'가 되었다.
『안티크리스트』 中

여전히 기쁨은 부족하다.
더 기뻐하라.
사소한 일이라도 한껏 기뻐하라.

기뻐하면 기분이 좋아질 뿐 아니라,
몸의 면역력도 강화된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참지 말고, 삼가지 말고
마음껏 기뻐하라.

웃어라, 싱글벙글 웃어라.
마음이 이끄는 대로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라.

기뻐하면 온갖 잡념을 잊을 수 있다.
타인에 대한 혐오와 증오도 옅어진다.

주위 사람들도
덩달아 즐거워할 만큼 기뻐하라.

기뻐하라.
이 인생을 기뻐하라.
즐겁게 살아가라.
『니체의 말』 中[224]

위대한 정신들은 회의주의자이다. 정신의 강력함에서, 정신의 힘과 힘의 넘침에서 나오는 자유는 회의를 통해 입증된다. 확신하는 인간은 가치와 무가치의 문제에서 근본적인 것 전부를 전혀 고려하지 못한다. 확신은 감옥이다. 확신은 충분히 넓게 보지 않고, 발 아래를 보지 않는다. 위대한 것을 원하고, 그것을 위한 수단을 원하는 정신은 필연적으로 회의주의자다. 온갖 종류의 확신으로부터의 자유는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강한 힘에 속한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그들을 묶고 고정시키는 외부의 규정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생각해보면, 그리고 강압이나 좀더 고차적인 의미에서의 노예제가 어떻게 해서 의지박약의 인간을 번성시키는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조건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확신이라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확신하는 인간에게 확신은 그를 지탱해주는 기둥이다. 많은 것을 보지 않고, 그 어느 것에도 공평하지 않고, 철저히 편파적이며, 모든 가치를 고정적이고 자기에게 필요한 시각으로 보는 것 ㅡ 이것만이 확신하는 인간 종류를 존재하게 해주는 유일한 조건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그는 진실한 인간의 반대이자 적대자이고ㅡ진리의 반대이자 적대자이다.

믿는 자는 '참'과 '거짓'이라는 문제에 대한 양심을 자기 마음대로 가질 수 없는 법이다. 이때 정직하면, 그는 즉시 몰락해버릴 것이다. 확신하는 자의 시각의 병적 제약성은 그를 광신자로 만든다ㅡ사보나롤라, 루터, 루소, 로베스피에르,생시몽처럼ㅡ강하고 자유롭게 된 정신의 반대 유형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런 병든 정신들, 이런 개념의 간질병자의 거창한 태도는 많은 대중에게 효력을 발휘한다. 광신자들은 그림처럼 아릅답게 보인다. 인간은 근거를 듣느니보다 제스처 보기를 더 좋아한다.
『안티크리스트』 中

나는 비할 바 없이 끔찍한 미증유의 인간이다

; 그렇다고 이것이 내가 비할 바 없이 좋은 일을 하는 인간이 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지는 않는다.

나는 최초의 비도덕주의자이다 : 그래서 나는 파괴자 중의 파괴자인 것이다.

선과 악의 창조자이기를 원하는 자는 먼저 파괴자여야만 하며 가치를 파괴해야만 한다.

이렇게 최고악은 최고선에 속한다 : 하지만 이것이 창조적 선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中

비도덕주의자라는 내 말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 부정을 내포한다.

첫째, 나는 이제껏 최고라고 여겨졌던 인간 유형, 즉 선한 인간, 호의적인 인간, 선행하는 인간을 부정한다.

둘째, 나는 도덕 그 자체로서 행사되고 지배적이 되었던 도덕 유형을 부정한다 - 즉 데카당스 도덕,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교 도덕을.
『이 사람을 보라』 中

비도덕주의자라는 말을 나는 다른 의미로서도, 즉 내 자신에 대한 표지이자 휘장으로서 선택했다

;나를 전 인류와 구분짓는 이 말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데에 나는 긍지를 느낀다.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교적 도덕을 자기 밑에 있는 것으로 깨닫지 않았다 ; 그러기 위해서는 높이와 멀리 바라보는 시각과 이제껏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심리적인 깊이와 심연성이 필요하다.
『이 사람을 보라』 中

나를 특정짓는 또 하나의 것은 싸움이다. 나는 기질상 호전적이다. 공격은 내 본능의 일부이다. 적수일 수 있다는 것, 적수라는 것ㅡ이것은 아마도 강한 본성을 전제할 것이고, 어떤 경우라도 모든 강한 본성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저항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저항을 찾는다. 복수심과 뒷감정이 필연적으로 약함에 속하는 것처럼 공격적 파토스는 필연적으로 강함에 속한다.

공격자가 어떤 적수를 필요로 하는지는 그의 힘을 측정하는 일종의 척도이다. 성장한다는 것은 좀더 강력한 적수를 찾는다는 데서ㅡ또는 좀더 강력한 문제를 찾는다는 데서 드러난다. 호전적인 철학자는 또한 문제들에 결투를 신청하지만, 그의 과제는 적수들을 이기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전 역량과 유연함과 싸움 기술을 힘껏 발휘하면서 전력을 다해야하는 적수를 이겨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ㅡ 대등한 적수를 이겨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적과의 대등함ㅡ정직한 결투를 위한 첫 번째 전제, 적을 경멸한다면 싸움을 할 수 없다. 명령을 하거나, 어떤 것을 자기 밑에 있다고 얕잡아보면 싸움은 이루어질 수 없다.

내 싸움 방식은 첫째: 나는 승리하고 있는 것들만 공격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승리할 때까지 기다린다. 둘째: 나는 내 우군이 없을 만한 것, 나 홀로 싸우는 것ㅡ내가 오로지 나만을 위태롭게 하는 것만을 공격한다.
『이 사람을 보라』 中

디오니소스의 열성적인 숭배자는 주로 여성들이었고 이들은 마이나데스라고 불렸다. 마이나데스는 '광란하는 여자들'이라는 뜻이다. 표범 등 짐승의 가죽을 걸친 그녀들은 나뭇가지로 만든 관을 쓰고, 한 손에는 뱀이나 포도송이를, 또 다른 한 손에는 디오니소스 숭배의 표지인 지팡이를 든 채 노래하고 춤추면서 산과 들을 뛰어다녔다. 디오니소스 신에 의해서 접신이 되었을 때 이 여자들은 시끄럽게 떠들어대면서 산기슭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었고, 괴력을 발휘하여 나무를 뿌리채 뽑는가 하면, 야수를 갈갈이 찢어 피가 뚝뚝 흐르는 날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디오니소스는 이 여자들을 거느리고 리디아, 프리기아, 그밖의 동방 여러나라에서 자신을 포교했다.

일반적으로 그녀들은 디오니소스 숭배의 본고장인 트라키아나 프리기아에서 디오니소스 제의가 있을 때 열광적으로 난무하던 여신도들의 신화적 반영이 아닌가 보고 있다. 사람들은 이 제의가 행해지는 동안 자신 속에서 신을 느끼면서 일상의 습관이나 금기에서 벗어나 자연과의 합일을 맛보았다.
『비극의 탄생』 中

“나는 조금 홀가분해졌다. […] 바그너에게서 등을 돌린 것은 내게는 하나의 운명이었으며 ; 이후에 무언가를 다시 기꺼워하게 된 것은 하나의 승리였다. 어느 누구도 나보다 더 위험하게 바그너적인 짓거리와 하나가 되어 있지는 않았으리라. 어느 누구도 나보다 더 강력하게 그것에 저항하지는 않았으리라. 어느 누구도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나보다 더 기뻐하지는 않았으리라. […] 내가 도덕주의자라면, 어떤 명칭을 부여하게 될지 알겠는가! 아마도 자기극복이라는 명칭일 것이다.”
『바그너의 경우』 中

예술이 있으려면, 어떤 미적 행위와 미적 인식이 있으려면 특정한 생리적 선결 조건이 필수 불가결하다. 도취라는 것이. 도취는 우선 기관 전체의 흥분을 고조시켜야만 한다. 그러기 전에는 예술이 발생하지 않는다. 다양한 기원을 갖는 온갖 종류의 도취는 모두 예술을 발생시키는 힘을 갖추고 있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근원적인 성적 흥분의 도취가 특히 그러하다. 온갖 큰 욕구들, 온갖 강한 격정들의 결과로 생겨나는 도취도 마찬가지다. 축제나 경기, 걸작과 승리 밑 극단적인 움직임 전부에 따르는 도취, 잔인함에 따르는 도취, 파괴 시의 도취, 기상적 영향을 받아 생기는 도취, 이를테면 봄날의 도취, 또는 마약의 영향으로 생기는 도취, 의지의 도취, 가득 차고 팽창된 의지의 도취 ㅡ 도취에서 본질적인 것은 힘이 상승하는 느낌과 충만함의 느낌이다. 이런 느낌으로 인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사물에 주입시키고, 우리로부터 받기를 사물에게 강요하며, 사물을 폭압한다. 이런 과정이 이상화라고 불린다. 여기서 편견 하나를 없애자. 이상화는 보통 믿는 바와는 달리 자질구레하거나 부차적인 것을 빼내버리거나 제해버리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주요 특징들을 엄청나게 내몰아버리는 일이 오히려 결정적인 것이어서, 그 때문에 다른 특징들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충만함으로 인해 만사를 풍요롭게 만든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원하든 사람들은 그것을 부풀려서 보고 절실한 것으로 보며 강하고 힘이 넘쳐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상태에 있는 인간은 사물이 그의 힘을 다시 반영해낼 때까지 사물을 변모시킨다. 사물이 자기의 완전함을 반영하게 될 때까지. 이렇게 완전성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 ㅡ 바로 이것이 예술인 것이다.
『우상의 황혼』 中

어느 누구도 인간에게 인간의 특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도 아니고 사회도 아니고 인간의 부모나 선조도 아니며, 인간 자신도 자신의 특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 그가 이러저러한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 그가 특정환 상황과 특정환 환경에 처해 있다는 것에 대해 누구도 책임이 없다. 그의 존재의 숙명은 이미 존재했었고 또 앞으로도 존재할 모든 것의 숙명에서 분리될 수 없다. 그는 특정 의도나 특정 의지나 특정 목적의 결과가 아니다. 인간은 '인간의 이상' 또는 '행복의 이상' 또는 '도덕성의 이상'을 실현시킬 도구도 아니다. 자신의 존재를 어떤 목적에 넘겨주고자 하는 것은 허무맹란한 일이다. 목적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고안해낸 것이다. 사실 목적이라는 것은 없다.
『우상의 황혼』 中

과거에 대해서는 나는 다른 모든 인식자들처럼 아주 관용적으로 대한다. 말하자면 도량 있는 자제력을 가지고서 : 전 세기에 걸친 정신병원-세계를, 즉 '그리스도교', '그리스도교적 신앙', '그리스도교적 교회'를 나는 암울한 신중함을 가지고 통과해간다.ㅡ나는 인류에게 그들의 정신병에 대한 책임을 지우지 않도록 조심한다.

하지만 내가 현 시대로, 우리의 시대로 들어서자마자 곧 내 감정은 뒤바뀌고 폭발해버린다.

오늘날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신학자와 사제와 교황이 하는 모든 말은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거짓이라는 사실이다ㅡ 그들이 '순진'해서나, '무지'때문에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른 모든 이가 알고 있듯이 사제 또한 '신', '죄인', '구세주'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피안', '최후의 심판', '영혼의 불멸', '영혼' 자체라는 개념들이 말이다 : 이것들은 사제들을 지배자로 만들었고 지배자로 남게 했던 고문 기구들이자, 잔인함의 체계들이다. 누구나 이 사실을 알고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안티크리스트』 中

’기쁜 소식(복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참된 삶이, 영원한 삶이 발견되었다는 것ㅡ이런 삶은 약속되지 않는다. 이런 삶은 거기,너희 안에 이미 있다: 사랑하며 사는 삶으로서. 누구든지 다 신의 자식이다ㅡ 예수는 결코 자기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한다ㅡ신의 자식으로 누구든 다 서로 동등하다.

'복음'이란 바로 아무런 대립자도 더 이상은 없다는 것이다 ; 하늘나라는 아이들의 것이다 ; 여기서 말하는 신앙은 싸워서 획득한 신앙이 아니다. ㅡ 이 신앙은 거기, 시작부터 있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정신적인 것으로 아이 같은 천진함이 되돌아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기적에 의해서든 보상이나 약속에 의해서든 입증하지 않는다. '성서'에 의해서는 더욱 아니다 : 신앙 그 자체가 매 순간마다 신앙의 기적이고, 신앙에 대한 보상이나 증거이며 '신의 나라'인 것이다. 이런 신앙은 자신을 공식화하지도 않는다.

첫 사도들은 온통 상징과 불가해성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그 존재에 관하여 어떤 것이라도 이해해 보려고 그네들의 조잡성으로 예수를 번역해버렸다. ㅡ 그들 머리속에서 예수라는 유형은 좀더 잘 알려져있는 형식으로 변형된 후에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었다. 선지자, 구세주, 미래의 판관, 도덕의 설교자, 기적을 행하는 자, 세례자 요한ㅡ 예수라는 유형을 오해할 계기는 이처럼 많았다.

그것은 살아 있고, 공식들에는 저항한다...... 인도인 사이에서라면 샹캬 개념을, 중국인 사이에서라면 노자의 개념을 이용했을 것이다ㅡ그러면서 아무런 차이점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표현을 자유롭게 해보자면 예수를 '자유정신'이라고 부를 수도 있으리라ㅡ 그에게는 고정된 것은 죄다 전혀 중요하지 않으니까 : 말은 죽이는 것이고, 고정된 것은 모두 죽이는 것이다. 그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개념인 '삶'의 경험은 그에게서는 온갖 종류의 말, 공식,법칙, 신앙,교의와 대립한다. 그는 단지 가장 내적인 것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 '기쁜 소식을 가져온 자'는 그가 살아왔고, 그가 가르쳤던 대로 죽었다ㅡ '인간을 구원하기'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죽었다. 그가 인류에게 남겨놓은 것은 바로 실천이었다: 재판관과 호위병과 고발자와 온갖 종류의 비방과 조소앞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태도ㅡ 십자가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태도였다. 그는 저항하지 않는다. 자신의 권리를 변호하지 않는다. 그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려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사태를 도발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그들안에서 간구하고 괴로워하고 사랑한다. 십자가에 매달린 도적에게 그가 한 말은 복음 전체를 포함하고 있다.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 신적인 사람이었구나. '신의 자식'이었구나"라고 그 도적은 말했다. "네가 그것을 느끼면ㅡ구세주가 답하기를ㅡ 그러면 너는 낙원에 있는 것이다. 너 역시 신의 자식인 것이다." 자신을 방어하지 말라. 노하지 말라. 책임 지우지 말라. 또한 악한자에게도 저항하지 말고ㅡ 그를 사랑하라......
『안티크리스트』 中

어디서든지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더구나 자기의 전 역량을 요청하는 위대한 과제를 풀어야 하는 자에게는 선택 영역은 더 제한된다. 풍토는 신진대사에, 그 방해와 촉진이라는 면에서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 장소와 풍토 선택에서 실패하는 자는 자기 자신의 과제에서 멀어지게 될 뿐 아니라, 아예 과제가 억류당하게 될 정도로 말이다 : 그 과제가 그에게 알려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신진대사의 속도는 정신의 발이 움직이느냐 아니면 무기력 하느냐와 정확히 비례한다: '정신' 자체가 진정 신진대사의 한 측면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명민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또 존재했던 곳, 위트와 예민함과 악의가 행복을 이루었던 곳, 천재가 거의 필연적으로 자기의 안식처로 삼았던 곳을 모두 모아보자 : 그곳들의 대기는 모두 아주 탁월하게 건조하다. 파리, 프로방스, 플로렌스, 예루살렘, 아테네ㅡ 이 장소들은 무언가를 입증하고 있다: 천재는 건조한 대기와 맑은 하늘을 전제하고ㅡ 신속한 신진대사를 전제하며 거대하고도 어마어마한 양의 힘을 항상 다시 공급할 가능성을 전제한다는 것을.나는 탁월하면서도 자유로운 소질을 갖춘 정신이 풍토를 선택하는 섬세한 본능을 갖지 못해서, 오그라들고 움츠러버리는 전문가나 유머 감각 없는 뚱한 자가 되어버렸던 경우를 하나 목도했었다.
『이 사람을 보라』 中

내 작품에 익숙해지면 사람들은 도대체 다른 책들을 더 이상은 견뎌낼 수 없게 된다.

배움의 진정한 황홀경을 체험한다: 나는 어떤 새도 이르러보지 못했던 높은 데서 왔고, 어떤 발도 길을 잃어보지 못한 심연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게 내 책 중 어느 하나를 잡으면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고 ㅡ 내가 밤의 휴식마저 설치게 한다고 말했다...... 내 책보다 더 긍지에 차 있으면서 동시에 더 세련된 종류의 책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기법이 바로 독일어로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할 사항으로 남겨져 있었다 : 나라도 예전에는 그 가능성을 혹독하게 배척했었을 것이다. 나 이전에 사람들은 독일어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으며ㅡ 언어를 가지고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ㅡ 숭고하고도 초인간적인 열정의 거대한 상승과 하락을 표현하는 위대한 리듬 기법, 복합문의 위대한 문체가 나에 의해 비로소 처음 발견되었다 ; <차라투스트라> 3부 마지막 장인 <일곱 개의 봉인>이라는 표제의 송가에 의해 나는 지금까지 시라고 불리어온 것의 위로 천 마일이나 높이 날아올랐다.
『이 사람을 보라』 中

아주 섬세하고 상처받기 쉬우며 오만 가지 배려를 주고받는 우리 현대인은 우리가 제시하는 이런 섬세한 인간성, 그리고 관용과 친절과 상호 신뢰에 있어 이르게 된 의견 합일이 하나의 긍정적인 진보라고 믿어버리고, 이 점으로 인해 우리가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고 믿는다.

(지금 우리가 르네상스 시대로 돌아간다면) 우리의 신경은 르네상스적 실재성을 견대내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근육은 말할 나위도 없다. 현대인의 이런 무능은 진보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것, 즉 필연적으로 사려로 가득 찬 도덕을 발생시키는 더 약하고 더 유약함과 더 상처받기 쉬운 더 말기적인 소질을 증명해줄 뿐이다.

강렬한 시대와 고상한 문화는 동정과 '이웃 사랑'과 자아와 자의식의 결여를 경멸스러운 것으로 여긴다. ㅡ 각 시대는 그 시대의 적극적인 힘들에 의거해 측정될 수 있다ㅡ이럴 때 르네상스라는 그토록 풍요롭고 그토록 숙명적인 시대는 위대했던 최후의 시대로 드러나고, 우리 현대는 자기에 대한 소심한 염려와 이웃 사랑, 노동과 겸허와 공정성과 과학성이라는 덕을 가지고서ㅡ수집적이고 경제적이며 기계적인ㅡ약한 시대로 드러난다

'평등권' 이론에서 그 표현을 얻는 '평등'은 본질적으로 쇠퇴에 속한다 :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간격, 계층과 계층 사이의 간격, 유형의 다수성, 자기 자신이고자 하는 의지, 자신을 두드러지게 하고자 하는 의지, 내가 거리를 두는 파토스라고 부르는 것은 모든 강한 시대의 특성이다. 오늘날에는 극단적인 것들 사이의 긴장과 간격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ㅡ극단적인 것들은 희미해져 결국은 모두 유사하게 되어버린다
『우상의 황혼』 中

정신적인 문제에 냉혹할 정도로 정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산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히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와 민족 이기주의의 천박한 시대적 헛소리를
자기의 발 아래의 것으로 내려다보는 법을 익히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진리가 그에게 이득을 줄지 손해를 줄지 물어서도 안 된다.

오늘날 어느 누구도 물어볼 용기가 없는 문제들을 선호하는 강건함
금지된 것에 대한 용기
미궁으로 향하는 예정된 운명
일곱 가지 고독에 의한 한 가지 경험
새로운 음악을 위한 새로운 귀
가장 멀리 있는 것을 위한 새로운 눈
이제껏 침묵하고 있던 진리들에 대한 새로운 양심
그리고 위대한 양식의 경제성을 추구하려는 의지
그 힘과 열광을 흩어지지 않게 한데 모으려는 의지
자신에 대한 존경
자신에 대한 사랑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 자유을 가져야 한다.

이런 자들만이 나의 독자이고, 나의 정당한 독자이며, 예정된 독자이다.
『안티크리스트』 中

오늘날 도덕적인 문제를 연구하려 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광범위한 영역의 연구를 개척해야 할 것이다. 모든 종류의 열정들이 하나하나 고찰되고 시대와 민족, 크고 작은 일들이 낱낱이 추적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이성과 가치 평가 전체, 사물들에 대한 조명에 빛이 가해져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현존재에 색채를 부여하는 모든 것이 아직 그 역사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

사랑, 소유욕, 질투, 양심, 경건, 잔혹의 역사가 도대체 어디에 그려져 있는가 ? 심지어 법의 비교사나 아니면 단지 형벌의 비교사조차도 지금까지 전혀 존재하지 않고 있다. 하루를 구분하는 다양한 방식, 노동과 축제와 휴일을 규범적으로 확정해놓은 결과가 연구된 적이 있는가 ? 음식의 도덕적 영향에 대해 알고 있는가 ? 섭생의 철학이 존재하는가 ? (채식주의에 대한 찬반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벌어지는 소란이 이미 그러한 철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공동체 생활의 체험, 예를 들어 수도원의 체험이 수집되어 있는가 ? 결혼과 우정의 변증법은 서술되어 있는가 ? 학자, 사업가, 예술가, 수공업자의 윤리에 대해 연구한 사상가는 있는가 ?

지금까지 인간의 실존의 조건으로 고찰되어온 모든 것, 그리고 이러한 고찰에서 나타나는 모든 이성, 정열, 미신 등이 궁극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탐구되었는가 ? 상이한 도덕적 풍토에 따라 인간의 충동이 각기 다르게 나타났고, 또 아직도 나타날 수 있는 성장의 다양한 가능성을 관찰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가장 근면한 연구자에게조차 과도한 연구거리가 될 것이다. 이 연구의 관점과 자료를 모두 소화해내기 위해서는 여러 세대를 총망라하는 학자들이 계획적으로 공동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도덕적 풍토가 상이하게 나타나는 이유를 증명하는 연구도 마찬가지다(왜 여기에는 이러한 도덕적인 근본 판단과 주요 가치판단의 태양이 빛나고 저기에는 다른 태양이 빛나는가 ?). 그리고 이러한 모든 이유가 지닌 오류와 지금까지의 모든 도덕적 판단의 본질을 확증하는 것은 다시금 또 다른 연구가 될 것이다.

