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05:13:13

S.E.S./인기 및 위상




[ 한국 음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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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1집

S.E.S.
(1997. 11. 24.)
정규 2집

Sea & Eugene & Shoo
(1998. 11. 23.)
정규 3집

Love
(1999. 10. 29.)
정규 4집

A letter from Greenland
(2000. 12. 23.)
스페셜 4.5집

Surprise
(2001. 07. 11.)
정규 5집

Choose My Life-U
(2002. 02. 14.)
리믹스 싱글

Remixed
(2002. 08. 28.)
스페셜 5.5집

FRIEND
(2002. 11. 21.)
파일:S.E.S. 로고 화이트.svg
디지털 싱글

Love [story]
(2016. 11. 28.)
스페셜 20주년 기념

REMEMBER
(2017. 01. 02.)
[ 일본 음반 ]
||<tablebgcolor=#FFFFFF,#191919><tablecolor=#000000,#FFFFFF><width=25%>||<width=25%>||<width=25%>||||
싱글 1집

めぐりあう世界
(1998. 10. 21.)
맥시 싱글

I'm Your Girl
(1998. 12. 10.)
싱글 2집

夢をかさねて
(1999. 02. 21.)
정규 1집

REACH OUT
(1999. 03. 10.)
싱글 3집

(愛)という名の誇り
(1999. 06. 23.)
싱글 4집

T.O.P.(Twinkling of paradise)
(1999. 10. 27.)
싱글 5집

Sign of Love / Miracle
(1999. 12. 08.)
베스트 1집

PRIME -S.E.S the best-
(2000. 03. 15.)
싱글 6집

Love∼いつまでも オンジェ·カジナ∼
(2000. 04. 21.)
정규 2집

Be Ever Wonderful
(2000. 05. 24.)
OST

海のオーロラ
(2000. 07. 21.)
싱글 7집

Lovin' You
(2000. 08. 21.)
파일:S.E.S. 로고 화이트.svg
베스트 2집

Here & There - S.E.S Single Collection
(2001. 03. 16.)
베스트 3집

S.E.S. BEST
(2002. 07. 10.)
베스트 4집

BEAUTIFUL SONGS
(2003. 06. 25.)
[ 참여 음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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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99 Winter SMTOW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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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00 Winter SMTOW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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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Winter vacation in SMTOWN.com.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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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02 SUMMER VACATION IN SMTOWN.com.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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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앨범

Christmas In SMTOWN.com
(1999. 12. 01.)
캐롤 앨범

Winter Vacation In SM Town.com
(2000. 12. 08.)
캐롤 앨범

Winter vacation in SMTOWN.com - Angel eyes
(2001. 12. 04.)
여름 앨범

02 SUMMER VACATION IN SMTOWN.com
(2002. 06. 11.)



1. 개요2. 특징3. 언론 수식어4. 언론의 인기 설명
4.1. 신드롬
5. 대중적 인지도
5.1. 한국5.2. 일본5.3. 중국5.4. 서구권
6. 각계각층 위상
6.1. 가요계
6.1.1. 20년 만에 촉발된 걸그룹 전성시대6.1.2. 성공 후 3인조 걸그룹 범람
6.2. 방송계
6.2.1. 지상파 저녁 메인뉴스에 단독 소식 보도6.2.2. 활약상을 조명하는 지상파 코너 편성6.2.3. 지상파 단독 특집 프로그램 편성
6.3. 연예계
6.3.1. 같은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화제
6.4. 문화계
6.4.1. 성별과 세대를 구분하는 기준점
6.5. 메이크업계
6.5.1. 투명 메이크업 유행 주도
6.6. 언론계
6.6.1. PC통신 유니텔의 인기비결 단독 여론조사 실시6.6.2. KBS와 PC통신 선정 상반기 연예계 10대 뉴스에 랭크6.6.3. 포탈사이트의 콘셉트 영향력 단독 여론조사 실시6.6.4. 일간스포츠 선정 연간 연예계 10대 뉴스에 랭크6.6.5. 스포츠서울 선정 연간 연예계 10대 뉴스에 랭크
6.7. 정치계
6.7.1.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 행사 및 정당 주제가·로고송 제안6.7.2. 국가 행사를 대표하는 국민 아이돌로서의 위상6.7.3.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오찬에 초대6.7.4. 연예인 최초·유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만화 전국 출간
6.8. 월드컵
6.8.1. 2002 한·일 월드컵 대중 여론조사로 명예 홍보위원 위촉6.8.2. 2002 한·일 월드컵 조직위 선정으로 문화 홍보사절 위촉
6.9. 주식계
6.9.1. 해체 소식에 SM 주가 6.25% 급락
6.10. 교육계
6.10.1. 日 공민 교과서에 수록6.10.2. 천재교과서 중학교 통합 음악 교과서에 수록6.10.3. 동아출판 중학교 1학년 음악 교과서에 수록
7. 글로벌 위상
7.1. 미국
7.1.1. 韓 여자 가수 최초로 美 빌보드에 보도7.1.2. 韓 가수 최초로 美 프로덕션 측으로부터 진출 제의
7.2. 영국
7.2.1. 英 파이낸셜 타임스의 한류열풍 보도 중 대만 차트 1위 소개
7.3. 아시아
7.3.1. 취재를 위한 외신들의 방한7.3.2. 韓 가수 최초로 한중일 삼개국어 기자 회견 실시7.3.3. 韓 가수 유일하게 일본·대만 합동 친선 음악회에 초청
7.4. 일본
7.4.1. 韓 연예인 최초로 日 정부관광국 홍보 모델 발탁7.4.2. 韓 가수 유일하게 2001 한일 합동 행사에서 단독 공연 편성7.4.3. 日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韓 방문 당시 CD 구매
7.5. 해외 팬들의 커버 댄스7.6. 그 외

1. 개요

S.E.S.의 인기 및 위상을 정리하는 문서.

2. 특징

파일:시청률 40.1%.jpg
파일:선간위 전국 배포 만화.jpg
당대 사회에서 S.E.S.의 위상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

S.E.S. 1세대 아이돌을 대표하는 걸그룹으로서 수치나 순위 등의 지표적인 기록 면에서 수많은 기록을 세웠음은 물론, 이 외에도 여러 분야에서도 큰 인기와 위상을 누렸다.

아래 서술되어 있는 것처럼, S.E.S.의 인기와 위상은 가요계를 넘어 여러 사회 분야에 발휘될 정도였다. 즉, 단순히 10대와 20대 층에게만 소구되는 그사세 아이돌 스타가 아닌, 전국구적인 인지도를 구가한 말 그대로 '국민 걸그룹'의 지위를 누렸다.

또한, 한국은 물론 일본· 대만· 중국 등의 동아시아를 필두로 여러 국가에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걸그룹으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동아시아에서의 위상에 힙입어 언론으로부터 ' 아시아 최고의 걸그룹'이라는 수식어로 불리우기도 하였다.

3. 언론 수식어

4. 언론의 인기 설명

4.1. 신드롬

데뷔와 동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S.E.S.의 활약상에 각종 언론들은 ' 신드롬'이라고 칭하였다.

데뷔 당시에는 노래, 안무, 그룹, 멤버, 패션, 악세사리, 헤어스타일, 뮤직비디오 등 S.E.S. 자체를 향한 인기가 ' 신드롬'이라고 평가 받았고, S.E.S.로부터 촉발된 걸그룹 열풍 이후에는' 걸그룹 신드롬'의 원조라는 평가까지 동시에 받았다. 즉, 활동 당시 가수 자체를 향한 인기와 훗날 대중음악사적 두 가지 측면에서 ' 신드롬'이라고 평가 받았다.

1세대 걸그룹으로 분류되는 S.E.S. 이후에 언론에서 신드롬급 인기라고 칭한 걸그룹들은 2세대 원더걸스 소녀시대, 3세대 TWICE, 4세대 NewJeans 등이 있다.
지금 가요계엔 S.E.S. 신드롬이 한창이다. 지난해 11월 28일 SBS 『충전 100%쇼』에서 첫선을 보인 S.E.S.는 데뷔한 지 1개월도 채 되기 전인 1월 마지막 주, KMTV 『결정 인기가요 43』의 정상에 올랐다. 그 여세를 몰아 공중파 1위를 위협하며 가히 신드롬이라 할 정도로 돌풍을 몰고 왔다.

