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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하르트 뮐러/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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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나이트하르트 뮐러의 생애를 정리한 문서.

2. 외전

2.1. 지향성 제플입자 발생기 탈환 작전

첫 등장은 OVA 외전 <탈환자>. 당시 22세로 대위였으며 페잔 자치령의 주재무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라인하르트 폰 뮈젤이 순항함 헤슈리히엔첸을 타고 동맹령에 잠입하자 정보를 제공하고 공작을 펼치는 등 라인하르트를 도와주었다. 라인하르트는 비밀 작전이 끝난 뒤에 뮐러의 이름을 알게 되었는데, 세상에는 뛰어난 사람이 많다면서 언젠가 그들을 자기 밑에 거두고 싶다고 말했다.

3. 중장

3.1. 립슈타트 전역

원작에서 첫 등장은 립슈타트 전역. 하지만 별다른 비중은 없다. 내전 발발 직전에 다른 제독들과 함께 대화를 나눌 때 한 번 언급되고,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1차 암살미수사건 직후 제독들과 해결책을 논의하는 데 한 번 등장한다. 이후 라인하르트파가 오딘으로 몰려갈 때 동행하여 함정 800척으로 위성궤도를 장악했다.

립슈타트 전역이 끝나자 다른 제독들처럼 1계급 승진하여 대장이 되었다.

4. 대장

4.1.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

본격적인 등장은 3권 <자복편>. 안톤 힐머 폰 샤프트 기술대장이 입안한 이제르론 요새 공략계획의 총사령관으로 칼 구스타프 켐프 대장이 지명되자 그보다 경력이 밑돈다는 이유로 부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처음에는 거대 요새에 워프엔진을 달아 이제르론 요새를 공략한다는 전대미문의 전술로 양 함대의 허를 찔렀고, 때마침 양 웬리 사문회에 소환되어 이제르론에 없었기 때문에 일이 잘 풀려서 요새를 함락하는 듯 했다. 하지만 양 웬리 없는 양 함대는 매우 잘 버텨냈고, 숙장으로 이름높은 전 제국군 제독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가 함대 지휘권을 일시 양도받아 전선에 나서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동맹군 공전대가 끈질기게 버티며 제공권을 넘겨주지 않자 뮐러는 나중에 항만시설을 못 쓰는 걸 감수해서라도 주둔함대의 출격을 봉쇄해야겠다고 판단하여 구축함 6척을 메인 포트 출입구로 돌진시켜려고 했다. 하지만 동맹군이 토르 하머를 난사하여 제국군을 방해했고, 뮐러가 잠시 함대를 산개한 사이 동맹군 전 함대가 출격했다. 뮐러는 자신의 계책이 수포로 돌아가자 크게 분통해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출격한 양 함대를 요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양 함대는 뮐러와 맞붙지 않고 요새 표면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고, 뮐러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 적 분함대부터 격파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뮐러를 요새 대공포탑군으로 유인하기 위한 메르카츠의 속임수였고, 뮐러는 양 함대와 대공포탑 사이에 끼여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뮐러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으로부터 어떻게든 함대를 유지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켐프가 보낸 원군이 오자 포위망을 뚫고 탈출했다. 하지만 자신의 실책으로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고, 조바심을 내는 켐프는 뮐러를 꾸짖으며 후방으로 보내버렸다. 뮐러는 불만을 품으면서도 후방으로 물러났는데, 군의관으로부터 포로가 양 웬리가 이제르론에 없다는 진술을 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증언한 포로는 죽어버렸고, 나머지 포로들은 죄다 중상자 뿐이라 심문이 불가능했으며 유일하게 심문이 가능했던 포로는 양 웬리가 이제르론에 없다는 발터 폰 쇤코프 소장의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뮐러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마침내 양 웬리가 이제르론에 없다고 결론내려 3천 척을 차출해 양 웬리를 잡을 함정을 팠다. 하지만 자신의 명령도 없이 함대를 재배치한 뮐러를 불쾌하게 생각한 켐프는 뮐러에게 당장 병력을 원위치하라고 지시했고, 뮐러는 이를 따랐다.