이러한 모든 연구가 행해진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문제들 중에서 가장 복잡한 문제가 전면에 등장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에 앞서 우선 학문이 인간의 행동을 받아들이거나 근절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증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모든 종류의 영웅주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실험,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이루어진 모든 위대한 연구와 희생이 그 그늘에 가리게 될 수세기에 걸친 실험이 행해질 차례가 온다. 아직까지 학문은 자신의 거석을 건설하지 못했다. 그것을 위한 시대도 올 것이다.
『즐거운 학문』 中

풍습은 이익이 되거나 해를 끼친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한 예전 사람들의 경험을 반영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느끼는 풍습에 대한 감정은 그러한 경험 자체가 아니라 풍습의 오래됨, 신성함, 자명함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감정은 사람들이 새로운 경험을 갖게 되고 풍습을 수정하는 것에 반발한다. 즉 윤리는 새롭고 좀더 나은 풍습의 발생을 저해한다. 그것은 사람들을 어리석게 만드는 것이다.
『아침놀』, '풍습과 풍습에 대한 감정'

기원전 수천 년 동안, 그리고 이후 대체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모든 공동체들은 '풍습의 윤리'에서 비롯된 저 가공할 중압속에서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고 이단적인 사상과 가치 평가, 그리고 충동이 거듭 출현할 때마다, 이는 무시무시한 현상들을 수반하면서 일어났다. 거의 모든 곳에서 새로운 사상에 길을 열어주면서, 존중되던 습관과 미신의 속박을 부수는 것은 광기다.

그대들은 왜 그것이 광기여야만 했는지 이해하는가? 날씨와 바다의 악마적인 변덕처럼 소리와 몸짓이 전율을 일으키는 불가해한 것, 그 때문에 그러한 날씨와 바다와 유사하게 경외할 만하고 관찰할 가치가 있는 그런 어떤 것을 그대들은 이해하는가? 간질 환자한테서 나타나는 마비 증상과 거품처럼, 전혀 자유의지를 갖지 않은 상태의 징후를 현저하게 보이게 하면서 광인을 이처럼 신성의 가면이자 확성기로 나타나게 하는 어떤 것을? 새로운 사상의 소유자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외경과 두려움을 갖게 하고 더 이상 양심의 가책을 갖지 않게 하면서 그를 새로운 사상의 예언자이자 순교자가 되도록 몰아대는 어떤 것을?

오늘 날에도 여전히 천재에게는 한 알의 소금 대신 광기를 일으키는 약초가 주어진다고 거듭 이야기되지만, 이전의 모든 인간들은 광기가 존재하는 곳에는 약간의 천재성과 지혜, 즉 사람들이 서로 속삭이는 것처럼 '신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사상을 훨씬 더 쉽게 받아들였다. 아니, 사람들은 속삭이는 것을 넘어 강력한 이러한 사상을 표명했다. "광기를 통해 그리스는 최대의 자산을 갖게 되었다"라고 플라톤은 고대의 인류 전체와 함께 말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어떤 윤리의 질곡을 부수면서 새로운 법을 부여하려는, 거역하기 어려운 유혹에 사로잡혔던 저 탁월한 모든 인간들에게는 그들이 실제로 미치지 않았을 경우에는 자신을 미치게 하거나 미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단지 종교적 영역이나 정치적 영역뿐 아니라 실로 모든 영역의 혁신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심지어 시의 운율을 혁신했던 사람들마저 광기를 통해 자신을 증명해야만 했다.

"미치지도 않았고 미친 것처럼 보이게 할 용기도 없을 경우 어떻게 자신을 미치게 할 것인가?" 고대 문명의 중요한 모든 인간들은 이러한 무서운 사상을 따랐다. 이와 관련해 감정을 깨끗하게 하고 생각과 기도를 성스럽게 하는 것 외에 여러 비결들과 식이 요법에 대한 은밀한 가르침이 전해졌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마술사가 되기 위해, 중세 기독교인들이 성자가 되기 위해, 그린란드인들이 안게코크가 되기 위해, 브라질인들이 파헤가 되기 위해 취했던 처방은 본질적으로 같다.

즉 무의미한 단식, 성욕의 지속적인 억제, 사막으로 가거나 산에 오르거나 기둥에 오르는 것, '멀리 호수가 보이는 오래된 버드나무 위에 앉아 있는 것' 이 모든 것들이 황홀경이나 정신의 무질서를 초래할 수 있는 처방들이었다. 그야말로 모든 시대의 가장 생산적인 인간들이 아마 겪었을 가장 쓰라리면서도 황량하기 짝이 없는 엄청난 정신적인 고통을 누가 감히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인가? 저 고독하고 어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한숨을 누가 감히 들을 수 있을 것인가?

"아아, 그대 하늘에 있는 자들이여, 광기를 주소서! 마침내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도록 광기를 주소서! 황홀경과 마비, 섬광과 암흑을 주소서! 일찍이 죽어야 할 어떤 사람도 경험한 적 없는 혹한과 뜨거운 열로 나를 겁에 질리게 하소서! 포효하며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는 형태로 나를 겁에 질리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울부짖고 신음하게 하시고 동물처럼 기게 하소서! 이 모든 것을 통해 내가 나 자신을 믿을 수 있게만 하소서! 의심이 나를 파먹어갑니다. 나는 법을 파괴했습니다. 시체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처럼 법이 나를 불안하게 합니다. 내가 법 이상의 존재가 아니라면, 나는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타락한 자입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새로운 정신이 당신들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면 어디서 온 것입니까? 내가 당신들의 것이라는 사실을 부디 나에게 증명해주소서, 광기만이 나에게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열정은 지나칠 만큼 자주, 그것도 매우 훌륭하게 그 목표에 도달했다.
― 《아침놀》, '도덕의 역사에서 광기의 중요성'

수녀의 순결, 그녀는 그 얼마나 강한 비난의 눈길로 다르게 사는 여인들의 얼굴을 쳐다보는가! 그녀의 눈에 얼마나 많은 복수와 쾌감이 존재하는지! 주제곡은 짧고 변주곡은 수없이 많을 수 있다. 그러나 쉽게 지루해지지는 않는다. 우월의 도덕은 근본적으로 세련된 잔인성에 대한 쾌감이다.
― 《아침놀》, '고상한 잔혹함'

첫째, 충동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기회들을 피하면서 가능한한 오랫동안 불만족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충동을 약화하고 시들게 할 수 있다.

둘째, 충동을 만족시킬 때 자신에게 엄격한 규칙을 부과할 수 있다. 이렇게 충동 자체에 규칙을 부과함으로써, 그리고 그것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시간을 정하고 제한함으로써 사람들은 더 이상 충동에 의해 교란되지 않는 시간들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이를 통해 첫 번째 방법으로 이행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의도적으로 충동을 거칠고 자유분방하게 만족시키면서 역겨움을 불러일으키고, 이러한 역겨움을 통해 충동을 이겨내는 힘을 획득할 수 있다. 이 경우 죽을 때까지 말을 몰아대다가 결국 자신의 목마저 부러뜨리고 마는 기수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방법에서는 그 기수처럼 되는 것이 보통이다.

넷째, 지적인 책략이 있다. 매우 고통스러운 생각을 만족 전체와 확고하게 결부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약간 연습한 후에는 충동을 만족시키려는 생각 그 자체가 늘 즉시 고통스러운 것으로 느껴지게 된다.

다섯째, 무언가 특히 어렵고 힘이 드는 일을 자신에게 부과하거나 의도적으로 새로운 자극과 즐거움에 몸을 맡기는 방식으로 생각과 육체적인 힘의 움직임을 다른 길로 유도함으로써 많은 힘의 방향 전환을 시도할 수 있다.

여섯째, 육체와 정신의 조직 전체를 약화시킴으로써 개별적인 격렬한 충동을 약화한다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예를들어 고행자처럼 자신의 감각을 철저히 굶기고, 이와 동시에 자신의 육체와, 종종 자신의 지성도 함께 굶김으로써 육체와 정신을 쓸모없게 만드는 사람의 방법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어떤 격렬한 충동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는 우리의 권능 밖에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가, 이 방법으로 효과를 거두는가 못 거두는가 하는 것 역시 우리의 권능 밖에 존재한다. 오히려 이 과정 전체에서 우리의 지성이 우리를 괴롭히는 격렬한 충동의 경쟁자인 다른 충동의 맹목적 도구일뿐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것이 안식에 대한 충동이든지, 치욕이나 다른 나쁜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나 사랑이든지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충동의 격렬함에 대해 한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근본적으로 볼 때 사실은 다른 충동에 대해 어떤 충동이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가 어떤 충동의 격렬함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이 충동과 똑같이 격렬하거나 훨씬 더 격렬한 다른 충동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우리의 지성이 어느 쪽이든 편을 들어야만 하는 투쟁이 임박해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 《아침놀》, '충동을 극복하기 위한 여섯 가지 방법'

가련한 인류.- 뇌 속의 피가 한 방울 더 많거나 더 적으면 우리의 인생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해지고 고통스러워질 수 있다. 우리는 프로메테우스가 그의 심장을 쪼아 먹는 독수리 때문에 고통을 받았던 것 이상으로 이 한 방울의 피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저 한 방울이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지도 못하면서 '악마'라든가 '죄'가 원인이라고 생각할 때 가장 끔찍한 사태가 벌어진다.

육체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자들.- 단지 위, 내장, 심장의 고동, 신경, 담즙, 정액에서 비롯되는 모든 것들,ㅡ즉 저 모든 불쾌감, 무기력, 과도한 긴장,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기계(육체)의 우연성 전체! ㅡ 파스칼과 같은 기독교인은 이 모든 것에 대해 이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이 신인가 악마인가, 선인가 악인가, 구원인가 저주인가 하는 질문과 함께 이 모든 것을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오, 얼마나 불행한 해석가인가!
― 《아침놀》, ‘가련한 인류, 육체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자들'

광인이 있었다. 밝은 대낮에 등불을 켜고 시장을 돌아다니며 '나는 신을 찾고 있다! 나는 신을 찾고 있다!'라고 외쳤다는 광인. 그 광인이 시장에 등장했을 때 신을 믿지않는 사람들이 모여있었기에 그 광인은 웃음을 자아냈다. 광인은 비웃는 사람들에게 달려가 노려보며 말했다.

" 신은 어디로 갔는가? 내가 대답하지. 우리가 신을 죽였다. 그대들과 내가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신을 죽일 수 있었지? 어떻게 이 피를 닦아낼 수 있을까? 무엇으로 이 피를 닦아낼 수 있을까?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때... 그때 우리는 무슨 짓을 한거지?'

" 어디로 가는 거지?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거지? 모든 태양으로부터 멀어지는 건가? 우리는 계속 추락하고 있는 걸까? 뒤로, 옆으로, 앞으로, 모든 방향으로? 위와 아래라는 것이 이제 있기는 한 걸까? 무(無) 속을 끝없이 방황하기만 하는걸까? 빈 공간의 숨을 느끼지 못해? 추위를 느끼지 못해? 밤이, 계속된 밤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해? 이제 아침에도 등불을 켜야만 하는 것 아니야? 신을 땅에 묻고 있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신의 시체가 부패하는 냄새가 나지 않아? 신도 썩어! 신은 죽었어! 되돌아갈 수도 없어! 우리가 신을 죽였어!"

"최악의 살인자인 우리를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 가장 신성한, 가장 힘 있는 존재가 우리들의 칼에 죽었어. 누가 이 피를 닦아내지? 무슨 물로 이 피를 씻어내지? "

광인은 말을 멈추고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조용히 광인을 쳐다보았다. 광인은 등불을 바닥에 던졌다. 산산조각이 나고 불은 꺼졌다.

' 너무도 이른 시간에 왔구나.' 광인은 속으로 말했다. '아직 내 시간은 오지 않았어. 이 사실이 아직 사람들의 귀에 닿지 않았어. 천둥과 번개는 시간이 필요해. 별빛이 사람들에게 닿기까지 시간이 필요해. 이 사실이 그들에게는 아직 가장 먼 별보다도 멀리 떨어져 있어... 그들 자신이 저지른 일인데도 말이야!'
― 《즐거운 학문》

최대의 중점 ー 만일, 어느 낮밤에, 악령이 그대의 가장 외딴 고독 속으로 숨어들어와 이렇게 말한다면: "네가 지금 살고 있고 살았던 이 삶을 다시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해서 살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것은 없을 것이며, 모든 고뇌와 욕망, 모든 상념과 탄식이, 네 삶의 이루 말할 수 없이 작고 큰 모든 것들이, 같은 차례와 순서로 네게 돌아오고, 여기 거미와 나무 사이의 달빛과 이 순간과 나마저도 다시 돌아올 것이다. 현존의 영원한 모래시계가 매번 거듭해서 티끌 중의 티끌인 너와 함께 뒤집히리라!" 그대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이를 갈며 그런 말을 한 악령을 저주하지 않겠는가? 혹은 언젠가 한번 이렇게 답했을 압도적인 순간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너는 신이다. 나는 이보다 신성한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이 생각이 그대를 사로잡는다면 지금의 그대는 바뀔 것이며, 어쩌면 부서질 것이다. "너는 이것을 다시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하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이, 모든 각개의 행동을 끔찍한 무게로 짓누르리라! 아니면 이 최후의, 영원한 증명과 봉인만을 원하기 위해선, 어떻게 네 자신과 삶에 좋아져야 하겠는가?
― 《즐거운 학문》

사람이란 자기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을 감추기 위해 책을 쓰는 것이 아닐까? 도대체 철학자가 '최종적이며 고유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모든 동굴 뒤에 한층 더 깊은 동굴이 있지 않을까? 표면적인 세계를 넘어선 곳에 좀더 광대하고 낯설고 풍요로운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모든 근거의 배후에, 모든 '근거를 마련하려는 작업' 아래 하나의 심연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는 의심하게 될 것이다. 모든 철학은 전경의 철학이다.

철학자가 여기 서서 뒤를 돌아보고 자신의 주위를 살펴본다는 것에는, 그리고 그가 여기에서 더 이상 깊이 파고들어 가지 않고 삽을 내던져버린 것에는 무언가 자의적인 것이 있다. 거기에는 무언가 의심스러운 것이 있다. 모든 철학은 또 하나의 철학을 숨기고 있다. 모든 생각도 하나의 은신처이고, 모든 말도 하나의 가면이다.
― 《선악의 저편》

칸트는 추론한다. 1. 어떤 조건들 아래에서만 타당한 주장들이 있다. 2. 이 조건은 경험으로부터가 아니라, 순수 이성으로부터 유래한다. 그러므로; 문제는 이렇다. 그러한 주장들의 진리에 대한 믿음은 어디에서 그 근거를 가져온단 말인가? 그 믿음은 후험적 데이터뿐만 아니라 경험 이전의 선험적 데이터 역시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필연성과 보편성은 결코 경험으로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것들이 경험없이 있다는 것은 무엇에 의해 명백하단 말인가? 그것은 결코 인식이 아니다! 규제적 신조(믿음)인 것이다. 선천적 종합판단이라는 것이 있다면, 순수이성에 의한 사물 인식인 형이상학도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
― 《유고 1888년 초~1889년 1월 초》

비판은 한 번도 이상 자체로 향한 적이 없다. 오히려 어디서 이상에 대한 대립이 생기는 것인지, 왜 이상은 아직도 도달되지 않는지 혹은 왜 이상은 일의 대소를 불문하고 입증되지 않는지라는 문제로만 향할 뿐이다.
― 《유고 1888년 초~1889년 1월 초》

존재자를 가정하는 것은 사유하고 추론할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하다. 논리학은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에 대한 공식만을 취급한다. 따라서 존재자라는 가정은 실재에 대한 증명력을 여전히 갖지 않으리라. '존재자'란 우리의 광학에 속한다. 주체, 실체, 이성 등의 날조된 세계는 필요하다. 조정하고 단순화하고 위조하고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힘이 우리안에 있다
― 《유고》

역사와 민속학적 연구가 알고 있는 모든 가치 목록, 모든 '너는 해야만 한다'는 말에는 어떤 경우에도 심리학적 탐구나 해석보다도, 먼저 생리학적 탐구나 해석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은 의학이 비판하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이러한 혹은 저러한 가치 목록과 '도덕'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 《도덕의 계보》

상이한 도덕적 풍토에 따라 인간의 충동이 각기 다르게 나타났고, 또 아직도 나타날 수 있는 성장의 다양한 가능성을 관찰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가장 근면한 연구자에게조차 과도한 연구거리가 될 것이다. 이 연구의 관점과 자료를 모두 소화해내기 위해서는 여러 세대를 총망라하는 학자들이 계획적으로 공동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도덕적 풍토가 상이하게 나타나는 이유를 증명하는 연구도 마찬가지다(왜 여기에는 이러한 도덕적인 근본 판단과 주요 가치판단의 태양이 빛나고 저기에는 다른 태양이 빛나는가 ?).

그리고 이러한 모든 이유가 지닌 오류와 지금까지의 모든 도덕적 판단의 본질을 확증하는 것은 다시금 또 다른 연구가 될 것이다. 이러한 모든 연구가 행해진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문제들 중에서 가장 복잡한 문제가 전면에 등장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에 앞서 우선 학문이 인간의 행동을 받아들이거나 근절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증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모든 종류의 영웅주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실험,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이루어진 모든 위대한 연구와 희생이 그 그늘에 가리게 될 수세기에 걸친 실험이 행해질 차례가 온다. 아직까지 학문은 자신의 거석을 건설하지 못했다. 그것을 위한 시대도 올 것이다.
― 《즐거운 학문》

여성들은 조상들이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생리학적 병증과 마주쳤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동등권의 요구이다. 이 동등을 위한 투쟁은 가히 병적 징후에 가깝다. 나를 미쳤다고 판단한 대부분의 정신과 의사들도 이를 시인했다.

이 같은 투쟁에 뛰어든 여성들은 양성 간의 싸움에서 우선권이 자신들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남성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학적인 접근이 아니라 철학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대체 왜 여성들은 남자의 사랑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그 권리마저 찬탈하려 하는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해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여성을 치료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그녀들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일까?

나의 대답은 이렇다. 그녀들은 어린아이가 필요하다. 즉, 그녀들에겐 임신 기간이 필요한 것이다. 여성에게 남자란 항상 수단에 불과했다. 거리에 나부끼는 저 ‘여성 해방’의 목소리, 이것은 아이를 생산할 수 없는 여성들의 분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임신에 필요한 남자를 얻지 못했다는 상실감의 표현이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자신들의 ‘수단’을 강탈한 같은 여성들에 대한 증오이다.

여성 해방론자들이 적으로 상정한 남성은 그저 수단일 뿐이며, 전술에 불과하다. 그녀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여성이며, 말이 통하는 고급 창녀이며, 이상주의자라고 내세움으로써 동시대의 같은 여성들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고등 교육과 양복 바지, 그리고 참정권은 여성에 대한 여성의 투쟁에 필요한 무기일 뿐이지 요구가 아니다. 따라서 남자로부터 해방된 여성들은 여성적인 세계마저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자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 이 사람을 보라 中

여성은 자립하기를 원한다 : 그리고 이 때문에 '여성 자체'를 남성들은 계몽시키기 시작한다. 이것은 유럽이 일반적으로 추악해지는 최악의 진보에 속한다. 왜냐하면 여성의 학문성과 자기 폭로의 이러한 서툰 시도가 모든 것을 백일하에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여성에게는 부끄러워해야 할 많은 이유가 있다. 여성에게는 현학적인 것, 천박한 것, 학교 선생 같은 것, 하찮은 오만, 하찮은 무절제와 불손이 많이 숨어 있다.ㅡ여성이 어린아이를 상대하고 있을 때를 살펴보라!ㅡ이러한 것은 근본적으로 지금까지 남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장 잘 억제되고 제어되어 왔다. 만일 '여성에게서의 영원히 권태로운 것'이ㅡ여성에게 이것은 풍부하게 있다!ㅡ과감하게 밖으로 나오는 일이 생긴다면, 이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만일 여성이 우아하고 장난스럽고 근심을 없애주고 마음의 짐을 벗어나게 하고 매사를 쉽게 생각하는 현명함과 기교를, 만일 여성이 유쾌한 욕구를 처리하는 섬세한 솜씨를 철저하게 근본적으로 잊어버리기 시작한다면, 이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성스러운 아리스토파네스에게 맹세코 말하는데, 지금은 이미 경악하게 하는 여성의 소리가 커져가고 있으며, 여성이 궁극적으로 남성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의학적인 확실함으로 들이닥치게 된다. 여성이 이와 같이 학문적으로 되려고 한다면, 이것은 가장 나쁜 취미가 아니겠는가? […]
선악의 저편 中

[…] 여성은 진리를 바라지는 않는다 : 여성에게 진리가 무슨 중요한 일이란 말인가! 여성에게는 처음부터 진리보다 낯설고 불쾌하고 적대적인 것은 없다.ㅡ여성의 큰 기교는 거짓말이요 그 최고의 관심사는 가상이며 아름다움이다. 우리 남성들은 고백하도록 하자 : 우리는 여성의 바로 이러한 기교와 이러한 본능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 우리 남성들은 여성이 계몽에 의해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계속되지 않기를 바란다. 교회가 '여성은 교회 안에서 침묵해야만 한다!'고 선언했을 때, 이는 남성이 여성을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이었다. 나폴레옹이 너무 말이 많은 드 스탈 부인[225]에게 "여성은 정치에 대해서는 침묵해야만 한다!"고 시사했을 때, 이는 여성의 이익을 위해 일어난 일이었다.ㅡ그리고 오늘날 "여성은 여성에 대해 침묵해야만 한다!"고 여성에게 소리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여성의 친구라고 나는 생각한다.[226]
선악의 저편 中

"생각된다 ; 따라서 생각하는 어떤 것이 있다" : 데카르트의 논변은 이렇게 귀결된다. 하지만 이것은 실체 개념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미리 '선험적 참'이라고 설정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된다면 '생각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은, 어떤 행위에 행위자를 덧붙이는 우리의 문법적 습관을 공식화한 것에 불과하다.