1998.03 남성 잡지 에스콰이어
S.E.S. 신드롬은 10대 남학생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S.E.S. 상큼한 매력으로 '누나부대' 몰고 다닌다 (1998.03[1] 주간[2] 연예 잡지 TV 가이드)
1997년 말 데뷔곡 〈 I'm Your Girl〉을 내자마자 ‘ 소녀 그룹 신드롬’을 일으키며 곧바로 인기 정상에 등극하였다.

지난 1997년 10대 후반의 나이로 데뷔해 소녀 가수 신드롬을 일으켰던 S.E.S.는 4집까지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으로 팬들의 눈길을 끌었다.

지난 1997년 소녀 그룹 신드롬을 일으켰던 S.E.S.

1997년에 데뷔했으니 연예계 생활이 벌써 10년째다. 강산도 변한다는 긴 세월을 보냈지만 가수 겸 탤런트 유진(25)의 활동과 인기는 한결같다.

1997년 한국의 첫 여자 아이돌 그룹 ‘ S.E.S.’의 데뷔는 신드롬 그 자체였다. “넌 내꺼라는 말이 듣고 싶어”라는 당돌한 고백을 담은 가사를 부르며 나타난 이 그룹의 멤버( 바다· 유진·)는 모두 10대 소녀였다.

1997년 S.E.S. 데뷔 ‘신드롬 그 자체’

5. 대중적 인지도

5.1. 한국

그룹 이름과 멤버들의 이름을 남녀노소 전연령층에서 대부분이 인지하고 있을 정도의 폭 넓은 인지도를 구가하였다. 이러한 범국민적인 인지도는 지상파 여러 프로그램에 나올 정도로 입증된 바 있다.
  • 데뷔초 S.E.S. 의 높은 인지도 덕에 멤버들의 이름을 딴 ' 유진이가 바다에 빠졌'라는 다소 썰렁한 삼행시가 유행을 탈 정도였다.
  • 1999년 2월에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 좋은 세상 만들기』에 사전에 녹화된 VTR 자료 화면으로 출연하였다. 이때 일반인 할머니 출연자가 SBS 인기가요』에서 〈 너를 사랑해〉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 S.E.S. 대기실에 찾아간 S.E.S.를 만나고 이름을 정확히 말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SBS가 아니라 정확히 S.E.S.로 알고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말도 곁들였다.
  • 1999년 10월 30일, MBC 음악 프로그램 생방송 『 음악캠프』에 제작진들이 사전에 길거리 젊은이들과 중년층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S.E.S. 멤버 인기도 설문조사가 전파를 탔다.[4] 이때 세 멤버들의 이름이 각기 거론 될 정도로 모든 멤버가 폭 넓은 인기를 구가하였다.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6학년 여자 초등학생: 저는 며칠 전에 끝난 『 가을동화』에 나왔던 원빈 오빠를 좋아하는데요. 김대중 대통령님께서는 어떤 연예인을 좋아하세요?

2001.05.05 청와대 녹지원 어린이날 행사 인터뷰

  • 2001년 7월 21일, S.E.S. KBS2 연예 정보 프로그램 생방송『 연예가중계』 스튜디오에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이때 리포터 김생민이 자신의 아버지는 S.E.S.를 볼 때마다 예쁘다는 말을 한다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장년층에게도 인지도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생민: 저희 아버님은요. S.E.S.를 보면 '뉘집 딸인지 진짜 예쁘다.'라고 말씀하세요.

  • 2017년 10월 25일에 방송된 JTBC 한끼줍쇼』에 3대가 함께 어우러져 사는 가족이 출연하였다. 이때 진행자 이경규가 가족들에게 각자 나이대에 좋아했거나 시대를 대표했던 가수를 물어보았는데, 장년층 아버지는 나훈아, 장년층 어머니는 조용필, 1990년대에 10대를 보낸 딸은 H.O.T, 1989년생 아들은 god, 1990년대에 10대를 보낸 시대의 사위는 S.E.S.를 꼽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1세대 걸그룹 중 유일하게 언급 됨으로써 S.E.S.가 대중들에게 1990년대를 대표하는 걸그룹으로 인식된다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기사)
이경규: 우리 따님은 나이가 우리 동방신기를.

5.2. 일본

  • 1998년 11월 21일, SBS 시사 프로그램 생방송 『주병진의 데이트라인』에 제작진이 사전에 한국 일본의 길거리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상대국 가수 인지도 조사 결과가 방송 되었다.[5] 조사 결과 한국 젊은이들이 알고 있는 일본 가수는 방송에서만 언급된 수만 일곱 가수이며 비율은 무려 81%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이에 비해 일본 젊은이들은 알고 있는 한국 가수는 방송에서만 언급된 가수만 세 가수이며 비율은 고작 23%라는 결과가 나왔다.[6] 특히 S.E.S. 일본에서 언급된 한국 가수 중 유일하게 10대층을 공략하는 신세대 가수였다. 해당 영상 28:35~30:42
한일 양국 젊은이들이 알고 있는 상대국 가수 답변 목록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일본|]][[틀:국기|]][[틀:국기|]]
아무로 나미에
X JAPAN
페니실린
globe
카하라 토모미
LUNA SEA
GLAY
81%
S.E.S.
조용필
이승철
23%

자매 1: 어렸을 때는 아직 한국 문화도 드라마도 많이 아는 사람 없었어요.

5.3. 중국

  • 2001년 12월 28일, KBS의 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대만 중국에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이 방송되었다. 이때 중국 심양시 시민들 중 한 여성이 의 사진을 보여주며 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말하는 장면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과 심양행정학원에 다니는 여학생들이 S.E.S.의 〈 꿈을 모아서〉를 틀어 놓고 안무를 선보이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왕심린: 제가 이거 맹세할 수 있는데, 제가 알게 된 첫 번 째 한국 사람이에요. 그때 우리 사촌형 이 쪽 벽에 H.O.T, 이 쪽 벽에 S.E.S. (사진이 붙어 있었어요.)


5.4. 서구권

유튜브를 통해서 K-POP이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지기 전에 활동한 아이돌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당시부터 서구권사이트 내에서도 S.E.S.를 알고 있는 소수 매니아층 팬들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K-POP이 전 세계의 대세가 되자 S.E.S. 이름이 서구권에도 더 널리 퍼지고 있는 중이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의 플랫폼에 올라오는 뮤직비디오 리액션이나 커버 영상을 보면 서구권 팬들의 영상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다. 1세대 걸그룹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서구권에도 많이 알려져 있는 편이다.
김지민: S.E.S. 아셨어요?

6. 각계각층 위상

6.1. 가요계

6.1.1. 20년 만에 촉발된 걸그룹 전성시대

S.E.S.는 단순히 여성 가수 그룹이 아닌, 데뷔 당시 미성년자, 10대 소녀들로만 구성된 소녀그룹으로 스타가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업계의 충격을 주었다. 그 당시만 해도 아역배우같은 특수 직군이 아닌한 아직 연예인, 가수는 성인만 가능하다는 심리적 장벽이 있었는데 이것이 깨지면서 가수는 물론 소비층 역시 10대 소년,소녀들이 같은 10대 소년,소녀 아이돌의 팬이 되고 나아가 연습생이 되어 아이돌에 도전하는 길과 그 목표가 서면서, 현시대 k-pop의 중요 지점인 어린 나이에도 능력만 있으면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이정표가 되었고, 팬덤 역시 10대의 파워가 완전히 자리잡게 되는 문화산업계의 혁명이자 완성이었다.

S.E.S.가 해체를 선언했던 2002년 이후 가요계에는 한동안 걸그룹 암흑기라고 불릴 정도로 딱히 큰 반향을 일으키거나 사회적으로 대두되는 인기를 얻는 걸그룹이 전멸한 상태였다.[10] 그러다 2007년 2세대 걸그룹의 양대산맥인 원더걸스 소녀시대가 등장하여 큰 인기를 얻으며 다시 한번 걸그룹 신드롬이 일어났다. 침체된 걸그룹 시장이 다시 살아나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런데 S.E.S.는 이들보다 훨씬 오랜 기간인 무려 20년만에 걸그룹 암흑기를 깨고 걸그룹 역사를 써내려갔다.