1달 뒤 정말 양 웬리가 구원군을 이끌고 이제르론으로 돌아오자 켐프는 각개격파로 양 웬리와 요새를 동시에 공략하려고 한다. 하지만 뮐러는 너무 촉박한 작전이라며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로 이제르론을 견제하고, 함대는 모두 양 웬리를 격파하는 데 동원해야 한다고 진언했고 켐프는 이를 채용했다. 하지만 양 웬리가 회랑의 협소한 지형을 이용하여 켐프-뮐러 함대를 붙드는 사이 후방에서 메르카츠가 달려와 협공하여 제국군은 패배한다. 후퇴한 켐프는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로 이제르론을 들이받으려고 했지만 이마저도 양 웬리의 방해로 실패하고, 도리어 가이에스부르크 요새가 토르 하머에 얻어맞고 폭발해버린다.

가이에스부르크 요새가 돌진할 때 뮐러는 4천 척 남은 잔존함대를 통솔하고 있었는데 가이에스부르크가 폭발할 때 자리에서 튕겨져서 벽에 충돌, 갈비뼈 4개가 부서지고 뇌진탕, 열상, 타박상, 찰과상, 출혈 등 전치 4개월치 부상을 입는다. 그런데도 숨을 크게 들이쉬어 부러진 갈비뼈를 다시 맞추는 비범함과[1] 근성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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뮐러의 다짐
이후 가이에스부르크가 폭발하기 전 탈출한 푸세네거 중장이 뮐러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켐프의 전언이자 유언을 전하자, 극도로 분노하여 "대신(大神) 오딘이시여, 지켜보소서! 반드시 켐프 제독의 원수를 갚겠나이다. 양 웬리의 목을 이 손으로 취하고 말겠나이다! 지금은 미력하여 놈과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으나... 몇 년 안으로 반드시!"라고 맹세했다. 치료를 받은 후 700여 척 남은 잔존병력을 통솔하여 제국령으로 후퇴했다. 후방에 응웬 반 티우 산도르 알라르콘이 지휘하는 동맹군 일부 함대가 추격했지만 따라잡히기 전에 제국의 쌍벽과 조우하여 그들에게 후방을 맡기고 제국령으로 철수했다.[2]

라인하르트 원수부 창설 이래 최악의 패전이라서 사람들은 라인하르트가 뮐러를 엄벌에 처하리라고 예상했고, 그 말대로 라인하르트는 뮐러를 엄벌에 처하려고 했다. 하지만 라인하르트는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를 떠올리며 켐프와 뮐러에게 관용을 보이기로 마음을 바꿨다. 부상으로 붕대를 머리에 감은 채로 원수부에 출두한 뮐러는 자신의 패배를 사죄하며 죄는 자신에게 있으니 부디 부하들에게는 관대한 처우를 내려달라고 부탁했지만 라인하르트는 뮐러를 꾸짖지 않고 완치될 때까지 요양한 뒤 현역에 복귀하라고 명령했다. 그 말을 들은 뮐러는 긴장이 풀려 실신해버렸고, 라인하르트는 뮐러를 병원에 후송하라고 명령했다.

4.2. 버밀리온 성역 회전

한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우주력 798년 9월 첫 번째 토요일에 퇴원하여 현역에 복귀했다. 페잔 점령 작전에서는 제국군 2진에 편성되었으며, 이후 동맹령 침공작전에도 함께했다.