요약하면 여기서는 이미 논리적-형이상학적 요청이 행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요청은 확인되고 있을 뿐만이 아니다. 데카르트가 취한 방식으로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어떤 것에 이르지 않고, 아주 강한 어떤 믿음의 사실에만 이를 뿐이다. 저 문장을 "생각된다. 그러므로 생각된 것이 있다"는 면제로 환원시켜 보면, 단순한 동어 반복만을 우리는 얻을 뿐이다. 그리고 문제가 되었던 바로 그것, 즉 '생각된 것의 실재성'은 건드려지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이런 형식으로는 생각된 것의 '가상성'은 물리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데카르트가 원했던 것은 생각된 것이 단지 가상적 실재성뿐 아니라, 실재성 그 자체를 갖는다는 것이었다.
― 《유고 1887년 가을~1888년 3월》

보라, 우리의 주위가 얼마나 풍만한가를! 이와 같이 넘쳐흐르는 자연 속에 먼바다를 바라보았을 때, 신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Übermensch)'을 이야기하라고 가르친다. 신이란 하나의 억측에 불과하다. 나는 이 억측이 그대들이 창조하려는 의지를 넘어서지 않기를 바란다. 그대들은 하나의 신을 창조할 수 있었는가 - 그렇다면 나는 그대들에게 간구하노라. 모든 신에 대해 침묵을 지켜라. 그대들은 능히 초인을 창조할 수 있으리라.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자는 경멸하기 때문에 창조하려고 한다! 자신이 사랑한 것을 경멸할 줄 모르는 자가 사랑을 알겠는가! 나의 형제여, 그대의 사랑, 그대의 창조와 함께 그대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나중에 가서 정의가 다리를 절며 그대를 뒤따라올 것이다. 나의 형제여, 그대의 눈물과 함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나는 자기 자신을 넘어 창조하려고 파멸하는 자를 사랑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철학자들이 '도덕에 논리적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불렀고, 알고자 안간힘을 썼던 것은, '적절한 조명에 비추어 봤을 때', 그저 당시 지배적인 도덕에 대한 '맹신'의 배운 형태이며, 그것의 새로운 '표현 방식'에 불과해, 결과적으로 확고한 도덕이라는 하나의 구체 내부의 '사실문제(matter-of-fact)'에 불과하며, 그것의 궁극적인 동기에서, 이러한 도덕에 대한 '그것의 정당함에 대한 의문'의 어떤 종류의 부정이다──또한, 이러한 맹신에 대한 검증, 분석, 의심, 그리고 해부하려는 행동들과 정반대의 것이다…
― 《선악을 넘어서》

이제 나를 떠나보내고 자신을 찾으라. 그리고 그대들이 나를 모두 부정했을 때 나는 그대들에게 돌아가리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227]

"이름이 차라투스트라라고 했던가. 그러나 그도 변했군. 그대는 자신의 타고 남은 재를 산으로 날라 갔지. 오늘은 그대의 불덩이를 골짜기로 날라 가려고 하는가? 그런데 이제 잠든 사람들에게로 가서 뭘 하자는 건가. 바다 속에 있는 듯 고독 속에서 살았고, 그 바다가 그대를 품어주었지. 그런데도 그대는 뭍에 오르려 하는가."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인간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오."
"하지만 이제 나는 신을 사랑하네. 인간에 대한 사랑은 나를 파멸시킬 테지."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사랑에 대해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소. 다만 인간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오."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말게. 차라리 그들로부터 얼마간을 빼앗아 그것을 그들과 나누어 가지도록 하게. 그래야 인간에게 더없이 큰 도움이 될 것이네. 그들로 하여금 애걸하도록 하게."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자선을 베풀고 싶지는 않소, 나는 그렇게 할 만큼 가난하지는 않다오."
"그들은 은둔자를 불신하며 우리가 선물을 주려고 왔다는 것을 믿지 않네. 왜 그대는 나처럼 곰들 속의 한 마리 곰, 새들 속의 한 마리 새로 머물고자 하지 않는가."
차라투스트라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 늙은 성자는 숲속에 있어서 신이 죽었다는 소식조차 듣지 못했구나."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신은 인간을 죽임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 자신을 '정의'로 정의한다. 니체는 정의라는 진리를 죽임으로써 정의라는 칭호를 부여받는다. 진리의 말살은 곧 진리. 그렇기 때문에 니체는 신을 죽인다. 하지만 니체는 외친다.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우리는 신을 죽인 후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진리, 즉 삶의 이유를 묻는다. 하지만 신은 이미 죽었다. 신이 된 우리는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우리는 풀 수 없다. 우리는 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들 외친다. 하지만 우리가 죽인 신이 만들었던 영원불멸의 시스템은 행복과 슬픔, 분노, 공포, 모든 감정 느낌을 허무하게 만든다.

생명체를 발견할 때마다 나는 힘에의 의지도 함께 발견했다. 심지어 누군가를 모시고 있는 자의 의지에서조차 나는 주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발견했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8. 저서

제목 발간 연도
<colbgcolor=#fff,#1f2023> 비극의 탄생[228]
Die Geburt der Tragödie
<colbgcolor=#fff,#1f2023> 1872년
반시대적 고찰[229]
Unzeitgemäße Betrachtungen
1873년
~ 1876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
1878년
아침놀
Morgenröte
1881년
즐거운 학문
Die fröhliche Wissenschaft[230]
1882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231]
Also sprach Zarathustra
1883년
선악의 저편[232]
Jenseits von Gut und Böse
1886년
도덕의 계보[233]
Zur Genealogie der Moral
1887년
바그너의 경우
Der Fall Wagner
1888년
우상의 황혼[234]
Götzen-Dämmerung
안티크리스트[235]
Der Antichrist
1894년[236]
이 사람을 보라[237]
Ecce homo
1908년[238]
니체 대 바그너
Nietzsche contra Wagner
1889년[239]
권력에의 의지[240]
Der Wille zur Macht
1901년

8.1. 읽는 순서

흔히 니체의 저서로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잘 알려져 있으나, 니체 철학에 익숙하지 않으면 그 안에 담긴 은유를 다 읽어내기에 무리가 있으므로 그저 산문시를 읽는 것에 불과하다.[241] 그래서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 선악의 저편〉을 읽는 것이 필수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잘 안 팔리자,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해서 그 책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나름 학문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저술한 책이 바로 〈선악의 저편〉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선악의 저편〉의 도덕 부분을 확장해서 논문형식으로 쓴, 〈 도덕의 계보〉을 보통 읽는다. 이 두 책을 독파하고 나면 〈 우상의 황혼〉, 〈즐거운 학문〉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4권의 책[242]을 읽었으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어느 정도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될 것이지만, 너무 많은 상징과 패러디가 들어 있기 때문에 쉽게 다가가긴 힘들다. 그래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전문해설서를 끼고 보는 것을 추천한다.

니체의 텍스트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싶은 사람은 <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를 읽어봐야 한다. 다만 입문용으로 읽기에는 다소 난해할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처럼 운문적이고 은유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놓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을 보라>와 같은 경우, 니체가 말년에 정신병에 걸리기 직전 해에 스스로 남긴 철학적 자서전으로서, 자신의 작품들에 대한 니체 본인의 평가와 해설이 담겨 있어서 니체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도움이 되는 책이다.

니체가 여러 책에서 반복해서 말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으면, 그의 초기 저작 〈비극의 탄생〉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비극의 탄생〉은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깊게 받은 초기 저술이기 때문에, '힘에의 의지'를 강조하는 후기 철학과는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대부분이 '힘에의 의지'로 계승되므로 〈 비극의 탄생〉은 후기 철학을 심도 있게 이해하는데도 도움된다.

좀 더 깊은 이해를 원하거나 관련 전문가의 경우에는, 이 저서들과 같은 시기에 쓰인 『유고』를 함께 보는 것이 좋다. 유고에는 니체가 출간한 저서들의 발생과정 및 숨겨진 의도와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1885~1888년 사이에 쓰인 유고(책세상판 전집 기준 19~21번)는 책 『힘에의 의지』를 기획하기 위한 글 모음이기 때문에 니체의 진면목을 확인하려면 이 유고를 읽어야 한다. [243]

8.2. 한국어판 전집에 대해

니체 전집은 휘문출판사판(1969년), 청하출판사판(1982년), 책세상 니체전집 (2000년) 총 세가지가 있다. 원고의 방대함과 치밀함은 책세상판이 높지만 번역 질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물론 청하판은 80년대에 나왔고 중역이 많지만 그럼에도 니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책세상판과 달리 중요한 서문/평이 실려있으며 번역의 질이 우수한 작품도 있다. 대표적으로 니체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선악의 피안』[244]이 그렇다. 책세상판도 일부 단권으로 된 책은 서문이 달려있으며(ex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의 뒤에 해설이 달려있다.

책세상판 전집이 나온 이후, 아카넷 대우고전총서에서 박찬국 교수가 번역한 니체의 저작들을 모아 니체 선집을 구성했다. 박찬국 교수의 번역은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워서 최근에는 박찬국 교수의 번역본을 많이 참고하는 편이다.

8.3. 위작

니체와 여동생, 50년간 숨겨져 왔던 두 사람 사이의 수상한 관계가 마침내 그 위대한 철학자 자신의 고백으로 드러났다. 뛰어난 철학자, 무섭도록 야심만만한 그의 여동생,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육체적으로 사랑을 나눴고, 그 사랑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돼 그들의 삶에서 다른 이성이 배제됐다. 독자들은 몇 페이지만 읽어도 깨닫게 될 것이다. 숨 막힐 듯 긴장감을 선사하는 이 책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금서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19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철학자는 무서우리만치 솔직하면서도 담담하게 고백한다. 어쩌다가 동생과 그런 위험한 관계에 빠졌는지. 왜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 수밖에 없었는지. 동생의 남편을 어떻게 자살로 이르게 했는지. 《여동생과 나》는 니체가 예나의 정신병원에 갇혀 있을 때 쓴 책이다.
책 《여동생과 나》의 광고 중에서...
니체가 정신병원에 갇혀 있을 때 쓴 자서전이라고 알려진 《여동생과 나》라는 책에서, 니체가 여동생과 육체적인 사랑을 나눴다고 주장을 하는데, 이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다. 월터 카우프만은 각종 증거를 제시하며 그 책 자체가 위작임을 밝혀냈다. 그 책의 실제 저자는 '새뮤얼 로스[245]'로, 감옥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사기꾼이었다. 그는 다른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도 빌려, 비슷한 위작을 만들었고 그렇게 그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던 전과범이다. 그런 사실이 일찍이 밝혀졌음에도 지금도 영국과 미국에서는 《여동생과 나》가 표지에 사기꾼의 이름이 아닌 '프리드리히 니체'로 적힌 채, 여전히 출판되고 있다. 물론, 방대한 문헌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출간하여 현재 정본으로 평가받는 '비평판 니체 전집'에서는 이 책을 당연히 포함시키지 않는다.

니체의 자서전은 《 이 사람을 보라》 단 한권 뿐이며, 이 책에서 니체는 자신의 유년기와 가족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어머니와 여동생에 대해서는 철학적으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는 식으로 악평을 써놨다. 거기다가 니체는 반유대주의자를 싫어했는데, 바로 니체의 여동생이 그 반유대주의자였다.

9. 관련 강의 영상

[navertv(19450214)]

10. 관련 문서

10.1. 니체 철학 용어

10.2. 관련 인물

  • 리하르트 바그너 : 니체가 젊었을 때 따랐던 작곡가. 니체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바그너가 기독교적ㆍ민족주의적 성향으로 기울자 그를 비판하기 시작했고, 결국 헤어진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 초기 니체 철학은 쇼펜하우어의 니힐리즘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246]
  • 루 살로메 : 니체가 한때 짝사랑했던 여인으로, 청혼 신청도 해보았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살로메는 이후 릴케나 프로이트하고 교류하게 된다. 특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니체의 사상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얘기되기도 하는데, 아마 살로메를 통해 니체와 단 2주 동안 교제하며 접한 그의 사상이 프로이트에게 영향을 준 것 같다는 추측도 있다.
  • 질 들뢰즈 : 니체를 연구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철학을 탄생시켰다.
  • 미셸 푸코 : 푸코는 니체의 계보학적 관점을 이용해 당시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지던 근대성을 상대화하고 비판하는 작업을 하였다.
  • 미하일 바쿠닌 : 니체의 사상은 19세기 아나키스트인 바쿠닌의 사상과 비슷한 면모가 많이 보인다.[247] 다만 바쿠닌의 책을 읽었다는 정황은 전혀 없고, 도리어 니체는 아나키스트를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을지는 모르나 그의 사상을 따랐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 아돌프 히틀러 : 니체의 위버멘쉬 및 주인의 도덕 사상을 강자의 지배논리라며 멋대로 왜곡시켰다. 하지만 후대의 철학자들은 니체의 사상은 '강자를 넘어서려고 하는 의지'를 옹호했지, '강자'를 옹호하진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니체의 사상이 강자의 지배논리로 해석되어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10.3. 기타

11. 여담

  • 기존에 절대적이라고 믿어 왔던 전통적 가치관들을 망치로 다 깨뜨린다고 하여,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이 있다. 사실 이 별명도 니체 본인이 스스로를 그렇게 부른 것에서 나왔다.
  • 니체는 10세 때 모테트[250]를 작곡하는 등 10대 시절부터 아마추어 작곡 활동을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음악이 없는 삶이란 잘못된 것이다"라는 얘기까지 할 정도였다. 안타깝게도 청년 시절 이후부터는 본업인 저술에 몰두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작곡에 할애하지는 않았지만, 바쁜 와중에도 오페라나 오케스트라곡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음악 스타일은 슈만과 흡사했다. 많지는 않지만 음반으로도 발매되었다. 아래 곡은 니체가 작곡한 관현악 합창곡 「삶에 대한 찬가 Hymnus an das Leben (1887년)」이다.
  • 종종 원효를 한국의 니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굴 속 해골물을 먹고 깨닫고는 세상에 나가 자신의 지혜를 광대처럼 '춤'을 추면서 전파했던 원효를 두고, 마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차라투스트라[251]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본 것이다. # #