S.E.S.가 등장하기 전까지 가요계에서 큰 인기를 얻거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는 걸그룹의 부재는 2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만큼 걸그룹의 암흑기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었다. 참고 기사 S.E.S.를 시작으로 확립된 걸그룹은 아니지만 이전에 그나마 괄목할만한 큰 성과를 냈던 걸그룹이라고 하면 1968년에 데뷔해 MBC 10 대가수 가요제에서 걸그룹 최초로 가요대상을 수상한 펄 시스터즈, 1978년 데뷔해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중창 부문을 수상한 희자매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이후 한국 대중 음악사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는 걸그룹의 부재는 20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나마 젊은 층을 공략할 목표로 나왔던 세또래, S.O.S, 애플 등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는 데 실패하고 얼마 안 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만 했다. 이런 칠흑 같은 20년이라는 세월을 걷어내고 걸그룹이 큰 인기를 구가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S.E.S.의 등장이었다. 당시 각종 언론들은 S.E.S.에게 이전 세대의 걸그룹들과 견주며 다시 한번 촉발된 걸그룹 전성시대를 재확인했다.
S.E.S.하면 뭐 여러분들 잘 아시다피 우리 나라 저 은방울 자매 이후에 최고의 여성 그룹 아닙니까.

1998.02.07 MBC 쇼 토요특급
이 여성 트리오가 이렇게 아주 뭐라고 해야할까요. 소위 이제 떴다하는 거는 희자매나 서울시스터즈 이후 처음인데요.

1998.02.19 SBS TV 한밤의 TV연예
은방울 자매의 낭낭한 목소리, 바니걸스의 귀여운 외모, 서울시스터즈의 무게감을 갖춘 S.E.S.

1998.02.21 MBC 쇼 토요특급
이 시스터즈, 쿨 시스터즈, 희자매, 서울 시스터즈. 그리고, 한국 여성 트리오의 맥을 잇는 S.E.S.

2000.01.03 KBS2 스타 데이트

6.1.2. 성공 후 3인조 걸그룹 범람

S.E.S. 등장 이전에도 3인조로 구성된 트리오 걸그룹이 존재하긴 했지만, 그 수가 절대적으로 넘쳐나는 건 아니었다. S.E.S.가 큰 성공을 거두고 난 후 가요계에는 제2의 S.E.S.를 노리며 3인조로 구성된 걸그룹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범람하기 시작하였다.

한스밴드, 쿠키, 클레오, 씨유, 아이다, C.O.C, SZ, 가이, 티니, 투야, 걸프렌드, 민트, 키스, 데이지, 티키, 스위티, 신비, 러브, 아이다, F.O.X(이상 총 20팀)등 모두 S.E.S.가 큰 성공을 거둔 후 음악시장에 문을 두드린 3인조 걸그룹들이다. 하루 아침에 사라진 그룹과 그 이후에 나온 그룹[11]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나게 된다.

이러한 3인조 걸그룹 붐 현상은 모든 그룹이 지양하는 음악이나 콘셉트가 S.E.S.와 동일했다는 게 아니다.[12][13] 다만 그 당시 대세를 이끄는 그룹의 구성이 다른 팀을 꾸리는 데 영향을 준 것만큼은 자명하다는 것이다. 먼저 나와서 성공이라는 검증을 받은 상품을 토대로 시장에 내놓는 것만큼 안전한 것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만큼 수요가 증명 됐기 때문이다. 2세대 대표 걸그룹 소녀시대가 큰 성공을 거둔 후 다인원으로 데뷔하는 걸그룹이 넘쳐날 정도로 대세로 자리 잡은 것도 이러한 벤치마킹 사례의 좋은 예시이다.
그렇다면 왜 3명인가?‘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위 촉 오의 3국으로 힘의 균형이 맞춰질거라 예언했 듯이 3이라는 숫자가 가장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80년대를 주름잡았던 인기 여성 그룹 희자매와 서울시스터즈도 모두 트리오였다. S.E.S.의 성공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여성 그룹의 황금률은 3명이라는 속설이 거의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듯 보이기도 한다. 4인조의 경우 3인조에 비해 드문드문 결성되고 있다.

여성 그룹 데뷔 열풍? 아카이브 (2001.09.04 언론사 미확인)
‘여성 3인조’ 키스, S.E.S. 아성 넘는다. 같은 3인조의 대표적인 여성 그룹 S.E.S.에 겁 없이 도전하고 있는 셈이다. 2000년대 들어 수많은 3인조 여성 그룹이 등장해 S.E.S.의 아성을 넘봤으나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6.2. 방송계

6.2.1. 지상파 저녁 메인뉴스에 단독 소식 보도

1998년 11월 9일 월요일, SBS '저녁 8시 뉴스'에 S.E.S. 일본 진출 소식이 단독[15] 소식으로 보도됐다. 걸그룹이 단독 소식만으로 지상파 저녁 메인 뉴스에 보도되는 것은 최초였다.

당시 10대 아이돌 스타였던 S.E.S.는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등의 소식이 보도되는 뉴스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인물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문화계 인물로 분류되고, 문화계 인물 조차도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나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웬만해서는 벽을 뚫기 힘든 곳이다. 더군다나 연예인 그 중에서도 10대 아이돌 스타에게는 그 벽이 더더욱 높으며, 시간대가 저녁 메인 시간대라면 그 벽은 한층 더 높아진다.

지상파 뉴스 시간대는 주로 아침, 정오, 오후, 저녁, 새벽 시간대로 나뉘는데 그 중에서도 저녁 시간대는 꽃이라 할 수 있다. 뉴스의 주 시청자인 중장년층이 퇴근하고 집에서 뉴스를 시청하는 황금 시간대이기에 하루의 여러 뉴스 시간대 중에서 시청률이 가장 높게 나오기 때문이다. 이렇기에 당시 고작 10대 아이돌 스타에 불과했던 S.E.S. 소식이 문화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단독 보도됐다는 것은 단순히 10대 아이돌 스타를 넘어서는 큰 의미를 가진다.

당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사회적으로 크게 대두되고 있는 시기였는데, 일본에 진출한 S.E.S.는 팬과 대중, 언론 너나 할 거 없이 일본 문화와 견주어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하였다. 때문에 일본 데뷔 소식 자체가 한국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고 많은 기대를 받고 있었기에 보도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역대 아이돌을 통틀어서 아이돌 가수의 단독 소식만으로 지상파 저녁 메인 뉴스에 나온 사례는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극히 드물며, 특히 걸그룹에겐 그 벽이 더 높다.[16][17]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따른 시장 잠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큽니다만 최근 일본에서는 한국의 댄스 그룹 S.E.S.가 큰 인기를 얻으며 화제를 뿌리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박진원 특파원입니다.

S.E.S. 일본에서도 떴다 (1998.11.09 SBS 저녁 8시 뉴스)
S.E.S. 일본에서도 떴다.

파일:SES_news.jpg

1998.11.09 SBS ' 저녁 8시 뉴스' 당시 보도 화면

6.2.2. 활약상을 조명하는 지상파 코너 편성

2015년 1월 18일, MBC 해피타임에서는 스타열전 코너 주인공으로 S.E.S.를 집중 재조명하는 약 13분 가량의 방송을 내보내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당대 최고의 스타의 활약상만 다루는 해당 코너에서 걸그룹으로서는 유일하게 등장하였다.[18]

2000년대 중반 정도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이와 비슷한 포맷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당대 최고의 스타들의 과거 활약상을 집중 조명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까지 포함해도 걸그룹이 지상파 프로그램을 통해서 과거의 활약상이 단독으로 집중 조명받는 내용이 방송은 S.E.S. 최초이자 유일하다.[19]
'해피타임'에서 S.E.S.의 어린시절 사진이 공개됐다. 18일 방송된 MBC '해피타임'의 '스타열전' 코너에서는 그룹 S.E.S.의 활약상을 재조명했다.

파일:SES_2015.01.18_happytime.jpg

MBC TV 해피타임 실제 방송 화면

6.2.3. 지상파 단독 특집 프로그램 편성

모바일 동영상 앱 oksusu를 통해 2주간 총 10회로 방송된 데뷔 20주년 기념 프로젝트 리얼리티 프로그램 ≪Remeber, I'm Your S.E.S.≫가 1시간 분량으로 편집되어 2016년 12월 24일 MBC에서 방송되었다. 모바일 앱으로만 공개 예정이었던 해당 프로그램은 S.E.S. 브랜드 파워로 지상파에 특별편성 되었다.