최종결전인 버밀리온 성역 회전을 앞두고 뮐러는 라인하르트의 명에 따라 류카스 성역의 보급기지를 공격했는데, 보급기지 사령관 오브리 코클랭이 제국군에 순순히 항복한 덕분에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보급기지를 접수한 뮐러는 즉시 양 웬리와 라인하르트가 혈투를 벌이고 있는 버밀리온 성역으로 달려가서 문자 그대로 죽기 직전인 라인하르트를 구했다. 하지만 강행군으로 병력의 40%가 낙오하여 버밀리온에 도착한 병력은 대략 8천 척 정도였다. 뮐러는 포위망에 갇힌 제국군 카르나프 함대와 연계하여 동맹군의 포위망 일각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양 웬리의 함정이었고, 포위망을 뚫고 만나는 데 성공한 제국군 함대는 외부에서 효율적으로 날아드는 양 함대의 포격에 쓸려나갔다. 카르나프는 기함과 함께 산산조각났고 뮐러는 그동안 쓰던 기함 뤼벡을 떠나 가장 가까운 노이슈타트로 사령부를 옮겼다. 그러나 노이슈타트 역시 양 함대의 집중공격을 받고 폭발했으며 뮐러는 오펜부르프로 사령부를 옮겼지만 2시간 뒤에는 헤르텐으로 또 옮겨야 했다. 이 일화 덕분에 한 회전에서 기함을 세 번이나 바꾼 장수란 위명을 떨치며 그에 걸맞게 철벽 뮐러라는 별명을 얻는다. 훗날 로이엔탈은 "뮐러가 기함을 바꾸고도 칭찬받은 것은 적진에 남아 계속 싸우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남겼다.[3]

적장인 양 웬리마저도 그의 기량에 양장이라는 찬사를 보내며 "카이저 라인하르트는 그와 같은 장수를 휘하에 두었다는 것만으로도 후세 역사에 이름이 남을 것이다."라고 평했다. 그리고 그 후로 뮐러를 수식하는 말에는 '제국군의 철벽'이라는 표현과 함께 "그 양 웬리가 '양장'이라고 평가한" 이라는 내용이 반드시 들어간다. 어찌보면 전투하다 한 번 내뱉은 말이 그 인물의 역사적 평가로 고정되었다는 점에서 양 웬리의 위엄(…)을 드러내는 사례이기도 하지만.

이후 동맹군이 항복하자 뮐러는 라인하르트와 회담을 하러 온 양 웬리를 만나기도 했다. 켐프 제독의 전사로 양 웬리에 적개심을 가지고 있던 뮐러였지만 그와 별개로 그의 무훈에는 경의를 표하고 있던 뮐러는 양 웬리로부터 모종의 인상을 받아 남은 적개심과 패배감마저 모두 녹아내리고 말았다. 뮐러는 자신을 소개하며 양 웬리가 같은 제국군이었다면 양으로부터 용병을 배웠을 거라고 찬사했고, 양은 뮐러와 같은 진영이었자면 집에서 낮잠을 잘 수 있었을 거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뮐러는 세상 일이 뜻대로는 안 되는 모양이라고 웃은 뒤 라인하르트의 개인실로 안내했다.

5. 상급대장

5.1. 제2차 라그나뢰크 작전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 큰 공을 세운 뮐러는 상급대장으로 승진했고, 상급대장 중에서도 수석서열이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로엔그람 왕조가 세워지고 나서 가장 먼저 건조된 전함 파르치팔을 하사받는 영예를 누렸다.

우주력 799년 6월 헬무트 렌넨캄프 상급대장이 무리하게 양 웬리를 해하려다 도리어 패배하고 자살하자 뮐러는 렌넨캄프의 부하 라첼 대령으로부터 렌넨캄프의 폭주행각을 모두 전해들었다. 뮐러는 라첼의 증언을 근거로 양 웬리를 음해한 자들의 소재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제2차 라그나뢰크 작전(대친정)이 벌어지자 참전했고, 마르 아데타 성역 회전에서 제국군의 후위를 지켰다. 회랑 전투에서도 후위를 맡았지만 전투 도중 칼 로베르트 슈타인메츠 함대를 격파하고 브륀힐트로 쇄도하는 혁명군을 몸으로 막아 라인하르트를 지키고 양 웬리를 일시적으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이후 라인하르트가 입안한 새 작전에서 포지션을 바꿔 제국군 제1진이자 선봉이 되어 양 함대와 30시간 동안 치열하게 교전했지만, 지친 나머지 더 이상 싸우지 못하고 2진으로 편성된 에른스트 폰 아이제나흐 함대와 교대했다.