[1] /ˈfʁiː.dʁɪç ˈniːt͡ʃə/ 성씨의 독일어 국제음성기호 표기는 Nie(니)-tzsche(처)로 끊어 읽은 [ˈniːt͡ʃə\]이지만 Nie(니)-tz(츠)-sche(셔)로 끊어 읽은 [ˈniːt͡sʃə\]도 허용된다. tzsch는 지금은 고유명사 외에는 쓰이지 않는 독일어의 오중문자(pentagraph)로 [t͡ʃ\] 발음을 나타낸다. [2] 독일 연방은 나폴레옹 전쟁의 결과를 수습하기 위해 유럽의 여러 나라가 빈 회의에서 유럽의 지도를 다시 만들 때 연합국들이 모여 만든 연방 국가로, 왕자와 공작, 주교, 선거후가 지배하던 39개의 독립된 군주국과 자유도시로 구성되었다. 다만 니체가 태어났을 당시 작센 주는 명목상 독립된 지역이었을뿐, 사실상 프로이센 왕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3] Röcken : 라이프치히에서 남서쪽으로 약 21km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 200명 정도 살고 있는 매우 작은 마을이다. 현재는 작센안할트 주 소속이다. [4] 장례식은 3일 뒤인 1900년 8월 28일에, 그가 태어난 뢰켄(Röcken Churchyard #)에서 치러졌다. [5] 임시교수는 1868년부터 했었다. [6] 『도덕의 계보』에서 신이 '조상에 대한 공포'로부터 기원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듯이, 신은 허구(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이 니체의 기본 입장이다. 따라서 니체의 유명한 말, ' 신은 죽었다'는 말은, 진짜 신이 있는데 죽었다는 것이 아니라, 신이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이제 그것이 거짓말인 것을 알았다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다만 니체는 유용성의 측면에서 '신을 믿는 것(종교)'을 아예 없애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데, 이 경우에도 유용한 종교는 그리스도교가 아닌 '다신교'이다. [7] 참고로, 니체는 반기독교(Anticrist)인 것은 맞으나 반신론(Antitheism)이라고까지는 볼 수 없다. 니체는 그리스의 신들과 인도의 신들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다. 그렇다고 반유일신론도 아닌게, 니체는 구약의 신에 대해서 긍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니체가 신에 대한 적극적인 반박을 할 때도 있는데, 그 때 그 반박은 '기독교의 신'에 해당되는 반박이었다. 즉, 니체가 반박을 하면서까지 부정적으로 본 '신'은 '신약의 신'에만 한정된다. [8] Gott ist tot! Gott bleibt tot! Und wir haben ihn getötet! Wie trösten wir uns, die Mörder aller Mörder? [9] Ich kenne mein Los. Es wird sich einmal an meinem Namen die Erinnerung an etwas Ungeheures anknüpfen – an eine Krise, wie es keine auf Erden gab, an die tiefste Gewissen-Kollision, an eine Entscheidung, heraufgeschworen gegen alles, was bis dahin geglaubt, gefordert, geheiligt worden war. Ich bin kein Mensch, ich bin Dynamit. [10] 서양의 전통적인 최고 가치로서의 신이 부재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한 시작은, 소크라테스가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이 존재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시작되었는데, 이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는 이원론에 의해 육체적 삶을 도외시하는 문제가 생겼다. 이 문제는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과 그리스도교가 계승하며 더욱 고착화된다. 특히 그리스도교는 현실의 삶보다 내세의 삶(천국)을 더 강조하기에, 천국을 강조할수록 '현실에서의 삶'은 점점더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신은 죽어야 된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다. [11] 절대적 가치(신)가 사라진 세상에선, 스스로가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며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 속에 살고 있으며 서로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면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스스로가 만든 가치가 상대가 만든 가치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하기 위한 노력과 의지가 곧 '힘에의 의지'가 된다. 하지만 이것이 상대방의 가치를 짓밟고자 함은 아니다. 상대방과의 경쟁을 통해 나의 가치가 세련되게 다듬어지므로, 상대방의 가치는 나의 가치 형성에 필수적이며 따라서 상대방의 가치 또한 소중해 할 줄 안다. 이런 경쟁을 통해 내 삶을 지배하는 가치를 내 스스로 만들어 내고, 내 삶의 규칙들을 내 손으로 작성하는, 그런 사람이 위버멘쉬가 된다. [12] 초인/Übermensch(Overman), (보통)사람을 넘어서라. 니체는 개개인이 스스로의 가치와 욕망을 추구하는 '정신적 귀족'이 되기를 원했다. 니체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를 '노예'라고 불렀는데, 노예는 자신의 욕구를 절제한다. 또한 노예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 '주인'에게 있다는 것을 이용해, 다른 사람에게 권리(힘에의 의지)를 양보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 이러한 노예의 반대를 뜻하는 것이 '정신적 귀족'이다. 즉, 자신의 욕구를 마음껏 발산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자세를 말한다. [13] 니체는 위버멘쉬를 설명할 때 '어린아이가 되라'고 말하는데, 어린아이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즐긴다. 이야말로 귀족의 자세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노예는 남의 눈치를 보고 살아가며(그게 약자라면 물질적 경쟁하기 위하여, 그게 강자라면 거스르지 않기 위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한다. 노예는 단지 남의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긍정하지만(자신을 선하다고 보기 위해서 자신을 억압하는 주인을 악으로 두는 것), 귀족은 자신의 가치를 긍정할 줄 알기 때문에 그런 자신의 가치와 대립될 자격이 있는 남의 가치를 소중히 할 줄 안다. [14] 스스로가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어떤 욕망의 대상을 성취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모든 욕망은 성취를 이루면 권태로워진다. 즉 가치 생성의 마지막 귀결은 권태라는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삶이 허무하다는 허무주의에 빠진다. 우리의 일상도 욕망추구와 마찬가지다. 결국 일상은 반복됨으로써 권태를 느끼고 괴로워한다. 하지만 니체는 이 반복된 일상(욕망추구)을 뒤집어서 생각하고자 한다. 반복은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다. 반복의 원운동에서 고통은 기쁨으로 변하고, 권태는 열정으로 변하며 절망은 희망으로 변한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이러한 반복의 고통 자체를 자신의 열정을 자극하는 것으로 바꿀 줄 안다. [15] 아모르 파티(Amor fati/라틴어)를 말한다. 영원회귀에서 내가 선택한 모든 삶의 가치들은 연결되어 있으므로, 우리가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내가 선택한 모든 삶의 가치들과 그 가치들에 연결된 모든 가치들, 그리고 그 의미를 위해 살아가는 나 자신의 길 그 자체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운명은 자신이 만들어왔고 자신이 만들어갈 운명이 설혹 그 결과가 불합리하게 여겨지더라도, 자신이 만들어왔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그 불합리한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 운명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을 말한다. [16] 니체사상이 나치에게 이용된 이후로 유럽에서는 금기시되다가 다시 발굴된 것은 하이데거 질 들뢰즈에 의해서이다. 영미철학계 내에서도 적을 분석한다는 차원에서 니체 연구가 들어갔는데, 영미철학계는 사실 니체 사상이 나치가 말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알리는 철학적 작업들을 통해서 영미권에도 니체전문가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유럽권에서는 니체를 실존철학, 포스트모더니즘사상과 연관짓는 반면에, 영미권의 분석들은 대부분 니체를 정치철학적으로 접근하는 편이다. [17] 출처 [18] 앞뒤 문장을 더 적으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학자, 특히 철학자의 정직성을 측정하려면 마르크스와 니체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보면 된다. 니체와 마르크스가 없었다면 자신의 저술이 상당 부분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그저 자신과 타인을 속이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란 정신적으로나 지성적으로나 사실상 마르크스와 니체가 만든 세계다.Wilhelm Hennis, 2000. "The Trace of Nietzsche in the Work of Max Weber", Max Weber's Central Question. (Threshold Press). p.149. / Bryan Turner가 1999년에 쓴 Classical Sociology 85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니체는 불신자가 신자가 되거나, 보수주의자가 혁명가가 되거나, 방법론적 학자가 몽상가가 되거나,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가 광신자가 되어왔다”고 말한다. [20] 이것은 '도덕의 계보학'에서 니체 본인이 직접 언급하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니체는 아포리즘(일부 번역본에서는 잠언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잠언은 한마디의 짧은 경구이며 아포리즘은 어느 정도의 부피를 지닌 긴 논의라는 점에서 서로 명확히 구별된다)으로 쓰인 자신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일단 그것을 온당하게 읽어내는 것만 해도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 쓰고 있다. '아침놀' 서문에서는 대놓고 본인을 읽는 법을 배우라고 하고 있다(...) [21] 이 지역은 명목상 독립된 지역이었을 뿐, 사실상 프로이센 왕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22] 다만, 니체는 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생일에 태어났다. 이 때문에 나에게는 한없는 슬픔을 안겨준 사건이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아버지가 나에게 ' 프리드리히'라는 이름을 안겨준 일이다.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면 생일이 휴일이었다는 점뿐이다." [23] 외국어 표기법에 따라서 '엘리자베트'라고 표기되기도 하고, 같은 표기법에 따라서 관용어으로 쓰일 때는 '엘리자베스'로 표기되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수 권의 니체 전기(뤼디거 자프란스키의 『니체』, 수 프리도의 『니체의 삶』 등)에 따라서 관용어 '엘리자베스'로 표기한다. 엘리자베스의 본명은 '테레제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니체(Therese Elisabeth Alexandra Nietzsche)'이다. 아버지가 알텐부르크에서 가정교사로 지낼 때 가르쳤던 공작 딸들의 이름을 이어서 지었다. (공작에게는 3명의 딸이 있었는데, 각각의 이름이 '테레제',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였다.) [24] 여담 참고. [25] "However many young talents I have seen develop under my eyes for thirty-nine years now, never yet have I known a young man, or tried to help one along in my field as best I could, who was so mature as early and as young as this Nietzsche." (Walter Kaufmann, The Portable Nietzsche, p. 7) [26] 1869년 바젤대학교 고전문헌학 객원 교수, 1870년 정교수. [27] 물론 대학측은 니체의 제안을 거절했다. [28]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에 있는 도시. [29] 니체는 이시기에 친구의 도움을 받아 『반시대적 고찰』을 겨우 쓰고 있었지만 친구가 집으로 돌아가자 더이상 책을 쓸 수 없었다. 다행히 『비극의 탄생』을 읽고 감동을 받은 작곡가 하인리히 쾨젤리츠가 니체를 찾아와 기꺼이 니체의 저술을 도왔다. 쾨젤리츠는 이후 니체가 죽을 때까지 자진해서 니체를 도와 니체가 한 말을 받아쓰고,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악필인 니체의 메모를 깨끗한 글씨로 옮기는 작업을 한다. (쾨젤리츠는 나중에 '페터 가스트'로 이름을 바꿈) [30] 그렇게 오랫동안 서로를 아끼고 존중한 두 남자가 결정적인 불화를 일으키게 된 원인은 엘리자베스의 말대로 「파르지팔」에서 보여준 바그너의 지나친 종교심 때문이 아니었다. 나쁜 의도는 아니었지만, 바그너가 주고받은, 즉 니체에게 치명타를 안겨준 그 편지들에 관해 니체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 수 프리도 《니체의 삶》 박선영 옮김, 로크미디어, 2020, p.284) [31] 당시 사람들은 자위행위가 니체가 겪는 증상 같은 심각한 안구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사실을 걱정한 바그너는 아이저 박사에게 자신의 우려를 표명하며 경솔한 편지 한 통을 보냈다. "니체 군의 상태를 오랫동안 보아오면서 지적 능력이 뛰어난 청년들 중에 그와 같거나 비슷한 증상이 있는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비슷한 증상으로 몸이 좋지 않은 그들을 보며 그 이유가 모두 자위 때문이라 확신했습니다. 니체를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후로 그의 예민한 성격과 특유의 습관을 알고 나니 저의 우려가 점점 확신으로 변했지요." ( 수 프리도 《니체의 삶》 박선영 옮김, 로크미디어, 2020, p.282 ) [32] 니체는 바그너가 죽고 1주일 뒤에 프란츠 오버베크에게 편지를 써서 바그너가 자신에 관해 담당 의사와 불쾌한 내용의 편지를 교환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고 밝혔다. 언제나 신중하고 관대했던 그의 성격이 이 대목에서도 드러난다. "바그너는 확실히 내가 아는 가장 완전한 사람이었다네.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지난 6년간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지. 하지만 그와 나 사이에 아주 치명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어.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르네." 4월 21일에 페터 가스트에게 쓴 편지에서는 좀 더 대놓고 말했다. "바그너는 악의적인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어. 나의 독특한 사고가 비정상적인 행위를 무절제하게 한 결과라는 자기의 생각을 말하려고 편지를 주고받은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남색에 빠진 사람이라는 의도로 말일세." 몇 달 뒤인 7월에는 프란츠 오버베크의 아내 이다에게도 한 해 전에 '자신에게 치욕을 안겨준 최악의 배신행위'를 알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수 프리도 《니체의 삶》 박선영 옮김, 로크미디어, 2020, p.395 ) [33] 파울 레(Paul Ludwig Carl Heinrich Rée, 1849–1901)는 독일의 작가, 의사, 철학자다. 『도덕 감정의 기원』이라는 책을 1877년에 출간해서 니체에게 영향을 끼쳤다. 니체는 파울 레를 1873년에 처음 알게 되었다. 폼머른 지방의 부유한 유대인 지주 가문의 아들인 파울 레는 법학을 공부하다가 철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그는 바젤로 와서 자신보다 불과 몇 살 연상인 니체의 강의를 들었다. 두 사람의 우정은 1876년에서 1877년 사이의 겨울에 소렌토의 말비다 폰 마이젠부크의 집에 함께 머물 때 최고조에 달했다. 두 사람은 긴밀하게 공동 작업을 햇는데, 각자 자신이 쓴 원고를 낭독하고 서로 조언과 비판을 주고 받았으며 원고를 수정해주기도 했다. 이러한 우정은 5년 후인 1882년 늦은 가을에 루 살로메를 둘러싼 사랑에 얽히면서 깨진다. 파울 레는 니체와 결별한 후에 도덕철학에 관한 저서를 몇 권 더 발표했으며, 그 후에는 의학을 공부해 아버지가 사는 곳으로 가서 개업의가 되었다. 그는 톨스토이의 추종자로서 농부들을 도왔는데, 그들 사이에서 거의 성인으로 통했다. 니체가 죽자 그는 실스마리아 근처로 이사해 그곳에서 산골 사람들을 위한 의사로 활동했다. 니체가 죽은 지 1년 후에 그는 알프스 산을 등산하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사고였는지 아니면 자살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파울 레는 죽기 직전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나는 철학을 해야 한다. 만일 철학할 소재가 더 이상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뤼디거 자프란스키 《니체, 그의 사상의 전기》 오윤희, 육혜원 옮김, 꿈결, 2017, p.238~239) [34] 하지만 실제로는 아마 그보다 길게, 약 한 달 가까이 걸렸을 것으로 보인다. (수 프리도 《니체의 삶》 박선영 옮김, 로크미디어, 2020, p.394) [35] 보통 신약성경의 복음서를 4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라고 하는데, 니체는 자신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기존 4복음서의 '도덕'을 대체해야 된다는 의미에서 '다섯 번째 복음서'라고 말한 것. [36] 니체가 저술하려고 했던 네 권의 책을 말한다. 각각의 책이름은 "안티크리스트, 자유정신, 부도덕자, 디오니소스". 이중 안티크리스트만 출간된다. [37] 수 프리도 《니체의 삶》 박선영 옮김, 로크미디어, 2020. [38] 뤼디거 자프란스키 《니체, 그의 사상의 전기》 오윤희, 육혜원 옮김, 꿈결, 2017, p.408 [39] 니체가 뇌매독 진단을 받은 것은 그의 음경에 작은 흉터가 있는 것과 '두 번 감염된 적이 있다'고 니체가 직접 말한 것 때문으로 보인다. 그들은 니체가 매독을 말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당시 니체의 과거 진료 기록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 기록을 볼 수 있었다면, 니체가 젊었을 때, 그러니까 정상적인 상태에서 아이저 박사에게 진료를 받았을 때, '임질'에 두 번 걸린 적이 있다고 말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수 프리도 《니체의 삶》 박선영 옮김, 로크미디어, 2020, p.558) [40] 니체는 그 후로 11년을 더 살았다. 게다가 3기 매독에 나타날 수 있는 탈모나 코뼈 함몰 증상도 없었다. 따라서 빈스방거가 니체를 직접 진찰하고 확진을 내리지 않은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수 프리도 《니체의 삶》 박선영 옮김, 로크미디어, 2020, p.564) [41] 클라우스 메서슈미트의 작품. [42] 니체는 '선악의 저편' 22절에서 ' 힘에의 의지'를 주장하면서 위의 말을 한다. 니체는 여기서 자신의 해석(힘에의 의지)을 반박하라고 종용한다. 바로 '반박하려는 의지', 그것이 니체가 말하는 '힘에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통해 상대를 증오해선 안 된다. 상대는 나의 성장을 도와주는 훌륭한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반박하는 자는 반박당하는 자와 일종의 '놀이'를 하면서, 자신만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나간다. 그리고 그 가치는 그의 삶에 의미와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그의 삶을 더욱 활력넘치게 해줄 것이다. [43] 훗날 덧붙인 서문에서는 쇼펜하우어의 예술론을 보충했다시피한 처음 관점(아폴론 대 디오니소스)과 달리, 후기 니체 자신의 철학적 관점 즉 '그리스도교 대 디오니소스'의 구도를 말한다. (기껏해야 서문에서 잠깐 언급하는 정도이지만) 그의 처음 관점과 보다 원숙한 관점이 대비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텍스트이다. [44] 뤼디거 자프란스키 『니체 그의 사상의 전기』 오윤희ㆍ육혜원 옮김, 꿈결, 2017, p.77 [45]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고 대비되기 때문에 이분법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이러한 이분법적 설명은 '이분법 자체'를 해체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는 점을 명심하자. 즉, 니체는 개별성을 말하는 아폴론적인 것보다 그것들이 하나로 도취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더 방점을 두고 있다. 아폴론적인 것='이분법',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분법의 해체'이며,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설명상' 이분법적 형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 그 의도나 내용이 이분법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니체는 그래서 그 '설명'을 할 때조차 '애매'하게 말하는데, 그 '애매함'은 바로 이분법적인 설명형식을 깨부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46] 뤼디거 자프란스키 『니체 그의 사상의 전기』 오윤희ㆍ육혜원 옮김, 꿈결, 2017, p.78~79 [47] 뤼디거 자프란스키 『니체 그의 사상의 전기』 오윤희ㆍ육혜원 옮김, 꿈결, 2017, p.80 참조. [48]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5, p.174~175 [49] 과거의 자신을 죽이고 다시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이 바로 '영원 회귀'다. 여기서 과거의 자신을 죽인다는 것은 '망각'을 의미한다. 그래서 모든 것이 초기화되기 때문에 내가 좋아했던 것, 내가 싫어했던 것들도 모두 다시 되돌아오게 된다. 이러한 영원 회귀는 한 사람의 몸과 마음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의지를 연결시키는데 있어서도 적용된다. 인간은 생식을 통해 새로운 인간을 창조한다. 그리하여 한 사람의 의지는 그 다음 사람의 의지로 새롭게 태어난다. 역사와 문화는 그렇게 수천년을 이어져 온 의지의 총화이다. 이 수천년을 이어져 온 의지의 총화를 망치로 부수고 그 자리에 자신의 가치를 새기고자 하는 모든 노력(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그것이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다. [50] 그대들은 일찍이 하나의 기쁨에 대해 '그렇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오, 내 벗들이여, 그랬다면 그대들은 또한 모든 비애에 대해서도 '그렇다'라고 말한 셈이다. 모든 것이 사슬로 연결되어 있고, 실로 묶여 있으며, 사랑에 빠져 있으니. 그대들이 일찍이 '한 번, 또 한 번'을 원한 적이 있는가? 그대들이 일찍이 "네가 마음에 든다, 행복이여! 찰나여! 순간이여!" 라고 말한 적이 있다면, 그대들은 그 모든 것이 되돌아오기를 원했던 것이다.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고, 모든 것이 영원하며, 모든 것이 사슬로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것이 실로 묶여 있고, 모든 것이 사랑에 빠져 있다. 오, 그대들은 이런 세계를 사랑한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승영 옮김, 사색의숲, 2022, p.632) [51]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1, p.222 (강조는 해당 책에서의 강조) [52] 분만이라는 일이 유전이 진행되고 계속되는 것에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의식'은 본능적인 것과 어떠한 결정적인 의미에서도 대립되지 않는다. 철학자의 의식적 사고의 대부분은 그의 본능에 의해 은밀하게 인도되고 특정한 궤도를 따라서 움직이게 된다. ㅡ 《선악의 저편》 3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27) (강조는 해당 책에서의 강조) [53] 《선악의 저편》 5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30) [54] 《선악의 저편》 6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34) [55] 물리학도 단지 하나의 세계를 해석하고 짜 맞추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세계를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이제 대여섯 명의 두뇌 속에서 어렴풋이 떠오르고 있다. ㅡ 《선악의 저편》 14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52) [56] 물리학에서는 무엇이 명료한 것이고 무엇이 '설명되는' 것인가? 그것은 보고 만질 수 있는 범위의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이 정도까지만 탐구해야 한다. 이와는 반대로, 고귀한 사유방식이었던 플라톤적인 사유방식이 갖는 매력은 바로 명백한 감각적 증거에 저항하는 데에 있었다. (중략) 이와 같은 플라톤식의 세계 극복과 세계 해석에는 오늘날의 물리학자들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 존재하며, 또한 '최소한의 노력'과 '최대한의 어리석음'이라는 원리를 내세우는 생리학자들 가운데 다윈주의자이자 반목적론자들이 제공하는 것과도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 존재한다. "인간이 보고 붙잡을 수 있는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는 탐구할 것도 없다"는 명제가 플라톤의 명제와 다르다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명제는 오로지 거친 노동만을 해야 하는 미래의 기계 노동자와 토목 노동자와 같은 조야하고 근면한 종족에게는 가장 타당한 명제일 것이다. ㅡ 《선악의 저편》 14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53) [57] 니체는 인과론에 대해서도 비판하는데, 주의해야 할 점은 《선악의 저편》 21절에서 물질의 인과관계만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니체는 같은 책 36절에서는 의지의 인과관계를 긍정하고 있다. 따라서 니체는 인과론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인정하고 믿는다면 ㅡ 우리가 의지의 인과관계를 믿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인과관계 자체를 믿는다는 것과 다름 없다 ㅡ 우리는 의지의 인과관계를 유일무이한 인과관계로서 가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98) [58] 인간의 기본충동들이 철학에서 그야말로 영감을 불어넣는 수호신으로서 얼마나 크게 작용했는지를 고찰해볼 경우, 우리는 이러한 기본충동들 모두가 이미 한 번은 철학을 수행해왔으며, 그 기본충동들 하나하나가 바로 자신을 기꺼이 존재의 궁극목표이자 나머지 모든 충동 위에 군림하는 정당한 주인으로 내세우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ㅡ 《선악의 저편》 6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32) [59] 우리가 처음부터 우리의 무지 상태를 존속하게 하려고 애썼던 것은 상상도 못할 자유, 무분별, 경솔함, 왕성함, 삶의 명랑함을 즐기기 위해서, 즉 삶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이제까지 무지라는 이 견고한 지반 위에서 비로소 학문이 자라날 수 있었고, 앎에의 의지는 그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무지, 몽매함, 허위에의 의지를 기반으로 해서 자라날 수 있었다. 앎은 무지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무지가 세련된 것이었다! 다른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언어는 조야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단지 정도 차이나 여러 미묘한 단계가 존재할 뿐인데도 계속해서 앎과 무지의 대립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살과 피'가 되어버린 도덕적 위선이 우리들 깨어 있는 자들의 말까지도 왜곡할 수 있다. 여기저기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간파하고 있으며, 최상의 학문이야말로 이렇게 단순화되고 철저하게 인위적이고 적당히 꾸며지고 적당히 왜곡된 세계에 우리를 붙잡아 두려고 한다는 사실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최상의 학문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오류를 사랑한다. 왜냐하면 학문도 하나의 살아 있는 것으로서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ㅡ 《선악의 저편》 24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74) [60] 놀라운 사실은 사상 자체에서나 통치, 웅변과 설득, 예술, 윤리 등의 어느 분야에서든지 이 지상에서 자유롭고 정교하며 대담하고 춤처럼 경쾌하며 대가다운 확신을 갖는 것으로서 존재하거나 존재해온 모든 것은 '그러한 전횡적인 법칙들의 폭정' 덕분에 비로소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해서 '자유방임'보다는 바로 이러한 폭정이야말로 '자연'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다. 