걸그룹의 이름을 내세운 지상파 특집 프로그램이 편성되는 사례는 2세대 걸그룹 소녀시대 이후 역대 두 번째이며, 1세대 걸그룹으로서는 최초이자 2024년 현재까지도 유일하다. 또한, 걸그룹이 해체 및 활동 종료 후 자신들의 이름을 내세운 지상파 특집 프로그램이 편성된 것도 최초이자 2024년 현재까지도 유일하다.

역대 모든 여자 연예인을 통틀어서 자신들의 이름을 내세운 지상파 특집 프로그램이 편성된 사례는 배우 김희선, 2세대 걸그룹 소녀시대, 1세대 걸그룹 S.E.S. 총 세 팀만 존재할 정도로 희귀한 기록이다.[20]

6.3. 연예계

6.3.1. 같은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화제

데뷔 당시 S.E.S.는 같은 연예인들 내에서도 큰 이슈거리였다. 팬을 스스로 자처해서 직접 대기실에 찾아가거나 사인을 받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한 마디로 연예인의 연예인이었던 셈.
방송계 새로운 바람, 연예인들 S.E.S. 싸인 받기

요즘 들어 방송국에는 새로운 유행이 생겼다고 한다. 예전에는 시간이 지나면 연예인들끼리 서로서로 친분이 자연스럽게 두터워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는데, 가요계예 S.E.S.가 등장하고 나서 연예인들 마저도 팬들과 다름 없이 싸인을 받으러 쑥쓰러운 듯 이 세 소녀 가수들에게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이미 많은 남자 동료 연예인들이 싸인을 받아 갔는데, 어디서나 선배 가수들에게 깍듯한 예의를 갖추며 열심히 하는 모범생 스타일이기 때문에 잘 몰랐을 때 접했던 사람들이 이들을 직접 보고 그 성실성에 반해 더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다.
파일:SES_Magazine_1st_Broadcast.jpg

데뷔 당시 잡지 기사 중
바다는 13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 출연해 " S.E.S.로 활동할 때 박진영이 기타를 매고 저희 대기실에 찾아와 노래를 불러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삼엄한 경호로 다른 가수들과 접하기 어려웠는데 유일하게 경호를 뚫고 우리를 만나러 온 가수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박진영은 "너희가 S.E.S.구나. 진짜 인형같다, 방울 만져봐도 되니" 등의 말을 하며 마냥 신기해 했다고 바다는 전했다.

6.4. 문화계

6.4.1. 성별과 세대를 구분하는 기준점

데뷔 당시 S.E.S.를 읽는 방법과 인지 유무에 따라서 세대와 성별을 구분한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얼핏 들으면 왜라는 물음표가 지어질 수 있지만 들어보면 그럴싸하다. S.E.S.를 발음법 ~세스~라고 읽으면 구세대이고 알파벳 ' 에스이에스'라고 읽으면 신세대이며, S.E.S.를 모르면 남자도 아니고 미디어와 담을 쌓은 사람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S.E.S.를 모르면 화젯거리에서 제외되고, S.E.S.를 알아야만 유행을 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S.E.S.의 등장이 얼마나 파급력이 컸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혹자는 이들을 가리켜 ~세스~라고도 하지만 그렇게 부르는 이들은 구세대이다. 신세대라면 이들을 이렇게 부른다. 에스이에스.

1998.01.31 MBC 쇼 토요특급 중
S.E.S.를 모르면 남자도 아니다. S.E.S.를 ~세스~라 부르면 신세대도 아니다 등 남성과 세대를 분가름하는 가치 기준이 된 S.E.S.

1998.02.21 MBC 쇼 토요특급 중
' S.E.S.를 아시나요?'. 만약 '~세스~? 그게 뭔데' 하고 묻는다면 요즘 TV나 라디오와 담을 쌓은 사람으로 보면 된다.

S.E.S.를 ~세스~라고 읽으면 구세대라는 세대 구별법까지 등장.

2015.01.18 MBC 해피타임 스타열전 중

6.5. 메이크업계

6.5.1. 투명 메이크업 유행 주도

1990년대 연예계의 메이크업 트렌드는 주로 피부 표현은 매트하게, 눈썹은 갈매기 모양으로, 눈은 진한 아이라인과 색조 섀도우로, 입술은 원래 라인보다 두껍게 그리고 꽉 채워놓는 것이었다. 그 당시 베이비복스, S.O.S, 애플 등의 걸그룹들도 무대에서 이러한 메이크업을 하고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S.E.S.가 무대에 보여준 메이크업은 이와는 완벽하게 반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강한 아이라인과 형형색색의 섀도우, 두꺼운 립라인과 브라운 립색, 강한 셰이딩 등은 과감하게 걷어냈다. 화장은 최소한으로 하고 입술은 립글로스나 챕스틱 정도만 할 정도로 10대 소녀 본연의 폿풋한 매력을 한껏 살렸다.

S.E.S.가 선보인 이런 투명 메이크업은 그 이후 걸그룹들의 메이크업을 바꿔놨으며, 더 나아가 연예계 전반적으로 투명 메이크업으로 유행이 개편되는 계기가 되었다.

6.6. 언론계

6.6.1. PC통신 유니텔의 인기비결 단독 여론조사 실시

1998년 3월, PC통신 유니텔이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S.E.S.의 인기비결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총 1,090명(남성 657명, 여성 433명)이 참여하였다.
PC통신 유니텔이 통신인들에게 S.E.S.의 인기비결을 묻자 1,090명(남자 657명, 여자 433명)이 응답했다.

6.6.2. KBS와 PC통신 선정 상반기 연예계 10대 뉴스에 랭크

1998년 6월 25일, KBS2 연예 정보 프로그램 ≪ 연예가중계≫가 PC통신에 조사를 외뢰하여 대중들을 상대로 실시한 1998년 상반기 대표 연예계 10대 뉴스에 S.E.S.를 필두로 대중 가요계에 일어난 이룬 10대 소녀 가수 붐 현상이 선정되었다.
정보·오락 「 연예가중계 KBS2 오후 8:30

6.6.3. 포탈사이트의 콘셉트 영향력 단독 여론조사 실시

1999년 11월 6일에서 12일까지, 여론조사기관 광장커뮤네이션[21][22]이 운영하는 연예 포탈사이트 TVnet[23]이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 S.E.S.의 노랑머리는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냐'라는 주제의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해당 여론조사에는 총 788명이 참여하였다.[24]

당시 S.E.S.는 정규 3집 타이틀곡 < Love>로 컴백하였지만, 많은 10대 팬층을 확보하고 있었던 S.E.S.였던 만큼 주요 콘셉트로 내세운 금발 머리는 청소년들에게 탈선 등의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으로 공영방송 KBS로부터 방송 정지를 당하였다.

당시 시대적인 상황으로는 좀처럼 쉽게 생각할 수 없는 파격적인 콘셉트였고, 이러한 우려로 S.E.S.의 방송정지는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었다. 이러한 상황을 포탈사이트가 직접 나서서 여론조사를 실시[25]할 정도로 당시로서는 파급력이 컸던 콘셉트였다.
파일:3집 금발머리 여론조사.jpg

6.6.4. 일간스포츠 선정 연간 연예계 10대 뉴스에 랭크

2002년 12월 22일, 일간스포츠가 선정한 2002년 한 해 연예계를 대표하는 10대 뉴스 중 S.E.S.의 해체 소식이 걸그룹으로서는 유일하게 선정되었다.
사건과 화제는 끊이지 않았다. 연예계는 새해 벽두부터 유승준의 미국 시민권 취득으로 인한 병역 기피 파문을 시작으로 인기 그룹 S.E.S. 해체까지, 충격적인 사건과 화제로 술렁거렸다. 주로 하반기에 큰 사건이 터져 나와 연예계도, 이를 지켜보는 팬들도 숨 가빴다. 10대 뉴스를 살펴본다.

6.6.5. 스포츠서울 선정 연간 연예계 10대 뉴스에 랭크

2002년 12월 30일,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들의 자체 투표로 선정한 2002년 한 해 연예계를 대표하는 10대 뉴스 중 S.E.S.의 해체 소식이 걸그룹으로서는 유일하게 선정되었다.
2002년 연예계는 그 어느 해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결혼, 파경, 법정공방, 별세, 열풍 등 그야말로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단어가 실감나는 한 해였다. 올 연예계를 뜨겁게 달궜던 다양한 소식을 10대 뉴스로 정리했다. 순위는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들의 자체 투표에 따른 중요도 순이다.