양 웬리가 죽자 생전에 안면이 있었다는 이유로 조문단이 되어 이제르론 요새를 방문, 정중한 태도로[4] 이제르론 요인들과 만났다. 그리고 세라믹 케이스에 저온보존 된 양 웬리의 시신을 보고 프레데리카 그린힐에게 "부인을 뵈어 기쁩니다. 부군께서는 아군에게 최강이자 최고의 적이었습니다"라고 인사했다. 그리고 율리안에게 가볍게 투항을 권유하기도 했지만, 율리안은 "만약 여러분이 경애하는 카이저 라인하르트 폐하가 돌아가신다면, 여러분은 우러러볼 깃발을 바꿀 수 있을까요?"라고 답했고 뮐러는 자신의 무례를 정중히 사과했다.

요새에 오래 머물러 있다가는 이제르론의 내정을 조사하기 위해 온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 있었기 때문에 뮐러는 양 웬리의 시신을 참배하고 바로 요새를 떠났다. 당시 이제르론 요새에는 양 웬리가 죽자 독립정부에 미래가 없다고 여겨 100만 명에 달하는 이탈자가 발생했는데, 율리안은 이들이 하이네센으로 무사히 갈 수 있도록 항로를 확보해 달라고 부탁했다. 뮐러는 깜짝 놀라 항로는 확보해 주겠지만 저들 중 나중에 제국군에 협력하는 자가 나타나면 어쩌냐고 걱정했지만 율리안은 난처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뮐러는 양의 제자는 사부를 따르는 거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고 율리안의 배웅을 받아 요새를 떠났다. 페잔으로 돌아간 뮐러는 다른 사람들에게 "양 미망인은 아름다운 여성이더군요"라는 말을 제외한 다른 말은 일절 하지 않고 위대한 적수를 잃은 공백감에 술만 들이켰다.

5.2. 노이에란트 전역

대친정이 마무리되고 노이에란트 총독에 취임한 오스카 폰 로이엔탈 원수가 라인하르트 앞으로 초대장을 보내자 뮐러는 수행원이 되어 라인하르트의 노이에란트 순방을 준비했다. 그런데 경유지인 우르바시에서 주둔군이 반란을 일으켰고, 라인하르트, 뮐러, 루츠는 졸지에 쫓기는 몸이 되어버렸다. 이때 추격자들의 총격으로부터 라인하르트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가 등에 상처를 입었는데, 라인하르트가 걱정하자 "소관의 등가죽은 제법 두꺼우니 심려치 마십시오"라고 농담을 했다.

하지만 계속 추격자가 따라붙어 교전에 벌어졌고 뮐러는 오른팔에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브륀힐트에 탑승하기도 전에 또 추격자들이 몰려왔고, 루츠는 자신이 남을테니 다른 사람들은 브륀힐트에 탑승하라고 말했다. 뮐러는 루츠를 만류하며 자신이 남겠다고 했지만 루츠는 오른팔에 부상을 입은 뮐러가 남아봐야 무슨 도움이 되겠냐며 자신이 남겠다고 못박았다. 결국 뮐러는 라인하르트와 함께 브륀힐트에 탑승하여 우르바시를 탈출했다.

황제를 지킨 공으로 라인하르트는 뮐러에게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무훈장을 수여했으며 더 나아가 제국원수에 서임하려고 했다. 그러나 뮐러는 공 없이 원수가 될 수 없다면서 나중에 합당한 무훈을 세웠을 때 제국원수장을 받겠다고 거절했다. 그리고 로이엔탈을 살려달라고 했지만 라인하르트는 로이엔탈이 고개를 숙이며 목숨을 살려달라고 빌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가 우선이라며 거절했다. 이후 부상을 입은 데다가 만약 미터마이어가 패하면 뮐러가 라인하르트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토벌군 명단에서 배제되었다.