모든 예술가는 자신의 '가장 자연스런' 상태, 즉 '영감에 사로잡힌 순간에 영감을 자유롭게 정리하고 배치하며 처리하고 그것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 방임의 감정과 극히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ㅡ 《선악의 저편》 188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195) [61] 어떤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반드시 거부할 필요는 없다. 이런 주장을 내세우는 우리의 새로운 언어는 아주 이상하게 들리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판단이 얼마나 생명을 촉진하고 보존하며, 얼마나 종을 보존할 뿐 아니라 육성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즉 가장 잘못된 판단들이 우리에게 결코 없어서는 안 되는 판단들이며, 논리적 허구를 용인하고 절대자ㆍ자기 동일자라는 전적으로 고안된 세계를 기준으로 하여 현실을 평가하면서 수에 의해서 세계를 지속적으로 왜곡하지 않고서는 인간은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또한 잘못된 판단을 포기하는 것은 생을 포기하고 생을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거짓을 삶의 한 조건으로 인정하는 것은 물론 통상적인 가치 감정에 위험한 방식으로 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저항을 감행하는 철학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선악의 저편에 있다.ㅡ 《선악의 저편》 4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28~29) [62] 인간의 기본충동들이 철학에서 그야말로 영감을 불어넣는 수호신으로서 얼마나 크게 작용했는지를 고찰해볼 경우, 우리는 이러한 기본충동들 모두가 이미 한 번은 철학을 수행해왔으며, 그 기본충동들 하나하나가 바로 자신을 기꺼이 존재의 궁극목표이자 나머지 모든 충동 위에 군림하는 정당한 주인으로 내세우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충동은 지배욕으로 가득 차 있고 지배자로서 철학적 사고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ㅡ 《선악의 저편》 6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32) [63] 어떤 한 사람에게 정당한 것이 다른 인간에게도 반드시 정당할 수는 없다는 것,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도덕을 요구하는 것은 보다 높은 인간에게는 해가 된다는 것, 요컨대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위계질서가 존재하며, 따라서 도덕과 도덕 사이에도 위계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고도 감지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ㅡ 《선악의 저편》 228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290) [64] 친애하는 나의 철학자들이여, 이제부터 우리는 '순수하고 의지를 결여하고 있고 고통도 갖지 않는 무시간적인 인식주관'을 상정한 저 위험하고 낡은 개념적 허구를 경계하자. 우리는 '순수이성'이나 '절대정신'이나 '인식 자체'와 같은 모순적인 개념들의 촉수를 경계하자. 이러한 개념들은 항상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하나의 눈을, 즉 전혀 어떠한 방향으로 치우쳐서는 안 되는 눈을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눈에서는 능동적으로 해석하는 힘은 억압되어야 하고 결여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본다는 것이 어떤 것을 보는 것이 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힘을 통해서이다. 따라서 그러한 개념들은 항상 불합리하고 어처구니없는 눈을 요구하는 것이다. 오직 관점적인 봄만이, 오직 관점적인 '인식'만이 존재한다. 우리가 하나의 사태에 대해서 더 많은 정념으로 하여금 말하게 할수록, 우리가 동일한 사태에 대해서 더 많은 눈과 다양한 눈을 동원할수록, 이러한 사태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나 '객관성'은 그만큼 더 완벽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의지를 모두 제거하고 정념들을 남김없이 배제한다는 것을 우리가 설령 할 수 있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지성을 거세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ㅡ 《도덕의 계보》 세 번째 논문 12절.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1, p.221~222) [65] 현대의 역사 기술의 가장 고귀한 이상은 거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목적론을 거부한다. 그것은 이제는 어떤 것도 '증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재판관 역할을 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이 점에 자신의 좋은 취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단지 확정하고 '기술할' 뿐이다. 이 모든 것은 대단히 금욕주의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층 더 허무주의적이다. 이 점에 대해서 자신을 기만해서는 안 된다! ㅡ 『도덕의 계보』 세 번째 논문 26절.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1, p.290) [66] 결국 그들은 단지 인식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해야만 한다. 즉 그들은 새로운 어떤 것으로 존재해야 하고, 새로운 어떤 것을 의미해야 하며, 새로운 가치를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ㅡ 《선악의 저편》 253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342) [67] 그러나 진정한 철학자는 명령하는 자며 입법자다. 그들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우선 인간이 어디로 가야 하고 어떠한 목적을 가져야 할지를 규정하는 작업을 하면서, 과거를 정리해온 모든 사람과 모든 철학적 노동자의 준비 작업을 자신의 뜻대로 사용한다. 그들은 창조적인 손으로 미래를 붙잡는다. 그리고 이제까지 존재해왔던 것과 또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들을 위한 수단, 도구, 망치가 된다. 그들의 '인식'은 창조이며, 그들의 창조는 하나의 입법이고, 그들의 진리에의 의지는 힘에의 의지다. 오늘날 그러한 철학자들이 존재하는가? 일찍이 이러한 철학자들이 존재했던가? 이러한 철학자들이 존재해야만 하지 않을까? ㅡ 《선악의 저편》 211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256~257 [68] 그러나 은자이자 마멋인 우리는 오랜 동안 은자의 양심 깊숙한 곳에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스스로 다음과 같이 다짐해왔다. 이 귀중해 보이는 화려한 말들도 인간의 무의식적인 허영심에서 비롯된 해묵은 거짓 장식과 허섭스레기, 가짜 금가루에 지나지 않으며, 이렇게 아첨하는 빛깔과 장식 밑에서 자연 그대로의 인간(homo natura)이라는 끔찍한 본바탕이 다시 분명하게 인식되어야만 한다고. 즉 인간을 자연 속으로 되돌려 옮겨놓는 것, 이제까지 자연 그대로의 인간이라는 저 영원한 본바탕 위에 서툴게 써넣어지고 그려진 공허하고 몽상적인 많은 해석과 함축을 극복하는 것, 오늘날 이미 인간이 학문의 훈련을 통해 엄격하게 단련되어 다른 자연 앞에 서 있듯이 앞으로 이 인간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모드르는 오이디푸스의 눈과 봉해진 오디세우스의 귀를 가지고 너무나 오랫동안 "그대는 자연 이상의 존재이며, 자연보다 더 높고 자연과는 다른 기원을 갖는다!"라고 인간을 피리로 유혹해온 해묵은 형이상학적 새잡이들의 귀를 막고 인간 앞에 서게 하는 것, 이것은 실로 기묘하고 광기에 찬 과제인 것 같지만 그것이야말로 실로 진정한 과제인 것이다. ㅡ 《선악의 저편》 230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298) [69] 우리의 욕망과 열정의 세계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실재로서 '주어져 있지' 않고 우리가 우리의 충동이라는 실재 외에 다른 어떤 '실재'로 올라가거나 내려갈 수도 없다면 ㅡ 왜냐하면 사유란 이런 충동들 상호 간의 연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ㅡ 시험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까? 즉 이 '주어져 있는 것'만으로도 이른바 기계적(또는 '물리적인') 세계까지도 이해하기에 충분하지 않는가? 이 경우 기계적 세계는 (버클리나 쇼펜하우어적인 의미에서의) 착각이나 '가상', '표상'을 의미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정념 자체가 갖고 있는 것과 동일한 정도의 실재성을 갖는 것으로서 이해된다. 즉 그것은 유기체적인 과정 속에서 분화되고 전개되어나가기(당연한 일이지만 약하게 되기) 이전에 모든 것이 강력한 통일체 속에 통합되어 있는 정념 세계의 보다 원초적인 형태를 의미한다. 그것은 일종의 충동적 생이며, 그것에서는 모든 유기적 기능이 자기 제어와 동화, 영양 섭취, 배석, 신진대사와 종합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기계적 세계를 이러한 생명의 초기형태로서 이해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궁극적으로 이러한 실험을 하는 것이 허용될 뿐 아니라 방법상의 양심으로부터도 요구된다. 단 하나의 인과관계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그것의 극한에 이르기까지는(굳이 말하자면 불합리한 상태에 이르기까지는)ㅡ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무시해서는 안 되는 방법상의 도덕이다 ㅡ 여러 종류의 인과관계를 가정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수학자들이 말하듯이 '정의로부터' 귀결되는 것이다. 문제는 결국 우리가 의지를 작용하는 것으로서 정말로 인정하는가, 다시 말해 우리가 의지의 인과관계를 믿는가이다. 우리가 그렇게 인정하고 믿는다면 ㅡ 우리가 의지의 인과관계를 믿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인과관계 자체를 믿는다는 것과 다름없다 ㅡ 우리는 의지의 인과관계를 유일무이한 인과관계로서 가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의지'는 물론 오직 '의지'에만 작용할 수 있고 '물질'(예를 들면 '신경')에는 작용할 수 없다. 간단히 말해서 작용이 인정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의지가 의지에 작용을 가한다는 가설과, 따라서 모든 기계적인 사건은 그 속에서 어떤 힘이 작용하는 한 의지의 힘이며 의지의 작용이라는 가설을 실험해보아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우리의 충동적인 생 전체를 의지의 유일한 근본형태 ㅡ 나의 명제에 따르면 힘에의 의지 ㅡ 의 분화와 전개로서 설명할 수 있다면, 또한 모든 유기적 기능을 이러한 힘에의 의지로 환원할 수 있고 이러한 힘에의 의지에 의해서 생식과 영양 섭취 문제 ㅡ 이것은 하나의 문제이다 ㅡ 를 해결할 수 있다면, 작용하는 모든 힘을 '힘에의 의지'로서 분명하게 규정하는 것은 정당성을 얻게 될 것이다. 내부로부터 관찰된 세계, 그것이 갖는 '예지적 성격'에 의해서 규정되고 정의된 세계는 '힘에의 의지' 이외의 것이 아니다. ㅡ 《선악의 저편》 36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98~99) [70] 자연을 있는 그대로 생각해보라. 그것은 한없이 낭비적이고 아무런 관심도 의도도 없으며, 정의감도 배려도 자비도 없고, 풍요로운가 하면 황량하고 동시에 불확실하다. 자연의 무관심 자체가 동시에 힘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ㅡ 《선악의 저편》 9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36~37) [71] 생명 자체는 본질적으로 자신보다 약한 타자를 자기 것으로 하고 그것에게 위해를 가하고 그것을 억압하는 것이다. 그것은 냉혹하며, 자신의 형식을 타자에게 강제하고 타자를 자신에게 동화시키는 것이고, 가장 부드럽게 말한다고 해도 최소한 착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왜 옛날부터 비방하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는 그런 말을 사용해야만 하는가. 앞에서 가정한 것처럼 설령 한 조직체의 내부에서 개인들이 서로를 동등하게 대한다 하더라도 ㅡ 이것은 건강한 모든 귀족체제에서 행해지고 있지만 ㅡ 그 조직체가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해서는 삼가는 모든 행동을 다른 조직체에게 행해야만 할 것이다. 그 조직체는 힘에의 의지의 화신이 되어야만 하며, 성장하면서 주변에 있는 것을 움켜잡고 자신에게로 끌어당겨서 압도하려고 해야만 할 것이다. 이는 도덕적인 이유 또는 비도덕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단지 그 조직체가 살아 있기 때문에 그리고 생은 바로 힘에의 의지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것을 유럽인들의 일반적인 의식은 몹시 꺼리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도처에서, 심지어는 과학의 가면을 쓰고 '착취적인 성격'이 사라지게 될 미래의 사회 상태에 열광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내 귀에는 마치 일체의 유기적 기능이 정지된 하나의 생명을 창조하겠다는 약속과 다름없는 것으로 들린다. 착취란 부패하고 불완전하고 원시적인 사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기체의 근본적인 기능으로서 살아 있는 것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의 의지 자체인 본래의 힘에의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이론으로서는 혁신적인 것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모든 역사의 근본적인 사실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할 정도로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솔직해져야 한다! ㅡ 《선악의 저편》 259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360~362) [72] 아마 내가 바로 위에서 '정신의 근본의지'에 대해서 말했던 것을 바로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그것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을 허락해주기 바란다. 대중이 '정신'이라고 부르는 저 명령적 존재는 자신과 자신의 주위에 대해서 주인이 되고 싶어 하고 자신을 주인으로서 느끼고 싶어 한다. 그것은 다양성으로부터 단일성에 이르려는 의지, 즉 결합하고 구속하고 지배하려고 하며 실제로 지배하는 의지를 갖는다. 그것의 욕구와 능력은 생리학자들이 살아 있고 성장하며 번식하는 모든 것이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는 욕구와 능력과 동일한 것이다. 낯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정신의 힘은 새로운 것을 오래된 것에 동화시키거나 다양한 것을 단일화하고 완전히 모순되는 것을 무시하거나 배척하는 강력한 경향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신은 낯선 것이나 '외부세계'에 속하는 모든 것의 특정한 윤곽이나 특징을 자의적으로 강조하고 자신에 맞게 왜곡한다. 이 경우 정신이 의도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을 자기 것으로 체화하고 새로운 사물들을 기존의 계열 속에 편입시키는 데, 즉 성장하는 데 있으며, 보다 분명하게 말하자면, 성장한다는 느낌, 힘이 증대되었다는 느낌을 갖는 데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것과 상반되는 충동도 이러한 동일한 의지에 봉사하고 있다. 그러한 충동이란 무지와 고의적인 자기 폐쇄를 향한 갑작스런 결단, 자신의 창문을 닫아버리는 것, 이런저런 사물들을 내적으로 부정하고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것, 인식될 수 있는 많은 것에 대해서 일종의 방어 태세에 들어가는 것, 어둠과 폐쇄된 지평에 만족하는 것, 무지를 긍정하고 시인하는 것을 가리키며, 이것들 모두의 필요성은 정신의 동화력,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정신의 '소화력'의 정도에 비례한다. 실로 '정신'은 위장과 가장 많이 유사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때때로 자신을 기만하려는 정신의 의지도 정신의 근본의지에 속한다. 이러저러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단지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일 뿐이라고 멋대로 추측하는 것, 불확실하고 모호한 것을 좋아하는 것, 일부러 은밀하고 좁은 구석에 머무르면서 근시안적이고 피상적인 태도로 모든 것을 자기 멋대로 확대하기도 하고 축소하기도 하며 재배치하고 미화하는 데서 기쁨을 느끼면서 자기만족에 빠지는 것, 이렇게 자신의 힘을 모든 방식으로 자의적으로 표출함으로써 자기만족에 빠지는 것도 정신의 근본의지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다른 정신들을 속이고 다른 정신들 앞에서 자신을 위장하는 일도 서슴지 않으려는 정신의 자세와 창조하고 형성하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의 지속적인 압력과 충동도 정신의 근본의지에 속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정신은 자신의 가면을 다양하게 바꾸는 능력과 교활함을 즐기며 자신의 안전이 확보되었다는 느낌을 즐긴다. ㅡ 《선악의 저편》 230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294~296) [73] 의지란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복합적인 것이며, 단어로서만 단일체일 뿐이다. 바로 이 한 단어에 대중의 선입견이 둥지를 틀고 있으며, 이러한 선입견이 항상 철학자들로 하여금 주의를 소홀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우리는 좀 더 주의하여 '철학적이 되지 않도록' 하자.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즉 모든 의지에는 첫째로 다수의 감정이 있다고. 다시 말해서 어떤 상태로부터 벗어나려는 감정, 어떤 상태로 향하려는 감정, 또한 이렇게 '벗어나려고 하고' '향하려는' 감정에 대한 감정이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팔다리를 움직이지 않고서도 우리가 '의욕'하자마자 일종의 습관에 의해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부수적인 근육감정이 있다. 따라서 감정뿐 아니라 다양한 감정이 의지의 구성요소로서 인정되어야 하는 것처럼, 두 번째로 사유도 의지의 구성요소로 인정되어야 한다. 모든 의지 작용에는 명령하는 하나의 사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상을 '의지'로부터 분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의지로부터 제거한 후에도 의지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처럼 믿어서는 안 된다! 셋째로 의지는 감정과 사유의 복합체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하나의 정념이다. 그리고 그것은 명령의 정념이다. '의지의 자유'라고 불리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사람들이 자신의 명령에 순종해야만 하는 것에 대해서 갖는 우월감이다. 즉 "나는 자유롭다. '그'는 복종해야 한다"는 의식이 모든 의지 속에 도사리고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의지 속에는 저 주의집중, 오로지 하나의 목표에만 똑바로 고정된 시선, '지금 이것 이외의 다른 것은 전적으로 불필요하다'는 저 무조건적인 가치평가, 복종시킬 수 있다는 내적인 확신, 그리고 명령하는 자의 상태에 속하는 그 모든 것이 도사리고 있다. 의욕하는 인간은 복종하거나 복종하리라고 믿는 자기 내부의 어떤 것에 대해서 명령을 내린다. ㅡ 《선악의 저편》 19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60) [74] 유기적인 세계에서 모든 사건은 하나의 제압이자 지배이고, 모든 제압과 지배는 다시 새로운 해석이자 조정인데, 이러한 새로운 해석과 조정을 통해서 이제까지의 '의미'와 '목적'은 필연적으로 불분명하게 되거나 완전히 말소되어야만 한다. (중략) 그러나 모든 목적, 모든 유용성은 하나의 힘에의 의지가 힘이 더 약한 자를 지배하여 그 약한 것에 어떤 기능의 성질을 각인시켰다는 사실의 징표일 뿐이다. 그리고 어떤 '사물'의 역사 전체도 이와 같이 항상 새로운 해석과 조정의 계속되는 기호의 연쇄일 수 있다. (중략) 그것은 오히려 다소간 심화되어가고 다소간 서로 독립적인 채로 그 자체에서 일어나는 제압 과정들의 연속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제압에 반해서 행해지는 저항들이고 방어와 반작용을 목적으로 하는 형식 변화의 시도들이며 성공적인 반대활동의 성과들이기도 하다. ㅡ 《도덕의 계보》 두 번째 논문 12절.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1, p.132~133) [75] 사회 전체의 구조가 확립되고 외부로부터의 위험에 대해서 안전해진 후에, 도덕적 가치 판단에 새로운 전망을 제공해주는 것은 다시 이웃에 대한 공포심이다. 모험심, 대담함, 복수심, 교활함, 약탈욕, 지배욕과 같이 강력하고 위험한 충동들은 이제까지 집단에 유용하다는 의미에서 존중되었을 뿐 아니라 크게 육성되고 단련돼야 했지만(왜냐하면 사회 전체가 위험에 처한 상태에서는 전체의 적에 대항하기 위해서 그러한 충동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제 그것들은 배로 위험한 것으로 느껴지게 된다. 왜냐하면 사회가 안정된 지금에 와서는 그러한 충동들의 돌파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충동들은 점차 부도덕한 것으로 낙인이 찍히고 비난을 받게 된다. ㅡ 《선악의 저편》 201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219~220) [76] 반면에 오늘날 유럽은 무리동물만이 영예를 얻고 영예를 분배해주는 시대가 되었고, '권리의 평등'이 너무 쉽게 '권리 없는 평등'으로, 다시 말해 모든 희귀하고 이질적이며 특권적인 모든 것, 보다 높은 인간, 보다 높은 영혼, 보다 높은 의무, 보다 높은 책임, 창조력과 지배력으로 넘치는 모든 것에 대한 공통적인 투쟁으로 전환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고귀하게 존재한다는 것, 독립적으로 존재하려고 한다는 것, 다르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 홀로 서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야만 한다는 것은 '위대함'이라는 개념에 속한다. 철학자가 다음과 같이 주장할 때 그는 자신의 이성의 일면을 드러내게 된다. "가장 고독하고 가장 은폐되어 있고 무리로부터 가장 이탈해 있는 인간, 선악의 저편에 있는 인간, 자신의 덕들의 주인으로 존재하는 인간, 의지로 넘치는 인간, 이러한 인간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이면서 다양하고 폭이 넓으면서도 충만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위대함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물어보자. 오늘날 위대함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ㅡ 《선악의 저편》 212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260) [77] 여러 종족들이 서로 뒤섞이는 해체의 시대에 살고 있는 인간은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자로서 자신의 몸 안에 다양한 유래를 갖는 유산을 지니고 있다. 즉 상반되는 충동들과 가치기준들, 때로는 상반되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 싸우면서 서로를 좀처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 충동들과 가치기준들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말기 문화의 인간, 흐릿한 빛의 시기의 인간은 대체로 보다 허약한 인간일 것이다. 그가 가장 간절하게 갈망하는 것은 자신이 겪고 있는 전쟁이 언젠가 끝나는 것이다. 행복은 그에게 일종의 진정시키는 치료법이나 사고방식에서와 마찬가지로 주로 휴식, 평온, 충족, 종국적인 통일, 즉 그 자신 그러한 인간이었던 거룩한 수사가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빌려서 말한다면 '안식일 중의 안식일'로서 나타난다. 그러나 그러한 본성 안의 대립과 싸움이 삶을 자극하고 북돋는 역할을 한다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강력하고 서로 화해하기 어려운 충동들에 덧붙여 자신과의 싸움을 조정해 나갈 수 있는 능숙함과 교묘함, 즉 자기 지배와 자기기만이 유전되고 육성된다면, 마력을 지닌 저 불가해하고 불가사의한 인간, 승리를 거두고 사람을 유혹하도록 미리 운명지어진 수수께끼 같은 인간이 출현하게 된다. 그러한 인간이 가장 아름답게 구현된 대표적인 예는 알키비아데스와 카이사르이며, 예술가 중에서는 아마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일 것이다. 그들은 휴식을 갈망하는 저 허약한 유형의 인간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과 때를 같이해서 출현한다. 이 두 유형의 인간들은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으며 동일한 원인에서 발생한다. ㅡ 《선악의 저편》 200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217~218) [78] 고귀한 인간들은 겁 많은 인간, 불안해하는 인간, 소심한 인간,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는 인간, 편협하고 의심 많은 인간, 비굴한 인간, 학대를 감수하는 개 같은 인간, 거지 같은 아첨꾼,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짓말쟁이를 경멸한다. 평민들은 거짓말쟁이라는 것이 모든 귀족의 근본신조다. 고대 그리스에서 귀족들은 자신들을 '우리 진실된 자들'이라고 불렀다. (중략) 고귀한 종류의 인간은 자신을 가치를 규정하는 자라고 느끼기 때문에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는 "나에게 해로운 것은 그 자체로 해롭다"고 판단하면서 자신을 사물들에게 처음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자로서 인식한다. 그는 가치를 창조하는 자인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속하는 것을 존중한다. 그러한 도덕은 자기에 대한 찬미다. 충만한 느낌, 넘쳐흐르려고 하는 힘의 느낌, 고도의 긴장에서 오는 행복감, 베풀어주고 싶어 한느 풍요로움의 느낌이 그런 도덕의 전경에 드러나 있다. 고귀한 인간도 불행한 자를 돕지만, 동정에서가 아니라 넘쳐나는 힘에서 비롯된 충동에서 돕는다. 고귀한 인간은 자신 안에 존재하는 강력한 자를 존중하는바, 이 강력한 자란 자신을 제어할 힘을 가지고 있으며, 말하고 침묵하는 법을 알고 있고, 자기 자신을 엄격하고 혹독하게 다루는 데서 기쁨을 느끼며, 엄격하고 혹독한 모든 것을 존경하는 자다. ㅡ 《선악의 저편》 260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363~364) [79] 그대들은 가능하다면 고통을 없애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는 오히려 일찍이 없었던 정도로 고통을 증대시키고 더 악화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 그대들이 생각하는 안락과 같은 것은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종말로 보인다! 그것은 인간을 우습고 경멸받아야 할 것으로 만드는 상태이며, 자신의 몰락을 원하게 만드는 것이다! 고통을 견디는 훈련, 거대한 고통을 견디는 훈련, 그대들은 이러한 훈련만이 지금까지 인류의 모든 고양을 가능하게 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영혼의 힘을 강화시켜주는 불행 속에서 영혼이 느끼는 긴장, 위대한 파멸을 눈앞에 볼 때 영혼이 느끼는 전율, 불행을 짊어지고 견뎌내고 해석하고 이용하는 영혼의 독창성과 용기, 그리고 또한 일찍이 비밀, 가면, 정신, 간지, 위대함에 의해 영혼에게 선사된 것, 이것들은 고통을 겪으면서 그리고 거대한 고통의 훈련을 겪으면서 영혼에게 선사된 것이 아닌가? 인간 안에는 피조물과 창조자가 통일되어 있다. 인간 속에는 재료, 파편, 잉여, 점토, 오물, 무의미함과 혼돈이 존재한다. 그러나 또한 인간 속에는 창조자, 형성자, 해머의 냉혹함, 관조자인 신을 닮은 신성, 제7일이 존재한다. 그대들은 이러한 대립을 이해하는가? ㅡ 《선악의 저편》 225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283) [80] 여기서 '귀족도덕'과 '노예도덕'이라는 이분법적 설명이 보이지만, 이런 귀족-노예의 구분은 '설명상' 이분법적인 것으로, 기존의 이분법을 해체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즉, '기존의 고정된 이분법적 가치'를 전도(顚倒)시키기 위해서이다. 이는 니체가 한 말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니체는 한 사람의 의지에도 '귀족'과 '노예'가 섞여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귀족도덕이 가리키는 바가 '명확한 것'이 아니라 어떤 애매한 '유형', '취향', '뉘앙스'로 설명한다. 사실은 귀족과 노예를 이분법적으로 딱 나누어 구분하기란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니체의 설명에서 '기존의 고정된 가치'인 줄 알았던 것이 끊임없이 전도(顚倒)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니체 자신도 그 '가치의 전도'를 시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기존의 고정된 이분법적 가치'의 경계는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쉽게 말하자면, 기존에 우리는 도덕은 따라야만 하는 것이고 비도덕은 배척해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니체는 '귀족-노예'의 '이분법적 설명'을 제시하고 그 가치를 전도시킴으로써, 기존 도덕 가치와 비도덕 가치의 이분법적 구분에 의문을 품게 하고 그 이분법적 구분이 무의미함을 유도한다.

