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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찰예비대의 기
1. 개요
[ruby(警察予備隊, ruby=けいさつよびたい)] / National Police Reserve일본의 준군사조직.
2. 상세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후 일본군은 해체되었고, 해체 및 해외 국민 및 병력의 귀국 등 기타 행정 업무를 처리할 일본 육군의 제1복원성, 일본 제국 해군의 제2복원성만 남겼지만 1947년부터 미국은 방침을 바꿔 일본에 군사조직을 재편성하는 방안을 검토하였다. 1950년에 6.25 전쟁이 터지면서 주일미군이 한반도로 이동하면서 일본에 치안 공백이 생기자 더글러스 맥아더는 요시다 시게루 당시 내각총리대신에게 치안을 담당할 부대를 설치할 것을 요구하였고 1950년 7월 26일에 경찰예비대가 생겼다. 이들은 초기에는 경찰 업무를 보조하는 부대였으나 점차 군사업무도 맡게 되고 1952년에 보안대로 개편되고 1954년에 육상자위대가 되었다. 경찰예비대가 창설되었을 당시 일본 국내에서는 군대를 재건하는게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으며 합격자의 절반 이상이 입소 후 "난 경찰이 되려고 왔는데, 이건 그냥 군대잖아?"라며 퇴소해 버리기도 했다. 일본사회당 위원장이 최고재판소에 경찰예비대 위헌에 대한 소송 건을 제출하기도 했으나 무산되었다.제1관구대는 관동 지방, 제2관구대는 홋카이도와 혼슈 동북부 일부, 제3관구대는 혼슈 서부와 시코쿠, 제4관구대는 혼슈 일부와 규슈, 오키나와 등을 담당했으며 이런 분할은 육상자위대의 방면대로 이어진다.
상당히 조직이 급히 결성됐기 때문에 75,000명이 두 달만에 입대했다. 초기 인원은 일본 육해군 장교 출신은 들어오지 못하게 했고 사관생도까지만 입대를 허용했기 때문에 일본 경찰에서 파입된 인원들이 간부를 구성했다. 일단은 간부 임용하기가 여의치 않아서 미군 고문관이 훈련과 지휘를 맡고 입대자들은 전원 2등경사 신분으로 훈련을 받았다. 간부 자원은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이라고 적힌 완장을 차고 다른 훈련병들과 교육을 받다가 에타지마에 위치한 일본해군병학교 시설에 가서 간부 교육을 따로 받았다. 경찰예비대의 성격이 군으로 탈바꿈하자 군 업무에 익숙지 않은 간부 자원들은 대삽질을 반복했고 6.25 전쟁에서 군경력자 출신 지휘관들이 잘 싸우자 미국은 생각을 바꿔 좌관급 장교까지 경찰예비대에 입대를 허용한다.
훈련받는 경비대원들.
토요타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토요타 랜드 크루저의 탄생에도 간접적인 역할을 했는데 토요타가 6.25 전쟁을 대비해서 만들었다가 입찰에 실패한 4륜구동 BJ지프의 입찰을 경찰예비대가 제안하면서 일본 SUV 탄생의 서막을 알리게 되었다.
3. 계급
- 경찰감(警察監) - 중장
- 경찰감보(警察監補) - 소장
- 1등경찰정(1等警察正) - 대령
- 2등경찰정(2等警察正) - 중령
- 3등경찰정(3等警察正) - 소령
- 1등경찰사(1等警察士) - 대위
- 2등경찰사(2等警察士) - 중위
- 3등경찰사(3等警察士) - 소위
- 1등경찰사보(1等警察士補) - 상사
- 2등경찰사보(2等警察士補) - 중사
- 3등경찰사보(3等警察士補) - 하사
- 경사장(警査長)陸士長 - 병장
- 1등경사(1等警査) - 일등병
- 2등경사(2等警査) - 이등병
4. 여담
경찰예비대는 초기에는 일본군 장교 출신을 배제하고 관료들을 끌어들여 지휘부를 만들었다.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주일미군이 빠져서 그 공백을 메우려고 워낙 급하게 만들다 보니 지휘부를 구성할 인원이 부족해서 훈련 받던 사람들을 기준으로 해서 일단 자리에 임명해 두고 인원을 보충할 때마다 다시 조정하는 식으로 했다.당시 입대했던 사카모토 료쿠(坂本力)[1]라는 인물에 따르면 다음과 같았다. 사카모토는 NHK에서 기자로 근무하다 경찰예비대에 입대했는데 제2차 세계 대전 때 견습사관을 지낸 적이 있단 이유로 1등경찰사( 대위에 해당) 계급을 받았고 임의로 편성한 중간사령부A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이는 현재의 북부방면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중장급 직위이다. 대위 계급이 중장급에 임명된 것이었다. 그러다가 조직이 기틀을 잡아가면서 매달 직위가 강등되어서 자기 계급에 맞는 직위를 찾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1개월 정도 되니 정식
사령관이 임명되어 오고 나는
사단장이 되었다. 4일 정도 뒤에 또한 공식적인 사단장이 와서
연대장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부대 전속을
명령 받아서,
12월[2] 초에 약 1000명으로 구성된
연대를 데리고
우츠노미야에 갔다. 거기에 진짜 연대장이 부임해오고, 나는 연대
정보참모가 되었다. 연대장과 만났는데
센다이에서 나를 사단장에서 쫓아낸 그 사단장이었다.
어쨌든 순식간에 중장에서 대위까지 3개월만에 내려갔다. 다시 중장으로 진급하는 데 25년 걸렸다.
어쨌든 순식간에 중장에서 대위까지 3개월만에 내려갔다. 다시 중장으로 진급하는 데 25년 걸렸다.
출처 - 당시를 다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