6.7. 정치계

6.7.1.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 행사 및 정당 주제가·로고송 제안

2000년 3월 초, S.E.S.를 비롯한 SM 가수들[26]은 4월 13일에 치러질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홍보를 위하여 각 정당들로부터 유세 현장에 참여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이 외에도 각 정당 주제가를 불러다는 요청과 자신들의 히트곡을 선거 로고송으로 사용하는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SM은 정치와는 별개로 자유로운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명분하에 해당 제의들을 모두 거절하였다.
“우린 정치하고 무관해요.”

H.O.T-S.E.S-신화 "우린 정치하고 무관해요" 아카이브 (2000.03.07 라이코스 코리아 엔터테인먼트)

6.7.2. 국가 행사를 대표하는 국민 아이돌로서의 위상

데뷔하고 6개월 남짓 '전 세계에 송출되는 대한민국 홍보 CF 모델로' 각계 각층의 대표 인물들이 발탁되었는데 연예인 모델 중 걸그룹으로서는 S.E.S.가 유일하게 한국을 대표하는 얼굴로 발탁되었다.

6.7.3.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오찬에 초대

2000년 8월 22일,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 일본 마지막 체류날 일본 현지에 진출해서 활동하고 있는 대중 가수들을 초청했다. 이 자리에 S.E.S. 김연자, 계은숙, 이수만 등과 함께 초대되었다.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은 22일 일본 체류 마지막 일정으로 현지에 진출해 활동하고 있는 우리 대중 가수들을 만났다. 한국 대중문화가 일본에서 제대로 착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라는 당부와 격려를 하는 이례적인 자리였다.

6.7.4. 연예인 최초·유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만화 전국 출간

2002년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젊은 층의 투표 독려를 위하여 S.E.S.를 이미지를 차용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홍보만화를 배포하기도 했다.

6.8. 월드컵

6.8.1. 2002 한·일 월드컵 대중 여론조사로 명예 홍보위원 위촉

한국인에게는 잊지 못할 레전드 월드컵으로 남아있는 '2002 한일 월드컵을 홍보하는 대표 모델을 인터넷 여론조사로 선정'하였는데, 네티즌 35,643명이 참여한 결과 여자 연예인으로서는 가장 많은 득표수를 얻어 명예 홍보위원으로 발탁되었다.

6.8.2. 2002 한·일 월드컵 조직위 선정으로 문화 홍보사절 위촉

2002 한일 월드컵 조직위가 직접 선정한 여러 분야의 문화 홍보사절로 조용필, 서태지, 김흥국 등과 가수 부문 대표로 선정되었다.

6.9. 주식계

6.9.1. 해체 소식에 SM 주가 6.25% 급락

2002년 12월 20일, 전날 19일에 S.E.S. 해체 소식이 언론 보도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정된 바로 다음날 SM 주가가 5%에서 6.25%까지 급락하였다. 해당 급락 수치는 2001년 5월 13일, 같은 SM 출신 보이그룹 H.O.T. 해체 후 주가가 4.95% 급락( 문헌 1 문헌 2)한 것보다 더 떨어진 수치였다.

S.E.S. 대형 기획사 SM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H.O.T.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음반 판매 수익을 가져다주었고, H.O.T. 해체 이후에는 SM의 음반 판매 수익 일등공신이었다. 음반 판매뿐 아니라 공식 팬클럽, 광고 등 다방면의 활약에서도 황금알을 낳아주는 효녀였다.

아이러니하게 S.E.S.가 아이돌 스타로서 SM과 연예계에서 가지고 있던 위력이 해체를 통해 바로 지표를 통해 나타난 것이다. 걸그룹은 돈이 안 된다는 통념을 깨고 기획사의 캐시카우가 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들의 작은 행보 하나만으로도 회사의 기둥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최초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유진과 재계약 협상 결렬로 S.E.S.가 해체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에 SM 주가가 20일 5%대 하락했다.

인기 여성 보컬그룹 S.E.S.가 해체 위기를 맞으면서 SM 주가가 20일 6.25% 급락했다.

6.10. 교육계

6.10.1. 日 공민 교과서에 수록

2005년, 일본 도쿄호레이 출판사(東京法令出版社)가 출판한 공민 교과서에 '공생(共生)사회의 실현을 위해 한국의 대중문화에 대해 알아보자'라는 제목으로, S.E.S. 한국 걸그룹으로서는 유일하게 가요 부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인기 가수로 신화, BoA와 함께 사진이 수록 및 소개되었다.
한국의 대중문화를 가요, 드라마, 영화 등 3개 부문으로 나누어 서술한 이 교과서의 가요 부문에 실려 있다.

6.10.2. 천재교과서 중학교 통합 음악 교과서에 수록

2018년, 천재교과서가 출판한 중학교 통합 음악 통합 교과서에 S.E.S. 걸그룹으로서는 유일하게 1990년대를 대표하는 K-POP 인물로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사진이 수록 및 소개되었다.

또한, S.E.S.의 데뷔곡 < I'm Your Girl>이 걸그룹 노래로서는 유일하게 1990년대를 대표하는 노래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 난 알아요>, H.O.T.의 < 행복>, 젝스키스의 < 사나이 가는 길>, 신승훈의 < 보이지 않는 사랑>과 함께 소개되기도 하였다.
1990년대.

6.10.3. 동아출판 중학교 1학년 음악 교과서에 수록

2018년, 동아출판이 출판한 중학교 1학년 음악 교과서 52페이지에 S.E.S. 걸그룹으로서는 유일하게 1990년대를 대표하는 K-POP 인물로 김건모,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사진이 수록 및 소개되었다.

또한, S.E.S.의 1집 후속 < Oh, My Love>가 걸그룹 노래로서는 유일하게 1990년대를 대표하는 노래로 김건모의 < 잘못된 만남>, 서태지와 아이들의 < 난 알아요>와 함께 소개되기도 하였다.
1990년대. 신세대 문화가 이끈 대중음악 황금기.

7. 글로벌 위상

7.1. 미국

7.1.1. 韓 여자 가수 최초로 美 빌보드에 보도

1998년 5월 16일, 미국의 권위 있는 음악잡지 빌보드는 IMF 경제한파에도 아랑곳하지 하지 않고 걸그룹으로서 유례 없는 신드롬급 인기를 얻고 있는 S.E.S.의 활약상을 상세하게 분석하는 기사를 지면 54페이지[27]에 보도하였다. 이는 한국 여자 가수 최초로 미국 빌보드에 소개된 기록이었으며, 신승훈 이후 역대 한국 가수 두 번째로 소개된 기록이었다.

지금은 K-POP 아시아는 물론 서구권까지 뻗어나가며 빌보드 차트에도 오르는 게 놀라운 일이 전혀 아니지만, 당시로서는 미국 내에서 K-POP은 마이너한 영역에도 속하지 못 할 만큼 철저한 비쥬류 영역이었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빌보드에 보도된 S.E.S.의 소식은 당시로서는 파격, 충격 그 자체였다. 그것도 S.E.S. 등장 바로 전까지만 하더라도, 남성 가수와 보이그룹에 비해 철저히 비주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걸그룹이 갓 데뷔한 신인 시절에 보도되었다는 것도 더 파격적이었다.

전 세계 대중 음악시장의 메카이자 팝의 본 고장인 미국에서 오랜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빌보드인 만큼, 해당 내용은 지상파 SBS MBC를 필두로 여러 언론에서 다룰 정도로 국내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다. S.E.S. 멤버들도 빌보드 보도 사실을 접해서 알고 있었으며, 방송에 출연하여 보도된 실물 잡지를 보여주며 이 내용을 언급하였다.[28] 대만을 필두로 중화권에 진출하였을 때도, 빌보드 보도 사실이 크게 홍보되며 중화권 음악팬들의 관심을 받기도 하였다.
The Next Sounds You'll Hear... New Asian Talent. SOUTH KOREA. Artist: S.E.S. Album: "S.E.S." Label: King

파일:빌보드에 나온 자신들의 소식을 소개하는 S.E.S.jpg

일간스포츠 정교민 기자: 얼마 전에 제가 신승훈 씨에 대한 기사가 빌보드지에 실렸다는 그런 소식을 전해드린 적이 있죠. 예 근데 이번에는 S.E.S.에 대한 기사가 빌보드지에 대서특필이 돼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1998.05.26 MBC 특종 오늘의 토픽 중

7.1.2. 韓 가수 최초로 美 프로덕션 측으로부터 진출 제의

1999년 11월 중순경, 정규 3집 타이틀곡 < Love>로 한창 활동하고 있던 당시 미국의 대형 프로덕션인 래퍼슨, 네오비전, 존 미디어 총 세 곳으로부터 미국 진출 제의를 받았다. 이는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프로덕션 측으로부터 진출 제의를 받은 기록이었다.