이런 '계보학적 방법'은 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미셸 푸코가 니체의 이러한 계보학적 방법론을 많이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81] 정확히는 '동물적 본능을 지닌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것. [82] 니체는 주권자로서의 개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권자로서의 개인은 오직 자신에게만 충실하고, 관습의 도덕에서 다시금 벗어난 개인이며, 자율적이고 초윤리적인 개인(왜냐하면 '자율적'과 '윤리적'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자신만의 독립적이고 끈질긴 의지를 지닌 인간,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인간이다. 이러한 인간에게는 그 자신이 마침내 성취하여 체화한 것에 대해서 긍지를 갖는 의식이, 자신의 힘과 자유에 대한 의식이, 완성에 도달했다는 감정이 존재한다. 진정으로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이 해방된 인간, 자유로운 의지의 소유자, 이 주권자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는 모든 자보다 자신이 얼마나 탁월한 자인지를 어찌 모르겠는가? 이러한 자는 또한 자신의 가치 척도를 갖고 있다. 그는 자신을 척도로 하여 타인을 보면서 존경하기도 하고 경멸하기도 한다. 그는 필연적으로 자신과 동등한 자들, 강한 자들, 신뢰할 수 있는 자들을(약속을 지킬 수 있는 자들을) 존경한다. 즉 주권자처럼 진중하고 드물게 그리고 오랜 숙고 끝에 약속하는 자, 쉽사리 타인을 신뢰하지 않으며 자신이 어떤 사람을 신뢰할 때 그러한 신뢰에 의해 신뢰받는 자에게 영예를 부여하는 자, 자신의 약속을 고초를 겪으면서도 심지어는 '운명에 저항하면서'까지도 지킬 정도로 자신이 충분히 강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약속을 하는 자, 이러한 모든 자를 존경한다. ㅡ 《도덕의 계보》 두 번째 논문 2절.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1, p.100~101 참조) [83] 『선악의 저편』 20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64~65 [84] 이것은 고통을 억지로 견뎌내라는 얘기가 아니다. '고통 그 자체'에 의미가 있으므로, 삶의 즐거움을 얻고 싶은 사람에게 고통은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85] 《즐거운 학문》 제2판 서문 참조.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 전집 12 즐거운 학문, 메시나에서의 전원시, 유고(1881년 봄~1882년 여름)》 안성찬 홍사현 옮김, 책세상, 2005, 서문의 내용을 요약) [86] 근원적인 문제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만족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우리가 어떤 것에 만족하느냐 아니냐다. 우리가 어느 한 순간을 긍정했다면 그로써 우리 자신을 긍정했을 뿐 아니라 삶 전체를 긍정한 것이다. 그 이유는 어떤 것도, 우리 자신에게서든 사물에 있어서든 자기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영혼이 팽팽한 현처럼 단 한 번 행복에 전율하고 울린다면, 그 유일무이한 사건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영원처럼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그 유일한 긍정의 순간에 영원이 받아들여지고, 구원받고, 이유를 얻고, 용인받는다. (니체 『유고 (1886~1887)』, 7(38) NRF, t.XII, p.298) [87] 철학자가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상태. 디오니소스적 태도로 삶을 대하기. 이것에 대한 나의 표현이 운명애다... 그러자면 삶에서 부정당한 측면을 단지 필요한 것일 뿐만 아니라 바랄 만한 것으로도 여겨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용인되었던 측면과의 관계를 따져서 바랄 만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가 더 강력하고, 더 풍부하고, 더 진실된 삶의 측면이라고 보아야 한다. 생의 의지는 그 측면을 통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니체 『유고 (1886~1887)』, 16(32) NRF, t.XIV, p.244) [88] 물론 니체도 부정을 하지만,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에만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니체에게서 부정은 적극적인 부정이 아니라 '달리 원하지 않는 것'이나 '눈길을 돌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인간에게서 말할 수 있는 위대함에 대한 나의 표현은 amor fati다. 이것은 달리 원하지 않는 것, 앞으로도 뒤로도, 영원히."(현재를 사랑하기에 과거와 미래를 달리 원하지 않는다는 것)라고 말했고, 『즐거운 학문』에서는 "네 운명을 사랑하라 Amor fati : 이것이 지금부터 나의 사랑이 될 것이다! 나는 추한 것과 전쟁을 벌이지 않으련다. 나는 비난하지 않으련다. 나를 비난하는 자도 비난하지 않으련다. 눈길을 돌리는 것이 나의 유일한 부정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언젠가 긍정하는 자가 될 것이다!"(비난하는 것에는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겠다는 것)라고 말했다. 즉,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만 부정하겠다는 것이다. [89] 여기서 니체가 말하는 '필연'은 세계가 필연적인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마치 그것을 필연처럼 여기는 나의 확신과 결의에 가깝다. 니체는 세계 자체는 '우연'으로 보았다. 그 우연이 나의 선택을 받아 나의 가치가 되었을 때 그 가치는 마치 나에게만큼은 필연으로 여겨진다는 얘기다. [90] 영원회귀에 따르면 세계는 '필연'으로 귀결되는 것이라고 니체는 주장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는데, 정확히는 부분적으로는 '우연'인데 전체적으로는 '필연'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영원회귀가 가리키는 바이다. 즉, 우연과 필연의 개념마저도 이분법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니체가 필연과 자유(우연)를 이분법으로 구분하지 않았다는 것은 《선악의 저편》 213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고 필연에 따라서 행하는 바로 그때 자유와 섬세함, 충만한 힘의 감정과 자신이 창조적으로 정립하고 제어하고 형성하고 있다는 느낌이 정점에 달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요컨대 그러한 순간에 필연과 '의지의 자유'는 예술가들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91] 헤겔은 "순수한 존재와 순수한 무(無)는 같다"고 말했는데, 니체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은 모든 것을 긍정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쉬운 예를 들자면, 그릇은 그 본질이 비어있는 것이기 때문에 허무하다거나 외롭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거꾸로 비어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담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즉, 따라야할 가치가 사라졌다는 것은, 모든 가치에 대해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을 말한다. [92] 자기 자신의 삶이라는 구경거리는 허무에 벗어나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자기 자신은 필요할만한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자기 자신이 필요한만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삶이 필요하다. 즉, '삶에 필요하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말은 순환논증이라는 것이 니체의 지적이다. 그런데 필요에 의한 이 순환논증은, 사실 철학의 제1원리인 '실체(신)'를 증명하는 방식과 동일하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다.(악순환의 신) [93] 여기서 악순환이란, 스콜라철학의 자기원인(Causa Sui)을 가리키는 것으로, '모든 것의 첫번째 원인이 될 수 있으려면 자기가 자기의 원인이 되어야 함'을 말한다. ( 스피노자 참조) 그리고 스콜라철학에서는 모든 것의 첫번째 원인인 이 '실체'를 '신(deus)'이라 부른다. 니체는 영원회귀 하는 '인생 그 자체'가 철학의 제1원리인 '실체', 곧 '신'의 설명방식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니체의 철학에서 '신'은, '매순간 반복되는 인생'으로 대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니체는 일찍이 『즐거운 학문』에서 신이 죽었으므로 그동안 신의 역할이었던 가치의 창조를 이제 우리가 해야만 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우리 자신이 가치의 창조자가 될 수 있는 전제 조건은 바로 이것이었던 것이다. 영원에 걸쳐서 물릴 줄 모르고 '처음부터 다시(da capo)'라고 외치는 것. 이것이 우리 자신이 가치의 창조자가 될 수 있는 필요조건이고, 신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고 어떻게 살아가야 되냐?에 대한 니체의 대답이다. [94]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134 (본문에서 강조한 내용은 니체의 강조) [95] "우리의 삶에 영원의 형상을 새기자! 이 사상에는 우리의 삶을 무상하다고 경멸하며, 다른 어떤 불확실한 삶으로 눈길을 돌리도록 가르치는 그 모든 종교보다 더 많은 것이 들어 있다." (뤼디거 자프란스키 《니체, 그의 사상의 전기》 오윤희, 육혜원 옮김, 꿈결, 2017, p.300~301) [96] 일부 학자들은 니체의 이런 점을 두고 프래그머티즘의 선구자로 여기기도 한다. 실제로 군나르 시르베크의 『서양철학사』에서는 니체와 실용주의를 묶어서 한 챕터로 둔다. [97] '나는 출구도 모르고 입구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 출구도 입구도 모르는 채 서성이는 자일 뿐이다.' ㅡ 현대인은 이렇게 탄식한다. 이런 현대성으로 인해 우리는 병이 들었다. 미심쩍은 평화, 비겁한 타협, 현대적인 긍정과 부정의 그 모든 도덕적인 불결함으로 인해 병들어 있는 것이다. (중략) 우리의 행복의 공식은 하나의 '예', 하나의 '아니요', 하나의 직선, 하나의 목표다. (프리드리히 니체 『안티크리스트』 박찬국 옮김, 아카넷, 1절 마지막) [98] 인간의 위대함을 위한 나의 공식은 amor fati다. 그가 다른 것을 가지기를 원하지 않는 것, 앞으로도, 뒤로도, 전부 영원히. 필연적인 것은 그저 견뎌내는 것이 아니며, 감추는 것은 더욱더 아니라, ㅡ 모든 이상주의는 필연적인 것 앞에서 허위다. ㅡ 오히려 사랑하는 것이다. (『이 사람을 보라』) [99] 니체는 이를 '자기애의 결의론(Casuistik)'이라고 칭한다. [100] 차라투스트라는 일찍이 자신의 사명을 ㅡ 그것은 또한 나의 사명이기도 하다 ㅡ 엄격하게 규정했기에 이제는 그 누구도 그것의 의미를 오해할 수 없다. 그는 과거의 모든 것을 시인하고 구원하기에 이르기까지 긍정한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거닐지만, 이 경우 사람들은 미래의 파편들이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저 미래의. 그리고 파편이요 수수께끼요 끔찍한 우연인 것을 하나로 모으고 응축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시작(詩作)과 노력의 모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시인도 아니고 수수께끼를 푸는 자도 아니며 우연의 구원자도 아니라면,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과거의 것들을 구원하고 일체의 '그러했다'를 '나는 그러길 원했다!'로 변형시키는 것 ㅡ 이것만이 내가 구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2, p.203~204) [101] 누군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즉 도대체 왜 나는 일반적인 통념으로는 전혀 관심거리도 되지 못하는 이런 사소한 것들을 이야기하는가라고. 더군다나 내가 위대한 과제를 수행하도록 운명지어져 있다면, 그렇게 사소한 것들에 신경을 쓰는 것으로 나 자신을 해치는 것은 아닌가라고. 나는 이렇게 답한다. 사소한 것들 ㅡ 영양, 장소, 기후, 휴식, 자기애의 결의론(Casuistik) 전체 ㅡ 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중요하다고 여겨왔던 그 어떤 것보다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배우는 것을 시작해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2, p.101) [102] 오늘날에는 누구나 자신의 소망과 가장 소중한 생각을 감히 말한다. 그래서 나도 지금 내가 나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 이해를 함에 있어 처음으로 내 마음을 스쳐가는 생각,—앞으로의 삶에서 내게 근거와 보증, 달콤함이 될 생각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나는 사물에 있어 필연적인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보는 법을 더 배우고자 한다.—그렇게 하여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 Amor fati : 이것이 지금부터 나의 사랑이 될 것이다! 나는 추한 것과 전쟁을 벌이지 않으련다. 나는 비난하지 않으련다. 나를 비난하는 자도 비난하지 않으련다. 눈길을 돌리는 것이 나의 유일한 부정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언젠가 긍정하는 자가 될 것이다! (『즐거운 학문』) [103] 하나의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 그가 이러저러한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 그가 바로 이러한 상황과 이러한 환경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다. 각 개인의 숙명적인 본성은 이미 존재했었고 또 앞으로 존재할 모든 것의 숙명에서 분리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의도나 어떤 의지 혹은 어떤 목적의 결과가 아니다. 그는 '인간의 이상' 또는 '행복의 이상' 또는 '도덕성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ㅡ 자신의 존재를 어떤 목적에 맞추려 하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다. '목적'이라는 개념을 고안해낸 것은 우리 자신이다. 목적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각 개인은 필연적인 존재이며 하나의 숙명이다. 그는 전체에 속해 있으며 전체 안에 존재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5, p.76~77) [104] 가치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영감 아래서, 즉 삶의 광학 아래서 말한다. 즉 우리에게 가치를 설정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삶 자체이며, 우리가 가치를 설정할 때 우리를 통해 삶 자체가 가치평가를 하는 것이다. (중략) 각 개인은 미래와 과거로부터의 운명이며, 다가올 것과 존재할 모든 것에 대한 하나의 법칙, 하나의 필연성이다. 그러한 개인에게 '달라져라'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것에 대해, 심지어는 과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조차도 달라지라고 하는 셈이다. 그리고 실제로 일관된 도덕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인간이 달라지기를 바랐다. 다시 말해 유덕해지기를 바랐다. 그들은 인간이 자신을 닮기를, 다시 말해 위선자가 되기를 바랐다.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5, p.60~61) [105] 모든 위대한 말과 모든 위대한 태도는 남의 과제와 남의 사명이다. 그것은 나 자신의 과제와 사명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나 자신의 과제와 사명을 찾는 것을 심각하게 방해한다. [106] 여기서 '이념'은 자기보존의 본능을 가리킨다. [107] 의식의 전 표면 ㅡ 의식은 표면이다 ㅡ 은 모든 위대한 명령에 의해 오염되지 않도록 순수하게 유지되어야만 한다. 모든 위대한 말과 모든 위대한 태도를 조심하라! 본능이 너무 일찍 '자신을 자각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다. 그 사이에, 조직하고 지배하도록 예정되어 있는 '이념'이 의식의 깊은 곳에서 점점 자라나서 명령하기 시작하며, 우리가 옆길과 잘못된 길에서 되돌아오도록 서서히 인도한다. 또한 그 이념은 언젠가 전체를 위한 수단으로서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입증될 개별적인 성질과 자질들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지배적인 과제, 즉 '목표', '목적', '의미'에 대해 무엇인가를 알려주기 전에, 그것에 봉사하는 모든 능력을 차례로 형성하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2, p.98) [108] 내 본능이 높은 곳에서 행했던 보호는, 내가 자신 속에서 무엇이 성장하고 있는가에 대해 아무런 감지조차도 하지 못했을 정도로 강력했다. 따라서 나의 모든 능력은 갑자기 성숙되고 최종적으로 완성되어, 어느 날 개화했던 것이다. 나는 무언가를 이루려고 애써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즉 투쟁의 어떤 흔적도 내 삶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영웅적인 본성과는 반대된다. 무언가를 '의욕한다는 것', 무언가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 어떤 '목적', 어떤 '소망'을 염두에 둔다는 것, 이 모든 것을 나는 경험한 적이 없다. 나는 바로 이 순간에도 나의 미래를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듯이 바라본다. 이 잔잔한 바다에는 어떤 욕망의 잔물결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어떤 것도 현재의 상태와 다르게 되는 것을 조금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내가 다른 인간처럼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2, p.99) [109] 나는 다양한 길과 다양한 방법으로 내 진리에 도달했다. 내 눈이 나의 먼 곳을 내다보는 이 높이에 내가 하나의 사다리만을 타고 오른 것은 아니었다. 나는 길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는데 늘 마지못해 그렇게 했다. 그렇게 길을 물어보는 것은 언제나 내 취향에 거슬렸으니! 나 자신에게 길을 묻고 길을 직접 시도해보는 것을 나는 더 좋아했다. 시도와 물음, 이것이 내 모든 행로였다. 그리고 진정, 이런 물음에 대답하는 법도 사람들은 배워야 한다! 이것이 내 취향이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고, 그렇다고 부끄러워할 것도 숨겨야 할 것도 아닌 내 취향이다. "이것이 이제 내 길인데, 그대들의 길은 어디에 있는 거지?" 나는 내게 "길에 대해" 물었던 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말하자면 '정해진 길'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승영 옮김, 사색의숲, 2022, p.400) [110] 이 대목에서 인간은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되는가라는 물음에 제대로 된 답을 제시하는 것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아래와 같이 답을 제시함으로써 나는 자기보존, 즉 자기애의 기술에서 걸작에 해당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셈이다. 왜냐하면 과제, 사명, 과제의 운명이 평균을 훨씬 넘어서 있는 경우, 그러한 과제를 갖는 자기 자신에 직면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에는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장 희미하게라도 예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제가 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심지어 인생의 실책들, 즉 때대로 옆길로 샌다든지, 길을 잘못 든다든지, 주저한다든지, '소극적으로 군다든지', 자신의 과제가 아닌 과제들에 진지한 관심을 낭비한다든지 등과 같은 실책들조차도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2, p.96~97) [111] 이 모든 것에서 ㅡ 즉 영양, 장소와 기후, 휴식의 선택에 있어서 ㅡ 명령을 내리는 것은 자기보존 본능이다. 자기보존 본능은 자기 방어 본능으로서 가장 분명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많은 것을 보지 않고, 많은 것을 듣지 않으며, 많은 것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것, 그것이 첫째가는 현명함이자 인간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의 필연이라는 사실에 대한 첫째가는 증거다. 이러한 자기방어 본능을 가리키는 통상적인 표현은 취향(Geschmack)이란 말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2, p.92~93) [112] 나는 진정으로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그 하나는 지하의 은밀한 복수욕과 함께 삶에 대해 저항하는 퇴화하는 본능이다. 다른 하나는 충만과 충일에서 탄생한 최고의 긍정 형식, 즉 고통과 죄 자체에 대한 그리고 삶 자체의 모든 의문스럽고도 낯선 것에 대한 아무런 유보 없는 긍정이다. 삶에 대한 이렇게 궁극적이면서도 가장 기쁨에 차 있고 가장 충일하면서도 가장 의기양양한 긍정은 최고의 통찰일 뿐 아니라 진리와 학문에 의해서 가장 엄격하게 입증되고 보존되는 가장 심오한 진리다. 존재하는 것에서 빼버릴 것은 하나도 없으며, 없어도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리스도교인들과 그 외의 허무주의자들에 의해서 거부된 삶의 측면들이야말로 데카당한 본능이 시인하고 시인해도 되었던 측면들보다도 가치들의 위게질서에서 무한히 높은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려면 용기가 필요하고 그러한 용기를 갖기 위한 조건으로서 넘치는 힘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용기가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바로 그만큼, 즉 바로 그 힘의 정도만큼 사람들은 진리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자들에게 그러한 인식이, 즉 현실에 대한 긍정이 필연적이듯이, 약한 자들에게는 약함으로 인한 현실에 대한 비겁과 현실로부터의 도피, 즉 '이상'이라는 것이 필연적이다. 약한 자들은 현실을 아무리 제대로 인식하고 싶어도 인식할 수 없다. 데카당들은 거짓을 필요로 한다. 거짓이 그들을 유지하는 조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2, p.135~136) [113] 병들어 있다는 것, 허약하다는 것에 대해 무언가 지적해야 할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러한 상태에서는 진정한 치유 본능, 즉 방어 본능과 공격 본능이 쇠퇴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어떤 것에서도 벗어날 줄 모르고 아무것도 제대로 처리할 줄 모르며 어떤 것도 퇴치할 줄 모르게 된다. 모든 것이 그에게 상처를 줄 뿐이다. 인간과 사물이 집요하게 그에게 달라붙고, 체험은 깊은 충격을 주며, 기억은 곪아버린 상처가 된다. 병들어 있다는 것은 일종의 원한 자체다. 이 모든 것에 대해 병자는 오로지 하나의 위대한 치료법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것을 러시아적 숙명론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강행군 끝에 눈 속에 쓰러지고 마는 러시아 군인이 보여주는 무저항의 숙명론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더 이상 수용하지 않고 자기 것으로 하지도 않으며 자기 속으로 흡수하지 않는 것이다. 즉 더 이상 전혀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2, p.51~52) [114] 나에게 우연히 주어졌던 거의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상황, 장소, 거처, 모임들을 몇 년 동안 끈질기게 견디고 있을 때, 내가 앞에서 말했던 '러시아적 숙명론'이 나를 찾아왔다. 이 러시아적 숙명론이 그런 우연한 것들을 바꾸거나 그것들을 바꿀 수도 있다고 느끼는 것보다, 또한 그것들에 반항하는 것보다 더 나았다. 이런 숙명론 속에서 견디고 있는 나를 방해하거나 강제로 깨우려고 하는 일을 그 당시의 나는 치명적일 정도로 나쁜 것으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그것은 매번 치명적일 정도로 위험했다. 자기 자신을 하나의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것, '다른' 자신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그것은 그러한 경우에 위대한 이성 그 자체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2, p.52) [115] 공격하는 자의 강함이 어느 정도인가는 그가 필요로 하는 적이 어떤 사람인지를 척도로 하여 측정할 수 있다. 그가 얼마나 성장하였는가는 그가 보다 강력한 적수 또는 보다 강력한 문제를 찾아 나서는가 아닌가에서 드러난다. 왜냐하면 호전적인 철학자는 문제들에게조차 결투를 신청하기 때문이다. 그의 과제는 단순히 일반적인 저항을 제압하는 데 있지 않고, 자신의 모든 힘과 유연함 그리고 싸움 기술을 쏟아부을 만한 저항을, 즉 자신과 대등한 적수를 제압하는 데 있다. 적과 대등하다는 것 ㅡ 이것이 정의로운 결투를 위한 첫 번째 전제다. 상대가 내가 얕봐도 되는 상대일 경우, 전쟁은 할 수 없다. 상대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 같은 경우, 즉 상대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경우에는 전쟁을 할 것까지도 없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2, p.53~54) [116] 어떤 사람이 훌륭하게 성숙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우리는 근본적으로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인식하는가! (중략) 그는 자신에게 해로운 것에 대한 치유책을 생각해낼 수 있다. 그는 불리한 우연(Zufall)을 자신에게 유리한 것으로 전환할 수 있다. 그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2, p.30~31) [117] 천재란 필연적으로 낭비하는 자다. 자신을 다 내준다는 것에 그의 위대성이 있다. (그에게서) 자기보존의 본능은 이를테면 그 활동이 중지되어 있다. 내부로부터 솟아나는 힘들의 압도적인 압력이 그에게 자신을 신중하게 보호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희생적 행위'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이 점에서 그의 '영웅성'과 자신의 안위에 대한 무관심, 어떤 이념이나 어떤 대의 혹은 조국을 위한 그의 헌신을 찬양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다 오해다. 그는 다만 내부로부터 솟아나고 넘쳐흐르며 자신을 탕진하고 자신을 아끼지 않을 뿐이다. 그는 필연적으로, 숙명적으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으며, 강물이 강둑을 넘어서 흐르듯이 아무런 생각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5, p.155) [118] 불멸을 위해서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다. 불멸을 위해서는 평생 동안 몇 번을 죽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위대한 것의 '한(rancune)'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작품이든 행위든 모든 위대한 것은 일단 성취되면, 그것을 성취한 자에게 즉시 보복을 가한다. 그는 그것을 성취하게 되는 것과 함께 이제 약해지는 것이다. (중략) 모든 창조적인 행위, 즉 가장 고유하고 가장 내적이고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비롯되는 행위는 방어 능력의 소모를 전제로 한다. 이 때문에 우리의 작은 방어 능력들은 빠져나가버리고, 그것들에는 어떠한 힘도 더 이상 흘러들지 않는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2, p.191~192) [119] 이러한 창조의 몰입은 가장 깊은 곳에서 뒤흔드는 무언가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하고 정교하며 갑작스레 보이고 들리게 된다는 의미에서 계시와 같다. 하나의 사상이 흡사 번갯불처럼 번쩍인다.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압도적인 힘들의 단순한 화신이자 단순한 입 그리고 매개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뿌리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선택의 여지 없이 필연적으로 하나의 황홀경을 맞이한다. 자유의 느낌, 무조건적인 존재, 힘 그리고 신성의 폭풍 속에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최고도로 비자발적으로 일어난다.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암담한 것이 넘쳐흐르는 빛 안에서 필연적인 하나의 빛깔로서, 드넓은 공간들을 차지하는 형태들을 포괄하면서 리드미컬한 관계들을 감지하는 본능으로서, 모든 것이 가장 가깝고 가장 적합하고 가장 단순한 표현으로 자신을 보여준다. 실제로 사물들 자체가 다가와 스스로 비유가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창조물을 탄생시킨 사람은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다. 그는 그것을 성취하는 것과 함께 이제 약해지게 된다. 모든 창조적인 행위, 즉 가장 고유하고 가장 내적이고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비롯되는 행위는 방어 능력의 소모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의 작은 방어 능력들은 빠져나가버리고, 그것들에는 어떠한 힘도 더 이상 흘러들지 않게 된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편 3절, 5절 요약) [120]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다리라는 데에 있다. 인간에게서 사랑받을 만한 점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자 내려가는 존재라는 데에 있다. 나는 사랑하노라. 하강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 모르는 사람들을. 그들은 저쪽으로 건너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사랑하노라. 한 방울의 정신도 자신을 위해 남겨두지 않고, 전적으로 자신의 덕의 정신이기를 원하는 자를. 그렇게 그는 정신으로서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자신의 덕으로부터 자신의 성향과 숙명을 만들어내는 자를. 그렇게 그는 자신의 덕을 위해 살려고 하고, 또 죽으려고 한다. 나는 사랑하노라. 감사를 바라지도 않고 되갚기도 바라지 않으면서 영혼을 아낌없이 줘버리는 자를. 그는 늘 선물을 하며 자신을 지키려고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주사위가 가져오는 행운을 수치스러워하면서 '내가 사기 도박사가 아닌가?'하고 반문하는 자를. 그는 몰락을 원하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사랑하노라. 자유로운 정신과 자유로운 심장을 지닌 자를. 