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晉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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牽秀
(? ~ 304)
중국 서진의 인물이며 자는 성숙(成叔). 견초의 손자이자, 견초의 장남 견가(牵嘉)의 아들.
기주 무읍군 관진현 사람으로 사물을 분별할 줄 알고 글에 재능이 있으며, 성품이 호방하고 협기가 있어 어려서부터 이름을 날렸고 위관, 최홍 등이 그를 알아주었다.
태강 연간[1]에 선발되어 신안령이 되었다가 여러 차례 승진해 사공종사중랑이 되으며, 왕개와 사이가 나빠 고평국의 병사인 전흥의 처를 간통했다는 모함을 받았고 견수는 죄가 없음을 호소하면서 격렬한 말로 왕개의 품행이 더럽고 그가 외척이라 처벌받지 않는다고 비웃었다.
조정의 신하들이 견수의 품행에 대해 증명해줬지만 그의 명성, 명예는 이 일로 인해 훼손되어 연좌되면서 면직되었으며, 장화의 요청으로 장화의 장사가 되었다. 견수는 기분에 따라 치우치게 행동하고 장수가 되기를 좋아했으며, 303년에 장창이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예의 명으로 그를 토벌하러 가기 위해 관을 나왔다가 사마영을 섬겼다.
사마영이 사마예를 공격하면서 관군장군에 임명되어 육기, 왕수 등과 군사를 일으키도록 했지만 육기가 번번이 패하자 적과 아군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고 하면서 육기를 죽게 만들고 사마영의 부하인 황문시랑 맹구에게 아첨해 사마영의 총애를 받았다.
혜제가 장안으로 향하자 상서가 되었고 견수는 자신이 재상이 되면 조정의 나쁜 풍토를 없애고 좋은 기풍을 살리겠다고 했는데, 그의 말은 조정에서 제일 먼저 받아들여졌지만 건의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데에 힘을 보탠 적은 없었다.
사마영이 죽은 후에는 사마옹을 섬겼고 총애를 받았으며, 평북장군에 임명되어 빙익군을 진수했다. 마첨과 함께 사마옹을 도와 관중을 지키려 했지만 사마옹이 은밀히 사마월에게 사자를 보내 맞이해달라고 했다. 사마월의 부하인 미황[2]이 사마옹을 맞이하려 했지만 견수가 빙익군에서 무리를 끼고 있어 함부로 나아가지 못 했는데, 양등이 사마월의 군사가 응하지 않는 것을 보고 토벌을 두려워해 견수를 죽여 바치고자 했다.
양등이 빙익군의 대호족인 여러 엄씨와 함께 사마옹의 명을 사칭해 병사를 거두도록 하자 견수는 이를 믿었으며, 견수는 만년현에서 양등에게 살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