비록 당시 시대적인 여러 환경상 최종적으로 거절하였지만, 전 세계 대중음악 시장의 메카이자 팝의 본 고장인 미국 측으로부터 직접 제안을 받았다는 것은 S.E.S.의 음악이 통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보내왔다는 신호이기에 꽤나 고무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제의 거절 및 미국 진출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S.E.S. 문서의 7.4 문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파일:SE-b5e19f9f-1a39-4d17-a040-1a336a62da8b.jpg

1999년 11월 추정 잡지명 미상
미국 팝시장 진출 제의. 소속사 SM 신중하게 검토 중.

美 프로덕션 S.E.S. 에 “손짓” (1999.11 연예정보신문)

7.2. 영국

7.2.1. 英 파이낸셜 타임스의 한류열풍 보도 중 대만 차트 1위 소개

2002년 2월 8일, 영국의 경제신문 파이낸셜 타임스 아시아를 휩쓸고 있는 한류열풍을 특집 기사로 보도하며 대만 음악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한 S.E.S, 캄보디아 차트 정상을 차지한 신화, 일본 시장을 휩쓴 BoA의 사례를 소개하였다.
‘한류(韓流) 열풍은 한국판 문화적 제국주의(?)’

한국 아시아 지역을 휩쓸고 있는 `한류(Koreanwave)' 열풍을 타고 아시아의 미디어 및 창작 산업 중심지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8일 보도했다.

아시아를 휩쓸고 있는 한국 문화의 열풍에 대해 유럽에서도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한국 아시아 지역을 휩쓸고 있는 한류열풍을 타고 아시아의 미디어와 창작산업 중심지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런던에서 이동식 특파원의 보도입니다.

파이낸셜 타임스 중국 아시아 지역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대중문화도 높게 평가했다.

7.3. 아시아

7.3.1. 취재를 위한 외신들의 방한

2000년 3월 19일 개최한 첫 단독 콘서트 《A Sweet Kiss from The World of Dream》에는 취재를 위해 일본 외신 기자들 60명, 대만 외신 기자들 40명 총 100명의 외신 기자들이 방한했다. 아시아에서 인기와 위상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지난 19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육관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한 여성 3인조 S.E.S.가 일본, 대만 기자단 1백여여명의 집중 취재 대상이 돼 아시아에서 그들이 얻고 있는 폭넓은 인기를 입증했다.

7.3.2. 韓 가수 최초로 한중일 삼개국어 기자 회견 실시

2000년 3월 19일, 첫 단독 콘서트 《A Sweet Kiss from The World of Dream》 성료 후 일본, 대만 기자들과 함께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로 질의응답 기자회견을 실시하였다. 한국 가수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로 기자회견을 실시하는 것은 최초였다.

2000.03 대만 음악 잡지 PLAY 공홈 기자회견 전체 영상

7.3.3. 韓 가수 유일하게 일본·대만 합동 친선 음악회에 초청

2001년 3월 22일, 일본의 지상파 방송사 후지 TV 대만의 케이블 방송사 TVBS가 합동으로 친선 음악회 'ASIA SUPER LIVE[29]'를 개최하였다. 해당 친선 음악회는 후지 TV가 1957년 개국 이래 44년 만에 처음으로 해외 방송사와 합동으로 개최한 음악회로서 큰 의미를 지닌 프로젝트였다. 아시아 국가의 활발한 교류와 우호 관계를 목적으로 특별 제작되었으며, 일본을 필두로 대만, 중국, 태국,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아시아 8개 국가에 녹화 방송되었다.

위에 서술된 것처럼 한국과는 연고가 없는 음악회임에도 불구하고, 초청된 9팀의 가수 중에서 S.E.S. 한국 가수로서는 유일하게 한국 대표 자격으로 초청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동안 일본 대만을 넘나들며 펼친 범아시아적인 활동으로 쌓은 인지도와 인기도, 아시아를 이어주는 문화 가교자로서의 위치, 그리고 아시아 음악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S.E.S.는 이 무대에서 일본, 대만, 홍콩의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는 정상급 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한국 가수의 위상을 떨쳤다. < I will>을 라이브로 훌륭하게 선보여 호평을 받았으며, 한·미·일 출신으로 이루어진 다국적 군단 걸그룹답게 한국어, 영어, 일본어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취지에 걸맞은 모습으로 그 의의에 뜻을 더하였다.
2001
[[일본|]][[틀:국기|]][[틀:국기|]]·
[[대만|]][[틀:국기|]][[틀:국기|]] ASIA SUPER LIVE 친선 음악회 정보
개최
일자 2001년 3월 22일.
요일 목요일.
시간 미상.
국가 일본.
도시 도쿄.
장소 후지 TV V4 스튜디오.
진행
일본 ~ 東山 紀之(ひがしやま のりゆき)~[30][31].
대만 비비안 수, 黃子佼[32], 曾寶儀[33].
출연
한국 S.E.S.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가수 유일 초청
.
일본 TOKIO, MAX, V6.
대만 蔡依林[34], 動力火車[35].
홍콩 梁詠琪[36], Karen Mak, 陳小春[37].
방송
일자 2001년 3월 27일.
요일 화요일.
시간 PM 10시.
국가 일본.
채널 후지 TV.

대만 측 진행자 黃子佼(Mickey Huang)이 본인 유튜브에 올린 당시 출연진 라인업
‘노래하는 천사’ S.E.S. 일본의 인기 여성 그룹 맥스(MAX)와 한 무대에 선다.

S.E.S. 맥스(MAX) 일본 후지 TV주최로 오는 22일 열리는 ‘슈퍼라이브’에 한 ·일 양국을 대표하는 여성 그룹으로 출연해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

스케줄에 22일로 잡혀있던 일본 공연에 관한 자세한 일정과 내용입니다..^^ S.E.S. in "Asia super Live".

[정보] S.E.S. in "Asia super Live" (2001.03 SM 공식 홈페이지)
フジテレビと台湾の最大手テレビ局 TVBSが共同制作した27日放送の音楽番組「アジアスーパーライブ」(火曜深夜1・0)の収録が22日、東京・台場のフジテレビで行われた。アジアの交流を深めるために企画されたワールドワイドの歌番組。収録には S・E・S(韓国)ら海外勢も圧倒的な歌唱力を披露した。フジが海外のテレビ局と音楽番組を制作するのは今回が初めて。台湾のほか衛星チャンネルで中国、カンボジア、ニュージーランドなどアジア諸国でも今春放送予定。

7.4. 일본

7.4.1. 韓 연예인 최초로 日 정부관광국 홍보 모델 발탁

2001년 9월, S.E.S. 일본 정부관광국 측으로부터 한국 지상파 3를 통해 방영될 일본 관광홍보 CF 모델로 발탁되었다. 해당 CF는 2002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맞이하여 일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이미 같은 해 3월, 일본 여배우 사카이 노리코(酒井 法子)를 모델로 발탁하여 제작한 관광홍보 CF를 한국 TV를 통해 송출하여 홍보를 펼쳐왔으나, 생각만큼 한국에서 인지도가 높지 않았기에 모델 교체를 감행하였다.

일본 정부관광국 측은 차기 모델 선정에 있어서 한일 양국에서 모두 높은 인기도와 인지도를 구가하고 있고,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멤버가 있는 S.E.S.를 적임자로 판단하여 한참을 섭외한 끝에 모델로 발탁하였다. S.E.S.가 출연한 CF 제작과 방영에 총 4억여 원을 투자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으며, CF는 같은 해 11월 말에서 2002년 1월 말까지 한국의 지상파 3사를 통해 168회 정도 송출되었다.