그의 머리는 심장의 내장일 뿐이고, 그의 심장은 그를 하강으로 내몰아대니. 나는 사랑하노라. 인간들 위에 걸쳐 있는 먹구름에서 하나하나 떨어지는 무거운 빗방울 같은 자 모두를. 그들은 번개가 칠 것을 예고하고 예고자로서 파멸한다. 보라, 나는 번개의 예고자이자 구름에서 떨어지는 무거운 빗방울이다. 그 번개는 위버멘쉬라고 불린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승영 옮김, 사색의숲, 2022, p.25) [121]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이것을 차라투스트라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실마리로 삼아야 한다. 차라투스트라가 구상하고 있는 유형의 인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생각한다. 이 인간은 그럴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그는 현실에서 소외되어 있지 않으며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다. 그는 현실 자체이며 현실의 무시무시하고 의심스러운 모든 것을 자신 안에도 가지고 있다. 이럴 경우에만 인간은 위대해질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2, p.244) [122] 가장 낯설고 가혹한 삶의 문제들과 직면해 있으면서도 삶을 긍정하는 것, 자신의 무궁무진성에 기쁨을 느끼면서 삶의 최고의 전형을 희생하는 것도 불사하는 생에의 의지, ㅡ 이것이야말로 내가 디오니소스적이라고 불렀던 것이며, 비극 시인의 심리학에 이르는 교량으로서 인식한 것이다. 공포와 연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해석하는 것처럼 공포와 연민을 격렬하게 방출함으로써 그 위험한 정념으로부터 정화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포와 연민을 초월하여 생성의 영원한 기쁨 자체로 존재하기 위해서 ㅡ 파괴에 대한 기쁨까지도 포함하는 기쁨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이와 함께 나는 일찍이 내가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온다. ㅡ 『비극의 탄생』은 모든 가치에 대해 내가 최초로 시도한 재평가였다. 이와 함께 나는 나의 의지와 능력이 자라나오는 토양 안에 다시 뿌리를 박는다. 철학자 디오니소스의 최후의 제자인 나 ㅡ 영원회귀의 스승인 나는⋯⋯.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5, p.176) [123] '건강'한 자만이 '창조하는 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몰락마저 감수하고 그 몰락 앞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선 '건강'해져야 한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다. 니체가 말하는 '건강'이란,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는 것,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할 줄 아는 것, 자기 자신에 대해 긍지를 지니는 것,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되는 것을 말한다. 니체는 이를 '위대한 건강'이라고 부른다. [124] 건강한 자는 이렇게 자신의 몰락마저 감수하기 때문에 다시 병들고 지치게 되는데, 이로서 병과 건강은 원환의 고리처럼 연결된다. 그는 다시 휴식을 취하며 건강을 회복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낸 자신의 창조물을 통해서 인류 전체에도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건강한 이기심'은 자연스럽게 이타적인 행동을 유발한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다. 반면에 '병든 이기심'은 자기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을 가리킨다. [125] 그대들은 내게 "삶은 견뎌내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침에는 자부심을 지녔을 텐데도 저녁에는 체념을 해버리는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인가? 삶은 견뎌내기 어렵다. 하지만 그처럼 연약한 체 하지 말라! 우리 모두는 무거운 짐을 잘도 짊어지는 귀여운 수나귀들이고 암나귀들이니. (중략) 사랑에는 늘 얼마간의 광기가 깃들기 마련이다. 광기에는 늘 얼마간의 이성이 있기 마련이고. 그리고 삶을 좋아하는 내게도 나비와 작은 비눗방울이, 그리고 인간들 가운데 그런 종류의 인간이 행복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볍고 어리숙하지만 사랑스럽고 활발한 그 작은 영혼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노라면 차라투스트라는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부르게 된다. 나는 춤을 출 줄 아는 신만을 믿으리라. 그런데 내 악마를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이 진지하고 철저하고 깊고 장엄하다는 것을 알았다. 중력의 정신이었던 것이다. 중력의 정신으로 인해 모든 것이 아래로 떨어져 버린다. 사람은 분노가 아니라 웃음으로 죽인다. 자, 저 중력의 정신을 우리가 죽여버리자.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승영 옮김, 사색의숲, 2022, p.76~77) [126] 고통 또한 기쁨이고, 저주 또한 축복이며, 밤 또한 태양이니. 그대들은 꺼져버리든지 아니면 배우든지 하라. 현자 또한 바보이니. 그대들은 일찍이 하나의 기쁨에 대해 '그렇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오, 내 벗들이여, 그랬다면 그대들은 또한 모든 비애에 대해서도 '그렇다'라고 말한 셈이다. 모든 것이 사슬로 연결되어 있고, 실로 묶여 있으며, 사랑에 빠져 있으니. 그대들이 일찍이 '한 번, 또 한 번'을 원한 적이 있는가? 그대들이 일찍이 "네가 마음에 든다, 행복이여! 찰나여! 순간이여!"라고 말한 적이 있다면, 그대들은 그 모든 것이 되돌아오기를 원했던 것이다.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고, 모든 것이 영원하며, 모든 것이 사슬로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것이 실로 묶여 있고, 모든 것이 사랑에 빠져 있다. 오, 그대들은 이런 세계를 사랑한 것이다. 그대 영원한 자들이여, 이러한 세계를 영원히 그리고 항상 사랑하라. 그리고 비애에 대고 "사라져라. 하지만 때가 되면 돌아오라!"라고 말하라. 모든 기쁨은 영원을 원하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승영 옮김, 사색의숲, 2022, p.632~633) [127] 물론 니체 본인은 그런 근본주의나 극단주의를 매우 싫어하고, 오히려 그에 대항해 항상 대중과는 한 발짝 떨어진 채로 보라는 '거리의 파토스'를 두어 광기에 휩쓸리지 말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개인의 문제로 보고 있다. 또한 니체는 어떤 도덕가치가 극단주의에 해당하는지 말하지 않는다. 사실 니체 사상에 따르면 '무엇이 극단주의인지 극단주의가 아닌지'를 알 수 없다. 그 극단이 무엇인지를 정하는 것 조차도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극단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데 그 극단에 거리를 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모순이기 때문에 비판받는 것이다. [128] 매킨타이어를 포함한 정치철학자들이 니체를 비판하는 지점은 니체의 논리는 결국 전체주의적 폭력에 맞서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도리어 사회의 연대를 파편화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상기 철학자들이 그에 정반대 입장에서 '다수의 규칙에 무조건 복종하라'고 말하지 않으며, 그들은 도리어 이 '다수의 폭력'을 조심하라고 강조한다. 즉, 개인'만' 고려해선 안 되고 공동체'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지, 다수가 무조건 옳다는 식으로 다수를 옹호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니체도 '개인의 자유'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삶의 가치에 있어서 우선 순위가 공동체 보다는 개인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129] 특히 니체는 아나키즘중 에고이스트적 아나키스트였던 막스 슈티르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의 유일자와 니체의 이상적 인간상은 정말 많은 면에서 매치가 많이 된다. 물론 이에 대해서 막스 바진시키등의 아나코 코뮌니스트들은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와 막스 슈티르너가 말한 유일자는 그 개념부터가 다르다며 둘의 연관성을 부정한 적이 있다. [130] 니체의 사상 전반적인 색채를 잘 들여다보면 불교와 유사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서양철학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실재와 이원론을 부정했고, 욕망과 고통을 극복한 자유로운 상태를 지향했다. [131] 독립 유공자 박달성과 동명이인이다. [132]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1, p.294 [133] 엘리자베스를 반유대주의자라고 보는 것이 정설이지만, 혹자는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니체 철학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을 뿐 왜곡할 의도는 없었고, 니체의 생각을 정말로 왜곡시켜 버린 것은 당시 반유대주의를 표방하던 속칭 '니체 추종자'들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니체의 생각이 그들에 의해 왜곡되었던 것. [134] 『선악의 저편 284』 [135] 양대종 『니체와 반유대주의』 한국니체학회, 2022, 42호, 한국니체학회연구 311p ~ 346p 참조 [136] 개인에게서나 민족에게서 자유는 어떻게 측정되는가? 극복해야 하는 저항의 크기, 높은 곳에 머무르기 위해 치러야 하는 노고의 정도에 의해 측정된다. 가장 자유로운 인간의 유형은 가장 큰 저항이 끊임없이 극복되고 있는 곳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곧 폭군의 정치에서 다섯 걸음쯤 떨어진 곳에서, 그리고 예속이라는 위험의 문턱 가까이에서. 이것은 특히 '폭군'이라는 말이 일종의 무자비하고 끔찍한 본능으로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최대의 권위와 규율을 요구하는 본능으로 이해됐을 때, 심리학적으로 참이다. ㅡ 폭군의 가장 아름다운 전형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그런데 그것은 정치적으로도 참이다. 확인해보려면 역사를 한 번 둘러보기만 해도 된다. 어느 정도라도 가치가 있었거나 가치를 갖게 된 민족은 자유주의적 제도 아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을 외경할 만한 무엇인가로 만들었던 것은 커다란 위험이었다.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5, p.145~146) [137] 니체의 이러한 사상은 『우상의 황혼』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 48절에 "동등한 자들에게는 평등을, 동등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불평등을"이라는 구호로 드러난다. 이것을 단순한 불평등 구호로'만' 생각해선 안 된다.(백승영 교수의 논의 참조) 니체가 말하는 '동등함'의 자격이란,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자' 또는 '주권자로서의 개인'을 말하는데, 이는 일종의 마음가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권자로서의 개인'이란, 오직 자신에게만 충실하고, 관습의 도덕에서 다시금 벗어난 개인이며, 자율적이고 초윤리적인 개인, 요컨대 자신만의 독립적이고 끈질긴 의지를 지닌 인간,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인간을 말한다.) [138] 노동자 운동이나 페미니즘 운동에 있어서 니체는 기존 권위를 인정하는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그 '권위'가 있어야 되는 이유는 복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항하기 위해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물론 그렇게 저항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는 점, 저항하지 않고 만족하는 다수의 문제에 대해서는 방관할 것이라는 점에서 니체는 '계급주의(엘리트주의)'에 해당된다. [139] 니체가 파시즘의 선구자라는 이러한 오해는 20세기 전반에 걸쳐 지속되어 왔으나, 니체 전문가들의 지속적인 노력 덕택에 서양에서는 2000년대 초에 니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이 사라졌으며(68혁명이 니체 연구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맞으나 그와는 별개로 순수 니체 전문가들의 연구결과에 의해 이런 부정적인 인식이 걷히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2010년대 이후부터 이런 부정적인 인식이 많이 사라졌다. 그래서 2000년대 이전 논문들을 보면 니체를 파시즘과 연관시키는 논문들을 매우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140] 이상화는 흔히 믿어지는 것처럼 사소하거나 부차적인 것을 빼내거나 제거하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주요한 특징들을 크게 드러내어 강조하는 것이 결정적이다. 그럼으로써 다른 특징들은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5, p.109) [141] 니체가 말하는 약자와 강자라는 것도 이렇게 명랑한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느냐 없느냐를 말하는 것으로서, 약자가 어느 한 순간이라도 타인이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존재할 수 있다면 그는 그 순간만큼은 강자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니체의 방식이 이분법이 아니냐고 의문을 품을 수 있는데, 니체는 이 구분이 혼재되어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분법적 표현을 '이용'한 것이지, 강자와 약자가 이분법적으로 분명하게 구분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니체는 애초에 말 자체가 이분법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말을 이용해서 이분법을 해체하는 것이 니체의 과제인 것이다. 니체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떤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이미 그것을 훨씬 넘어서 있다. 모든 말에는 일말의 경멸할 만한 점이 들어 있다. 언어는 오직 평균적인 것, 중간의 것, 전달할 수 있는 것만을 위해서 고안되었다." (『우상의 황혼』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 26절.) [142] 어떤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반드시 거부할 필요는 없다. 이런 주장을 내세우는 우리의 새로운 언어는 아주 이상하게 들리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판단이 얼마나 생명을 촉진하고 보존하며, 얼마나 종을 보존할 뿐 아니라 육성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즉 가장 잘못된 판단들이 우리에게 결코 없어서는 안 되는 판단들이며, 논리적 허구를 용인하고 절대자ㆍ자기 동일자라는 전적으로 고안된 세계를 기준으로 하여 현실을 평가하면서 수에 의해서 세계를 지속적으로 왜곡하지 않고서는 인간은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또한 잘못된 판단을 포기하는 것은 생을 포기하고 생을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거짓을 삶의 한 조건으로 인정하는 것은 물론 통상적인 가치 감정에 위험한 방식으로 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저항을 감행하는 철학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선악의 저편에 있다.ㅡ 《선악의 저편》 4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28~29) [143] 수단으로서의 확신! 많은 것이 확신에 의해서만 달성 된다. 위대한 정열은 확신을 이용하며 확신을 다 사용해버리고 확신에 굴복하지 않는다. ㅡ 그것은 자신을 자신의 주인으로 생각한다. ㅡ 반대로 신앙을 필요로 하고, 어떤 무조건적인 긍정과 부정을 필요로 하는 것, 이런 표현이 용서된다면 칼라일주의는 약자에 속하는 것이다. 신앙을 가진 인간, 모든 종류의 '믿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의존적인 인간이며 ㅡ 자기 자신을 목적으로 정립할 수 없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목적을 정립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신앙인'이란 자기 자신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수단이 될 수 있을 뿐이고 사용되어야 하며, 자기를 사용하고 버릴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ㅡ 《안티크리스트》 54절. (프리드리히 니체 《안티크리스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3, p.134~135) [144]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자유주의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자유 개념을 설명한다. "자유에 대한 나의 개념 . – 어떤 것의 가치는 때로 당신이 그것으로 무엇을 성취하느냐에 있지 않고, 당신이 그것에 대해 지불하는 것, 즉 우리에게 드는 비용에 있다. (중략) 개인에게서나 민족에게서 자유는 어떻게 측정되는가? 극복해야 하는 저항의 크기, 높은 곳에 머무르기 위해 치러야 하는 노고의 정도에 의해 측정된다." ( Mein Begriff von Freiheit. – Der Wert einer Sache liegt mitunter nicht in dem, was man mit ihr erreicht, sondern in dem, was man für sie bezahlt – was sie uns kostet. (...) Wonach mißt sich die Freiheit, bei einzelnen wie bei Völkern? Nach dem Widerstand, der überwunden werden muß, nach der Mühe, die es kostet, oben zu bleiben.) 즉, 니체에게서 자유란, 외부의 압박에 맞서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활동을 얼마나 쟁취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145] "지배욕: 그것은 순수함과 고독에까지도 유혹적이며 자족한 높이에까지 올라간다. 지상의 천국에 진홍빛 행복을 매혹적으로 그리는 어떤 사랑과도 같이 불타면서. 지배욕: 그것이 높은 곳에서 내려와 힘을 갈망할 때, 누가 그것을 병적인 욕망이라 부르겠는가! 진실로 그와 같은 욕망과 하강에는 아무런 유약함의 흔적도 없다. 고독한 봉우리가 영원히 고립되는 자기 자신으로 만족하지 않는 것, 산이 골짜기로 내려오는, 봉우리에서 낮은 곳으로 부는 그 바람. 오, 누가 그와 같은 갈망에 대한 올바른 세례명과 덕의 이름을 발견하랴! ‘선사하는 덕’ — 차라투스트라는 일찍이 이 이름 붙이기 어려운 것을 이렇게 불렀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Herrschsucht: die aber lockend auch zu Reinen und Einsamen und hinauf zu selbstgenugsamen Höhen steigt, glühend gleich einer Liebe, welche purpurne Seligkeiten lockend an Erdenhimmel malt. Herrschsucht: doch wer hieße es Sucht, wenn das Hohe hinab nach Macht gelüstet! Wahrlich, nichts Sieches und Süchtiges ist an solchem Gelüsten und Niedersteigen! Daß die einsame Höhe sich nicht ewig vereinsame und selbst begnüge; daß der Berg zu Tal komme, und die Winde der Höhe zu den Niederungen: O wer fände den rechten Tauf- und Tugendnamen für solche Sehnsucht! »Schenkende Tugend« – so nannte das Unnennbare einst Zarathustra.) 「Also sprach Zarathustra, Von den drei Bösen」 [146] 니체에 따르면 한 사람의 내부에서도 약자의 마음과 강자의 마음이 혼재되어 있으며, 사람은 약자가 되었다가 강자가 되었다가를 반복한다. 심지어 니체는 강자의 마음과 약자의 마음이 '영원 회귀'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되도록 강자의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되지만 그렇다고 약자의 마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오히려 그것마저 사랑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고통 또한 기쁨이고, 저주 또한 축복이며, 밤 또한 태양이니. 그대들은 꺼져버리든지 아니면 배우든지 하라. 현자 또한 바보이니. 그대들은 일찍이 하나의 기쁨에 대해 '그렇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오, 내 벗들이여, 그랬다면 그대들은 또한 모든 비애에 대해서도 '그렇다'라고 말한 셈이다. 모든 것이 사슬로 연결되어 있고, 실로 묶여 있으며, 사랑에 빠져 있으니. 그대들이 일찍이 '한 번, 또 한 번'을 원한 적이 있는가? 그대들이 일찍이 "네가 마음에 든다, 행복이여! 찰나여! 순간이여!"라고 말한 적이 있다면, 그대들은 그 모든 것이 되돌아오기를 원했던 것이다.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고, 모든 것이 영원하며, 모든 것이 사슬로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것이 실로 묶여 있고, 모든 것이 사랑에 빠져 있다. 오, 그대들은 이런 세계를 사랑한 것이다. 그대 영원한 자들이여, 이러한 세계를 영원히 그리고 항상 사랑하라. 그리고 비애에 대고 "사라져라. 하지만 때가 되면 돌아오라!"라고 말하라. 모든 기쁨은 영원을 원하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승영 옮김, 사색의숲, 2022, p.632~633) [147] 이기주의의 자연적 가치. ㅡ 이기심이 갖는 가치는 이기심을 갖는 자가 생리적으로 갖는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즉 이기심은 매우 큰 가치를 가질 수 있고, 무가치하고 경멸받을 만할 수도 있다. 모든 인간은 삶의 상승선을 나타내는지 아니면 하강선을 나타내는지에 따라 평가될 수 있다. 이 점이 결정되면 각 개인의 이기심이 어떤 가치를 갖는지 가늠할 수 있는 규준도 주어지는 셈이다. 어떤 사람이 상승선을 나타낸다면, 그의 가치는 실제로 비범하다. (중략) 그러나 만약 그가 나타내는 것이 하강, 쇠퇴, 만성적 퇴락, 질병이라면, 그는 거의 가치를 갖지 못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5, p.133~134) [148] 스스로 제물이 되고 선물이 되는 것. 이것에 그대들은 갈증을 느낀다. 바로 그 때문에 그대들은 온갖 부를 그대들의 영혼에 쌓아놓기를 갈구하는 것이다. 그대들의 영혼은 만족을 모른 채 보물과 보배를 취하려 한다. 덕을 선사하려는 그대들의 의지는 만족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대들은 만물이 그대들을 향하여, 그대들 속으로 흘러들어 오도록 강제한다. 만물이 그대들의 샘으로부터 그대들의 사랑의 선물이 되어 다시 흘러나가도록 하기 위해서. 실로 그런 선사하는 사랑은 모든 가치를 강탈해내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이런 이기성을 온전하며 신성하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이기성도 있는데, 늘 훔치려고 드는 너무나 가난하여 굶주린, 병든 자들의 이기성, 병든 이기성이다. 이 이기성은 광채를 내는 모든 것을 도둑의 눈으로 응시하며, 먹거리를 풍부하게 갖고 있는 자를 굶주린 자의 탐욕스러운 눈으로 헤아린다. 그러면서 선사하는 자들의 식탁 주변을 늘 어슬렁거린다. 이런 욕망으로부터는 병증과 보이지 않는 퇴화가 말을 해댄다. 이런 이기성의 도둑 같은 탐욕은 신체가 병들었음을 말해준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승영 옮김, 사색의숲, 2022, p.153~154) [149] 내 형제들이여, 말해보라. 우리에게 나쁜 것은 무엇이고, 또 가장 나쁜 것은 무엇인가? 퇴화가 아닌가? 선사하는 영혼이 없는 곳에서는 우리는 늘 퇴화를 알아차리지. 우리의 길은 저 위쪽으로 향한다. 종으로부터 종을 넘어서는 것으로 향한다. 반면 고작 "모든 것은 나를 위해"라고 말하는 퇴화된 감관은 우리에게는 섬뜩하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승영 옮김, 사색의숲, 2022, p.154) [150]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승영 옮김, 사색의숲, 2022, p.352 [151] 니체는 아침놀 103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바보가 아니라면 내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비윤리적이라고 불리는 많은 행위들은 피해져야 하고 극복되어야 하며 윤리적이라고 불리는 많은 행위들은 행해져야 하고 장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자도 후자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근거들로부터 행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다르게 배워야만 한다. 아마 상당히 오랜 후가 될지도 모르지만, 마침내 더 많은 것에 도달하기 위해서, 즉 다르게 느끼기 위해서." 이런 의미에서 도덕을 극복하려는 작업에서 사실 니체가 극복하려는 것은 도덕 그 자체가 아니라 도덕에 대한 그릇된 편견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편견들은 플라톤 이래 유럽의 철학과 종교를 지배해온 것으로서, 인간이 따라야 할 도덕적 규범들은 인간들의 강성적인 충동이나 욕구와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 존재한다고 본다. 또한 도덕의 기원을 인간의 경험적인 심리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이데아의 세계나 신의 계시 혹은 경험적 심리와 무관한 양심에서 찾는다. 이에 반해 니체는 모든 도덕규범들은 사실 인간의 육체적ㆍ정신적 삶을 건강하면서도 강인하게 구현해나갈 수 있는 지침에 불과하다고 본다. 즉 니체는 도덕규범이 우리의 경험적 현실을 초월한 것으로서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무조건 타당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건강한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변형할 수 있고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니체가 이른바 초월적인 도덕규범의 존재를 부정한 것은 악이 횡행하는 무법천지의 세계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초월적인 도덕규범의 잔인한 지배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인간의 잠재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는 정신적 토대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5, p.23~24 에서 박찬국 교수의 주석) [152] 차라투스트라는 많은 나라를 보았고 많은 민족을 보았으며, 지상에서 사랑하는 자의 작품보다 더 막강한 힘을 발견하지 못했다. '선'과 '악', 이것이 그 작품의 이름이다. 실로 이 선과 악이 행사하는 칭찬과 질책의 힘은 거대한 괴물 같다. 그대 형제들이여, 말해보라, 누가 이 괴물을 제압할 것인가? 말해보라, 누가 이 짐승의 천 개나 되는 목에 족쇄를 채울 것인가? 지금까지 천 개나 되는 목표가 있었다. 천 개나 되는 민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천 개의 목에 채울 족쇄가, 그 하나의 목표가 없을 뿐이다. 인류는 아직도 목표를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말해보라, 내 형제들이여, 인류에게 아직도 목표가 없다면, 인류 자체가 아직 없는 셈이 아닌가?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승영 옮김, 사색의숲, 2022, p.119) [153] 바보가 아니라면 내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비윤리적이라고 불리는 많은 행위들은 피해져야 하고 극복되어야 하며 윤리적이라고 불리는 많은 행위들은 행해져야 하고 장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자도 후자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근거들로부터 행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다르게 배워야만 한다. 아마 상당히 오랜 후가 될지도 모르지만, 마침내 더 많은 것에 도달하기 위해서, 즉 다르게 느끼기 위해서. (프리드리히 니체 『아침놀』 103절) [154] 주인 도덕(귀족 도덕).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는 방법과 방향을 제시하는 도덕을 말한다. [155] 노예 도덕. "~해야 한다"의 도덕. 사회의 규칙과 규범 등을 말한다. [156] 길러냄의 도덕과 길들임의 도덕은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서로 완벽하게 협동할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5, p.83) [157]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2, p.53~54 [158] 니체는 종교가 말하고 있는 '자유 의지'라는 것도 개인에게 죄의 책임을 지우기 위해 고안해낸 개념이라고 본다. 사실 이 개념은 인간 스스로의 의지로 죄를 저질렀으므로 그것은 신의 잘못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이라는 변명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즉, 이 '자유 의지'라는 개념은 언뜻 보기에 스스로의 의지를 찬양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죄의 원인을 인간 책임으로 몰아감으로써 인간에게 죄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인간의 의지를 크게 약화시키게 만드는 이중의 장치라는 점에서 악독하다는 것이 니체의 지적이다. [159] 『선악의 저편』 22절 [160] Allein gehe ich nun, meine Jünger! Auch ihr geht nun davon und allein! So will ich es. Wahrlich, ich rate euch: geht fort von mir und wehrt euch gegen Zarathustra! Und besser noch: schämt euch seiner! Vielleicht betrog er euch. (...) Man vergilt einem Lehrer schlecht, wenn man immer nur der Schüler bleibt. Und warum wollt ihr nicht an meinem Kranze rupfen? (...) Nun heiße ich euch, mich verlieren und euch finden; und erst, wenn ihr mich alle verleugnet habt, will ich euch wiederkehren. (Also sprach Zarathustra, Von der schenkenden Tugend) [161] 나는 경건한 배후세계론자들이 자신의 양심에 대고, 참으로 어떤 악의도 거짓도 없이 "세상을 세상 그대로 놔두라. 그것에 맞서 손가락 하나도 들어 올리지 마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 세상에 그보다 더 거짓되고 악의적인 것은 없는데도.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승영 옮김, 사색의숲, 2022, p.418) [162] 그대들이 경멸했다는 것, 그대 좀 더 높은 인간들이여, 이것이 내게 희망을 품게 만든다. 