5.3. 오베르슈타인의 풀베기

우주력 801년 하이네센 동란 제11차 이제르론 공방전이 연달아 벌어지자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은 노이에란트의 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하이네센으로 파견된다. 하지만 오베르슈타인은 군관료라서 함대 지휘관이 필요했는데, 라인하르트는 여기에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와 뮐러를 지명했다. 배속 명령을 받은 뮐러는 한숨을 쉰 뒤 오베르슈타인과 함께 하이네센으로 갔다.

그런데 오베르슈타인이 구 자유행성동맹의 명사들을 교도소에 수감하고, 비텐펠트가 오베르슈타인의 멱살을 잡다 근신 처분을 받으면서 사태가 악화되었다. 사소한 충돌을 계기로 군무성 헌병대와 슈바르츠 란첸라이터가 교전을 벌이자 뮐러는 즉시 오베르슈타인에게 달려가 비텐펠트 면회 허가를 얻고, 비텐펠트를 설득하여 오베르슈타인에게 사죄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벌어진 라그풀 교도소 폭동사건에서는 오베르슈타인의 명을 받아 시가지 경비를 맡았고, 독자적으로 사태의 배후를 캐려고 했지만 도움을 줄 수 있는 무라이 중장은 부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사건이 잠잠해지자 군무성이 직접 병원을 관리했기 때문에 더 이상 조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때 구 동맹 시절 군사재판에 넘겨져 교도소에 수감된 오브리 코클랭을 석방시켜 자신의 참모로 삼았다. 사태가 마무리되자 뮐러는 라인하르트의 명령으로 제국측 대표가 되어 이제르론 공화정부와 교섭을 시작했다.

5.4. 벨제데 임시 황궁 습격사건

시바 성역 회전에서는 늘 그렇듯 후위를 맡았으며, 라인하르트의 명령이 끝까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5] 별다른 활약을 펼칠 수 없었다. 이후에 군의들이 라인하르트의 병은 연구를 하지 않고서는 치료법을 알 수 없다고 대답한 것에 분노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 작품 엔딩까지 무사히 살아남아 벨제데 임시 황궁에 잠입한 지구교도를 소탕했고, 그 전에는 오베르슈타인이 카이저를 미끼로 써서 지구교도들을 소탕하려는 것에 분노했지만 지구교도들을 없애는게 먼저라고 여긴다. 카이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의 임종을 지켰다. 그리고 죽기 직전 라인하르트가 남긴 명령에 의해 제국원수로 진급, 뢰벤브룬 칠원수 중 한 명이 되었다. 라인하르트가 죽자 뮐러는 율리안 민츠에게 부고를 전하고, 바라트 성계에 내정자치권을 인정하는 것은 라인하르트와 제국정부의 명예를 걸고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율리안이 공화주의자로서 생전 라인하르트와 한 약속( 이제르론 요새 반환)을 지키겠다고 대답하고 조의를 표하자 뮐러는 깊이 고개를 숙여 답례한 뒤 라인하르트의 국장에 참여해 줄 것을 부탁하면서 퇴장한다.


[1] 군의관도 놀랐는지 "부사령관님은 불사신이군요."라고 툭 내뱉었는데, 뮐러는 여기에 "불사신이라니 좋은 말이네. 내 묘비명으로 쓰고 싶어."(…)라고 대꾸했다. [2] 반다이남코판 은영전 게임에선 켐프 대신 가이에스부르크 지휘를 맡겨도 안 죽는다. 물론 그렇게 하면 켐프는 생존한다. [3] 제2차 란테마리오 회전에서 알프레트 그릴파르처의 배신으로 트리스탄이 큰 손상을 입자 참모들이 기함을 바꿀 것을 건의했을 때 한 말. [4] 율리안과 만날 때도 12살이나 어리지만 양 제독의 대리인이므로 예의를 지켜 '헤어(Herr) 민츠'라고 불렀다. [5] 라인하르트가 전투 중간에 기절해버려서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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