S.E.S.는 단 2개월 초단기 계약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한화 5,000 만원에 해당하는 500만엔의 개런티를 받는 초특급 대우를 받았으며, 특히 한국 연예인 최초로 일본 관광홍보 CF 모델로 발탁되는 국가적 위상을 보여주었다.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사이가 그나마 완만하였고,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를 앞두고 있어서 양국 국가기관에서 상대국의 연예인을 홍보모델로 발탁하는 일도 더러 있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전설적인 남성 듀오그룹 차게 앤 아스카 한국 문화관광부 측으로부터 한국방문홍보사절 및 한일 월드컵 홍보사절로 위촉되기도 하였다. S.E.S. 일본 정부관광국 관광홍보 CF 모델 발탁도 이러한 양국 간의 교류의 흐름 속에서 성사된 문화교류 중 일환이었다.
2002 한일 월드컵 개최 당시 양국 국가기관에서 홍보모델로 발탁한 상대국 연예인 목록
발탁 내용 문헌

[[일본|]][[틀:국기|]][[틀:국기|]]
2001년 9월, 일본 정부관광국이 관광 홍보 CF 모델로 S.E.S. 발탁 하단에 서술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2000년 4월 28일, 한국 문화관광부 한국방문홍보사절 및 한일 월드컵 홍보사절로 차게 앤 아스카 임명 영상
기사
2001년 4월, 한국 문화관광부 한국홍보대사로 久我 陽子(쿠가 요코) 임명 기사

온에어 CF
S.E.S. '일본으로 여행오세요.' 관광홍보 CF 한국 모델 낙점... 2개월 단발 5,000만원

인기 여성 그룹 S.E.S. 일본 관광홍보 CF 모델로 나선다.

지난달 일본 국제관광진흥회로부터 일본 관광 홍보 CF의 한국 모델을 맡아달라는 섭외를 받은 S.E.S.는 2개월 단발에 500만엔(약 5000만원)의 개런티를 받고 출연을 결정했다.

일본 국제관광진흥회는 내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맞아 관광국으로서의 일본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양국에서 모두 인기가 높은 S.E.S를 모델로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16일 일본 도쿄로 떠나는 S.E.S. 유진 바다는 현지에서 뮤지컬 '동아비련'에 출연 중인 와 합류, 이틀 동안 도쿄 곳곳의 관광명소를 담은 CF를 촬영한 후 19일 귀국한다.

S.E.S.의 이번 CF는 다음달말부터 내년 1월말까지 우리나라 지상파를 통해 방송된다. 〈 김소라 기자 soda@〉

S.E.S. 일본 관광 홍보 CF 모델.

인기 여성 그룹 S.E.S. 일본 관광홍보 CF 모델로 나서게 됐다.

지난달 일본 국제관광진흥회로부터 일본 관광 홍보 CF의 한국 모델 섭외를 받은 S.E.S.는 2개월 단발에 500만엔(약 5000만원)의 개런티를 받고 출연을 하게됐다.

내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맞아 관광국으로서의 일본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일본 국제관광진흥회는 양국에서 모두 인기가 높은 S.E.S.를 모델로 선정했다.

촬영은 오는 16일 S.E.S. 유진 바다 일본 도쿄로 떠나 현지에서 뮤지컬 '동아비련'에 출연 중인 와 합류해 이틀 동안 도쿄 곳곳의 관광명소를 찾는다. 이틀 간 상큼하고 발랄한 S.E.S.만의 이미지를 담은 CF를 촬영 후 19일 귀국한다.

S.E.S.의 이번 일본 관광 홍보 CF는 다음 달 말부터 내년 1월말까지 우리나라 TV를 통해 방송된다.

S.E.S. 일본 관광 홍보 CF 모델 (2001.10.12 SM 공식 홈페이지)
S.E.S, 일본서 눈물의 상봉...??

S.E.S. 때문에 일본을?

S.E.S. 일본 관광 사절단? … 日정부 CF 출연

" 유진이 화면속에서 말한다. “ 일본도 정말 재밌네요”

7.4.2. 韓 가수 유일하게 2001 한일 합동 행사에서 단독 공연 편성

2001년 11월 15일에서 19일까지 일본 오사카 인텍스 전시장에서 '제2회 KOREA SUPER EXPO 2001' 행사가 개최되었다. 두 번째로 개최되었던 2001년 행사는 한국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일본 NHK· 아사히 신문의 공동 주최, 한국 산업통상자원부 일본 경제산업성의 공동 후원으로 치러졌다.

<KOREA SUPER EXPO> 행사는 1998년 10월에 열린 한일 정상회담( 문헌)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양국의 협력 분위기를 고취하고 상호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0년에서 2002년 3년 연속으로 개최하기로 약속한 산업·문화 전시회로서( 문헌), 한일 양국의 상호 교류에 있어서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행사 첫 날인 15일, S.E.S.는 오후 4시에서 5시까지 약 1시간 가량 치러진 오프닝 무대에서 단독 공연을 편성 받았다. 이는 4일간 진행된 주요 이벤트 중 한일 양국 가수로서는 유일하게 편성 받은 단독 공연이었다.

S.E.S.는 이 무대에서 < 꿈을 모아서>, Lovin' You( 일본어 곡), < I will>, < Be Natural>, < Uhh Happy Day>, < 달 끝까지>를 불렀다. 특히, 한국어 곡은 물론이고 일본 현지에서 일본인 작곡가한테 받은 곡의 한국어 번안 버전과 일본어 원곡도 부르며[38], 한일 양국의 우호 자리에 걸맞은 모습으로 그 의의에 뜻을 더하였다.

2001.11.21 KMTV 『생방송 뮤직큐』
일본어: 今年11月15日から19日まで 日本 大阪インテックス展示場で行われる<KOREA SUPER EXPO 2001>行事のイベントであるスーパーコンサート(定式名称はProject 2002 concert in Osaka)行事に出演する歌手の日程が最終確定されました。

KOREA SUPER EXPO 2001 오사카 공연에서 S.E.S.가 부를 곡

KOREA SUPER EXPO 2001 S.E.S. 공연 (2001.11 일본 avex 공식 홈페이지 일정 안내)
여성 댄스그룹 S.E.S.가 15∼19일 일본 오사카 ‘인덱스 오사카’에서 열리는 ‘ 한·일 교류 코리아 슈퍼엑스포 2001’에서 단독 공연을 연다.[39]을 선보인다.

영상 자료가 유실되었다. 단, 당시 다음 팬 카페에 방송되었다는 일부 정보글이 남아 있다.

7.4.3. 日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韓 방문 당시 CD 구매

2002년 3월 21일,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 純一郎) 총리가 내한하였을 때,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음반 가게에 들러 직원에게 가장 잘 나가는 음반을 물어본 후, 직접 S.E.S.의 CD를 구매한 일화가 있다. 보도상으로는 어떤 CD를 구매하였는지 나오지 않았지만, 당시 시기상 S.E.S. 정규 5집을 구매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고이즈미 총리는 국악원에 가는 도중 하차, 삼성동 코엑스 지하 1층 ‘애반 레코드사’에 들러 점원에게 “요즘 잘 나가는 CD가 무엇이고, 올해 한국에서 사랑받는 노래가 뭐냐.”며 물은 뒤 가수 god, S.E.S, 조용필, 계은숙 씨의가요 CD와 겨울연가 사운드 트랙을 직접 사기도 했다.

7.5. 해외 팬들의 커버 댄스

K-POP이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지금 시선으로는 해외 팬들이 K-POP 커버 댄스 영상을 유튜브 등의 플랫폼에 게시하고 공유하는 것이 일종의 문화처럼 자리 잡아 흔한 일이 되었지만, 2000년대 중반 당시로서는 K-POP 대만이나 중국 등의 중화권 정도에서만 흥하는 정도였고[40] 지금처럼 플랫폼과 인터넷이 발달되기 전이라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2000년대 중반 당시, 국내에서는 UCC 등이 유행의 급물살을 타고 있어서[41], 국내 네티즌이 노래나 댄스 챌린지 등을 국내 사이트에 게시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반대로 외국 네티즌이 K-POP 가수의 커버 댄스 영상을 게시하는 것은 극히 적은 시기였다. 이 시기에 일본, 중국 등을 필두로 심지어 브라질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S.E.S. 커버 댄스 영상을 인터넷에 게시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S.E.S.는 2002년 연말에 해체하였고, 게시일 기준으로 활동을 안 한 지 4년이나 되어가는 시점이라서 더욱더 이색적인 현상이었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대 K-POP 시대를 맞이한 지금 만큼의 게시수에 비하면 현저히 적은 수치이지만, 위에서 적혀 있 듯이 당시 시대적인 상황을 감안한다면 고무적인 현상이었다.
  • 2000년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당시, 중국 동영상 사이트 土豆网(tudou)에 남녀 학생들이 S.E.S. 정규 3집 타이틀곡 〈 Love〉 커버 댄스 영상을 게시하였다.