말하자면 크게 경멸하는 자들은 크게 존경하는 자들인 것이다. 그대들이 절망했다는 것, 거기에 존경할 만한 점이 많다. 그대들은 어떻게 순종하는지를 배우지 않았고, 자잘한 꾀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략) 그리고 순종하느니 차라리 절망하라. 그대들이 오늘을 살 줄 모른다는 것, 그대 좀 더 높은 인간들이여! 진정 그 때문에 나는 그대들을 사랑한다. 그러니 그대들은 최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승영 옮김, 사색의숲, 2022, p.564~565) [163] 물론 니체는 '자기 자신'이 될 자신이 없는 사람의 경우, 삶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아 허무주의에 빠지기 보다는 차라리 '나귀'와 같이 예스(yes)만 말하며 참고 견디는 삶이 더 나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이는 당연하게도 임시방편일 뿐이다.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64] 나귀처럼 '예스'만 말하며 견디는 자기 자신을 신으로 섬기는 것은, 자기 자신을 채찍질 하는 것이랑 다를 바 없다는 것. [165] 독일어로 '예' 내지 '그렇다'는 'Ja(야)'이다. 즉 독일어 Ja를 당나귀 울음소리로 희화화한 것이다. [166] 비꼬는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니체는 나귀(예스맨)를 신으로 모시는 이런 상황을 계속해서 비판하고 있다. [167]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승영 옮김, 사색의숲, 2022, p.610~611 [168] 『우상의 황혼』 1장 잠언과 화살 44절에 나온다. 또한 『안티크리스트』 1절 마지막에도 나오는 말이다. [169] 여기서 '목적'은 목적론에서 말하는 목적이 아니다. 목적론의 목적은 '세상'에 어떤 목적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여기서의 목적은 '나'의 목적을 말한다. 니체가 목적론을 비판하는 까닭은, 세상의 목적에 따라서 사는 것은 그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을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즉 세상의 목적이 아닌 자신의 목적에 따라서 살아라는 것이다. [170] 인간은 발견해내기 어려운 존재다. 자기 자신을 발견해내는 것은 가장 어렵다. 정신이 영혼에 대해 거짓말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중력의 정신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을 발견해낸 자는 "이것이 나의 선이요 나의 악이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만인의 선과 만인의 악" 운운하는 두더지와 난쟁이의 입을 막아버린다. 정말이지 나는 모든 것을 다 좋다 하고 심지어는 이 세계를 최선이라고 하는 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자를 나는 매사에 만족하는 자라고 부른다. 모든 것에서 맛을 느낄 줄 아는 매사에 대한 만족. 이런 것은 최선의 취향이 아니다! 나는 극도로 반항적이고 까탈스러운 혀와 위장을 존중한다. "나"와 "그렇다"와 "아니다"라고 말하는 법을 배웠으니 말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승영 옮김, 사색의숲, 2022, p.397~398) [171] 오, 내 형제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새로운 귀족으로 서품하고 인도한다. 그대들은 미래를 낳는 자, 미래를 기르는 자, 미래의 씨를 뿌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진정, 그대들은 소상인들이 그러하듯 그들의 금으로 살 수 있는 귀족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격이 매겨진 것은 하나같이 가치가 적은 법이다. 앞으로는 어디서 왔는가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그대들의 명예로 삼도록 하라! 자기 자신을 넘어가려는 그대들의 의지와 발, 이것을 그대들의 새로운 명예로 삼도록 하라! 어떤 군주를 섬겼다는 것은 정녕코 명예가 아니다. 군주가 다 뭐란 말이냐! 서 있는 것을 더욱 단단히 세울 보루가 되었다는 것도 명예가 아니다! 그대들의 일가가 궁정에서 궁정에 어울리는 자가 되고, 그대들이 홍학처럼 알록달록한 옷차림으로 얕은 못에 오랜 시간 서 있는 법을 배웠다는 것도 명예가 아니다.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궁신들에게나 하나의 공훈이기 때문이다. 모든 궁신들은 앉아도 된다는 것이 사후의 복에 속한다고 믿지!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승영 옮김, 사색의숲, 2022, p.414) [172] 다만 주의해야할 점은, ‘정신적 귀족주의’라는 말 자체는 니체가 그리 좋아하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신'만 중요하게 여긴다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니체의 사상이 '정신적인 고귀함'을 말하고 있는 것은 맞으나, 그렇게 말할 때 그 '정신'이란 '신체의 표현'이라는 단서를 빠뜨려서는 안 된다. 인간의 정신은 인간 자신의 자연적 조건을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지훈의 논문 『니체의 ‘위대한 정치’에서 위계질서』 참조) [173] 나는 44년을 살고 나서도 명예와 여자와 돈 때문에 애쓴 적이 없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것들을 얻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5, p.100) [174] 논문 『물질주의적 경쟁 대한 비판과 니체적 경쟁의 의미』 김세욱 (영남대), 새한철학회, 철학논총 제110집, 2022. p.19~42 참조. [175] 다나에는 '황금으로 된 비'를 맞고 제우스와 불륜을 저질렀다고 전해지는 그리스 신화 속 여인으로서, '돈에 굴복한 사랑'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여기서는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인용되었다. [176] 『아침놀』 204절. 다나에와 황금의 신. ㅡ 오늘날 사람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이 과도한 초조함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범죄 성향과는) 반대되는 성향을 더 초래할 것 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이 과도한 초조함으로 인해 범죄자가 된다. 어떤 사람은 불공정한 저울을 사용하고, 어떤 사람은 고액의 보험을 든 후에 자신의 집에 방화하고, 어떤 사람은 위조 화폐의 제조에 참여한다. 상류 사회 사람 중 4분의 3이 합법적인 사기에 몰두하고 주식 거래와 투기로 인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괴로워해야 할 때, 그들을 부추기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그들이 실제로 궁핍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심하게 형편이 나쁘지 않으며 아마 음식에 대한 걱정도 없을 것이다. 그들을 그렇게 부추기는 것은 돈이 쌓이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초조감과 (이 초조감 못지않게) 축적된 돈에 대한 끔찍한 욕망과 애정이 밤이든 낮이든 그들을 몰아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초조감과 애정 속에서 힘에 대한 저 열광적인 욕망이 다시 나타난다. 힘에 대한 이러한 열광적인 욕망은 옛날에는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신념에 의해 불붙었고 너무나 아름다운 이름으로 자신을 가장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떳떳한 양심으로 비인간적인 일을 감행할 수 있을 정도였다. 힘에 대한 욕망이 자신을 채우는 수단은 변화되었지만 동일한 화산이 여전히 불타오른다. 초조함과 과도한 애정은 자신의 희생물을 원한다. 이전 사람들이 '신을 위해' 행한 일을, 지금 사람들은 돈을 위해, ㅡ 오늘날 힘의 감정과 떳떳한 양심을 제공하기 위해 ㅡ 행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아침놀』 박찬국 옮김, 책세상, 2004, p.223~224) [177] 『아침놀』 해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가로서의 니체) ㅡ 건강한 삶에 대한 니체의 모색은 단순히 기존의 종교와 도덕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본주의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관을 비판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중략) 니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기계의 나사가 되었고 인간의 발명품에 대한 보완물이 되었다고 비판한다. 아울러 니체는 임금이 높아진다고 해서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노예 상태가 치유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아울러 니체는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있는 노동에 대한 찬미와 열광은 자신한테서 도피하는 것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니체는 사람들이 노동에 쓸 에너지를 자신의 정신적 성숙과 독립을 위해서 써야 한다고 본다. 또한 니체는 전통적인 종교가 몰락한 대신 이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물신을 숭배하게 되었다고 본다. 사람들이 그전에는 신을 믿는데서 힘과 위안과 안심을 구했다면 이제는 가능한 한 많은 부를 축적하는 데서 힘과 위안과 안심을 구한다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아침놀』 박찬국 옮김, 책세상, 2004, p.446~447) [178] 수 프리도 《니체의 삶》 박선영 옮김, 로크미디어, 2020, p.521~522 [179] 수 프리도 《니체의 삶》 박선영 옮김, 로크미디어, 2020, p.522~523 [180] 예수의 정신과 바울이 정립한 그리스도교의 교리 사이의 차이를 니체가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는 니체가 예수를 긍정적으로 본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심지어 니체 연구자 중 어떤 이들은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 예수와 동일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러나 니체는 예수를 '숭고한 것과 병적인 것과 유치한 것이 기이하게 결합하여 있는 가장 흥미 있는 데카당'이라고 보고 있다. 니체는 예수의 정신을 생리적인 허약함으로 인해서 현실에 대한 모든 저항과 투쟁을 포기하고 내면적인 평화로 도피해 들어가려고 하는 정신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니체는 『도덕의 계보』 첫 번째 논문 8절에서 예수의 이념도 바울에서 보이는 유대적인 증오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정화(精華)라고 보고 있다. 예수 역시 궁극적으로는 가난한 자, 병든 자, 죄인에게 축복과 승리를 가져다준 '구세주'로서, 예수의 이른바 사랑의 복음에는 지상의 강력한 자들에 대한 원한이 승화된 형태로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ㅡ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1, p.54) [181]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416번 [182]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416번 [18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두행숙 옮김, 제1부 18.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에 대하여 [184] 《즐거운 학문》 339번 [185] 김진석 저술,《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p.161~162 [186] 김진석 저술,《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p.163 [187] 모든 방면에 의심의 싹을 심었던 니체는 위험한 철학자는 진실에 관한 생각만큼 거짓에 관한 생각에서도 흥미로움을 찾는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묻는다. 왜 다양한 관점에서 진실을 조사하지 않는가? 가령, 왜 개구리의 관점에서는 조사하지 않는가? 그가 이미 말한 대로 진리는 여자의 본성만큼이나 신비롭다는 점을 고려하여 영원히 여성은 진리를 다룰 수 없다는 점으로 돌아간다. "여성에게 진리가 무슨 소용인가! 여성에게는 처음부터 진리보다 낯설고 불편하고, 적대적인 것은 없다. 그들의 가장 큰 기술은 거짓말이고, 최고의 관심사는 겉모습과 아름다움이다." 모든 진리는 개인적인 해석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사회 내에 존재하는 기억과 정신 상태에 불과하다. 앞 단락의 마지막 문장은 확실히 이를 증명한다. 니체가 말년에 보여준 철학은 여성 혐오적인 특징이 강했다. 루 살로메는 자유정신을 가진 사람으로서 결혼은 절대 하지 않겠다며 니체의 청혼을 거절해놓고, 당시 프레드 안드레아스와 결혼한다고 발표해 또 한 번 니체를 충격에 빠뜨렸다. 니체는 그녀의 편지에 답장을 쓰지 않았다. (수 프리도 《니체의 삶》 박선영 옮김, 로크미디어, 2020, p.455~456) [188] 니체는 그럴 만했다고 인정되기는 하지만 여성 혐오주의자로 유명하다. 그는 어머니와 엘리자베스 때문에 멀미의 사슬에 빠질 때마다 여성에 대해 좋지 않은 글을 많이 남겼다. 하지만 이 기간 여성에게 보인 연민과 그들의 심리에 대한 통찰력은 당시로 보면 주목할 만하다. 특히 《즐거운 학문》에 등장하는 여성에 관한 아포리즘은 긍정적이고 매우 호의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상류층 여성들이 자라온 환경의 모순점을 지적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성 문제에 가능한 한 무지한 환경에서 길러지고, 성적인 것들은 유해하고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다. 그러고는 어느 날 갑자기 날벼락처럼 결혼이라는 환경에 내던져져 지배를 받는다. 그들이 가장 사랑하고, 가장 존경한 남자에 의해 섹스의 공포와 의무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신과 짐승이 예상치 못하게 다가오는데 그들이 어떻게 대처할 수 있겠는가? 니체는 통찰력을 발휘하여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거기서 여성은 평등하지 않은 심리적 매듭을 묶었다." (수 프리도 《니체의 삶》 박선영 옮김, 로크미디어, 2020, p.339) [189] 수 프리도 《니체의 삶》 박선영 옮김, 로크미디어, 2020, p.505 [190] 베르너 슈텍마이어 《니체 입문》 홍사현 옮김, 책세상, 2020, p.45 [191]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2, p.235. 강조는 책 내에서의 강조. [19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말로서, 원문은 Man muss noch Chaos in sich haben, um einen tanzenden Stern gebären zu können. [193] 직역하면 '죽이지 않는 것'이지만 '못하는 것'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원문은 우상의 황혼에 나오는 말로서, Was mich nicht umbringt, macht mich stärker. 『이 사람을 보라』에도 "그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라는 비슷한 문장이 나온다. [194] 웹상에는 '괴물'을 '악마'로 바꾸어 놓은 인용도 자주 보인다. 하지만 독일어 Ungeheuer은 "괴물, 괴수, 난폭한 인간. 거대한 것, 초대형"을 뜻하지, 악마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독일어로 악마를 뜻하는 단어는 따로 있다. Teufel, Kụckuck, Satan, Pfeifer 등이 '악마'로 쓰인다. [195] 선악의 저편에 나오는 말로서, 원문은 Wer mit Ungeheuern kämpft, mag zusehen, dass er nicht dabei zum Ungeheuer wird. Und wenn du lange in einen Abgrund blickst, blickt der Abgrund auch in dich hinein. [196] Ohne Musik wäre das Leben ein Irrtum. [197] Von allem Geschriebenen liebe ich nur das, was einer mit seinem Blute schreibt. Schreibe mit Blut: und du wirst erfahren, daß Blut Geist ist. [198] Der Mensch ist Etwas, das überwunden werden soll. [199] Gefährlich leben! Baut eure Städte an den Vesuv! (『즐거운 학문』 283절 Vorbereitende Menschen.) [200]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中에 비슷한 맥락의 내용은 나오는데 '구체적'인 독일 원문은 확인 되지 않는다. 아마도 니체가 이런 식으로 말했다는 요약문을 마치 니체가 했던 말인 것처럼 쓴 것처럼 보인다. [201] denn wer von seinem Tage nicht zwei Drittel für sich hat, ist ein Sklave.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83절) [202] "Man verdirbt einen Jüngling am sichersten, wenn man ihn anleitet, den Gleichdenkenden höher zu achten als den Andersdenkenden." (아침놀 297절) [203] Jeder tiefe Denker hat mehr Angst davor, verstanden zu werden als missverstanden zu werden. [204]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 [205] Der Ekel vor dem Schmutze kann so groß sein, daß er uns hindert, uns zu reinigen – uns zu »rechtfertigen«. (『선악의 저편』 119절) [206] 유고(1888년 봄-여름, KSA 16 (40 〈7〉))에 나오는 말이다. 철학자가 진리를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면 매를 맞아야(!) 된다면서 하는 말이다. 원문은 Die Wahrheit ist häßlich. Wir haben die Kunst, damit wir nicht an der Wahrheit zu Grunde gehen. [207] 『아침놀』 204절에 나온다. 주식시장과 그곳에 있는 돈에 목숨 건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 원문은 und was man ehedem "um Gottes willen" that, thut man jetzt um des Geldes willen. [208] Das ist ein Künstler, wie ich Künstlerliebe, bescheiden in seinen Bedürfnissen: er will eigentlich nur zweierlei, sein Brot und seine Kunst. (우상의 황혼) [209] wir aber wollen die Dichter unseres Lebens sein, und im Kleinsten und Alltäglichsten zuerst. (Die fröhliche Wissenschaft, 299.) [210] "Es ist nicht ein Mangel an Liebe, sondern ein Mangel an Freundschaft, der zu unglücklichen Ehen führt." [211] 원문은 라틴어로 "Aut liberi aut libri." 아이를 가질 것인가? 아니면 책을 지을 것인가? 라는 뜻으로서, 아이를 가지면 창조적인 작업을 하기 어려우니 독신으로 살지 말지를 결정해야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니체는 이 말을 유고(1885년 가을 ~ 1887년 가을, 2(22))에서 1번, 우상의 황혼(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 27)에서 1번 말한다. [212] 신이 완벽한 인간을 만들지 않아서 인간이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이야기이지만, 니체의 주장에 따르면 그게 아니라 인간이 '신'이라는 거짓 개념을 만들어 냈고 이러한 '신'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삶에 매우 해롭게 작용해왔으니, '신'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실수'라는 것이다. [213] In seinem Freunde soll man seinen besten Feind haben. Du sollst ihm am nächsten mit dem Herzen sein, wenn du ihm widerstrebst. (Also sprach Zarathustra, Vom Freunde) [214] 이 말은 『우상의 황혼』에 나오는 말로써, 원문은 이렇다. "Hat man sein warum? des Lebens, so verträgt man sich fast mit jedem wie?" 여기서 물음표는 바로 앞의 단어를 강조하는 용법으로 쓰였다. 직역은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거의 모든 삶의 '방식'을 견딜 수 있다." 한국에서는 빅터 프랭클이 인용한 니체의 말로 잘 알려져 있다. [215] wer heute am besten lacht, lacht auch zuletzt. (우상의 황혼) [216] Der Vorteil des schlechten Gedächtnisses ist, daß man dieselben guten Dinge mehrere Male zum ersten Male genießt.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 580) [217] Reife des Mannes: das heißt den Ernst wiedergefunden haben, den man als Kind hatte, beim Spiel. (『선악의 저편』 94절) [218] Amor fati는 '운명을 사랑해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니체는 이 부분만 의도적으로 라틴어를 사용했다. [219] Amor fati: das sei von nun an meine Liebe! Ich will keinen Krieg gegen das Häßliche führen. Ich will nicht anklagen, ich will nicht einmal die Ankläger anklagen. Wegsehen sei meine einzige Verneinung! Und, alles in allem und großen: ich will irgendwann einmal nur noch ein Jasagender sein! (『즐거운 학문』 4부 276절) [220] War das das Leben? Wohlan! Noch einmal! (Also sprach Zarathustra, Vom Gesicht und Rätsel) [221] die Frage bei allem und jedem: »willst du dies noch einmal und noch unzählige Male?« würde als das größte Schwergewicht auf deinem Handeln liegen! (Die fröhliche Wissenschaft, 341. Das größte Schwergewicht) [222] 원문: Jeder tiefe Denker fürchtet mehr das Verstandenwerden als das Mißverstanden-werden. Am letzteren leidet vielleicht seine Eitelkeit; am ersteren aber sein Herz, sein Mitgefühl, welches immer spricht: "ach, warum wollt ihr es auch so schwer haben wie ich?" [223] Allein gehe ich nun, meine Jünger! Auch ihr geht nun davon und allein! So will ich es. Wahrlich, ich rate euch: geht fort von mir und wehrt euch gegen Zarathustra! Und besser noch: schämt euch seiner! Vielleicht betrog er euch. (...) Man vergilt einem Lehrer schlecht, wenn man immer nur der Schüler bleibt. Und warum wollt ihr nicht an meinem Kranze rupfen? (...) Nun heiße ich euch, mich verlieren und euch finden; und erst, wenn ihr mich alle verleugnet habt, will ich euch wiederkehren. (Also sprach Zarathustra, Von der schenkenden Tugend) [224] "니체의 말"은 시라토리 하루히코가 쓴 저서로, 니체의 여러 저서에서 명언 같은 말들을 문맥의 고려 없이 떼어 모아놓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만든 책이다. 한국에는 여기서 여러 말들이 니체의 명언인 양 퍼졌지만, 문맥을 고려하지 않거나 아예 오역으로 인한 잘못된 해석이 많으니 열람 시 주의해야 하며, 이 책의 글 그대로를 니체의 명언으로 인용하면 안 된다. [225] 1766 ~ 1817, 프랑스 혁명기의 낭만주의 작가. [226] 당시의 여성 해방 논조에 대해 한 말이다. [227] 묘비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차라투스트라가 추종자들에게 한 말이다. [228]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은 니체의 첫 저술로서, 그리스 비극을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투쟁과 조화로 설명하고 있다. [229] 4년에 걸쳐 4편의 글을 모은 책이다. 1. 다비드 슈트라우스, 고백자와 저술가 (1873) 2.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 (1874) 3.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 (1874) 4.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 (1876) [230] 참고로, 이 책 제목의 영문 번역은 'The Gay Science'이다. 여기서 Gay는 '즐거운'이라는 의미지, '동성애자'라는 의미가 아니다. 1950년대까지는 Gay가 '즐겁다'는 의미로 쓰였다. [231] 니체의 저서 중 가장 유명한 책.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23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해설서. 차라투스트라는 꽤 난해하지만, 이것은 그것과 비교하면 덜 난해하다. 이 책은 아홉 장으로 나뉘어 기술되었는데, 첫 장에서 실체론을 비판하며 시작된다. [233] 도덕적 개념의 형성사를 다룬 책. <선악의 저편>에서 말한 "귀족 도덕과 노예도덕"을, 좀 더 상세하게 논문형식으로 쓴 글이다. [234] 기존의 모든 가치에 대해 반박하는 논리를 펼치는 책이다. 이 책에서 니체는 모든 확신에 반박하는 자신을 두고 '망치를 든 철학자'로 표현하고 있다. 제목 '우상의 황혼'은 바그너의 악극인 니벨룽의 반지의 제3부 악장극 < 신들의 황혼>(Götterdämmerung)의 패러디이다. [235] <도덕의 계보>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한 책으로, 그리스도교는 비판하지만 예수는 비교적 고평가하는 점이 이채롭다. [236] 1888년에 저술했으나, 1894년이 되어서야 출간되었다. [237] 아모르 파티를 그대로 보여주는 글쓰기로 쓰여진 니체의 철학적 자서전이다. 이 책에서 니체는 의도적으로 자신을 과도하게 칭찬하는데, 그 설명이 니체 사상의 핵심을 관통하기 때문에 니체 사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책 중 하나로 꼽힌다. 또한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해설하는 부분도 있어서 니체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준다. 책의 제목은 성경 구절의 패러디다. " 예수가 가시관을 쓰고 자주색 옷을 입은 채로 나오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보라! 이 사람이다!' 하였다." < 요한복음> 19:5 [238] 쓰여진 연도는 1888년, 최초로 출판된 연도는 1908년이다. [239] 1888년 말에 쓴 마지막 저서이나 1889년 초에 출간되었다. [240]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니체의 유고를 편집하여 내놓은 책. 1960년도 이후부터 니체의 공식적인 저서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241] 서울대학교 박찬국 교수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부터 시작하면 절대로 안 돼요. 몇 쪽 안 읽고 좌절해요. 시적인 비유가 많아 니체 전공자에게도 어려운 책입니다. 니체가 난해한 사상가라는 인상은 이 책 때문에 생겼다고 생각해요. 니체를 이해하고 싶다면 『도덕의 계보학』, 『안티 크리스트』, 『비극의 탄생』 등 논문식으로 쓴 책부터 시작하세요. "라고 말했다. # [242] 4권의 책이란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즐거운 학문〉, 〈우상의 황혼〉을 말한다. 니체의 핵심 주장을 내포하고 있는 중요한 책이다. [243] 이밖에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니체의 철학은 주로 쇼펜하우어에 대한 반응으로 발전해왔다고 볼 수 있으며, 쇼펜하우어를 논박하는 과정에서 니체의 철학도 뚜렷하게 정립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볼테르의 『캉디드』를 읽는 것도 니체 철학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볼테르의 책을 만나고 나서부터이기 때문이다. 『캉디드』의 주인공 캉디드는 삶의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낙천적인 태도'를 '현실적인 태도'로 승화시키는데, 이 책을 통해 니체 철학에서의 '긍정'이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볼테르가 『캉디드』를 지은 의도는 라이프니츠의 낙천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지만, 니체는 『캉디드』를 그런 식으로 읽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스러운 운명에 당당히 맞서는 주인공 캉디드는 이제 '미래'를 위한 낙천주의자가 아니라 '현재'를 위한 낙천주의자가 되었다는 소설로 보았던 것. [244] 다른 출판사에서는 '선악을 넘어서', '선악의 저편'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245] 1893~1974. 유태인이라고 하지만 본명도 알려지지 않았다. [246] 다만 같은 니힐리즘의 지류 아래에서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인간관에 대해서는 반대적 입장이었다. 흔히 쇼펜하우어는 수동적 니힐리즘, 니체는 능동적 니힐리즘으로 구분한다. 신이 죽은 허무주의 안에서도 니체는 남들보다 더 높은 곳에 두고자 하는 인간의 능동적 의지를 추구했다. 자세한 것은 위버멘쉬, 힘에의 의지 참고. [247] 첫 번째로 바쿠닌의 천상에 왕이 존재한다면 그는 지상의 왕의 핑계이니 그를 폐하라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니체의 절대적 신을 부정하는 그의 사상과 비슷하다. 다음으로 바쿠닌은 "파괴는 창조의 욕구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는데 이는 니체의 나는 창조하기 위해 파괴하는 자를 사랑한다는 사상과 비슷하다. 또한 바쿠닌과 니체 모두 국가와 권위를 따르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였다. [248] 사실상 니체의 찬가라고 해도 좋을만큼 니체의 사상과 깊게 연관이 되어있다. [249] 그렇다고 니체가 실용주의의 시조가 되는 것은 아니고, 철학사에서 이런 종류의 사고방식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고 니체의 철학도 굳이 현재의 관점에서 따져본다면 상대주의보다는 실용주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250] Motette: 성서 구절을 다성적으로 다룬 무반주 악곡을 말한다. [251] 차라투스트라는 독일어 발음 음차이고 이 인물에 대한 제대로된 한국어 표기는 자라투스트라다. 여기에서는 니체의 책에 나오는 인물을 다루므로 독일어 발음 음차로 표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