7.6. 그 외

·· 문화 가교자 역할.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 동아시아에서 많은 팬을 보유한 그룹답게 팬들 사이에서도 이색적인 교류가 피어났다. 한국 팬은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 팬은 한국어를 배우고, 대만 중국 팬은 한국어 일본어를 배우며 비록 국적과 문화는 다르지만 서로 한 마음 한 뜻으로 같은 스타를 응원하는 양상이 펼쳐진 것이다.[42] 비록 각 국가들 간의 역사적, 정치적 이념 대립은 있을 지 몰라도 S.E.S.는 그 사이에서 아시아 팬들을 이어주는 문화 가교를 놓으며 서로를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이해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1] 바로 옆에 각주에 설명 되어 있 듯이 해당 잡지는 매주 목요일마다 발매된 주간 잡지였다. 당시에는 활동 하면서 잡지 인터뷰를 하는 방식이 굉장히 많았다. S.E.S.가 잡지에 살린 해당 개나리색 옷을 입고 등장한 방송분은 1998년 3월 1일 생방송 SBS 인기가요』( 데뷔 정규 1집 타이틀곡 〈 I'm Your Girl〉로 박진영의 〈Honey〉를 제치고 2주 연속 1위를 수상하였다.)와 7일 녹화방송 SBS 기쁜 우리 토요일』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빠르면 3월 5일자 늦으면 13일자 혹은 20일자 잡지에 보도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 매주 목요일에 발행되었다. [3] 현재 셀럽미디어 사이트에 기고된 링크는 삭제되었다. 네이버 포탈 뉴스에 제목과 내용을 검색하면 기사 제목은 뜬다. 링크 [4] S.E.S.는 이날 방송에 출연하여 정규 3집 타이틀곡 〈 Love〉 컴백 무대를 가졌다.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5] S.E.S.는 이날 방송에 출연하여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해당 조사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6]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로 대역전극이 펼쳐지게 된다. 2세대 아이돌 그룹 카라, 소녀시대, BIGBANG 등을 필두로 일본 내에 '제2차 한류붐'이라고 일컬어질 정더로 K-POP 열풍이 불고, 반대로 한국에서는 그나마 매니악하게 인기가 있었던 J-POP의 인기는 추락하게 된다. 특히 일본 내에서의 K-POP 한류 인기는 현재 '제4차 한류붐'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으며,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분야가 더 넓어지고 대중적인 파워가 더 강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이명박 독도 방문으로 인해 잠시나마 한류가 대중적인 인기를 잃어가는 시기는 있었지만, 그 시기는 짧았으며 '제3차 한류붐''이라는 타이틀로 일컬어지며 다시 인기를 이어나가게 된다. [7] 한 명은 치과 의사, 다른 한 명은 피부과 의사라고 한다.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8] 정확한 나이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당시 초등학생이라고 밝힌 것으로 보아 이때쯤으로 추정된다. [9] JTBC 비정상회담』으로 대중적 유명세를 얻었다. [10] 그나마 같은 1세대인 베이비복스가 인기가 있었지만 2004년 7집 이후 활동을 중단했고, 그 사이에는 쥬얼리 슈가 등이 간간히 명맥을 잇고 있었다. [11] S.E.S.가 활동한 2002년까지 기준으로 정리한 것이며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져서 포함되지 않은 그룹도 있을 정도다. [12] 이 중에서 투야가 멤버 구성과 일본 진출 마케팅 등에서 가장 유사했으며 포스트 S.E.S.로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13] 클레오는 데뷔 초기 S.E.S.의 이미지나 콘셉트 등을 노골적으로 벤치마킹했다. [14] 기사 본문은 삭제 되었다. [15] 다른 가수들이나 분야와 함께 묶어서 보도됐다는 게 아니라 오직 S.E.S. 소식만 단독으로 보도 됐다는 것을 말한다. [16] 1세대 걸그룹 베이비복스의 중국 공연과 관련된 인터뷰가 MBC 뉴스데스크에 나온 적은 있지만 단독 소식은 아니었다. [17] 2세대 걸그룹 원더걸스가 2007년 당시 < Tell Me> 신드롬으로 SBS '저녁 8시 뉴스'에 단독 소식으로 보도된 적이 있다. 해당 영상 [18] 해피타임과 방영 시기와 포맷이 엇비슷하고 각각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 아침 시간대라는 점이 겹쳤던 KBS2 세대공감토요일은 라이벌 스타를 엮어서 재조명 하는 코너는 있었지만 스타 단독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은 없었다. [19] 2019년, 핑클 캠핑클럽으로 컴백한 후 MBC ON에서 '접속하시겠습니까? 핑클'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전성기 당시 핑클이 출연하였던 MBC 방송분을 편집해서 재방송해준 적은 있지만, 앞서 서술된 것처럼 지상파가 아니다. [20] 예능 형식이 아닌 콘서트 형식의 특집 프로그램까지 포함하면 송가인도 꼽을 수 있다. [21] 관련 기사. [22] 주로 KBS가 여론조사를 의뢰하였던 여론조사기관이다. KBS 가요대상도 이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표본을 추출하여 수상자를 선정하였다. [23] 관련 기사 1 관련 기사 2. [24] 현재 Wayback Machine 결과 링크는 삭제되어서 볼 수 없다. [25] 2024년 현재로 치면, 네이버 자사의 TV 연예 투표, 다음 자사의 연예 투표 카테고리를 이용하여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26] H.O.T, 신화, 플라이 투 더 스카이. [27] 총 107 페이지 중. [28] 다만, 현재로서는 S.E.S.가 직접 언급하였다고 알려진 방송분 영상이 안 남아 있어서 S.E.S. 당사자들이 어떤 말을 했는 지는 확인할 수 없다. [29] 일본어 アジアスーパーライブ. [30] ~ 히가시야마 노리유키~. [31] 일본의 거대 남자 아이돌 연예 기획사 쟈니스 사무소가 제작한 남성 아이돌 그룹 소년대 멤버로 데뷔하여 가수와 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하였던 만능 엔터테이너. ~하지만...~, 2023년 쟈니스 사무소의 설립자이자 초대 사장인 고 ~ 쟈니 키타가와~의 성착취 파문 폭로 당시, ~ 히가시야마 노리유키~도 성착취를 대물림했다는 폭로를 당하였다. 일명 내 소세지를 먹어. 추악한 성폭력을 대물림한 인간이다. [32] 황자교, Mickey Huang. 1972년생으로 대만의 유명한 MC였으나 2024년 아동 성범죄 의혹이 있는 인물이다. [33] 증보위, Bowie Tseng . [34] 차이린린, 채의림, Jolin Tsai(ジョリーン・ツァイ). [35] 동력화차, Power Station(パワーステーション). [36] 양영기, Gigi Leung Wing Kei. [37] 진소춘, Jordan Chan. [38] 가창한 총 6곡 중에서 한국인 작곡가가 만든 원산지가 K-POP인 곡은 2곡, 일본인 작곡가가 만든 원산지가 J-POP인 곡은 4곡으로 오히려 J-POP 곡 비율이 두 배로 더 높다. [39] I will Be Natural은 2000년 12월 23일 한국에서 발매된 정규 4집에 수록된 K-POP 곡이지만, 2001년 6월 13일 일본 avex를 통해 일본 내에도 라이센스 형태로 이미 발매된 상태였다. [40] 일본에서 K-POP 열풍이 일어난 시기는, 2010년 2세대 걸그룹 카라 소녀시대 진출 때부터이다. 이전에도 BoA 동방신기 등의 K-POP 가수들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었으나, K-POP 아티스트가 일본 현지에 날아가 일본 작곡가들의 곡 즉 J-POP을 선보이는 현지화 전력이었기에 엄밀히 K-POP 열풍으로 보기에는 다소 개념이 다른 지점이 있다. 한국 일본 양국 언론들도 카라 소녀시대 진출 시기부터 제2차 한류 붐으로 규정하고 있다. [41] 대표적인 사례로 원더걸스의 〈 Tell Me〉가 있다. [42] S.E.S.가 2001년 2월 23일 MBC 웹 투나잇에 출연해서 직접 밝힌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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